|
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1호에 실린 글
◇동 화◇
최 동 철
주학이네반 동무들은 주학이를 수산기라고 불렀습니다. 주학이가 수산기처럼 그 어떤 속셈문제도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니까요. 선생님은 속셈시간이면 제일 먼저 손을 들군 하는 주학이를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어떤 때는 못 보신척 하시고 다른 학생을 짚을 때도 있답니다. 주학이네 학급엔 학생들이 서른명도 넘으니까요. 주학이의 할아버지는 수학박사이고 아버지는 작가입니다. 주학이 아버지가 작가로 되여서 할아버지가 좀 섭섭해하셨다는데 글쎄 주학이가 이렇게 속셈을 멋있게 하니 할아버지의 기쁨이 대단했습니다. 이제야 할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학박사가 나오게 되였다는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고운 처녀, 멋쟁이처녀라고 하는 주학이의 누나보다도 주학이를 더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주학이는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구역적인 속셈경연에 참가할 선수들을 뽑는 학교속셈경연에서 1등으로 뽑힐수 있었습니다. 주학이는 사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동무들이 축구를 하자는것도 싫다하고는 집으로 곧장 돌아와 록음기를 틀어놓았습니다. 록음기에는 할아버지가 매일매일 바꾸어 록음해놓는 속셈문제, 응용문제들이 있는데 문제뒤에는 답까지 있었습니다. 록음기에서 문제들이 울려나왔습니다. 1119 더하기 2394 곱하기… 주학이는 정신을 한데 모아 듣고는 척척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록음기에서 뒤따라 대답이 나왔습니다. 문제마다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한문제에서 답과 틀렸습니다. 《앗차.》 주학이가 이마를 딱 쳤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누군가 《쳇, 그래가지고도 수산기야?》하고 놀리는 말투로 한마디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엉?》 주학이는 누가 말했는가 해서 방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습니다. 누구도 없었습니다. 《어딜 봐? 나야, 나. 내가 진짜수산기란 말이야.》 누나의 책상우에 놓여있는 수산기가 하는 말이였습니다. 《아니, 네가?…》 주학이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수산기앞에서 망신을 당한것만 같아 주학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런데 넌 날 보고 수산기라고 한다는걸 어떻게 아니?》 《누나가 직장에 나가서 자랑을 하더구나. 어찌나 속셈이랑 잘하는지 학교에서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도 수산기라고 한다구…》 주학이는 볼록한 이마를 살살 긁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산기더러 더 말할새가 없다고 하고 속셈련습을 계속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야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학이가 답을 말하기도 전에 수산기가 난딱난딱 앞질러 답을 대는것이였습니다. 《야, 너 좀 가만있지 못하겠니?》 《그래, 내 앞에선 손을 들었지.》 《뭐야?》 주학이는 울컥 부아가 났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잘하는 수산기라도 뽐내는게 아니꼬왔습니다. 《그래 나하구 한번 겨루어볼 생각이 없니?》 주학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딱하게 되였습니다. 싫다고 하자니 화가 나고 하자고 하니 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입니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설 주학이가 아니였습니다. 《좋다, 해보자.》 수산기가 자기보다 잘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정신을 바싹 차리고 하면 이길수 있다는 배심도 생겼습니다. 《좋단 말이지. 이거 정말 대단한데… 가만 그런데 심판은 누가 선다?》 수산기가 방안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걱정말어, 심판은 내가 설테니.》 벽시계가 하는 말이였습니다. 《좋다, 해보자. 시계, 네가 심판을 서라.》 주학이가 말하자 수산기도 좋다고 시계앞에 마주앉았습니다. 속셈경기가 시작되였습니다. 시계가 똑딱거리며 시간을 쟀습니다. 주학이와 수산기는 동시에 대답하군 했습니다. 어떤 때는 주학이가 더 빨랐습니다. 주학이가 먼저 대답하면 수산기는 오똑 놀라며 주학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수산기는 역시 고급한 기계였습니다. 끝내 주학이가 손을 들었던것입니다.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나쁘겠는데 대신 내가 널 도와주지.》 《뭐? 네가 날 도와줘?》 《그래. 오늘 네가 여느때보다 일찍 돌아와 속셈련습을 하는걸 보니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해. 맞지?》 주학이는 래일 구역적인 속셈경연이 있다는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수산기는 막 환성을 올렸습니다. 자기가 주학이를 1등하게 할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래일 날 데리고가라.》 《뭐라구?》 주학이가 놀랐습니다. 《왜 놀라니. 네가 계산한것과 내가 계산한 답을 맞추어보라는건데 뭐 잘못될게 있니?》 《그건 안돼. 선생님이 수산기를 가지고 계산하면 안된다고 하셨어.》 주학이가 딱 잘라 말했습니다. 《답답하기란 참, 넌 너대로 계산하고 나와 답만 맞추어보라는건데. 시계야, 말해봐. 일없지 않니?》 수산기가 시계한테 물었습니다. 《일없을것 같은데…》 시계가 어정쩡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1등만 해봐라.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학교선생님들과 동무들모두가 얼마나 좋아하겠니.》 《그래도 안돼. 그건 정직하지 못한 일이야.》 주학이는 다시 딱 잘랐습니다. 그러자 시계가 수산기를 보며 눈을 끔뻑하였습니다. 무슨 수가 있다는 표정이였습니다. 수산기가 한마디 더 했습니다. 《야, 답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하는걸 맞추어보자는건데 정직하지 못하다는건 또 뭐니? 그럼 무엇때문에 수학교과서나 참고서들 맨뒤에 답들을 써놓았겠니, 맞았는지 틀렸는지 맞춰보라는게 아니니?》 《그래도 안돼.》 주학이는 또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귀찮다는듯 다시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래일의 구역적인 속셈경연준비가 바쁘거던요. 수산기가 어쩌면 좋을가 하고 시계를 쳐다보았습니다. 수산기는 어떻게 하든지 주학이가 꼭 1등을 하게 하고싶었습니다. 그날 밤, 주학이가 콜콜 곱게 자고있을 때였습니다. 수산기가 시계에게 물었습니다. 《너 아까 눈짓하는걸 보니 무슨 생각이 있는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니?》 《나도 주학이가 꼭 1등을 하게 하자는거야. 그러니까 너 이제 당장 저 주학이의 양복안주머니에 들어가 숨어라. 누나가 꼼꼼히 손질해 걸어놓는걸 보니 저걸 입고 갈거야. 그럼 네가 래일 같이 가서 답이 맞았는가 틀렸는가 맞추어볼수 있지 않니.》 시계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야, 넌 어쩌면…》 수산기는 너무 좋아 손벽까지 치고는 주학이의 양복안주머니에 살짝 들어가 숨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속셈경연장으로 가던 주학이는 양복안주머니에 있는 수산기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아니, 네가 끝내?…》 《걱정말어. 너한테 방해를 끼치지 않을테니…》 주학이는 할수없이 그냥 수산기를 가지고 가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속셈풀이에는 절대 끼여들지 말아야 한다고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았습니다. 경연에는 구역적으로 30여명이 참가하여 등수를 가르게 되여있었습니다. 모두가 학교들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속셈선수들이여서 만만치 않았습니다. 속셈으로 계산한 답은 심사석과 망으로 련결된 콤퓨터를 통해 대답하게 되였습니다. 답이 맞으면 콤퓨터화면에 빨간 동그라미표식이 나오고 틀리면 곱하기표식이 나왔습니다. 1차경연에서 두명이 떨어지고 나머지학생들로 2차경연을 하였습니다. 문제들이 점차 더 복잡하고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주학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척척 하였습니다. 수산기가 삐칠 사이도 없었습니다. 2차경연에서는 다섯명의 학생들이 남았습니다. 그제야 주학이는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았습니다. 그속에는 네거리소학교 옥별이도 있었습니다. 전번 속셈경연에서 주학이는 1등자리를 옥별이한테 빼앗겼습니다. 주학이가 답을 다 계산하고 막 일어서려는데 옥별이가 난딱 먼저 일어났던것입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때 방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는 옥별이를 보며 주학이는 너무도 약이 올라 입술을 꼭 깨물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안될것입니다. 옥별이도 1등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단단히 잡도리를 한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3차경연이 시작되였습니다. 수산기가 주학이에게 속삭이였습니다. 《이제부턴 나와 답을 꼭 맞춰봐라. 그러지 않다간 야단이야.》 선생님이 문제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연도중 또 세명이 떨어져나가고 옥별이와 주학이가 남았습니다. 옥별이와 주학이는 물론 경연을 지켜보는 사람들모두가 손에 땀을 쥐였습니다. 긴장한 속에 또 다른 문제가 제시되였습니다. 수산기가 속이 상한지 주머니속에서 달싹거리며 《3019야, 3019!》하고 속삭이였습니다. (3019!) 주학이의 답과 수산기의 답이 꼭 맞았습니다. (맞았구나.) 주학이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맞았다는 빨간 동그라미표식이 새겨졌습니다. 너무 긴장했던탓인지 옥별이는 그만 틀렸습니다. 이제 두문제만 풀면 경연이 끝나게 될것입니다. 주학이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문제가 또 제시되자 수산기가 재촉했습니다. 《열셋이야, 열셋.》 그런데 주학이가 계산한 답은 912였습니다. (어느것이 맞을가? 먼저번에는 답이 꼭 맞았는데… 아무래도 수산기가 더 정확할테지.) 주학이는 저도 모르게 《13.》하고 대답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콤퓨터화면에는 틀렸다는 표식이 나왔습니다. 주학이의 계산이 맞았던것입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내가 틀리다니…》 수산기가 뿔이 나서 두덜거렸습니다. 드디여 마지막문제가 제시되였습니다. 주학이도 옥별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였던것입니다. 수산기가 잽싸게 또 종알거렸습니다. 《4212, 이번엔 틀림없어.》 그러나 주학이가 계산한것은 《4509》였습니다. 주학이가 망설이는 사이에 옥별이가 먼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옥별이의 답은 아쉽게도 틀렸습니다. 주학이는 긴장해졌습니다. 수산기의 답 4212와 자기의 답 4509. 과연 어느것이 맞겠는지.… 순간 할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수학자는 모든 계산이 정확해야 하고 자기가 계산한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배짱이 없으면 수학자가 못돼.》 주학이는 자기가 계산한 답 4509를 콤퓨터에 입력시켰습니다. 그러자 빨간 동그라미가 화면에 새겨졌습니다. 결국 주학이는 경연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온 경연장에 박수가 터졌습니다. 속셈경연에서 1등하고 돌아오는 주학이를 학교선생님들과 동무들이 꽃보라를 뿌리며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주학이의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주학이의 담임선생님은 주학이를 동무들앞에 내세우고 《동무들, 구역적인 속셈경연에서 1등을 한 주학학생을 다시한번 열렬히 축하해줍시다.》라고 하시며 박수를 쳐주시였습니다. 그럴수록 주학이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머리를 수그리고 서있는 주학이를 보며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주학학생, 웬일이예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 난 오늘 1등을 했지만 떳떳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이예요?》 선생님이 놀라시며 물었습니다. 주학이는 수산기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수산기와 자기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두 그대로 말했습니다. 주학이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이 웃으며 물으시였습니다. 《그런데 수산기가 왜 틀렸는가요?》 《전지가 거의 나가서 수산기가 제대로 계산을 못했습니다. 난 수산기는 언제나 다 맞는줄만 알고…》 선생님은 주학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알았으면 됐어요. 학생동무들, 물론 수산기는 좋은 기계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거랍니다. 그러니 사람보다 더 우월할수는 없어요. 학생들처럼 한창 배우고 머리를 써야 할 때에 한번두번 수산기의 도움을 받는데 습관이 되면 자기 머리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고 앞으로 더 좋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사람으로도 될수 없답니다. 자, 그럼 속셈경연에서 1등했을뿐만아니라 우리모두가 참으로 귀중한걸 깨닫게 해준 주학학생을 다시한번 열렬히 축하해줍시다.》 짜락짜락, 축하의 박수소리가 또다시 울렸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