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신 종 붕

 

동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매우 귀중히 여기는 이야기랍니다. 세월이 흘러 집채만 한 고기배를 모는 선장이 되였어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지요.

그것은 내가 소년단에 갓 입단했을 때의 일입니다.

모래불을 씻는 파도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여름밤 어머니는 인민반회의에 가고 나는 숙제공부를 하고있었습니다.

산수숙제(당시)를 다하고 국어책을 펼치는데 젖먹이동생이 깨났습니다. 나는 아래방에 얼른 내려가 동생을 다독거렸습니다. 동생은 인츰 쌔근쌔근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깨날가봐 은근히 조바심이 났어요. 그래 앞집을 건너다봤습니다. 인민반회의는 우리 집 건너편 《어머니학교》(당시)에서 하고있었는데 창문을 열어놓아 방안에 빼곡이 들어앉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다 들여다보였습니다.

《아니, 할아버지도 회의에 오셨네?!》

글쎄 어머니들만 모인 인민반회의에 저예망선장이며 공훈어부인 이웃집할아버지가 앉아계시지 않겠습니까.

몸집이 우람한 할아버지는 방안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앉은것 같았습니다. 공훈어부할아버지는 어머니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붓으로 뻑 그은듯 한 눈섭을 가끔 량미간에 모으기도 하고 뭐라 손시늉을 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바다바람에 탄 검실검실한 얼굴에 늘 웃음을 띠우고 다니시는 할아버지였지요.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지으실 때면 몹시 성났거나 그렇지 않으면 걱정되는 일이 생겼다는것을 의미했습니다.

(무슨 일로 저러실가?)

호기심에 차서 바라보던 나는 금시 눈이 커졌습니다.

《저게 뭐야? 공 아니야?!》

나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한번 찬찬히 여겨봤습니다. 할아버지의 무릎앞에 놓여있는것은 축구공이였습니다. 참, 별난 일도 다 있겠지요!

그날 낮에 나는 바다가양식작업장옆 모래불에서 동무들과 공차기를 했습니다. 공차기는 처음부터 우리 편이 자꾸 몰리였습니다. 우리 공격수들이 9번인 나한테 발을 잘 맞추어주지 않았기때문이였습니다. 꼴을 연방 두개나 먹고나니 정말 속이 막 달아나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공을 혼자서 냅다몰았습니다. 하지만 꼴문앞에서 또 공을 뺏기게 되였습니다.

《쳇, 발이 맞아야 차지!》

나는 밸김에 공을 아무데나 힘껏 차던졌지요. 그런데 아차! 밸풀이로 찬 공은 하늘로 튀여올라 금밖으로 씽 날아가더니 다시마덕장을 꿰지르고 나무장대를 가려놓은 아래로 데그르르 굴러들어가버렸습니다. 덕장의 다시마들이 떨어지고 저쪽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달려왔습니다. 공차던 애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요즈음 다시마나 미역을 말리느라고 바다가양식작업장 가까이에서 놀지 못하게 했습니다. 며칠전 분단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 사실은 잠간만 놀자던것이 정작 공차기가 벌어지니 놀음에 정신이 팔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것입니다. 하긴 병호가 그만 놀자고 몇번이나 말했습니다.

(제편이 이기니까 그만하자누나.)

나는 기어코 이기고야 끝낼 생각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얘, 공을…》

신을 량손에 쥐고 앞서달리던 병호가 우뚝 서서 나를 쳐다봤습니다.

《참, 공을…》

병호의 말에 나는 멈칫 섰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될 때라 나무장대뒤로 공훈어부할아버지가 오는것이 아니겠어요.

《지금 찾으러 가면 안돼.》

《잘못을 말하고 찾자.》

하고 병호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습니다.

《별걸 다 가지고… 래일 아침에 슬쩍 빼내면 돼.》

나는 눈까지 부리부리 굴려보이며 홱 돌아섰습니다. 이리하여 집으로 오고말았는데 그 공이 지금 인민반회의에 척 나타난것입니다.

나는 속이 켕겨 바라보고만 섰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밖으로 나와 《어머니학교》로 가만가만 다가가는데 문이 열리면서 어머니들이 나오는것이였습니다. 어머니들이 무슨 말을 하는것이 꼭 내 이야기를 하는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쫓기는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진 너무 하셔. 고만한 일을 가지고 어머니들한테 다 이야기하구.…)

나는 입술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인민반어머니들이 다 알았으니 이제 마을아이들이 알것이고 틀림없이 분단에도 소문이 갈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분단모임에서 비판을 받게 되고 아 참! 단기발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될터인데 그래 내 꼴이 이렇게 돼도 할아버진 좋단 말인가요?

얼마전에 선생님은 이제 입단후 우리들의 생활을 총화하고 모범적인 동무들은 단기발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대뜸 (사진을 찍으면 먼바다에 나가신 아버지한테 보낼테다!) 하고 마음먹었지요.

부엌문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국어책을 들고 우정 소리내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한테 말 들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록 어머니는 아무 꾸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빠끔히 열린 사이문으로 가만히 아래방을 내려다보니 어머니는 동생한테 젖을 물리고 가끔 창밖을 내다보는데 무슨 생각에 잠긴것 같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 공은 먼바다에 나가 년간계획을 앞당겨 끝내고 휴가로 오신 아버지가 사다준것입니다. 어머니는 첫눈에 내 공을 알아봤을것입니다. 나는 잠자리에 누웠으나 마음이 뒤숭숭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잠을 깨였을 때는 언제나와 같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제일은 벌써 감감 잊어버렸지요. 나는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청소를 했고 잠을 깬 동생의 볼을 간지럽히며 장난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가방을 꾸리다가 벽에 걸린 빈 공주머니가 눈에 띄자 어제일이 단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아 참, 공을 잊었지.)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우두커니 서있다가 어데 공이 보이지 않나 살펴봤습니다. 없었습니다.

(어머니한테 물어볼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뭘 하느냐? 학교에 늦겠다.》하고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의 눈길과 마주친 나는 당황해서 얼른 아래방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바람에 어머니한테 물을가 어쩔가 하고 망설이던 생각까지 다 달아났습니다.

뚜ㅡ 풍어기를 단 고기배들이 고동을 울리며 포구로 들어오고있었습니다.

아침바다는 설레였습니다. 새날을 맞은 부두도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일터로 가는 아버지, 어머니들은 배고동소리에 신이 나서 걸음을 더 분주하게 다그치는것 같았습니다. 이런 때면 학교로 가는 우리들도 명절날 시위행렬을 보는것처럼 즐거워지지요.

《하나, 둘, 셋…》

나와 병호는 길가에 서서 풍어기를 단 배들을 세여봤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배마다 풍어기를 달았습니다.

《얘!》하고 병호가 갑자기 내 손을 툭 쳤어요.

《저기 할아버지 오셔!》

병호는 내 팔을 잡아끌며 생산도표가 붙은 게시판뒤로 달려갔습니다. 나는 병호한테 끌려가다가 인츰 서버렸습니다.

(내가 뭐 겁쟁인가?)

차라리 욕을 먹으면 먹었지 못나게 숨고싶진 않았거던요.

여느때라면 우리는 공훈어부할아버지한테 매달리며 어제 국어시간에 10점(당시)을 받았다든가 혹은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었다고 자랑했을것입니다. 공훈어부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또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전쟁때 미군놈과 싸운 이야기만 듣자해도 아마 어른이 될 때까지 들어도 끝나지 않을것입니다.

《할아버지, 일나가세요?》

나는 귀밑이 화끈 다는것을 느끼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공훈어부할아버지는 내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모자부터 신발까지 찬찬히 훑어보시였습니다.

(이제 말씀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넥타이는 항상 똑바로 매고 다녀야지.》

공훈어부할아버지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매주신 다음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내 모습을 다시한번 쭉 훑어보시였습니다. 마치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주실것처럼 말이지요.

《인젠 소년단원인데 소년단경례를 해야지. 어디 한번 해봐라.》

나는 소년단경례를 해드렸습니다.

《허허, 됐다.》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손을 머리우에 번쩍 쳐들었습니다. 지나가던 가공반누나들은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고 어로공아저씨들은 벙글벙글 웃었습니다.

《저봐라. 사업소 배들이 요즈음 고기잡이에서 매일 10점을 맞는단다. 영만이도 공부에서 매일 최우등 하겠지.》

이렇게 말씀하시고 할아버지는 씨엉씨엉 걸어갔습니다. 나는 공훈어부할아버지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뭐라 하시던?》

병호가 게시판뒤에서 달려나오며 까만눈을 슴뻑거렸습니다. 나는 대답대신 하하 웃어댔습니다. 생각하면 참 우습기 짝이 없었지요. 여태껏 공연한 걱정을 한것입니다. 하긴 바다를 안고 사시는 공훈어부할아버지가 고만한 일을 오늘 아침까지 생각하고있을라구요. 그러지 않아도 선장일을 보시는 할아버지는 늘 일이 바쁘실텐데요.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더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두가 소년단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한 우리 분단에서는 그때 《소년단원의 의무》에 대한 토론모임을 자주 가지였습니다. 공부가 끝났을 때 선생님은 저더러 의무 8조를 가지고 하는 래일 모임에서 먼저 토론하라는것이였습니다. 다른 동무들이 선생님한테서 과업을 받고 토론하는것을 들을 때마다 (나도 선생님이 시키면 저 애만큼 할수 있는데…) 하고 늘 부러워하던 나는 가슴까지 쑥 내밀며 얼른 대답했습니다.

나는 큰길로 걸어오면서 국어시간에 책을 읽듯이 《소년단원의 의무》를 소리내여 읽어봤습니다. 부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병호도 덩달아 함께 외워보는것이였어요.

수산사업소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허, 영만이가 최우등을 꼭 하겠군. 길 가면서도 공부를 하는군.》하는 웃음섞인 어른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보니 공훈어부할아버지가 뒤따라오면서 시물시물 웃고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나 래일 토론해요!》

《토론이라니?》

《있잖아요. 할아버지도 참.》

나는 선생님한테서 과업받은 이야기를 단숨에 말하고나서 《할아버지, 봐요!》하고 《소년단원의 의무》를 줄줄 외워보였습니다.

《용타! 환하게 외웠구나. 그런데 동무들앞에서 토론하자면 외우기만 해서 될가? 그것을 잘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야지. 그러자면 너나 동무들이 한 일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종이에 써가지고 가야 한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그러했습니다. 다른 동무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나는 토론내용을 첫머리만 떼놓고는 더 쓰지 못했습니다. 의무 8조는 신통히도 어저께 내가 모래불에서 저지른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였습니다.

《래일 그 이야기를 할가?》

나는 종이우에 연필방아를 찧으며 이렇게도 생각해봤으나 곧 머리를 흔들었지요.

(아니야, 잘못하다간 사진을 찍지 못할수 있어.)

나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다 썼느냐? 어디 보자.》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어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아까 어머니한테 토론내용을 봐달라고 했던것입니다. 나는 손바닥으로 슬그머니 종이를 덮었습니다.

《아니 어머니가 보면 안되느냐?》

어머니는 어깨너머로 종이를 들여다봤습니다.

문득 머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이야기하자.)

나를 사랑해주고 또 소년단생활에 대하여 누구보다 관심이 큰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내 말이면 다 들어주는 어머니였지요.

나는 어머니한테 다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잠잠히 듣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꾸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역시 제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공을 찾아줘요. 그리구 할아버지한테 잘 말해줘요. 분단에서 이걸 알면…》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엄해지는것이였습니다. 그만 나는 하려던 말이 목구멍에 딱 걸리고말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나는 뒤머리를 긁적이며 《어머니두 참.》하고 싱긋이 웃었지요. 글쎄 어머니는 너무나 뻔한 일을 묻고있거던요.

똑딱, 똑딱… 잠시 벽시계소리만이 방안에 가락맞게 울리였습니다.

《영만아, 이제 보니 너는 겁이 많은 애구나. 그리고도 뭐 먼바다에 가 고기잡는 선장이 되겠다구.》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말씀이 비위에 거슬렸습니다.

《난 겁쟁이가 아니예요. 엊그저께 새나루에 가 놀 때 다른 애들이 겁이 나 못 가는 쌍바위에 헤염쳐갔다왔어요.》

《그런데 동무들앞에 자기 결함을 비판하기를 겁나할가?》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영만아, 네겐 어머니만 있는것이 아니다. 선생님도 계시고 동무들이 있지 않느냐? 어머니가 도와주겠으니 토론준비를 잘해서 래일 동무들앞에 모든것을 이야기해라. 그래야 훌륭한 소년단원이 될수 있다.》

어머니가 이러는데야 내가 뭐라 더 말하겠습니까.

어머니의 생각은 정말 알수 없었습니다. 단기발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먼바다에 계시는 아버지한테 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와하던 어머니지요.

나는 토론내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어머닌 내가 사진을 못 찍으면 좋은가 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못을 이야기하면 용서해줄것은 물론 별말없이 내 말을 들어주리라 믿었던 어머니입니다. 나는 뿌루퉁해 종이를 와락 꿍져 책상밑에 던져버리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때 밖에서 기침소리가 나더니

《영만이 있느냐?》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모포속에 얼른 머리를 파묻었습니다.

(할아버지시구나!)

공훈어부할아버지는 보통 하시는 말씀도 쩌렁쩌렁했습니다.

《그 녀석이 래일 토론인가 뭔가 한다고 우쭐대더니…》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방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한테 괜히 다 말했어.)

나는 이렇게 후회하며 모포깃을 살며시 들고 아래방을 내려다봤습니다.

《영만이가 래일 토론을 어떻게 하려나 좀 보려구 했더니 벌써 자는군.》

할아버지는 웃방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도 따라웃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다 말할거야.)

그런데 어머니는 가공반일만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다이야기만 하시고요. 나는 숨이 나왔습니다.

《됐다.》

긴장했던 마음이 놓이자 눈까풀이 자꾸만 내려덮었습니다. 그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나라로 소르르 잠겨들었지요. 그러나 벽시계 종소리에 잠을 깨자 토론준비를 못한 일이 더럭 걱정됐습니다.

(야단났구나. 어제 밤 괜히 버렸네.)

나는 찬물에 세면이라도 한듯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구겨버린 종이를 찾았습니다.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방바닥에는 없었습니다.

(그거라도 있으면 제꺽 베낄텐데.)

똑딱, 똑딱, 시계소리는 마치 《빨리 써라.》, 《빨리 써라.》하고 재촉하는것 같았습니다. 나는 책가방에서 새 종이를 꺼내들고 시계를 쳐다보며 책상에 다가앉았습니다.

《?!…》

그렇게 찾던 종이가 책상우에 놓여있지 않겠습니까. 구김살까지 깨끗이 펴고 말이지요. 나는 얼른 그것을 들고봤습니다. 연필로 북북 그어버린것은 다 지우고 틀린 글자까지 말끔히 고쳐놓았습니다. 물어보나마나 어머니가 한 일이였습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을가요. 어머니가 곁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어머니! 난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고 어리광을 부렸을것입니다. 그렇게 기뻤던 마음도 하루공부가 끝나고 토론시간이 정작 오니 좀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달려가서 잘못을 이야기하고 공을 찾을걸 그랬어.)

그러나 뭐 아무리 후회해도 인젠 엎질러놓은 잉크병이나 다름없었지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순간 내 입에서는 《아니?!》하는 말이 저절로 튀여나왔고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선생님의 뒤로 공훈어부할아버지가 따라들어오셨기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눈길은 모두 구레나룻수염을 깨끗이 면도한 할아버지한테 쏠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우리들을 빙 둘러보신 다음 교실뒤켠에 천천히 들어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큰 몸집은 책상줄사이를 꽉 메우는것 같았습니다. 그래 병호는 책상을 들어 약간 옆으로 옮겨주기까지 했습니다.

《전번처럼 해방전에 왜놈선주놈을 까던 이야기를 해주러 오셨나봐.》

병호는 귀바퀴에 손을 오그려대고 강구기부터 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선생님을 쳐다봤습니다.

《모두 똑바로 앉으십시오. 오늘 모임에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공훈어부할아버지가 참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밤에 바다로 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모임에 꼭 참가하고싶다면서 이렇게 오셨습니다.》

병호는 귀바퀴에 붙인 손을 내리며 겁먹은듯 한 눈으로 나를 흘깃 바라보는것이였습니다. 나도 가슴이 좀 두근거렸습니다.

(할아버진 우정 오셨구나.)

나는 얼핏 공훈어부할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기침을 깇은 다음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무시고 나를 똑바로 지켜보시였습니다. 그 눈길은 좀 엄엄해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보기가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눈길에는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 어려있었고 그 어떤 기대에 찬 마음이 담겨있음을 느낄수 있었기때문이지요.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나는 손에 쥔 종이를 들여다봤습니다. 그제사 여겨보니 틀린 글자를 고친 글씨는 어머니의 글씨가 아니였지요.

(아! 그럼 할아버지가…)

나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할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공훈어부할아버지의 모습이 어쩌면 어제밤 나를 앉혀놓고 차근차근 잘못을 타이르던 어머니의 표정과 꼭 같을가요. 나는 눈굽이 뜨거워지는것을 느끼며 종이를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이에 쓰지 않은 일까지 다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토론을 마치자 물뿌린듯이 조용하던 교실이 술렁대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병호만이 초조해서 코밑을 주먹으로 자꾸 훔쳤어요.

《나도 잘못했습니다.》

동무들은 말소리를 그치고 병호를 쳐다봤습니다. 병호는 얼굴이 벌개 혁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뭐라 더 말할듯이 서있었지만 인차 머리를 긁적이며 앉아버렸습니다. 동무들은 모두 키득거리며 뭐라 소곤거렸습니다.

《영만학생은 자기 결함을 조직앞에 스스로 내놓고 비판했습니다. 훌륭한 소년단원이 되자면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이제 영만학생은 먼바다에 나간 아버지한테 단기발앞에서 찍은 사진을 꼭 보낼것입니다.》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선생님과 함께 두툼한 입술을 빙긋이 열고 턱밑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웃음짓는 공훈어부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주 만족하시거나 기분이 썩 좋으실 때면 짓는 할아버지의 표정이였지요.

나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빨리 알려드리고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척 반가와할테니까요.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주며 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시면 공을 찾아오자고 했어요. 그런데 저녁에 할아버지가 먼저 공을 들고오셨습니다.

《아니, 오늘 학교에 갔다오셨다지요?》

저녁을 짓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들이며 말했습니다.

《그녀석의 일이 궁금해서 갔다왔수다. 담임선생은 얘가 스스로 조직앞에 잘못을 이야기하도록 영만 어머니가 제때에 련계를 취해준 일을 아주 잘했다고 칭찬하더군.》

할아버지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났어요. 문을 열고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드리려던 나는 주춤했습니다.

《나도 그날 인민반회의에서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렸어요.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의 <왕>이라고 항상 깊은 배려를 돌려주시는 우리 아이들을 온 사회가 늘 관심해 키워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정말 옳았어요. 담임선생을 찾아가 이야기했더니 아주 반가와하면서 사실 영만이는 무슨 일에서나 남한테 짝지기를 싫어하는 좋은 점이 있는 반면에 자존심이 강해 자기 결함을 스스로 비판할줄 모른다는것이였어요.》

(아니, 그럼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계셨단 말이야?)

나는 어리벙벙해졌습니다.

《그렇구말구. 나도 처음에는 철없는것들 일이라 그냥 스쳐보내려고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시마덕이야 손질해놓으면 되는것이고 공은 돌려주면 되는 일이나 영만이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더란 말이요. 인젠 조직생활을 하는 녀석인데 소년단에 입단하기 전부터 가지고있던 결함을 반복하고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심중한 문제로 보지 않을수가 없더란 말이요. 평생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대로 살며 똑바로 걸어가야 할 애들인데 정치생활의 첫걸음부터 바로 걷게 해야지. 그러고보면 그놈이 저지른 일이 결코 몇마디 잔소리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요.》

(아, 그럼 할아버지도 다 알고있었구나!)

문손잡이를 잡고선 나는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들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어머니도 공훈어부할아버지도 선생님도 모두 함께 걱정을 한것입니다.

《그래 영만인 어데 있소? 자기비판을 잘했을뿐만아니라 좋은 일까지 한 영만이한테 공을 돌려주어야지.》

《아니, 무슨 일을 했게요?》

저으기 놀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허, 산수시험에 10점 받고도 자랑하던 영만이가 그런 좋은 일을 하고 어머니한테 말 안하다니…》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방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덤덤히 서서 바지혼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래일부턴 장난꾸러기들이 모래불에 얼씬 안할거요. <여기서 공을 차지 말자.> 이렇게 쓴 나무패말이 모래불가운데 척 꽂혀있거던. 옛다, 인젠 공을 받아라.》

공을 받아든 나는 눈이 둥그래 어머니를 쳐다봤습니다. 공훈어부할아버지는 내가 깁다만 공 꿰진 자리의 실밥을 말끔히 뽑고 곱게 기웠을뿐만아니라 이은 매듭이 많은 끈도 흰 노끈을 꼬아 새로 갈아댔습니다.

《어떻소, 영만이가 오늘은 아주 의젓해진것 같지 않소? 훌륭한 소년단원이 될것 같구만.》

할아버지는 대견스럽게 여기시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어머니는 정어린 눈길로 웃음지었습니다.

아! 그 순간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의 어머니만이 걱정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이웃집 공훈어부할아버지도 선생님도 그리고 인민반과 마을의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나의 어머니와 함께 걱정하심을!

그리고 내가 아버지원수님의 말씀대로 참되게 생활했을 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어머니만이 반가와하는것이 아니라 온 인민반, 온 마을, 온 사회가 함께 기뻐한다는것을!

그러기에 나는 학교에 갈 때나 책상에 마주앉아 공부할 때 혹은 마을에서 공을 차며 놀 때 언제나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누나들이 우리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나의 걸음, 나의 공부, 나의 행동, 나의 모든 생활을 희망과 기대에 찬 마음으로 항상 지켜보고있음을!

즐거운 소년단생활을 보내고 사로청(당시)생활을 거쳐 어엿한 조선로동당원이 된 오늘에도 나는 언제나 이 마음을 귀중히 여기고있답니다.

 

주체64(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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