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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1호에 실린 글
□중편소설□
(제8회)
김 정
17. 얼레빗
한주일내내 금동이네는 경상동아이들과 축구시합을 하였다. 오늘은 두 팀 다 점심도 먹지 않고 마지막승부를 가르었다. 그것은 심판도 있고 호르래기도 있고 자리바꿈도 하는 진짜경기였다. 손다치기나 다리걸이를 하였을 때에는 물론 벌차기도 하였다. 경기시간도 세계축구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서처럼 당당한 90분이였다. 그런데 그 90분사이에 꼴이 좀처럼 나지 않아 연장전이라는것까지 벌리였다. 축구물계를 잘 알지도 못하는 조무래기들이 어른들처럼 감히 연장전까지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것이다. 어쨌든 시합은 몹시 아기자기하였다. 아이들은 오후 세시가 지나서야 운동장을 떠났다. 연장전에서 한꼴을 먹은 경상동아이들이 먼저 우물우물 길거리에 나섰다. 《얘들아, 인젠 손을 들었지? 맴ㅡ맴ㅡ맴…》 동학이가 그 애들을 보고 우쭐해서 물었다. 그는 경상동아이들의 약을 올려주느라고 일부러 매미소리를 냈다. 경상동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자 일제히 부아가 나서 걸음을 멈추었다. 《손을 들었다구? 쳇, 다음번에 보자. 우리가 꼴을 얼마나 넣나.》 주장이고 문지기인 이돌이가 동학이쪽을 향해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래 몇알이나 넣을래?》 동학이는 매미소리를 그치고 정색해서 물었다. 《다섯알!》 《그럼 너희들이 다섯꼴을 넣는 사이에 우린 눈을 감고 말뚝처럼 서있지. <어서 넣어주시오!>, <또 넣어주시오!>하면서 말이야.》 동학이가 손시늉까지 하며 소경의 흉내를 내는 바람에 1학년생들은 다같이 까르르 웃었다. 두 팀의 아이들은 서로 다음번에 보자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소란스럽게 헤여졌다. 10월이여서 날씨는 그닥 따스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금동이네는 세타(당시 교복)도 입지 않고 런닝샤쯔바람으로 거리를 걸어갔다. 시합이 끝난 다음 수도가에서 세면도 하고 잔등에 물도 끼얹었지만 그냥 땀이 흘러내렸기때문에 누구도 선뜻 옷을 걸치려 하지 않았던것이다. 시합을 하던 그 차림새 그대로 거리를 걸어가는것이 뽐내기를 좋아하는 일곱살내기들에게는 얼마나 장하고 멋들어진 일인지 몰랐다. 금석이나 순철이와 같은 중학생들이 봐도 침을 흘리리만큼 조무래기들의 차림새는 대단히 거드름스러웠다. 네번의 경기에서 다섯개의 꼴을 넣은 동학이는 팀의 주장답게 고무공이 든 비닐구럭을 메고있다. 나흘동안 줄창 뽈은 차지 않고 심판만 서온 효남이의 목에는 하모니카소리를 내는 호각이 메달처럼 걸려있다. 사람들의 눈을 제일 끄는것은 순일이의 런닝샤쯔이다. 그 런닝샤쯔에는 새까만 크레용으로 《경림》이라는 명판을 큼직하게 써놓았다. 잔등에는 《9》라는 번호가 보란듯이 씌여있다. 방어수노릇을 하면서도 중앙공격수의 번호를 버젓이 달고다니는걸 보고 《9》대신에 다른 수자를 써넣으라고 열번도 더 말했지만 순일이는 종시 말을 듣지 않았다. 하여튼 1학년생은 1학년생이다. 배가 출출하고 몸들이 노근했지만 경림동아이들은 하나같이 기세가 등등하였다. 네번의 시합에서 세번이나 이겼으니 우쭐해질만도 하였다. 《얘들아, 우리도 다음번부터 우승컵을 걸고 경기를 하자.》 금동이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컵이 왔다갔다하면 경기하기가 한결 재미날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컵? 컵을 만들잔 말이지?》 재수가 어느새 그 말을 새겨듣고 금동이의 곁으로 뿌르르 달려왔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만드니?》 하고 그는 눈을 깝작거리며 금동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흙으로 만들지 뭐.》 《진흙으루? 애개개. 컵을 진흙으로 만든단 말이냐? 그런 컵은 시시해.》 《쳇, 시시하다구? 너희들 력사박물관에 가봤지, 진흙으로 만든 옛날그릇들이 얼마나 멋지다구그래.》 《그건 기술자들이 만든거가 돼서 그래. 그런데 우린 기술자가 아니거던. 컵이 있긴 있어야겠는데…》 재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궁리에 잠길 때면 늘 하는 버릇대로 신발코숭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순일이가 그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튀여주었다. 《컵으로는 우리 아버지가 사온 꽃병이 최고야. 주을휴양소에 갔다가 사온건데 허리가 잘룩하고 아구리는 나팔꽃처럼 생겼어, 색갈도 파랗고… 진짜 컵처럼 멋지거던.》 《정말 그게 좋겠구나. 나두 그 꽃병을 본 생각이 나.》 재수는 순일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나서 슬쩍 금동이를 돌아보았다. 금동이도 꽃병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컵을 갖춘 다음에는 사이다병마개로 메달을 만들자꾸나. 이긴 팀 아이들의 목에다가 하나씩 걸어주잔 말이야.》 그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앞머리를 손으로 쥐여짜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그게 그럴듯한 생각이라고 법석을 놓았다. 《이긴 팀은 꼴문대앞에 앉혀놓고 캬라멜로 사진을 찍어주자.》 순일이가 트럼베트소리같은 소리로 떴다고아대는 바람에 1학년생들은 와ㅡ 하고 웃었다. 《카메라》라는 말을 써야 할데다 《캬라멜》이라는 말을 했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련광고등중학교(당시)교문을 나서던 녀학생들의 한떼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금동이는 맨앞에서 생글생글 웃고있는 영실누나를 인차 알아보았다. 그 누나의 옆에는 순일이의 누나 순선이도 있었다. 《응, 경림동 귀염둥이들이였구나.》 영실누나는 자기 주위에 어깨성을 쌓고 서있는 1학년생들을 한아이 한아이 손으로 어루만지다가 오른손둘째손가락으로 금동이의 미간을 꼭 짚어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었다. 《축구시합을 한 모양이구나.》 《예.》 《그래 이겼니? 졌니?》 《이겼어요.》 《축하한다. 그런데 순일인 왜 보이지 않니?》 영실누나는 아홉명이나 되는 1학년생들의 얼굴을 다시금 한아이 한아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기가 찰찰 넘치는 누나의 눈이 그만 한곳에서 멎었다. 동학이의 등뒤에 숨어있는 순일이를 찾아낸것이다. 《아니. 순일이, 너는 왜 거기 숨어있니?》 영실누나는 순일이의 누나 순선이를 할끔 돌아보며 우정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동학이가 뒤로 돌아서서 쥐구멍을 찾고있는 순일이를 누나들앞으로 왈칵 끌어당기였다. 순일이는 엉터리《선수복》차림새 그대로 누나들의 손에 붙잡히였다. 영실누나는 크레용으로 써갈긴 《경림》명판과 《9》라는 잔등판의 번호를 보자 배를 그러안고 한참동안이나 깔깔거리였다. 《아니, 넌 그게 무슨 꼴이냐? 그렇게 하면 런닝샤쯔가 쓰게 되니?》 순선누나가 눈살을 찌프리고 얼굴에 위엄기를 지으며 동생을 꾸짖었다. 순일이는 또다시 덩지 큰 동학이의 등뒤로 비실비실 몸을 사리였다. 좀처럼 부끄럼을 타지 않는 순일이였지만 남들이 있는데서 누나와 맞다들 때에는 늘 이렇게 처녀애들처럼 수집어하는것이였다. 아이들이 제가끔씩 순일이를 두둔하기 시작했다. 《누나, 순일이를 욕하면 안돼요. 순일이가 얼마나 뽈을 멋지게 차는지 알아요?》 《순일인 우리 팀 왼쪽날개예요.》 《어제 시합땐 머리받기로 꼴을 하나 넣었어요.》 순선이는 꼬마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귀가 아파서 골살을 찌프리였다. 그렇지만 영실누나는 그냥 생글생글 웃기만 하였다. 《저런, 대단하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너희들 샤쯔에 재봉을 한 명판과 번호를 달아줘야겠구나. 그런데 얘들아, 축구를 했다구 거리에서 이렇게 런닝샤쯔바람으로 다녀선 안되겠다. 시합이 끝나면 차림새를 단정히 해가지고 거리에 나서야지.》 누나는 아이들중에서 낯이 제일 익은 금동이의 얼굴에 눈길을 멈추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금동이는 누나들이 보는데서 손에 들고있던 세타를 잽싸게 껴입고 물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삑ㅡ 쓸어버리였다. 동학이며 순일이며 재수며 영림이들도 슬금슬금 세타들을 입었다. 《1학년생답게 머리도 항상 곱게 빗고 다녀야지.》 영실누나는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여 금동이의 젖은 머리를 정성껏 빗어내리기 시작했다. 금동이의 눈앞에는 효동이를 맡기려고 탁아소에 갔을 때 헝클어진 자기의 머리를 손으로 빗어주던 보육원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실누나의 손도 그 보육원의 손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사람마다 곱다고 우리를 쓰다듬어주는구나. 무럭무럭 더 크고 고와지라고 우리를 자꾸 쓸어주는구나.) 금동이는 이런 생각때문에 가슴이 고무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그는 눈을 우로 치뜨고 한오리도 흩어지지 않은 누나의 윤기도는 머리와 티없이 깨끗한 얼굴과 하얀 이발을 부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렇게 몸을 깨끗이 거두는 누나들은 속마음도 역시 정갈할것이라는 제나름의 짐작을 하면서 먼지가 오른 자기의 발등을 흘끔 굽어보았다. 《얘들아, 어떠냐? 이렇게 하면 보기가 좋지 않니?》 영실누나는 빗을 쥔 손을 아래로 드리우고 1학년생들을 둘러보았다. 《좋아요!》 아이들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금동이의 머리를 부러움에 차서 바라보며 침들을 삼키였다. 《누나, 내 머리도 빗어줘요.》 물에 젖은 머리카락의 한쪽이 수닭의 꽁지처럼 뻗두룩하게 일어선 동학이가 벌쭉벌쭉 웃으면서 누나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 빗어주지!》 영실누나는 손님들의 머리모양새를 가늠하는 리발사들처럼 앞뒤골이 류다르게 두드러져나온 동학이의 머리를 유심히 살펴보고나서 조용히 빗을 가져다댔다. 아이들의 머리를 골고루 다 빗어준 누나는 그 빗을 금동이한테 넘겨주었다. 《옛다. 기념으로 너한테 준다. 어느때나 머리를 깨끗이 빗고 다녀야 한다. 옷도 깨끗이 입고 손발도 깨끗이 씻고 단추도 꼭꼭 채우고… 아버지원수님께서 그렇게 할걸 바라신단다. 잊을수 없는 1972년의 개학날이였다. 너희들이 다니는 대동문인민학교(당시)를 몸소 찾아주신 아버지원수님께서는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신발도 바로 신고 모자도 바로 쓰고 옷도 바로 입고 교과서도 깨끗이 거두고 일기장도 깨끗이 쓰도록 해야 커서도 로동을 사랑하고 사회재산을 애호하게 된다고 교시하셨단다. 어때? 앞으로는 그렇게 할 자신들이 있니?》 《있어요!》 아이들은 어깨를 한뽐씩이나 올렸다내리며 기운차게 대답하였다. 영실누나는 아이들의 그 옹골찬 대답소리에 만족한듯 쌩긋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있으면 됐다. 아버지원수님께서 항상 너희들을 굽어보고계신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누나는 무슨 말인지 더 하려다가 삼년전에 자기가 다니였고 지금은 금동이네가 다니는 대동문인민학교를 뜻깊게 바라보고나서 옥류교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금동이는 영실누나가 준 얼레빗을 손에 꼭 감쳐쥐고 동무들과 함께 련광고등중학교앞을 떠났다. 그것은 갈색수지로 만든 수수한 빗이였지만 별스레 좋아보이였다. (이 빗으로 자꾸 빗으면 내 머리도 누나의 머리처럼 고와지겠지. 참 좋은 누나로구나. 아버지원수님을 직접 만나뵈온 누나가 다르긴 달라. 나도 누나처럼 훌륭한 학생이 되여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뵈왔으면…) 김일성광장을 지나고 경림진료소앞을 지나 아빠트마을에 들어설 때까지 그는 내내 영실누나의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은 후 아동공원에 모여 공부하기로 약속한 다음 뿔뿔이 집으로 헤여져갔다. 금동이는 시장기를 느꼈지만 별로 먹고싶은 생각이 없어서 찬물을 한사발 들이키고나서는 인차 거울앞에 마주섰다. 이마우에 머리를 가쯘히 빗어내린 해말쑥한 아이가 거울속에서 말똥말똥 그를 내다보고있었다. 윤이 나는 그 머리카락들은 오리오리 어찌나도 곱고 정갈하게 빗어내렸던지 약간만 건드려도 악기들처럼 소리를 낼것 같았다. 금동이는 해말쑥한 그 아이가 자기라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아 제풀에 벙긋 웃었다. 그리고는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영실누나는 공부도 잘하겠지. 집에 가면 방도 잘 거둘거야.) 그는 방안에 무엇이 널려있지 않나 해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다가 가방을 끌어당기였다. 공원에 가지고가서 공부할 책들을 꺼내고싶어서였다. 그의 머리에는 문득 영실누나가 련광고등중학교 교문앞에서 들려준 아버지원수님의 교시내용이 떠올랐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교과서도 깨끗이 거두라고 가르쳐주시였다지… 금동이는 속이 뜨끔해서 가방속의 책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귀퉁이가 째지고 보풀이 일어 너덜너덜해진 국어교과서뚜껑이 생각났던것이다. 정말 그랬다. 그 뚜껑은 말이 책뚜껑이지 벌써 제구실을 다한지 오래다. 게다가 심술쟁이이며 장난꾸러기인 동학이가 원주필로 땅크까지 그려놓아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영실누나가 이 뚜껑을 보면 뭐라고 할가? 에이, 창피해. 이따위 시시껄렁한 뚜껑이 지금까지 김향선생님 눈에 걸려들지 않은건 정말이지 다행이다.) 금동이는 누가 보기 전에 그 뚜껑을 자기 손으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쯤한 일은 1학년생들도 쉽게 할수 있는것이다. 그는 벽장속에서 그라프트지를 꺼내여 얼추 마름질한 다음 교과서표지에 풀칠을 하였다. 그리고는 마름질한 그라프트지를 표지 량쪽에 한장씩 붙이였다. 새옷을 입은 교과서는 이전보다 한결 깨끗해보이였다. 금동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씽긋 웃으며 아버지원수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았다. 아버지원수님께서도 웃고계시는것 같았다. (장하다, 금동이. 그래야지!) 하고 원수님께서는 흐뭇이 그를 칭찬해주고계시기라도 하는것만 같았다. 꽛꽛하던 그라프트지는 풀기를 머금고 인차 눅눅해졌다. 금동이는 표지가 마르는것을 빨리 보고싶어 전기다리미로 그라프트지의 겉면을 조심스레 문대였다. 그러자 다리미밑에서 가느다란 실김이 피여오르며 구수한 풀냄새가 방안가득 서려올랐다. 《이크,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금동이의 등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구리에 책을 낀 순일이가 출입문을 열고 갸웃이 방안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금동아, 너 뭘하니? 수제비국을 먹니?》 《나? 수수지짐을 먹지 뭐.》 《흥, 혼자서 냠냠냠 하는구나.》 순일이는 신발을 벗고 문턱을 넘어 껑충 방안으로 뛰여들어왔다. 그러나 다리미질을 하는 금동이를 보자 곧 심드렁해져서 주머니의 사탕을 꺼내여 입안에 한알 밀어넣었다. 그리고 금동이한테도 한알 주었다. 《넌 다리미질도 할줄 아는구나. 내가 다리미만 쥐면 우리 어머닌 날 막 욕하지 뭐, 고장을 낸대나.》 그는 사탕을 문채 불평이라도 하듯 입술을 우습게 이그러뜨리였다. 《그건 우리 어머니도 그래. 어머니들이 너무 우리를 얕본단 말이야. 그런데두 난 어머니보다 못지 않게 씽씽 다리미질을 하거던.》 금동이는 순일이가 옆에서 봐주는 바람에 더 성수가 나서 다리미질을 하였다. 《뭘 다리니?》 《국어교과서뚜껑이야. 헐어서 너덜거리는걸 내손으로 고쳤지 뭐.》 《넌 정말 못하는게 없구나. 교과서표지도 척척 제절로 손질하구…》 《아니, 나두 이전에는 어머니가 다 손질해주었어. 이제는 어머니의 신세를 지지 않고 다 내손으로 할래. 우린 애기가 아니거던. 탁아소가 아니거던.》 《우린 인민학교거던. 1학년생이거던. 모표도 있고 모자도 있거던…》 순일이는 자기가 금동이의 말투를 흉내낸다는것도 모르고 열이 나서 떠들었다. 《그런데두 우리 누난 내가 할걸 제가 다 해준단 말이야. 이제부터는 나두 너처럼 교과서랑 학습장이랑 제절로 손질할래.》 그는 입에 문 사탕을 소리나게 깨물고나서 덤벼치며 문쪽으로 향하였다. 복도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재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잠시후 금동이도 우당탕우당탕 층계를 구르며 밖으로 나갔다. 아빠트마당에는 벌써 아이들이 다 모여있었다. 모두들 단추도 바로 채우고 신발도 바로 신고 모자도 바로 썼다. 그런데 동학이 혼자만 유별나게 맨머리바람으로 걸어가고있었다. 금동이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동학이를 따라잡았다. 《동학아, 너 왜 모자를 쓰고오지 않았니?》 《모자? 마을에서두 모자를 쓰니?》 동학이는 별소리를 다 한다는듯이 우정 눈을 뜨부럭거리였다. 금동이는 그냥 여무지게 따지고들었다. 《마을에서는 뭐 학생이 아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자도 좀 쉬여야지.》 《모자도 안 쓰고 거리로 돌아다니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니!》 《흥, 쳇!…》 말문이 막힌 동학이는 코웃음을 치며 《쳇》소리만 연방 되풀이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10m쯤 앞서갔다. 《얘들아, 서라!》 금동이는 째지는듯 한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앞서가던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니? 금동아…》 하고 재수가 다급히 물었다. 《이것 봐라. 이 동학이가 말이야, 모자도 안쓰고 나왔어. 동학아, 우리 여기서 기다릴게 얼른 집에 가서 모자를 쓰고 오너라.》 《야참, 언제 또 집에 갔다온다구 그러니. 내 다음부터는 꼭 쓰고다닐게.》 동학이는 가재걸음을 치며 엄살을 피웠다. 《안돼. 빨리 갔다와!》 금동이가 이렇게 엄포를 놓자 아이들이 저마다 빨리 갔다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도 이 순간 금동이처럼 모두다 영실누나가 들려주던 아버지원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럼 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갔다오지 뭐.》 동학이는 투정질이라도 하듯이 일부러 뜨직뜨직 팔자걸음을 하며 집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다가 뒤로 돌아서서 엉너리를 부리였다. 《아이구, 난 심심해서 혼자 못 갔다오겠구나. 혼자서 걸으니까 발이 어찌나 무거운지 누가 좀 동무해주지 않겠니?》 《에이 참, 엄살쟁이같은게?…》 금동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동학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를 동무해주려고…
18. 차돌 다섯개
누구든지 세상에서 제일 고운 돌이 무엇인가고 묻는다면 금동이는 서슴없이 대답할것이다. 그것은 차돌이라고… 제일 깨끗하고 정갈한 돌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그래도 역시 그는 차돌이라고 대답할것이다. 평양이 얼마나 넓은가를 알려고 력포구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주은 다섯개의 그 차돌을 그는 책상 맨 아래빼람속에 깊숙이 간수하였다. 집안에서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 어머니나 금석이가 그걸 보면 냉큼 집어던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원수님의 동상둘레에 깔려고 했던 그 차돌이 어찌하여 상기도 책상빼람속에 있는지 그 곡절은 누구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귀띔하지 않은 그 곡절을 글쎄 누가 안담. 하루에도 서너너덧번씩 금동이는 그 차돌을 몰래 꺼내보군 하였다. 보면 볼수록 정이 들고 탐이 나는 돌이였다. 그런데 수자가 너무 적은것이 아쉬웠다. 아마 한되박쯤 돼도 금동이는 벌써 동상둘레에 좋아라고 깔아놓았을것이다. 《다섯개는 너무 적어. 열개만 있었으면! 아니 스무개. 서른개만 있었으면!》 금동이는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그 수자를 불구어나갔다. 그리고 매일같이 차돌을 주으러 대동강가에 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동강 모래터에는 그런 차돌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은 꽃삽을 가지고 모래밑을 뚜져봐야지.) 아침일찍 잠에서 깨여나자 금동이의 머리에 떠오른 첫 생각이였다. (고것들이 큰물질 때 몽땅 모래밑으로 숨어들어갔나보지. 그래두 난 찾아내고말테야.) 정말 그는 꽃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무슨 일에서나 금동이처럼 씨원씨원하게 결심을 내리는 아이도 없고 또 그 결심을 금동이처럼 꼭꼭 해내고야마는 아이도 없다. 그가 그런 아이라는건 누구나 다 안다. 금동이는 혼자서 강가로 나가려다가 좀 적적한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짝패들하고 같이 가서 모래를 파면 돌도 더 많이 줏고 일도 더 성수가 날것 같았다. (셋이나 넷이서 파면 한배낭을 주을지도 몰라. 한배낭을 주어가지고 가서 동상옆에 깔지 뭐. 그럼 눈이 내린것처럼 새하얘보이겠지.) 그는 아빠트층계를 내리면서 복도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재수나 순일이나 동학이가 없나 해서였다. 그 애들은 아침마다 뒤마당에서 뽈을 차지 않으면 달음박질을 하거나 허드레장난을 한다. 오늘 아침엔 재수와 동학이만 마당에 나와있었다. 그 애들은 방금전에 어른들이 쓸어놓은 마당 한끝에서 삼형제꼬니를 놀고있었다. 새파란 유리쪼박지들은 동학이의 씨이고 새하얀 사기쪼각은 재수의것이였다. 동학이는 사기쪼각 하나를 꼬니판에서 보란듯이 떼던지고 입으로 《냠냠냠》 소리를 내면서 재수의 약을 올려주고있었다. 재수는 연거퍼 씨를 세개나 떼웠지만 어쩌지 못하고 자꾸 코등만 잡아뜯었다. 그는 온 아빠트마을 아이들이 다 부러워하는 베아링골이지만 꼬니에서는 늘 동학이한테 몰리군 하였다. 많고많은 1학년생들중에 놀음에서만은 정말이지 동학이를 당해내는 아이가 없다. 《금동아, 어때?》 그는 우쭐해서 꼬니판을 눈짓하였다. 《이러고도 재수는 자꾸 자기가 이긴다지 뭐. 어디 한번만 날 이겨보지. 그럼 내가 학교까지 업어다주지 않나.》 《피, 한번 이기구서도 뽐만 내는구나. 내 오늘 아침 감기에만 걸리지 않았으면 너같은게 다 뭐야.》 재수는 씨를 다 잃으면서도 희떠운 소리만 탕탕 했다. 그러자 동학이는 배를 그러쥐고 어리광대들처럼 깔깔거리였다. 《하하하… 나두 그럼 래일 아침 감기에 걸려볼가. 에이. 재수가 불쌍해서 감기에 걸려야지. 나만 자꾸 이기니까 재미가 없지 뭐. 골고루 이겨야 재미나겠는데…》 금동이는 꼬니판앞에서 달콤한 아침시간을 보내는 그 애들이 참 시시해보였다. 어른들이 노는 장기나 별꼬니라면 몰라도 삼형제꼬니란건 별로 머리를 쓰지 않고서도 놀수 있는 쬐쬐한것이였다. 1학년생쯤 되면 장기를 놀아야지, 장기판에 쪽을 두드리면서 《장훈이야!》하고 소리치는 재미가 얼마나 기막힌지 아마 저 애들은 모를테지, 그래두 나는 알지 뭐, 한번은 금석이한테 장훈을 불러보기까지 했거던, 금석이의 눈이 얼마나 둥그래졌게. (내 이제 저 애들한테 장기를 배워줘야지.) 금동이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꼬니판의 씨들을 손바닥으로 와락 허지버려놓았다. 《이건 시시한 놀음이야. 이런건 유치원아이들이나 놀라지.》 동학이는 다 이기던 꼬니가 망가지는게 너무 아쉬워서 눈을 흘기였다. 《재수가 막 항복하려던 참인데 이럼 어쩌니.》 《그대신 내가 이제 장기를 배워주면 되지 않아.》 《장기? 1학년생두 장기를 놀아 일없니? 우리 아버지보고 배워달라니깐 아이들이 장기를 놀면 머리가 터진다지 않겠어.》 《그건 대포야. 거짓부리야. 우리 형을 봐라. 어디 머리가 터지니? 나도 이렇게 머리가 생생하지 않아.》 《정말 그렇구나. 그럼 장기를 언제 배워주겠니?》 《학교에 갔다와서…》 《지금 배우면 안되니?》 《지금은 안돼. 난 장기보다 더 멋진 일을 해야 하니깐. 너희들두 같이 가지 않겠니?》 금동이는 꽃삽으로 땅을 긁으며 슬쩍 두 아이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동학이와 재수는 《멋진 일》이라는 말에 군침이 돌아서 무작정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 애들은 금동이가 그 《멋진 일》에 자기네를 빼먹지 않고 데려가는게 여간만 흐뭇하지 않은 모양이였다. 《금동아, 난 이따위 시시한 꼬니를 다신 안놀래. 이건 동학이만 이기라고 생겨난 꼬니야. 빨리 그 <재미나는데>루 가자.》 재수는 동학이의 《냠냠냠》소리를 귀아프게 들으며 약이 올라서 꼬니판앞에 앉아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두손으로 이마를 소리나게 쳤다. 《에쿠, 잊을번 했구나. 순일이두 데리구 가야지.》 《그럼 데리구 가야지. 안 데리구 갔다간 하루종일 해금처럼 깽깽거리겠는데…》 금동이가 이런 말을 하는데 순일이가 때마침 아빠트에서 나왔다. 그 애는 어깨를 별나게 뒤틀며 기지개를 켜고나서 짝패들쪽으로 털썩털썩 걸어왔다. 걸음걸이가 고르롭지 못하고 우습강스럽게 기우뚱거린다. 제 신이 아닌 남의 신을 신을 때면 늘 그렇다. 오늘 아침에는 37문쯤 되는 운동화를 발에 걸치였다. 《넌 또 어른들의 신발을 신고 나왔구나. 왜 자꾸 그런 신발을 신니?》 금동이는 그 애가 곁에 오자바람으로 핀잔비슷이 물었다. 순일이는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철버덕거리며 애들의 주위를 보란듯이 한바퀴 돌았다. 《어른이 되고싶으니까 신지 뭐. 너희들두 나처럼 한번 신어보려무나. 그럼 당장 어른이 된것 같지 않나.》 《그 신발을 신고선 우리를 따라가지 못하겠구나.》 금동이는 순일이가 안달아하라고 우정 머리를 저었다. 순일이는 불안스럽게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먼데 가니?》 《응. 대동교 건너편에 가.》 《거긴 왜 가니?》 《차돌을 주으러 가. 너 차돌이란걸 봤니? 못봤다구. 이게 바로 차돌이라는거야. 만지지는 말아.》 금동이는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차돌을 꺼내여 아이들에게 보이였다. 순일이는 침을 꼴깍 삼키였다. 《이게 요전날 력포에 갔을 때 주었다던 그 돌이구나. 요렇게 고운줄 알았더라면 나두 한주머니 주어가지구올걸.》 《이제 주어두 돼.》 《그럼 내 집에 가서 얼른 신발을 바꿔신고 올게.》 아이들은 잠시후 아빠트마당을 떠났다. 금동이를 내놓고는 모두 처음으로 대동교를 걸어서 건너보는 아이들이다. 활짝 개인 날인지라 강물빛은 맑았다. 준첩선에는 이전날처럼 퉁탕거리는 전동기소리가 그냥 들려왔다. 아이들은 자기네 키만큼이나 높은 쇠란간을 바싹 따라가며 대동강의 아침풍경을 굽어보았다. 강기슭에 띠염띠염 앉아있는 낚시군들의 그림자가 물우에 비껴 조용히 흔들거리고있었다. 팔뚝같은 고기가 갑자기 수면우로 푸들쩍 뛰여올라 낚시대를 따라 뭍으로 끌려간다. 마치 은도금을 한 세공품처럼 빛이 새하얗다. 《야 멋진데!》 아이들이 낚시질구경에 취해서 다리목을 떠나지 못하고있을 때 금동이는 눈을 팔지 않고 앞으로 내처 걸어갔다. 어제 아침 맨손으로 파헤쳐보던 모래터가 대동교밑으로 굽어보이였다. 오늘은 그 모래터가 아닌 다른 모래터를 찾아가고싶었다. 다리를 다 건느자 그는 꽃삽을 흔들며 강기슭으로 내려갔다. 이편기슭은 본평양쪽보다 물이 많지 못했다. 그래서 강바닥의 모래가 더 많이 드러났다. 낮이면 자동차들이 그 모래를 싣고 어디로인지 바삐 달려갔다. 금동이는 강복판쪽으로 제일 멀리 뻗어나간 모래불에 자리를 정하고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셋은 맨손으로 모래불을 뚜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강바닥을 파들어가도 차돌은 나오지 않았다. 이따금씩 싸래기같은 왕모래알들과 거무칙칙한 돌쪼각들만 나타날뿐이였다. (참, 이상해. 이렇게 널다란 강바닥에 어째서 차돌이 하나두 없을가? 력포에 있는 쪼꼬만 개울에서도 차돌을 다섯개나 주었는데…) 금동이는 삽질을 하면서도 맥살이 풀려 고개를 연송 기웃거리였다. 아직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보지 못한 그는 이런 벌방의 강보다 산촌의 개천 같은 곳에 차돌이 더 많다는것을 알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반시간나마 강바닥을 파헤치였지만 아이들이 찾는 차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금동이는 삽날에 차돌대신 신창이 없는 싼다루가 나오자 화를 내며 모래터에서 일어났다. 차돌 한개도 줏지 못하고 돌아서자니 마음이 별로 허전해졌다. 재수, 순일이, 동학이들도 흥이 깨여져 기슭으로 걸어나갔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았다. 차돌이 아니고라도 애들적에는 누구나 흙장난을 즐기니 말이다. 《원래는 여기에 차돌이 많았는데 건설장에 몽땅 실어간지도 몰라.》 금동이가 약간 멋적어하는것을 눈치챈 순일이가 제법 그런 사연을 알고나 있는듯이 말했다. 재수가 능청스레 그의 말을 되받았다. 《그럼 우리것을 좀 남겨두고 실어갈게지, 참참참…》 《아니야. 여기 차돌은 동평양에 있는 아이들이 다 주어갔을거야. 그 애들은 심심하면 여기 나와 노니깐. 욕심꾸러기들이야.》 하고 이번에는 동학이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아이들은 별의별 소리를 다하며 유보도에 올라섰다. 《얘들아, 돌아갈 땐 옥류교로 해서 가지 않을래? 너희들 한번도 옥류교를 걸어 못봤지?》 금동이가 이런 말을 꺼내자 아이들은 《응, 그래.》하며 신바람이 나서 옥류교쪽으로 향하였다. 참말이지 이런 날 아침에는 싱그러운 물내를 맡으면서 강뚝을 따라 걸을만도 하다. 그들은 옥류교를 건너서자 수산물직매점옆으로 뻗어나간 골목길에 들어섰다. 3층짜리돌집앞에까지 오니 정다운 학교건물이 보이였다. 《얘들아, 저기 영실누나가 와.》 맨 앞에서 걸어가던 순일이가 발길을 멈추고 짝패들을 둘러보았다. 손에 물초롱을 든 중학교 녀학생이 동무들과 함께 그들쪽을 향해 마주 걸어오고있다. (청소당번인 모양이지.) 금동이는 그 누나를 보면서 제나름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수집은 생각이 좀 들어 앞으로 더 걸어나가지 못하고 3층집울타리옆에서 머밋머밋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이 뎅그래졌다. 영실누나네가 중학교를 지나 인민학교마당에 들어서고있었던것이다. 《이크, 우리 학교에 오는구나.》 순일이가 입속말로 가만히 속삭였다. 동학이도 가만있지 못했다. 《왜 자기네 학교로 가지 않구 남의 학교에 올가?》 《글쎄… 우리 저 누나들이 무슨 일을 하나 정찰하자.》 재수가 이런 말로 아이들을 부추기였다. 네 아이는 허리들을 잔뜩 까부리고 학교울타리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에 인사를 드리는 중학생누나들의 모습이 울타리간살사이로 바라보이였다. 1학년생들은 그 순간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이웃학교 중학생들이 자기네보다 먼저 아버지원수님께 인사를 드린것이다. 영실누나는 어느 한 교실창문을 오래오래 쳐다보고나서 새로 심은 측백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다른 누나들은 동상주변의 포석을 물로 닦아냈다. 《참참참, 우린 여기 숨어있고 누나들은 일하고…》 재수가 혀를 차며 하는 말이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학교마당으로 달려가 아버지원수님 동상에 인사를 드리였다. 놀란 누나들이 일손을 멈추고 1학년생들을 돌아보았다. 《영실아, 요전날 네가 머리를 빗겨준 장난꾸러기들이다야.》 그때 중학교앞에서 울리던 귀에 익은 목소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보다 좀더 굵은 두번째 목소리는 측백나무뒤에서 울리였다. 《없던 애들이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나타났을가?》 영실누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상글상글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둘러보기만 하였다. 입이 무척 무거운 누나인것 같았다. 《금동인 오늘 숙제를 다 했겠지?》 한참만에 그 누나는 귀속말로 물었다. 금동이는 대답대신 벙싯 웃음을 지었다. 잘한다고 대답하고싶은데 제자랑을 하는것 같아서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누나의 손에서 물초롱을 나꾸어챘다. 그러나 누나는 선뜻 물초롱을 넘겨주지 않았다. 《너희들이 이 물초롱을 들기나 하겠니?》 《들지 않구요, 오늘 아침 이 삽으로 모래를 한달구지나 파헤쳤는데두요. 보라요, 팔이 얼마나 튼튼한가.》 금동이는 팔소매를 걷어올리였다. 그러자 동학이가 금동이를 밀어제끼고 영실누나의 앞에 나섰다. 《누나, 그 물통을 나한테 줘요. 난 요전번날 효남이네 애기도 업어봤어요. 참 큰 애기지요 뭐. 이 물초롱 같은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순일이가 헤덤비며 동학이를 추어주었다. 《옳아요, 옳아요. 그 애긴 경림탁아소에서 1등으로 무거운 애기예요. 그런데 동학인 그 애길 업구서 반시간이나 서있었거던요. 한번도 내리우지 않구 말이예요.》 그래도 영실누나는 생글생글 웃기만 하였다. 그사이에 금동이는 재수를 데리고 교실에 들어가 물통 두개를 들고 내려왔다. 누나네한테 비럭질을 하는것보다는 제 물통을 가지고 일을 하는게 훨씬 더 의젓하고 떳떳할것 같았다. 두 아이는 수도칸에 가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가지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래서 포석을 씻는 일은 갑절이나 빨리 끝났다. 《누가 시켜서 여기로 왔나요?》
영실누나는 자기 동무들을 돌아보며 눈웃음을 살짝 지었다. 《누가 시킨게 아니란다. 우리 절루 왔지.》 《아침마다 오나요?》 《그럼, 아침마다 오지.》 《남의 학교인데 왜 그렇게 하나요?》 《왜 남의 학교겠니, 우리 학교지. 우리는 모두 여기서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뵈왔단다. 앞으로 저 중학교보다 더 먼데루 가두 우린 너희들의 이 학교를 잊지 못한단다.》 영실누나는 말을 그치고 생각에 잠겨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을 우러러보았다. 대동강반의 무성한 나무숲을 헤치고 비쳐들어온 한가닥의 해살이 누나의 얼굴에 금빛실오리처럼 드리워졌다. 금동이는 동상둘레에 곱게 깔려있는 정갈한 옥돌들을 살펴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의 차돌을 매만지였다. 교문을 나선 후에도 숱한 졸업생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인사를 드리는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옆에 그 차돌도 어서 곱게 깔아드리고싶었다. (어쩔가? 깔가? 그냥 가지고 갈가?) 짝패들이 영실누나네와 함께 교문쪽으로 걸어갔지만 금동이는 동상앞에 그냥 서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였다. 《금동아, 뭘하니? 빨리 가자.》 영실누나가 소리쳐 불러서야 그는 동상앞에서 돌아섰다. (에이, 이건 너무 적어. 백개쯤 모은 다음 깔아야지. 백개, 백개! 난 기어이 백개를 모을테야!) 금동이는 그 백개라는게 얼마나 많은 수자인지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손으로 백개의 차돌을 기어이 모으리라고 마음먹었다. 며칠후 금동이는 동무들을 데리고 이전날 다섯개의 차돌을 주어낸 력포구역의 그 강기슭에 가서 해질무렵까지 차돌을 주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원수님의 동상두리에는 1학년생들의 깨끗한 마음이 어린 백쉰다섯개의 차돌이 곱게 깔리였다.
ㅡ주체72(1983)년ㅡ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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