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0호에 실린 글

 

  

    □ 중편소설 □

 

                                                         

 

                           ( 제 7 회 )

 

                                     김  정

 

14. 참 좋은 아침

 

다음날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모란봉》표시계는 정해진 시간에 금동이를 깨워 강변으로 내보냈다. 마치 금동이가 늦잠꾸러기인것을 알고있기나 한듯이 종소리는 아침마다 그의 머리맡에서 성급하게 그리고 자지러지게 울리였다. 그것은 자기 주인과 한 《약속》을 한번도 어긴적이 없는 더없이 착실하고 기특한 물건이였다.

그래서 금동이는 날마다 깨끗한 가제천으로 그 시계의 유리를 말끔하게 닦아주군 하였다.

《그만하면 자명종이 네 늦잠버릇을 떼준것 같은데 래일 아침부터는 네 힘으로 일어나보지 않겠니?》

한주일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금동이는 그 시계와 헤여지는게 아쉬워서 도리를 흔들었다.

《아버지, 한주일… 한주일만 더!》

《혼자서는 아직도 자신없단 말이지?》

《그런게 아니예요. 시계가 날 깨워주는게 재미나서 그래요.》

《그럼 네 맘대로 해라. 그렇지만 한주일후부터는 네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알겠지?》

《예.》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자명종은 아침 다섯시반에 꼭꼭 금동이를 이불밑에서 불러내군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시계가 한밤중에 자기 주인을 깨운적이 있었다.

금동이는 후닥닥 일어나서 하품을 세번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집안은 어째서인지 쥐죽은듯이 조용하였다. 동생보다 삼십분쯤은 늘 먼저 일어나서 책을 읽군 하는 형도 잠을 자고있었고 아버지, 어머니도 잠을 자고있었다.

(흥, 모두들 늦잠꾸러기가 됐나보지. 오늘 아침은 내가 1등이야!)

금동이는 매사에 빈틈이 없는 아버지, 어머니나 형도 자기보다 늦게 일어날 때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자 몹시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포와 포단을 이불장속에 개여넣고 우쭐해서 세면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전까지는 맹물로 고양이세면을 했었는데 지금은 금석이처럼 당당한 비누세면을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도록 한주일전부터 버릇을 붙여주었던것이다. 아직은 금동이네 아빠트 1학년생들중에 화장비누로 세면을 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금동이는 아버지가 사다준 빗으로 머리를 빗고나서 세면장을 나섰다.

창문유리는 아직도 검은 차광막을 친 때처럼 컴컴하였다.

(날이 몹시 흐렸나보지. 하늘에 아마 검은 구름장들이 꽉 찼나봐. 밖이 어둑어둑하니까 한밤중인줄 알고 누구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그런데 난 일어났거던.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난걸 알면 깜짝 놀랄테지. 그런데 어머니가 《늦잠》을 자면 밥은 언제 한담. 어쩔가? 깨울가? 에이, 그만둬, 조금만 더 주무시라지뭐.)

그는 어둑시그레한 방안에 몇분동안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갑갑한 생각이 들어 전등을 켰다.

그러자 웃목에서 자던 금석이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눈이 시그러워서 한참동안 손을 이마에 대고있다가 불빛에 익숙해지자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니, 너 왜 벌써 일어났니?》

금석이는 책상앞에 앉아있는 금동이를 보자 깜짝 놀라서 물었다.

《벌써라니. 아침이 다 됐는데… 자명종이 벌써 아까 울었는데…》

금동이는 시간표순서에 맞추어 책들을 가방속에 꾸려넣으며 의젓이 말했다.

《뭐라구? 아침이 다 됐다구? 그런데 왜 밖이 저렇게 캄캄해?》

《그거야… 그거야 뭐 하늘이 흐려서 그렇지뭐.》

금석이는 일어나서 비청비청 창문가로 다가갔다. 눈을 비비며 한참동안 밖을 내다보던 그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뒤로 돌아섰다.

《금동아, 너 정신나가지 않았니? 저것봐라. 하늘에 별이 총총한데 뭐 아침이 됐다구.》

《뭐, 별?》

금동이는 고무공처럼 걸상에서 튕겨일어나 창유리앞으로 다가갔다.

형의 말이 맞았다. 하늘에서는 정말 별이 바글바글 끓고있었다.

(그런데 자명종이란 놈은 왜 벌써 울었을가?)

그는 무심결에 책상 한끝에서 재깍거리는 《모란봉》표시계를 집어들고 바늘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시계는 이상스럽게도 새벽 세시 십분을 가리키고있었던것이다.

(난 5시 30분에 맞추었는데…)

금동이는 영문을 알수가 없어 얼마동안 눈을 슴뻑거리기만 하였다.

금석이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동생과 시계를 번갈아보다가 쓴입을 다시며 물었다.

《자명종이 정말 울긴 울었니?》

《울었어. 정말이야.》

《그런데 왜 시계는 세시 십분을 가리키나 말이야?》

《난 몰라. 지난밤 틀림없이 5시 30분에 맞추구 잤는데…》

그때 웃방에서 자던 아버지가 사이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아침은 왜들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잠기가 푹 서려있었다.

《금동이가 자명종소리를 듣구 세시에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그 바람에 나도 깨여났지요 뭐.》

금석이의 대답이였다.

《자명종을 제시간에 맞춰놓긴 놓았겠지? 맞춰놓았다구? 그렇다면 정말 이상하구나. 이건 아주 보기 드문 비상사건인걸. 혹시 어느 장난꾸러기가 너를 골탕먹이려구 세시에 맞춰놓은게 아니냐?》

금동이는 눈을 끔뻑끔뻑하며 간밤에 있은 일들을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정말이지 아버지의 말이 옳은지도 몰랐다. 지난밤 그 시계는 숙제공부하러 온 아이들의 손에서 퍼그나 왔다갔다했었으니까. 제일 마지막번으로 만진게 재수였는데 그 애가 슬쩍 3시에 바늘을 돌려놓았을수도 있는것이다.

(그 애가 한게 틀림없어. 아침에 만나면 나보고 물을테지. 《금동아, 네 눈까풀이 왜 자꾸 아래로 감겨지니? 어제 밤에 잠을 설친게지?》 심술망나니 같은게 꿈에 도깨비나 콱 만나라지.)

금동이는 재수한테서 단단히 골탕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자 《에이참!》하고 허구프게 웃었다.

아버지도 웃고 금석이도 뒤로 벌렁 나가넘어지며 껄껄거리였다.

그통에 어머니마저 깨여나 덩달아 웃었다.

후날 재수는 자기가 장난질했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정말이지 그 새벽에는 온 식구가 재수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우리 금동이가 아침기상때문에 저렇게 명심하는걸 보니 이제는 땅땅 굳은 1학년생이 다 되였소!》

아버지는 금동이때문에 잠을 설친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고 흐뭇이 말했다.

이런 일이 있은 그날 새벽부터 금동이는 머리맡에서 시계를 치워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자명종의 도움을 받아 일어난다는게 형편없이 쬐쬐해보였던것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금동이는 자기 힘으로 당당하게 일어났다.

그는 학교갈 준비를 잽싸게 해놓고나서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자기가 공부하는 앉은책상이 아니라 아버지의 편수책상이였다.

앉을 때마다 다리를 가드라뜨려야만 하는 앉은책상보다는 가름대에 다리를 걸치고 발장단도 칠수 있는 그 편수책상이 그에게는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김향선생님이 내여준 숙제는 어제 오후에 다해버렸으니 걱정할게 없었다.

금동이는 책상우에 편지지와 연필을 꺼내놓고 주먹으로 턱을 고이였다. 세상에 태여나서 한번도 편지를 받은적이 없다는 재수한테 편지를 쓰고싶어서였다. 남에게 부탁해서야 겨우 전해지는 그런 쬐쬐한 쪽지편지가 아니라 우표도 붙고 도장도 찍힌 봉투편지를 쓰자는것이였다.

어제 오후 청진수산사업소에 다니는 어로공삼촌한테서 두장의 편지를 받은 그 순간부터 그는 이런 결심을 했다. 언제인가 중앙우편국을 나서면서 자기한테는 편지를 보낼 삼촌이 하나도 없다고 하던 재수의 서글픈 말소리가 자꾸만 귀전에 맴도는것이였다.

같은 아빠트 웃층에 사는 조무래기한테 보내는 편지도 우편국에서 받아주는지 금동이한테는 그게 좀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것쯤은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재수어머니가 우편통신원이니 그쯤한건 슬쩍 눈을 감아줄테니까 말이다.

《너 왜 오늘은 제 책상에 앉지 않구 남의 책상에 앉았니?》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가 방안을 들여다보며 금동이를 나무랐다.

금동이는 못 들은체 하고 그냥 편지지만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의 꾸중이 귀에 거슬렸기때문이였다.

《응? 어머니가 묻는게 들리지 않니?》

어머니가 이렇게 어성을 높여서야 그는 문쪽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책상이 더 좋거던요. 내 책상은 막 앉기가 답답해요.》

《그래두 자기 책상에 앉아서 공부해야지 버르장머리없이 그게 뭐냐! 우리도 아이적에는 다 그런 책상을 놓고 공부했다. 책상이 다 뭐야. 밥상에 엎드려 공부했는데…》

《흥, 학교에 가면 선책상, 집에 오면 앉은책상…》

《잔말말구 어서 제 책상앞으로 가거라, 어서!》

금동이는 입이 뾰로통해서 마지못해 일어섰다.

널판자로 셈세기판을 만들던 아버지가 그때 웃방에서 내려왔다.

《여기서는 아침부터 무슨 분쟁이요?》

그는 손에 들고있던 연필을 목수처럼 귀바퀴우에 찌르며 어머니와 금동이를 번갈아보았다.

《저 애가 글쎄 아버지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겠지요. 그래서 내가 핀잔을 했어요.》

어머니는 금동이가 책상보를 더럽히지 않았나 해서 눈정기를 모으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좀 덞어져보이는데는 연필가루가 떨어진것 같아 후―하고 입바람을 내불기도 했다.

《허허, 아버지의 책상에 앉으면 뭐라오? 그 좋은 책상을 뒀다가 어데 쓰겠소.》

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금동이를 걸상우에 눌러앉히였다.

어머니도 환히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래요. 우리 수령님께서 그처럼 귀중히 여기시는 1학년생인데 우리가 무엇을 아끼겠어요.》

《암, 그렇구말구요. 공부만 더 잘하겠다면 편수책상이 다 뭐겠소. 량수책상도 아깝지 않지. 여보, 그럴것없이 오늘부터 이 책상을 아예 금동이한테 넘겨줍시다. 금동아, 오늘부터는 이 책상이 네 책상이다!》

아버지는 금동이의 어깨를 걸상등받이에 꼭 가져다붙이고나서 한참동안 편지지를 굽어보았다. 어머니는 책상을 어지럽힐가봐 그랬으니 잘 쓰라고 한마디 더 이르고는 부엌칸으로 나가버리였다.

금동이는 그제서야 아버지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아버지, 정말이지요?》

《그럼, 정말 아니구. 나라에서는 너희들을 위해 궁전도 지어주는데 집에서 편수책상 하나도 못 주겠니. 이제 네가 좀더 크면 저 책장도 넘겨주겠다.》

《야!》

《가만있자, 그런데 이건 뭐냐? (보고싶은 내 동무 재수에게)…》

편지지 꼭대기에 씌여진 글줄로 눈길을 달리던 아버지는 놀라서 금동이를 내려다보았다.

금동이는 부끄러워서 두손으로 얼른 그 글줄을 덮어버리였다.

《편지를 쓰니?》

하고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예.》

《이건 어느 재수냐? 웃층에 있는 재수냐, 아니면 다른 재수냐?》

《웃층에 있는 재수. 우리 반 재수예요.》

《그런데 왜 <보고싶은 재수>라고 했니? 하루종일 코를 맞대고 지내면서…》

《하루밤만 못 봐두 보고싶으니까요. 난 어제 저녁에 그 앨 봤는데 또 보구싶어요.》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 껄껄거리며 웃었다. 어찌나도 요란스럽게 웃었던지 늦잠을 자던 금석이까지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웃었다.

《그럼 <보고싶은 재수>라고 해두자.》

잠시후 아버지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금동이, 너 그 <보고싶은 재수>한테 편지를 쓸 생각은 왜 하게 됐니?》

금동이는 아버지가 어른이 다된 사람을 대할 때처럼 그렇게 대한다는것을 알자 신바람이 나서 대답하였다.

《재수가 가엾어서 그래요. 그 앤 아직 편지라는걸 받아본적이 없대요. 친척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럼 어서 쓰거라. 보고싶은 재수한테… 허허허. 원, 녀석두…》

아버지는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금동이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한줌 움켜쥐고 타래모양으로 비틀어꼬면서 편지에 담을 사연을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다. 재수는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연을 써야 편지가 재미나겠는데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그런 사연을 찾아낼 길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는 문득 금석이가 이따금씩 쪽지편지로 순일이의 형 순철이와 무슨 달콤한 약속을 하던것이 떠올랐다.

(옳지, 그럼 나도 재수하고 약속을 하자. 이건 마주서서 《응, 응.》하고 말로 하는 약속보다 얼싸하게 재미나겠지.)

물론 그런 약속을 할수 있는 가마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금동이는 머리에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제창 연필을 달려나갔다.

 

《재수야, 보아라.

오늘 오후에는 우리 집에 와서 나하구 같이 공부하자.

우리 아버지가 어제 백화점에서 별꼬니를 사왔는데 참 재미나. 꼬니보다도 더 재미있어. 지는 아이는 옛말 하나씩 할 내기 하는게 어때?

외발뜀으로 방안을 다섯바퀴 도는건 좀 시시해.

내 그럼 기다리마. 오후 세시에 만나자.

순일이하구 동학이도 같이 데려오너라. 응, 응, 응?》

 

금동이는 여기까지 쓰고나서 효남이의 이름이 빠진것을 보자 두번째 편지를 펼치고 이렇게 덧붙이였다.

 

《재수야, 또 보아라.

참 내가 잊을번 했구나.

효남이도 오구싶어하면 데려오너라.

이제부터는 그 애보고 <손가락깍쟁이>라구 놀려주지 않는다구 해라. 응, 응, 응?》

 

금동이는 속지를 접어 봉투속에 넣으려다가 좀 께름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였다. 오후 두시까지 그 편지가 재수한테 가닿을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이 불쑥 생기였던것이다. 멀쩡한 봉투편지로 몇시에 만나자는 따위의 약속을 한다는건 맹랑하기 짝이 없는것이였다. 재수는 그따위 약속을 두고 피― 하며 코웃음을 칠수도 있다.

금동이는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재수야!

난 아침마다 대동강유보도로 나간단다.

참 좋더라. 너 거기 공기가 얼마나 달달한지 아니. 사탕을 풀어놓은것 같애.

유보도에 가면 별의별걸 다 구경할수 있단다.

제일 재미나는건 낚시질이야. 어제 아침에는 선교동에 산다는 어떤 아저씨가 너보다 더 큰 잉어를 잡았어. 정말이야. 거짓부리면 오늘 내 우유와 빵을 먹어도 좋아. 대동교우에서 낚시를 던지니까 단번에 고기가 물리겠지. 그 아저씨는 너무 좋아서 구경군들에게 담배를 한대씩 권하지 않겠니.

난 화가아저씨와 함께 준첩선을 구경했다.

그 배에서 개라는걸 처음 봤어. 내가 올라가니깐 <왕―왕>하구 인사하겠지. <왕―왕>이 아니라 <웡―웡>이였던것 같애.

거기서는 고양이도 산단다. 아주 귀엽게 생긴 놈이야. 모두들 그 고양이를 <동무>라고 부르더구나.

재수야!

너 준첩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

난 그걸 다 알지만 너한테 말하지 않을래.

알고싶으면 래일 아침 나하구 같이 유보도로 나가자. 갈래? 안 갈래?

찬한 동무 금동이.》

 

금동이는 제딴에도 편지가 마음에 들어 헤벌쭉 웃었다. 그는 화학풀로 봉투를 봉한 다음 그 편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학교로 가기 전에 우편함에 제꺽 집어넣고싶어서였다.

층계를 오르던 몇몇사람들이 흘깃흘깃 그 편지를 훔쳐보았다.

금동이는 신바람이 나서 우정 손을 더 크게 휘저었다.

아빠트마당에 나서자 고무공으로 받아치기를 하던 동학이와 순일이가 그를 불렀다.

《금동아, 뽈차자!》

《싫어. 난 바빠.》

금동이는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편지를 등뒤로 감추었다.

그런데 눈치빠른 순일이가 어느새 그 편지를 보았다.

《응, 편지심부름을 가는구나.》

하고 그 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금동이는 《심부름》이라는 말에 왈칵 골을 냈다.

《아니야, 이건 내가 쓴 편지야.》

《정말?》

《정말이야.》

《대단하구나. 금동아, 우리 한번 구경하자.》

순일이는 자기 어버지의 구두끝으로 뽈을 슬슬 굴리면서 금동이한테로 다가왔다.

동학이도 덩달아서 순일이를 따라섰다.

《자, 봐라!》

금동이는 받을 사람의 주소를 손으로 가리고 두 아이의 앞에 편지를 척 내밀었다. 그것은 만경대고향집이 그려진 고운 봉투였다.

《음, 정말이댔구나!》

입술에 묻은 사탕물을 혀끝으로 맛나게 감빨면서 순일이가 하는 말이였다.

동학이는 순일이의 발끝에서 놀아나는 뽈을 슬쩍 가로채가지고 이쪽저쪽 굴리면서 흘끔흘끔 편지를 훔쳐보았다. 누구한테 보내는 편지인가를 짐작해보는 모양이였다.

그 애들이 그렇게 부러워하고 궁금해하는 모양이 금동이한테는 얼마나 고소해보이는지 몰랐다.

《그건 누구한테 보내는 편지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순일이가 새 사탕을 입에 넣으면서 물었다.

《삼촌한테 보내는거야.》

금동이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불쑥 튀여나왔다.

손톱눈만 한 비밀이 생겨도 곧잘 떠벌이기 잘하는 동학이만 없다면 사실대로 말해주련만 그는 혀끝에서 《재수》라는 이름이 뱅뱅 돌아가는걸 겨우 참아냈다. 동학이가 방송질을 해대는 날에는 재수가 편지를 받아도 꿈쩍 놀라지 않을테니까.

그런데 그 동학이가 그만 금동이의 손에서 흘쩍 편지를 채가지고 달아났다. 그 애는 뛰여가면서 재수의 주소와 이름을 왕왕 소리내여 읽었다.

금동이는 3층에 있는 재수의 귀에 그 소리가 들릴가봐 막 진땀이 났다.

《동학아, 내 재미나는 옛말을 하나 해줄게 그 편지를 다구.》

《피, 그 잘난 옛말… 도깨비, 귀신만 나오는거…》

동학이는 《피》, 《피》하고 아래입술을 비쭉 우습강스럽게 내밀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럼 내 우리 아버지한테 있는 <식물도감>책을 보여줄게. 우리 나라 식물이 다 있는 책이야.》

《싫어. 난 동물책이 더 좋거던.》

《그럼 무얼 달라니?》

《아무것두 안 가질테야. 네가 나를 <남북골>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주겠어.》

동학이는 다른 아이들의 별명을 곧잘 지어부르면서도 금동이가 자기한테 달아놓은 《남북골》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몹시 창피스럽게 여기고있었다.

《그럼 약속하지. 그대신 너두 다른 아이들의 별명을 부르지 않겠다는걸 약속해라.》

《약속한다.》

《그리구 재수한테 이 편지얘기를 하지 않겠다는것두 약속해라.》

《약속해. 자…》

동학이는 편지를 돌려주고 금동이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들었다.

금동이의 새끼손가락이 어느새 그 손가락에 걸리였다. 이런 약속을 하고나서 그는 우편함이 있는 수산물상점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는데 순일이가 그를 불러세웠다.

《금동아, 조꼼만 기다려. 내 집에 가서 뭘 좀 가져올게.》

총알처럼 집으로 뛰여간 그는 잠시후 난데없는 등기우표 한장을 가지고 금동이앞에 나타났다.

《금동아, 이 우표를 봉투에 붙이자.》

《우표가 있는 봉투에 또 우표를 붙인단 말이가?》

동학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순일이를 돌아보았다.

순일이는 골을 내였다.

《이건 40전짜리 등기우표라는거야. 이 우표만 붙으면 네시간에 갈것두 한시간에 간단 말이야. 내가 꽝포를 놓나 재수 어머니한테 물어보지.》

금동이는 등기우표뒤등에 입김을 하 불어 봉투오른쪽에 얼른 붙이였다. 그리고는 우편함 있는데로 바람개비처럼 뛰여갔다.

 

15. 소포꾸레미

 

많고많은 1학년생들중에 혹시 《소포도착통지서》라는것을 받아본 아이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통지서를 가지고 체신소에 가서 제손으로 소포라는것을 찾아본 아이들은 있는지?

아직 금동이가 다니는 1학년 7반에는 그런 아이들이 한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애들은 모두 일곱살밖에 안되는 코흘리개들이니까. 이런 코흘리개들한테 글쎄 어느 누가 감히 소포라는것을 보낸담. 아마 그런 애들이 소포를 찾으러 가면 체신소에서는 코웃음을 칠것이다.

정말 그렇다. 인민학교(당시) 1학년생들과 소포란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건 어른들끼리나 주고받으라지.

소포가 아니고라도 아이들한테는 할 일이 수두룩하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1학년생인 금동이가 《소포도착통지서》라는 어마어마한 문서장을 받았다.

세상에는 참 별 희한한 일도 다 있지.

두번째 시간이 끝났을 때 김향선생님이 금동이한테 그 통지서를 갔다주었다.

《소포》가 무엇이고 《도착》이 무엇이며 《통지서》가 무엇인지 금동이는 잘 모른다.

하긴 《소포》라는 글자가 좀 낯익기는 하다. 어디서인가 한번 피끗 본 생각이 나긴 하는데 그 어데서라는것이 신문에서였던지 책방이였던지 상점이였던지 도무지 아리숭했다.

(어디서 봤을가? 그리구 소포란건 무얼가?)

금동이는 이런 궁리를 하느라고 머리가 막 쑤실 지경이였다.

크기가 손바닥만 하고 노르끼레한 통지서는 금동이의 땀밴 조마구안에서 풀기를 잃고 주글주글해졌다.

한시간쯤 지나자 그는 벌써 문서장의 글들을 몽땅 뜬금으로 외우게 되였다.

 

소포도착통지서

이 우편물을 11월 4일까지 찾아가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매일 20전씩 보관료를 받으며 15일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으면 보낸 사람에게 반환합니다.

 

통지서의 앞면에는 이런 부탁이 씌여있었다.

《보관료》요, 《기간》이요, 《반환》이요 하는 말들은 다 꿈에도 못 들어본 깔깔한 소리였지만 《우편물》이란 첫 머리말은 구면친구와도 같이 퍽 다정한 이름이였다.

재수 어머니의 자전거뒤꽁무니에 실려다니는 큼직한 상자옆구리에 바로 이런 이름이 씌여있었던것이다.

(나한테 무슨 편지가 왔나보지. 그걸 찾아가라구 이런 종이장을 보낸거야.)

하고 금동이는 흡족해서 생각하였다. 편지를 받을 사람한테는 미리 이런 쪽지를 보내는게라고 그는 자기나름으로 짐작하였다.

편지는 누가 보내는건지 통지서에는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만 적혀있었지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아무데도 없었다.

재수한테만 보이면 그 까닭도 단숨에 풀수 있었지만 금동이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다.

남한테 물어서 뭘 알아낸다는건 좀 멋적은 노릇이다.

이런것쯤이야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알아내야지.

금동이는 큰 마음을 먹고 필갑속에 《소포도착통지서》를 감추었다.

세시간이 끝났을 때 통지서의 비밀은 벌써 온 학급에 쫙 퍼졌다.

금동이가 밖에 나가 노는 사이에 입이 헤픈 재수가 들춰보고 와자자 소문을 돌리였던것이다.

《금동인 좋겠구나. 소포가 와서…》

금동이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누구인지 말하였다.

《좋겠다구? 그까짓 소포가 무슨 대단한거라구…》

금동이는 아직 소포라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거드름스럽게 받아넘기였다.

그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부러움을 더 자아내게 하였다.

아이들은 《소포도착통지서》라는 희한한 종이딱지를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금동이를 무슨 대단한 영웅처럼 쳐다보았다.

으쓱해진 금동이는 필갑속에서 《소포도착통지서》를 도로 꺼내여 버젓이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소포란건 먼데서 오니?》

세상에 나서 아직 기차구경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학급의 꼬마둥이 귀남이가 물었다.

《그럼. 먼데서 오지 않구. 기차가 실어다준단다.》

금동이는 마음내키는대로 또 알지 못하는 소리를 했다.

꼬마는 부러움을 참지 못하고 꿀꺽 침을 삼키였다.

아이들은 더 빽빽이 금동이를 에워쌋다.

《토요일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너한테서 매일 얼음보숭이(당시) 한개씩 받아내겠다구 했어.》

뒤늦게 교실에 들어선 재수가 금동이의 어깨우로 불쑥 턱을 내밀었다.

《엉터리! 여기 어디 얼음보숭이라는 말이 있니?》

이번에는 순일이의 말랑말랑한 코가 금동이의 반대쪽 어깨우에 와닿았다.

《20전이니까 얼음보숭이 한개지. 그리구… 다음주 목요일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소포를 보낸 사람한테 도루 돌려보낸다구 했어.》

재수는 《소포도착통지서》를 내두르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두 알아.》

금동이는 퉁명스레 한마디 쏘아붙이고 통지서를 와락 나꾸어챘다.

자기가 머리를 써서 풀려던 통지서의 뜻을 재수가 미리 다 말해버린것에 그는 화가 났던것이다. 참, 그러니 이제는 수수께끼같은 통지서를 두고 속궁리를 해보는 재미도 없어지고만셈이다.

그대신 금동이는 《소포》라는 글자를 만났던 곳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것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막힌 중앙우편국의 휑뎅그렁한 홀이였다.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치려고 우편국에 간 그날 금동이는 재수와 함께 홀안을 돌다가 유리간막이벽에서 《소포》라고 쓴 뼁끼글을 보았던것이다.

그때 취급자아주머니는 어떤 녀대학생이 가지고온 노끈으로 칭칭 동여맨 보꾸레미를 저울에 달고있었다.

재수는 그 보꾸레미를 소포라고 했다. 그러니 금동이한테도 그 보꾸레미가 온게 분명하였다.

(누가 보냈을가? 성천고모가 밤을 보냈을가? 원산이모가 말린 게살을 보냈을가?)

친척이 두개 소대도 더되는 금동이는 소포를 보낸 임자가 누구인지 암만해야 가늠할수 없었다.

그까짓것, 찾으면 알텐데 골을 써선 뭘해. 빨리 가서 찾기나 하자.

어른처럼 당당하게 《자, 소포를 주시오!》해야지. 그럼 온 우편국이 부러워서 날 쳐다볼테지.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 김향선생님은 금동이를 따로 불러다가 물었다.

《금동인 혼자서 소포를 찾을수 있나요?》

《찾을수 있습니다.》

금동이는 가슴을 쭉 펴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는 김향선생님이 소포통지서를 도로 달라고 할가봐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그걸 찾아서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주는 날이면 소포찾는 재미를 다 보는것이다.

《담임선생님이나 아버지, 어머니 없이 혼자서 찾을수 있단 말이지요?》

《예. 까짓거…》

《그럼 금동이를 믿어볼가요? 어디 한번 제힘으로 찾아보세요. 1학년생답게 당당히!…》

김향선생님은 1학년생들의 달리기경기때 아이들을 출발선에 내보내던것처럼 금동이를 슬쩍 교실밖으로 떠밀었다. 그리고는 홀에 나와 금동이가 층계를 구르며 내려가는 모양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와―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9호동아빠트아이들은 두말할것도 없고 경상동에 있는 아이들까지 한넝쿨에 열린 감자처럼 오롱조롱 금동이를 따라나섰다.

중앙우편국보다는 훨씬 작은 구역체신소의 좁다란 홀은 순식간에 1학년생 조무래기들로 꽉 찼다.

《그래, 네가 김금동이란 말이지?》

출입구로 들어오는 《소포도착통지서》를 까근까근히 뜯어본 취급자아주머니는 유리간막이 벽너머로 못미더워하는듯 한 눈길을 흘깃 던졌다.

《예.》

금동이의 입에서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여나왔다. 아주머니의 떠보는듯 한 말투에 기분이 뾰족해졌던것이다.

《학생증을 내놔.》

아주머니는 시치미를 뻑 따고 출입구밖으로 손까지 척 내밀었다. 그리고는 량옆에 앉아있는 직원들쪽을 향해 눈을 끔쩍하였다. 인민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없는 학생증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요 귀염둥이들이 이제 어떻게 대답을 하나 보자요 하는 눈치였다. 어른들만 줄창 찾아드는 체신소홀에 조꼬만 1학년생들이 나타난게 그 녀자한테는 무척 재롱스럽고 사랑스러워보이는 모양이였다.

송금을 맡아보는 아주머니도 전보를 맡아보는 처녀도 웬일인지 금동이쪽을 돌아보며 씨물씨물 웃었다.

금동이는 모자를 벗어 얼른 출납구안으로 들이밀었다.

《자요. 이 모자를 보면 안되나요?》

그러나 소포를 맡아보는 아주머니는 그 모자를 보는체도 안했다. 뾰족한 턱과 가늘사한 눈매만 봐도 여간만 깔끔한 아주머니가 아닌상싶었다.

그러나 금동이는 그 아주머니네 집에도 자기와 같은 1학년생이 있으며 그래서 그 녀자는 어디서나 일곱살내기들만 보면 그렇게 기뻐하고 우스개를 피우기 좋아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래, 이 애가 금동이가 확실하단 말이지?》

아주머니는 금동이의 량옆에 웅게중게 몰켜선 한개 분대쯤 되는 아이들을 향해 눈을 끔쩍하였다.

《옳아요! 나하구 같은 책상에 앉아요.》

소포를 주지 않을가봐 잔뜩 겁을 집어먹고있던 효남이가 출납구안으로 여무진 대답을 날려보냈다.

《우린 같은 아빠트에 있어요.》

재수도 한마디 덧붙이고 식은소리를 잘하는 동학이도 《이 앤 우리 축구팀 5번이예요.》 하고 벌쭉거리였다.

《자 봐요! 봐요! 김금동이라구 씌여있지 않아요.》

순일이가 금동이의 책가방에서 교과서와 학습장을 꺼내들고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그 책을 보는체도 않고 금동이의 손만 건너다보았다.

《이상두 하지. 내가 아는 김금동이는 손이 깨끗하다고 했는데.》

금동이의 손은 원주필잉크와 연필가루와 먼지가 얼럭덜럭 게발려서 지저분하였다.

바로 그 손때문에 여태 아주머니가 소포를 내주지 않고 딴전을 피웠다는것을 금동이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웃 아빠트의 공동수도칸에 가서 손을 씻고오는것을 보고서야 아주머니는 그에게 순순히 소포를 내주었다.

《금동이의 손이 깨끗해지니까 내 마음도 상쾌해지는구나. 두고보지. 손이 어지러우면 상점에서두 물건을 내주지 않을게다.》

아주머니의 말이였다.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만 손검열을 하나 했더니 체신소에서도 손을 보는구나. 우리 일이라면 참견 안하는 사람이 없구나. 왜 그럴가? 1학년생이라구 그럴가?)

소포를 안고 돌층계를 내려오면서 금동이는 자꾸 아주머니가 앉아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렇게도 깔끔하고 딱딱해보이던 아주머니의 눈과 강마른 턱이 얼마나 상냥하고 다정스러워보이는지…

체신소문턱을 나서자마자 아이들은 소포를 풀어보자고 금동이를 뚜장질했다. 금동이도 사실 보따리를 헤치고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좀 설핏한 대동문앞에 가서 소포를 풀어헤쳤다.

나무판대기로 만든 함뚜껑에는 파란 크레용으로

《금동이네 학급동무들에게

매바위골인민학교 1학년 1반 리차돌, 최인범, 김삼득》

이라는 글이 씌여있었다.

《솔방울을 보낸 아이들이야!》

하고 금동이가 말하자 아이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뭘 보냈을가? 우리 알아맞추기내기 하자.》

효남이가 이렇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어서 함을 열어보고싶어했지 그따위 내기같은건 생각지도 않았다.

손탁이 센 동학이가 우격다짐으로 뚜껑을 열어제꼈다.

함속에는 굵기가 가쯘한 노랗고 반질반질한 수수대들이 가득차있었다.

난생처음 그런것을 보는 아이들은 모두 눈이 퀭해졌다.

《금동아, 이건 뭐야?》

수수대를 한대 집어들고 킁킁 냄새를 맡던 순일이가 물었다.

《나두 몰라.》

《이건 뭘 하라구 보냈을가?》

《글쎄… 우리 편지를 읽어보자. 뭐라구 썼나.…》

금동이는 수수대우에 놓인 봉투속에서 빨각거리는 편지를 꺼내여 왕왕 소리내여 읽었다.

 

《금동이네 반 동무들에게

공작을 하는데 쓰라고 이 수수대를 보낸다.

안녕히!

1975년 10월 ×

리차돌, 최인범, 김삼득》

 

감동된 아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편지가 자꾸 돌았다.

《참 좋은 아이들인데!》

편지를 두돌기째 본 동학이가 입속말로 나직이 중얼거리였다.

매바위골아이들이 보낸 솔방울로 배를 만들던 그 공작시간에는 동학이도 10점(당시)을 맞았었다.

《우린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는데 이 애들은 두번씩이나…》

재수는 수수대에서 눈을 떼며 뒤머리를 썩썩 긁었다.

《얘들아, 우리두 매바위골아이들에게 무얼 좀 보내는게 어때?》

잠자코있던 금동이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보내자.》, 《보내자.》, 《보내자!》하고 떠들었다.

《뭘 보내면 좋을가?》

언제나 걱정부터 앞세우는 효남이가 고개를 기우뚱하고 금동이를 쳐다보았다.

《난 사탕을 보낼래.》

순일이가 맨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입밖에 내였다.

아이들은 그 말에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순일인 사탕밖에 몰라. 그 애들두 자기처럼 먹새퉁구리인줄 아나보지.》

빈정거리는 동학이의 말에 순일이는 발끈했다.

《그런데 넌 왜 아까 나보고 사탕 한알만 달랬니? 사탕처럼 맛있는게 어디 있니?》

《사탕이 뭐 평양에만 있는줄 알아? 그런걸 보내면 차돌이네가 골을 낸단 말이야.》

동학이도 제 고집으로 얼굴이 딩딩해졌다.

순일이는 사탕을 함부로 모욕하는 그의 말에 너무도 쓰거워서 더 시비를 걸지 않고 코방귀만 《흥.》 뀌였다.

《꽃씨를 보냈음 좋겠네.》

효남이는 자기 말이 순일이의 말처럼 퉁을 맞을가봐 약간 겁나하며 자신없이 《꽃씨》라는 말을 번졌다.

《꽃씨? 피, 녀자애들처럼…》

무엇을 보냈으면 좋을지 몰라서 땅에 금만 긋고있던 재수가 코살을 찡그리며 효남이를 돌아본다.

《금붕어!》

《원주필!》

《연필깔개!》

《바나나!》

《대동강숭어!》

금시 터지는 우박처럼 아이들의 입에서는 여러가지 물건이름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금동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든 물건들이 솔방울이나 수수대보다도 훨씬 시시껄렁해보였던것이다.

《무얼 보내면 좋을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짐을 쌌던 자루속에 수수대함을 다시 밀어넣었다.

《얘들아, 학교로 가자. 선생님한테 이 소포를 보여야지.》

《응, 그래.》

아이들은 대동문앞거리가 들썩하게 옥작복작 고아대면서 우르르 학교로 밀려갔다.

 

16. 탁아소에서

 

9호동아빠트 현관앞에서는 이른아침부터 아이들이 오골보골 끓고있었다. 꼬마들중에는 가방을 멘 아이도 있고 꽃삽을 쥔 아이도 있고 초물바구니나 법랑소랭이를 든 아이도 있다. 하나같이 눈정기가 또록또록하고 차림새가 말쑥한 아이들이다. 무슨 신명이 나는 일이 생겼는지 조무래기들은 입을 한데 모아 빨래줄에 앉은 제비들처럼 재잘거린다.

현관문을 드나들던 몇몇 아낙네들이 귀를 틀어막고 코살을 찡그리며 그들의 옆을 바삐 지나갔다.

그렇지만 너무 고아댄다고 그 애들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떠들지 않고서야 무슨 아이들이겠는가. 게다가 그 애들한테는 떠들어댈만 한 일이 생겼는데…

《아저씨, 지금 몇시나요?》

초물바구니의 밑굽에 비닐쪼박지를 깔고있던 금동이가 지나가는 청년을 보고 물었다.

《일곱시 오십칠분이다.》

청년은 시계의 문자판을 얼핏 내려다보고나서 쾌활하게 대답하였다.

《오십칠분! 이크,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얘들아, 이제는 학교로 떠나가지 않겠니?》

《응, 가자!》

아이들은 이야기를 뚝 그치고 금동이를 따라 아빠트마당을 떠났다. 그런데 그때 현관문에서 방금 뛰여나온 순일이가 그들을 향해 《서라, 서!…》하고 빽 고함을 질렀다.

모두들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응, 순일이로구나. 저 애 주머니에는 사탕이 가득할거야. 사탕을 쑤셔넣느라고 늦었지 뭐.》

헤식은 소리를 하지 않고서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동학이가 큰소리로 떠벌이였다. 그는 옆에 서있는 재수의 팔굽을 툭 치며 말을 더 하였다.

《얘들아, 모르는체 하고 그냥 가자. 저건 우릴 골려먹느라고 저러는거야. 자기하고 같이 가자고 우리를 멈춰세운거야.》

금동이는 그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내고 순일이를 맞받아 몇걸음 걸어갔다.

《순일아, 왜 그러니?》

《효남이가 야단났어!》

《야단나다니?》

《효동이한테 붙잡혔단 말이야. 어머니가 대성구역으로 가면서 효남이더러 효동이를 봐달라고 했다지 않아. 내가 가니깐 글쎄 눈물을 뚝뚝 떨구고있지 않겠니.》

순일이는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시늉을 하며 울상을 지었다. 금동이는 그때에야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늘 보던 효남이의 그 줄말무늬아닐론세타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일을 어쩐담? 한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같이 가기로 약속한 걸음을 효남이 없이 어떻게 간담?

탁아소 보육원도 아닌 효남이에게 그런 일을 맡기고 떠나간 효남이 어머니가 막 야속스럽다.

효동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짝바지를 입고 다니던 애인데 소문난 울보고 트집쟁이이다. 금년들어 겨우 네살이지만 그 애가 버둥질을 하며 떼를 쓸 때에는 일곱살난 효남이도 꼼짝 못하고 쩔쩔 맨다. 그 효동이한테 붙잡혔으니 효남이는 오늘 볼장을 다본 셈이다.

동무들축에 끼우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보개》가 된 효남이의 일이 금동이한테는 무척 측은하게 생각되였다.

《야단났구나!》

그는 걱정스럽게 짝패들을 둘러보았다.

동학이는 그 소리를 듣자 피씩하고 웃었다.

《야단나긴. 그 앤 집에서 <아이보개>질이나 하라지, <탁아소>질이나 하라지. 갔다간 또 <그러다 집에 못 가믄 어쩌니!> …》

그 애는 농장벌에 갔을 때 효남이가 집에 갈 걱정때문에 훌쩍훌쩍 울던 흉내를 냈다.

금동이는 그게 못마땅해서 눈을 흘기였다. 그리고는 여무지게 말했다.

《그래두 데리구 가야 해. 효남이를 두고 가면 안돼!》

순일이도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응, 그래. 우리만 가면 안돼.》

《그럼 효동이는 어쩌구? <탁아소>는 어쩌구?》

동학이는 골을 잘 내는 순일이의 화를 돋구느라고 머리를 이쪽저쪽 갸우뚱거리였다.

순일이는 약이 올라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아무 대답도 못하고 눈알을 팽팽 굴리기만 하였다.

정말 동학이의 그 물음에는 금동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효남이의 누나 효숙이나 효남이의 어머니도 잘 다루지 못하는 효동이를 서뿔리 데리고갈수도 없고 어느 이웃에 선뜻 맡길수도 없는노릇이다.

(어떻게 할가?)

금동이는 버릇처럼 고개를 한옆으로 기웃하고 생각에 잠기였다.

순일이와 재수, 주섭이도 생각을 굴리느라고 눈들을 슴벅거리였다. 아이들은 난생처음으로 풀기 어려운 골치거리와 맞다든것이다.

이건 정말 1학년생들의 머리로 풀기에는 숨이 막히는 문제이다.

《금동아, 남혁이네 집에다 맡기면 어떨가?》

여태 아무말에도 참견 안하던 재수가 금동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남혁이란 효남이네 이웃집에 있는 유치원생이다. 순일이는 그 소리를 듣자 머리를 흔들었다.

《그 집엔 열쇠가 잠겼어.》

《그럼 성순이네 집에 맡기지 뭐.》

《그 울보를 누가 봐주겠대?》

《정말 그렇구나. 참참참,… 울보가 아니면 좋겠는데…》

재수는 맥을 놓고 한옆에 물러섰다.

동학이는 그것보라는듯 아이들앞에 혀를 쑥 내밀어보이였다.

《냠냠냠, 효동이… 냠냠냠, 효남이…》

그때 잠자코있던 금동이가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그럼 효동이를 탁아소에 맡기자.》

《탁아소》라는 말에 아이들은 다같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동학이는 《쳇!》하고 코웃음을 쳤다.

《탁아소엔 어림두 없어. 일요일에 뭐 애기들을 받아준다던?》

《받아줄지두 몰라.》

《탁아소어머니들이 없는데두.》

《탁아소어머니가 없어두 경비를 서는 어머니가 있지 않니.》

《쳇. 그 어머니한테 이제 효동이를 봐달라고 이야기해보지. 코방귀를 뀌지 않나.》

《그래도. 난 말해볼테다.》

금동이는 아이들을 길가에 세워놓고 효남이네 집으로 뛰여갔다.

때마침 효남이가 효동이를 데리고 층계를 내리고있었다.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몸집이 옹골찬 효동이는 발을 옮겨디딜 때마다 몸을 량옆으로 기우뚱거리며 《어디까지 왔니》를 우렁차게 불러댔다.

아이들은 그 애를 가락지처럼 빙 둘러쌌다. 동학이가 두손으로 눈까풀을 올리고 승냥이가 으르렁대는 모양을 냈지만 효동이는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발길질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순일이는 효남이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무슨 귀속말을 하였다.

효동이를 탁아소에 맡기게 되니 너무 걱정말라고 안심시키는것 같았다.

효남이는 그제사 밝은 얼굴색을 지으며 해죽이 웃었다.

《얘들아, 그럼 탁아소로 가자.》

금동이와 효남이는 량쪽에서 효동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 앞장서서 탁아소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따라오던 재수가 금동이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는것이였다.

《탁아소로 들어갈 땐 효동이를 업어야 해. 업혀야 애기지 제발로 걸어가면 경비원어머니가 봐줄 생각을 안한단 말이야.》

참 재수의 머리는 베아링처럼 잘도 돌아간다.

금동이는 자기가 먼저 그런걸 생각지 못하고 짝패가 앞질러 그런 생각을 한것이 좀 샘이 나기는 했지만 벙싯 웃음을 짓지 않을수가 없었다.

눈치빠른 효남이는 땅에 무릎을 접고 앉아 얼른 동생을 둘쳐업었다. 그런데 효동이의 실한 몸은 인차 효남이의 엉뎅이밑에 건들건들 내리드리웠다.

효남이의 힘이 약한탓이였다.

그 모양을 보고있던 동학이가 때를 만났다는듯이 그들의 곁으로 뿌르르 다가왔다. 뼈가 굵고 힘이 남보다 곱절이나 센 그애는 제 힘을 뽐내는 일이라면 늘 몸을 아끼지 않았다.

《효남인 로력영웅이 못되겠다. 동생두 못업으면서 어떻게 로력영웅이 되겠니.》

그는 효남이한테서 효동이를 떼내여 가볍게 둘쳐업었다.

아이들은 그게 너무 부러워서 입을 하―벌리고 동학이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동학이와 효동이를 앞세우고 탁아소정문으로 들어섰다.

마당을 쓸던 직일보육원이 비질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조무래기들을 바라보았다. 금동이어머니만큼 나이가 들어보이는 그 보육원의 표정은 웬일인지 무척 푸르딩딩해보였다.

아이들은 그 보육원의 눈매가 너무도 매서운것 같아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어귀에서 주춤주춤하였다.

금동이는 자기가 이 탁아소를 다닐 때 낮은반을 맡았던 이전날의 보육원을 인차 알아보았다.

그 보육원은 목청이 남보다 특별히 쨍쨍한것때문에 늘 아이들의 주의를 끌었었다. 아무리 검질기게 울던 애기도 그 녀자의 팔에만 안기면 울음을 뚝 그치군 하였다.

그러나 철이 좀 든 높은반의 아이들은 그를 무서워하였다.

그 녀자한테는 보육원들의 애를 말리는 말썽꾸레기들앞에서 이따금씩 눈을 흡뜨는 버릇이 있었다. 그럴 때면 눈의 검은 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고 흰 동자만 남는데 아이들은 그게 무서워서 그 보육원의 곁을 피해 멀리로 달아나는것이였다.

금동이는 그런 어머니가 효동이를 받아줄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조금도 기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보육원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들 왔니? 왜들 남의 탁아소에 들어오는가 말이야?》

보육원은 미리부터 그런 욕을 준비하고나 있었던것처럼 퉁명스레 물었다. 그리고는 금동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숨이 차게 따지였다.

《너희들이 방금전에 저 유리를 마사먹었지?》

《아니요.》

《아니긴, 그래 너희들이 여기서 뽈을 차다가 창문을 깨먹고 도망치지 않았단 말이냐? 못된 녀석들, 내가 다 봤는데두…》

《우린 몰라요. 여기서 뽈을 차지 않았어요.》

금동이는 픽―하고 웃었다. 으름장 한번에 1학년생들의 속뽑이를 하려고 달려드는 보육원의 얼렁수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게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는 어떤 애들이 창유리를 마사놓고 도망친것때문에 효동이를 맡기려던 일이 튀지 않겠나싶어 속이 뒤숭숭해났다.

보육원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금 따짐질을 계속하였다.

《그럼 왜 여기 왔니? 나한테 뺏긴 축구공을 찾으로 왔다는걸 내가 모를줄 아니. 그래 저게 너희들 공이 아니란 말이냐?》

그 녀자는 애기들이 나와 놀군 하는 마루쪽을 손짓하였다.

그 마루 한끝에 정말 축구공이 있긴 있었다.

《우린 저런 가죽뽈을 차지 않구 고무공을 차요.》

잔뜩 주눅이 들어 숨도 크게 못 쉬고있는 애들속에서 불쑥 순일이가 튕겨나와 금동이를 응원하였다. 그 애는 무슨 갑작생각이 들었던지 신을 벗고 자기 발을 툭툭 쳐보이였다.

《이것 봐요. 요렇게 쪼꼬만 발로 축구공을 차나요? 한번만 차면 발이 빵떡처럼 팅팅 부어나겠는데…》

《옳아요. 그건 어떤 중학생들의 뽈일거예요. 우리보고 성을 내는 사이에 그 형님들은 이 마당을 살펴보며 키득키득 웃을거예요.》

효동이를 업고 엉거주춤 서있던 동학이도 용기를 내여 한마디 하였다.

보육원은 아이들의 말이 그럴상싶게 들리는지 잠자코 있다가 불쑥 트집을 걸었다.

《그럼 너희들은 무슨 일로 여기에 쓸어왔니? 청하지도 않았는데…》

《애기를 맡기려구 왔어요.》

금동이는 속에서 웃음집이 자꾸 흔들흔들 했지만 꾹 참고 보육원을 쳐다보았다.

뚝뚝하고 어둡던 보육원의 얼굴이 마침내 밝은 빛으로 풀어졌다.

《애기? 아니, 너희들에게도 애기가 있단 말이냐?》

《있지 않구요. 저거 아니나요.》

금동이는 동학이의 등에 업힌 효동이를 가리켰다.

보육원이 눈길이 그리로 돌아갔다.

효동이는 장한듯이 고개를 잔뜩 뽑아들고 알지 못할 소리를 웅얼웅얼하면서 두다리를 연송 건들거리였다. 동학이가 아무리 머리를 틀어박으라고 끄집어도 그 애는 들은체를 안했다.

《일요일에는 아이들을 안 받는다.》

보육원은 마당비를 집어들고 시들하게 말했다.

금동이는 그 녀자가 자기네 청을 들어주지 않고 훌쩍 돌아서버릴가봐 얼른 말을 걸었다.

《탁아소어머니, 오후 두시까지만 봐줘요. 그담엔 우리가 데리러 와요.》

《애어머닌 어디 갔게?》

《여기서 보이지 않는 먼데… 먼데루 갔어요. 너무 멀어서 뻐스로 가는데야요.》

《그럼 너희들이 보려무나. 너희들이 애기를 보면 못쓰니?》

《우리두 먼데루 가지요 뭐.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요.》

《급한 일? 어떤 급한 일인지 이야기해봐.》

보육원은 《흥, 너희들이 누굴 감히 속이려구.》하는듯 한 눈찌로 아이들을 골고루 쏘아보았다. 거짓말을 하거나 허튼 수작을 하면 당장 마당에서 쫓아버리기라도 할것 같은 기세였다.

무슨 말부터 하면 보육원이 아이를 선뜻 받아주겠는지 가늠할수 없어 금동이가 잠시 어물어물하고있을 때 동학이가 한발 나서서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사판을 만들기로 내기했지요 뭐. 사판에는 산도 있고 밭도 있지요. 산이나 밭을 뭘로 만드는지 아나요. 종이를 가위로 썰어서 풀에 적신걸루.》

보육원은 꼬리대가리가 없는 그의 말을 듣기가 답답한듯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네 얘기를 듣구는 통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수 없구나. 다른 애가 좀 이야기해봐라.》

그 어머니는 아이들을 쭉 둘러보다가 금동이한테서 눈길을 멈추었다.

금동이는 보육원한테 할 말을 고르느라고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처음부터 말하라요? 이어서 말하라요?》

《처음이든 중간이든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해라.》

금동이의 머리에는 말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촌에 있는 매바위골학교 아이들한테서 공작시간에 쓰라구 우리한테루 수수대랑 솔방울이랑 왔어요. 우린 너무 고마와서 그 애들한테 만경대사판을 만들어보내기로 의논했지요 뭐. 첨엔 사판에 나오는 산이나 밭을 풀에 적신 종이보라를 빚어 만들었어요. 그런데 우린 그게 맘에 안들겠지요. 종이보라보다도 만경대의 흙으로 만들면 매바위골아이들이 더 좋아할게 아니나요. 그래서 오늘 우린 만경대로 간답니다. 흙을 가져와야지요. 학교에 여덟시반까지 모여서 선생님과 같이 떠난다구 했어요. 모두 가는데 효남이만은 동생때문에 글쎄… 효남이를 두고 우리만 어떻게 가나요.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어려울 때일수록 동무를 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구 했는데…》

금동이는 불쑥 말을 끊고 보육원을 쳐다보았다.

보육원은 마루란간에 마당비를 기대여놓고 한참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 투실투실한 팔을 소리없이 뻗치여 한아이한아이 자기앞으로 끌어당기는것이였다.

크고 어글어글한 그 녀자의 눈에는 물기같은것이 핑 고이였다.

《모두들 기특하다. 매바위골아이들두… 너희들두… 너희들중에 혹시 우리 탁아소를 다닌 아이는 없니?》

《있어요. 나하고 효남이가 옛날에 이 탁아소를 다녔어요. 우린 어머니를 잘 알아요.》

금동이가 이렇게 말하자 보육원은 그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미간을 모으고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실머리가 잘 잡히지 않는듯 인차 채머리를 흔들었다.

그 녀자는 한 아이씩 금동이와 효남이를 량팔에 끌어안고 한동안 정문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육원의 눈앞에는 그 정문을 거쳐 유치원으로 올라간 수백수천명 아이들의 얼굴이 앞을 다투어 떠오르는것이였다. 그들중에는 이름을 아는 아이도 있고 모르는 아이도 있다.

정이 푹 들었던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정이 덜 들었던 아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보육원들이 하나같이 치마폭에 감싸안고 요람에 태워 흔들면서 애지중지 키워온 아이들이다. 그들중 많은 아이들은 벌써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거나 건설장에서 일하거나 인민군대가 되여 조국을 지키고있다.

금동이처럼 11년제의무교육의 첫 대문에 들어선 1학년생들도 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탁아소를 나선 후에도 보육원은 오래오래 그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몰래 한숨을 짓고 그들앞에 행복과 영광이 차례지면 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탁아소의 밥을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먼 후날에도 보육원들을 만나면 정에 넘쳐 《어머니!》하고 따뜻이 불러주는것이다.

보육원은 《어머니!》라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기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자기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자라난 아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하는 때이다.

보육원은 지금 바로 금동이네 얼굴에서 그런 마음을 읽고있는것이였다.

(이 애들이 어느새 이렇게 헴이 들었을가? 우리 일곱살내기들이 정말 잘 영글었는데!)

그 녀자는 이런 생각에 잠겨 금동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다정스레 쓸어내리였다. 비뚤어진 옷깃도 바로 여며주고 옷섶사이로 기여나온 혁띠끄트머리도 고리에 정히 꿰여주었다.

《장하다. 애들이 자라서 모두 너희들처럼만 된다면 내 일을 해도 힘들것 같지 않구나.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이 탁아소를 떠나지 않겠다. 어서 그 애를 맡기고 만경대로 가거라.》

그 녀자는 동학이한테서 효동이를 닁큼 받아들고 공중높이 들어올린 다음 서너바퀴 제자리돌이를 하였다.

효동이는 좋아서 깨드득깨드득 웃었다.

아이들이 짝짜그르 손벽을 치며 또아리모양으로 보육원을 에워쌌다. 그들의 머리우에서 방울을 굴리는것 같은 효동이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주체72(1983)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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