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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10호에 실린 글
◇동 화◇
안 경 운
어느 여름날이였습니다.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오고있는 아침. 아직 누구도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 아름다운 숲속 어디에선가 도란도란 말소리가 울리고있었습니다. 그 말소리에 나무잎우에서 온밤 귀뚤귀뚤 노래를 부르다 금방 잠들었던 귀뚜라미가 눈을 뜨고 귀를 강구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이슬방울이였습니다. 밤사이 한송이의 모란꽃에서 생겨난 두 이슬방울이 꽃잎우에서 가슴부푸는 희망에 대해서 서로 정답게 이야기하고있었습니다. 《야, 빨리 날이 밝았으면…》 《야, 빨리 소원을 이루었으면…》 맑고맑은 두 이슬방울을 보느라니 귀뚜라미도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맑아진 기분으로 물었습니다. 《요 귀염둥이들, 너희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어냐?》 두 이슬방울은 낯선 귀뚜라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희망을 즐거이 터놓았습니다. 《난 해님의 빛에 금빛으로 몸을 반짝이고싶어요.》 참슬이라고 부르는 이슬방울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옥슬이라고 부르는 이슬방울도 질세라 말했습니다. 《난 은빛으로 몸을 반짝이고싶어요.》 귀뚜라미는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나서 말했습니다. 《그래그래. 너희들이야 꿈꾸는대로 소원을 이룰수 있지.》 귀뚜라미는 웬일인지 입을 다물고있다가 참슬이와 옥슬이에게 말했습니다. 《금빛도 좋고 은빛도 좋은데 무엇을 위해 반짝이는가 하는게 더 중요한거란다.》 귀뚜라미의 말에 대뜸 마음이 끌린 두 이슬방울은 목소리를 합쳐 물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 반짝일가요?》 귀뚜라미는 희망에 넘쳐있는 이슬방울들을 사랑스레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제가 태여난 품을 귀중히 여기거라. 그 품을 빛내이거라.》 《야 품, 우리가 태여난 품!》 두 이슬방울은 두손을 모아잡고 즐거이 되뇌였습니다. 세상에 자기가 태여난 그 품보다 더 소중하고 행복한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까 말한것처럼 그들은 모란꽃의 숨결에서 태여났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품은 다름아닌 모란꽃인것입니다. 두 이슬방울은 새삼스러이 모란꽃을 돌아보았습니다. 순간 그들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프고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모란꽃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기때문이였습니다. 너무도 생기가 없었기때문이였습니다. 활짝 쳐들려야 할 꽃잎들이 희여스름히 빛갈을 잃고 오무러뜨려있었고 잎마저도 푸른색을 잃은채 맥없이 늘어뜨려져있었습니다. (야 어쩜?…) 참슬이와 옥슬이는 자기들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기를 바랐던것입니다. 아름다운 이슬방울들을 낳은 그 어머니가 말입니다. 그들의 심정을 넘겨짚은듯 귀뚜라미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엄만 이젠 늙었단다. 그래서 이 모양이 되였단다. 생기를 주거라. 아름다움을 주거라. 그것이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것이란다.》 두 이슬방울은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꼭 그렇게 하겠어요.》 귀뚜라미는 그들을 사랑스레 바라보다가 고개를 크게 끄떡거리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참슬이와 옥슬이는 자기들의 할바를 깨우쳐준 고마운 귀뚜라미를 눈으로 바래우며 서로 속생각을 정답게 주고받았습니다.
참슬이가 하는 말이였습니다. 《난 엄마에게 생기를 주고싶어. 웃음을 주고싶어.》 옥슬이도 뒤를 이어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꼭 엄마에게 기쁨을 주자.》 두 이슬방울은 서로 손을 꼭 잡은채 이제 해님이 떠오를 동쪽하늘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야, 어서 해님이 떠올랐으면…》 《야, 어서 해님의 빛을 받았으면…》 바로 그럴 때였습니다. 그들이 있는 꽃나무밑에서 문득 웅글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허, 천진한것들이로군. 뭐 해가 빨리 떠오르면 좋겠다구?》 깜짝 놀란 참슬이와 옥슬이가 내려다보니 발밑에 물웅뎅이가 있었는데 거기에 고여있는 물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던것입니다. 두 이슬방울은 오싹 소름이 끼쳐와 눈을 꼭감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낯이 찡그려지는 흐린 물이였던것입니다. 《거긴 누구나요?》 가까스로 용기를 낸 참슬이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웅뎅이물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허허, 제 집안도 몰라보는군. 보다싶이 난 너희들과 한형제란다.》 《우리와 한형제라구요? 거짓말말아요.》 참슬이가 억이 막힌듯 쏘아붙였습니다. 옥슬이도 웅뎅이물에게 눈총을 쏘았습니다. 구슬처럼 아름다운 자기네와 한형제라니 어처구니가 없었지요. 《그건 그렇구, 도대체 너희들이 해가 솟기를 기다리는 까닭은 뭐냐?》 참슬이와 옥슬이의 눈총에는 아랑곳없이 웅뎅이물은 늠실거리며 넌지시 물었습니다. 《해님의 빛을 받아 아름다운 금빛, 은빛이 되자는거지요.》 참슬이가 여전히 온곱지 않게 대꾸했습니다. 《뭐 금빛, 은빛? 그게 되여선 또 뭘하려구?》 웅뎅이물이 지꿎게 캐여물었습니다. 《어머니꽃나무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려구요.》 옥슬이가 두말할것도 없다는듯 잘라말했습니다. 그러자 웅뎅이물이 한심하다는듯 철썩거렸습니다. 《원, 철부지들이라니까. 해가 떠오르면 제죽는줄도 모르고…》 《뭐라구요? 우리가 어떻게 된다구요?》 참슬이와 옥슬이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말에 그들은 자기들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웅뎅이물이 코웃음치며 빈정거렸습니다. 《해빛에 말라버린단 말이야. 이젠 알겠니?》 두 이슬방울은 억이 막힌듯 서로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가슴이 철렁해서였습니다. 속이 후두두 떨려나서였습니다. 금구슬, 은구슬마냥 어머니꽃나무의 모습에 아름다운 빛을 주고 생기를 줄 생각만 했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한 그들이였습니다. 가슴뿌듯이 느껴보던 환희가 사라졌습니다. 고운 꿈에 그늘이 비꼈습니다.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금방 태여난 우리들인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밑에서 웅뎅이물이 능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그래서 너희들이 천진하다고 나무람 했던거야. 우리 물한테 그것보다 더 큰일이 어데 있겠니?》 《그럼 무슨 방도가 없을가요?》 참슬이와 옥슬이는 애절한 눈빛을 담고 웅뎅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시 그한테서 귀가 번쩍 뜨이는 수라도 생길상 싶어서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자기들의 꿈이 소중했던것입니다. (흥, 그러면 그럴테지.) 웅뎅이물은 못내 흐뭇해졌습니다. 참슬이와 옥슬이에게서 그런 눈길을 받는것이 더없이 흡족해났습니다. 웅뎅이물은 뒤채듯 몸을 움씰거리고나서 대꾸했습니다. 《정 방도가 없는건 아니지.》 《그게 뭐나요?》 참슬이가 다우쳐물었습니다. 옥슬이도 귀를 강구었습니다. 《그건 아주 간단한건데…》 웅뎅이물은 비밀이라도 터놓듯 말끝을 질질 끌더니 두손을 내밀어 그들을 끄당겨안는 시늉을 해보였습니다. 《너희들이 내 품에 들어오는거란다. 나와 함께 있는거란다. 그래야 말라버릴 걱정이 없을게 아니냐.》 《아, 아니. 그건 안돼요.》 참슬이가 뒤걸음쳤습니다. 옥슬이가 흠칫 몸을 떨었습니다. 시커먼 웅뎅이물과 함께 있는다는것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였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이슬방울들인 자기들이 말입니다. 이제 구슬빛이 되려는 자기들이 말입니다. 《글쎄, 그건 너희들의 생각대로 하려무나. 난 그저 같은 물로서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지.》 웅뎅이물은 늠씰 기지개를 켜고나서 상관하지 않겠다는듯 짐짓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아, 어떻게 하면 좋을가?) 참슬이는 자기들의 처지가 슬펐습니다. 이슬방울로 태여난것이 슬펐습니다. 《야, 어떻게 하면 좋담?…》 참슬이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습니다. 《호―》 옥슬이도 한숨이 새여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습니다. 동쪽하늘이 점차 붉어지고있었습니다. 해님이 떠오를 차비를 서두르고있었습니다. 참슬이의 얼굴이 까맣게 질려갔습니다. 절망의 빛이 한층 더 짙어갔습니다. 《옥슬아, 어떻게 할가?…》 참슬이가 애원에 찬 눈길로 옥슬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떻게 한다는건?…》 옥슬이가 놀랍게 참슬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참슬이가 중얼거리듯 내뱉았습니다. 《인차 말라버릴수야 없지 않니?》 《그럼 너 웅뎅이물에?!》 옥슬이가 놀란듯 물었습니다. 참슬이가 하고있는 생각이 겁났습니다. 그가 내뱉으려는 말이 겁났습니다. 《참슬아, 그건 안돼, 그래선 안돼.》 옥슬이는 참슬이의 손을 안타깝게 흔들었습니다. 《다른 방도야 없지 않니?》 참슬이가 머리를 저었습니다. 옥슬이도 머리를 저었습니다. 《아니, 그러지 마. 우릴 낳아준 어머니꽃나무를 위해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빛이 되자고 약속하지 않았니.》 《그러나 난… 인차 사라지기는 싫어.》 참슬이는 고집스레 되뇌였습니다. 《허허, 그렇구말구. 한번 태여났으면 뭐니뭐니해도 오래 살고볼판이지…》 눈을 슬며시 감고 잠자코 그들의 말을 엿듣고있던 웅뎅이물이 참슬이를 부추겼습니다. 《입다물어. 너처럼 살바엔 차라리 태여나지 않는것보다 못한거야.》 옥슬이가 쏘아붙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날은 희붐히 밝아왔습니다. 불그스레한 동쪽하늘에서 해님이 머리를 내여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참슬이가 더 말릴 사이없이 물웅뎅이에 곤두박히듯 뚤렁 떨어져내렸습니다. 옥슬이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앗! 참슬아.》 하지만 때늦은 일이였습니다. 참슬이는 시커먼 물웅뎅이속에서 이미 제 고운 모습을 잃은 뒤였습니다. 웅뎅이물이 너털웃음을 쳤습니다. 《하하하, 또 한방울의 물이 생겼으니 그만큼 내 명이 오래 가겠군.》 해님이 드디여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대지가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울창한 숲이 금빛으로 빛났습니다. 두손을 모두어잡은 옥슬이가 환희에 넘친 눈길로 해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간절히 속삭이였습니다. 《저에게 빛을 주세요. 금구슬빛이 되고싶어요. 은구슬빛이 되고싶어요.》 옥슬이의 눈가에는 소원의 눈물이 반짝이고있었습니다. 《어머니꽃나무에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빛을 얹고싶어요.》 해님을 향해 두손을 활짝 펼친 옥슬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왔습니다. 해님이 따사롭게 웃었습니다. 환하게 웃었습니다. 옥슬이의 소원을 알아본것이였습니다. 하늘에서 눈부신 빛살 하나가 해님의 손에 들려 옥슬이에게로 와닿았습니다. 반짝! 오색령롱한 빛이 옥슬이의 몸에서 빛났습니다. 금빛은빛이 그의 몸에서 부서져내렸습니다. 옥슬이는 금빛은빛을 안고 모란꽃송이의 꽃잎에 얼굴을 비볐습니다. 《엄마, 웃으세요.》 옥슬이의 간절한 마음을 안고 모란꽃이 활짝 웃었습니다. 옆에 서서 옥슬이의 기특한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봇나무며 이깔나무들이 감동의 눈물인양 무수한 이슬방울들을 후두두 떨구어주었습니다. 그 이슬방울들을 머금고 잎새들도 생기를 띠였습니다. 옥슬이가 찾아준 젊음을 안고 어머니꽃나무가 황홀히 빛났습니다. 울창한 수림속에 어머니꽃나무가 풍기는 그윽한 향기가 멀리멀리 퍼져갔습니다. 옥슬이는 그후에도 겨울이면 흰눈이 되여 어머니꽃나무의 뿌리를 덮어주고 봄이면 달디단 약비가 되여 어머니꽃나무에 젊음을 더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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