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9호에 실린 글

 

  □중편소설

 

      

 

(제6회)

                        

                                                           김  정

 

13.  큰 심부름

 

따르릉… 따르릉…

소리는 소리인데 무슨 소리인지 알수 없었다.

무슨 소리인지 자꾸 자지러지게 울렸다.

(무슨 소릴가? 재수네 갓난애기 울음소리가 아닐가? 에이참, 시끄럽게두 우네.)

금동이는 잠속에서 입을 쩝쩝 다시였다. 갖풀로 단단히 땜질을 해놓은것 같은 한쪽눈귀가 게슴츠레 열렸다가 다시 스르르 맥없이 닫혀졌다. 두눈섭끝이 가운데로 좁혀들고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그는 머리우로 이불을 휘딱 끄집어당기였다.

그러나 얄궂은 따르릉소리는 아까보다 더 요란하고 더 성가시게 그의 귀청을 건드렸다.

(이건 갓난애기가 아니라 매미로구나. 요거 혼나봐라.)

금동이는 결이 바짝 나서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이 으스러지게 그의 팔을 덥석 틀어잡았다.

《음!… 아!…》

금동이는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이불을 차던졌다.

방금 면도질을 한듯 수염티가 푸릿푸릿한 아버지의 둥글넙적한 얼굴이 그를 굽어보고있었다.

향긋한 《모란》비누냄새와 면도크림냄새, 머리기름냄새가 물큰 코를 찔렀다. 구멍이 숭숭 뚫린 눈처럼 하얀 런닝샤쯔는 굵은 힘살이 울근불근한 몸에 휘감기듯이 착 달라붙었다.

《아버지!》

금동이는 벌떡 뛰여일어나 아버지의 널직한 어깨에 와락 매달리였다. 그는 반달령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어제아침처럼 그렇게 반가와했다.

인제는 잔소리가 많은 어머니도 그에게 《게으름뱅이》니 《굴레벗은 송아지》니 《애꾼》이니 하는 어마어마한 딱지들을 함부로 붙이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착실히 하라면서 밤 12시까지 책상앞에 억지로 붙들어 매두지도 않을것이다. 아버지가 그런것을 싫어하니까.

허가없는 려행을 한것때문에 금동이가 매일같이 《메주》를 먹고있는 때에 아버지는 알맞추 잘 돌아왔다. 참 좋다!

벌써 이틀째나 아버지는 《모란봉》표 탁상시계의 종으로 이렇게 금동이를 깨운다. 어머니같으면 늦잠을 잔다고 냅다 짜증만 낼텐데…

《넌 무슨 잠꼬대가 그리도 많니?》

아버지는 목에 마구 휘감기는 금동이를 무릎앞에 들어내리였다. 그리고는 또 물었다.

《꿈에 뭘 보고 〈저기! 저기!〉했니?》

《축포보고 그랬어요. 하늘에 빨간 불, 노란 불, 파란 불이 가득 켜졌는데 보라색불꽃 한개가 내앞으로 내려오겠지요. 꽃보다두 더 곱게 생긴거야요. 고걸 잡자구 막 손을 내미는데 〈따르릉… 따르릉…〉자전거가 내앞으로 지나가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 불꽃을 놓치고 말았지요 뭐. 엥이, 참 분해죽겠네.》

《그러니까 시계종소리가 꿈에 자전거종소리로 들렸단 말이지?》

아버지는 금동이의 잔등팍을 철썩 두드리며 껄껄껄 웃었다.

책장을 정돈하고있던 금석이도 웃느라고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였다.

그때에야 금동이는 자기의 베개옆에 놓인 탁상시계를 보고 씽긋 웃었다. 전에도 그는 이 장난꾸러기 꼬마시계때문에 수업종이 울리는 교실로 헐레벌떡 달려들어가다가 발을 곱디디여 허궁 나가넘어지는 꿈을 꾼적이 있었던것이다.

시계는 아침 여섯시 오분을 가리키고있었다.

금동이가 늦잠을 잘가봐 태엽을 주어 머리맡에 또 놓아둔것이 분명하였다.

아버지는 량해하는듯 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창문밖으로 눈길을 보냈다.

《좀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그 불꽃을 주었을걸 그랬구나. 저기 저 은행나무가지에 걸린걸 재수가 벌써 따가더라. 다섯시 오십분쯤해서.〈너 왜 남의 불꽃을 따가니? 그건 금동이건데.〉하고 말하니까 그 앤 〈먼저 따가는게 임자지요 뭐. 금동인 잠이나 실컷 자라지요. 잠꾸러기한텐 아무것도 차례 안진다구 했어요!〉이런단 말이야. 내 원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처구니가 없어하는 눈치가 바늘눈만큼도 없었다.

금동이는 귀바퀴가 닭의 볏처럼 빨개졌다.

아버지가 재수를 꾸짖는척 하면서 실상은 늦잠잔 자기를 타이른다는것을 눈치챘던것이다.

《아빠트옥상에랑 국제려관뒤에랑 길바닥에랑 숱한 불구슬이 떨어졌다. 이제 나가두 아마 한되박은 문제없이 주을수 있을게다. 어서 일어나거라.》

금동이는 아버지의 말이 강짜 거짓말인줄을 알면서도 얼른 일어나 이불을 갰다. 아버지의 마음을 언짢게 해주고싶지 않아서였다.

(아버지가 오더니 방안이 더 환해지는구나.)

그는 낯선 방에라도 들어선것처럼 뚜릿뚜릿 사방을 둘러보았다.

원탁우의 화분통안에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차돌들이 촘촘히 깔리였고 반달령에서 떠가지고온 애기고수머리 버드나무화분이 새로 놓이였다. 원탁밑의 커다란 양철초롱속에는 매바위골마을 아이들이 보낸 솔방울이 그득차있었다.

어항 바깥벽에서는 말간 물방울들이 구슬처럼 굴러내리였다.

아버지가 어항의 물을 갈아댄 모양이였다.

멋쟁이금붕어는 금동이를 내다보며 (저 늦잠꾸러기가 이불밑에서 기여나온걸 보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하는듯 아가미를 움지럭움지럭했다.

아침나들이를 떠나는 이웃집 비둘기의 은빛날개가 창문밖에서 번쩍 빛났다.

(모두 나보다 먼저 일어났구나.)

금동이는 창피한 생각이 들어 시계를 슬쩍 치워버리였다.

《금동이, 너 4월 15일날 아버지랑 같이 꽃배를 타던 대동강정박장이 생각나니?》

편지종이우에 부리나케 펜을 놀리던 아버지가 책상앞에서 몸을 돌이켰다.

《예, 생각나요. 유보도에 있어요.》

금동이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신이 나서 떠들었다.

《거기 가면 유보도걸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가 계실게다. 지금 곧 그 아저씨한테 가서 이 쪽지하구 책을 전해주어라.》

아버지는 편지지밑에 받치였던 두툼한 책을 금동이앞에 내밀었다. 《식물도감》이라는 책이였다.

《어떻게 생긴 아저씨나요?》

《얼굴색이 검숭검숭하고 광대뼈가 두드러지구 목에 종처자리가 있는 주먹코아저씨야.》

《응, 주먹코아저씨. 나두 알아요.》

금동이는 한달에 한두번씩 아버지한테 놀러다니군 하던 그 주먹코아저씨를 잘 안다.

김기종이라고 부르는 그 화가아저씨는 미술대학을 다니던 그때부터 아버지의 단골손님으로 되여 금동이네 집에 당당하게 드나들었다.

나이가 스무살밖에 안되는 새파란 대학생이 어떻게 두 아이를 가진 아버지의 친구가 될수 있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몰랐다. 금동이한테는 그게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어쨌든 화가는 자기보다 나이를 열한살이나 더 먹은 아버지와 장기도 두었고 무슨 약속도 하였으며 팔레스티나며 종의 기원이며 록색혁명에 대한 문제를 내걸고 론쟁도 하였다.

그 아저씨한테 가는 심부름이라면 정말 해볼만도 하였다.

《아버지, 내 그럼 갔다와요.》

금동이는 성수가 나서 깡충거리며 돌아갔다. 난생처음 그는 심부름이라는걸 해보게 된것이다. 물론 전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맡기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일거리의 많은 몫은 재털이를 가져오라든가 스위치를 끄라든가 장판에 떨어진 밥알을 주으라는 등 입에 올리기도 창피스런 그런 시시한것들뿐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국어교과서보다 부피가 다섯배나 더 큰 《식물도감》과 쪽지편지를 유보도에까지 가져가라는것이다. 이런 심부름은 정말 아무한테나 시키는것이 아니다. 재수나 순일이나 동학이 같은 더퍼리들은 더더구나 어림도 없다.

금동이는 《식물도감》갈피속에 쪽지편지를 끼운 다음 몹시 흐뭇한 기색으로 아버지의 방을 나섰다.

《넌 아침부터 어디로 가니?》

물에 불군 미역에서 모래를 털어내던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아들을 돌아보았다.

금동이는 따지고드는듯 한 그 눈초리에 기분을 잡쳤지만 우쭐해서 《식물도감》을 쳐들어보이였다.

《유보도에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요.》

《무슨 심부름?》

《이 책을 기종아저씨한테 갖다주라는거예요.》

《아니, 금석이도 있는데 왜 하필 너한테 맡긴다는거냐?》

어머니는 물기가 주르르한 손을 행주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그리고는 웃방을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여보, 유보도에 꼭 금동이가 가야 하겠나요?》

《그렇소. 그 애가 가야겠소.》

《당신두 참, 그 애가 어떻게 그런 심부름을 한다고 그래요.》

《왜? 우리 금동이한테 손이 없소, 발이 없소?》

《그러다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어찌 알겠나요.》

《실수는 무슨 실수. 평양이 얼마나 넓은가를 알려고 력포구역에까지 갔다온 애가 그런 심부름도 못하겠소. 사나이 일곱살이면 코흘리개가 아니란 말이요!》

금동이는 아버지의 그 말을 듣자 히죽 웃으며 어머니의 겨드랑이밑을 빠져 복도로 달려나갔다.

그다음은 와당탕와당탕 계단을 구르며 아빠트층계를 내리였다.

《사나이 일곱살이면 코흘리개가 아니란 말이요!》

그는 아버지가 하던 이 말을 입속으로 가만히 뇌이다가 또다시 히쭉 웃었다. 금석이한테도 차례지지 못한 멋진 심부름을 어머니때문에 떼울번 한 일을 생각하니 이마에서 진땀이 다 났다.

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에게 이런 희한한 심부름을 시키지 않을것이다.

(흥, 어머닌 그저 아무때나 못한다는 소리뿐이야. 나를 아직도 탁아소에 다니는 애기처럼 여기거던. 이제는 나도 단추가 다섯개나 달린 옷을 입고다니는데.)

금동이는 가슴을 쭉 펴고 1학년생답게 크게 발을 떼며 유보도로 향하였다. 그는 한아빠트에 사는 1학년생들이 자기를 보면 얼마나 부러워할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연송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재수나 순일이나 동학이나 효남이들가운데서 누구든지 불쑥 자기앞에 나타나서 《너 어디 가?》하고 물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싶었다.

(내가 유보도에 심부름을 간다는걸 알면 그애들은 모두 눈이 뚱그래지겠지.)

금동이한테는 자기 짝패들의 뚱그래진 눈이 금시 보이는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따라 아빠트 뒤뜨락을 내려다보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쳇, 모두 잠을 자는 모양이지.)

금동이는 좀 싱거운 생각이 들어 아까보다 발을 더 재게 놀리였다.

그러는데 등뒤에서 누구인지 그를 불렀다.

《금동아, 어디 가니?》

금동이는 귀가 번쩍 띄여 소리나는쪽으로 돌아섰다.

방금 잠에서 깨여난것 같은 재수가 3층베란다에서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어디 가?》

하고 그는 온 아빠트마을이 다 듣게 곱씹어물었다.

《나 유보도에 가.》

《유보도에?… 왜?》

금동이는 어떤 식으로 대답하면 재수가 더 부러워하겠는가 하는걸 가늠하느라고 《저…저…》소리만 되풀이하였다. 그의 머리에는 문득 재수를 홀딱 반하게 할수 있는 멋진 말마디가 떠올랐다.

그것은 집을 떠나 어디론가 멀리로 가실 때마다 아버지가 곧잘하는 말마디였다. 그는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장한듯이 그 말을 입에 올리였다.

《〈출장〉가지 뭐.》

《〈출장〉?》

《응, 우리 아버지가 날 거기로 〈출장〉보냈어.》

《그런데 왜 가방도 없니?》

《가방이 없으면 뭐 출장을 못 가니? 난 이제 유보도에 가서 어떤 화가아저씨를 만나거던. 그 아저씨한테 이 책을 전해줘야 해.》

재수는 침을 꼴깍 삼키고나서 런닝샤쯔의 아래섶을 우로 끌어올려 눈지방을 한참 비비였다. 그러다가 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웅얼거리였다.

《너의 아버진 널 정말 고와하누나.》

《너도 아버지보구 좀 〈출장〉보내달라구 하려마.》

《그런 심부름은 시키지두 않아. 더퍼리라구 하면서…》

《어머니두?》

《어머닌 그저 수도꼭지를 잘 틀어막으라는것밖에 몰라.》

《그럼 나하구 같이 유보도에 가자꾸나.》

《싫어, 너 혼자 가.》

재수는 도리를 흔들고나서 방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다른 날보다 별로 기분이 좋은것 같지 않았다.

금동이는 자기 짝패가 좀 더 오래 자기를 부러워하지 않고 그렇게 훌쩍 들어가버린것이 못내 서운하였다. 그는 재수한테 괜히 안할 자랑을 했다고 후회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아빠트마당을 빠져나왔다.

이른아침이여서 그런지 주위는 아직도 고요하였다.

대동강반에는 봄날처럼 안개가 군데군데 자오록이 서려있었다.

그는 유보도걸상에서가 아니라 강기슭의 낚시군들속에서 화가아저씨를 찾아냈다.

아저씨는 늙은 낚시군의 바께쯔안에서 방금 낚아놓은 숭어가 첨버덩첨버덩 물장구치는 모양을 살펴보고있었다.

등뒤로 거꾸로 돌려쥔 속사지에는 강우에 떠있는 준첩선의 륜곽이 연하게 그려져있었다.

금동이는 화가의 팔소매를 슬그머니 끌어당기고나서 걸상 있는데로 깔깔거리며 뛰여갔다.

화가도 인차 금동이를 알아보았다.

《너 용케 나를 찾아냈구나. 이제는 제법 심부름까지 다니구… 어른이 다 됐는걸!》

그는 《식물도감》을 받아들자 책갈피속에 끼운 쪽지를 펼쳐들고 소리내여 읽기 시작했다.

《기종이, 그새 잘있었나! 출장지에서 그저께야 돌아왔네. 조선화 〈대동강반의 아침풍경〉은 그새 얼마나 진척되였는가? 조만간에 완성된 그림을 볼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하는바일세.

자네가 부탁한 〈식물도감〉을 우리 막냉이에게 주어보내니 받아주게.》

화가는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사람처럼 입술을 감빨고나서 흐뭇이 웃었다. 그리고는 금동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오늘 아침 금동이가 참 좋은 일을 했다. 그런데 난 아무것도 줄것이 없어서 어쩐다. 가만있자. 너 고기낚는걸 구경했니?》

《못했습니다.》

《준첩선이 모래를 퍼올리는건?》

《것두 못 봤어요.》

《대동강의 아침해돋이두?》

《예.》

《이것보지, 대동강기슭에 산다는 녀석이…》

화가는 짐짓 못마땅하기라도 한듯이 끌끌 혀를 찼다.

그는 그림종이들이 두툼하게 끼여있는 화판에서 종이 한장을 끌어당기여 금동이 아버지한테 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민우동지.

보내주신 〈식물도감〉을 받았습니다. 고맙고 기쁜 마음 이루 헤아릴수 없습니다. 1학년생이 된 금동이의 름름한 모습을 보니 더 반갑습니다. 두해전까지도 코물을 흘리며 업어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같지 않구만요.

일곱살내기 늦잠꾸러기한테 이 책을 주어 유보도로 내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금동이의 얼굴에서 읽고있습니다.

금동이는 아버지의 그 믿음을 반드시 소중히 여기게 될것입니다.》

 

네겹으로 접은 아저씨의 쪽지는 어느새 금동이의 바지주머니속으로 들어갔다.

《금동아, 너 래일 아침부터 여기루 나오지 않겠니? 여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나오기만 해라. 그러면 대동강의 해돋이를 구경시켜줄게. 숭어 낚는것두 구경하구… 다섯시에만 오면 준첩선에도 오를수 있다. 어때, 올테냐?》

화가는 《식물도감》의 책장들을 후르르 번져넘기면서 실눈을 짓고 금동이를 바라보았다.

금동이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와락 끌어잡았다.

《오겠어요. 아저씨, 올테야요!》

《그래 오너라. 혼자 와도 좋구 너희네 1학년생들과 같이 와두 좋다.》

《혼자서두 오구 같이서두 올테야요.》

《그래라. 그럼 너의 아버지, 어머니도 무척 기뻐하실게다.》

화가와 헤여진 금동이는 머리를 한옆으로 기우뚱한채 천천히 기슭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유보도에는 할일없이 흥청거리는 건달군이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거나 청소를 하거나 체조를 하는 사람들뿐이였다. 그가운데서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온 유보도가 마치 하나의 교실처럼 보였다.

아버지인듯 한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있던 1학년생쯤 되는 녀자애가 강쪽을 내다보다가 금동이한테 힐끔 눈길을 돌린다.

금동이는 책도 읽지 않고 빈몸으로 흔들거리는것이 부끄러워 잰걸음으로 그 애의 앞을 지나갔다.

발밑에서는 밤사이에 떨어진 나무잎들이 귀맛좋게 바삭거리였다. 강우에 드리운 안개는 비단필같이 하르르한 자락을 거두고 둔덕진 기슭의 나무밑에 감서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만이랑의 잔주름이 늠실대는 물결은 강안공원 저쪽 아빠트너머에서 비쳐오는 노을빛을 받아 쇠물처럼 끓어번지였다. 준첩선의 전동기가 퉁탕거리고 자동차들이 윙윙 대동교우로 줄달음쳤다.

금동이는 비로소 아버지가 늦잠자는 자기를 깨워 굳이 이곳으로 심부름을 보낸 까닭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였다.

(여긴 공기가 참 좋아. 머리가 막 맑아지고 정신이 또록또록해지는데! 그래서 아버진 날 여기에 보냈구나. 나두 래일 아침부터는 여기 나와서 책을 읽어야지.)

금동이는 강기슭의 아침을 통채로 안아가질듯 두팔을 넓게 벌리고 코날개를 벌름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꿀처럼 달디단 가을아침의 공기가 《어서 마셔라》, 《실컷 마셔라》하며 물씬물씬 코구멍으로 스며들었다.

 

―주체72(1983)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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