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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1
이젠 해가 솟아올랐으련만 짙은 안개때문에 방안은 그냥 어둑시그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소연이… 세식구는 오붓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밥이래야 쌀이라고는 한알도 찾아볼수 없고 데쳐서 우린 길짱구와 사라구에 강낭가루를 얼마간 버무려두고 김을 올린것이였다. 《우리 소연이가 배고프겠구나. 옛다, 한숟가락만 더 먹어라.》 할머니가 제 밥을 덜어주려고 했으나 소연이는 날쌔게 밥그릇을 들고 피해앉았다. 《할머닌 내내 그러시군 하네. 됐어요. 난 벌써 배부른데요 뭐.》 《에그, 너한테 흰쌀밥 한번 못해멕이구…》 할머니는 밥그릇을 든채로 눈물이 그렁해서 코멘 소리를 했다. 《됐어요. 난 흰쌀밥보다 나물밥이 더 맛있어요.》 열한살 어린아이같지 않게 소연이는 헌헌한 투로 제법 어른스레 말했다. 하긴 흰쌀밥이란것을 말로만 들어왔을뿐 언제한번 먹어본 기억조차 없는 그였다. 그만이 아니였다. 다른 집아이들도 거지반 다 그랬다. 수백호나 들어앉은 이 백일평마을에 흰쌀밥 먹는 집이 과연 몇집이나 될것인가. 그것은 왜놈수비대장이나 경찰서장, 자위단장 그리고 그놈들의 턱밑에 붙어돌아가는 목재상과 양지주 같은 몇 안되는 잘사는 놈들뿐일것이였다. 아침상을 물리기 바쁘게 그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가 손대기 전에 제손으로 얼른 빨래를 해올 심산이였다. 소랭이를 기울여 물을 찌우고 거기에다 비누와 빨래방치를 올려놓는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할머니가 뒤따라 나서면서 뭘 하느라 그러느냐고 물었다. 《뭘 안해요.》 소연이는 소랭이를 등뒤로 가져가며 새뭇이 웃었다. 《아니, 너 또 빨래를 하자구 그러는구나. 안된다. 거야 내 하지 않으리.》 할머니는 잉그르르 다가들어 소연이의 팔을 잡으며 그만두고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할아버지까지 문을 열어잡고 어린게 무슨 빨래를 한다고 그러냐고 자꾸 말리였다. 하지만 소연이는 듣지 않았다. 들을수 없었다. 요즘 할머닌 얼마나 힘드실텐가. 낮에는 매일같이 할아버지와 함께 강변 돌서덜밭에 나가 조밭김을 매고, 나물을 뜯고… 그러고도 저녁에는 밥을 짓고 돼지물을 끓이고 빨래와 바느질까지 하느라 언제한번 일찍 자리에 눕지 못한다. 느지막이 자리에 누워서는 잠결에 끙끙 앓음소리까지 내는 할머니다. 나물뜯기나 이런 빨래질 같은건 내 힘으로 해서 할머니의 일손을 덜어드려야 할게 아닌가. 《할머니, 할머닌 요즘 김매시느라 얼마나 힘들겠나요. 이젠 나물 뜯구 빨래하는건 제가 할게요. 이제 봐요. 내가 깨끗이 빨아올게. 할머니, 좋지요?》 그는 생긋 웃으며 할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얼른 소랭이를 안아들었다. 《그예 가겠다는거냐? 쪼꼬만게 원 고집두… 가만, 그럼 신이라두 갈아신구 가거라.》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아궁앞에서 말리운 짚신을 내다가 소연이 발치에 놓아주었다. 《아이, 아직 따스하네.》 그것을 갈아신으면서 소연이는 좋아라 웃었다. 하건만 할머니는 마주 웃을수 없었다. 《에그, 너한테 고무신 한컬레 못 신겨보구…》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츠렁츠렁 고여올랐다. 《할머닌 또… 나만 짚신인가 뭐. 가난한 집애들은 다 짚신인데. 난 짚신두 좋아요.》 소연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해 생긋 웃어보이고는 곧 집을 나섰다. 둔덕을 내려 집앞을 흐르는 개울로 나갔다. 올기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이였다. 무겁게 드러누운 새벽안개는 그제서야 잠에서 깨여난듯 굼실굼실 몸을 뒤척인다. 가까이에 자리잡은 몇몇 집들과 개뚝의 버드나무들이 안개를 털며 어렴풋이 자기 자태를 드러내보인다. 그러나 저아래 골안을 흐르는 올기강과 그 건너편의 자름자름한 산발들은 여전히 몽롱한 안개바다속에 잠기여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소랭이를 내려놓고 물가에 놓인 빨래돌을 마주하고 앉았다. 저고리소매를 쑥 걷어올리니 오른켠팔목에 박힌 좁쌀알만 한 크기의 까만 기미가 또렷이 드러나보였다. 불현듯 어머니생각에 가슴이 쩌릿해올랐다. (엄마!) 어머니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려 애썼으나 잘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의 팔목에 박혀있던 까만 기미만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녹두알만 한 크기의 까만 기미였다. 제것도 그렇게 컸으면 해서 어린 소연이는 그것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엄마, 엄마 기민 내것보다 크구 고와. 응?》 어느날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원 애두… 네 기미가 깜찍스레 생긴게 더 고운데 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으나 소연이는 아니라고, 엄마것이 더 곱다고 웃몸까지 흔들어대며 우기였다. 그러면서 제것과 바꾸자고, 엄마의것을 떼여 제 팔목에 옮겨놔달라고 떼를 썼다. 딸의 성화에 딱해서 어쩔바를 몰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슴푸레 떠오르면서 오늘따라 못 견디게 더 그리워졌다. 《엄마.》 가만히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금시라도 개울가에 불쑥 나타날것만 같은 그리운 어머니… 집을 나갔다 들어올 때면 《소연아, 잘있었니?》하면서 담쑥 안아들고 정답게 입맞춰주군 하던 사랑하는 어머니… 그러나 지금 어머니는 없다. 왜놈들을 때려부시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간 어머니는 여섯해가 지나도록 돌아와주시지 않는다. (엄마, 빨리 와요. 내가 얼마나 엄마를 보구파하는지 알아요?) 그러자 걷잡을새없이 눈물이 솟아올라 개울물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물에 비낀 동그란 얼굴이 순간에 산산이 흐트러졌다. 저고리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마음을 도슬러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얼마나 여러번 말해주었던가, 엄마생각을 하면서 자꾸 울어서는 안된다고… 엄마는 왜놈들을 때려부시고 나라를 찾은 담에야 만날수 있으니 그때까지 마음 크게 먹고 기다려야 한다고… 입술을 감쳐물고 마침내 빨래를 시작했다. 빨래라야 속옷 두가지뿐이였다. 그것을 먼저 맹물에다 빨고 다음엔 비누칠을 해서 주무르고… 그런 다음 개울물에 헹구니 순간에 깨끗해졌다. 그가 빨래를 비틀어짜서 소랭이에 담을 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땅!》하는 야무진 총소리가 났다. 하더니 몰방으로 터지는 총소리, 총소리… 소연이는 용수철튀듯 팔딱 튀여일어났다. 개울뚝우로 뛰여올라 총소리나는쪽을 가늠해보니 이따금씩 왜놈들이 훈련하느라 총을 쏘아대군 하던 병영 뒤산쪽이 아니였다. 그와는 정반대로 저앞 올기강쪽이였다. 하건만 뽀얗게 서린 짙은 안개때문에 그쪽은 아무것도 가려볼수가 없었다. (혹시?!…) 불현듯 그의 머리속에서는 번개불같은것이 펑끗했다. 혁명군이 왜놈들을 답새기는 총소리일수도 있지 않은가! 소랭이를 안아든 그는 숨차게 집으로 달려올라갔다. 뜨락에 들어서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밭일을 나가려다말고 울바자곁에 우뚝우뚝 멈춰선채 총소리나는쪽만 그냥 지켜보고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총소릴가요?》 그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숨가쁜 어조로 물었다. 《글쎄, 낸들 알겠니.》 할아버지는 소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오늘따라 무슨 안개가 이렇게두 지독스레 끼였는지 어디 볼수가 있어야지. 암만해두 왜놈들이 훈련하느라 쏘아대는 총소린 아닌것 같은데…》 소연이는 할아버지의 생각이 제 짐작과 비슷해가자 껑충 뛰고싶도록 기뻤다. 《할아버지, 우리 군대가 와서 왜놈들을 치는게 아닐가요?》 《글쎄, 나두 그 생각이다. 진짜로 그랬으면 여북 좋으랴만…》 그러는중에도 총소리는 잠시도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였다. 따당! 따당!… 뚜루룩! 뚜루룩!… 가끔 폭발소리까지 쾅쾅 울리였다. 소연이의 가슴도 쿵쿵 울리였다. 겁나서가 아니였다. 너무나 기뻐서였다. 진짜로 혁명군이 왔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럼 어머니도 함께 왔을수 있지 않는가. 어서빨리 알아보고싶은 욕망에 몸이 불같이 달아올랐다. 쪼르르 삽짝문께로 달려갔다. 《얘, 소연아!》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그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한달음에 다우쳐가서 손목을 잡았다. 《이것아, 어딜 가는거냐. 응? 어딜?》 《할아버지, 거기에 울엄마 있잖을가? 놔줘요. 나 가볼래요.》 소연이는 울상을 해가지고 자꾸만 팔을 빼내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애의 손목을 아프도록 꽉 거머쥔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서라. 총알이 비오듯 하는 전장엘 어쩌자구? 죽자구 그래?》 그리고는 애를 억지로 토방에 끌어다 앉히였다. 《얘야, 할아버지 말을 들어라.》 할머니까지 곁에 다가앉으며 어깨를 붙안고 타일렀다. 《그런델 함부로 나다니다가 눈먼 총알에라두 맞으면 어쩌자구… 그러단 죽어. 네가 죽은 담에 늬엄마가 널 찾아오면 우린 어쩌라는거냐, 응? 이 철없는것아. 나가더라두 쌈이나 끝난 담에 나가거라. 지금은 안돼.》 소연이는 그냥 속이 달아올랐지만 어쩌는수가 없었다. 잠자코 앉은채 애써 마음을 눅잦혔다. 어서 싸움이 끝났으면! 저게 진짜 혁명군의 총소리였으면!… 총소리는 한식경이나 지나서야 뚝 멎었다. 《할아버지, 쌈이 끝난것 같애요. 맞지요?》 소연이는 냉큼 몸을 일으켜세우며 침을 꼴깍 삼키였다. 《글쎄, 그런것 같긴 하다만…》 할아버지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뽀얀 안개속에다 대고 귀를 강구었다. 그러는새 소연이는 다시금 날쌔게 문쪽으로 내달았다. 《얘, 그러다 또 총소리가 터지믄 어쩌자구… 어서 이리 오너라.》 할아버지가 황급히 손짓해 불렀으나 들을 념도 안했다. 《애두 참, 거기에 늬엄마가 꼭 있다구야 어떻게 믿겠냐. 혁명군부대가 어디 한둘이라구?》 그러나 그때 벌써 소연이는 문밖으로 나선 뒤였다. 총소리가 울린 서남쪽 산언덕을 향해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종종걸음을 쳤다. 뒤로 땋아늘인 까만 외태머리가 이쪽저쪽으로 마구 흔들리였다. 마음이 급해난 할아버지, 할머니가 달려나갔으나 그 애는 벌써 뽀얀 안개속에 사라지고말았다.
2 총소리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밭김을 매러 갈 생각도 감감 잊은채 저앞 올기강쪽에 서린 뽀얀 안개속만 그냥그냥 내다보았다. 그게 진짜로 혁명군이 왜놈들을 답새겨댄 총소리였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랬으면 삼년 묵은 체증이 내린것보다도 훨씬 더 후련하고 속시원할것이였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아쉽고 서운한감도 없지 않았다. 총소리가 다시 울리지 않는걸보니 분명히 혁명군은 어디론가 벌써 철수해간것이 틀림없다. 혁명군이 싸움을 마치고 잠간만이라도 마을에 들려주었더라면 그이상 큰경사는 없으련만… 총을 멘 우리 군대의 끌끌한 모습을 한번 보기만 해도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울것인가.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급한 발소리와 함께 총을 멘 군대들이 물에서 솟구듯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셋이였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라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눈이 둥그래서 선채로 굳어져버리고말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그 군대들이 활짝 웃음을 짓고 분명한 조선말로 인사를 해서야 비로소 왜놈군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진짜로 혁명군이 틀림없구나 하는 확신에 목이 꺽 메여올랐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더구나 놀랍고 희한한것은 그들가운데 녀자군대가 한사람 끼여있다는 사실이였다. 붉은별 빛나는 군모, 군모밑으로 드리운 중발의 까만 머리채, 보름달마냥 둥실한 얼굴에 떠오른 환한 웃음… (이게 누군가? 소연이엄마가 찾아온게 아닐가?!) 로인내외는 꼭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한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허망하고 어이없는 생각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 애 엄만 이젠 서른살이나 됐겠는데… 그런데 이 군대는 너무나도 젊다. 그리고 얼굴모습도 눈매도 확연히 다르다. 정신이 번쩍 드는 그 청초하고 싱싱한 모습에 로인내외는 그만 순간에 온넋이 끌려들고말았다. 그분이 바로 백두산녀장수로 소문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이실줄이야 그들이 어찌 꿈엔들 생각할수 있었으랴.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김정숙어머님께서 그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활달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혁명군이라구요?! 원, 이런 일이라구야… 내 어쩐지 총소리가 범상치 않다 했더니… 반갑쇠다. 정말 반갑쇠다.》 할아버지는 눈을 슴벅이며 어머님의 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할머니는 그들을 붙들고 눈물을 주르르 쏟았다. 그러다가 한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황황히 토방으로 올라섰다. 《이걸 어쩌누. 방이 너무 루추해서…》 그런대로 문을 열어잡고 방안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어머님께서는 뜨락이 시원해서 더 좋다고 하시면서 극력 사양하시였다. 그러는 사이에 이웃집들에서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왔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토방에 올라서시여 그들모두에게 인사를 하시였다.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저희들은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받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들 술렁술렁 끓었다. 지금까지 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온 그들이였던가. 《김일성장군님께선 건강하시웨까?》 아래집로인이 큰소리로 물었다. 《예. 건강하십니다. 지금 왜놈들은 우리 혁명군이 산속에서 거의다 전멸되였다고 악선전을 하고있지만 그건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장군님께선 건강하시고 우리 혁명군은 건재해서 나날이 승승장구하고있습니다. 지난달에 조국땅 무산지구에 나가서 숱한 왜놈들을 쓸어눕힌 우리 혁명군은 방금 올기강전투에서도 크게 이겼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이 마을에 주둔하고있던 왜놈들과 《정안군》놈들이 김일성장군님의 령활한 유인매복전술에 걸려 이 아침 올기강기슭에서 거의다 전멸되고만 통쾌한 소식을 전해주시였다. 마을사람들은 팔을 추켜올리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태양이십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반드시 일제놈들을 때려부시고 나라를 찾고야말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고 토방에서 내려서신 어머님께서는 한사람 또 한사람 마을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시며 왜놈들이 망할 날은 멀지 않았다고, 조국해방의 그날까지 모두 억세게 살며 싸워달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 마을에 혹시 림소연이란 이름을 가진 처녀애가 없는가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림소연이라니요?! 우리 애가 바로 림소연인데…》 박로인이 상기된 얼굴로 어머님앞으로 나섰다. 혁명군의 통쾌한 전투소식에 흥분해있던 그는 그제서야 그 애를 지금껏 잊고있은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럼…》 어머님께서는 기대어린 표정으로 급히 로인에게로 다가서시였다. 《혹시… 소연이엄마이름이 박순금이 아닙니까?》 《옳습니다. 박순금입니다. 소연이아버지의 원쑤를 갚겠다면서 여섯해전에 유격구를 찾아 떠났었는데… 그 애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살아있습니까?》 어머님께서는 대답을 못하신채 아래입술을 꼭 깨무시였다. 그러자 걷잡을수없이 눈물이 고여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님께서는 눈물을 삼키시며 울먹울먹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소연이엄마는 전투마다에서 많은 공을 세운 조선인민혁명군의 훌륭한 전사였습니다. 저와 같이 처창즈에서 싸웠는데… 왜놈들의 〈토벌〉을 물리치는 전투때 그만…》 박순금이 놈들의 흉탄에 맞아 쓰러지던 그날의 일이 어제런듯 기억에 생생하시였다.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 그는 전우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기 몫까지 잘 싸워 기어이 왜놈들을 때려부셔달라고, 나라가 해방되거든 자기 딸 소연이를 꼭 찾아봐달라고… 《그러니 우리 소연이엄마가 잘못됐다는게… 그게 사실이란 말이웨까?》 박로인이 목메인 소리로 눈을 슴벅이며 물었다. 어머님께서는 더 말씀을 못하시고 입술을 꼭 깨무시였다. 《아, 저 어린게 그걸 알면…》 할아버지는 목이 꺽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할머니는 볼편을 부르르 떨더니 눈물을 텀벙텀벙 쏟았다. 《아버님, 어머님. 소연이엄마랑 같이 왔어야 할건데 안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님께서도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였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고서야 갈린 목소리로 겨우 말씀을 이으시였다. 《전 소연이엄마한테 말했답니다. 소연인 걱정하지 말아달라구… 그래서 그뒤 얼마나 애타게 찾았던지… 그러던 그 앨 오늘에야 찾았군요. 그런데… 애는 어디 있습니까?》 어머님께서는 혹시나 하는 불안한 예감에 성급히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예. 그 앤 잘있습니다. 가만, 얘가 어째 아직 안 들어오노? 아까 총소리가 자꾸 나니까 암만해두 혁명군이 온게 분명하다면서… 그게 글쎄 제 엄마가 왔는지 찾아본다면서 뛰쳐나갔지요.》 박로인은 코밑을 뻑 훔치고는 어서빨리 그 애를 찾아올양으로 황황히 사람들틈을 헤집었다. 그러는것을 뒤집에 사는 처녀가 제가 얼른 찾아온다면서 앞질러 강언덕쪽으로 내달았다.
3
소연이는 종주먹을 부르쥐고 집을 향해 장달음을 놓았다. 집에 혁명군아지미가 와서 날 찾는다니 엄마가 틀림없다. 아, 엄마! 기다리고 기다려온 사랑하는 나의 엄마!… 그런것도 모르고 멀리까지 엄마를 찾아나섰던것이 저으기 후회되였다. 언덕넘어 전장가까이까지 가보았으나 그때 벌써 혁명군은 정치공작조성원들만 마을에 들여보내고 모두 산으로 철수해간 뒤였다. 맥없이 터덜터덜 되돌아오다가 뒤집의 언니를 만나 뜻밖의 꿈같은 소식을 들었다. 원참! 그럴줄 알았더면 집에 그냥 있어야 하는걸. 《엄마―》 그는 집쪽을 향해 벌써부터 큰소리로 찾으며 내뛰였다. 그러다가 그만 돌부리를 걷어차면서 길바닥에 콱 어푸러졌다. 하지만 얼른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픔도 미처 느낄새없이 더 빨리 내달았다. 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바람으로 땋은 외태머리가 마구 흔들리다못해 풀어져서 날리였으나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다. 아, 엄마, 엄마, 왜 이제야 왔나요?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아요?… 숨이 턱에 닿아가지고 헐레벌떡 뜨락으로 뛰여들었다. 순간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반색을 지으시는 녀자군대한테로 첫눈에 시선이 갔다. 산뜻한 군복차림에 붉은별 빛나는 군모, 둥실하고 환한 얼굴… 어쩐지 엄마가 아닌것만 같아 성큼 발이 떼여지지 않았다. 언제인가 엄마의 생김새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말했다. 엄마는 얼굴이 갸름하고 턱이 뾰조름하게 생겼다고… 그런데 저 아지민 얼굴이… 《소연아!》 그 애한테로 성큼 다가서신 어머님께서 무릎을 꺾고 앉으시며 두팔을 활짝 벌리시였다. 자애에 넘친 그 부드러운 음성에 소연이는 대뜸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구나! 엄마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 어느 아지미도 자기를 그렇게 부를수 없는것이다. 《엄마!》 엎어질듯 달려가 쓰러지듯 그 품에 몸을 맡기였다. 기뻐서, 너무나 기뻐서 《어엉―》하고 울음을 터치였다. 엄마와 헤여지던 때의 일이 절로 생각났다. 멀리 연길에서 살던 여섯해전 그날… 다섯살난 자기를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맡기고 엄마가 집떠나던 그날 그는 하늘이 무너앉기라도 하는것처럼 그렇게 눈앞이 캄캄했다. 기를 쓰고 울어대면서 동구밖까지 그냥그냥 엄마를 뒤좇아갔다. 하는수없이 엄마는 걸음을 멈춰세우고 눈물에 젖은 딸의 얼굴을 닦아주며 타일렀다. 이제 엄마가 맛있는걸 많이 사가지고 곧 돌아온다고… 열밤만 자면 꼭 돌아올테니 기다리라고… 그때 소연이는 그 말을 곧이들었다. 하건만 열밤이 몇번이나 지나도록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여도 돌아와주지 않았다. 세해전 연길을 떠나 이 고장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뒤 할아버지한테서 이야기를 듣고서야 엄마가 집을 나간 실지내막을 알게 되였다. 알고보니 엄마는 왜놈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아버지의 원쑤를 갚기 위하여,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하여 유격대를 찾아갔다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인차 돌아올수 없고 왜놈들이 다 망한 다음에야 만날수 있으리란것이였다. 소연이는 엄마가 혁명군이 되였다는 사실로 하여 때없이 가슴이 울렁거리면서도 언제면 만날수 있을가 하는 그리움에 그동안 얼마나 남모르게 시달려왔는지 모른다. 그렇듯 그립고 보고싶던 엄마가 이렇게 불쑥 나타났으니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어머님께서도 그 애를 찾은것이 꼭 꿈만 같으시였다. 《됐다. 널 찾았으니 이젠 됐다.》 목이 메여 더 말씀을 못하시고 뜨거운 눈물만 흘리시였다. 소연이엄마의 얼굴이 눈물속에 우렷이 보였다. (순금언니, 마음놓으세요. 소연일 찾았어요.) 눈을 감으신채 소연이의 작은 어깨를 꼭 껴안고 정겨이 어루만지시였다. 《엄마.》 소연이는 이윽해서야 얼굴을 들고 어머님을 보았다. 《왜 이제야 왔나? 내가 엄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그리고는 어머님의 어깨를 응석스레 토닥토닥 두들겼다. 순간 어머님께서는 얘가 날 친엄마로 알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목안이 그들먹해올랐다. 친엄마가 아닌 사실을 차마 내색할수가 없으시였다. 그 애 엄마가 희생된 사실은 더우기 말씀해줄수가 없으시였다. 그러기에는 애가 너무도 어리였다.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고 그 애의 뺨에 얼룩진 눈물자욱만 닦아주시였다. 소연이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어머님의 오른켠팔목에 가 멎었다.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꼭 있어야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억이 잘못됐는가 해서 이번에는 왼켠팔목을 더듬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거기에도 없다. 이상한 일이였다. 그게 어떻게 없어졌을가? 《엄마, 여기에 기미가 있었댔는데… 그게 왜 없나?》 그는 의혹에 찬 눈으로 어머님의 팔목을 가리켜보이며 물었다. 《오, 기미…》 어머님께서는 가슴이 덜컥하시였다. 소연이엄마의 팔목에 박혀있던 녹두알만 한 기미… 그제서야 그것이 생각나시였다. 애가 제 엄마의 그 기미까지 생생히 기억하고있을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참으로 딱하시였다. 그런 기미가 자신의 팔목에도 하나 박혀있다면 얼마나 좋으랴싶으시였다. 《그게 글쎄 저절로… 세월이 많이 흐르다나니 그게 저절로 없어졌구나.》 애한테 실망을 줄가보아 이렇게 어물쩍 둘러대시였다. 《내건 그냥 있는데… 그런데 엄마거만 왜 없어졌나?》 소연이 제 팔목의 기미를 내보이며 물었다. 눈에 비낀 의혹의 빛은 여전했다. 《그건… 그건…》 갑자기 대답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갑자르시는데 어느새 그 애의 시선은 어머님의 얼굴로 향해졌다. 다시 보니 얼굴모습이 엄마가 아닌것 같다. 락심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도 어지간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옳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는 갑자기 울고싶어졌다. 그러나 강잉히 마음을 다잡고 어머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엄만 울엄마가 아니지요? 맞지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은 울먹울먹한 목소리였다. 어머님께서는 가슴이 철렁하시였다. 《소연아!》 갈린 음성으로 부르시며 그 애의 어깨만 꼭 그러안으시였다.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참 난감하시였다. 아무튼 이제 와서까지 자신을 그냥 친엄마라고 할수는 없다고 생각되시였다. 《소연아, 내 다 말해줄게 울지 않지? 말해라. 응? 울지 않지?》 소연이는 고개만 끄덕거리였다. 《소연아, 너의 엄만… 너의 엄만 정말 훌륭한 엄마였다. 내가 친언니처럼 따랐단다. 그런데 그만…》 어머님께서는 처창즈유격구에서 싸우던 소연이의 엄마가 왜놈군대들이 구름같이 밀려든 어느날 숱한 군복과 재봉기들을 구원하고 희생된 사실을 그대로 말씀해주시였다. 《엄마… 엄마…》 그처럼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를 다시는 볼수 없다는 생각에 소연이는 억이 막혔다. 그는 어깨를 파들파들 떨며 그냥그냥 흐느껴울었다. 《소연아, 그만해라. 네가 자꾸 울면 돌아가신 엄마가 얼마나 마음아프시겠니.》 어머님께서는 그 애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엄마는 숨을 거두면서 나한테 말했단다. 왜놈들을 때려부시구 나라를 찾게 되면 너를 꼭 찾아봐달라구… 너를 억세게 키워달라구… 그래서…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얼마나 널 찾았는지 아니? 그만해라. 응? 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도 눈물을 훔치며 어서 그치라고 소연이를 달래였다. 소연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어머님께서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소연이가 이렇게 먼데 와있을줄은 모르구 연길쪽에서만 그냥 찾았군요. 이젠 됐습니다. 애를 찾았으니 이젠 한시름 놓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동안 애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맙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로인내외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시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우리야 무슨…》 박로인은 황송한 기색으로 손까지 내저었다. 《가세가 하두 곤궁하다보니 애를 잘 거둬주지 못했습니다. 애를 찾느라 그렇게 고생하실줄 알았더면 거기에 그냥 눌러살걸 그랬나봅니다. 이 애 부모들때문에 혹시나 애한테까지 무슨 화가 미치면 어쩌나 해서… 그래서 생각다못해 이리루 옮겨앉았지요.》 《아니, 그건 아주 잘하신 일입니다. 악착한 왜놈들이 무슨짓인들 안하겠습니까. 정말 잘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흐느껴우는 소연이의 어깨를 다시금 꼭 그러안으시였다. 이때였다. 울바자곁에서 바깥동정을 살피고있던 두 대원이 함께 어머님의 곁으로 다가서더니 이젠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씀드리였다. 어머님께서는 대답을 못하시고 그냥 소연이의 어깨만 어루만지시였다. 눈치를 알아차린 소연이 흐느낌을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팔소매로 눈물을 북 씻었다. 어린 마음에도 울어서는 안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위하여 모처럼 찾아오신 좋은 아지미의 마음을 괴롭혀서는 안될것이였다. 어서빨리 떠나셔야 할 아지미의 바쁜 길을 너무 지체시켜드려도 안될것이였다. 그러는 소연이를 보시는것이 어머님께서는 더욱 마음아프시였다. 어린 가슴에 감당키 어려운 너무도 큰 설음을 안은 애를, 아직 실컷 울지도 못한 애를 이대로 그냥 놔둔채 떠날수는 없다고 생각되시였다. 《동무들, 아무래두 내 좀…》 어머님께서는 웃마을을 부탁한다고 하시면서 두 대원을 먼저 그리로 떠나보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애의 얼굴에 얼룩진 눈물을 닦아주실양으로 손수건을 꺼내드시였다. 숨차게 달려오느라 그렇게 됐는지 소연이의 목덜미와 잔등은 온통 땀에 뜨고 땋아늘였던 머리태는 거의나 다 풀려 마구 헝클어져있었다. 뛰여오다 어디서 넘어졌는지 무릎과 팔굽에 누렇게 흙이 개발린것도 눈에 걸리였다. 친엄마가 왔다면 딸애의 몸부터 거둬줄것이란 생각이 드시였다. 《소연아, 내 머리를 감겨줄가?》 소연이는 머리만 알릴듯말듯 주억거리였다.
4
어머님께서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앞개울로 나가시였다. 물가에 배낭을 벗어놓으시였다. 맑은 물속에서 노닐던 버들치들이 깜짝 놀라나 황급히 웃쪽으로 떼를 지어 달아뺐다. 《원 놀라긴… 누가 잡겠다나.》 어머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순간 소연이는 그것이 언제인가 엄마가 하던 말투와 신통히도 꼭 같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올랐다. 고향마을인 연길현 개지골… 그 마을앞에도 개울이 있었고 물가에 이런 넙적한 빨래돌이 놓여있었다. 어머니가 거기로 빨래를 하러 나갈 때면 그는 늘 치마폭에 매달려 아장아장 따라나서군 했다. 그 개울에도 버들치들이 많았다. 어머니와 함께 빨래터에 이르기만 하면 그것들은 화들짝 놀라 무리지어 뺑소니치군 했다. 언제인가 어머니는 그것들을 보며 말했다. 《원 놀라긴… 누가 잡겠다나.》 그때 소연이는 이렇게 대꾸했던것 같이 생각되였다. 《정말 누가 잡겠다나. 겁쟁이들같은거.》 어쩌면 그때의 엄마말투와 그렇게도 같을가. 진짜로 우리 엄마가 아닌가 하는 착각으로 소연이는 어머님을 살짝 올려다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니였다. 친엄마는 아니였다. 하긴 돌아가셨다는 엄마가 어떻게 날 찾아오실수가 있으랴. 그 애의 눈에는 다시금 눈물이 핑 돌았다. 《소연아, 신발을 벗을가?》 어머님께서는 그 애의 진흙묻은 짚신을 손수 벗겨주시고 빨래돌에 올려앉히시였다. 그러시고는 군복소매를 쑥 걷어올리시고 손발부터 깨끗이 씻어주시였다. 고사리같은 작은 손이 온통 험하게 튼걸 보시자 사뭇 마음이 아프시였다. 《아프니?》 발개진 손등을 어루쓸며 물으시였다. 소연이는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할머니가 그런걸 물을 때면 노상 일없다고, 조금도 아프지 않다고 하군 하던 그가 어머님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응석스레 고개를 끄덕거린것이였다. 어머님께서는 배낭아구리를 여시고 그안에서 크림단지를 꺼내시였다. 그 애의 손등에 크림을 살살 발라주시였다. 향긋한 냄새가 기분좋게 풍기였다. 《아지미, 좋은 냄새가 나요.》 소연이는 손등을 코에 갖다대고 냄새를 맡아보며 해죽이 웃었다. 《그래, 좋은 냄새가 나는구나. 내 이걸 주구갈테니 자주 발라라, 응?》 어머님께서는 크림단지를 그 애한테 내미시였다. 소연이는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내가 가져두 일없나요?》 어머님의 얼굴을 빠끔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일없잖구. 어서 받으란데.》 《그럼?… 그럼 아지민?…》 《나 말이냐? 원 애두… 내 걱정은 말구 받아라, 어서!》 어머님께서는 크림단지를 그 애의 손에 꼭 쥐여주시였다. 《자, 가까이 나앉아라. 내 얼굴을 곱게 씻어줄게. 응?》 그 애를 빨래돌끝에 바투 나앉혀주시며 어머님께서 자애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것은 소연이의 귀에 친엄마의 목소리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처럼 정답게, 그처럼 살틀하게 들리였다. 손으로 물을 떠서 그 애의 얼굴과 목덜미를 말쑥하게 씻어주신 어머님께서는 참 고와졌다고 하시며 뺨에 입을 맞춰주시였다. 《내 머리두 감겨줄게. 소연아, 좋지?》 《응.》 말을 내뱉고서야 소연이는 저도 모르게 버릇없이 대답했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히였다. 어머님께서는 그 애를 꼭 안아드시고는 머리만 물에 닿도록 거꾸로 내리드리우시였다. 그리고는 비누칠을 세번씩이나 해서 그 애의 머리를 깨끗이 감겨주시였다. 그전에 엄마가 그렇게 머리를 감겨주던 생각이 절로 나면서 소연이는 가슴이 쩌릿했다. 친엄마의 품에 안긴듯 온몸이 사르르 녹아들었다. 어머님께서는 그 애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시고나서 곱게 땋아까지 주시였다. 《우리 소연이 꽤나 곱구나. 봐라, 곱지?》 물속에 비낀 애의 얼굴을 가리켜보이며 어머님께서 물으시였다. 그전에 엄마도 개울물에 몸을 씻어주고는 그렇게 묻군 하던 생각이 났다. 그러면 소연이는 물었다. 《엄마, 엄마가 더 곱나, 내가 더 곱나?》 《나야 뭐 곱니? 우리 소연이가 곱지.》 어머니가 그러면 그는 도리질을 했다. 《아니, 엄마두 고와. 마을엄마들가운데서 제일 고와.》 소연이는 혁명군아지미와도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아지미야말로 정말 얼마나 고운가. 《아지미, 아지미가 더 곱나요, 내가 더 곱나요?》 어머님께서는 웃으시였다. 《거야 뭐 우리 소연이가 더 곱지.》 《아냐요. 아지미가… 아지미가 더 고와뵈요.》 《무슨 말을 하니? 네가 더 고운데.》 그러던 어머님께서는 《참, 내 소연이한테 줄게 있다.》 하시며 배낭을 당겨다 푸시고 천에 싼것을 꺼내시였다. 《이것 봐라. 곱지?》 하시며 어머님께서 펼쳐보이신것은 뜻밖에도 진자주빛갑사댕기였다. 《어마나! 댕기!》 소연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환성이 터져나왔다. 《맘에 드니?》 소연이는 해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맘에 들면 됐다. 그럼 내 곱게 드려주지.》 어머님께서는 그 애를 돌려앉히시고 알뜰하게 댕기를 드려주시였다. 그런 다음 일으켜세우고보시니 애가 생신하고 해말끔한게 여간 곱지 않았다. 《우리 소연이가 정말 곱구나, 응?》 어머님께서는 그 애를 담쑥 그러안으시고 발깃하게 홍조가 어린 뺨에 정겨이 입을 맞춰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 배낭을 여시였다. 그안에서 천으로 정히 싼 웬 물건을 꺼내시였다. 그것은 깜찍하게 생긴 까만 고무신이였다. 《이건 너의 엄마가…》 어머님께서는 젖어든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너의 엄만 언제나 배낭속에다 네 고무신을 넣어가지구 다녔단다. 너한테 고무신 한컬레 못신겨봤다면서… 너의 엄마가 전사한 뒤 내가 그걸 간수해가지구 다녔구나. 언제든 너를 찾거든 주려구… 그런데 너를 찾지 못한채 세월은 한해 또 한해 자꾸 흐르는게 아니겠니. 그래 발에 맞을것 같지 않아서 그동안 내 여러번 문수가 높은걸루 바꿔넣군 했단다. 자, 받아라.》 어머님께서 고무신을 내밀어주셨으나 소연이는 손을 내밀지 못하고 서슴거리였다. 선뜻 받아안기에는 그것이 너무도 진귀하고 값비싼 보물처럼 여겨졌다. (아, 얼마나 나를 생각하셨으면…) 어디 사는지 알수도 없는 한 어린이의 행방을 찾아 그것을 오래오래 간수해가지고 다니시면서 발에 맞지 않을세라 큰것으로 종종 바꾸어넣기까지 하신 그 다심한 사랑에 어린 마음에도 목이 메여올랐다. 《어서 신어봐라, 응? 어디 맞는가 보자.》 하시며 어머님께서는 소연이의 발에 새 고무신을 신겨주시였다. 《맞니?》 《예. 꼭 맞아요.》 방그레 웃는 소연이의 눈에는 눈물이 츠렁츠렁했다. 그래도 미타한듯 어머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고무신코를 꼭꼭 눌러보시였다. 《정말 꼭 맞는구나. 됐다. 너무 아끼지 말구 늘 신구 다녀라. 응?》 《예. 아지미, 고마워요.》 《원참, 고맙긴… 그리구 날 왜 그렇게 부르니? 그냥 엄마라구 불러라. 소연아, 그러지?》 소연이는 입술을 꼭 다문채 고개만 끄덕거리였다. 이때였다. 어머님께서 웃마을로 올려보내셨던 두 대원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개울뚝우에 불쑥 나타났다. 《김정숙동지, 이젠 그만…》 몸집이 크고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한 대원이 물가로 내려서서 가만히 말했다. 고개를 돌려 그의 초조한 기색을 보신 어머님께서는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 됐겠구나 생각하시였다. 하지만… 하지만 성큼 일어날수가 없으시였다. 뭔가 아직 못해준것이 있는것만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으시였다. 《소연아.》 다시금 그 애를 당겨다 꼭 그러안으시였다. 《내 한가지 말해줄게 있는데… 듣겠니?》 소연이는 팔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게 아니구… 난 소연이가 맘이 약해질가봐… 이젠 나한테 엄마가 없구나 하구 생각하면서 자꾸 울가봐… 그것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구나. 소연아, 그러지 않지?》 고개를 끄떡하는 소연이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펑하니 고이였다. 《소연아, 그래선 안된다는데두 또… 응?》 어머님께서는 가볍게 나무라시며 손수건으로 그 애의 눈물을 닦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푹 젖어든 목소리로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소연아, 자기를 부모없는 애라고 생각지 말아. 내가 있잖니. 내가 너의 엄마가 돼줄게. 그리구 마음을 굳세게 먹구 살아라. 우리에겐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지 않니. 이제 장군님께서 왜놈들을 때려부시구 나라를 꼭 찾아주실게다. 그때 내 너를 데릴러 오마. 그때까지 부디 앓지 말구 잘 자라거라. 소연아, 그러지?》 《엄마!》 소연이는 어머님의 품을 파고들며 어깨를 떨었다. 어머님께서는 그 애를 꼭 그러안으시며 슬며시 눈을 감으시였다. 맑은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리고 두 혁명군대원도 물가에 선채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님께서는 고개를 돌려 그들쪽을 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이제 오래지 않아 조국은 반드시 해방됩니다. 그때까지 부디 앓지 마시구 건강하셔서 꼭 그날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구 우리 소연이를 부탁합니다. 얘가 양기를 잃지 않도록, 혁명가의 딸답게 억세게 잘 자라도록 해주세요. 부모를 잃은 불쌍한 우리 아이들, 헐벗고 굶주리는 이 나라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 꽃처럼 밝은 웃음이 활짝 피여나게 된다면 참 얼마나 좋을가요. 전… 전 그게 제일 큰 소원이예요.》 《고맙쉐다. 정말 고맙쉐다.》 박로인이 눈물을 훔치며 어머님 가까이로 다가섰다. 《소연아, 너의 엄만… 너의 엄만 가지 않았다. 얼마나 크고 따사로운 엄마의 품이 널 안아주고계시냐.》 그러면서 소연이더러 어서빨리 어머님을 떠나보내자고 했다. 소연이는 첫마디에 응했다. 눈물을 뻑 훔치며 어른스레 어머님의 품에서 내리였다. 배낭을 지신 어머님께서는 소연이의 손을 잡으시고 개울뚝우로 오르시였다. 어느새 안개는 말끔히 걷히였다. 해는 벌써 퍼그나 높이 솟아올랐다. 어머님께서는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시고 그다음 잘있으라면서 소연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시고, 그러시고는 큰길쪽을 향해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엄마―》 소연이는 큰소리로 부르며 몇발작 따라가다가 목이 울컥하는 바람에 멈춰서고말았다. 돌아서서 이쪽을 향해 손을 저으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눈물속에 어룽어룽했다. 손으로 훔쳐도 눈물은 걷잡을수없이 샘솟아 볼을 타고 줄줄이 흘러내리였다. 그것은 엄마를 잃은 슬픔의 눈물, 설음의 눈물이 아니였다. 그지없이 크고 따사로운 품, 살틀한 엄마의 품을 찾게 된 기쁨의 눈물, 감사의 눈물이였다. 합수목을 지나 저아래켠으로 안개를 털어버린 올기강이 아침해빛에 물살을 번쩍이며 흐르고있었다. 조국의 강,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맑은 물줄기였다. 소연이의 마음은 그 강물을 따라 벌써부터 조국으로, 조국으로 향하고있었다. 그지없이 살틀하고 자애로우신 어머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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