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8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 제 2 회 )

                                                      리  원  우

 

4 . 눈엔 보이지 않는 종이

 

어느날 아침 굴속에서 종태가 총을 빼앗으러 가겠다고 하면서 며칠전부터 준비한 허수레한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다 입고난 종태는 우리들이 보라고 빙 한바퀴 돌며

《어때? 쓰레기 모으는 아이처럼 보이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말해주니까 종태는 좋아서 흰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그럼 갔다오겠어! 암만해도 나무권총을 가지고는…》

하고 호주머니에서 나무권총을 꺼내여 책상우에 덜커덩 놓았습니다.

동수도 웃으며

《조심해. 넌 뚝떼꺽하는 성미가 있어 탈이야. 괜히 덤비지 말고 정말 쓰레기를 모아 실어가는 꼬마수레군이 돼야 한다. 에라, 깐놈에 뚝떼꺽 해치우자 하고 덤벼치다간 안돼.

어쨌든 먼저 가. 만길이가 망을 봐주도록 했으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종태는 걱정말라고 몇번이고 말하면서 굴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도 굴밖으로 나가며 곧 뒤따라가마 약속하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들어오자 동수가 나를 보고

《그럼 우리도 시작해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원쑤와 싸울 또 다른 무기를 만들라고 했는데 어떻게 되였는가고 묻는 말이였습니다. 나는 어제 밤 그 지시를 받고 한밤을 꼬박 새며 글을 써놓았습니다. 나는 호주머니속에서 그 글을 제꺽 꺼내서 동수에게 주었습니다. 동수는 쭈욱 읽어보더니 여기는 이렇게 고치고 저기는 저렇게 고치는게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제꺽 고쳤습니다. 다시 읽어보더니 그럼 이제 원쑤놈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아이들사이로 빙빙 돌아갈 그 종이에 어서 쓰자고 했습니다.

글씨 잘 쓰는 락일이가 종이를 펼쳐놓고 내가 만들어놓은 글을 보면서 붓에다 잉크를 찍어 한자한자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눈엔 보이지만 원쑤놈들의 눈엔 보이지 않게 빙빙 돌아갈 종이!

전번에 성희가 모아온 그림종이가 바로 그 종이지요.

락일이가 글 쓴 종이 한장을 품에 넣은 나는 종태가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성희도 내뒤를 따라 그 종이를 허리춤에 품고 나섰습니다.

나는 함께 걸어가면서 애순이를 찾으려면 외삼촌네 집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놈들에게 어머니가 총살당한 후 애순이는 빈집에 혼자 있기가 적적해서 외삼촌네 집으로 옮겨갔던것입니다. 아버지는 인민군대로 나간 후 소식이 없고 어머니마저 원쑤놈들에게 학살된 애순이는 늘 울면서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속에서는 어머니를 죽인 원쑤놈들을 복수하고야말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불타고있으리라고 성희는 굳게 믿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논한 끝에 애순이를 먼저 찾아가기로 결심했던것입니다.

애순이와 정작 마주앉자 성희는 자기도 슬퍼져서 목이 꽉 메이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품고간 종이를 그 애의 손우에 슬쩍 쥐여주었습니다.

애순이는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그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성희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제 읽어보면 다 알아. 그리고 실천에 옮기면 돼. 그리고 이 종이를 너하고 제일 친한 믿을만 한 동무에게 아무도 못 보게 전하면 돼.》하고 차근차근 말하여주었습니다.

애순이는 성희의 말을 듣고 두눈을 깜빡이며 그 종이를 품속에 깊이 간수했습니다.

성희는 일어서면서 애순이 귀에 대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지만 말고 복수할 생각을 해야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성희를 바래고난 애순이는 가슴이 활랑거려 도무지 진정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품속에서 그 종이를 꺼내여 거기에 씌여있는 글을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소년단원동무들아!

너희들의 눈에는 짓밟힌 고향마을이 보이지 않니?

너희들의 귀에는 마을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니?

그런데 왜 보고만 있니? 왜 듣고만 있니?

우리는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서, 듣고만 있을수가 없어서 일어나 싸운단다.

우리 조직의 이름은 소년투쟁대!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방송연설을 높이 받들고 우리모두 소년투쟁대에 뭉쳐 원쑤와 싸우자꾸나.》

애순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거리에 삐라가 나붙고 원쑤놈들의 선전화가 찢어져 날아나고… 그런걸 소년투쟁대가 했겠구나. 그런데 난 왜 이럴가? 원쑤놈들한테 어머니를 빼앗기고도 난 왜 이렇게 비실비실 숨어나 살가.)

그러자 성희에게 꼭 물어볼걸 놓쳤다는 후회가 났습니다.

《성희야, 너도 소년투쟁대에 들었니? 나도 함께 싸울수 없니?》

애순이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종이에 씌여진 글을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애순아, 너희들은 아마 우리 소년투쟁대원들이 어떤 애들인지 잘 모를거다.

우리도 너희들과 다름없는 보통소년단원들이야. 우리도 처음에는 무섭고 겁이 났단다. 놈들의 삐라 한장을 찢기도 힘들어했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투쟁속에서 힘을 기르고 투쟁속에서 날로 용감해지고있다.

어떠냐? 너는 그래 소년투쟁대원이 되고싶지 않니?

만일 그런 마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싸움에 나서라!

물론 처음부터 굉장히 용감무쌍하게 싸울수는 없을거야. 네가 할수 있는만큼 무엇이든 시작해보렴.

원쑤놈들을 반대하는 삐라를 한장 써서 내붙여도 좋고 미군놈들이 써붙인 광고를 찢어버릴수도 있지.

원쑤를 족치는 일이라면 한가지씩이라도 생각해가지고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봐라. 그러면 조직이 너의 손을 이끌어줄게고 소년투쟁대원들과도 만날수 있단다. 자, 그럼 안녕히.》

이튿날 아침 애순이는 그 종이를 품고 드디여 집을 나섰습니다. 뒤산기슭에 있는 칠성이네 집을 향해서지요. 그러나 《너 이 종이를 누구한테서 받았니?》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가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얼마후 칠성이와 마주 앉게 되였을 때 그 애가 너 그게 무슨 종이냐고 눈이 둥그래서 물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이 종이 말이냐? 읽어보면 다 알게 돼. 읽은 다음엔 실천에 옮기면 돼.

그리고 너하구 제일 친한 우리편 동무에게 전하면 돼.》

애순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내다붙였는지 굽인돌이 담벽에서 《인민군대는 곧 돌아온다. 승리는 우리의것이다!》라고 쓴 삐라를 읽어보았습니다.

(소년투쟁대원들이 활동하고있구나. 나도 저런 삐라를 써서 내다 붙여야지.)

칠성이 손으로 들어간 종이는 그날 저녁 순철이네 집으로 가고 이튿날은 순옥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종이는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갔습니다. 첫번째 종이가 돌아가면 두번째 종이가 그뒤를 따라 돌았습니다.

그러자 온 마을엔 여러가지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고개길로 달리던 군수자동차 한대가 바퀴가 뚝 떨어져나가며 벼랑밑으로 곤두박질을 한 일, 누가 팽개친 돌인지 경찰서유리창이 쨍가당 깨여지는 바람에 소동이 일어난 일, 전화통들이 걸핏하면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귀머거리가 되는 일…

원쑤놈들은 누가 이런따위 일들을 하는지 모르고 겁이 나서 벌벌 떨었습니다.

놈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자꾸만 빙빙 돌아가는 종이, 그 종이에 쓴 글을 읽은 아이들이 그런 일을 했으리라고는 꿈엔들 생각이나 해보았겠나요.

 

5 . 빼앗아온 총

 

뚝떼꺽이 종태는 쓰레기수레를 덜렁덜렁 끌고 마방간이 된 학교 앞길로 갔지요.

(그놈의 총을 빼앗아야 될텐데.)

자꾸만 두자루의 총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한자루가 늘어 세자루가 되였을지도 모릅니다.

첫날과 둘째날 마당을 쓸어서 쓰레기통에 담아주는척 하고 보아두었지요.

학교뒤방에서 밤에는 무엇들을 하는지 낮에는 의례히 미군 두세놈이 와서 잡니다. 그렇게 되면 총도 두자루 아니면 세자루가 유리창가에 기대여서 낮잠을 자지요.

(오늘은 그놈의 총들을 그냥 두지 않을걸.…)하고 생각하며 종태는 덜렁덜렁 쓰레기수레를 끌고 운동장을 지나 학교 뒤뜰로 갔습니다.

나는 좀 멀찌감치 떨어져서 제기를 차는척 하면서 망을 보아주었습니다.

마루창을 텅텅 구르는 말발통소리와 코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얼핏 창문께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문이 꼭 닫겨있습니다.

나는 후날로 미루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틀렸다는 뜻으로 머리를 흔들어보였습니다.

그러나 종태는 본체도 않고 문을 살그머니 열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여는 종태보다도 망을 보는 내가 오히려 더 땀이 났습니다.

한참이나 걸려서야 문 한짝이 열렸습니다. 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냥 자는 모양입니다.

종태는 목을 슬그머니 돌려 나를 바라봅니다.

나는 머리칼이 쭈빗하니 일어서는것을 느끼며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고나서 일없다는 뜻으로 제기를 찼습니다.

그러자 종태는 단숨에 문안으로 손을 넣어 총 두자루를 꺼내는것이였습니다.

《에라 뚝떼꺽 해치워야지.》

종태는 총을 수레상자에 넣은 다음 그우에다 쓰레기를 푹푹 담았습니다.

어쩐지 코를 골며 자던 놈들이 후닥닥 일어나

《이놈아!》

하고 호통을 치는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수레를 이끌고 운동장을 벗어났습니다.

《종태, 확실히 넌 대담해. 정말 뚝떼꺽 해치우는구나.》

나는 이렇게 말하며 종태를 쳐다보았습니다.

종태는 그저 씩 웃기만 했습니다.

(엥이, 나두 이젠 꼬밀꼬밀하지 말구 대담할테야!)

나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습니다.

 

6. 뿌리 뽑는 일

 

종태와 내가 총 두자루를 빼앗아온 날부터 모두들 사기가 나서 며칠을 두고 총쏘는 련습들을 맹렬히 했습니다.

그러는 한편 슬슬 다른 일을 시작하였지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우리들은 원쑤놈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빙빙 돌아가는 그 종이에다가 이제 벌어질 새 일에 대하여서도 써넣었지요.

《원쑤놈들이 내다붙인 광고를 찢어버리고 그 자리에다가 우리 삐라를 내다붙인 아이들아! 그리고 다문 한메터라도 원쑤놈들이 늘여놓은 전화줄을 끊어버린 애들아! 이제 너희들과 우리가 서로 얼싸안을 날이 다가오고있다.

이제 하늘과 땅을 뒤흔들며 꽝당꽝당하고 무엇이 터지는 날이 올것이다.

그날 우리들은 서로 얼싸안게 될것이다. 그럼 아이들아, 힘을 내여 하던 일을 더욱 용감하게 계속하여라.》

이 글을 읽은 아이들은 서로 귀속말로 전하였습니다.

《야, 무엇이 꽝당꽝당 터지는 날이 온다누나. 그날 우리들은 그 애들과 만난대.》

애순이는 칠성이에게 전하고 칠성이는 금동이에게 전하고 금동이는 순철이에게 전했습니다.

무기창고는 거리와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밑이고 바로 무기창고앞으로는 맑은 시내물이 흘러갔는데 지금은 얼어붙었지요. 그 얼어붙은 시내가에서는 갈대숲이 바람에 살랑살랑 설레고있지요.

《만길동무에게 무기창고를 폭발시킬 책임을 지운다.》하고 결정한 날 나는 요란스레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그런것은 절대로 아니지요.

그저 제일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는 생각, 그것을 본때있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것이였지요.

나는 동무들 보고 그저 힘껏 해보겠다고 말했을뿐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이나 자꾸 해서 뭘합니까. 혼자 속으로만 (죽어도 해야 한다!) 하고 결심했을뿐입니다. 그리고는 범을 잡기 위하여서는 범의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처럼 무기창고를 부시기 위하여서는 무기창고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어느날 한다리를 절름절름 절면서 그 집마당으로 들어섰던거지요.

그때 귀청이 떨어질것 같은 목소리가 났습니다.

《누구야, 섯!》

나는 깜짝 놀랐어요. 창고를 지키는 적 보초병놈이 내 가슴에 총을 내여대며 지른 고함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래배에 힘을 주며 아주 례사롭게 웃기까지 하며

《난 한다리를 잘 못 쓰는 아이인데요. 정말이지 이젠 더 걸어갈수가 없어요. 그래 이 집에서 하루밤 자고 가려구 찾아왔어요.》

하고 말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보초병놈은 여전히 우락부락하며

《뭐가 어쩌구 어째?! 여기가 어딘줄 알고 함부로 자고 가자는거야, 엉?!》

하고 떠따고며 겨누어들었던 총을 슬며시 잡아당겼습니다.

(이놈을 한번 떠보자.…)

하고 생각한 나는 아주 바보인체 하고

《여기가 그럼 집이 아니예요?》

하고 능청을 부려보았습니다. 보초병놈은 마루에 털썩 걸터앉아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아버지는 뭘 하느냐? 집은 어디메냐? 이름은 뭐냐? 하고 한바탕 캐여물었습니다. 나는 시치미를 따고 본시 고아라는것, 집이 없다는것, 그러니까 이 집에서 심부름이라도 시키고 밥이나 먹여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못하겠다고 한바탕 늘어놓았습니다. 그놈은 멍청하고 앉아서 내 말을 듣다말고 《어이》하고 방안을 향하여 누구인가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러자 방안에 있던 보초병놈의 얼굴 하나가 들
창문으로 쑥 나오며 《왜 그래?》하고 물었습니다.

《어때? 심부름 시켜먹을 애가 없더니 돈 안주고도 부려먹을 애가 한놈 생겼구만.…》

그러자 들창문으로 나왔던 얼굴이 다시 방안으로 쑥 들어가며

《야, 그러다 상관이 알면 경친다.…》

하고 말소리만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마루에 걸터앉은 보초병놈은 수그러들지 않고 제법 자신이나 있는듯이 《제길 겁두 많다. 앞집령감네 아이라고 하면 되지 않아.》

하고 말하며 나를 보라고 그러는지 한쪽 눈을 끔벅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집에서 살게 되였던것이지요.

보초서는 놈은 모두 네놈인데 두놈은 술추렴을 잘하고 다른 두놈은 떡추렴을 잘하였습니다. 이놈들은 나에게 쩍하면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심부름을 시킬 때면 글 쓴 종이 한장씩을 나에게 주군 했지요.

거기엔

《술 두병하고 닭 두마리만 이 아이에게 보내라. 어제 갔던 사람.》

이렇게도 씌여있고 또 어느 종이엔

《당신의 아들은 살아날수도 있으니 아예 걱정하지 말라. 이 아이에게 떡쌀 한말만 보내라. 상관에게 한턱 쓸거다.》

하고도 씌여있군 했지요.

나는 이런 시시한 심부름을 하기가 싫었지만 무기창고내막을 알아내기 위하여 꿀꺽 참고 했지요. 이레만에 드디여 창고속비밀을 쪽 뽑아내게 되였지요.

창고속엔 여러가지 총알상자들과 포탄상자들이 쌓여있고 문안 한구석엔 림시로 넣어둔 휘발유통 세개가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지요.

그런데 이놈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며칠전부터는 포탄과 총탄을 실어오지도 않고 실어가지도 않는것을 나는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보초병놈들이 밥을 먹고 자는 방에 전화가 하나 있는데 그게 며칠째 벙어리가 된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창고열쇠는 네놈중 제일 높은 땅딸보놈이 기다란 가죽끈에 달아 허리에 차고 다닌다는것도, 툭 잡아당기면 쭉 빠져나오게 된 쇠라는것도 그리고 그 열쇠를 가지고 어떻게 자물쇠를 여는가도 알아냈지요.

그러면서 나는 휘발유통의 마개를 여는 나사틀개도 준비하여놓았지요.

나는 내가 알아낸 모든 사실과 준비정형에 대하여 소년투쟁대 대장 동수에게 몽땅 보고하였습니다.

동수는 내가 보낸 보고와 그동안 우리모두가 한 일을 묶어가지고 마식령인민유격대 지휘처에 가서 우리가 벌릴 큰일에 대한 새 지시를 받아왔다고 나에게 알려왔습니다.

동수는 드디여 인민군대와 마식령인민유격대 아저씨들과 힘을 합쳐 큰 싸움을 벌리기로 하였다고 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싸움은 마을에 들어온 원쑤놈들의 뿌리를 몽땅 뽑아던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무기창고를 불사르는것이 바로 그 큰 싸움의 신호로 될거야.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을 잘해야 돼.》

바로 그 일이 벌어질 새벽 세시가 눈앞으로 다가오고있습니다.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도 똑딱똑딱하는 시계소리도 모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을 기다리느라고 가슴이 타서 그러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밤따라 놈들은 떡추렴 술추렴을 밤이 늦도록 벌려놓고 떠들썩 고아대고있습니다. 덩달아 집주인 할아버지까지 들락날락합니다.

참 큰일났습니다. 아직도 창고열쇠를 내 손에 쥐지 못하였기때문입니다. 나는 네놈중 한놈곁에 바싹 다가앉아 그 땅딸보놈과 친한체 하고 그놈이 무슨 노래를 부르던가 하면 손벽까지 쳐주며

《상당한데요. 한번만 더 부르세요.》하고 발라맞추어주었습니다.

그놈은 내가 정말 좋아서 그러는줄 알고 또 한바탕씩 신이 나서 노래를 뽑군 했습니다. 그때마다 엉뎅이가 들썩들썩하며 허리에 찬 창고문열쇠가 간데라불에 반짝거렸습니다.

나는 등이 달아 그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시계를 쳐다보군 했습니다.

새벽 1시 반!

그러자 잔뜩 취한 두놈이 모로 넘어지더니 급기야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한놈은 내옆에 앉아있던 열쇠를 찬 땅딸보놈입니다. 나도 닁큼 물러나 그놈곁에 가 누우며 나머지 두놈이 들으라고 《아이 졸려라. 밤이 깊은 모양이다.》

하고 연방 하품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계는 땡땡 2시를 쳤습니다. 할아버지도 나머지 두놈도 여기저기 눕더니 어느새 코들을 골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할가? 칼로 끊을가, 뽑아낼가?)

나는 열쇠끄트머리를 살그머니 잡아봤습니다. 그리고 가죽끈을 칼로 슬쩍 잘랐습니다.

새벽 2시 반!

난데없이 자동차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집앞으로 가까와오더니 뿌욱하고 멎는 소리가 나며 급기야 뚜거덕거리는 발자국소리들이 어지럽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새문을 열고 부엌으로 내려섰습니다. 그때 벌커덕 방문이 열리며

《보초병!》

하고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서는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며 오늘밤 일은 다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휙 지나갔습니다. 이때 고함소리가 방안에서 울렸습니다.

《이놈들아! 지금 어느때라구 무기창고는 지키지 않고 자빠져서 자는거야!》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부엌문을 열고 뒤뜰안으로 나섰습니다. 더 생각할것도 없이 창고를 향하여 냅다뛰였습니다.

휙―휙 귀바퀴에서 바람소리가 일었습니다. 동무들의 얼굴이 언듯언듯 떠오르며

《만길아! 어서 뛰여라!》

《만길아! 어서 빨리 뛰여라!》

하고 재촉하는것 같았습니다.

손에 쥐여보면 선뜩하던 자물쇠, 열흘동안이나 봐두고 또 봐둔 무기창고 자물쇠입니다. 나는 달려가자마자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인차 열쇠구멍을 찾았고 그 구멍으로 열쇠끄트머리가 쑥 들어갔습니다. 살짝 비틀었습니다.

딸까닥하고 자물쇠가 열렸습니다.

등뒤로 왁왁 고아대는 소리와 투닥투닥 어지러운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습니다.

머리칼이 쭈빗이 일어섰습니다.

(흥 안된다. 절대 물러설수 없다!)

나는 재빨리 창고문을 열고 나는듯이 뛰여들어갔습니다. 어둠속을 손더듬하여 휘발유통을 찾아낸 다음 허리에 차고갔던 나사틀개로 마개를 틀었습니다. 그러나 옴짝도 안했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하여 비틀고 또 비틀었습니다. 한참만에 삐거덕하더니 마개가 돌아갔습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여 휘발유를 묻혀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성냥을 그어 불을 달아가지고 휘발유통우에 던졌습니다.

그다음 어떻게 문을 닫고 어떻게 갈밭을 지나 산턱까지 달려왔는지 지금도 아리숭합니다.

그때 꼭 내뒤에서 총소리가 몇방 난것처럼 생각됩니다.

솔밭으로 뛰여올라간 나는 어딘가 막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쾅하고 요란한 폭발소리가 났습니다. 뒤이어 하늘이 무너지는듯 한 굉장한 폭음이 울리며 내가 엎디여있는 땅을 뒤흔들어놓았습니다.

나는 산발을 타고 숲속으로 마구 내뛰였습니다.

콰쾅 콰쾅! 폭발소리는 그냥 계속되며 밤하늘로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쳐올랐습니다.

그때 나는 폭발소리보다 더 큰 다른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콱 메여왔습니다.

장거리에서 원쑤놈들을 족치는 우리 사람들의 장쾌한 함성이였습니다. 나는 우리 동무들도 싸우고있을 장거리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습니다.

나는 드디여 소년투쟁대동무들과도 마식령인민유격대아저씨들과도 인민군대아저씨들과도 만났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동수가 최선생님과 함께 나를 콱 얼싸안았습니다.

《만길아! 잘 싸웠다.》

《만길아! 정말 용감했어.》

동무들도 모두 달려와 나를 영웅이나 되는듯이 떠받들며 칭찬해주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선생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내가 용감한 애라는 말을 듣다니, 나는 무엇보다 이것이 제일 기뻤습니다.

이 순간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용감한 사람이 세상에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것을! 원쑤를 끝없이 미워하고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러한 마음이 바로 용감성을 낳는다는것을!

투쟁속에서 용감해진 우리 소년투쟁대동무들은 싸워이긴 고향마을을 굽어보며 승리의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 끝 ―

주체42(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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