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8호에 실린 글

 

  

    □ 중편소설 □

 

                                                         

 

                           ( 제 5 회 )

 

                                     김  정

 

11. 달  밤

 

온종일 아이들은 농장벌에서 뛰놀았다.

그들은 뜨락또르가 제 몸보다 더 우람한 짐을 싣고 기운차게 퉁탕거리는것을 보았고 재간둥이수확기가 베여들인 벼단에서 제창 낟알을 털어내는것을 보았다.

농장마을의 중학생들이 밭머리에서 들쥐굴을 찾아내여 고간에 훔쳐다넣은 벼알들을 모조리 털어내는것도 보았다.

아이들은 기름에 튀기고 불에 그슬린 닭이 아니라 꼬꼬댁거리며 걸어다니는 빨간 볏이 달린 진짜 산 닭을 보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자기들도 입어본 모세타의 실을 낸다는 곱슬곱슬한 면양의 털도 손으로 만져보았다.

지렁이들이 꿈지럭거리는 가을갈이를 한 밭의 구수하고 싱긋한 흙냄새는 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금동이의 주머니는 벼이삭이니 콩꼬투리니 강냉이수염이니 하는 잡동사니들로 불룩해졌다.

강변에서 주은 다섯개의 차돌도 물론 그 주머니에 들어갔다.

그것은 정으로 쪼아낸것처럼 모가 동글동글하고 얼음과자나 백묵보다도 더 말쑥하고 새하얀 돌이였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드는 그 돌들이 너무나 곱고 탐탁스러워서 금동이는 티가 묻을세라 종이로 싸고 또 쌌다.

동학이는 아이들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는데 쓸 강아지풀만 해도 한주머니가 되게 꺾었다.

이들은 동쪽으로 30리를 걸었고 해가 지자 서쪽으로 그 30리를 되돌아왔다.

달뜰무렵에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들 길섶에 주저앉아버렸다. 벌에서 하루밤을 보내기로 하고 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논판 깊숙이 자리를 옮기였다.

몸에 배였던 땀기가 쑥 빠지자 금동이는 등골이 으시시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쓰르렁쓰르렁 불어치는 밤바람이 팔소매끝으로, 바지가랭이밑으로 마구 기여들어 찬김을 끼얹었다.

추위를 몹시 타는 효남이는 우들우들 떨다못해 이발을 딱딱 마주쫏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콩콩 기침까지 터치였다. 기침이 좀 가라앉자 그 애는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효남아, 왜 우니? 아프니?》

금동이는 깜짝 놀라서 효남이를 흔들었다.

《…》

효남이는 대답없이 울음소리만 더 높이였다.

《무섭니?》

《…》

《그럼 왜 우니?》

《이러다 집에 못 가믄 어쩌니? 어머니가 찾겠는데…》

《너무 걱정말어. 래일 아침 뻐스를 타면 돼.》

금동이는 우는 효남이를 어떻게 달랠지 몰라서 쩔쩔맸다.

다른 아이들이 다 울어도 그만은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재수나 동학이나 주섭이도 울보가 아니니 걱정할것이 없었다.

그런데 밥을 한끼만 건네여도 울상을 하고 다니는 순일이만은 기나긴 이밤을 어떻게 보내겠는지 자신이 없었다.

허튼소리를 곧잘하는 그마저 덩달아서 훌쩍거린다면 도무지 뒤숭숭해서 견뎌낼것 같지 못했다.

금동이는 이런 때 일곱 아이가 다같이 용감하고 참을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조용 효남이를 달래였다.

《효남아, 울지 마. 울면 유치원이야. 이게 얼마나 재미나니. 우리 절로 뻐스도 타고… 우리 절로 농장벌까지 오고… 밥도 안 먹고 용감하게 밤을 보내는게 얼마나 재미나는가 말이야.》

효남이는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금동아, 그 앤 겁쟁이야. 애기야. 탁아소야.…》

저쪽구석에서 동학이가 비양조로 말했다.

《효남아, 그럼 너 혼자 집에 가려마.》

《싫어. 너나 가거라.》

효남이는 빽 소리를 지르고나서 울음을 뚝 그쳤다.

《애기! 애기!》

동학이는 저만치 쫓겨가면서도 그냥 효남이의 약을 올리였다.

잠시후 아이들은 벼짚《집》을 만들었다. 논뚝에 있는 벼가리를 한쪽벽으로 삼고 빙둘러가며 《벽》을 쌓아올렸다.

바닥에도 누기를 막을수 있게 북데기를 깔았다. 하루밤 자고갈 《집》치고는 제법 아늑하였다.

《농장벌은 정말 좋지!》

《응, 좋아. 난 과수원이 제일 마음에 들어. 아무때나 사과를 먹을수 있거던.》

《쳇, 수확기는 어떻구.》

《난 뜨락또르가 최고야. 뜨락또르가 제일 힘이 세니깐.》

《다 좋은데 길이 좀 울퉁불퉁해. 그래서 뜨락또르랑 자동차랑 막 숨이 차서 성난것처럼 씩씩거리더구나.》

《우리가 크면 거기다 멋있는 길을 내야지. 우리 아빠트앞에 있는것 같은 길을 말이야.》

《참, 우등불이 있음 더 멋있겠는데. 항일유격대처럼 척 피워놓구…》

달은 어느덧 하늘 한복판으로 헤염쳐갔다. 《너희들끼리만 얘기하지 말구 나두 좀 듣자.》라고나 하듯 달은 《집》안을 넌지시 들여다보았다. 별들은 눈웃음을 지으며 알은체를 했다. 그 별들은 금동이네 산수책(당시)에 있는 수자를 다 그러모은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것 같았다.

《하늘엔 참 전기불이 많지?》

하고 금동이가 그 별들을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어디 전기불이니? 별이지.》

저쪽구석에서 잠든줄 알았던 동학이가 킁 하고 코김을 불며 한마디 했다.

《아니야. 별이라는 전기불이야. 저 전기불은 모두 40촉짜리야. 너무 어두워서 달이라는 500촉짜리 전기불을 매단거야.》

금동이의 엉뚱한 말에 아이들이 와그르르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그럼 어떤 날에는 왜 500촉이 불을 켜지 않니?》

동학이는 말다툼에 흥이 끌리는지 벽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고 금동이를 지켜보았다.

《그거야 고장이니까 그렇지 뭐.》

《그리구 낮에는 전기불들이 다 어디루 달아나니?》

《달아난다구? 달아나는게 아니야. 낮엔 해가 혼자 있어두 밝으니까 전기를 아끼느라구 켜지 않는거야.》

아이들은 금동이의 말이 허튼소리인줄을 알면서도 귀가 솔깃해서 들었다.

동학이의 배에서 난 쪼르륵소리가 그만 이야기를 망그러뜨렸다.

《어디서 우뢰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재수가 시치밀 따고 말하자 동학이는 배를 슬슬 만지며 《아이구, 배가 고파나네!》 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때에야 아이들은 자기들이 두끼나 굶었다는것을 다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있을줄 알았더면 아침밥을 먹을 때 저녁밥까지 미리 먹어둘걸 그랬다고 금동이는 후회하였다. 그는 아이들이 배고파하는게 죄다 자기탓이기나 한것처럼 속이 조마조마해났다. 그리고 허기증이 나서 쩔쩔매는 동학이나 순일이가 가엾어보이기까지 했다.

다른날 같으면 그들은 지금쯤 모두 식탁앞에서 어머니들이 지어주는 밥이나 국수를 맛나게 먹고있을것이다.

금동이는 오늘 저녁 제비국을 끓여주겠노라고 하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까짓 제비국을 한끼쯤 못 먹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동학이나 순일이나 또 다른 아이들이 배고파서 헐헐하는건 참 딱한 일이다.

금동이는 아침에 집에서 먹다가 남겨둔 마른 명태 생각이 나서 얼른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 명태를 두토막 내여 동학이와 순일이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었다. 자기가 배고플적에도 남에게 먹을것을 주고나면 배가 부른것만치나 기분이 흡족해진다는것을 그는 난생 처음으로 깨달았다.

순일이는 자기에게 차례진 명태토막을 효남이한테 몽땅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처럼 끙끙 갑자르며 아빠트마을짝패들이 《우리 창고》라고 부르는 자기의 주머니에서 여섯알의 사탕을 꺼냈다.

《저 〈창고〉는 정말 요술창고야. 사탕이 나오너라 하면 사탕이 나오고 호두가 나오너라 하면 호두가 나오거던.》

동학이가 사탕을 깨물며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정말 그래. 순일이의 주머니는 식료공장이야.》 하고 재수도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은 순일이가 먹새퉁구리인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맛있게 사탕들을 먹었다. 그런데 사탕임자인 순일이만은 량볼을 부러 봉긋하게 내밀고 빈 입질을 열심히 하는척 하였다. 사탕이 한알 모자랐던것이다.

제일 먼저 이것을 눈치챈 금동이가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사탕을 어금이로 뚝 깨뜨려 그중 한쪽을 순일이앞에 내밀었다.

순일이는 입속의 거짓사탕을 씹으며 도리를 흔들었다.

《사탕을 먹었더니 더 배고프구나. 오늘 저녁엔 어머니가 만두국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눈깜짝할사이에 사탕을 먹어치운 동학이는 번지르르 침이 도는 입술을 혀끝으로 감빨다가 뿌르르 벼무지밖으로 기여나갔다. 재수도 그랬다.

논벌이 끝나는 최뚝 저쪽에 푸르싱싱한 무우밭이 보였다. 그 기슭에서 동학이가 어정거리고있었다.

《동학아, 오라!》

금동이는 두눈을 지릅뜨고 큰소리로 웨쳤다.

《…》

《못 오겠니?》

그래도 동학이는 징겅징겅 무우밭으로 들어갔다.

《가만있어. 내 일곱개만 뽑을게.》

《오란데두. 사람들이 보믄 어쩌니!》

동학이는 들은체도 안했다. 큰놈을 고르는지 허리를 굽히고 이리기웃 저리기웃 한다.

동학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밭에서 나와 아이들 있는데로 되돌아왔다. 그 애는 벼무지우로 벌렁벌렁 기여올라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금동이랑 재수랑 순일이랑도 동학이의 곁에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나서 배운 노래란 노래는 빼지 않고 모조리 냅다 불러대는데 뒤에서 《이녀석들, 벼무지우에서 내려라!》 하는 어른의 노한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덤벼치며 땅에 뛰여내리였다.

두툼한 학습장을 손에 든 키가 썩 큰 사람이 그들을 굽어본다. 아마 학습회에 갔다오다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웬 아이들이냐?》

농장원은 첫번보다 목소리를 퍽 누그러뜨렸다.

《시내에서 왔어요.》

금동이의 대답이였다.

《어느 구역에서 말이냐?》

《중구역 경림동에서요.》

《경림동?! 그 먼데서 왜 여기루 왔니? 혹시 도깨비한테라두 홀린게 아니냐?》

《아니예요. 우린 평양이 얼마나 넓나 보려구 여기까지 왔어요.…》

금동이는 농장원에게 하루동안 있은 일을 대충 이야기하였다.

《허참!》

농장원은 어이가 없는지 너털웃음을 날리였다. 아이들의 옷에 달라붙은 북데기를 차례로 털어주며 연송 《허참!》, 《허참!》 하였다.

(동학이가 무우밭에 들어간걸 본 모양이구나. 야단났는데!)

금동이는 농장원의 입에서 무우이야기가 나올가봐 속이 한줌만 해졌다.

《그래 집에두 이야기 안하구 나왔단 말이지?》

하고 그 농장원은 여전히 무우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딴전을 피웠다.

《예.》

금동이의 대답에는 벌써 풀기가 없었다.

그는 이 순간에야 책상우에 책을 한벌 널어놓고 온것이 생각났고 덜퉁스런 형이 모이만 주지 않는다면 진종일 배를 곯고있을 새조롱의 불쌍한 밀화부리가 얼핏 떠올랐다.

순일이는 빈 방안에 혼자 남겨두고온 네살난 누이동생을 생각했고 재수는 아버지한테 가져가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싸주던 점심밥곽을 생각하였다. 동학이는 토요일날 학교에서 온 다음에는 한번도 풀어헤치지 않은 책가방과 아직 손도 대지 못한 한달구지쯤 되는 숙제문제들을 생각하였다.

뭐니뭐니해도 효남이만큼 큰 걱정거리를 두고온 아이는 없을것이다.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근무하는 형을 찾아 5년만에 평양으로 왔다는 용해공삼촌과 함께 그는 오늘 기념사진을 찍기로 약속하였던것이다.

《이녀석들, 가자!》

농장원은 재담군같은 말투를 가시고 정색해서 말했다.

(이제 불이 밝은데 가서 우리 주머니도 털어보구 이름도 물어보겠지. 그리군 학교에 전화할거야. 참 여기에두 전화가 있을가? 전화가 없었음 좋겠는데. 전화가 없으면 차를 타고가서 일러바치겠지. 차두 없었음 좋겠네.)

금동이의 머리속에는 백가지쯤 되는 걱정이 단꺼번에 떠올랐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시무룩해서 잠자코 농장원의 뒤를 따랐다.

농장원은 담장우에 호박이 딩굴고있는 부락변두리의 문화주택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대문앞에서 개가 사납게 짖어댔지만 어서 들어오라고 맞아들이는 주인어머니의 목소리는 퍼그나 부드러웠다.

후끈후끈한 방에 전기불도 밝았다. 다행히도 전화기는 없었다.

《중구역에서 온 1학년생들이요. 평양이 얼마나 넓나 보려구 예까지 왔다우.》

뚜껑에 《작업반장수첩》이라고 쓴 책을 방바닥에 놓으며 농장원이 말했다.

(작업반장이로구나!)

금동이가 제나름으로 속짐작을 하는데 싹싹하기 이를데 없는 어머니가 아이들이 앉을 자리들을 거두매하며 한마디 한다.

《멀리서 용케들 왔구만. 모두 식전일테지?》

《식전이고뭐고 상관할게 있소? 온다간다 소리두 없이 집을 떠난 어벌머리 큰 녀석들인데. 실컷 배고파보라지.》

작업반장은 숱진 눈섭을 쭝깃해보이며 일부러 엄포를 놓았다.

그 엄포가 무슨 신호였던지 어머니는 소리없이 웃으며 부엌으로 나간다.

아이들은 옹색하던 기분이 좀 풀리여 하나둘씩 올방자를 흐트렸다.

《내가 관리위원회에 가서 전화를 좀 걸고올테니 너희들은 그동안 누워들 있거라.》

작업반장은 아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드러눕는것을 보고서야 밖으로 나갔다.

《우리 집에 저런 귀빈들이 온적이 한번두 없지. 우리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일 사랑해주시는 일곱살내기들이 아니요. 그런즉…》

부엌문을 열고 능청을 떠는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사이문짬으로 새여들어왔다.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없이 《호호.》하고 웃었다.

잠시후 부엌에서는 도마를 두드리는 칼장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함박에 쌀을 이는 소리며 불릉불릉 가마끓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이들은 드러눕기바쁘게 모두 잠에 곯아떨어졌다.

잠들지 않은것은 금동이 혼자였다. 그는 주인어머니가 내여준 베개우에 한쪽볼을 대고 창문에 어린 푸른 달빛을 쳐다보고있었다.

시내에서는 지금쯤 마지막통근뻐스들이 거리로 줄달음칠것이다.

준첩선우에 강바닥의 모래를 파올리는 딸그락소리가 잠든 아빠트창문유리를 조용히 두드릴것이다.

반나절동안 보지 못한 거리며 집이 못 견디게 그리웁다.

(어머닌 지금 날 찾느라구 야단이겠지. 내가 여기 누워있는줄도 모르구… 금동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울지두 몰라. 이제 우리가 돌아가면 기뻐서 막 눈물을 흘릴거야.)

금동이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가 살풋이 잠이 들었다.

《…〈평양은 얼마나 넓은가?〉, 글쎄 일곱살짜리 좁쌀친구들치고는 얼마나 통이 큰 궁냥들이요. 저 애들의 일곱살에 비하면 우리 일곱살이야 정말 값없이 흘러갔지.…》

잠결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작업반장의 목소리였다.

《우리 일곱살적에야 뭐 밥을 알았나요, 학습장을 알았나요, 명절을 알았나요.》

한숨끝에 주인어머니가 하는 말도 먼 하늘나라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내가 일곱살 잡히던 그해는 흉년치고도 아주 못된 흉년이 들었댔소. 하루는 쪽박을 쥔 어머니를 따라 지주집으로 갔댔소. 어머니는 구걸했소.

〈나리님, 두되박만 꿔주십시오. 이 애들을 불쌍히 생각해서…〉 아마 같은 말을 한 쉰번쯤 되풀이했던것 같소. 나는 〈나리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줄줄로만 알았댔소. 고간이 터지게 들어찬 쌀가마니들을 보았으니깐. 그러나 천만에… 지주놈은 고간문을 쾅 닫고 소대가리만 한 자물쇠를 덜컥 채웠소. 빈 쪽박을 들고 나오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너무 분해서 울었소. 그해에는 내내 들에서 나무꼬챙이를 들고 메싹을 캐먹었소. 이게 바로 우리 일곱살이였단 말이요.》

(그 《나리님》은 정말 못된 깍쟁이구나. 돼지같은 욕심쟁이구나. 저 아버진 어렸을적에 참 불쌍하게 살았는데!)

금동이는 눈까풀에 달라붙었던 잠기가 말끔히 달아났다. 게슴츠레했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작업반장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저 우리 봉남이만 해두 일곱살적엔 제 에미 치마자락에 매달려 밥투정을 하지 않았소. 아홉살때에야 겨우 1학년생이 되였지. 그런데 이 녀석들은 글쎄 벌써 신문을 좔좔 내리읽구 편지두 쓴다질 않소. 자기 수도를 얼마나 사랑하나 보우. 속에 대감이 틀구앉았거던. 아주 여무진 올종자들이란 말이요!》

《그게 다 우리 어버이수령님 덕분이지요. 수령님께서 유치원나이에 벌써 아이들이 글을 배우게 해주신 덕분이지요.》

《우리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11년제의무교육이 정말 좋긴 좋소! 허허, 저녁이 다된것 같군. 이녀석들을 깨워야겠소.》

아이들은 곧 푸짐한 저녁상앞에 마주앉았다.

완두콩이 섞인 흰쌀밥과 달콤한 생배추국에 보질보질 땀을 흘리면서 그들은 부지런히 숟갈질을 해대였다. 달작지근한 떡호박은 꿀떡 넘기자마자 살로 가는것 같았다.

저녁상을 막 물리려는데 밖에서 자동차소리가 났다. 경적소리가 연거퍼 울렸다.

《원 성미도 급한 총각이군.…》

작업반장은 창문밖을 향해 눈을 찡긋해보이고나서 말코지의 모자를 벗겨 썼다.

《요기두 했으니 이젠 차나 타보자. 너희들을 찾느라구 온 도시가 잠을 못 잔다누나. 어머니들이 10년 썩을 속을 하루밤사이에 다 태웠을게다.》

작업반장은 벌써 시내에 전화를 걸어놓고 온 모양이다. 그런데 거기 시내에서 어쩌더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잠시후 아이들을 태운 《갱생58》은 시중심부를 향해 떠났다.

《이녀석들 그래, 우리 평양이 어떠냐?》

운전사의 곁에 시창을 반나마 가리고 앉은 작업반장이 긴 허리를 돌려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작업반장이 대답을 기다린다는것을 잊고 묵묵히 앉아 시내쪽만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수도의 밤풍경에 흠뻑 취해버린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말보다도 힘찬 노래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재수가 대답대신 《빛나라 우리 평양…》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불렀다.

(공장에선 새옷을 지어 우리에게 입혀주구 밭에선 콩을 심어 우리에게 우유를 짜주구 낯설은 어머니도 저녁을 지어 푸짐히 먹여주는 나라!

우리 나라는 정말 좋구나. 어디 가나 사랑받는 1학년생은 참 좋구나!)

차창가에 흘러가는 별들을 바라보며 금동이는 생각하였다.

별밝은 하늘처럼 넓고 휘황한 불천지가 천천히 아이들을 마중오고있었다.

불천지의 그 한복판 높고높은 만수대언덕에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의 동상이 자애롭게 그들을 바라보고계셨다.

온종일 너희들이 밟고다닌 농장벌도, 그 벌에서 익어가는 콩도, 벼도, 너희들에게 저녁을 지어준 작업반장부부도 모두 너희들을 위해 있는것이라고 아버지원수님께서는 말씀하고계시는것 같았다.

금동이는 가슴을 울렁거리며 작업반장과 운전사의 어깨사이로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을 우러러보았다.

옹근 하루동안이나 보지 못한 학교앞마당의 아버지원수님의 동상이 저절로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자 잠을 자고있던 한가지 생각이 별찌처럼 그의 머리속을 지나갔다. 그는 낮에 강변에서 주은 차돌을 아버지원수님 동상의 주변에 깔 생각을 하면서 남몰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였다.

 

12.  아 버 지

 

다음날 금동이 어머니는 식물학연구소에 있는 세포비서를 찾아갔다. 저번날 금동이네 집에 찾아왔을적에 《곡식으로 말하면 너희들이 강냉이영양단지와 같은데…》 하고 말하던 그 사람이였다.

《금동이 어머니가 어떻게 여기루 다 오셨소?》

시험포전을 돌아보던 비서는 흙묻은 손을 툭툭 털고나서 밭머리의 걸상에 걸터앉았다. 금동이 어머니에게도 자리를 권하였다.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금동이 어머니는 걸상 한쪽에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 한숨을 푹 내쉬였다.

《답답할 때에야 이런데 와서 맑은 공기를 쐬는게 좋지요.》

세포비서는 금동이 어머니가 무슨 일로 왔겠는가를 빤히 짐작하고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뻑 따고 딴전을 피웠다.

《세포비서동지, 금동이 아버지는 언제쯤이나 반달령에서 돌아옵니까?》

잠시 입을 다물고 발끝만 내려다보던 금동이 어머니가 안타깝게 물었다.

세포비서는 색안경너머로 능청스레 금동이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허허, 령감이 무척 보고싶은 모양입니다레?》

《령감이 다 뭡니까. 요즈음은 금동이때문에 학질을 앓는데…》

《또 그 예방주사이야기 말입니까?》

《아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제는 그 애들이 더 큰일을 저질렀답니다.》

금동이 어머니는 금동이네가 력포구역에 다녀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세포비서는 처음에 미간을 쭝긋하고 듣다가 나중에는 무엇이 그리도 흐뭇한지 빙그레 웃음을 짓기까지 하였다.

《그런즉 굴레벗은 망아지같은 그녀석을 혼자서는 도저히 길들일수 없단 말이지요?》

《네. 애아버지가 있어야지 내 힘만으로는… 어째서 그렇게도 철딱서니가 없는지… 하긴 내 욕심이 지나친지도 모르겠습니다. 엊그제까지 유치원이였는데 학생옷을 입히니 그렇지 사실이야 코흘리개들이지요. 그것들이 어느 세월에 헴이 들겠습니까.》

세포비서는 파편자리가 거무스레한 손등을 잠간 내려다보고나서 활달한 걸음걸이로 걸상앞을 거닐었다.

《아주 기특한 코흘리개들이지요. 그래 아주머니는 금동이네가 력포구역에 갔다온것때문에 그 애를 욕했습니까?》

《아니요. 너무 속상하구 억이 막히니까 욕도 안 나가더군요.》

《다행입니다. 아주머니는 그 애를 욕할게 아니라 칭찬하구 평가해야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켰는데두요?》

금동이 어머니는 세포비서가 롱담을 하는지 진담을 하는지 몰라서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세포비서는 금동이 어머니앞에서 발길을 못박아세웠다. 그리고는 무엇때문인지 아까처럼 또 빙그레 웃었다.

《〈평양은 얼마나 넓은가?〉. 아주머니,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랑만적인 호기심입니까. 나나 아주머니나 일곱살적에 이런 호기심을 품어본적이 있습니까. 기껏해서 잠자리 잡이나 하구 남의 집 살구나무에 돌팔매질이나 했지요.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 키워내신 우리 1학년생들은 어떤가 말입니다. 자기 수도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은 애국주의의 싹입니다. 그런 싹은 금을 주고서도 바꿀수 없지요. 그 싹을 중시하고 더 크게 자래워줄 생각을 해야지 아이들의 주위에 울타리만 칠 궁리를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 애들이 어른들에게 미리 알리고 집을 떠났다면 소동이 벌어지지 않지요. 그러나 부모들은 애초에 그런 려행을 하도록 승낙하지도 않았을겁니다.

아이들을 될수록 울타리안에 붙잡아두려고 하는것이 부모들의 본능이니까요. 울바자안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통이 크지 못하고 쪼물짝한 인간이 됩니다. 꿈도 없고 호기심도 없고 랑만도 없는 랭랭한 심장을 가지고서는 자연을 정복할수도 없고 화구도 막을수 없습니다.

〈평양은 얼마나 넓은가?〉… 누가 시켜서 금동이네가 그런 려행을 했다면 나는 그다지 기특하게 보지 않았을겁니다. 자기들스스로 발기하고 실행한 행동이기때문에 나는 그걸 장하게 여기는것입니다.

확실히 우리 나라 1학년생들이 똑똑합니다. 나는 지금 11년제의무교육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입니다.》

금동이 어머니는 연구소뜨락에 들어설 때보다 퍼그나 밝고 개운한 마음으로 세포비서와 헤여졌다.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금동이네 학교에 들렸다. 비서가 장하게 보는 금동이네 려행을 김향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였다.

직일을 서는 교원이 어머니를 분과실까지 데려다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앞에서 중학생 하나가 머리를 쳐들었다.

어머니는 놀라서 문가에 굳어졌다. 그 중학생이 금석이였기때문이다.

《아니, 너는 왜 여기 와 앉아있느냐?》

《어머니만 뭐 학부형인가요. 나두 금동이의 학부형이 아니나요.》

금석이는 씽긋 웃었다. 학부형으로 동생네 학교에 와있는것이 짜장 만족스럽기라도 한것처럼.

그러나 어머니는 얼굴빛을 흐리였다.

《그럼 금동이때문에 호출을 당했니?》

《호출은 무슨 호출, 제발로 걸어나왔는데두요. 우리는 한주일에 한번씩 김향선생님을 만난답니다. 1학년생들의 과외생활문제를 의논하군 하지요.》

어머니는 한시름 놓인듯 금석이가 들어다주는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김향선생님은 어데 가셨니?》

《교원모임에 가셨어요.》

《선생님 기분이 어떻더냐?》

《명랑하더구만요.》

《어제 있은 일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더냐?》

《아이들이 일생토록 그 려행을 잊지 못할거라구 했어요.》

《또 뭐라고 했니?》

《선생님자신이 너무 감동되고 흥분되여 밤잠을 못 잤다구 했습니다.》

《그리구…》

《앞으로는 중학생들이 선생님과 짜고들어 금동이네 과외관찰과 견학을 잘 조직해서 자기 수도와 조국을 더 잘 알게 해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난 방금 김향선생님과 같이 이달 관찰계획을 세우던중이예요. 이것 봐요.》

금석이는 어머니앞으로 십륙절지 한장을 밀어보냈다.

거기에는 새로 일어선 비파거리와 보통강유원지견학계획이 꼼꼼히 적혀있었다.

금동이 어머니가 그 계획을 들여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있을 때 먼 북쪽에 출장간 금동이 아버지 김민우연구사는 《헐떡고개》라고 부르는 령길을 걸어가고있었다. 지난 한달동안 밤골에서 벌린 일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그는 지금 매바위골로 돌아간다. 매바위골에는 반달령지구에 와있는 식물학연구소 일군들의 본부가 자리잡고있다.

그새 밤골에서는 스무정보나 되는 잣나무밭을 새로 일구었다.

금동이 아버지는 기술지도를 맡아보았다.

낮이면 나무모밭과 기름나무밭에서 뛰여다녔고 밤이면 전등불밑에서 학위론문을 썼다. 25전짜리 학생용학습장을 두권이나 삼켜버린 그 론문은 빨간 네모꼴이 자그만치 200개씩 살고있는 원고지에 부랴부랴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집단과 함께 오늘밤 맡은 일을 아퀴짓고 평양으로 돌아가게 된다.

며칠후에는 김일성광장에서 금동이와 함께 당창건 30돐을 경축하는 축포를 구경하게 될것이다.

고개마루에 이르자 그는 짐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오부랑꼬부랑한 생당쑥물부리를 꺼내여 두어번 맛나게 들이빨고는 코구멍을 벌름벌름하다가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스무메터앞에 있는 수림을 보았던것이다.

땅에 딩구는 가랑잎을 들어 땀밴 얼굴에 대고 헛되게 흔들던 연구사는 조여맸던 로동화끈을 늦추고나서 총총히 비탈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고개 하나를 더 넘어야 매바위골에 가닿는것이다.

우불구불한 오솔길이 성근 소나무숲에 자취를 가무리고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어름에서 갑자기 재깔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득아, 몇알 땄니?》

《한알두 못 땄어.》

《한알두? 힝, 바보. 이렇게 돌팔매질해두 되는데…》

그러자 벌레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던 소나무들의 담장우로 주먹만치 큰 흙덩이가 불쑥 솟구쳐올랐다. 한번 또 한번 다시 한번…

연방 떠오르던 흙덩이는 매번 나무들의 정수리에 부딪쳐 와시시 부서지고 그때마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숲에 드리운 고요를 거칠게 한다.

밤나무우에 기여오르던 다람쥐는 경계하듯 작고 귀여운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다가 무슨 위험을 느꼈는지 쪼르르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갔다.

(겁이 꽤 많은데.)

김민우연구사는 빙긋 웃으며 걸음을 재우쳤다.

다람쥐의 겨울나이를 방해한 아이들이 드디여 숲언저리에 나타났다.

모두 셋이였는데 예닐곱살쯤 되는 졸망구니들이였다.

그중 커보이는 귀밀눈의 아이는 고리에서 풀리여나온 혁띠끄트머리를 사타구니앞으로 잔뜩 드리우고 서서 열심히 거무틱틱한 소나무껍질을 칼질하고있었다. 팔에 힘을 줄 때마다 그 애의 입술은 삐죽하니 앞으로 내밀리군 했다.

무엇을 쑤셔넣었는지 두 주머니가 불룩했다.

불깃불깃한 얼굴이 몹시 퉁투무레하고 검실검실하게 생긴 아이는 방금 양지쪽에서 캔듯싶은 산마늘을 두 동무의 코앞에 자랑하듯 흔들어대고있었다. 그 애의 주머니도 역시 터질듯 팽팽했다. 산골아이들치고는 지나치게 말쑥하고 말랑말랑해보이는 키가 작은 꼬마둥이는 제키보다 두곱이나 더 긴 막대기로 소나무우듬지를 헛되게 두드리고있었다. 그 애는 떨어진 솔방울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못마땅한듯 홱 던져버렸다. 해말쑥한 살결에 비해서는 퍼그나 칼칼해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고집스럽게 소나무우듬지를 쳐다보고있었다.

(저 앤 몹시 낯이 익은걸.)

잠시 생각을 굴리던 연구사는 개학날 매바위골학교옆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차돌》이라는 이름을 쉽게 기억해냈다.

(그렇지, 종아리에서 피가 흐르던 그녀석이로군.)

연구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언덕길에 울리는 발자국소리를 듣자 아이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무엇때문인지 그들은 약속도 없이 셋이 다 헤벌쭉 웃었다. 연구사의 웃음띤 얼굴이 몹시도 친근해보였던 모양이다.

차돌이는 소나무우듬지를 때리던 작대기를 얼른 등뒤에 감추고 꾸뻑 인사를 하였다. 그도 자기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던 고마운 연구사를 알아본것이 틀림없었다.

《응, 차돌이였구나. 오래간만이다. 나무에다가 팔매질을 한게 너냐?》

김민우연구사는 부러 엄하게 물었다.

그러나 차돌이는 조금도 주눅이 드는 기색이 없이 면바로 연구사를 치떠보다가 눈길을 돌려 얼굴색이 붉은 아이를 흘끔 돌아보았다.

얼굴색이 붉은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손에 든 산마늘을 바지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네가 그런게로구나. 그랬니?》

연구사의 목소리는 첫번보다 좀 부드러워졌다.

《예, 삼득이가 그랬어요.》

키큰 아이가 무르팍으로 짝패의 허벅다리를 툭 건드리며 앞발질을 하였다.

《삼득이가 그랬단 말이지. 나무에다가 함부로 팔매질을 해선 안돼. 그런데 팔매질은 왜 했니?》

《솔방울을 따려구 그랬습니다.》

삼득이는 곁에 동무가 앞발질을 하는게 께름했던지 선뜻 입을 열었다.

《솔방울을 따서 뭘하려구?》

《배두 만들구 오리두 만듭니다.》

《솔방울을 가지구? 오, 그러니까 너희들은 모두 1학년생들인게구나?》

《예, 1학년입니다.》

김민우연구사는 눈귀를 가느스름하게 쪼프리고 한참동안 세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굽어보았다.

그리고는 먼 하늘끝으로 잠시 눈길을 보내였다.

두달남짓하게 보지 못한 아들생각이 간절하게 밀려들었던것이다.

연구사의 머리에는 금동이와 함께 보낸 마지막날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장기출장을 떠나는 그날 연구사는 오래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될 막내아들을 섭섭치 않게 해주려고 동물원구경을 시켰었다.

아침 열시에 시작한 구경은 오후 한시가 될 때까지도 끝장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금동이가 터무니없이 시간을 질질 끌었기때문이다.

그 애는 아버지가 미리 정해놓은 로선을 따라 데리고다니며 《이것은 앵무새다.》, 《저것은 아프리카타조다.》 하고 설명해주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남의 설명은 듣지도 않고 제눈으로 줄창 해설판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흥미있는 짐승들이 있는 우리앞에서는 10분이고 20분이고 붙박이로 서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좀처럼 아들과 《걸음》을 맞출수 없었다. 기진맥진한 아버지는 아들이 제멋대로 구경을 하게 내버려두고 동물원밖으로 나와버렸다.

두시가 거의 되였을무렵에야 금동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났다.

그 애는 동물원 안뜰의 늪가에서 잡은 십전짜리 돈보다 조금 더 큰 청개구리를 손에 들고있었다.

《아버지, 이거 엄마개구리말을 잘 안 들은 청개구리나?》 하고 그 애는 나오자바람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다섯살때 아버지에게서 들은 《청개구리》란 옛말을 그는 용케도 잊지 않고있었다.

《그렇단다. 그건 뭘하려구 잡았니?》

《어항에 넣으려구.》

《그까짓 엄마말두 잘 안 듣는걸 어항에 넣어선 뭘해.》

《그래두 엄마가 죽은담엔 울지 않았나.》

《들어가서 늪에다가 도루 넣어라. 엄마개구리랑 울지 않게.》

《싫어. 어항에 넣구 아이들한테 구경시킬래.》

금동이는 끝내 그 청개구리를 집까지 가지고왔다.

그런데 개구리는 가엾게도 어항속에 넣자마자 바닥에 가라앉았다. 동물원에서 오는 새에 금동이의 조마구안에서 숨이 막혀 죽고말았던것이다.

금동이는 너무 분해서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버지가 떠날 시간이 다되였는데도 그는 어데 갔는지 좀처럼 얼굴을 디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끝내 막내아들을 보지 못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매바위골에 온 후 금석이한테서 받은 편지를 보고서야 김민우연구사는 그날 동물원에 도로 찾아간 금동이가 청개구리 한마리를 다시 잡아가지고 어슬어슬해질 때에야 집에 돌아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허허, 그 옹고집쟁이가 이제는 1학년생이 되였단 말이지. 아버지원수님께서 다녀가신 학교에서 공부한단 말이지. 제손으로 제법 편지까지 써보내구.)

며칠전에 매바위골에 갔다온 한 연구사가 금동이의 편지를 전해주어 김민우연구사는 그지간의 집소식을 대강이나마 알수 있었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구김살없이 그대로 적어내려간 금동이의 편지솜씨에 아버지는 특별히 감탄하였다.

호젓한 산길에서 1학년생들을 만난 연구사는 막내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또다시 새로와졌다.

그는 아이들의 머리를 골고루 쓸어주며 그들의 주머니를 넌지시 들여다보았다. 주머니마다 밤알이 듬뿍 찼다. 인범이(귀밀눈)의 한쪽 주머니에는 네모지게 다스린 소나무껍질과 솔방울이 있었다.

삼득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야 차돌이의 주머니에는 솔방울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차돌인 솔방울사냥을 한게 아니라 밤사냥을 했구나. 내가 좀 따줄가?》

연구사는 등에 진 배낭을 벗으며 차돌이의 눈치를 슬쩍 살피였다.

《예! 예!》

차돌이는 어려움도 잊고 연구사의 팔굽을 덥석 그러잡았다.

그는 낯설은 아저씨가 로동화를 벗는 모양이며 바지가랭이를 걷는 모양이며 인범이보다 더 날파람있게 소나무우로 바라오르는 모양을 신이 나서 살펴보았다.

《작대기를 이리 다구.》

연구사는 별로 겨냥하는 기색도 없이 작대기를 휘둘렀다.

후두둑… 후두둑…

솔방울들이 무데기로 떨어졌다.

차돌이가 그만하면 됐다고 소리칠 때까지 연구사는 작대기질을 계속하였다.

《솔잎을 함부로 떨궈선 안돼. 소나무는 솔잎으로 밥도 먹고 숨도 쉬거던.》

그는 손에 잡히는 솔잎을 한뭉테기 담쏙 어루만져주고나서 땅에 뛰여내렸다.

무드기 쌓인 솔방울을 네몫으로 나누었다. 세 아이에게 한몫씩 나누어주고 나머지 한몫은 연구사자신이 배낭에 건사하였다.

《아저씨, 아저씨두 배를 만드나요?》

연구사가 솔방울을 주어담는것이 신기하게 보였던지 차돌이가 물었다.

《아니다.》

《그럼 왜 솔방울을 가지고가나요?》

《우리 집에두 1학년생이 있단다.》

《1학년생이요?》

《그래, 차돌이 비슷하게 생긴 장난꾸러기지.》

《아저씨, 그럼 이것두 가져가세요.》

차돌이는 자기 몫으로 차례진 솔방울들을 연구사의 배낭에 와르르 담아넣었다.

《이것두요!》

인범이도 자기 몫을 내놓았고 삼득이도 주머니에 들어있는 자기 세간을 몽땅 털어냈다.

《내 걱정은 말구 너희들이나 가져라.》

연구사가 배낭속에 들어간 솔방울과 소나무껍질을 도로 끄집어내려 하자 아이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달아났다.

《금동이네 동무들에게 나눠주세요.》

제일 먼저 달아난 차돌이가 다래덩굴뒤에서 소리쳤다.

《얘들아, 자꾸 달아나지 말구 이리 오너라.

내가 너희들에게 멋진 배를 만들어줄테니.》

연구사는 구두술과 도장이 곁달린 손칼을 절렁거리며 애원하듯 아이들을 불렀다.

그래도 그 조무래기들은 들은체를 안했다.

《선생님이 제손으로 만들어오라구 했어요.

숙제는 제손으로 해야 한다구 했어요!》

차돌이의 해말간 얼굴은 이 말과 함께 아주 덩굴속으로 사라지고말았다. 삼득이와 인범이도 어디로 새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애들은 두번다시 연구사의 곁에 나타나지 않았다.

(허참, 기특한 녀석들인데.)

김민우연구사는 입을 쩝쩝 다시며 차돌이가 두고간 작대기를 들고 또다시 나무우에 올라갔다.

두되박 잘되는 솔방울을 따서 길우에 가려놓고 그우에 두개의 짤막한 쪽지를 남기였다.

《이 솔방울은 1학년생들인 삼득이, 인범이, 차돌이의것임. 다치지 말것.》

《삼득이, 인범이, 차돌이에게. 공작숙제를 잘하여 10점(당시)을 맞기 바란다. 고맙다.

안녕히!

                             식물학연구소 연구사 김민우》

김민우연구사는 예정보다 퍽 늦게 매바위골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는 1학년생들때문에 길가에서 좀 지체된것을 조금도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그 1학년생들때문에 그는 10리도 넘는 길을 흥겨운 기분으로 단숨에 가대였다. 우연히 맞다든 그 좁쌀친구들때문에 1학년생인 금동이도 더 사랑스럽게 그려졌다.

다음다음날 아침 수도로 돌아온 그는 벌써 직장에서 연구소의 세포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반달령에 내려갔던 연구집단의 활동에 대한 총화모임을 끝낸 그 자리에서 세포비서는 금동이의 교양문제를 의논하려고 김민우연구사를 따로 남게 하였던것이다.

《이건 금동이가 다니던 유치원 높은반의 하루생활표요. 동무는 이 생활표를 연구해본적이 있소?》

세포비서는 금동이네가 평양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걸 알아보려고 력포구역까지 갔다온 사건을 한참 이야기하다가 자기 생김새처럼 둥실둥실한 글자들이 씨원스럽게 씌여있는 규격지를 책상 한끝으로 밀어보냈다.

김민우연구사는 얼굴을 붉히였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활은 일과대로 흘러가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키워내리라 하는 립장이였단 말이지.…》

두사람은 함께 소리를 내여 웃었다.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은 알른알른한 창유리들에 어느덧 장미빛모닥불을 옮겨지폈다. 이야기는 벌써 옹근 한시간째나 계속되고있는것이다.

주사를 맞지 않고 학교공부를 뚜꺼먹은 금동이가 텔레비죤화면에 나타나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도 말밥에 올랐고 1학년생들의 교양문제를 의논한 전번달 세포총회 장면들도 말밥에 올랐다.

《석달전까지는 우리 아이들의 생활이 이랬소. 하루종일 교양원의 지도밑에서 째인 생활을 했거던. 그런데 지금은 어떻소? 한겻은 학교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나절은 집에서 보내오. 그 친구들의 그 반나절은 〈하고싶은대로 하는 시간〉이요. 바로 이 반나절에 그녀석들이 〈얼씨구나 좋아라!〉를 부른단 말이요. 예비는 이 반나절의 생활을 잘 조직해주는데 있소. 이 예비를 꽉 틀어쥐여야 하오!》

비서는 두손을 오그리며 하루생활표에 적힌 수자들을 모조리 퍼담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우리 금동이네를 위해 무척 마음쓰신게구나.)

김민우연구사는 아이들의 하루생활표를 두고 걱정하는 세포비서의 얼굴을 정에 찬 눈으로 쳐다보았다.

50살이 넘은 세포비서에게는 아이들이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 노을은 두해전에 대학을 마치고 정밀기계공장에서 기계기사로 일하고있었다.

비서가 말하는 《우리 아이들》이란 하나밖에 없는 그 딸이 아니라 연구소 모든 직원들의 아들딸들을 가리켰다.

아이들이 성적증을 타면 연구사들은 그것을 비서에게 곧잘 보이였다.

그래서 비서는 누구네 맏딸은 10점최우등생이고 덧이가 난 누구네 막내는 글씨가 오리발같아서 최우등을 못한다는것까지 모조리 알고있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겼던 김민우연구사가 고개를 쳐들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도 돌아오자바람으로 하루생활표를 검토하고 새 일과를 짜주었습니다.》

《잘했소. 그러나 짜주는것만으로는 부족하오. 일과대로 생활하도록 길들여야 하오. 길을 들이는것, 가만있자, 교육학에서 그 술어를 뭐라고 했던가?》

비서는 량미간을 모으고 기억을 들추다가 책상 한쪽모서리에 쌓여있는 책무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숨길수 없는 흔적》, 《까치네 새집들이 날》, 《탁구를 어떻게 칠것인가?》, 《흥미있는 산수문제》…

알맞춤하게 쌓여진 책들의 맨 꼭대기에 《교육학》이 있었으나 비서는 그 책을 뒤적이지도 않고 눈길을 연구사에게로 옮기며 말머리를 돌리는것이였다.

《민우동무, 년말까지는 출장이 없을테니 금동이한테 관심을 많이 돌려야겠소. 연구과제만 내두르지 말구 시간예비를 잘 짜서 금동이와 함께 가갸표두 외워보구 뽈두 차보구 얼음사탕두 사먹어보시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구사는 흥분을 억누르며 말을 더듬거리였다. 가늘고 긴 손가락들은 무르팍우에 놓인 모자채양의 량쪽언저리를 급하게 주물럭거리였다.

비서는 시꺼먼 눈섭을 쭝깃거리며 손등으로 책상을 몇번 두드리다가 책상앞에서 일어나 창문께로 다가갔다.

창유리에 물든 노을빛이 어리여 비서의 널직한 이마는 불그레해졌다. 머리카락도 불에 타는것처럼 보였다.

비서는 창문을 등지고 돌아서서 김민우연구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목소리는 좀전보다 더 은근해졌다.

《민우동무, 식물학도 아닌 자녀교육문제에까지 비서가 참견한다고 고깝게 생각지 마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난번 개학날에두 아이들속에 계시지 않았소! 궂은날인데두 그이께서는 찬비를 맞으시면서 창전인민학교(당시)에 찾아가시였소. 우리는 그날 수령님의 어깨우에 내리는 비를 막아드리지 못한 사람들이요. 우리가 학부형구실을 잘하지 못하면 그이께서 아이들때문에 더 큰 비를 맞으실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하오!》

다급히 울리는 전화종소리가 두사람의 이야기를 끊어버리였다.

한손으로는 송수화기를 집어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대머리를 문지르며 비서는 연구사를 돌아보았다.

《자, 그럼 금동이 아버지 가도 좋소.》

김민우연구사는 히죽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금동이처럼 머리를 한옆으로 기웃하고 비서의 방을 나섰다.

 

― 주체72(1983)년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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