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8호에 실린 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2등 당선작품

  

    □ 단편소설 □

 

 

                                                                                                                          박     수     연

 

1

 

착, 착, 착

텔레비죤도 켜지 않은 조용한 방안에 전자벽시계의 초침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립니다.

유리집속에서 사는 시계바늘 세 형제중에서 제일 날파람있고 부지런한 초침은 잠간사이에 둥근원을 한바퀴 빙 돌아갑니다.

그러자 느렁뱅이 분침이 나도 가야지 하고 한눈금을 소리없이 넘어갑니다. 한눈금, 또 한눈금…

어느덧 거부기걸음을 하는 분침도 둥근원을 빙돌아 제일 꼭대기에 있는 수자 《12》를 가리켰습니다. 뚱뚱보 시침은 그제서야 잠에서 깨여난듯 우뜰 놀라며 수자 《10》을 가리켰습니다.

밤 10시, 꿈나라로 부르는 잠시간이 된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아는 방 한가운데에 앉아있었습니다.

야속한 눈길로 벽시계를 지켜보는 그의 쌍까풀진 고운 두눈이 함초롬히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애타는 마음을 달랠길 없어 입술을 감빨던 진아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창문가로 다가가 어둠에 잠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문득 아래마을쪽에서 전지불이 번쩍이였습니다. 뒤이어 멍멍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혹시 어머니가 오시는게 아닐가?)

진아는 숨소리를 죽여가며 눈과 귀를 강구었습니다.

잠시후 밖에서 대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습니다.

(야, 어머니가 오셨구나.)

진아는 반가움에 넘쳐 방문을 활짝 열어제끼며 마당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어머니예요?》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저 쥐죽은듯 조용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을가, 분명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진아는 머리를 갸웃거렸습니다.

이때 그 의문을 풀어주려는듯 마당 한모퉁이 살구나무밑에서 큰뿔염소가 짧은 꼬리를 흔들며 매애― 반가운 소리를 지르더니 앞발로 땅을 탕탕 굴렀습니다.

그러자 《진아야, 너를 속인건 염소다.》 하고 일러바치기라도 하듯 우리안의 배뚱뚱이 어미돼지가 누운채로 꿀꿀거리고 그 소리에 맞장구를 치듯 닭장안의 닭들이 푸드득거렸습니다.

진아는 그래도 혹시나 하여 대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먹물을 뿌려놓은것처럼 새까만 어둠만이 눈뿌리를 찔렀습니다.

《야참, 어머닌…》

진아는 안타까움을 터치며 저도 모르게 동동 발을 굴렀습니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멀리 큰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으나 그쪽은 먹물속처럼 캄캄했습니다.

그의 머리속에는 어머니가 길을 떠나던 일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엿새전입니다.

아버지네 대대(진아의 아버지는 인민군대 대대장이랍니다.)의 한 병사오빠가 훈련도중 허리를 심하게 다쳐 군의소에 입원하게 되였습니다.

병문안을 갔다온 어머니는 곧 자강도 산골에서 살고있는 외할머니네 집으로 길떠날 차비를 했습니다. 그 오빠의 병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곰열을 구해오자는것이였습니다.

진아는 천리도 넘는 머나먼 길을 떠나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도 남았습니다.

군대아저씨모두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그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고생을 락으로 삼는 어머니의 지성어린 모습을 매일처럼 보고 느끼며 자란 그였으니까요.

노래에서처럼 양지바른 언덕우에는 진아네가 사는 마을이 있고 령을 넘어 산기슭엔 초소가 있어 군대들은 《우리 마을》이라고 하고 마을에서는 《우리 초소》라고 부르며 화목하게 산답니다.

물론 진아가 철부지 유치원시절에는 병사들에게 바치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다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여 농장 남새분조에서 바삐 일하는 어머니치마자락에 매달려 칭얼대며 애도 먹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소학교에서 제일 상급생인 4학년생입니다.

부엌일은 물론 집안거두매며 수십마리나 되는 집짐승관리, 무슨 일이든 막힘이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진아의 가슴은 자기도 군관가족의 당당한 성원이라는 남다른 긍지로 꽉 차있었습니다.

《어머니, 집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아버지가 마음쓰지 않게 집안일은 내가 다 맡아할래요. 그런데 빨리 돌아와야 해요. 15일전으로…》

진아는 달력을 보며 당부했습니다.

어머니의 눈길도 날자를 가늠하는듯 력서의 수자에 잠시 머물러있었습니다.

여섯밤만 자면 맞게 될 15일이라는 빨간 수자에는 파란 동그라미가 그려져있었습니다.

집안의 경사를 알리는 특별표시입니다.

아버지의 생일날일가요? 아닙니다. 그럼 진아의 생일날인가요? 그것도 아니랍니다.

그날은 군관가족의 집들에서만 맞이할수 있는 《병사들을 위한 날》이랍니다.

진아는 벌써 며칠전부터 이번 《병사들을 위한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려오고있었습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답니다.

아버지로부터 얼마전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찾으셨던 아버지장군님께서 《병사들을 위한 날》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병사들을 위해 온갖 지성을 다 바치고있는 부대의 지휘관들과 가족들의 수고를 치하하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전해들었던것입니다.

진아는 군관의 딸인 자기도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싶었습니다.

《병사들을 위한 날》에 어머니와 함께 제일 맛있는 음식을 많이많이 해가지고가서 군대아저씨들에게 학교 소년예술선전대의 《꾀꼴새》로 소문난 자기의 청고운 노래를 불러주고싶었습니다.

그러면 군대아저씨들이 고향에 있는 자기 친동생을 보는것처럼 좋아하고 반가와할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쉬임없이 전선길을 이어가시는 아버지장군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혹시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 아버지네 부대에 찾아오실지도 모릅니다.

아니, 꼭 그럴것만 같았습니다.

진아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진아가 정말 군관가족의 딸답게 훌륭한 생각을 했다며 크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진아는 그날부터 신바람이 나서 아침저녁으로 《병사들을 위한 날》에 군대아저씨들앞에서 부를 노래련습을 더 열심히 하고 어머니의 일손도 더 잘 도왔습니다.

그 모든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진아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며 말했습니다.

《진아야, 걱정말아. 〈병사들을 위한 날〉전으로 꼭 돌아오마.》

진아는 어머니가 그 약속을 꼭 지키리라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한번 다짐을 깨깨 받고싶었습니다.

《어머니, 그럼 나와 약속하자요. 14일까지 꼭 돌아온다는걸. 자!》

진아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어머니는 호수처럼 웅심깊은 두눈에 정찬 애정을 함뿍 담으며 딸의 요구를 성큼 받아주었습니다.

《자!》

《약속했어요?》

《그래, 약속했다.》

《약속을 어기면?》

《까마귀가 되지.》

어머니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어렸습니다.

《정말?》

《정말이지. 아무렴 내가 약속을 어기겠니?》

《야!》

진아는 손벽을 마주치며 기뻐했습니다.

진아는 어머니를 동구밖까지 따라나가 바래주던 일을 생각하며 방에 들어갈념도 하지 않고 대문가에 말뚝처럼 서있었습니다.

《이럴 땐 아버지라도 계셨으면…》

아버지는 이틀전 대대의 이동훈련로정을 돌아보러 떠났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도움도 바랄수 없는 일입니다.

(어머니, 이럴 땐 어쩌면 좋아요?)

진아는 마음속으로 하소연을 터쳤습니다.

 

2

 

《꼬끼요―》 암닭들의 대장노릇을 하는 빨간 변두 수닭이 긴 목을 쳐들고 건드러진 고음을 뽑았습니다.

《매애애―》 수염쟁이큰뿔염소는 경쾌한 중음을 울립니다.

그러자 얼룩돼지가 자기도 지지 않으려고 절구통같이 우람찬 몸집을 벽모서리에 대고 뻑뻑 긁으며 《꿀꿀》 하고 웅글은 저음소리를 냅니다.

비둘기는 《구구》, 오리는 《박박》, 게사니는 《겍겍》… 저마다 제나름의 아침인사를 나눕니다.

쌕쌕 코김을 불며 자던 진아는 집짐승들이 저저마다 《작은 주인님, 어서 일어나세요.》 하고 보채는듯 한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진아는 꽃담요밖으로 팔을 뻗쳐 한껏 기지개를 켜며 살풋이 눈을 떴습니다.

벌써 6월의 부지런한 아침해가 창문을 금빛으로 물들이고있었습니다.

(아이, 내가 늦잠을 잤네.)

진아는 호들쩍 놀라 발딱 일어났습니다.

눈을 비비며 방안과 부엌을 살펴보았습니다.

밤사이에 어머니가 오시지 않았나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오신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호― 어머니가 안 오셨구나. 정말 야단났네. 이 일을 어쩌나.…)

근심에 잠긴 진아는 얼나간 애처럼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대문밖에서 《진아야!》 하고 찾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웃집의 향이 어머니 목소리였습니다.

향이 아버지와 진아 아버지는 한부대 군관입니다.

향이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진아네 집에 찾아와 집짐승도 돌보고 집안일도 도와주고있었습니다.

진아는 얼른 마당으로 뛰쳐나가 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한살잡이 향이를 등에 업은 향이 어머니는 선녀처럼 고운 얼굴에 보름달같은 웃음을 지으며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진아는 나부시 머리숙여 인사하였습니다.

《일찍 일어났구나. 잘 잤니?》

《예. 향이야, 안녕!》

진아는 향이의 작고 오동통한 손등에 입을 오무려대고 바람을 불어주었습니다.

애기는 좋아라 캐득캐득 웃었습니다.

《어머니 안 오셨지?》

향이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예. 향이 어머니, 우리 어머니가 왜 아직 못오실가요? 어제까지 꼭 오신다구 했는데…》

진아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말끝을 흐렸습니다.

《곰열을 얻지 못해 늦어질게다. 귀한 약재니 그걸 구하기가 쉽겠니. 아마 숱한 걸음을 걷구계실게다.》

심심산골 먼 고장에서 남모르는 고생을 하고있을 어머니의 수고를 헤아려보는듯 향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측은한 동정에 젖어있었습니다.

진아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곰열을 구하려 땀에 흠뻑 젖어 산골마을 여기저기로 정신없이 뛰여다닐 어머니의 모습이 금시 눈앞에 얼른거렸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그 어디서인가 《병사들을 위한 날》때문에 걱정을 하고있을것입니다.

(야, 이럴 때 내가 어머니를 대신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진아는 자기가 어른이 못된것이 그리고 어머니처럼 맛있는 음식을 척척 만드는 료리재간을 못가진것이 못내 안타까왔습니다.

《향이넨 군대아저씨들한테 갈 준비 다 했나요?》

진아는 향이 어머니의 방조라도 받았으면 해서 물었습니다. 향이 어머니도 오늘 군대아저씨들한테 간답니다.

《방금전까지 기본적으로 해놨다. 이제 몇가지 음식만 더 만들면 되지. 그런데 진아야, 그건 왜?》

진아는 자기의 속마음을 내비치기가 주저되였습니다. 향이 어머니에게 부담될 미안한 부탁이였기때문입니다.

《저…》

진아는 공연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하지만 향이 어머니는 진아의 마음을 제꺽 알아차렸습니다.

《오, 음식준비때문에 그러니? 걱정말아. 너희집 몫까지 푼푼히 준비한단다.》

《예? 아이 그렇게야 어떻게…》

진아는 미안하여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진아야, 넌 그저 군대들앞에서 부를 노래준비나 잘해라. 뭐니뭐니해도 군대들은 네 노랠 제일 좋아할게다.

아무렴, 우리가 가지고가는 특식이 천냥이면 〈꾀꼴새〉노래는 아마 만냥은 될게다. 호호호…》

향이 어머니는 진아의 마음속 걱정을 풀어주려고 즐겁게 웃었습니다.

진아는 말을 못하고 신발앞코숭이로 땅에 금만 그었습니다.

《진아야, 빨리 집짐승들에게 먹을걸 주어야겠다. 저걸 봐라. 배가 고프다고 막 야단들을 하는구나.》

아닌게아니라 돼지는 우리우에 앞발을 대고 일어나 뛰쳐나올듯이 꿀꿀거리고 염소는 목에 맨 바줄을 살구나무에 돌려감으며 돌아쳤습니다.

향이 어머니는 씽하니 부엌에 들어가 바께쯔에 뜨물을 담아가지고 나왔습니다.

《향이 어머니, 집짐승먹이는 내가 주겠어요. 어서 집에 가보세요. 바쁠텐데…》

《일없다. 잠시면 될텐데 뭘 그러냐.》

돼지구유통에 뜨물을 쏟아주고난 향이 어머니는 오리와 게사니들에게 줄 먹이감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진아는 얼른 닭장문을 열어주고 토끼우리의 먹이통에 새 풀을 밀어넣어주었습니다. 그다음 큰뿔염소를 끌고 집앞에 있는 개울쪽으로 나갔습니다.

먹이풀들이 많은 곳을 골라 염소말뚝을 꽂고 돌아서려는데 고수머리 천룡이가 앞을 막아섰습니다.

천룡이는 진아네 소년단반의 반장이랍니다.

다른 애들보다 키가 유별나게 큰 그는 진아와 마주서서 말을 할 때면 마치 제 동생 대하듯 훈시하며 싱겁게 구는 애입니다.

지금도 그는 아주 틀스럽게 왼손을 허리에 척 얹고있었는데 오른손에는 휘친휘친 춤을 추는 낚시대가 들려있었습니다.

고기잡이 가는 모양입니다.

일요일이면 해가 공중에 떠오르도록 늦잠을 자는 그 애가 아침부터 부지런을 피우는것을 보자 진아는 불쑥 놀려주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룡아,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왜?》

천룡이는 큰눈을 슴벅이며 진아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잠보가 이른아침부터 부지런을 피우니까.》

진아는 눈가에 웃음을 띄우고 골려주었으나 천룡이는 주먹을 쳐들고 달려들 대신 늦잠을 못 잔것이 아쉬운지 하품을 하면서도 능청을 부렸습니다.

《해해, 내가 뭐 겨울나는 곰이라고 노상 늦잠만 자겠니. 참, 너 오늘 군대형님들한테 가겠구나?》

《가지 않음!》

자랑기가 실린 진아의 대답에 천룡이의 두눈이 반짝 빛을 뿌렸습니다.

천룡이는 지난 겨울 썰매를 타다가 저수지얼음구멍에 빠져 죽을번 한것을 기통수군대아저씨가 목숨을 내대고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인민군대아저씨들을 친형님처럼 따르며 군대아저씨들에 대한 말만 나와도 귀가 토끼귀처럼 일어선답니다.

《언제 가니?》

《음― 그건 비밀이야. 군대비밀!》

진아는 우쭐해서 퉁을 주었습니다.

《군대비밀? 헹, 우린 다 알아. 점심때 가지?》

《어마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진아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해해, 네가 어제 집에 올 때 말하지 않았니. 오늘 점심때 〈병사들을 위한 날〉 간다구.》

아, 그랬습니다.

어제 동무들과 같이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생각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군대비밀》을 루설했습니다.

허양 코를 떼운 진아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천룡이는 히물쩍대며 진아의 곁을 씽하니 스쳐지나쳤습니다.

《난 동무들과 같이 낚시질간다.》

천룡이가 가는쪽을 보니 정말 여러명의 남자애들과 처녀애들이 서로 잡기놀음을 하며 군민저수지쪽으로 몰려가고있었습니다.

자기만 쏙 빼놓고 소년단반애들이 약속하고 놀러 가는 모양이였습니다.

(흥, 싱검둥이같은거. 래일 군대아저씨들의 자랑을 안 들려줄테다. 아마 속이 타겠지. 용용…)

진아가 천룡이의 속을 태울 고소한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오니 향이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이 바빠 인차 자기 집으로 돌아간것 같았습니다.

아닐세라 향이네 집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기세좋게 솟구쳐오르고 구수한 음식냄새가 한들바람에 실려왔습니다.

(야, 어머니가 있었으면 우리도 향이네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만들었겠는데…)

진아는 부러움에 찬 눈길로 향이네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번 《병사들을 위한 날》에 군대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농마국수를 누르고 녹두지짐과 꽈배기랑 만들어가자며 농마가루도 준비하여놓고 국수분틀도 구멍이 가는것으로 마련해놓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진아는 엊저녁에 어머니가 오면 물망질을 할수 있게 알알이 손질한 녹두알을 깨끗하게 씻어 물에 불구어놓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였습니다.

문득 장군님의 병사들을 위한 일이라면 하늘끝에 가서라도 금별을 구해와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자진하여 천리 먼길을 떠나간 어머니의 불같은 모습도 안겨왔습니다.

진아는 병사들을 위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에 자기의 마음도 따라세우고싶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대신할수 없을가?…

진아는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군관의 참된 딸이 되고싶었습니다.

 

3

 

진아가 혼자서 녹두물망을 시작하려는 때였습니다.

아래마을 대추나무집어머니가 꿀통을 안은 아동영화의 곰아주머니처럼 단지를 안고 뚱기뚱기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진아는 뽀르르 달려나가 대추나무집어머니가 안고온 단지를 받아내렸습니다.

묵직했습니다.

《무슨 단지나요?》

대추나무집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없이 뚜껑을 열어보였습니다.

양념물이 빨갛게 우러나와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스르르 도는 통배추김치가 단지안에 꼴깍 차있었습니다.

《야! 김치로구나. 아이 먹음직하기도 하네. 어머니! 그런데 무슨 김치를 이렇게 많이 가져왔나요?》

진아는 두눈을 깜박이였습니다.

《원군물자란다.》

《예?》

《오, 전번날 너희 어머니가 오늘 아침 집에 와서 농마국수 누르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더구나. 보나마나 또 병사들을 찾아가려구 하는게 분명하기에 내 몫으로 한단지 담그어놓았던거다. 소속이 다르긴 하지만 나도 〈군대가족〉이 아니냐.》

《호호, 대추나무집어머니넨 〈군대가족〉이 아니라 후방가족이예요, 후방가족!》

《군대가족이나 후방가족이나 같구같은거지. 아무렴 두 아들을 인민군대에 내보낸 내가 병사들을 위한 일에 뒤져서야 되겠냐? 다 내 아들을 위한 일이다.》

진아는 가슴이 찌르르해졌습니다.

《고마와요.》

《고맙긴, 참 그런데 어머닌 왜 안 보이냐?》

진아는 모든 사연을 사실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때마침 왔구나. 걱정말아. 모두가 날 보고 〈대황소상씨름경기〉에 나가면 1등은 문제없을거라고 하는데 뚱뚱한 이 몸은 아꼈다가 어디 쓰겠니. 이런 때 한몫 해야지.》

드세고 씨원씨원한 대추나무집어머니는 굵은 두팔을 척척 걷어붙이고 망돌을 씽씽 돌렸습니다.

망돌짬에서는 비누거품같은 녹두가루가 뭉글뭉글 흘러나왔습니다.

진아가 대추나무집어머니의 망질솜씨를 홀린듯이 바라보고있는데 천룡이 할머니가 무거워보이는 자루를 이고 찾아왔습니다.

진아는 얼른 할머니의 짐을 내리워드렸습니다.

《아이 무거워. 할머니, 이건 뭐나요?》

할머니는 머리수건을 벗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별게 아니라는듯이 흔연스레 말하였습니다.

《우리 터밭에서 캐낸 햇감자란다. 에… 무슨 일인고 하니 늦잠꾸러기 천룡이가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 낚시질을 간다고 부산을 피우지 않겠냐.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희 집에서 오늘 군대형님들을 찾아가는 날이라고 하더구나. 저희네 소년단반에서 물고기를 잡아 도와주자는것을 〈결정〉했다는것이 아니겠냐. 철부지로만 여겼던 그 애가 오늘은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래서였구나.

진아는 비로소 천룡이가 아침일찍 자기를 찾아왔던 까닭을 뒤늦게야 알게 되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천룡이는 그저 싱검둥이, 놀음군이 아니라 군대아저씨들에 대한 생각을 늘 안고사는 좋은 동무였습니다.

《이왕 말이 난김에 한마디 더 한다면 얼음구멍에 빠져 죽을번 한 우리 천룡이를 구원해준게 누구냐? 우리 인민군대들이지, 어디 그뿐만이냐.

마을을 새로 꾸려줘, 발전소를 건설하여 집집마다 전기덕을 보게 해줘, 온 마을이 너나없이 군대덕을 좀 입냐? 오는 정 가는 정이라지만 군대정을 받기만 하고 보답은 못하니 늘 근심이였는데 마침 오늘은 내가 심어가꾼 햇감자맛을 보일수 있게 되였구나.》

천룡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는 인민군대에 대한 고마움이 한껏 어려있었습니다.

(오는 정 가는 정!)

진아는 천룡이 할머니의 꾸밈없는 진정에 또다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숨돌릴새도 없이 망돌앞에 마주 앉았습니다.

대추나무집어머니는 천룡이 할머니에게 망돌을 넘겨주고 국수누를 준비를 다그쳤습니다.

일손이 늘었으니 농마국수까지 누르자는것이였습니다.

《아이 좋아!》

진아는 환성을 올렸습니다.

성수가 나서 대추나무집어머니의 조수노릇을 했습니다.

진아가 큰 솥에 물을 채우고있는데 닭알이 들어있는 바가지를 안은 명천집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섰습니다.

인민군대아저씨들을 찾아간다는 천룡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뒤쫓아왔답니다. 친자식들처럼 담장도 손질해주고 바람벽회칠도 해주고 장마철에는 물이 쭉쭉 빠지게 도랑도 손질해준 인민군대들한테 성의라도 전하고싶어 찾아왔다는것입니다.

명천집할머니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농장남새분조의 언니들이 오이구럭을 맞들고 왔습니다.

《진아야, 우리 분조장아바이가 보내는거란다. 해마다 농사일을 제일처럼 도와주는 인민군대들이 선참으로 첫물오이맛을 보게 하는것이 응당한 도리라나, 호호.》

농장언니들도 어머니가 제 날자에 돌아오지 못한것을 걱정하며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집안일을 도와나섰습니다.

판은 점점 커졌습니다.

부엌에서는 힘장사 대추나무집어머니가 땀을 흘리며 농마국수를 누르고 전실에서는 남새반 언니들이 국수꾸미를 만드느라 흥겨운 칼도마소리장단을 울립니다.

그런가 하면 마당에서는 천룡이 할머니가 연방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노릿노릿한 기름기가 찰찰 도는 녹두지짐을 지져냅니다.

명천집할머니도 불을 때서 감자를 삶습니다.

집안팎이 온통 맛있는 음식냄새로 차넘치고 잔치집처럼 흥성거렸습니다. 정말이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흐뭇한 풍경입니다.

진아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허전하던 일이 언제 있었던가싶이 너무 기뻐 머리가 핑 돌 지경입니다.

날개돋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해주려는듯 천룡이와 소년단반동무들까지 바께쯔를 무겁게 들고 들어섰습니다. 바께쯔안에는 아직도 살아서 아가미를 넙적거리는 손바닥같은 붕어와 쏘가리, 메기가 절반나마 차있었습니다.

《야! 많이 잡았구나. 너희들이 잡았니?》

진아의 물음에 천룡이는 씩 웃으며 손을 뒤더수기로 가져갔습니다.

《우린 다 합해서 작은 붕어 일곱마리밖에 못잡았어. 나머진 낚시군할아버지들이 모아준거야. 인민군대형님들한테 가자고 소년단반 〈결정〉까지 한것이 기특하다고 하면서…》

진아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낚시터의 광경이 눈앞에 선했습니다.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를 저저마다 아이들의 바께쯔에 넣어주는 낚시군할아버지들의 그 모습이 말입니다.

《정말 고마운 할아버지들이구나.》

《진아야, 그 할아버지들이 그러는데 인민군대아저씨들을 위해 물고기 쓸 일이 있으면 아무때건 씽 달려오라구 했어. 이만한 잉어두 잡아주겠다구 했어.》

천룡이는 두팔을 한껏 펴보였습니다.

익살섞인 천룡이의 말에 모두들 즐겁게 웃었습니다.

야, 어쩌면 인민군대를 위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같을가?… 진아는 할아버지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자기 집에 찾아온 모든 사람들 그리고 천룡이며 소년단반동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였습니다.

진아네 집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큰길입구에 짐을 가득 실은 자동차 한대가 달려와 칙 멈춰서더니 누군가 내려놓고 윙― 떠나갔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진아의 두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이 다름아닌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온 어머니였기때문입니다.

《야! 어머니가 왔어요. 우리 어머니가 왔어요. 저기, 저기―》

진아는 너무 좋아 콩콩 뛰며 법석댔습니다.

그리고는 총알처럼 내달렸습니다.

《어머니―》

진아는 반가움에 넘쳐 어머니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진아야!》

어머니도 그를 얼싸안았습니다.

음식을 만들던 마을사람들과 진아의 동무들 그리고 이웃의 향이 어머니며 마을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진아 어머니, 정말 수고했어요.》

《에그, 그동안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했나?》

《얼굴이 반쪽이 됐구만. 응? 그래 곰열을 구해왔나?》

《예, 구했어요. 전 이번길에 약재뿐아니라 우리 인민군대를 친혈육의 정으로 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성어린 마음을 뜨겁게 받아안고 왔어요.》

어머니는 그동안 자기가 직접 목격한 사실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평범한 인민군전사의 병치료에 쓸 곰열을 구해주려 너도나도 떨쳐나섰던 외할머니네 마을사람들이며 병사의 몸보신과 입맛을 돌리는데 써달라고 산삼이며 단너삼, 말린 산나물들을 아낌없이 들려주던 마음 후한 림산사업소의 벌목공들과 그 아주머니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의 시간을 앞당겨주려 밤새워가며 이쪽으로 오는 자동차편을 마련해준 인민보안원이며 일부러 30여리나 에돌면서 집까지 어머니를 태워다주고는 인사도 받지 않고 바쁜 길을 떠난 방금전의 이름도 모르는 그 자동차운전사… 아, 이 얼마나 가슴뜨거운 이야기입니까?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진아도 마을사람들도 모두 깊은 감동을 금치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일세. 오는 정이 깊으면 반드시 가는 정두 깊은 법이라네. 임자네들 생각해보라구. 우리 인민군대가 얼마나 좋은 군대인가. 우릴 제 친부모형제처럼 아끼구 사랑하며 인민을 위해 자기들의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다 바치는것이 우리 장군님께서 키워주신 인민군대가 아닌가?》

천룡이 할머니의 말을 대추나무집어머니가 이었습니다.

《아, 그러믄요. 군대가 강해야 우리의 행복도 아이들의 미래도 있는것이 아니겠나요. 그러니 이 땅에 사는 사람 누구나 인민군대를 제 친자식, 친형제처럼 사랑하구 위해주는거야 마땅한 도리지요.》

《옳아요.》

《그렇지 않구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옳아요. 군대는 원민을 하고 인민은 원군을 하는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사는 내 나라의 참모습이예요.》

어머니는 격정에 넘쳐 긍지높이 말했습니다.

진아는 어머니의 그 말을 심장으로 받아안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를 도와나선 낯선 고장의 수많은 사람들과 어머니가 없는 기간 자기 집에서 벌어졌던 감동적인 화폭들은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대가정의 참모습이였습니다.

진아는 오늘 참으로 큰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선군시대의 아름다운 풍경, 우리 조국의 참모습을 말입니다.

진아의 가슴은 이렇게 좋은 인민군대와 사람들속에서 사는 긍지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장군님을 모시고 사는 선군의 내 나라를 더욱 빛내여갈 맹세로 높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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