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3(2014)년 제8호에 실린 글

(제 2 회)

 

3

 

일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지 푸르게 열리고 해님은 눈부신 빛을 아낌없이 뿌리였다.

나는 치마를 다린다, 연실을 준비한다 하며 새처럼 온 방안을 누비고 다녔다.

조금후면 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여서 어머니는 부엌에서 바삐 돌아갔다. 문득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마, 엄마, 뭐가 타는것 같애.》

《아니, 이런?》

노릿노릿하게 익어가던 청어가 돼지고기를 써는 동안을 못 참아서 한쪽등이 까맣게 타면서 풍기는 냄새였다.

《어쩌니? 그 청언 바다에 다시 못 갔구나.》

《바다는 둘째치구 네 배에두 못 들어가게 됐다.》

엄마도 나도 깔깔 웃었다. 아무튼 좋았다. 무엇이 타지든 무엇을 지지든 오늘은 분명 즐거운 가족들놀이에 아버지와 함께 사진도 찍게 될것이다.

《오늘 북천강에서 이 연을 높이높이 띄울래.》

나는 사기가 나서 연을 펼쳐들고 빙글빙글 돌아갔다.

바로 그때 나의 즐거움을 순간에 앗아갈 손기척소리가 우리 집 문을 똑똑 두드렸다.

얼핏 내다보니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광일아저씨였다.

(저 아저씬 낮교대 나가나?)

문밖에 잠시 나갔다 온 어머니가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바깥의 발자국소리는 터벅터벅 무겁게 멀어져갔다.

《무슨 일이나요?》

엄마는 고기를 천천히 썰뿐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고 조용조용 말했다.

《아버진 오늘… 늦어질것 같다누나. 갱에서 10월 10일까지 년간계획을 앞당겨 끝내자구 궐기했는데 한 아저씨가 갑자기 아파서… 착암기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그 대신에 아버지가…》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싫어 아버진 나빠 꽝포쟁이야. 거짓말쟁이야. 나하구 사진찍기 싫어서 그래. 난 아버지가 미워, 정말 미워.》

웃음만이 찰랑거리던 두눈에서 원망의 눈물이 방울방울 새여나와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번째 약속도 지키지 않는 아버지, 오늘도 나를 울게 하는 아버지. 다시는 말도 안할테야. 아버지를 보구 웃지두 않을테야.… 다시는, 다시는. 난 아버지 딸이 아니야.…

 

4

 

시간은 강물우에 뜬 놀이감쪽배보다 더 빨리 흘러가는것 같았다.

어느덧 2012년 새해 1월도 7일간이나 지나갔던것이였다.

겨울이여서 해님도 추운지 오늘은 오후가 되자마자 구름이불속에 들어가 나올줄 모른다.

나도 추운 바깥에 나가기 싫어서 따스한 아래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앉고보니 책상우에 외롭게 놓여있는 빈 사진액틀이 눈에 띄웠다.

귀여운 하얀 토끼는 빈 사진액틀을 지키며 지루하게 잠만 자고 창문옆의 하얀 연도 풀이 푹 죽어 긴 꼬리를 축 드리우고있었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이제 며칠후이면 나의 생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에야 꼭 사진을 찍어주겠지 하는 믿음과 어쩌면 그날도 집에 들어오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서로 다툼질을 하고있었다.

두번째 약속이후 나는 다시는 아버지에게 사진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매달려 어리광도 부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켜주었다 해도 즐거울수 없는 겨울, 슬픈 겨울이였다.

그런 생각에 잠겨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창밖을 말끄러미 내다보았다.

밖에선 언제부터인가 하얀 눈이 퐁퐁 내리고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깨며 머리며 온통 흰눈보자기를 뒤집어쓴것처럼 우스운 모양을 한 아버지가 들어섰다.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그 어느때보다도 바쁘게 일하시는 아버지였고 광산사람들이였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눈을 털고 방에 들어와 내앞에 마주앉았다.

《오늘 숙젠 다 했냐?… 공부를 잘해야 한다.》

늘 입버릇처럼 외우시는 아버지의 말이였다.

아버지는 나를 끄당겨 무릎우에 앉혔다. 촉촉하게 젖은 아버지의 머리칼이 내 볼에 살며시 달라붙었다.

《너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지?》

뜻밖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나의 귀전으로 아버지의 무거운 목소리가 조용조용 들려왔다.

《아버지도 너와 사진을 찍고싶었다. 9. 9절날에는 못 찍었지만 새해 설날에는 너와의 약속을 꼭 지켜주자고 아버지는 다짐했었단다. 그러나 광옥아, 지난해가 어떤 해이냐. 우리모두가 하늘처럼 믿고따르던 아버지장군님께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들다가 그만에야 뚝 끊어지고말았다. 살이 빠지고 거칠어진 아버지의 두볼로 진한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함께 울었다.

꽃봉오리 우리 요람 지켜주시려 험한 령, 험한 길을 모두 걸으신 아버지장군님…

그립고 뵙고싶은 아버지장군님을 다시는 영영 뵈올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막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뜨거운 손이 나의 볼에서 다정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말아라. 우리에겐 장군님과 꼭같으신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지 않느냐. 그걸 생각하면 아버진 새 힘이 솟군 한단다. 일을 해도 남보다 열곱, 스무곱 하고싶고 피눈물의 언덕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을 더 잘 받들어모시겠다고 장군님께 다진 그 맹세를 뼈가 부서진대도 꼭 지키고싶다.》

아버지의 크지 않은 두눈에서는 번쩍이는 빛 같은것이 확 뿜어져나왔다.

아버지는 빤히 쳐다보는 나에게 귀속말로 속삭였다.

《이달 보름까지 1월생산계획을 앞당겨 수행한 다음 꼭 사진을 찍자. 마침 1월 15일이 우리 광옥이 생일이지. 어떻니? 그때까진 너도 수학 200문제풀이를 돌파해야 한다. 알았지?》

《아버지!》

나는 그만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말았다. 내가 안긴 아버지의 품은 정말 따뜻하고 좋았다. 소리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도 내가 부러워 속삭이며 우리 집 창가에 소복소복 내려쌓였다.

사진액틀속의 흰토끼도 좋아서 발쭉 웃고 하얀 연도 나풀나풀 춤추는 행복한 밤이였다.

이것은 아버지와의 세번째 약속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세번째 약속마저 지킬수 없었다.

×

2012년 1월 15일 나의 생일날 아침 7시 30분.

착암작업을 하기 전에 아버지와 광일아저씨는 락석처리를 하고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굴천정에서 금방 떨어지려는 집채같은 돌을 발견하였다. 한걸음만, 단 한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살수도 있었지만 위험을 못 느낀 광일아저씨가 위험하였다.

그 위급한 순간 아버지는 온 힘을 다하여 광일아저씨를 밀쳐버리고는 자신은 그 돌밑에…

아버지는 이렇게 동지를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

집에 찾아온 광산당비서아저씨가 나를 꼭 껴안고 아버지의 희생에 대하여 말해줄 때 나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에 젖은 말이 흘러나왔다.

《아버진, 아버진 끝내 약속을 못 지키구…》

그때 당비서아저씨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약속을 못 지키다니? 아니다, 광옥아. 너의 아버진 약속을 지켰어. 이달계획을 보름동안 끝내기 위해 뼈를 깎고 살을 바치고 그 길에서 동지를 위하여 목숨을… 너의 아버진 이렇게 약속을 지켜냈다. 원수님께 다진 맹세를 지켜냈단 말이다.》

순간 나는 가슴이 쿵 울렸다.

원수님과의 약속을 지켜낸 아버지.

집마당을 꽉 채운 사람들속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눈섭도 하얗고 수염도 하얀, 나를 끔찍이 고와하는 아버지의 옛 갱장할아버지였다.

《이런 사람이 애국자가 아니구 뭔가, 응? 이런 사람이… 한가정의 약속우에 원수님께 다진 맹세를 먼저 놓을줄 아는 이런 사람이 바로 애국자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다는 알수 없었다.

그후 평범한 채광공인 우리 아버지가 원수님께서 아시는 사람으로 되여 사랑의 친필글을 받아안았을 때 그리고 온 나라가 다 아는 공화국영웅으로 되였을 때에도 나는 다 몰랐었다. 마지막순간에 아버지가 무엇을 생각했기에 그토록 용감할수 있었는지.… 나는 그것만은 꼭 알고싶었다.

 

5

 

그때로부터 다섯달이 흐른 6월의 어느날 밤 나는 4. 25려관의 창문가에 앉아있었다. 하늘의 별들도 우리가 부러워 두눈을 깜박이여 넘보는듯싶은 밤이였다.

학교에서 나를 6. 6절 조선소년단경축행사 대표로 추천한 그날 밤 꿈속에서 만났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다.

《광옥아, 아버지도 평양에 간다. 거기 가서 우리 광옥이와 사진도 찍고 평양구경도 실컷 하자꾸나.》

바로 그렇게 말하던 아버지가 지금 나를 품에 꼭 껴안고 내옆에 앉아있는듯만싶다.

떠나는 날 나를 바래주며 역에 나왔던 금골마을 사람들… 당비서아저씨와 광일아저씨, 옛 갱장할아버지며 마을사람들과 학급동무들 그리고 선생님들…

지연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다시 돌려주었던 그 하얀 연을 들고나왔다. 사실 렬차가 떠나기 전까지 그 애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서운했던가.

나는 목이 빠지도록 나들문을 바라보았었다.

빵- 두번째 기적소리가 울리는 순간 나는 숨차게 달려오는 지연이를 발견했다.

그럼 그렇겠지.

《지연아!》

나는 너무 기뻐 하마트면 렬차에서 뛰여내릴번 하였다. 그때 호각소리와 함께 렬차는 움직이고 새처럼 날아온 지연이가 하얀 연을 내밀었다.
《광옥아, 평양가면 꼭 이 연을…》

그때야 짐작이 갔다. 아마도 지연이는 나를 바래주러 역으로 나오다가 연생각이 나서 다시 집으로 달려갔을것이다.

내가 연을 돌려주었을 때 《광옥아, 이제 기쁜 일이 있을 때 다시 띄우렴. 응?》하고 속살거리던 지연이.

내가 왜 그 연을 돌려주었던가. 아버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때마다 나를 마주보며 《숙제를 다 했냐?…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이렇게 간곡히 당부하던 그 마음에 꼭 제일 큰 5점으로 보답한 다음에 내 손으로 만들어 띄우자던 연이였다.

내 마음을 알고 지연이가 다시 들려준 그 연을 나는 지금 두손에 올려놓고 앉아있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내부는 바람결에 연은 어서 날고싶은듯 꼬리를 들썩인다.

그래그래, 하얀 연아 이제 너를 날려보내줄게.… 내가 얼마나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았는지 모두가 알게 해주렴.…

하얀 연에는 내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글자로 또박또박 박아쓴 내 마음속의 이야기가 빼곡이 씌여져있었다.

《지연아, 오늘 아침 원수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는다는 기쁜 생각에 뻐스를 타고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기쁘고 즐겁기만 했단다. 그런데 촬영장에 나오신 원수님께서 글쎄 나를 손저어 불러주시는게 아니겠니. 난 너무 기뻐 원수님께로 막 달려갔어. 달려가면서도 혹시 다른 애를 부르시는걸 잘못 보지 않았는지, 원수님께서 넌 누구냐 하고 물으시면 어쩌나 하구 막 걱정했단다. 그런데 원수님께선 날 반겨맞아주시며 네가 바로 박태수영웅의 딸이로구나, 이렇게 귀엽고 명랑한 네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어, 그 순간 난 막 울었어. 원수님께서 우리 아버지를 알고계시누나 하는 생각에… 그런데 원수님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네가 아버지와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가 끝내 그 약속을 이루지 못했다니 얼마나 서운했겠느냐고 아프신 음성으로 말씀하시는것이였어. 나는 그만 엉엉 소리내여 울었어 보고싶은 아버지가, 꿈속에서도 보고픈 아버지가 나를 보고 밝게밝게 웃는것 같아 막 눈물이 나왔던거야. 그런데 원수님께서는 울지 말아, 훌륭한 영웅의 딸이 울어서야 되나 하시며 너의 아버지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나와의 약속을 위해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쳤다고, 오늘은 내가 그 약속을 지켜주마, 내가…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여주마 하고 말씀하시지 않겠니.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아버지! 하고 부르며 원수님의 품에 와락 안겼어.

지연아, 난 그때에야 눈물속에 알았어. 아버지는 언제나 그리고 마지막순간에도 원수님을 생각한거야. 언제나 원수님밖에 모르고 원수님만 받들어 살았던거야. 나도 아버지처럼 언제나 원수님만 생각하며 원수님밖에 모르는 강성조선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날테야. 그래, 난 훌륭한 아버지의 훌륭한 딸이 될테야. 경애하는 원수님의 참된 딸이 될테야.

지연아, 나에겐 그토록 바라던 사진이 있어, 내가 그토록 자랑하고싶어하던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있어.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온 나라 아버지, 어머니모두가 어버이라 부르며 따르는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사진이 있어. …》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듯 시원하고 힘있는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연을 날렸다. 밤바람에 너울거리며 꼬리를 팔락이던 하얀 연은 아기별들이 곱게 웃는 평양의 밤하늘가로 너울너을 날아갔다.

평양하늘 저끝에 그리운 나의 고향 금골이 있다.

연아, 내 마음, 내 기쁨을 온 나라에 알리며 높이높이 날거라. 나는 꼭 아버지의 딸이 될테야.…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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