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103(2014)년 제8호에 실린 글

                                                                                        렴 예 성

(제 1 회)

 

1

 

그날은 평양에 놀러갔던 지연이가 자랑보따리를 한가득 가지고 돌아온 날이였다.

파아란 하늘가로 웃음짓고 떠가던 해님이 가던 길을 멈추고 늦장을 부리는 오후무렵이였다.

북천강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나는 지연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듯이 그 애네 집으로 달려갔다. 우리 뒤집에 살고있는 지연이는 탁아소시절부터 소학교 3학년생이 된 오늘까지 나와 제일 친한 딱친구이다.

나는 그 애를 애기곰이라 불렀다.

《지연아!》

내가 소리치며 그 애네 집 마당에 들어서자 지연이가 와당탕 달려나왔다.

《야 광옥아, 너 보구파서 혼났댔어.》

지연이의 손에 끌려 방안에 들어가니 멋진 려행용트렁크가 보란듯이 입을 활짝 벌리고있었다.

그속에서 알락달락하고 빨락빨락한 사탕봉지를 휘파람소리가 나게 꺼낸 지연이는 봉지를 터쳐 사탕 한알을 내 입에 홀깍 넣어주고는 봉지채로 덥석 안겨주며 떠들었다.

《이걸 다 먹어. 평양사탕이야. 어때, 맛있지?》

달고 새콤한 사탕맛에 나는 말도 못하고 고개만 까닥거렸다.

지연이는 더욱 신이 나서 빵이며 단물이며 사과졸임을 연방 꺼내놓았다. 처음 먹어보는것들은 아니였지만 평양에서 직접 가져온것이라니 더 먹음직스러워보였고 더 맛이 좋았다.

《참, 광옥아, 이거!》

지연이의 손에 매달려나온것은 뜻밖에도 가오리처럼 생긴 하얀 연이였다.

《아니, 이건?》

동그래진 나의 눈을 마주보며 지연이는 생글 웃었다.

《멋있지? 이건 평양기념으로 주는거야. 자, 받아.》

평양기념? 연 하나를 두고 말이 너무 요란한데?

하지만 연은 참 고왔다. 내가 그 연을 조심히 받아들자 지연이는 내 귀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그냥 띄우지 말구 꼭 기쁜 일이 있을 때 띄워야 해. 이건 평양연이니까.》

평양사탕에 평양연에 이번엔 또 뭐가 있을가

아직 한번도 평양에 가보지 못한 나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광옥아, 너 평양에스키모도 못 먹어봤지?》

《에스키모? 그것두 가져왔니?》

내 눈길이 트렁크에 가닿자 지연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그거야 어떻게 가져오니, 이 더운때.》

나는 에스키모때문보다도 지연이가 부러워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야, 넌 정말 좋았겠구나.》

부러움에 함씬 젖은 나의 목소리에 그 애는 더 성수가 났다.

《난 이번에 아버지랑 같이 안 가본데가 없어. 대성산유희장, 만경대유희장, 개선청년공원 그리구 또…》

나는 꼽아나가는 그 애의 손가락을 보느라 입에 문 사탕도 빨지 못하고있었다.

《참, 지하철도… 그리구 릉라도에랑 대동강반에랑 물놀이장, 빙상장을 또 건설하구있어. 그리구…》

《얘, 숨차지 않니?》

나는 심술이 나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종알거렸다.

《그래, 숨차. 자, 이걸 봐, 여기에 다있어.》

지연이가 내미는 사진첩을 얼결에 받아들고보니 온통 지연이와 그 애 아버지사진이였다.

아버지의 목에 매달린 지연이 여긴 어딜가? 《대동강뽀트장에서》라고 써있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무릎우에 올라앉은 지연이얼굴이 너부죽한 아버지도 지연이도 눈이 보이지 않게 웃고있다. 배경은 어느 유희장이였다.

부럽고 시샘이 나다못해 이번에는 마음이 쓸쓸해났다.

나에게는 이렇게 멋진 사진이 없었다. 내가 잘 생각나지 않는 아주 어릴적에 찍은 가족사진 한장이 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지연이에게는

나는 한번도 지연이를 부러워해본적이 없었다. 공부도 노래도 체육도 지연이가 나보다 잘하는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오늘부터 지연이는 내가 부러워하는 아이로 되였다. 사진이 부러운것이 아니라 그렇게 즐겁게 안아주고 쓸어주는 그 애 아버지가 부러웠다.

나도 아버지와 평양에 놀러갔으면하지만 그것은 아직 공상에 불과하였다. 아니아니, 아버지와 사진이야 왜 못 찍겠는가.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 한번, 무릎에 올라앉아 또 한번, 잔등에 넌떡 업혀서 또 한번공상속의 사진기는 련속 찰칵거리고있었다.

《나두 이제 당장 사진을 찍을테야.》

《뭐라구?》

지연이가 깜짝 놀라 쳐다보았으나 나는 시치미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 잘 있어, 난 갈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려다 문득 생각나 다시 주저앉았다.

《지연아, 이 연은 내가 가져두 되는거구 나 그 사진첩 좀 빌려줘. 응?

나는 그 애가 어쩔새없이 사진첩과 연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한여름의 날씨는 찌는듯 무더웠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던 나는 누군가와 꽝 부딪치고말았다.

《아야야.》

나는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고개를 쳐들었다. 시원해보이는 파란 여름샤쯔에 칼날같이 주름발선 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한쪽 손에 두툼한 책을 들고 서있었다. 나를 끔찍이 고와하는 아버지였다.

《야, 아버지 멋있네.》

노상 우리 딸, 내 딸 이렇게 불러주며 업어주고 안아주는 우리 아버지였다.

나는 손벽을 쳤다. 이대로 나가면 당장 사진을 찍을수 있는것이 아닌가. 그런데 노상 이마에 번쩍이는 안전등을 끼고 작업복을 입고다니시던 아버지가 오늘은 웬일일가.

눈을 깜박이는 내 마음을 알아본듯 아버지가 나의 어깨를 짚으며 말하였다.

《평양에서 내려온 박사선생님과 무얼 좀 토론할게 있어서 가는 길이란다.》

《박사선생님이요? 아버지도 무얼 연구하나요?》

아버지는 대답없이 벙실벙실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나는 얼른 아버지의 혁띠를 잡아쥐였다.

《아버지, 이것 좀 봐요.》

《이건 웬 사진첩이냐?》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피뜩 들여다보고는 그 자리에서 사진첩을 받아들었다. 아버지가 사진을 보는 동안 나는 지연이가 한 말들을 재잘재잘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졸라대였다.

《아버지, 나두 이렇게 사진찍구싶어요. 아버지랑

《이걸 어쩐다?》

아버지는 오똑한 나의 코를 손가락으로 퉁 튕기며 빙그레 웃고나서 물으시였다.

《그런데 넌 숙제는 제대로 하고 다니냐? 공부를 잘해야 한다.》

《아버지이-》

나는 몸을 흔들며 아버지의 몸도 잡아흔들었다.

《오냐오냐, 찍자꾸나.》

아버지는 큰소리로 시원하게 대꾸하였다.

《야, 정말이나? 아버지, 언제? 방학 끝나기 전에?》

나는 아버지가 다른 말을 할새라 덤벼치며 연방 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계를 다시 보더니 꿈쩍 놀라셨다.

《아이쿠, 늦었구나.》

아버지는 껑충껑충 뛰여갔다.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하늘아래로 뛰여가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깔깔깔 즐거운 웃음소리를 명절날 풍선처럼 가득가득 날려보냈다.

《연아, 사진찍는 날에 널 저 하늘높이 띄워줄게. 흥, 자랑쟁이 지연아, 이젠 네가 부럽지 않아.》

나는 하얀 연을 제일 잘 보이는 창문옆에 걸어놓으며 이제 이 연대신 그 자리에 붙이게 될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그려보았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나는 눈을 뜨기가 바쁘게 시원한 아침공기를 쌩쌩 헤가르며 지연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지연아, 우리 아버지가 사진을 찍자구 약속했어.》

《아버지가 평양에 간대?》

지연이가 눈이 올롱해서 묻는 말이였다.

《응? 아니, 여기 금골에서 먼저

지연이가 길게 하품을 하였다.

《그것때문에 이 새벽에 왔니? 지금 몇시게?》

《지금?》

나는 정신이 들었다. 이제 겨우 5시 30분이였다. 내 입에서도 길게 하품이 나왔다.

결국 나는 지연이네 집에서 함께 아침밥을 냠냠 먹고는 오전내껏 밑진 잠을 보충하였다.

 

2

 

기다리던 방학의 마지막날이 왔다. 사진을 찍게 된 날이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였다. 별치 않게 찍군 하던 사진 한장이 지금은 왜 그리 크게 생각되는것일가.

나는 벽에 걸어놓았던 연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퇴근시간을 목마르게 기다렸다.

그런데 저녁이 다 되여도 아버지는 돌아올줄 몰랐다. 시간은 부지런히 똑딱똑딱 흘러가고 광산마을의 집집에도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 광산마을은 밤에 보면 더 멋있었다.

아버지들이 캐내는 은빛광석들처럼 번쩍이는 아름다운 전등불들이 바가지처럼 생긴 골안에 계단식으로 층층 줄지어 서있는 모든 집집에 다 켜지면 내가 텔레비죤에서 본 평양의 고층아빠트들처럼 멋있어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광산마을의 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이 밤만은, 아버지를 원망스레 기다리는 이 밤만은 그 멋있는 밤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옥아, 이젠 그만 자렴. 아버진 이쯤되면 못 들어오시는거야.》

밤 12시가 넘었을 때 어머니가 하는 말이였다.

《싫어, 난 끝까지 기다릴래.》

이제라도 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설지도 몰라, 그런데 너무 늦어서 어쩐담, 사진관도 밤새껏 봉사했으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나는 그만 지쳐 꿈나라로 가고말았다.…

다음날 학교로 가는 나의 마음은 뭐라 말할수없이 찌프러져있었다. 이마에 뿔이 날수 있다면 황소뿔보다 더 컸을것이고 입에 따바리를 걸수 있다면 열개도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연이와 함께 아버지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직접 만나 왜 안 들어오셨는지 꽁꽁 따져물을 작정이였다. 그러나 허탕이였다. 아버지는 인차를 타고도 한시간이나 걸리는 깊고깊은 갱안에 들어가있었던것이다.

맥없이 터벅터벅 걸어나오는데 커다란 속보판앞에서 한 아저씨가 땀을 뚝뚝 떨구며 망치만 한 왕붓을 휘둘러대고있었다.

《오늘은 누가 혁신자일가?》

지연이가 중얼거릴 때 내 눈은 벌써 써나가는 붓글씨를 읽고있었다.

《분기계획을 한달 앞당겨 200%로 수행한 영광갱의 전체 전투원들을 열렬히 축하한다. 특히 채광공 박태수동무는 밤을 밝혀가며 새로운 채광법을…》

나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렸다.

그래서 어제 밤두 아버진… 공학박사선생님을 찾아 달려가던 그날의 저녁노을이 내 마음에 따뜻이 젖어들었다.

《너의 아버진 연구사업도 하니?》

지연이의 궁금증어린 물음은 나의 어깨를 으쑥하게 만들었다.

《너 아직 몰랐니?》

광산자재인수원인 지연이네 아버지라면 어림도 없을 일이였다. 부러움에 흠뻑 잠긴 지연이와 헤여진 나는 나는듯이 집으로 달려왔다. 달려오는 동안 아버지가 이번에는 진짜로 약속을 지킬수 있게 할 딱소리나는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집에 들어선 나는 종이장을 꺼내놓고 아버지의 글씨를 흉내내여 쓰기 시작했다.

《나 아버지는 딸 광옥이와 9. 9절날에 들놀이를 나가 사진을 찍겠다는것을 약속한다. 꼭꼭 다짐한다. 아버지 박태수, 딸 박광옥, 수표…》

이렇게 엄엄하게 씌여진 글을 보며 나는 해죽해죽 웃었다.

이쯤하면 아버지도 꼼짝 못하실거야.… 그런데 무엇인가 빠진것 같았다. 그게 뭘가.

(그렇지!)

무슨 문건에는 도장을 찍는 법이 있다는것이 피뜩 생각났다. 그건 아마 꼭 지켜야 한다는 뜻일것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도장이 없었다.

그때 경대우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입술연지가 눈에 띄웠다.

(옳지!)…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자지 않고있는 나를 보며 꿈쩍 놀라셨다.

《이런, 우리 잠꾸러기가 웬일이냐? 오- 공부를 하던 모양이구나.》

아버지는 웃옷도 벗기 전에 먼저 나의 숙제장이며 학습장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며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주었다. 그 바람에 나는 오히려 할말도 못하고말았다.

《광옥아, 학생은 뭐니뭐니해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게 아버지장군님사랑에 보답하는 길이구 장군님을 따르는 길이야.》

 저녁밥상이 차려진 다음에야 아버지가 무릎을 내리쳤다.

《참, 사진을 못 찍었구나. 미안하다, 광옥아.》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일없어요. 아버지가 속보에 난걸 얼마나 기쁘게 봤다구요.》

아버지의 얼굴에 소리없는 웃음이 비꼈다.

이때라고 생각한 나는 종이장과 입술연지를 들고 바투 다가앉았다.

《그렇지만 여기엔 도장을 찍어야 해요. 난 먼저 찍었어요.》

놀라 눈이 둥그래지던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셨다.

《하하하. 좋아, 찍는다.》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에 입술연지를 발라 종이장에 대고 꾹 눌렀다. 콩알만 한 내 손가락자리옆에 밤알만 한 아버지의 손자리가 나란히 찍혔다. 마치도 함께 찍을 사진처럼…

《야, 찍었다. 아버지, 북천강에두 놀러 가자요? 이번 일요일에.》

아버지는 나의 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어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그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졸라서 고운 사진액틀을 하나 사왔다. 새하얀 들국화 여섯송이로 테를 두르고 한옆에 귀발쭉이토끼까지 오똑 서있는 깜찍한 액틀이였다.

그 사진액틀을 가져다놓은 다음부터 매일저녁 사진찍는 꿈을 꾸었다.

사진을 찰칵! 하얀 연이 훨훨!

어느날엔가는 사진액틀의 흰 토끼가 빨간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넌 무슨 사진을 매일 그렇게 바꿔끼우니? 근데 저 연은 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니?》하고 묻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여보니 그것도 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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