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7호에 실린 글

 

  □ 중편소설 □

 

 

          

 

(제4회)

                              김 정

9. 알아맞추기경기

 

10월이 왔다.

부지런한 9월은 거리의 은행나무잎새들에 누르스름한 물감을 들이고 유보도의 찔레열매들을 빨갛게 익혀주고 건뜻 들린 파란 하늘에 고향땅을 찾아가는 철새들의 노래소리를 다정히 들려주고는 어디로인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침이면 솥뚜껑같은 나무잎들이 발밑에서 와삭거리였다. 공원과 강반의 유보도들에서는 어머니들이 락엽을 쓸어내느라고 바빴다. 늦복숭아들이 자취를 감추고 과일매대에서는 사과가판을 치기 시작했다. 길목에 나왔던 에스키모이동매대도 모두 식당으로 들어가버리였다.

아이들은 반소매샤쯔와 짧은 바지를 의농속에 넣고 깨끗이 다림질한 긴바지며 쎄타며 가을양복저고리들을 꺼내입었다.

경림동과 중성동의 천세대아빠트꼭대기에 덧짓는 아빠트들은 벌써 6층까지 아스랗게 올라갔다.

당창건 서른돐을 앞두고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 인민들에게 선물하시는 락원거리의 아빠트들도 경사스런 집들이를 준비하고있었다.

년간계획을 끝낸 혁신자들의 이름이 연방 전파를 타고 공장, 광산들과 온 나라에 퍼져갔다.

《평양신문》은 9월계획을 넘쳐해낸 평양방직공장 직포직장의 처녀작업반장을 옹근 한면에 소개하였다.

과일군에 출장을 나갔던 문호 아버지는 향기그윽한 사과를 가방 가득 사왔다.

그것은 물론 놀러 갔던 금동이한테도 차례졌다.

그는 갓난애기 머리만큼이나 큰 사과를 들고 한참동안 탐스럽게 향기를 들이키였다.

(사과냄새는 참 좋구나. 어머니가 바르고 다니는 크림냄새보다두 더 좋구 머리기름냄새보다두 더 좋구나. 맛두 기막히구. 사과를 가꾸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지. 크면 나두 사과밭에 가서 일할가?)

그런데 어른이 될것을 기다린다는것은 참 답답한 일이다.

금동이는 어른이 되기 전에 제손으로 사과를 심어보고 가꿔보고 열매를 따보고싶었다.

《형, 사과도 나무에 열리지, 응?》

그는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 형에게 물었다.

평양에서 나서자라 농촌에 가보지 못한 그는 아직 한번도 사과나무를 보지 못했던것이다.

《그럼, 나무에서 열리지 않구.》

《나무는 어떻게 생기니?》

《나무모를 심으면 돼.》

《나무모라는건 또 뭐야?》

《애기나무.》

《애기나무는 어디서 생기니?》

《넌 참 진드기처럼 끈끈하구나. 크면 저절루 알게 될걸 가지구 뭘 자꾸 그러니?》

금석이는 동생의 찰풀같은 물음에 이리쿵저리쿵 대답하기 싫어서 웃방으로 슬쩍 들어가버리였다.

애기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금동이에게 사과움따붙이기 같은 복잡한 설명을 들이댄다는것은 여간 땀나는 일이 아니였기때문이다.

(흥, 형은 그저 《크면》, 《크면》하는것밖에 몰라. 자기두 1학년땐 쪼꼬맸을텐데. 쳇, 안대주면 내가 모를줄 알구.)

온밤 금동이는 사과나무 가꿀 생각을 하였다.

마침내 좋은 궁리가 떠올랐다. 그는 아버지가 고추씨를 심던것처럼 화분통에 사과씨를 심기로 마음먹었다.

고추씨가 열매를 맺었으니 사과씨도 자라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큰 나무로 될것이니까. 씨가 커서 애기나무가 되면 아빠트앞마당에 보란듯이 옮겨심어야지. 강냉이가 익을 땐 사과도 익겠지.

그땐 장난꾸러기들이 따가지 못하게 보초를 설테다. 익은 사과는 재수에게도 주고 효남이, 동학이, 영림이에게도 주고… 먹새퉁구리 순일이한테 열두개쯤 줄가?

금동이는 베란다구석에서 굽도리가 좀 오그라진 화분을 구해냈다.

다음날 오후 그는 그 화분통을 들고 강뚝 안쪽에 있는 아동공원으로 나갔다. 공원관리원한테서 얻은 부식토를 아버지처럼 모래와 진흙에 섞어 화분통속에 다져넣었다.

모래가 너무 많이 섞인것 같아서 다시 화분통을 딱 뒤집어놓는데 공원 저쪽에서 누군가《금동아! 금동아!…》하고 불렀다. 손에 종이딱지묶음을 든 순철이(순일이 형)가 성큼성큼 금동이앞으로 걸어오고있었다. 그가 서있던 미끄럼대앞에서는 중학생들이 석회가루같은것으로 땅바닥에 무슨 금을 긋고있었다.

《금동아, 너의 반 애들이 다 어디 있니?》

하고 순철이가 멀찌감치서부터 물었다.

《몰라.》

《빨리 가서 너의 동무들을 몽땅 데려오너라.》

《왜 그러니?》

《재미나는 경기를 하자구. 자, 얼른!》

이 세상에 《경기》라는 말처럼 귀맛이 당기는 말은 없을것이다. 게다가 《재미나는》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군침을 돌게 하는가.

금동이는 조팝나무울타리뒤에 화분통을 감춰두고 아빠트쪽으로 냅다뛰였다. 아이들은 모두 순일이네 집에 있었다. 무슨 장난들을 하는지 구들고래가 터지게 몰켜앉아 들썩 고아댄다.

《순일이 이발은 왜 이렇게 벌레가 잘 먹니?》

동학이의 비양섞인 목소리가 맨먼저 금동이를 맞아들이였다.

《그거야 내 이발이 맛있어서 그렇지 뭐.》

순일이는 앞이가 두대나 빠진 입을 열어놓고 꺼리낌없이 지껄여댔다.

《아니야, 그건 순일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무슨 일에서나 판사노릇을 하는 효남이가 그의 말에 오금을 박아놓았다.

《옳아옳아, 이발이 사탕에 몽땅 녹아났단 말이야.》하고 이번에는 영림이가 효남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발이란건 사탕에 꼼짝 못한대. 그런데 저앤 밥만큼 사탕을 먹지 않니. 아마 한자동차는 먹었을거야.》

재수의 말에 모두들 《하하하》하고 웃었다.

그 애는 벌레먹어 너덜거리는 순일이의 이발에 가는 나이론실을 걸어매느라고 아까부터 끙끙 갑자르고있었다.

순일이는 무슨 실을 그렇게 오래 매느냐고 할머니처럼 찡찡대였다.

일이 멋지게 되였는지 드디여 재수가 손벽을 탁 치며 늘어진 나이론실을 오른손의 두손가락에 감아매기 시작하였다.

《자, 그럼 시작이다. 준빗! 하나, 둘―》

하고 곧추 들어올렸다.울상이 된 순일이의 얼굴은 우습게 뒤틀리고 찌그러졌다.

《셋!》

재수는 마침내 들어올렸던 손을 신호기처럼 홱 내리그었다.

그러자 잠자코있던 동학이, 영림이들이 《영차!》, 《영차!》하고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금동이도 순철이가 부탁하던것을 다 잊어버리고 덩달아서 《하나, 둘!》, 《하나, 둘!》하고 선창을 불렀다.

《하나, 둘.》

《영차!》

《하나, 둘.》

《영차!》

아이들은 마치 땅에 깊숙이 들어박힌 바위돌이라도 뽑아내듯이 부산을 피웠다.

이발은 어렵지 않게 뽑히였다.

《이크, 입으로 찬바람이 막 들어오누나. 혀바닥이 시린데…》

순일이는 큰 수술이라도 하고난 환자처럼 어깨를 잔뜩 살구고 재수가 떠다주는 물로 양치질을 했다.

《막 쑤시지 않니?》

아직 한번도 이갈이를 해보지 못한 효남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쑤시다뿐이겠니. 막 살이 떨어져나가는것 같애. 아무래두 입원해야겠어.》

《겁쟁이같은게 엄살을 부리누나.》

동학이가 손가락마디로 순일이의 이마빡을 툭 튕겼다.

《엄살이라구? 쳇 두구봐라. 이제 의사들이 날 입원시키지 않나.》

《넌 입원하는게 그리 좋니?》

《좋지 않구. 그럼 숱한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오거던. 난 하얀 환자복을 입구 침대에 척 누워서 너희들을 이렇게 쳐다본단 말이야. 내 머리맡에는 사과랑 귤이랑 바삭과자랑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뭐…》

순일이는 짐짓 병원침대에라도 눕듯이 뒤에 앉아있는 동학이 무릎우에 벌렁 나가넘어졌다.

그때에야 금동이는 순철이가 전하던 말을 아이들에게 퉁겨주었다.

《재미나는 경기》라는 말이 나오기 바쁘게 아이들은 와―하고 밖으로 쏟아져나갔다.

《입원》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순일이도같이 따라나갔다.

공원에서는 벌써 숱한 아이들이 바글거리였다. 10호동아빠트아이들도 오고 유치원조무래기들도 얼씬거리고 상급반학생들도 왔다갔다하고있었다.

공원 한복판에서는 금석이가 돌상우에 종이장을 펴놓고 한줄로 서있는 1학년생들의 이름을 차례로 올리고있었다.

맨나중에 금동이네도 역시 이름을 올리였다.

(흥, 형두 왔구나. 정말 굉장히 재미나는 놀음이 있는게지.)

놀음놀이에 좀처럼 말려들지 않는 형이 공원에 나타난것을 보자 금동이는 마음이 자못 흐뭇해졌다.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제김에 들떠서 웅성웅성했다.

순철이가 출발선 맞은켠에 종이딱지들을 펴놓는 사이에 목소리가 어른처럼 걸걸한 인호라는 중학생이 빨간 수기와 받침대가 있는 둥그런 탁상시계를 안고 공원에 나타났다. 재수한테 있는것과 꼭같은 하모니카소리가 나는 호각이 인호의 앞가슴에 드리워있었다.

1학년생들은 순철이가 시키는대로 출발선뒤에 줄지어섰다. 그들은 금시에 잘 길들인 염소처럼 곰상곰상해졌다.

《참참참, 무슨 놀음을 하자구 이럴가?》

갑갑증을 참지 못한 재수가 공중에 모자를 올려던지며 버럭 증을 내였다.

《글쎄말야, 그건… 그건… 종이쪽지를 펴보고 걸상이랑 아버지손이랑 붙잡고 뛰는 경기가 아닐가?》

금동이는 호출경기라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눈살을 찌프리였다.

《그런데 걸상이랑 사이다병이랑 아버지들이랑 어디 있니?》

《무슨 알아맞추기놀음을 하는지두 몰라.》

《쉿, 순일이 형이 연설을 한다.》

쪼물짝한 동생하구는 달리 키도 껑충하고 마음도 허분허분하고 요술도 잘 피우는 순철이는 아빠트마을의 중학생들가운데서 제일 인기가 있었다.

순철이는 맨앞에 선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대렬을 굽어보았다.

《모두들 들어라. 우리는 며칠전에 김향선생님한테서 너희들의 과외생활을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주일에 한번씩 이 공원에 모여 재미나는 놀이두 하구 이야기모임도 하구 체육경기두 하자구 약속했어. 놀이는 내가 맡구 이야기모임은 금동이 형이 맡구 체육경기는 인호형이 맡는다. 그러니 이 공원과 아빠트마을에서는 우리가 너희들의 선생인셈이지.…》

순철이가 《에헴》하고 선생의 틀거리를 내는 바람에 아이들이 와―하고 웃었다.

《그럼 만날 때마다 인사해야 하나요?》

재수가 엉거주춤 무릎을 잡고 일어서서 물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인사할래요!》, 《인사할래요!》, 《할래요!》하고 아이들이 저마끔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좋아, 그러나 우리보다두 선생님들과 웃어른들에게 더 잘 인사를 해야 해. 례를 들면 이 공원을 곱게 가꾸는 관리원아주머니와 같은 어른들한텐 더 공손히 례절을 지켜야지. 웃어른들앞에서 혀를 내밀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엉엉 울거나 말대답질하는 아이들은 용서하지 않겠단 말이야. 알겠니?》

순철이가 눈을 흡뜨고 공중에 주먹을 내두르자 아이들은 《예!》하고 귀청이 째지게 소리를 질렀다.

《됐어. 그럼 이제부터 알아맞추기경기를 시작하겠어. 우리는 경기를 할 때마다 매번 너희들의 성적을 김향선생님한테 보고하기루 약속했어. 그러니 누구나 경기에 잘 참가해야 해.》

인호는 준비신호로 호각을 길게 불었다.

첫 조인 금동이네 조가 출발선앞에 나섰다.

인호는 호각을 입에 문채 사발시계의 초침을 살피고있는 금석이한테서 눈을 떼지 않고있었다. 금석이가 준비신호로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그는 《시―》하고 예령을 주었다가 짧고 야무진 호각소리를 빽―하고 울리였다.

그러자 여섯명의 아이들이 둥지에서 퉁겨난 참새들처럼 우르르 공원 저쪽으로 달려갔다.

금동이앞에서는 두 아이―달리기선수인 재수와 학급의 일등가는 꺽다리인 문호가 달리고있었다.

뒤에서는 순일이, 효남이, 다리가 짧고 허리가 큰 주섭이들이 헐떡거리였다.

금동이가 땅에 지질러놓은 표를 펼쳐보고있을 때 재수와 문호는 벌써 종이장에 문제를 풀고있었다. 무슨 문제를 쥐였는지 재수는 벌쭉 웃기까지 하였다.

금동이는 얼핏 그 애의 표를 훔쳐보았다.

첫 문제는 《대동강에 있는 섬을 세개이상 쓰십시오.》하는것이였다.

금동이는 혀끝소리로 《릉라도, 양각도, 두루섬.》하고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렇게 헐한 문제가 자기한테 차례지지 않고 재수한테 차례진것을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너무 쉬운 문제를 쥐면 머리를 쓰는 재미가 덜하기때문이였다.

금동이는 자기의 생각을 깡그리 짜낼수 있는 힘든 문제와 맞다들고싶었다.

그러면 학자처럼 머리를 기웃하고 한바탕 어려운 알아맞추기문제와 씨름을 할수 있을것이다.

그는 자기의 표를 얼른 내려다보았다.

《평양시에 있는 산을 세개이상 드십시오.》

하는 첫 문제의 글줄이 눈에 확 안겨들었다.

《만경봉, 모란봉, 대성산》하고 금동이는 다짜고짜 종이우에 자기가 아는 산들을 적어넣기 시작했다. 그 세개의 산외에도 그는 《해방산》과 《문수봉》을 더 써넣었다.

그쯤하면 인호라는 저 꺽다리 중학생도 금동이를 1학년생이라고 함부로 얕보지 못할테니까 말이다.

금동이의 눈은 어느새 두번째 문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두 인민군대아저씨가 육박전을 벌렸습니다. 한 아저씨는 총창으로 여섯놈, 총박죽으로 세놈, 다른 아저씨는 공병삽으로 일곱놈, 주먹으로 두놈을 까눕히였습니다. 두 아저씨가 까눕힌 미제침략군놈은 모두 몇입니까?》

(멋진데! 주먹으로도 까눕혔구나. 그런데 공병삽이라는건 어떻게 생긴걸가?)

실없이 얼씬거리는 생각이 금동이의 문제풀이를 방해하였다. 눈앞에서는 수자가 떠오르는것이 아니라 총창과 공병삽으로 놈들을 족치는 두 용사의 모습이 가물거리였다.

재수는 벌써 풀이가 적힌 종이장을 입에 물고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고있었다.

문호도 금시 풀이가 끝나는듯 엉뎅이를 움씰거리였다. 맨 나중에 온 효남이가 바른팔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재수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이크, 야단났는데!》

금동이는 등이 달아서 셈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6. 3. 7. 2》라는 수자들을 한줄에 써갈기였다.답은 18인것 같기도 하고 17인것같기도 하였다.

눈을 질끔 감고 《18》이라고 답을 쓰는데 문호가 후닥닥 앞으로 내뛰였다.

금동이도 덩달아서 불쑥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러나 한초쯤 먼저 일어선 문호가 너무 빨리 뛰여가는 바람에 맥을 탁 놓고 그 자리에 멈춰서고말았다.

(에참, 창피한데. 형두 기분나빠서 얼굴이 막붉어지는구나. 이럴바에는…)

그는 달리던 길을 떠나 슬금슬금 공원밖으로 꽁무니를 뺐다.

《금동아! 금동아! 어디 가니?》

아이들이 일어서서 법석을 피웠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강뚝의 담장을 넘어섰다.

담장을 넘어 얼핏 공원쪽을 돌아보니 문제풀이가 적힌 종이장을 한데 거머쥔 순철이가 재수, 효남이, 문호, 순일이, 주섭이의 순서로 경기에 참가한 아이들을 금석이의 앞에 세우고있었다. 등수가 결정된 모양이였다.

순철이는 맨앞에 선 재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금석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있었다.

금동이는 샘도 나고 부러움도 나서 군침을 꿀떡 삼키였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에 잠기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보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구나. 저 순일이네 형님을 좀 보지. 순일이가 최우등을 한것만치 기뻐하는걸.)

경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다 떠나간 다음에도 금석이는 돌상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두손으로 뺨을 고이고 구름송이들이 오락가락하는 하늘 한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순철이가 웃으면서 어깨를 탁 쳐서야 그는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서는것이였다. 동생이 꼴찌도 못하고 경기장에서 자취를 감춘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금동이는 아빠트쪽으로 사라지는 중학생들을 얼없이 바라보다가 텅빈 공원으로 스적스적 내려갔다. 조팝나무담장뒤에 감춰두었던 화분통을 꺼내여 통안의 흙을 모조리 퍼내였다.

(사과씨를 심으면 정말 사과나무가 생길가?)

산수도 잘 풀지 못하는 자기의 손에서는 사과씨도 제대로 가꾸어질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세상만사가 다 자신이 없어졌다.

 

10.평양은 얼마나 넓은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그 창피스런 알아맞추기경기에 대해서 금석이는 어머니에게 한마디도 귀띔하지 않았다. 형은 이렇게 허물을 감싸주는 때가 많았다.

그것도 금동이가 형의 흠집들을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자질하지 않는 대가였다.

금석이는 그럴 때마다 《너하구 나하구 〈공동전선〉을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운수사나운 알아맞추기경기때문에 찰떡같은 《공동전선》이 하마트면 깨여질번 하였다.

경기장에서 꽁무니를 뺀 금동이의 비겁한 행동을 어머니한테 일러바치겠노라고 형이 엄포를 놓았던것이다.

그래서 금동이는 진종일 어깨를 오그라뜨리고 락심한체 하였다. 말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동생이 가엾어보였던지 형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신 금동이한테 산수련습문제들을 한아름 내주었다. 이튿날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문제를 내주고 받아냈다. 동생이 숱한 아이들앞에서 개코망신을 당한것이 아무래도 분했던 모양이다.

금석이의 하루생활표에는 《동생을 도와주는 시간》이라는 일과가 새로 생기였다. 그 시간은 금동이가 제일 잠이 몰려 꼼짝달싹 못하는 저녁 8시부터 10시사이였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금동이는 아침부터 형이 내여준 산수문제들을 푸느라고 책상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분으로 받은 열문제를 얼른 풀어치우고 밖에 나가고싶었다. 재수가 떠벌이는것을 들어보면 밖에서는 별의별 재미나는 일이 다 있는 모양이였다.

당창건기념일이 가까와올수록 수도는 더욱더 활기를 띠였다.

축등들이 내걸리고 악대들이 자주 품파라품파라 하였다. 명절상품들이 매대들을 꽉 채웠다.

 

철모르는 우리에게 새옷을 입혀

배움의 요람속에 안아키운 당

 

아빠트웃층에서 갑자기 맑고 구성진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금석이네 학교 5학년에 다니는 인숙이라는 누나의 목소리였다.

학생소년궁전 탁구소조원인데도 그 누나는 노래를 참 기름지게 불렀다.

 

이 세상 천만가지 보화를 모아

웃음많은 궁전도 지어주었네

 

금동이는 노래소리에 끌리여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그 순간 그는 베란다턱에 놓인 화분통우에서 마른 명태 한마리가 데룽거리는것을 보았다. 낚시코에 꿰인 명태는 질기고 탄탄하게 꼬인 그 물실에 매달려있었다.

웃층에서 재수가 또 《낚시질》을 시작한게 분명하였다. 《낚시질》을 하고싶을 때면 그 애는 길다란 나무막대기에 줄을 달고 거기에 도루메기니 가재미니 붕어니 하는 물고기들을 꿰여 내려보냈다. 어떤 때는 과일도 내려보냈다.

그러면 금동이는 과자니 사탕이니 강냉이니 하는 먹을것을 달아올려보냈다.

금동이는 건들거리는 《낚시줄》을 안으로 잡아들이여 낚시코에서 명태를 따냈다. 말라붙은 아가미의 짬사리에 꼬깃꼬깃 접은 종이쪽지가 보이였다.

《금동아, 지금 빨리 우리 집에 오너라. 순일이도 오구, 효남이도 오구, 동학이랑 주섭이랑 문호랑 다 왔다. 우리는 참 재미나게 논다.》

쪽지에 적힌 재수의 글이였다.

금동이는 회답을 썼다.

《명태를 먹어치우고 인차 가마.》

그는 명태를 먹어치운것이 아니라 풀이하던 문제를 마저 셈하고 재수네 집으로 갔다.

무슨 말다툼이 벌어졌는지 아이들은 제멋대로 불어대는 여러개의 나팔처럼 옥작옥작 떠들고있었다.

《금동아, 네가 좀 말해라.》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깃하게 익어오른 순일이가 문밖에서 어물거리는 금동이를 다짜고짜 안으로 끌어들이였다. 어찌나 세차게 잡아당겼는지 금동이는 동학이 무릎우에 쾅하고 나가넘어졌다.

《응, 옳다. 금동이가 말해봐라!》

미처 정신을 차릴사이도 없이 재수가 연거퍼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뭘 말하라니?》

금동이는 땀에 번들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재미나게 둘러보았다.

《평양이 얼마나 넓나 그걸 말해봐라.》

벽에 잔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동학이가 벌떡몸을 곧추 세우며 금동이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효남이는 눈에 모를 세우고 올롱해서 금동이를 지켜본다.

주섭이와 문호는 말참녜를 하지 않고 싱긋벙긋 웃기만 했다.

《얼마나 넓은가구? 거야 하늘만큼 넓겠지 뭐.》

금동이는 입을 하 벌리고 자기를 쳐다보는 순일이와 동학이의 머리우에 두팔을 크게 벌려보였다. 평양바닥을 다 돌아보지도 못했으니 대답이 어정쩡할수밖에 없었다. 그가 돌아본것은 모란봉의 남쪽과 평양역의 북쪽에 있는 수도의 중심거리뿐이였다.

금동이의 엉터리없는 대답에 아이들이 《하하하.》하고 큰 웃음을 터쳐놓았다.

《왜 웃니? 내 말이 맞지 뭘 그래. 저것봐라.》

금동이는 제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동학이와 주섭이를 끌고 창문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강건너 동평양 공장지구를 손짓해보이였다.

《…저 하늘끝에까지 집이 꽉 차지 않았니!》

정말 집들은 하늘끝에까지 꽉 차있었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해서 그 하늘이라는것은 그저 지붕에 막히여 더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을뿐이지 이 지구를 덮고도 남을만큼 엄청나게 넓다는것을 금동이는 모르고있었다.

그리고 자기따위와 같은 좁쌀친구들의 짧은 다리를 가지고는 백날을 돌아다녀도 다 구경하지 못할만큼 평양이 크다는것을 더더구나 모르고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평양은 저―기 모란봉 있는데서부터 화력발전소 있는데까지야. 그리구 방직공장이 있는데까지야.》

동학이가 왕왕 울리는 말로 제 고집을 세웠다.

《그럼, 만경대는 어떡허구?》

입을 닫아매고있던 순일이가 발끈했다.

《만경대는 화력발전소보다 더 가깝지 않니. 》

뻐스만 타고 만경대에 다녀본 동학이한테는 정말로 만경대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화력발전소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것처럼 보였다.

《애개개, 그럼 화력발전소앞에 만경봉이 있게.》

《하여튼 만경봉에서 화력발전소굴뚝이 보였으니까.》

동학이는 자신없이 떠듬떠듬하면서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말다툼은 좀처럼 끝장이 날것 같지 않았다.

알고본즉 불집을 터뜨린것은 순일이였다. 토요일 오후에 어머니를 따라 류현리라는데 갔다온 그는 오늘 아침 재수네 집에 나타나자바람으로 《야, 우리 평양이 정말 넓던데!》하면서 난데없는 벼이삭을 꺼내였다.

《이건 어디서 난거가?》

하고 아이들이 묻자 그는

《어디긴 어디겠니. 평양에서 난거지.》하였다.

《평양에두 벼가 자라니? 평양에두 논이 있나말야?》

순일이의 말을 처음부터 허튼소리라고 점찍은 효남이가 이렇게 퉁을 놓자 동학이가 《평양엔 농촌이 없어. 평양은 모란봉에서부터…》

하고 나서는 바람에 아까부터 말씨름이 벌어졌다는것이다.

아무리 시비를 따져야 승부가 결정될것 같지 않아서 금동이를 청했던것이다.

《류현리? 그게 어디 평양이야? 평양엔 리가 없어. 경림동, 중성동, 대동문동, 오탄동… 봐라, 다 동이 아니냐?》

효남이가 불쑥 잠잠해진 동학이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리가 없다구? 참참참, 평양시 순안구역 신미리, 평양시 형제산구역 학산리… 이건 리가 아니고 뭐야? 난 우리 어머니 우편가방에서 다 봤어.》

결이 나서 소리를 높이는 재수의 목에는 굵은 피대가 일어섰다.

《맞았어. 맞았어. 평양엔 동두 있구 리두 있어. 닭공장두 있구, 돼지목장두 있어. 평양은 죽신하게 넓어!》

순일이는 한마디도 짝지지 않고 점점 더 기세를 올리였다.

금동이는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경림동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대성산이나 룡악산이 다 수도에 있는 산이라면 평양이 죽신하게 넓다고 한 순일이의 말을 틀린다고 할수 없다.

그런데 순일이의 말처럼 평양에서 정말 벼가 자라는지 그리고 우리 평양에 닭공장이나 돼지목장 같은게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은 금동이도 아리숭했다.

저번날 공원 유보도에서 알아맞추기경기를 할 때 이런 문제가 차례졌더라면 정말 꼼짝 못하고 빵점을 맞았을것이다.

금동이는 자기가 그런 문제를 쥐고 쩔쩔매는 꼴을 그려보자 몸에서 진땀이 다 났다.

(우린 정말 모르는게 너무 많구나. 그래서 모두들 쩍하면 《1학년생》, 《1학년생》하는 모양이지. 가서 형을 데려올가? 에이, 그건 시시해. 힘들어도 우리 힘으로 알아내야 해. 그래야 진짜 1학년생이지. 어떻게 하면 고걸 알아낼가? 멋있게 말이야.…)

그는 류현리에서 가져왔다는 벼이삭을 주무르면서 한참동안 눈을 슴뻑거리였다. 그의 머리에는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얘들아, 이러지들 말구 우리 한번 평양이 얼마나 넓나 돌아보는게 어때?》

금동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그게 좋겠어!》

아이들이 일제히 맞장구를 쳤다. 다만 효남이가 혼자 입을 다물고있었을뿐이다.

《그럼 진종일 걸어다니겠구나.》

잠시후에 그가 걱정스럽게 하는 말이였다.

《뻐스를 타면 되지 않니.》

금동이는 그러지 않아도 뻐스를 타고싶은 생각이 간질간질하던 때라 마침 잘되였다고 기뻐하였다.

《뻐스? 옳다, 뻐스를 타고 다니자!》

《그럼 참 멋지겠지?》

《멋지지 않구. 가고싶은 곳에 다 가니깐…》

아이들은 한마디씩 지껄이며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뜨직해하던 효남이와 주섭이도 뻐스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하였다.

시계는 오전 열시 십삼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였다.

점심을 못 먹어도 빨리 뻐스를 타자고 재수가 우기여서 아이들은 우르르 밖으로 쓸어나갔다.

주머니에 있는 잔돈들을 금동이의 모자에 털어모았다. 60전밖에 안되였다. 일곱이여서 종일 뻐스를 타자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있어야 했다.

재수가 마분지로 만든 자기의 저금통을 깡그리 털어 1원 45전을 더 보태였다.

평양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것을 돌아보러 가는데 무엇을 아끼겠는가. 아이들은 먼저 도시의 서쪽을 구경하기로 하고 금동이가 체육관으로 갈 때 익혀두었던 송신―팔동교행 뻐스정류소로 향했다.

일요일이여서 뻐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님들이 다 내리자 맨앞에 섰던 재수가《단체!》하고 소리치며 5전짜리 일곱잎을 차장에게 내밀었다.

그는 자기들이 멋도 모르고 아무데나 망탕 헤바라다니는 코흘리개들이 아니라 당당한 인민학교(당시) 1학년생들이며 더군다나 평양이 얼마나 넓은가를 보려고 길을 떠난 려행가들이라는것을 힘껏 뽐내고싶었던것이다.

《단체? 너희들이 무슨 단체란 말이냐? 겨우일곱명인데.》

얼굴이 너부죽하고 듬직하게 생긴 처녀차장이 순하게 생긴 눈을 약간 우로 치뜨고 입귀로 쏟아져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물었다.

《1학년생 단체야요.》

재수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원 참, 별난 단체도 다 있구나.》

줄에 섰던 사람들은 일제히 허리들을 제끼며 어이가 없다는듯이 껄껄껄 웃어댔다.

차창밖으로는 낯익은 건물들이 늘찐늘찐 지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봉화역이야. 저집 밑엔 지하철도가있어.》

《저기 저 집은 당창건기념관이야.》

《천리마거리!》

금동이는 차창에 이마를 맞대고서서 잠시도 쉬지 않고 설명을 엮어댔다.

천리마거리에 한번도 와본적없는 효남이, 동학이, 순일이, 주섭이들은 두귀가 벌쭉해서 차창밖 량켠을 뚜릿뚜릿 살피였다. 그리고 눈앞에 다가오는 큰산같은 건물을 내다보며 일제히 웨치였다.

《평양체육관!》

《인민문화궁전!》

집도 많지만 거리도 참 많다. 한 거리를 지나면 다른 거리가 나서고 그 거리를 지나면 또 다른 거리가 련이어 나타났다.

《차장누나, 여기도 평양이나요?》

뻐스가 대타령 네거리에 들어섰을 때 효남이가 물었다.

《그럼, 평양이 아니구. 여긴 보통강구역이라는데야. 조금만 더 가면 락원거리가 있단다.》

《야, 우리 평양이 정말 큰데!》

효남이는 동학이의 허풍서니에 맞장구를 치던 아까일을 다 잊어버리고 소리쳐 감탄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이 많은 집들을 언제 다 지었나요?》

《전쟁이 끝난 다음부터… 아버지원수님께서 좋은 집에서 너희들을 살게 하시려고 이 거리를 세워주셨단다.》

락원거리앞에 이르자 운전사는 더 천천히 뻐스를 몰았다.

아이들은 유명한 이 거리를 눈에 잘 익혀두려고 창문앞에 다람다람 매달렸다.

산뜻하고 맵시나는 높고 웅장한 집들이 거리 량쪽에 우뚝우뚝 솟아있었다. 높이 치솟은 어느 아빠트꼭대기에서는 기중기가 기운차게 팔을 휘젓고있었다.

(우리 아버지들이 정말 좋은 집을 많이 지었구나. 센데! 세상에 우리 아버지들만큼 힘센 사람들이 있을가? 그리구 우리 평양처럼 멋진 곳이 또 있을가?)

금동이는 발끝으로 장단을 치며 흐뭇이 코노래를 흥얼거리였다.

그러는사이에 뻐스는 팔동교종점에 와닿았다.

《아저씨, 여기두 평양이나요?》

푸릿한 수염자리를 슬슬 문대며 리발관에서 나오는 청년을 보고 순일이가 물었다.

《그럼, 평양이지.》

《저기 보이는 저 산도 평양산이나요?》

《거기도 평양이지.》

《봐라. 어때?》

순일이는 우쭐해서 동학이와 효남이의 코앞에 손가락을 내둘렀다.

동학이는 두손으로 귀구멍을 틀어막고 먼발치로 뺑소니를 쳤다.

《얘들아, 이번엔 이쪽으로 가보자!》

금동이가 이렇게 소리치자 아이들은 와르르 길을 건너갔다. 방금 타고온 그 차를 다시 뒤짚어타고 그들은 송신으로 향했다. 길 량쪽에 높다란 고층집들이 연줄연줄 서있는 널직한 거리가 동쪽으로 동쪽으로 끝없이 뻗어갔다.

차가 앞으로 가면 아빠트꼭대기에 드리워있던 하늘이 멀리로 뒤걸음쳤다. 그리고 그 하늘을 따라 거리도 자꾸 앞으로 줄달음쳤다.

금동이는 주머니에서 순일이가 가져온 류현리의 벼이삭을 꺼냈다.

그 이삭에는 노랗고 깔깔한 껍질이 있는 벼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어서 빨리 이런 벼이삭들이 꺼지게 무르익었다는 농장벌에 가보고싶었다. 그리고 이런 열매를 가꿔가는 그 보배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싶었다. 아이들은 새로 건설된 립체교앞에서 뻐스를 내리여 포장길을 따라 걸어갔다.

번잡하던 거리는 끝나고 고압선의 그림자가 아담한 단층집들과 염소들이 풀을 뜯고있는 푸릿한 언덕을 지나가고있는 고요하고 깨끗한 교외가 눈앞에 펼쳐졌다.

얼마쯤 가자 논밭이 나타났다. 누렇게 설레는 황금이삭들이 하늘과 땅이 맞붙은 지평선까지 숨이 차게 뻗어갔다. 어떤 포전들에서는 벌써 가을을 하고있었다. 먼 벌끝에서 낫날이 번쩍하고 해빛에 빛났다. 벼를 베러나온 지원자들이 배미마다 들어찼다. 밭 한기슭에서는 수확기들이 뿌연 먼지같은것을 뿜어치며 열심히 벼를 거두고있었다. 바람이 불자 숨을 죽이고있던 벼바다는 가볍게 몸을 뒤채기며 황금색과 황백색이 서로 엇바뀌는 묘한 파도를 벌끝에까지 실어갔다.

금동이는 벼이삭들이 서로 비비대며 와시삭거리는 소리를 귀를 강구어들었다. 그 소리는 벌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자라난 금동이에게 자기들이 나서자라는 땅에 대하여, 자기들을 가꾸어준 고마운 손과 땀들에 대하여 소곤소곤 정답게 속삭여주는듯 싶었다.

금동이는 낟알냄새가 풍기는 구수한 벌바람을 가슴이 버그러지게 들이마셨다.

(곡식을 가꾸는 농촌은 참 좋구나. 물두 좋구나. 공기두 좋구, 풀냄새두 좋구, 이 벌에서 뜨락또르를 모는 저 아저씨는 얼마나 좋을가?)

《야, 흰쌀밭!》

맨앞에서 가던 동학이가 논을 손짓하며 신바람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뭐 흰쌀밭? 하하하… 하하하…》

순일이는 길섶에 풀썩 주저앉아 배를 붙안고 대굴대굴 굴었다.

《왜 내 말이 글렀니?》

《그건 흰쌀밭이 아니구 논이야. 하하하…》

《매―매―》하는 염소울음소리가 문득 아이들의 발걸음을 못박아세웠다.

두두룩하게 비탈진 오른켠포전의 최뚝에서 허리춤에 낫을 비스듬히 찌른 키가 작고 머리를 빡빡 깎은 채수염의 할아버지가 아카시아나무밑둥에 고삐를 비끄러매며 염소에게 지청구를 퍼붓고있었다.

《에끼, 망할 놈의 장난꾸러기같은 녀석, 너희네 유치원코흘리개들을 닮아서 그렇게 장난이 세차냐?》

아이들은 일제히 《하하하.》하고 웃었다.

할아버지의 속을 태우는 염소의 갈갬질도 재미났고 염소를 《녀석》이라고 꾸짖는 할아버지의 욕지거리도 우습강스러웠던것이다.

《할아버지, 여기가 평양이나요?》

푸접이 좋은 재수가 할아버지의 곁에 다가서며 물었다.

《그럼 평양이지. 평양시 력포구역이란다.》

할아버지는 평양땅에 서서 여기가 평양인가고 묻는 졸망구니들을 의아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재수는 평양에두 논이 있느냐, 벼가 자라느냐고 목청을 돋구던 효남이와 평양엔 농촌이 없다고 우기던 동학이를 향해 혀를 쑥 내밀어보이였다.

남의 말을 탓할줄 모르는 동학이는 벌쭉 웃었고 효남이는 보슴털이 보르르한 귀바퀴가 닭의 볏처럼 빨개졌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할아버지와 염소를 에워쌌다.

금동이는 난생 처음 보는 털이 새하얗고 눈이 갈색인 염소가 너무 고와서 그놈의 꼬리를 살며시 만지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그렇게 성났나요? 이염소도 애를 먹이나요?》

《애를 먹이다뿐이겠니. 장난으로 말하면 너희들을 찜쪄먹을게다. 글쎄 이게 어떤 콩이냐. 이 콩을 아마 한되박은 먹었을게다.》

할아버지는 마디지고 껄껄한 손으로 염소의 잔등을 지끈 갈기였다.

보매 어리광꾸러기인듯 한 그 염소는 할아버지의 가벼운 매질에도 펄쩍 뛰며 《매애…》하고 엄살을 떠는것이였다.

효남이와 주섭이는 후닥닥 놀라서 최뚝 저쪽으로 달아났다. 아이들이 또다시 까르르 웃었다.

《할아버지, 이게 무슨 콩이길래 그래요?》

재수는 아예 최뚝우에 걸터앉으며 끈끈스레 물었다.

《귀한 콩이지. 너희들은 학교에서 우유를 먹어봤겠지?》

《예, 매일 먹습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 우유가 바로 이 콩으로 만든 우유다. 아버지원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날마다 맛나는 우유를 먹이시려구 늘 콩농사를 잘 지으라구 말씀하시지. 그 말씀을 받들고 농장에서 새 땅을 일쿠고 처음으로 심은 콩이 아니겠니.》

할아버지는 한쪽 눈귀를 버릇처럼 쪼프리고 비탈에 펼쳐진 콩밭을 대견스럽게 여겨보았다.

아이들도 할아버지의 눈길을 따라 말없이 콩밭을 지켜보았다.

(그 우유는 콩에서 나구 콩은 땅에서 나는구나. 그리구 이 땅은 할아버지가 가꾸는구나.)

금동이의 마음속에서는 불쑥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보고싶은 욕심이 불붙듯 치밀었다.

《할아버지, 나 할아버지의 손 좀 만져볼래요!》하고 그는 서슴없이 곰방대를 받치고있는 할아버지의 터실터실한 손을 자기앞으로 끌어당기였다.

《나두 만져볼래요!》

《나두!》

《나두요!》

아이들은 승벽내기로 달려들어 조그마한 손들로 할아버지의 다른 손을 겹겹이 감싸쥐였다.

그것은 금동이네가 디디고사는 이 땅을 일생토록 기름지게 걸구고 또 걸구어온 보배로운 손이였고헤아릴수 없이 많은 낟알과 과일을 가꾸어 사람들에게 보내준 고마운 손이였다.

두손을 조무래기들에게 깡그리 맡긴 할아버지는 눈굽에 눈물이 핑 고이는것도 모르고 온 벌이 다 들리게 큰소리로 껄껄껄 웃었다.

 

―주체72(1983)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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