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7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전 기 영

 

봄빛이 짙어가는 솔령의 고개길로 소달구지 한대가 굴러올라가고있었다. 솔가지로 퍼렇게 위장을 한 달구지다.

그우엔 책보를 허리에 띤 인민학교(당시)또래 아이들이 타고있다. 쉼없이 옴지락거리고 그지없이 재깔거리면서… 다만 두손을 바지주머니에 꾹 지른 성룡이만이 어른스럽게 생각에 잠겨 스적스적 달구지뒤를 따르고있다. 왼쪽팔소매에 빨간 두줄배기 분단위원장표식이 달렸다.

그들은 딸기골분교의 열두명아이들이다. 읍에 있는 본교에서 하루공부를 마치고 고개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고삐를 잡고 앞선것은 검은 모달리모자밑에 허연 머리칼이 드러난 성룡이 할아버지…

성룡이도 할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다. 금방 본교를 떠날 때 받은 전선에서 온 분교담임선생님의 편지구절들이 이상야릇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마음을 휘잡고있었던것이다.

딸라당 딸랑… 소방울소리 즐겁다.

삐거덕 삐걱… 바퀴소리 가볍다.

슈― 슈― 슈― 먼 산발우로 미군놈의 그라망편대가 날아지나가는 아츠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쪽엔 개의치 않는다.

이 몇달동안 솔령의 고개길은 딸기골아이들에게 정들었다. 아침엔 눈부신 해살을 안고 본교로 가고 낮에는 둥근해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고… 분교에 정다운 선우철선생님이 있을 때엔 일년 가다 몇번밖에 오르내리지 않던 고개길이다.

본교에서 소년단총회나 체육대회, 예술경연이 있을 때마다 넘어다니던 고개길이다. 그런데 지금은 딸기골과 읍사이의 20여리길을 이 험준한 솔령을 넘어 매일같이 오가는 아이들이다.

어느덧 달구지는 고개마루에 올라섰다. 딸라당 방울소리 울리며 얼룩소가 저절로 멈춰선다. 아이들이 탄 달구지를 끌고 읍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여기서 걸음을 멈추는데 습관된 얼룩소다.

아이들은 이렇게 소를 세우고 달구지에서 냉큼냉큼 뛰여내려서는 와아― 고함지르며 수림속으로 앞다투어 뛰여들군 했다. 그랬다가 잠간사이에 다시 돌아와서는 자기 손에 쥐여진 꽃송이들을 높이높이 쳐들어보이면서

《할아버지, 이 꽃이 제일 붉지요? 네?》

《할아버지, 이 꽃이 더 곱지요? 네?》 하고 오구작작 떠들어대군 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오냐, 네 꽃이 제일 붉구나.… 그래 네 꽃이 더 곱다.…》

하며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군 했다.

불탄 분교대신 숲속에 새로 지은 자그마한 교실에다 전선에 나간 선생님이 늘쌍 하던대로 향기로운 꽃을 매일매일 갈아 피워놓는 아이들의 정성이 측은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였다.

그래서 지금도 얼룩소가 스스로 걸음을 멈춘것이다. 그리고 예나 다름없이 아이들은 달구지에서 뛰여내려 숲속으로 달음박질쳐 들어갔다.…

얼마후 손에손에 꽃묶음을 든 아이들을 태우고 달구지는 다시금 굴러가기 시작했다.

삐거덕 삐걱… 딸라당 딸랑…

이제부터는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성룡이는 발가락이 아픈줄도 모르고 길가의 조약돌을 툭 툭 걷어차며 말없이 달구지뒤를 따라 걸었다.

여기서는 고개밑 골짜기에 오붓하니 들어앉은 딸기골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치 하늘에 떠도는 구름송이를 끄당겨내려 덮어놓은것처럼 집집마다 살구꽃이 곱게 피여났다.

마을뒤 둔덕우의 불탄 분교자리도 눈길에 가물가물 밟혀온다.

연기에 끄슬은, 무너지다 남은 한쪽벽체와 정문 나무기둥… 그밖엔 재더미뿐인 집터가 시꺼멓게 드러나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성룡이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여느때없이 울적해지고 코등까지 쩌릿해진다. 분교가 불타던 날 치떨리고 비통하던 순간들이 새삼스레 머리속에 되살아나기때문이였다.

그날도 하늘은 높고 푸르렀었다.

첫시간은 노래공부였다. 선우철선생님이 풍금을 타며 노래를 배워주고있었다.

아이들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넓으신 품에 안겨 우리들은 새 조선의 꽃봉오리로 씩씩하게 자란다는 노래였다.

랑랑한 노래소리는 활짝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마을로, 벌로 울려퍼졌다. 전선에 더 많은 식량을 보내주기 위해 일손이 바쁜 마을어른들에게 류다른 기운을 돋궈주고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비행기감시막에서 땡땡땡! 땡땡땡!… 다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미군놈의 쌕쌔기편대가 솔령을 넘어 딸기골에 날아들었던것이다.

아이들은 황급히 책보를 싸들고 뒤산으로 올랐다. 성룡이도 선생님과 함께 교실밖으로 뛰쳐나갔다. 숲속에 뛰여들자마자 쉭쉭쉭― 소이탄 떨어지는 소리, 뚜룩뚜루룩 기총탄 퍼붓는 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우뚝 걸음을 멈춘 성룡이는 고개를 돌렸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분교가 불길속에 휘감긴것이 아닌가!

불타는 분교를 그냥 내려다볼수 없었다. 가슴이 터지는듯 아팠다. 와락 책보를 들어 얼굴을 가리웠다. 그랬으나 눈앞엔 여전히 활활 타번지는 모든것이 어룽거렸다. 칠판과 교탁, 책상과 걸상들 그리고 풍금이 똑똑히 보였다. 막 미칠것만 같았다. 성룡이는 선생님의 팔에 매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선생님! 풍금이… 풍금이…》

선생님은 그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다. 크거든 이름난 독창가수가 될 꿈을 품고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풍금을 아낀다는것을… 그래서 불타는 풍금을 두고 가장 가슴아파한다는것을 알고도 남았다.

선생님은 분교로 나는듯이 뛰여내려갔다. 성룡이도 책보를 내던지고 교실로 뛰여들었다. 그들은 끝내 풍금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한쪽이 꺼멓게 타고 기총탄에 뚜껑이 부서진 풍금의 형체는 말이 아니였다.

성룡이는 너무도 분해서 아직 불찌가 남아있는 뜨거운 풍금을 와락 그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두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산에서 뛰여내려온 아이들도 선생님의 품에 안겨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벌에서 달려온 성룡이 할아버지와 마을사람들도 두주먹을 우들우들 떨며 울었다.

해방된지 이태만에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 은덕으로 아담한 분교를 짓고 딸기골마을이 생겨나 처음으로 배움의 종소리를 땡그랑땡그랑 울리던 날, 운동장에 너도나도 모여들어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에 흐느끼던 그들이였다.

그런데 그들앞에는 번쩍거리는 함석지붕과 유리창도 윤기도는 책상과 걸상도 이젠 없었다. 그 모든 귀중한것을 미군놈들이 빼앗아간것이였다.

…성룡이는 울분에 찼던 그때의 일을 어제런듯 흥분속에 그려보며 내리막길을 시름없이 걷고있었다.

이제 굽인돌이를 한고패 돌아 고개길을 내려서면 새로 지은 교실로 질러가는 오솔길이 나진다.

오솔길어구에 가닿으면 아이들은 달구지에 책가방만 실어보내고 교실의 꽃병에다 자기가 꺾은 꽃을 먼저 갈아피우겠다고 밀칠듯, 덮칠듯 승벽내기로 내달을것이다.

먼 남쪽 뿌연 하늘가에 구름같기도 하고 연기같기도 한 검은것이 서서히 떠돌고있다.

성룡이는 하염없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거기 어디에 선생님이 싸우고계실 무명고지가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자 불탄 분교를 뒤에 남기고 복수를 다지며 전선으로 떠나던 선생님의 뻘겋게 상기된 얼굴이 눈앞에 선히 비껴온다. 포연 흩날리는 전호속에서 자기에게 편지를 썼을 그 름름한 모습도…

(선생님! 빨리 미군놈들을 족쳐주세요. 분교를 불사른 원쑤놈들을 모조리 족쳐주세요. 우린 전쟁이 끝날 날을 기다리고있어요. 영웅되여 돌아오실 선생님을 기다리고있어요!…)

금시 넘쳐날듯 온몸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걷잡지 못하며 성룡이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달구지는 굽인돌이를 돌아 느릿느릿 움직였다.

고개길어구에 웬 승용차들이 서있었다. 풍을 치고 위장망을 쓴 진록색의 차들이다. 그곁엔 인민군대 군관아저씨들 여럿이 서있다.

(무슨 일일가?…)

성룡이는 의아해서 그들을 살펴보았다. 보위색옷을 입으시고 가죽장화를 신으신 키가 후리후리한분께서 군관들앞에 서시여 불탄 분교자리를 유심히 바라보고계시였다. 그러다가 달구지소리를 들으시고 흐리신 얼굴을 돌리신다.

순간 성룡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장군님!… 얘들아, 장군님이시다!》

성룡이는 부지중 목메여 소리치고는 씽 바람을 일구며 달려내려갔다.

교실에서나 집에서나 벽에 모신 초상화를 우러러 언제나 그리워하던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 이런 길가에서 만나리라군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군님!…

아이들은 달구지우에 발딱발딱 일어나서 처음은 어쩔줄 몰라 갈팡질팡했다. 그러다 성룡이가 어느새 장군님앞에 가서서 기운차게 손들어 인사하는것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번쩍 들어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길가로 뛰여내렸다.

금시 밝은 미소를 지으신 장군님께서는 두팔을 넓게 벌리시고 헤덤비며 달려오는 그들을 한아이, 한아이 따뜻이 안아주시였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서 장군님의 승마바지자락을 붙잡고 홀짝홀짝 토끼뜀을 하였다. 길가에 달구지를 급히 세운 할아버지도 모자를 벗어들고 황황히 달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깊숙이 허리굽히는 할아버지의 두손을 반갑게 잡으시였다.

《로인님, 이 애들이 딸기골아이들입니까?》

《장군님,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는 두손에 모자를 모아쥐고 공손히 대답했다.

《분교는 저렇게 불탔는데 달구지를 타고 어디 가서 공부하고 오는 길입니까?》

《읍에 가서 공부하고 오는 길입니다.》

《고개 넘어다니며 공부한단 말입니까.… 그 먼길을…》

장군님께서는 눈길을 드시고 고개마루를 쳐다보시였다. 오르며 10리, 내리며 10리… 바라만 보아도 숨가쁜, 길고 밋밋하고 우불구불한 고개길이다. 장군님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시였다.

그러실줄 미처 몰랐던 할아버지는 그만 당황해났다.

《장군님, 근심놓아주십시오. 이제 한동안만 이렇게 공부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마을사람들이 숲속에다 자그마한 교실을 한채 지은것이며 전선으로 나간 선생님대신에 앞으로 교원양성소졸업생을 분교에 보내주기로 약속된것을 죄다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살찐 소잔등을 두드려도 보시고 달구지에 깐 푹신푹신한 가마니도 어루만져보시였다.

《로인님, 아이들을 공부시키느라고 큰 수고를 하십니다.》

뜻밖의 치하를 받은 할아버지는 황송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장군님, 나라가 전쟁을 겪는 어려운 때 이쯤한 일이 무슨 수고겠습니까.》

《아닙니다. 영농준비도 바쁘지, 축력도 긴장하지, 그런데 조만해선 이처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시며 장군님께서는 주위에 둘러선 아이들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시였다.

《너희들 학교 다니기가 힘들지 않느냐?》

《힘들지 않습니다!》

《미군놈 쌕쌔기두 무섭지 않구?》

《네. 무섭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짜랑짜랑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군님, 미군비행사놈들은 부엉이눈깔입니다. 우리 달구지가 길가에 가만 서있으면 다 나무숲인줄 알구 그냥 지나갑니다.》

성룡이가 큰애답게 의젓하니 서서 덧붙였다.

《하하하, 부엉이눈깔이라…》

장군님께서는 즐겁게 웃으시며 성룡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여주시였다.

《학생은 키도 제일 크고 분단위원장인걸 보니 5학년이구만.》 하시며 이름과 나이를 물으시였다.

성룡이는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할아버지를 보며 벌쭉 웃었다.

할아버지의 주름많은 눈굽에 물기가 어렸다.

《장군님, 이 애가 제 손자앱니다. 우리 가문에 처음 난 학생입니다. 대를 물려오면서 한 애라도 학교공불 시켰으면 하는게 소원이였는데 장군님께서 그걸 풀어주셨습니다.》

《참, 똑똑한 손자를 두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정겨웁게 성룡이를 보다가 물으시였다.

《너희들 손에 든 꽃들은 어디루 가져가느냐?》

《새로 지은 교실루 가져갑니다. 이 길루 좀 올라가면 나집니다.》

《음, 그래…》

성룡이가 가리키는 오솔길 웃쪽을 잠간 바라보신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그의 등을 가볍게 떠미시였다.

《자, 그럼 성룡이가 앞서거라. 그 교실을 어디 좀 구경하고 가자.》

《야아!―》

아이들은 짝짜그르 손벽을 치며 뱅글뱅글 맴돌았다.

부관아저씨는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장군님께서 가시는 길은 몹시 바쁜 길이였던것이다.

지금 가렬한 전투가 벌어지고있는 전선동부에선 장군님께서 오시여 새 작전을 펼쳐주실 시각을 기다리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군님께 아무 말씀도 올릴수 없었다. 전선형편이 어려운 이즈음에도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늘 마음쓰시는 장군님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군부대들이나 공장, 농촌들을 돌아보시는 때마다 어김없이 학교에 들리군 하시며 얼마전 교육일군들을 부르시였을 때엔 급한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시고 오래동안 전시교육문제를 의논하신 장군님이시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으시고 오솔길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시였다.

성룡이는 길잡이마냥 앞에 섰다. 뜻밖에도 장군님께 새 교실까지 보여드리게 된 기쁨으로 하여 그는 온몸이 둥둥 뜬 기분이였다.

어떤 애들은 종주먹을 쥐고 저만큼 앞서 뛰여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장군님의 모습을 행복스레 쳐다보고는 방그레 웃으며 다시 내닫는다.

할아버지와 군관아저씨들도 따라섰다.

소나무가 꽉 들어찬 수림속의 공기는 맑고 싱그러웠다. 이맘때면 쏴아쏴아 솔가지를 흔들며 불어대던 바람도 오늘은 잠잠하다.

오솔길은 누런 솔잎이 두텁게 깔려 주단같이 폭신하다. 아늑하고 상쾌한 길이다.

송림속을 꿰질러 얼마간 올라가자 산언덕을 깎아내고 붙여지은 교실이 앞에 나섰다.

걸음을 멈추신 장군님께서는 모자채양을 밀어올리시고 교실을 바라보시였다.

큼직큼직한 돌로 두텁게 쌓은 벽체며 창호지를 바른 자그마한 창문, 돌기와를 가쯘하게 올린 밋밋한 지붕…

《교실을 잘 지었소. 아주 잘 지었소!》

장군님께서 기뻐하시자 성룡이의 마음은 부풀어올랐다.

(야!― 빨리 여기서 공부하게 되였으면!…)

아이들은 그저 좋아서 방실방실 웃는다.

전호처럼 낸 길로 교실에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키낮은 문턱을 넘어서시였다.

향긋한 송진내가 확 풍기였다.

장군님께서는 질서정연한 교실안을 빙 둘러보시였다. 아직 손때가 오르지 않아 대패날자리가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교탁과 책상, 걸상들… 그 모든것엔 전쟁의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분교만은 기어이 지켜내려는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의 절절한 소망이 고스란히 깃들어있는듯 했다.

《이 교실을 보니 우리가 백두산에서 싸울 때 아동단원들에게 지어주었던 귀틀집학교가 생각나는구만.…》

장군님께서는 감회가 깊으신듯 키낮은 걸상에도 스스럼없이 앉아보시고 앞으로 걸어나가시여 교탁에도 서보시였다. 그러시다가 교탁곁에 놓인 풍금쪽으로 돌아서시였다.

풍금엔 흰 무명보자기가 단정히 씌워져있었다. 그것을 걷어올리시는 순간 장군님께서는 놀라시는 안색을 지으시였다. 분교가 소이탄을 맞던 날 그속에서 꺼낸 풍금이였던것이다.

불에 그슬리고 기총탄에 부서진 풍금을 이쪽 저쪽 살펴보시는 장군님곁에 성룡이가 슬그머니 다가섰다.

《장군님, 우리 선생님은 전쟁을 이기고 돌아와 풍금을 꼭 고치겠다고 하였습니다.》

성룡이의 말에 할아버지가 어이없게 웃었다.

《장군님, 글쎄 저 녀석은 늘 선생님의 그 말을 외우면서 누구도 풍금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있습니다.》

《성룡이가 풍금을 대단히 아끼는 모양이구만.》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이들이 저마끔 앞다투어 입을 열었다. 성룡인 선생님의 풍금반주에 맞춰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꼬마가수라는둥 지난해 6.6절엔 군경연대회에 올라가 1등상까지 타왔다는둥…

머리를 끄덕이신 장군님께서는 바람이 잡히지 않는 발판도 밟아보시고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도 눌러보시며 한동안 풍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다가 흰 무명보자기를 도로 정히 씌워놓으시고 교원용책상이 있는 창가로 돌아서시였다.

책상에는 어느 녀자애의 솜씨인듯 테두리를 곱게 수놓은 동그란 받치개우에 꽃병이 놓여있었는데 거기엔 어느새 갈아꽂은 고운 꽃이 소담하게 피여있었다.

《교실에 꽃을 피워놓으니 한결 환하구만!》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 선생님이 계실 때에두 철따라 늘 교실에다 꽃을 피웠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음, 그래…》

장군님께서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어린 눈길을 보내시는데 할아버지가 정중히 말씀올렸다.

《장군님, 이 애들의 선생은 딸기골에서 아주 귀한 사람이였습니다. 분교를 세워주신 장군님 뜻을 받들고 벌방학교를 떠나 이 산골에 자진해들어와서는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우리 늙은이들까지 모두 까막눈을 틔워주었습니다. 그래 이젠 온 마을이 신문도 보고 책도 읽는 문명한 마을이 되였습니다.》

《네, 그렇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곱게 피여난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시였다. 한송이한송이 꽃속에 스민, 전선에 나간 선생님과 아이들사이에 잇닿아진 뗄래야 뗄수 없는 정을 읽으시는듯… 그러시다가 성룡이에게 선생님한테서 편지가 오느냐고, 왔으면 어디 좀 보자고 하시였다.

성룡이는 주머니에 고이 간수한 편지를 얼른 꺼내드렸다. 장군님께서는 봉투에 적힌 주소와 선우철선생님의 이름을 혼자말씀으로 외우시고는 한 군관아저씨에게 물으시였다.

《이게 무명고지에 진출한 부대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음… 어려운 고비를 겪는 전선이구만.…》

걸상에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편지를 펴들고 읽으시였다. 분교를 빼앗긴 열두명아이들 몫으로 복수기록장을 만들고 전투에서 때려잡은 미군놈의 수자를 써넣군 한다는것이며 쉴짬엔 학생들에게 배워줄 식물표본, 광물표본들을 만든다는것이며 그리하여 전승의 날 다시 만나 분교아이들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워주겠다는것이며… 구절구절 빠짐없이 읽고나신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고개를 드시고 새별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서있는 아이들쪽에 그윽한 눈길을 보내시였다.

《너희 선생님은 참 훌륭하구나!…》

순간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에는 선우철선생님에 대한 자랑과 긍지가 담뿍 어렸다.

(야― 빨리 미군놈들을 몽땅 족쳤으면!… 그날은 선생님 돌아오시는 날이지. 영웅되여 오시는 날이지.…)

성룡이는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그날을 머리속에 그리며 마음설레이고있는데 부관아저씨가 장군님께 다가서며 나직이 말씀올렸다.

《장군님, 너무 지체하시는것 같습니다.》

《알겠소. 곧 떠나도록 합시다.》

하시며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꽃병을 바라보시고 산뜻한 무명보자기를 씌운 풍금을 쓸어보시고 그다음 교탁에 서시여 다심한 눈길로 아이들을 굽어보시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너희들 선우철선생님이 그립지?》

《네!》

진정 그리움 넘치는 목소리로 아이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성룡이가 나서며 덧붙였다.

《장군님, 우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웅되여 오실 선생님을 떳떳이 맞겠습니다!》

《그래! 참 장하다. 정말 기특하다!》

장군님께서는 못내 대견하신듯 성룡이의 어깨를 꽉 그러안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천천히 문턱을 넘어서시였다.

밖에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두팔을 허리에 짚으시고 돌아서시여 교실을 흐뭇하신 얼굴로 바라보시였다.

《교실은 잘 지었는데 간판이 없구만.》

《간판감은 마련해놨는데 붓글씨 쓸 사람이 없어서…》

할아버지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성룡이가 불쑥 끼여들었다.

《장군님, 간판을 써주십시오!》

《간판을 써달라!…》

《네! 우린 장군님께서 어리셨을 때 〈조선독립〉이란 글자를 붓글씨로 잘 쓰셨다는걸 배웠습니다.》

《그래? 하하하… 그러고보니 내가 성룡이앞에 두손을 번쩍 든셈이구만!》

장군님께서는 손을 쳐드는 시늉을 해보이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럼 어서 먹을 갈아라.》

《네!》

너무 기뻐 껑충 뛰였다내린 성룡이는 씽 바람을 일구며 교실로 달려들어갔다.

아이들도 좋아라 깡충깡충 깨꾸막질하며 뒤따랐다. 그들은 눈깜박할 사이에 벼루집과 간판을 쓸 널판자와 물통을 들고 도로 나왔다.

성룡이는 잔디밭에 벼루집을 놓고 펄썩 주저앉아 신명나게 먹을 갈기 시작했다.

《분교가 불타자 이렇게 교실을 새로 번듯하게 지은 딸기골농민들의 소행이 아주 훌륭합니다. 아이들과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이 전선에 가고 본교는 멀리 있어도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있습니다. 선생은 복수기록장을 만들고 원쑤놈들과 싸우면서 식물표본, 광물표본을 만들고있습니다. 원쑤놈들은 이런 조선의 어린이들, 농민들, 병사들을 상상도 못할것입니다. 자기의 생활, 자기의 위업을 사랑하고 확신하는 인민을 그 어떤 침략자도 굴복시킨 력사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우리는 벌써 원쑤놈들앞에 장훈을 불렀습니다. 장훈을 말입니다! 하하하…》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뒤로 제끼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믿음이 넘치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은 조용한 골짜기를 드르릉 울렸다.

불현듯 잠풍하던 바람이 일며 쏴아 숲우로 줄달음쳐 지나간다.

잠에서 깨난 소나무들이 우듬지를 흔들면서 우수수 설레인다. 소리없던 새들도 무리지어 날아예며 격동된 소리로 앞다투어 노래부른다.

성룡이는 가슴이 넓어지는것을 느끼며 장군님의 숭엄하신 모습을 새삼스레 우러러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할아버지도 군관아저씨들도 가슴가슴에 세찬 파도를 일으키며 엄숙한 자세로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소나무숲을 뚜벅뚜벅 거닐기 시작하셨다. 가죽장화밑에서 빠지직빠지직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노란 솔꽃가루가 반짝반짝 금빛을 뿌리며 장군님의 둥그런 모자와 넓은 어깨우에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부관아저씨는 초조한듯 연방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으나 먼 산발쪽에 눈길을 던지신 장군님께서는 끝없이 거니시였다.

딸기골아이들을 만나보시고 온 나라 아이들의 공부형편을 내다보시는지 아니면 이제 전선에 나가시여 내리실 새 작전을 무르익히시는지…

(장군님은 무엇을 생각하실가? 뭘 자꾸만 생각하실가?…)

장군님께서 새 교실을 보시고 기뻐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떤 근심에 잠기시는듯 한 느낌을 어쩌는수없이 받아안게 되는 성룡이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먹을 다 갈고 일어서는 성룡이를 보시고 그곁으로 다가오시였다.

허리를 굽히시고 벼루집에서 제일 큰 붓을 골라쥐신 장군님께서는 붓털을 벼루우에 이리저리 눕혀가며 먹물을 듬뿍 묻히시고는 네모반듯 한 피나무널판자우에 곧추 세워박으시였다. 매끈하게 대패질하고 백먹가루까지 먹인 널판자엔 활달한 글씨가 한자 또 한자 새겨지기 시작했다.

《딸기골분교》

성룡이의 황홀해하는 눈길은 힘있게 새겨지는 분교이름에서 떠날줄 몰랐다.

널판자우에서 거침없이 움직이는 붓끝에선 시꺼먼 먹물이 아니라 장군님의 사랑이 기름진 즙이 되여 고스란히 흘러나오는듯 했다.

획마다 정성을 부으시여 쓰고나신 장군님께서는 글씨에 나무랄데 없는가를 살펴보신 다음 붓을 놓으시였다.

기쁨이 넘친 아이들은 간판을 조심히 들어 서로 돌려가며 들여다보았다. 얼굴엔 방실방실 웃음꽃들이 피여났다.

《자, 인젠 성룡아, 어서 걸어라.》

이렇게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성룡이가 간판을 들고 교실문어구로 달려가자 몇걸음 뒤로 물러서시여 바라보시였다.

《더 높이, 추녀끝까지 부쩍 들어올려라!》

간판을 문기둥에 가져다대는 성룡이에게 장군님께서 말씀하셨다.

성룡이는 간판을 힘껏 들어올렸다.

할아버지가 마치로 큰 못을 박았다.

텅! 텅!… 힘찬 마치소리는 수림을 흔들고 아이들의 심장도 쿵쿵 울려주었다.

두손으로 간판을 소중히 받들고선 성룡이의 마음은 마냥 울렁거렸다. 분교가 불타고 선생님이 전선으로 떠날 때에는 꽃피우던 희망이 깡그리 재가 되여버린듯싶었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들에겐 새 교실이 있으며 이제 얼마후부터는 여기서 마음놓고 공부할수 있게 되였다는 감격이 가슴속에 한가득 흘러넘치고있었다.

한낮의 해빛은 밝게 내리비치고있었다. 그리하여 아직 참먹의 물기가 어린 간판의 힘찬 글발들은 유난스레 윤기를 내고있었다.

 

×
 

딸기골숲속은 아이들로 법석 끓었다. 래일부터 그들은 새 교실에서 공부하게 된것이다.

벌써 성룡이 할아버지는 새로 오는 녀선생님을 마중하려고 아침일찍 읍쪽으로 떠났다.

기쁨에 넘친 아이들은 녀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개울에서 자갈을 날라다가 새로 꾸린 꽃밭둘레와 길에 깔기도 하고 교실안팎을 깨끗이 쓸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창 분주탕 피우며 돌아칠 때였다. 군대배낭을 둘러멘 성룡이 할아버지가 오솔길로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소리치는것이였다.

《얘들아! 선생님 오신다. 선생님이 오셔!》

아이들은 일손을 멈추고 일시에 고개를 들었다.

(새 선생님이 이제야 오시는구나!)

교실문어구에 자갈을 깔던 성룡이는 생기넘치는 눈으로 오솔길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의아해졌다. 할아버지와 함께 오시는것은 녀선생님이 아니라 웬 제대군인이였던것이다. 견장없는 병사복을 입고 군모를 쓴 청년…

(아니?…)

성룡이는 그만 눈이 둥그래졌다. 청년은 다름아닌 선우철선생님이 아닌가!

《선생님!》

성룡이는 삽을 던지고 달려갔다. 아이들도 비자루와 삼치를 내던지고 와― 달려갔다.

그들은 너무 좋아 공처럼 통통 뛰여올랐다.

성룡이는 해볕에 타서 검실검실한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반갑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전선길에 나선지 이제 불과 몇달밖에 되지 않는 선생님, 그런데 부상도 입지 않은 성한 몸으로 돌아왔으니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아이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눈 선우철선생님은 군모를 벗어들더니 간판이 커다랗게 나붙은 교실이며 꽃밭이며를 감개어린 눈으로 더듬어보고나서 말했다.

《성룡아, 얘들아, 모두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라!》

《네!》

아이들은 선생님을 에워싸고 교실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도 식물표본, 광물표본이 든 묵직한 배낭을 들고 따라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어리뻥해진 눈으로 선생님의 움직임만을 지켜보았다.

선우철선생님은 마을사람들과 아이들의 정성이 스민 책상과 칠판, 꽃병을 일일이 만져보고 쓸어보고 했다. 그러다가 교탁에 가서서 물기어린 눈으로 아이들을 둘러보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얼마전 전선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부대에 들리시여 나를 불러주시였단다!》

《네?!…》

성룡이와 아이들은 너무나도 뜻밖의 소식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서로 마주보았다.

《내 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이 교실에 들리셨던 소식을 전해주신 장군님께서는 〈선우철선생, 거기엔 딸기골분교에 있어야 할 모든게 다 있었소. 다만 한사람, 아이들이 전승의 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선생만이 없었소. 그들에게 글을 배워주고 노래를 배워주던 정든 선생만이 없었소.〉 이렇게 말씀하시는게 아니겠니!》

(아! 그래서 장군님은 근심하셨구나. 뭔가 자꾸만 자꾸만 생각하셨구나!…)

성룡이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선생님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장군님을 만나뵙던 때의 격정이 되살아오르는듯 선우철선생님은 쉰듯 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학교에 들려보았는데 실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머지 않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모두다 공부하는 배움의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데 이 길을 전쟁이 멈춰세울순 없소. 그래 전선형편은 긴장하지만 새 학년도를 앞두고 모든 전선에서 선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있었소. 그런데 나는 딸기골분교에 들려보고 그 조치를 하루빨리 앞당길 결심을 내렸소!〉 그러시고는 전쟁이라고 하여 정든 선생을 그리워하는 어린 마음들에 재가 앉게 해주어서야 되겠느냐고, 지금은 아이들을 공부시키는것도 미군놈을 족치는 전투라고, 전선에서 싸우던 그기세로 아이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잘 키우라고 하시며 금방 습격조의 중대한 임무를 받고 전투준비를 하고있던 나에게 지체없이 돌아가라고 명령하시였단다!》

《선생님!―》

성룡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탁앞으로 달려나갔다. 아이들도 모두 우르르 달려나갔다. 웃음절반, 울음절반이 된 그들의 얼굴엔 기쁨이 넘쳐흘렀다.

선우철선생님은 아이들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얘들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너희들을 위해 내리신 그 결심이 어느 나라 전쟁력사에도 있어본적 없는 얼마나 크고 대담한것인가를! 그것은 오직 너희들을 제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우리 장군님께서만 내리실수 있는 위대한 결심이라는것을!…》

아이들은 그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있었다. 문가에 선 할아버지도 그 말을 새기며 달아오르는 눈굽을 팔소매로 훔치고있었다.

성룡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있었다. 그의 눈앞에 장군님의 숭엄하신 모습이 떠올랐다. 꽃병을 어루만지시고 풍금을 쓸어보시고 교탁에 서시여 아이들을 굽어보시던 자애로운 모습이 우렷하게 떠올랐다. 그러자 숨결은 더욱 가빠지고 심장은 걷잡을수 없이 쿵쿵 높뛰였다.

바로 이때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또 하나의 큰 배려가 분교에 와닿고있는줄 그들은 알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보내신 군관아저씨들이 오솔길어구에 차를 세우고 풍금과 학용품꾸레미를 들고 교실로 올라오고있는것을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들은 아저씨들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깜짝 놀라며 반겨맞았다.

아저씨들은 할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누고 선우철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한 군관아저씨가 격동어린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이건 학용품들과 풍금이다.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들리셨을 때 불탄 풍금을 보신 일을 두고두고 가슴아파하시면서 새 풍금과 학용품들을 너희들에게 보내주셨다!》

《야!―》

아이들은 환성을 올리며 학용품꾸레미들과 풍금을 빙 에워쌌다.

풍금을 꽉 그러안은 성룡이는 목에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꿀꺽꿀꺽 삼키고있었다. 그의 어깨에 군관아저씨가 손을 얹었다.

《성룡아,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전쟁이 끝나면 딸기골분교를 더 크게 지어주시고 너희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보고 성룡이가 부르는 노래도 들으러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이번엔 우리더러 너희들의 노래를 듣고 오라고 당부하셨단다. 풍금반주에 맞춰 부르는 꼬마독창가수 성룡이의 노래를 꼭 듣고오라고 거듭 말씀하셨단다.》

《아버지장군님!…》

그만 더는 격정을 참아내지 못한 성룡이는 흐윽 흐느끼고말았다. 억실억실한 눈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혀 풍금우에 뚤렁뚤렁 떨어져내렸다.

할아버지는 꺼칠꺼칠한 손으로 알른알른 윤기도는 새 풍금을 어루만지면서 《장군님! 정녕 장군님은덕은 이 세상 비길데 없습니다. 나라가 전쟁을 겪는 이 어려운 때 아이들에게 끝없이 베푸시는 크나큰 혜택을 우리는 그 무엇으로 보답해 올린단 말입니까!…》

하고 감격에 떠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선우철선생님은 곧 백묵을 집어들고 칠판에다 노래의 가사를 썼다.

《성룡아! 얘들아! 노랠 부르자. 분교가 불타던 날 부르다 못 부른 노래, 아버지장군님께서 듣고싶어하시는 노래를 어서 부르자!》

그는 탁 쉬여버린 목소리로 웨치고는 풍금앞에 마주앉았다.

붕붕붕― 맑고 부드러운 선률이 교실안에 흘러넘치자 성룡이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이 아이, 저 아이의 입으로 번져 마침내 교실안을 꽉 메워버렸다. 선생도 울고 할아버지도 울었다.

한참만에야 그쳤던 전주곡은 다시 울렸다. 선우철선생님은 눈물에 젖은 건반을 누르고있었다. 아니, 아이들의 가슴을 두들기고있었다.

성룡이는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목멘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따뜻한 품에 안겨 우리들은 새 조선의 꽃봉오리로 즐거웁게 배운다는 노래다.

아이들도 목메여 함께 불렀다.

감격에 흐느끼며 부르는 노래, 그것은 키낮은 교실의 밝은 창문을 통해 소나무향기 상긋한 수림우를 지나 마을로, 벌로 울려퍼졌다.

때아니게 울리는 아이들의 노래소리에 마을사람들은 잠시 바쁜 일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분교가 불타던 날 듣다가 다 못들은 노래, 이제는 숲속의 교실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기운이 불끈 솟아 일손을 더욱 힘차게 놀렸다.

설레이던 숲도 조용히 귀기울이고 지저귀던 새들도 살며시 나무가지에 내려앉았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랑랑한 노래소리는 솔령의 우중충한 산발에 메아리치며 거침없이 울려갔다.

령마루너머 먼곳 인민군대아저씨들이 원쑤놈들을 족치는 전선으로 울려갔다.

 

주체70(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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