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6호에 실린 글

 

 

 □ 중편소설

                            

        

5. 주   사

 

1972년 9월 1일.

영광의 이날을 두고 김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종종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온 나라의 일곱살내기들이 11년제 배움의 꽃대문에 들어서던 그날,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는 금동이네 학교를 찾으시여 이 나라 모든 교원들과 학부형, 학생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셨던것이다.

그날은 김향선생님이 평양교원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서던 날이라고 한다.

금동이는 그때 겨우 네살이였지만 어머니와 함께 개교식에 참가하였다. 아버지가 황해남도에 출장을 간 때여서 어머니가 금석이의 학부형으로 학교에 찾아갔던것이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인지라 금동이는 그날 있은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저 어머니가 두팔로 높이 자기를 들어줄 때 사람들의 머리우에 둥둥 떠서 교문으로 들어서시는 아버지원수님을 뵙던 순간만 생생하게 머리속에 남아있을뿐이였다.

나이가 어려서 잘 새겨두지 못한 3년전 그날을 금동이는 개학날 입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기록영화에서 죄다 똑똑히 보았다.

김향선생님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눈물나는 이야기들도 자주 들려주었다.

오늘 아침 국어시간에는 한 녀학생의 얼굴에 번져가는 버짐을 보시고 자신의 치료를 담당한 주치의사를 보내시여 그것을 치료하게 해주신 아버지원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학년생이였던 그 녀자아이는 지난해에 인민학교를 마치고 이웃중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버짐은 없어진지 오래고 지금은 말쑥한 얼굴로 매일 평양학생소년궁전 수예연구소조에 다닌다는것이다.

금동이는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뵈왔고 또 원수님께서 친히 머리까지 쓰다듬어주셨다는 그 누나를 한번 자기 눈으로 보고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어올랐다.

(버짐이 있었다는 자리는 어떻게 됐을가? 아버지원수님께서 만져주셨다는 머리는 얼마만큼 자랐을가?)하고 그는 도화시간이 끝날무렵부터 내내 같은 생각을 하였다.

순일이는 자기 집에서 그 누나를 보았노라고 뻐기였다.

영실이라는 그 누나는 경상동에 집이 있지만 같은 수예연구소조원인 자기 누나를 만나려고 이따금씩 집에 온다는것이였다.

사이체조시간이 되자 금동이는 재수와 순일이를 데리고 련광정앞으로 나갔다. 이웃중학교 학생들이 거기서 사이체조를 하고있었던것이다.

마이크에서 울리는 체육선생님의 구령소리가 대동문용마루를 찌렁찌렁 흔들었다.

중학생들은 대동강을 등지고 서서 무릎굽혀펴기동작을 하고있었다.

금동이네는 녀학생들의 대렬이 있는 대동문쪽으로 내려가서 꽃나무뒤에 몸을 숨기였다.

《뵈니? 그 누나가?…》

기름사탕에 씌운 종이를 벗기느라고 낑낑거리는 순일이의 옆구리를 팔굽으로 다치며 금동이가 물었다.

《아직 안뵈.》

순일이는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참참참, 보지두 않고 본척 하는구나. 먹새퉁구리 같은게…》

재수가 한바탕 침을 놓았다.

《이제 봐, 제꺽 찾아내는걸 보지.》

순일이는 체조대렬을 내다보며 장담했다. 종이를 말끔히 벗긴 기름사탕은 벌써 볼따구니속에서 돌돌 굴러다니고있었다. 그러나 체조가 다 끝나고 중학생들이 마지막동작인 숨쉬기운동을 할 때까지도 그는 영실이라는 그 누나를 찾지 못해 쩔쩔맸다. 흩어졌던 대렬이 제 자리에 모여서니 누가 누군지 더 가려볼수 없게 되였다.

《이상한데? 그 누나가 결석한 모양이야.》

순일이는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꽃나무뒤에서 돌아섰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두번째 기름사탕을 꺼냈다.

《쳇, 꽝포쟁이,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구 거짓말을 했구나.》

재수는 순일이의 쩝쩝거리는 우아래입술을 움직이지 못하게 딱 마주 붙여놓았다.

《꽝포라구? 찾아내면 어쩔테냐?》

《찾아라, 찾아라, 찾아라!》

한데 모여들었던 대렬은 석줄씩 풀리여 빨래줄처럼 길게 늘어지며 교문으로 흘러들고있었다.

순일이는 겁많게 생긴 눈을 치뜨고 대렬을 따라갔다.

《찾았다! 찾았어!》

마침내 그는 금동이네쪽을 향해 우쭐해서 손을 흔드는것이였다.

《저거다! 저거! 손에 빨간 만년필을 쥔거 봐라. 우리 누나앞에 서지 않았니.》

덜퉁스러운 동생과는 달리 매우 꼼꼼하게 생긴 순일이 누나의 곁자리에서는 팔에 분단위원표식을 단 몸집이 옹골찬 누나가 걸어가고있었다.

금동이는 그 누나의 얼굴을 잘 보려고 대렬을 앞질러 교문안으로 무작정 뛰여들어갔다.

재수도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중앙현관앞까지 간 다음 쌍둥이처럼 대렬을 마주 향해 서서 영실누나의 얼굴을 말없이 살펴보았다.

옹골찬 몸집에 어울리게 누나는 두볼이 도도록하고 눈정기가 맑았다. 갓난아기들의 젖살처럼 뽀얀 두볼에는 발그스레한 사과껍질빛이 떠돌아 몹시 건강해보였다.

아무리 뜯어보았대야 버짐이 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아버지원수님을 만나뵐 때는 몸이 약했다더니 지금은 저렇게 튼튼해졌구나. 저 누난 참 좋겠네!)

금동이는 문득 아버지원수님께서 잡아주셨다는 그 누나의 손을 쥐여보고싶은 욕심이 불처럼 펄펄 일었다.

그는 용감하게 대렬을 맞받아 걸어가다가 영실누나네 줄이 앞으로 막 지나치는 순간 갑작스레 달려들어 그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영실누나는 흠칠 놀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흘러가던 대렬이 멈칫 서버렸다.

《아니, 너 금동이로구나. 왜 그러니? 왜 여기 왔니?》

순일이의 누나 순선이가 금동이와 영실누나를 번갈아보며 다급히 물었다.

금동이는 대답대신 벙실 웃어보이였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문밖으로 흘쩍흘쩍 뛰여나왔다. 기름사탕을 한입 가득 물고 우물거리는 순일이의 어깨를 탁 치며 그는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난 봤거던, 난 봤거던, 그리구 손두 만져봤거던. 순일이 너 그 누나 손 만져봤니?》

《손? 열번도 더 만져봤지 뭐.》

순일이는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하는것이 제딴에도 우스웠던지 《하하하.》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때 운동장에 혼자 남았던 재수가 손벽을 짝짝 치며 잦은 걸음으로 그들한테 뛰여나왔다.

《금동아, 금동아, 나두 손 줴봤거던. 난 너보다 더 오래 줴봤거던!》

그 애는 온 운동장아이들이 다 듣게 큰소리로 들썩쿵을 놓았다.

영실누나네 학급학생들은 모두다 허리들을 접고 까르르 웃음바가지를 쏟았다.

《영실인 참 흐뭇하겠다야.》

《토끼들처럼 귀엽게들 생겼네.》

《그런데 저 애들이 왜 갑자기 여기 뛰여들었을가?》

《아마 누구한테서 영실이의 이야기를 들은가봐.》

금동이는 울타리너머로 현관앞층계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영실누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 누나는 금동이를 향해 싱긋 웃어보이였다.

그리고는 옆에 서있는 순일이 누나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소곤거리였다.

《참, 재미나는 아이도 다 있구나.》하고 말하는것 같았다.

두 누나는 금동이네가 울타리앞에서 물러설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층계에 서있었다.

잠시후 금동이는 재수와 순일이를 앞세우고 학교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기분이 거뜬해서 노래까지 불렀다.

 

눈보라가 사나운 겨울날에도

소낙비가 쏟아지는 여름날에도

원수님은 그 언제나 우리를 찾아

친어버이사랑을 안겨주시네

 

금동이는 영실누나의 손을 쥐여본 이야기를 자랑하고싶어 운동장으로 먼저 뛰여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운동장에서는 학급아이들이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2층홀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교문앞에서 갈라진 재수와 순일이마저 어데 갔는지 없다.

(수업종도 울리지 않았는데 모두 어디 갔을가?)

금동이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교실문을 와락 잡아제꼈다. 그 순간 그는 와뜰 놀라서 문지방에 우두커니 서버렸다. 흰 위생복을 입은 뚱뚱한 녀의사와 학교진료소 의사선생님이 교탁앞에 서있었던것이다. 알콜냄새인지 크레졸냄새인지 분간못할 《병원냄새》가 금동이의 코구멍으로 확 풍겨들었다.

금동이는 맥빠진 걸음으로 어즈벙어즈벙 자기 자리에 가앉았다. 주사침에 넉살이 빠지던 1년전 일이 떠올라서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그때 그는 방광염인지 무슨 염인지 하는 병에 걸려 한달동안 별의별 주사를 다 맞았다. 비타민이라는 이름자가 붙은 주사를 맞을 때는 정말 팔이 뚝 분질러지는것처럼 아팠다.

그 주사에 혼쌀이 난 때부터는 흰 위생복과 적십자표식이 그려진 구급차만 봐도 모든 주사침자리들이 한꺼번에 들쑤셔나는것 같았다.

녀의사가 꺼낸 주사대는 몸집이 뚱뚱한 주인을 닮은듯 엄청나게 실해보였다.

(한번만 맞으면 팔이 고무공처럼 부풀어나겠네. 큰일났는데!)

금동이는 빠질 궁리를 하느라고 골을 싸쥐였다.

때마침 이름을 불리운 아이들이 출석부 순서대로 교탁앞에 주렁주렁 나왔다.

김향선생님은 교탁 저쪽에서 무슨 명단같은것을 펼쳐놓고 아이들의 이름을 연송 부르고있었다.

주사를 맞은 아이들이 팔을 비비며 선생님앞으로 몰켜갈 때 맞지 않은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물거리던 금동이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 교실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교실에서 생각해둔대로 1층에 있는 목공실앞으로 내려왔다. 누구든지 강당과 자연실과 운동장 같은데는 자주 가도 목공실에는 들리지 않으니까.

《이녀석, 왜 왔니?》

유리를 자르던 목수아버지가 눈을 흡뜨고 안경너머로 금동이를 내다본다.

《구경왔어요.》

금동이는 유리칼이 움직이는것을 바라보며 태연스럽게 대꾸하였다.

《무슨 구경?》

《유리 짜르는게 재미나서…》

《크면 목수가 되고프냐?》

《그래요.》

《허, 별녀석을 다 보는군. 그렇다면 들어오너라.》

금동이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목공실로 들어갔다.

그는 온몸에서 대패밥냄새가 풍기는 목수아버지가 대번에 마음에 들었다. 귀바퀴우에 꽂혀있는 파란 연필에조차 정이 푹푹 드는것 같았다. 런닝샤쯔밑으로 드러나보이는 울퉁불퉁한 힘살도 은근히 부러워났다.

요술붓같은 목수의 유리칼밑에서는 짜르륵하는 소리가 련이어 울리고 하얀 실금이 쉼없이 뻗치였다. 두손으로 유리가생이를 붙잡고 약간 힘을 주면 실금이 간 그 자리가 소리없이 잘라진다.

《야, 〈맛있게〉 한다!》

금동이는 목수아버지의 일솜씨가 너무 탐나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멋지게》라는 말보다도 《맛있게》라는 말을 더 즐겨쓰는 버릇이 있었다.

《맛있다구? 허허허. 그렇게 재미나니?》

《예.》

목수아버지는 금동이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다시 《허허허.》 웃고나서 《비판받은 두 동무》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다.

금동이는 세상에 유리자르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건설자아저씨들이 지은 집들을 찾아다니며 창문마다 유리를 끼워놓으면 따스한 해빛에 방안의 화분들이 겨울에도 꽃을 피워올릴것이다. 봄이면 숱한 엄마들이 귀여운 애기들을 안고 날아가는 버들꽃들도 구경시킬것이다. 유치원장난꾸러기들이 돌팔매질을 하다가 창문을 깨면 척 가서 눈깜짝할 사이에 새 유리를 갈아넣어주지 뭐, 유리를 자르지 않을 때에는 의자를 만들어야지. 목수처럼 말이야.

금동이는 목공실벽을 따라가며 가쯘히 쌓아올린 의자더미를 둘러보며 침을 꼴깍 삼키였다.

(크면 나도 목수가 될테다!)하고 그는 속으로 가만히 다짐하였다.

《목수아버진 책상두 만드나요?》

《책상뿐이겠니. 집두 짓지.》

《집이요? 그럼 건설장에 있었나요?》

《그래.》

《그랬는데 어째서 여기 왔나요?》

《가라고 해서 왔지. 너 이름이 뭐지? 금동이라구? 그래 그렇게 말하더란 말이야. 〈학교에 가면 숱한 금동이들이 있소.

가서 그 애들의 책걸상도 고쳐주고 투영기도 만들어주구 마루에 옹이가 빠지면 옹이도 만들어 넣어주오!〉…》

목수아버지는 한쪽눈을 찡긋해보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기관차처럼 담배연기를 한뭉테기 내뿜었다.

《그럼 건설장이 더 좋나요, 학교가 더 좋나요?》

《다 좋지. 그러나 너희들과 함께 있는것이 제일 좋단다. 아버지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단다.》

금동이는 만족한듯 씽긋 웃었다.

(어른들이란 누구나 다 아이들을 좋아하거던. 학교를 좋아하거던, 학교는 정말 좋아!)

그는 목수아버지의 입에서 소리없이 내뿜기여 가락지모양으로 둥글둥글하게 흩어져가는 담배연기를 재미나게 바라보다가 목공실을 나섰다.

교실에 와보니 선생님도 의사도 아이들도 없고 책가방도 누가 가져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금동이는 잔뜩 근심에 싸여 집으로 돌아갔다.

출입문에 채워진 자물쇠모서리에 누구인가 노끈으로 책가방을 비끄러매놓았다.

가방우에 얹어놓은 종이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 겁쟁이야, 어디 갔댔니? 그리구서두 인민군대에 간다구? 하하하.》

재수의 글씨였다.

금동이는 제김에 씽긋 웃다가 웃음을 지우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어째서 그런지 웃고싶지 않았다.

하라는 일을 하지 않고 제멋에 놀면 아마 내내 걱정이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그러니 주사를 맞지 않은것이 주사를 맞는것보다 몇곱절 더 큰 아픔을 준셈이다.

 

6. 학교로 돌아가거라

 

《넌 그래 팔이 붓지 않았니?》

《아니.》

《침이 들어갈 때 아프지 않던?》

《시원했어.》

《대포쟁이. 시원한 주사가 어디 있어?》

《정말이야. 의사선생님도 이번 주사는 시원한 주사라고 했어.》

아빠트현관에서 꺼낸 주사이야기는 독신자합숙을 지나 대동강숭어국집옆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였다.

물은 아이는 금동이였고 대답한 아이는 재수였다.

금동이가 아무리 《체, 체.》하며 머리를 흔들어도 재수는 그냥 《시원한 주사》라고 고집을 세웠다.

순일이와 동학이도 《정말이야.》, 《정말이야.》하고 덮어놓고 맞장구를 쳤다. 그 애들은 다 한바리에 실을만 한 허풍선이들이다.

이럴 때에는 거짓부리를 싫어하는 효남이의 말을 들어보는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효남이는 입을 꼭 다물고 아이들의 패거리 한옆에서 수걱수걱 걷기만 한다. 속셈시간이 있은 다음부터 그는 아직 한번도 금동이한테 말을 건네지 못하고있었다.

금동이는 아이들이 아파하지 않는것이 이상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주사가 몹시 아픈것이라면 아이들은 주사 안 맞은 자기를 부러워할텐데…

《안 맞은게 나밖에 없니?》

한참 걷던 금동이는 재수의 귀를 한손으로 거머쥐고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슬쩍 물었다.

재수는 의기양양해서 《응.》하고 대답하였다.

《예방주사를 맞아야 앓지두 않구 몸이 튼튼해진대. 그리구 선생님이 뭐라구 했는지 아니?》

《뭐랬니?》

《혼쌀내겠다구 했어.》

금동이는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야단났는데. 나 혼자 욕을 먹게 됐구나.)

그는 학교에도 못 가고 뽈도 못 차게 앓는것보다도 선생님한테서 욕을 먹는것이 더 싫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층계에서 뜀박질을 하다가 3학년 3반 선생님의 백묵통을 떨어뜨리였지, 순일이의 필갑속에 지렁이를 넣어 말썽을 일으켰지, 공부시간에 책상밑에서 낮잠을 잤지, 손가락을 빌려가지고 속셈을 하려다가 효남이하고 다투었지, 어제는 또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 도화시간과 국어시간을 뚜꺼먹었지…

좀처럼 성을 내지 않는 담임선생님이지만 이런 잘못을 그냥 묵여두지는 않을것이다.

금동이는 갑자기 학교가기가 싫어졌다.

그는 꽁무니를 빼려고 결심했다.

마침내 그럴듯 한 궁리가 떠올랐다.

금동이는 흘깃흘깃 주위를 둘러보다가 불시에 이마를 탁 치며 《아 참, 크레용!》하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대렬앞쪽에서 걸어가던 학급반장 영림이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크레용 두구왔어.》

금동이는 손을 뒤로 돌려 책가방을 툭툭 쳐보였다.

난생처음으로 하는 거짓말이여서 그런지 혀바닥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빨리 갔다와.》

영림이는 금동이가 섰던 빈자리를 다른 아이로 메꾸고나서 대렬에 구령을 떨구었다.

《우리 나라 기발 시―작!》

 

우리 나라 기발은 참말참말 좋아요

김일성원수님 세워주신 나라

 

그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금동이는 대렬이 흐르는 반대쪽으로 뛰여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아빠트귀퉁이를 돌아서자 더 달리지 않고 숨을 돌리였다. 크레용은 가방속에 있었으니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되였다. 이제는 하루종일 심심치 않게 보낼수 있는 곳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어디로 갈가?)

금동이의 발길은 저도 모르게 유치원쪽으로 향해졌다. 어째서 그런지 갑자기 유치원이 그리워졌던것이다.

아침마다 정문앞에서 두팔을 벌리고 웃으면서 원아들을 맞이해주군 하던 백일순선생님.

선생님은 금동이한테 붉은별을 줄 때마다 그의 볼에 있는 기미를 손가락으로 꼭 눌러주군 하였다.

얼굴이 도마도처럼 불깃불깃하고 몸집이 뚱뚱한 책임식모아주머니도 마음씨가 참 좋았지.

써클공연을 갔다가 돌아오거나 텔레비죤방송국에 가서 록화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맛있는 닭알탕도 보질보질 지져주고 구수한 가두배추국도 듬뿍 퍼주었지.

그리고 혀가 데지 않게 천천히 먹으라고 끈끈스레도 일러주었지.

륵목에서 떨어져 무릎마디가 째지고 코등이 깨질번 한 일만 셈하지 않는다면 유치원에서 보낸 2년은 정말 꿀사탕처럼 달콤한 시절이였다.

유치원뜨락은 텅 비여있었다.

금동이네가 공부하던 교실에서는 《우리 집엔 원수님이 계신답니다》하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곁의 방에서는 《바다, 바람, 비.》하고 받아읽기를 하고있었다.

마당에 아이들이 한명도 없는것은 매우 서운한 일이였다. 아이들만 있으면 인민학교모표를 단 름름한 모습을 당당히 뽐낼수 있을텐데… 필갑속에 있는 원주필이며 유치원 《셈세기》책에 나오는 수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자들이 살고있는 두툼한 산수교과서도 한바탕 자랑할수 있을것이다.

금동이는 창문곁에 앉은 아이들이 마당쪽을 내다볼수 있도록 일부러 회전그네를 힘껏 돌렸다.

흔들흔들 돌아가는 회전판가생이의 쇠테두리에 걸터앉아 어제 순일이의 누나한테서 빌려온 《소년신문》을 꺼냈다. 련속만화 《남녘의 해돋이》를 펼쳤다.

때마침 전기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와― 운동장으로 쓸어나왔다.

같은 아빠트에 사는 조무래기들이 그를 알아보고 오구구 회전그네주위로 몰려들었다. 효남이의 동생 효경이, 재수의 동생 재범이, 순일의 동생 순학이… 그 애들은 금동이의 책가방이며 팔이며 목에 줄당콩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래서 금동이는 뽐내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히히 이봐, 돼지처럼 생겼지?》

효경이가 만화를 손가락질하며 깨드득거렸다.

《하마다, 하마! 이런거 동물원에 있어.》

순학이의 목소리가 효경이의 웃음소리를 누른다.

《이건 홍두깨경찰서 개코서장이라는 놈이야.》

금동이는 시뚝해서 신문을 내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사람이 아니고 하마야!》

순학이는 종시 금동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모르면서 까불지 말어. 여기 다 씌여있는데…》

금동이는 신문의 글을 좔좔 소리쳐 읽었다.

《…〈에또… 피고 강아지! 대통령모욕죄로 사형에 처한다.〉,〈여러분! 소가 왜 힘이 센지 압니까?〉…》

금동이가 개코서장의 흉내까지 내는 바람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쏟뜨렸다.

신문우에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웠다.

깔깔거리는 조무래기들의 머리우에서 빨간 반소매뜨개옷이 언뜻하였다. 일순선생님이였다.

《금동이였군요. 왜 왔나요?》

하고 묻는 선생님의 얼굴엔 해방산려관앞에서 만났을 때 보던 그 부드러운 웃음빛이 없었다.

《…》

금동이는 유치원에 온것을 후회하였다.

《금동학생, 오후반이예요?》

《…》

《그럼 왜 왔나요?》

《…》

금동이는 난데없는 눈물이 찔끔 솟아올라서 얼핏 고개를 돌리였다. 점점 더 많아지는 죄가 무서워났고 그처럼 다정하던 선생님이 쌀쌀하게 대해주는것이 서운했다.

일순선생님은 더 캐여묻지 않고 유치원시절처럼 금동이팔목을 쳐들어보았다.

시계가 그려지군 하던 장난꾸러기손목에 지금은 시간표가 씌여있다.

선생님은 웃을듯말듯 입술을 방긋이 벌렸다가 종내 웃지 않고 타이르듯 말했다.

《금동이는 착한 학생이지요. 공부시간에 빠지면 착한 학생이 못돼요. 왜 학교에 안 갔나요?》

《…》

금동이의 입술에 콩알같은 눈물이 뚤렁 떨어졌다. 금동이는 그 눈물을 얼른 들여마시고 눈굽을 뻑 닦았다.

녀자애들처럼 눈물을 보인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어디가 잘못되였는지 나오지 말라는 눈물이 자꾸 나왔다. 분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데 코물까지 찔찔 나온다.

전기종소리가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을 교실안으로 불러들였다.

금동이는 일순선생님의 낯빛을 보는것이 두려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있었다. 고개만 들었다면 가늘게 쪼프려진 선생님의 눈귀와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수심에 찬 눈을 보았을것이다.

《금동학생, 내 말 좀 들어봐요. 김향선생님은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금동이네 생각뿐이랍니다. 좋은 책을 봐두 금동이네 생각, 재미나는 영화를 봐두 금동이네 생각이지요. 어제는 아동백화점 학용품매대에서 새로 나온 필갑을 보구 또 금동이네 이야기를 했답니다. 학급학생들에게 죄다 사주고싶다구 말이예요. 선생님은 자기가 맡은 학급을 학교에서 제일 훌륭한 학급으로 꾸리려고 애를 쓰고있는데 금동이가 이렇게 하면 어떻거나요?》

일순선생님은 한숨을 몰아쉬고나서 금동이의 등을 다정스레 떠밀었다.

《지금 곧 두번째 시간이 시작돼요. 어서 학교로 돌아가요, 자동차처럼 씽!》

금동이는 볼에 얼룩진 눈물을 씻으며 도망치듯 유치원마당을 나섰다.

그는 발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 거리쪽으로 걸어갔다.

일순선생님한테서 꾸지람을 들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치원이 안 뵈는 곳에까지 이르니 웬일인지 무서운 생각이 덜컥 들었다.

이틀사이에 지은 죄가 고스란히 머리속에 떠올랐기때문이였다. 조막만한 눈덩이를 자주 굴리면 항아리만한 눈덩이가 되듯이 자기가 한걸음만 옮겨놓아도 이미 저질러놓은 잘못이 열백배로 커지는것처럼 그에게는 생각되였다.

(잘못을 저지르니까 마음이 자꾸 뒤숭숭해지는구나. 사람들 보기도 막 창피해. 이런줄 알았더라면 예방주사를 맞을걸. 나보다 팔이 더 가는 효남이나 순일이가 맞는 주사를 내가 왜 안 맞았담!)

금동이는 자기처럼 이렇게 숨어다니지 않고 책상앞에 당당하게 앉아있을 짝패들이 못견디게 부러워났다.

거리에 나온 금동이가 어디로 갈지 몰라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있을 때 교실에서는 김향선생님이 교탁앞에 허리를 수굿하고 서서 아이들에게 묻고있었다.

《금동이가 왜 아직두 안 올가요?》

누구도 대답하는 아이가 없었다. 네댓되는 아이들이 까닭없이 재수가 앉아있는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할뿐이였다.

《무서워서 안 옵니다.》

짝패가 없이 외토리로 앉아있던 효남이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의 그늘진 눈에는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무엇이 무서운가요?》

《주사 안 맞구 뺑소니쳤다고 욕먹을가봐 그럽니다. 선생님이 혼쌀내겠단다구 재수가 허튼 소리를 했습니다.》

손칼로 나무배를 깎던 재수는 히쭉 웃으며 장한듯이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금동이두 나한테 꽝을 놨거던.》

김향선생님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저고리동정을 여미였다.

《무슨 꽝을 놨어요?》

《요즘은 점심시간에두 텔레비가 나온다구 대포를 불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나요?》

《나하구 순일인 한시간이나 공짜루 텔레비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참참참.》

《그래두 재수가 쏜 대포가 더 큰 대폽니다. 금동이를 학교길에서 쫓아버렸거던요.》

김향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학급반장 영림이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선생님, 금동인 재수때문에 학교에 안 왔습니다. 재수, 너 아직도 잘못했다는 말 안하겠니?!》

그는 재수가 앉아있는쪽을 향해 힐끗 눈총을 쏘았다.

흐물거리던 재수는 책상밑으로 쑥 움츠러들고말았다.

하루공부가 끝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다음 김향선생님은 금동이네 아빠트아이들을 데리고 련광정앞으로 나갔다. 방금 경비실에서 전화를 받고 돌아선 선생님의 낯색은 좋지 못했다. 생각에 잠길 때면 늘 그러하듯이 선생님은 동그랗게 말아쥔 《우리 동무》모서리로 오른쪽눈섭을 살금살금 긁고있었다.

《세시간전에 금동이가 유치원에 갔댔답니다. 마당에서 노는걸 일순선생님이 학교에 가라고 일러보냈는데 학교에는 안 오구…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그냥 내버려둘가요?》

《아닙니다. 데려와야 합니다.》

《까치네 새집들이》를 보던 효남이가 책을 덮고 일어섰다.

《학교에 오기 싫어하는 학생을 데려와서 뭘 해요?》

《학교에 안 오면 락제국을 먹습니다.》

순일이의 대답이였다.

《금동이 어머니가 〈에쿠, 속상하구나!〉합니다.》

우스개대장인 동학이가 엄마들의 말을 흉내내였다.

재수는 신발끝으로 땅바닥만 허비다가 머리를 쳐들며 풀이 죽은 소리로 말했다.

《금동이는 우리 동무입니다. 동무를 내버리구 우리끼리만 공부하면 안됩니다.》

김향선생님은 빙 둘러선 아이들을 와락 한품에 그러안고 한아이 한아이 머리를 쓸어주었다.

《옳아요. 금동이는 우리모두의 착한 동무이지요. 공부를 해도 같이 하고 노래를 불러도 같이 부르고 우유를 마셔도 같이 마셔야 할 친한 동무입니다. 그런데 그런 동무가 주사를 안 맞은 자그마한 잘못때문에 우리곁을 떨어져 혼자서 돌아다녀서야 되겠어요. 지금 당장 금동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우리한테서 점점 멀어질거예요. 좁쌀만 한 잘못이 큰 잘못으로 자란단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속상하고 학생들이 속상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속상하고…》

잠시 말을 끊은 선생님은 몸가짐을 바로하며 목소리를 고루었다.

《… 학생들을 제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원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우리모두 빨리 금동이를 찾읍시다!》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재수는 경상골공원에, 효남이는 1백화점 화분매대에, 동학이는 대동강유보도에, 순일이는 대동문과일남새상점에…

그러나 어느 한 아이도 금동이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허탕을 친 아이들이 제 그림자만 데리고 금동이네 집앞에 돌아왔을 때 김향선생님은 말했다.

《금동이를 위해서 다들 수고했어요. 모두들 착한 학생들이예요. 금동이는 선생님이 찾을테니 마음놓고 돌아가서 숙제하세요!》

모두들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재수만은 집에 가지 않고 아빠트앞에서 서성서성하였다.

금동이를 찾아내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금동인 어디 갔을가? 어디 가서 뭘할가? 오기만 하면 하모니카소리가 나는 호르래기를 그저 주겠는데… 대포를 불지 말았을걸, 참참참!)

재수는 평양학생소년궁전 전망탑꼭대기에다가 항아리만 한 방송을 달아놓고 《금―동―아! 어―디―있―니! 오면 백번 업어줄게. 호르래기를 줘. 정말이야!》하고 소리치고싶었다.

그는 점심도 먹지 않고 장딴지가 뻣뻣해질 때까지 금동이가 있음직한 곳을 죄다 돌아보았다.

그럭저럭 저녁때가 되였다. 해는 잠잘 차비를 서두르며 서쪽지평선에 입을 맞추고있었다.

재수는 겁이 더럭 났다.

어두워지면 금동이가 집을 찾지 못하고 온밤 헤맬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금동이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그는 우편국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를 보자 무작정 금동이 어머니가 일하는 편직공장으로 자전거를 몰라고 했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겼니?》

하고 어머니는 자전거에 올라타는 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큰…큰…큰일났어요. 금동이가 잃어졌어요!》

재수는 몹시 바쁜 티를 나타내려고 일부러 말을 더듬거리였다.

《어떻게 잃어졌단 말이냐?》

《그…그… 글쎄 빨리 몰아요!》

자전거는 순식간에 천리마거리에 다달았다.

재봉작업반원들은 휴계실에서 하루일을 총화하고있었다.

《금동이 엄마, 금동이가 잃어졌어요!》

재수는 휴계실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얼굴에 주근깨가 다닥다닥하고 두볼이 불그레한 작업반장아주머니도 《저런 변 봤나. 우리 1학년생이 잃어지다니? 빨리 가보오, 빨리!》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여럿의 손들이 금동이 어머니를 휴계실밖으로 떠밀었다.

금동이 어머니는 곁의 아주머니가 쥐여주는 가방을 들고 허둥지둥 공장구내를 나섰다.

《어떻게 된 일이냐? 좀 차근차근 이야기해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울상이 되여 걸어가는 재수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재수는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는 금동이가 학교로 가지 않은것은 다 자기의 대포탓이라고 열번도 더 우기였다. 그리고 금동이를 찾으면 절대로 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새끼손가락을 걸고 받아냈다.

자전거를 탄 재수의 어머니는 금동이가 쩍하면 놀러가군 한다는 동흥동 이모네 아빠트로 가고 재수는 금동이 어머니와 함께 송신행뻐스를 타고 천리마거리를 떠났다.

뻐스안에서도 뻐스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가면서도 금동이 어머니는 내내 말이 없었다.

다만 휑뎅그레한 학교마당에서 꽃밭을 가꾸고있던 1학년분과장선생님이 《금동이를 찾았대요.》라는 말로 인사를 했을 때에야 가슴우에 두손을 얹고 《내 이제 신발을 단단히 신겨야지.》했을뿐이였다.

재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발에 딱 맞는 운동화를 신은 금동이에게 신발을 단단히 신긴다는것이 어떻게 한다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김향선생님이 속한 1학년분과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코가 주먹처럼 뭉틀한 사람이 반소매차림으로 앉아있었다.

금동이 어머니는 그 사람을 보자 깍듯이 인사했다.

《아니, 노을이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다 오셨나요?》

《허허, 여기뿐인줄 아십니까. 창전에두 들리구, 전승에두 들리구, 장현에두 들려오는 길입니다.》

《온실의 꽃나무들을 구경하러 다니시는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인민반 1학년에 갓 입학한 우리 연구소직원네 아이들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번달 당세포총회안건이 바로 1학년에 다니는 연구소직원자녀들의 교양에 대한 문제입니다. 꽃나무도 잘 가꿔야 하지만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잘 키워야 하니까요.》

두사람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직일선생님이 들어와서 금동이네 담임선생님이 병원에 있다고 퉁겨주었던것이다.

금동이 어머니와 노을이 아버지(그 사람은 금동이네 아버지가 속한 식물학연구소의 당세포비서였다.)는 의논끝에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마치 온 도시가 금동이를 찾아다니는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1학년생들을 위해 걸어다니는것 같았다.

재수는 하모니카를 불며 교문을 나섰다.

 

7. 밤중에 찾아온 사람들

 

어둠에 잠긴 도시가 차창밖으로 내다보였다.

성급한 가을밤은 거리의 가로등들을 깨워주고 검푸른 주단같은 하늘에 훨훨 날아올라가 금싸래기같은 별들을 뿌려주었다. 포장길의 이음새에 뻐스바퀴가 덜컹덜컹 들출 때마다 밤의 착한 보초병들인 가로등이며 별들은 기쁜듯이 춤을 추었다.

금동이는 반쯤 열린 차창가에 머리를 바투 붙이고 체육관쪽을 바라보았다.

재미나는 경기장면들이 눈앞에서 그냥 뱅글뱅글 돌아갔다.

세상에 정말 롱구선수보다 더 멋진 일은 있을것 같지 않았다.

요전번날에는 유리 자르는 일이 제일 멋있는것 같았는데 오늘 체육관에 와보니 롱구라는것이 제일 재미나는것 같다.

(에참, 빨리 컸음 좋겠네!)

키가 전보대같은 그 선수들만큼 자라자면 아직 얼마나 많은 밥을 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밥보다 못지 않게 얼마나 많은 욕설이며 잔소리를 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어른만 된다면 누구도 잔소리를 하지 못할것인데…

지금은 입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앞에서 으시댄다.

거리에서 재미나는 구경거리가 생겨도 그들은 언제나 꺽다리들의 뒤에서 빠져들어갈 구멍을 찾지 못해 쩔쩔맨다.

아까는 체육관으로 들어갈 때 발을 헛디뎌 어떤 중학생의 운동화를 밟았는데 그 중학생은 《요 콩알같은게…》하면서 손가락으로 금동이의 이마를 툭 튕겨놓았다.

금동이는 《콩알》이라는 말을 들은것이 암만해도 분했다.

자기는 뭐 처음부터 《콩알》이 아니고 《호박》이였나.

그렇게도 자랑스러워보이던 1학년생이라는 말이 이제는 그다지 장하게 들리지 않았다.

뻐스가 집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금동이는 점점 더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엄마는 성나서 야단하겠지? 뭐라고 욕할가? 엄마가 욕할 때 난 어떻게 하면 좋을가?)

어머니앞에서 진땀 뽑힐 일을 생각하면 집으로 가고픈 생각도 다 달아난다.

그렇지만 동무들에 대한 그리움,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학교와 학급에 대한 참을수 없는 그리움이 달리는 뻐스와도 같이 금동이의 마음을 자꾸만 앞으로 떠밀어주는것이였다. 옹근 한달이나 일년은 못 보고 지낸것처럼 그는 동무들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보통때 자기와 별로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이들까지도 죄다 그리워졌다.

(김향선생님은 하루동안 나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웠을가?

재수랑 순일이랑 효남이랑 동학이랑은 나를 찾아 얼마나 안타깝게 돌아다녔을가? 에이, 다시는 이따위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지.)

금동이는 오늘처럼 자기 학급이 귀중하고 학교가 귀중하고 동무들이 귀중하다는것을 사무치게 느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 학급, 그 학교, 그 동무들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즐겁게 살수 없을것 같았다.

학교를 떠나 이곳저곳 제멋대로 돌아다닌 오늘의 하루는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지루하고 창피스런 하루였다.

유치원에서 나온 다음 그는 곧장 국내선수권대회구경을 간다는 어떤 아저씨들을 따라 체육관쪽으로 갔던것이다.

뻐스를 타고 두 정류소만 가면 체육관이 있었다. 정류소만 잘 기억해두면 혼자서도 휘파람을 불며 올수 있는것이다.

불빛이 환한 로동신문사의 넓은 창유리들이 차창밖에서 언뜻거리였다.

벌써 정류소에 다 온모양이다.

뻐스에서 내린 금동이가 스적스적 건늠길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금동아!》하는 여럿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예술인려관앞 뻐스정류소에서부터 한무리의 졸망구니들이 금동이를 부르며 건늠길쪽으로 뛰여오고있었다. 맨앞에는 재수 그리고 그다음은 동학이, 또 그다음은 효남이… 맨뒤에서는 한손으로 바지주머니를 움켜잡은 순일이가 턱을 잔뜩 쳐들고 고장난 발발이차처럼 헐레벌떡 달음쳐온다. 그 애는 발바닥에 가시가 든 아이처럼 별나게 껑충거리였다.

(애들이구나! 내 동무들이구나!)

금동이의 눈에는 반가운 나머지 눈물이 저절로 핑 피여올랐다.

그는 짝패들을 향해 멀리서 씽긋 정다운 웃음을 지어보인 다음 두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와르르 쓸어와서 금동이를 에워쌌다.

《야, 만세! 왔구나!》

맨선참으로 달려온 재수가 사과 달린 실노끈을 훈장처럼 그의 목에 걸어주었다.

순일이는 주머니에 있는 알사탕을 꺼내여 금동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교예극장의 어리광대들처럼 발에 나무함지만 한 구두를 신고 털써덕거리는 그 애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웃음집이 흔들흔들하였다. 아빠트마을에서 놀 때면 늘 제 신우에 어른들의 신을 꿰지르고 다니기 좋아하는 순일이였다.

줄것이 아무것도 없는 동학이는 두팔로 금동이를 닁큼 들어가지고 춤을 추듯 빙그르르 한바퀴 돌았다.

《널 찾느라구 모두 얼마나 돌아다니였는지 아니?》

금동이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입안에서 녹아가는 알사탕을 까드득 깨물었다. 그놈이 빨리 넘어가야 사과를 먹겠는데 무슨 놈의 사탕인지 좀처럼 녹지 않는다.

경상골공원, 1백화점, 대동강유보도, 과일남새상점, 평양학생소년궁전, 체육관, 대극장앞 소동물원, 지하철도지상역… 금동이를 찾느라고 별의별데를 다 돌아다니였다고 한다.

담임선생님도 숱한 걸음을 걸었다는것이다.

동학이는 금동이 찾던 이야기를 줄잡이로 엮어대였다.

《그런데 네가 글쎄 체육관에 척 앉아있더란 말이야. 우린 효남이네 텔레비에서 널 봤어.…》

두발쯤 떨어졌던 순일이가 아까보다 더 높은 목청으로 고아대며 금동이의 옆에 다가왔다.

《어떤 애하구 같이 앉아서 〈하하하〉하구 웃었지? 두 선수가 맞부딪쳐 쾅하구 넘어질 때 말이야. 우리두 〈하하하〉웃었단다.》

맨앞에서 뛰여와 금동이를 얼싸안았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동무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던 재수가 푹 꺼진 목소리로 잘못을 빌었다.

《금동아, 잘못했어. 다시는 그따위 꽝포를 놓지 않을래.》

그러자 효남이가 옆에서 조용히 끼여들었다.

《재수도 잘못했지만 금동이도 잘못했어. 남들이 다 맞는 주사를 혼자서 안 맞았거던. 그건 비겁해.》

《그리구 선생님꾸지람이 두려워서 학교로 안 간것두 잘못이야. 금동아, 그렇지 않니?》

동학이가 잇달아 침을 놓았다.

금동이는 마음이 찔리는듯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내가 잘못했어. 에참, 다신 안 그러마!》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9호동아빠트까지 왔다.

금동이는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현관앞에서 어물어물했다.

《빨리 들어가자꾸나.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는지 아니?》

동학이가 금동이의 팔을 잡아 층계쪽으로 와락 끌어당기였다.

《어머닌 네가 집에 오면 한마디도 욕 안하겠다구 했어. 〈오기만 하면 내 그 애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쪄주겠소.〉이렇게 말했는데 뭘 그래.》

재수의 달짝지근한 말에 순일이가 《정말이야, 정말이야!》하고 맞장구를 쳤다.

여직껏 잠자코있던 효남이가 코등을 긁는체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캐드득 웃었다. 재수와 순일이가 대포를 불어댄 모양이였다.

아이들은 왁짝 떠들면서 금동이를 떠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금동이네 집 현관복도에는 숱한 신발들이 주런이 널려있었다.

한뽐이 될락말락한 녀자애의 파란 비닐신도 있고 번쩍거리는 어른의 의혁구두도 있다.

굽이 좀 높고 뒤축이 없는 갈색신발도 있다. 그옆에는 어딘가 모르게 눈에 몹시 익어보이는 곤색편리화가 놓여있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을가? 이모랑 이모부랑 오지 않았을가? 이모랑 있으면 엄만 날 욕하지 않겠는데.)

금동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어떤 아저씨가 현관에 나섰다. 낯익은 아저씨였다.

《오, 금동이가 왔구나!》

하고 그 아저씨는 금동이의 어깨를 덥석 틀어잡았다.

손등의 파편자리를 보고서야 금동이는 그 사람이 아버지네 연구소에 갔을 때 본 세포비서라는것을 알아챘다.

1에서부터 10까지 쓰고 셀줄 아는 금동이를 두고 그때(지난해) 그 사람은 이만저만 기특해하지 않았다.

(저 사람은 왜 왔을가? 아버지의 소식을 알려주려고 왔을가?)

금동이는 말을 걸고싶었으나 어머니의 눈총에 기가 질리여 감히 입을 벌리지 못하고 비실비실 그 아저씨의 손에서 어깨를 뽑았다.

《이녀석 공부 잘해라!》

그 아저씨는 금동이의 잔등을 한번 다시 툭 치고나서 현관밖에 나섰다.

《첫걸음을 잘 떼야 한다. 곡식으로 말하면 너희들이 강냉이영양단지와 같은데 모가 잘 커야 강냉이풍년이 들게 아니냐!》

영양단지가 무엇인지 한번도 보지 못한 금동이는 눈을 슴뻑슴뻑하며 세포비서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복도 한켠에서는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쑤군덕쑤군덕하고있었다.

어머니가 세포비서아저씨를 바래러 나간 사이에 그들은 웃방으로 들어가고 금동이는 아래방에 들어섰다.

방에는 어제 학교에 찾아왔던 녀의사와 머리우에 꽃같은 리봉을 큼직하게 만들어 단 눈이 까맣고 여무지게 생긴 녀자애가 앉아있었다.

녀의사의 옆에서는 보기만 해도 저절로 팔이 찡찡 저려나게 만드는 주사통이 번들거린다.

(이크,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에참!)

금동이는 김향선생님의 옆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흘금흘금 녀의사쪽을 훔쳐보았다.

녀자애도 역시 금동이처럼 녀의사의 눈치만 살핀다.

(딸인게지. 어머니를 닮은덴 참새눈만큼두 없구나. 흥, 크담한 애가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금동이는 못마땅한 생각에 잠겨 속으로 혀를 찼다.

벌써 오래전에 터져야 할 담임선생님의 꾸중은 웬일인지 아직 한마디도 없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어머니도 별소리가 없이 잠잠하다. 치마자락을 여미는 어머니의 손이 얼핏 무릎을 다칠 때 금동이는 그것이 말없는 욕설같아서 속이 한줌만 해졌다. 차라리 욕이라도 콱 먹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것 같았다.

(이상한데. 모두 왜 이렇게 입을 다물고 멍멍해있을가? 내가 불쌍해서 그럴가? 욕을 하지 말자고 미리 약속을 했을가?)

딸가닥… 주사통이 열리는 소리가 금동이의 생각을 사정없이 헤집어놓았다.

금동이는 겁먹은 눈으로 녀의사의 손에 들린 주사대를 바라보았다. 암풀속의 약물은 벌써 주사대안에 꼴깍 차올랐다. 솜에 묻힌 소독약냄새가 코구멍을 후빈다.

《자, 누가 먼저 맞겠니?》

녀의사는 주사대와 약솜을 들고 금동이와 녀자애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금동이는 못 들은체 하고 아까보다 더 열심히 모표를 닦았다.

주밋거리는 금동이를 할끔 쳐다본 녀자애가 팔을 걷어올리고 의사옆에 다가앉았다.

《부끄럽지두 않은게로구나. 너보다 한살 어린 저 앤 주사를 맞겠다고 의사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성화를 먹이는데 넌…》

여직껏 입을 다물고있던 어머니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버럭 증을 내였다.

《래일부턴 아들님한테 바지대신 치마를 입혀야겠습니다.》

녀자애의 팔에서 주사침을 뽑은 의사가 씨물씨물 웃으며 말참견을 하였다.

《원, 치마가 그렇게 눅거린줄 알아요. 그 애한텐 치마가 아니라 겁이 제일 많은 놀가지(노루)가죽옷이 제격이지.》

어머니는 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저고리고름을 감았다풀었다 한다.

《호호, 왜들 이러십니까? 금동이가 뭐 그까짓 주사를 겁낼줄 압니까? 이제 봅시다.》

김향선생님이 금동이의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부추기듯 말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웃방에서 갑자기 아이들이 시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 《시―작!》하고 선창을 떼자 여러 아이가 멀리서 울려오는듯 한 목소리로 《금동이 어머니, 금동이를 욕하지 마세요!》하고 웨치였다.

《시―작! 금동이 어머니, 금동이를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하고 그 목소리들은 다시 부르짖었다. 그다음은 왁자지껄 현관밖으로 쓸어나가는 발자국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래방에서는 웃음소리가 탁 터졌다.

김향선생님도 웃고 의사도 웃고 금동이 어머니도 웃었다.

《보통짝패들이 아니구만요. 금동이가 참 좋은 동무들을 두었습니다.》

녀의사가 웃음을 그치고 감동되여 말했다.

금동이는 불시에 눈굽이 따가와지는것을 느끼며 의사앞에 얼른 팔을 내밀었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용감한 인민군대정찰병영웅이 되겠다고 했다는 금동이가 주사침따위를 겁낼수야 없지.》

의사는 능청을 떨며 금동이가 눈을 껌뻑할 틈도 없이 솜씨있게 주사침을 박았다. 약물은 순식간에 피부속으로 깡그리 슴새여들어갔다.

맞고보니 그다지 아픈 주사도 아니였다. 아프지도 않은 주사때문에 공부도 뚜꺼먹고 학교에서 꽁무니를 뺀것을 셈하면 슬그머니 분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녀자애가 보는 앞이라 주사침 들어갔던 자리를 서너번 문지르고 인차 소매를 끌어내리였다.

잠시후 의사는 금동이네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금동이를 웃방으로 올려보내고 김향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소리는 사이문짬으로 새여나와 금동이의 귀에까지 쑥쑥 들어갔다.

김향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주사까지 맞았으니 래일부터는 떳떳이 학교에 나올겁니다. 인제는 금동이가 죄를 씻은셈입니다. 죄를 제때에 씻지 않고 묵여두면 잠을 자도 발편잠을 잘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늘만 한 죄도 나중에는 홍두깨만 한 죄로 됩니다. 그래서 사실 병원에도 찾아갔댔습니다. 일본뇌염보다도 더 위험한건 한대의 주사를 안 맞은 잘못때문에 금동이가 집단생활에서 벗어져나가는것입니다.》

금동이는 혁띠끝을 만지작거리며 잠잠히 생각하였다.

(선생님 말이 옳아. 난 지난밤에 정말 잠을 못 잤거던. 금석이는 코를 드릉드릉 골며 자는데 난 예방주사를 안 맞고 공부를 뚜꺼먹은 걱정때문에 꿈도 무서운 꿈을 꾸었지 뭐. 에이, 다시는 그따위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지.)

어머니도 금동이처럼 김향선생님의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였다.

《과연 옳은 말입니다. 죄를 짓고서는 마음이 한시도 편할수가 없지요. 내 이제부터는 저 애를 엄하게 다스리겠습니다. 정 애를 먹일 땐 선생님도 볼기를 치십시오.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호호, 그러니까 금동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시겠다는거구만요. 귀한 자식이기때문에 물론 더 엄하게 다스려야지요. 그러나 어머니, 통제 하나만 가지고 금동이를 키울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첫걸음을 뗀 저 애들한테는 많은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신발 신는 법 하나를 똑똑히 배워주어도 그것은 1학년생 아들에게 훌륭한 자양분이 될수 있습니다.》

《나야 성미가 꼼꼼치 못하다보니 그저 소리만 치지요.》

어머니와 김향선생님은 소리를 내여 가볍게 웃었다.

《사람이 일생을 옳바로 살아가자면 첫걸음을 잘 떼야 합니다. 첫걸음을 잘 떼지 못한탓으로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어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김향선생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기나긴 인생의 문어귀에 들어선 금동이네를 첫싹부터 잘 키웁시다. 그래야 그 애들이 일생을 곧바로 걸어갈수 있습니다. 학교와 가정이 합심해서 짜고들어 금동이를 보살펴줍시다.

1학년생을 잘 키우는것은 전국적범위에서 이미 실천단계에 들어선 11년제의무교육을 빛내는 길이구 이 고마운 교육제도를 나라의 법으로 선포하여주신 아버지원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길입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낮은 소리로 주고받아서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아마 김향선생님이 어머니에게 금동이를 너무 욕하지 말라고 타이르는것 같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 어머니는 정말 금동이에게 한마디의 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쉴새없이 숟가락질을 해대는 그를 보고 지나가는 말로 《천천히 먹어라.》하고 일러주었을뿐이다.

저녁이 끝난 다음에는 재수의 어머니와 순일이 어머니가 왔다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나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왔다갔구나! 나 하나가 애꾼질을 하면 온 거리가 다 걱정하는구나!)

열시보도가 끝나고 세 식구가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 때 금동이는 이불밑에서 지나간 하루를 조용히 돌이켜보았다.

여섯살짜리 녀자애한테 선코를 떼우고 주사를 맞은 일만 아니였다면 그는 이날 밤 훨씬 기분이 좋았을는지 모른다.

 

8. 금동이와 금석이

 

교실청소를 끝낸 금동이와 재수는 맨 나중에야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학교마당에 나섰다.

두 아이보다 먼저 교문밖으로 뛰여나온 순일이며 동학이며 효남이들의 모습이 먼 앞쪽 미술박물관곁에서 아물거리였다.

《벌써 저기까지 갔구나.》

재수가 금동이의 팔굽을 툭 다치며 따라잡자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그러나 금동이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련광고등중학교(당시) 운동장에 눈을 팔고있었다.

거기서는 지금 녀학생들의 배구경기가 한창이였다. 남색운동복에 《선교》라는 명판을 단 팀이 쏘아보내는 강타공이 연방 련광고등중학교팀 구역에 날아가 떨어졌다. 련광고등중학교선수들은 한동안 방어진을 수습하느라고 쩔쩔매며 돌아갔다.

《멋진데!》

금동이는 재수의 손을 끌고 무작정 고등중학교정문으로 들어섰다.

인민학교아이들만 보이면 덮어놓고 쫓아버리는 거드름쟁이들의 눈이 덜 미치는 울타리옆에서 그들은 신이 나서 한참동안 시합을 구경하였다.

그런데 1회전이 끝날무렵에 금석이와 순철이가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금석이는 오자바람으로 금동이의 책가방을 툭 건드렸다.

《필통에서 칼을 꺼내라.》

형의 말투는 좀 거칠고 무뚝뚝하였다.

금동이는 칼을 꺼냈다. 그것은 날이 무디여지다못해 톱날처럼 들쑹날쑹해진 《대동강》표 손칼이였다. 연필을 깎으면 나무겉면을 곰보투성이로 만들고 심을 자꾸 부러뜨리군해서 그는 한주일째 아버지의 면도칼을 몰래 가지고 다니였다.

《형, 칼이 나빠.》

그는 형에게 손칼을 넘겨줄락말락하면서 풀기없이 말했다.

《나쁘니까 보자는거지.》

금석이는 엄지손가락끝으로 날을 쓸어본 다음 입을 비쭉해보이였다.

《정말 칼을 험하게 다루었구나. 펀펀한 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구선 나중엔… 봐라, 너희 반 담임선생님이 나한테 무슨 편지를 썼나…》

형은 주머니에서 《×》자형으로 접은 편지쪽지를 꺼내여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이크, 끝내 빵짱이 났구나.)

금동이는 재미나는 배구경기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형에게 보낸 김향선생님의 쪽지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금석학생, 회의시간이 되여 만나지 못하고 가요. 학용품검열을 하다가 금동이의 필갑속에서 면도칼을 발견했어요. 가슴이 섬찍했어요. 장난이 심한 1학년생들이 면도칼을 가지고 다닌다는건 비상사고가 아니겠어요.

글쎄 선들선들한 그 면도칼로 연필을 깎는다는거예요.

보통칼은 잘 들지 않아서 면도칼이래야 된다는거지요.

필갑속에 있는 손칼을 보니 날이 뭉그러졌어요.

나는 그 손칼을 보는 순간 금동이의 형부터 먼저 생각해봤어요. 형이 동생을 좀 더 잘 돌봐준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거라고 말이예요.

금동이는 참 좋은 학생이예요. 착하구 령리하고 탐구심이 강하고 정의감이 있고…

그런데 생활이 불규칙적이고 산만한게 흠이예요. 어떤 한가지 일에 재미를 붙이면 다른것은 다 집어치우거든요. 그 재미라는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다른 재미에 인차 자리를 내주군 한답니다.

금동이를 좀 더 따뜻이 사랑해주세요.

일과를 잘 짜주고 학습과 과외활동을 잘 보살펴주어야겠어요.

온 사회가 달라붙어 1학년생들을 키워야 합니다.

고등중학교동무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싶어요. 출장이 잦으신 아버지, 일에 바쁘신 어머니를 도와 항상 동생의 학습과 생활을 꾸준히 지도해주세요.

면도칼은 내가 보관하고있어요. 아버지가 돌아오신 다음 직접 돌려드리려고 해요. 아니 형이 학교에 찾아온다면 인차 돌려줄수도 있구요. 학부형으로 한번 찾아오세요. 안녕히!

1975년 9월 ×일

김 향》

《이크, 너두 받았구나.》

김향선생님의 글씨를 알아본 순일이의 형 순철이가 깔깔거리며 금석이의 잔등을 두드렸다.

《왜? 너한테두 이런 쪽지편지가 왔댔니?》

금석이가 물었다.

《그럼 나흘전에… 아, 우리 순일이 말이야. 학교에 내 신을 신고갔더라는거야.》

《자기 신은 어쩌구?》

《어쩌긴, 집에 있지. 그런데두 그 앤 걸핏하면 어른들의 신을 신고 나간단 말이야. 그리군 시뜩해서 돌아다니지 뭐. 전번날엔 아버지 안경을 걸고 넥타이까지 매고 나갔는데 안경이 어떻게 된지 아니? 열두쪼각이 났어, 열두쪼각. 참 괴짜지.》

《정말 괴짠데. 그런데 난 그 유명한 안경사건도 모르고있었구나.》

금석이는 금동이의 손에서 편지를 나꿔채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순철이는 재수와 금동이를 량옆에 끼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순일인 내리긋는 획도 웃대가리가 모조리 뻰찌로 휘여놓은것처럼 안으로 구부러들게 글을 쓴다는거야. 왜 그렇게 쓰는가고 선생님이 물으니까 형이 그렇게 쓰니까 자기도 그렇게 쓰노라고 대답하더라나.》

《그래서?》

《순일이를 위해서 내 글씨체를 좀 생각해보라는거야.》

《그래 고치니?》

《애쓰지만 잘 안돼. 나두 사실은 우리 아버지글씨를 닮느라고 그랬는데 녹았어.》

《아이들이란 참 뭘 본따기 좋아한단 말이야.》

《우리가 형구실을 더 잘해야겠어.》

순철이는 금동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튕겨주고나서 배구장쪽으로 돌아섰다.

그사이 금석이는 금동이의 귀에 대고 조용조용 말했다.

《내 이제부터 칼을 자주 갈아줄테니 공부를 잘해야 해.》

《응.》

금동이는 신바람이 나서 재수를 돌아보기까지 하였다.

형이 하나도 없는 재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부러운 눈으로 금동이를 바라보았다.

금석이는 동생에게 한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김향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그 다음날부터 형은 금동이한테 많은 시간을 바치였다.

그는 어머니가 직장에 출근한 다음 밖에 나가려고 차비하는 동생을 덮어놓고 책상앞에 끌어다 앉히였다. 일요일이지만 오전 한겻을 금동이에게 바칠 작정이였던것이다.

《자, 산수학습장을 꺼내.》

웃동까지 벗어내치고 들어붙는 형을 보자 금동이는 뿌루퉁해서 책가방을 뒤적거렸다.

(풀어놓은 숙제두 안 봐주더니 에참.)

그는 속이 후끈 달아올라서 손에 잡히는 책을 아무거나 꺼냈다. 10호동아빠트아이들과 약속한 축구시합이 다 튀는것 같아서였다.

금동이는 9호동아빠트팀의 중간방어수이다.

그가 빠지면 누가 금동이처럼 그렇듯 멋지게 공격수들한테 공을 차보내겠는가. 쏜살같이 달려드는 적수들의 발에서 누가 금동이처럼 대담하게 공을 빼앗아내겠는가.

《금동아!…》

여러가지 나팔을 한꺼번에 불어대는것처럼 떠들썩한 아이들의 부름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쾅 하고 열리였다.

머리칼이 마구 헝클어져 땀에 녹아붙은 재수의 얼굴이 문가에서 벙글거리였다. 앞자락이 활짝 제껴진 반소매는 어깨뒤로 훌렁 넘어갔고 런닝샤쯔앞에는 공에 맞은 자리가 거무스레하다.

재수의 뒤에는 고무공이 든 비닐구럭을 메고 순일이가 서있다. 채양이 뒤로 가게 모자를 거꾸로 쓴 동학이가 그옆에서 벌쭉벌쭉한다.

《공차러 가자구? 너희들끼리 놀아라. 금동이는 못 간다.》

금석이는 한손으로 문설주를 붙잡고 다른손으로 순일이의 손에 들린 고무공을 툭 쳤다.

《왜?》

꼬마들은 눈이 올롱해졌다.

《중요한 사업을 한다.》

《사업? 히히, 그건 또 뭐나? 공차기보다 더 재미나니?》

순일이는 입을 삐쭉하며 무릎으로 공을 차올렸다.

《우린 시합을 하는데 뭐.》

동학이도 재수도 볼이 부었다.

울음이 터질듯이 입귀를 비죽거리던 금동이는 눈을 내리깔고 문가에서 돌아섰다.

《그럼 5번은 누가 서니?》

《금동이네 형 깍쟁이다.》

《오늘은 이기기 다 글렀어, 참참참!》

아이들은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층계를 내려갔다.

금동이는 찔끔 솟아오르는 눈물을 훔치고 형의 잔등판을 흘겨보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금석이는 호이호이 휘파람만 불어댄다.

《금동아, 공차고싶지?》

하고 형은 문득 동생의 어깨우에 몸을 숙이고 물었다.

《…》

금동이는 골이 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을 차겠거든 내가 내는 산수문제를 잘 풀어라. 그러면 한시간만 공부하고 그만두지.》

(한시간!)

그때는 시합이 끝날것이다. 아이들은 수도가에서 더러워진 얼굴을 씻고 시원한 얼음과자를 사먹을것이다. 그리고 금동이더러 저저마다 꼴을 다섯개나 먹었다고 우는소리를 할것이다.

금동이의 머리속에는 성난 벌떼처럼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잉잉 소리치며 떠돌았다.

(에참, 난 왜 형으로 태여나지 못하고 동생으로 태여났을가?)

《자, 그럼 먼저 속셈부터 해보자.》

금석이는 뒤짐을 지고 방안을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다섯 더하기 다섯, 덜기 셋, 덜기 둘, 더하기 여덟! 몇이냐?》

《열셋이지 뭐.》

금동이는 형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뜩지 않게 대답했다.

요새 그의 속셈솜씨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됐어. 10분 면제해주지. 이번에는…》

금석이는 머리를 뒤로 제끼여 천정으로 향하게 하고 눈을 떴다감았다하면서 다시 방안을 돌았다.

《이건 속셈으로 해도 좋고 필산으로 해두 좋아. 아버지가 사과를 사왔는데 금동이는 여덟알 먹고 나는 금동이보다 세알 더 먹었다.》

《피, 여덟알이나 먹으면 배가 터지게!》

금동이는 픽― 하고 코웃음을 쳤다. 교과서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지어내는 형의 산수문제가 도무지 문제답지 않았던것이다.

《그건 실지 그런게 아니라 례를 들어서 그렇단 말이다. 좌우간 배가 터졌던지, 어쨌던지 너하구 나하구 먹은 사과를 합치면 모두 몇알이겠니?》

금동이는 속셈으로 얼른 금석이가 먹은 사과알수를 알아낸 다음 학습장 한복판에 장대기를 내리친 그 량옆에 각각 여덟개의 동그라미와 열한알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두칸의 동그라미를 모두 합치니 답이 되였다.

《열아홉알이야.》

《좋아, 이건 힘든 문제기때문에 20분 면제야. 자, 이번엔 세번째 문제다. 인민군대의 한 습격조가 미군놈이 차지한 고지를 〈땅! 땅!〉하고 습격했다. 습격에 죽은 미군놈이 쉰두놈, 부상당한 놈이 열다섯놈, 살아남은 놈들이 일곱이였다.…》

《그건 왜 죽이지 않구 살려두었니?》

《살려둔게 아니라 사로잡은거야.》

《왜 사로잡았니? 나쁜 놈들인데…》

《살려달라구 손을 들었으니까.》

《살려주면 또 조선사람들을 죽이겠지?》

《에참, 넌 너무 시시콜콜해서 탈이구나. 그래 부상당한 놈과 살아남은 놈이 모두 몇놈 있었겠니?》

《?》

금동이는 그 악독한 미군놈을 왜 모조리 죽이지 않고 사로잡는지 알수가 없어 그냥 눈만 끔벅거리였다.

《모르겠니?》

7분이 지나자 금석이는 동생의 학습장을 끌어당기였다.

《…》

금동이는 대답하기 멋적어서 고개만 꺼덕꺼덕하였다. 학교에서는 아직 그들에게 두자리의 수자와 문제풀이를 배워주지 않았던것이다.

《아직 멀었구나. 너만큼 클 때 난 백까지 셀줄 알았다. 〈백두산〉이란 서사시두 왕왕 소리내여 읽었구. 잘 생각해봐라. 5분동안 시간을 더 줄테니.》

금석이는 침대우에서 일어나 벽장문을 열었다.

(에참, 이건 진짜 짜증나는 일인데!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슬금슬금 장속을 뒤지였다.

하얀 낚시줄이 그의 호주머니안으로 감겨들어갔다.

어머니가 비꼬아 말했듯이 일요일은 금석이의 《어업절》이다.

(쳇, 고기를 낚고싶은 모양이지.)

금동이는 흥 하고 코바람을 불었다.

《답이 나왔어?》

금석이는 낚시줄이 든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책상앞으로 다가왔다.

《…》

《축구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그렇지, 됐다.

가거라.》

금석이는 동생의 축 처진 어깨를 너그럽게 떠밀었다.

그리고는 돌개바람에 밀려든 나무이파리처럼 제 먼저 밖으로 휭하니 사라졌다. 그렇지만 금동이는 그냥 책상앞에 앉아있었다.

《금동아!…》

아빠트앞의 큰길에서 아이들의 부름소리가 갑작스레 들려왔다. 그 부름소리는 잠시 뜸해졌다가 더 큰 덩어리를 이루어가지고 길다랗게 꼬리를 늘이면서 맹렬하게 날아왔다. 재수네가 틀림없었다.

《금―동―아!…》

《공―차―자!…》

금동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풀지 못한 산수문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그 문제를 풀기 전에는 책상앞을 떠나고싶지 않았다.

 

―주체72(1983)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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