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6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이른새벽

        

                       민경숙

 

고요…

이른새벽 숲속의 고요는 자오록한 우유빛안개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명주필마냥 부드러운 안개의 두툼한 이불속에서 모든것이 아직도 달콤하게 잠들어있었다. 어룡호를 둘러싸고 높이 솟아오른 허천령봉우리도 그리고 련봉마다 빼곡이 들어찬 이깔나무, 분비나무, 봇나무들도 고즈넉이 서있었다. 새소리, 물소리, 나무잎소리를 안고 거창하게 살아숨쉬던 온 숲속에 청신한 새벽공기만이 짱― 하니 흐를뿐이다.

그 고요한 정적을 흔들며 문득 어디선가 바이올린소리가 들려왔다.

허천령기슭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학교운동장에서 울려오는 소리였다.

뽀얀 안개발을 휘휘 저으며 길게 울려퍼지는 은은한 선률,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이올린은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처럼 무척 숨가쁘게 음을 톺아오르더니 그만에야 삑― 아츠러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깼는지 잎새무성한 교재림속에서 날새 한마리가 푸드득― 이슬을 털며 날아올랐다. 그러자 사방에서 약속이라도 한듯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삐리삐리 뾰 찍찌― 호리호리 호르르 빗―…

새들의 울음소리에 더욱더 마음이 조급해난 덕남이는 활든 손을 털썩 내리우며 정문쪽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귀옥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기라도 가늠해들을가 해서 벌쭉한 귀바퀴에 손오가리까지 대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쳇, 그럴줄 알았으면 아예 내가 깨워가지고 나오는건데.)

조금전에 학교로 나오던 덕남이는 행여나 귀옥이가 돌아오지 않았을가 하여 그의 집에 들렸었다.

한참이나 불러서야 귀옥이 할머니가 문가에 나타났다.

《어이구, 이 새벽에 어떻게… 어서 들어오너라. 우리 귀옥인 엊저녁에 외삼촌집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덕남이는 속으로 다행이라 여기며 다짜고짜 그 애를 깨워달라고 했다.

《아유, 이제야 동창이 밝기 시작하는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악기련습을 해야 돼서 그래요.》

《난 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가 했구나.》 하고 할머니는 손을 내저었다.

《그거야 늘쌍 하는건데 좀 있다 깨우면 안되겠니. 방학기간이 아니냐.》

덕남이는 손에 들었던 바이올린통을 가슴에 바싹 껴안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돼요.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또 어데 있다고… 꼭 깨워야 해요. 학교운동장으로 무조건 나오라고 하세요.》

늘쌍 씨물씨물 웃으며 제집처럼 곧잘 드나들던 애가 별스레 정색해서 그러는것이 이상했던지 고개를 기웃거리던 할머니는 《무슨 공연이라도 있는게구나.》하고 중얼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귀옥아, 어서 일어나거라. 어서―》 하는 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덕남이는 얼른 학교로 가는 지름길을 탔던것이다. 정말 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있다는것을 실지 행동으로 보여주듯…

그런데 인차 따라설줄 알았던 귀옥이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지금쯤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더 깊은 꿈나라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풀떡거리며 골이 나서 서있던 덕남이는 에라, 하고 단념하듯 교재림을 향해 돌아섰다.

(새들도 벌써 노래를 시작했는데 콜콜 잠이 다 뭐야. 지금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이 생겼는지 알기나 해. 참, 애기같은거. 그런 애하고 내가 2중주를 다하다니.)

덕남이는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귀옥이와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게 되였다. 게다가 학교음악소조에서도 둘이가 다 기둥바이올린수로 둥둥 떠받들리우는 사이라 그들은 여간만 자별하게 지내지 않았다.

온 학교 학생들의 부러움과 기대속에 작년 도에서 진행된 학생소년예술축전에 참가하여 바이올린2중주로 단연 1등을 한 다음부터는 아예 한껍질을 쓰고사는 쌍둥이밤알처럼 되여버렸다.

그런데 올해봄에 있은 중앙축전에서 그만 아쉽게도 미끄럼을 타는 바람에 그들의 사이는 쩍 버그러진 밤송이신세가 되고말았다.

서로 옥신각신이 잦았다. 덕남이, 귀옥이라는 이름대신 《애기》, 《북극곰》이라는 엉터리없는 별명이 종종 입에 올랐다.

그래도 덕남이는 언제나 손우의 오빠마냥 모든 일을 너그럽게 처신하군 했다.

훈련할 때 귀옥이가 선률을 틀리게 타도 얼굴 한번 찡긋한 일이 없다. 지어는 귀옥이의 활에 송진을 묻히는 일까지 그가 다 맡아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래년 중앙축전에서는 기어이 이겨야 한다는 굴뚝같은 결심이 그를 대범한 오빠로 만들었던것이다.

그러나 귀옥인 신통히도 애기다. 조금만 맞갖지 않은 일이 생겨도 뾰조롬해서 픽 돌아앉는다.

이번 방학만 해도 그렇지 않는가. 자기는 이 한달기간에 다음번 축전에 내놓을 2중주를 정말이지 티끌만 한 손색도 없이 완성해보자고 아글타글하는데 그 앤 덜컥 사흘전에 외삼촌네 집으로 셈평좋게 가버렸다. 뭐 자기가 도예술선전대 대장으로 일하는 외삼촌한테서 딱소리나는 2중주곡을 골라온다나.

덕남이는 속이 울컥했지만 그동안 제혼자 훈련을 하는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축전에서 미끄러진건 곡때문이 아니다. (분명 기량탓이다. 작년에 도축전에서 1등을 한 다음 너무 자만했기때문이야.)

그러던 그는 어제저녁 학교음악교원인 성희선생님한테서 너무도 뜻밖의 소식을 듣고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렇게 남들이 깨지 않은 첫새벽에 학교에 나온것이다.

… 신선한 새벽공기를 가슴깊이 들여마시며 노래의 정서속에 몸을 잠그듯 잠시 사이를 두었던 덕남이는 이어 능란하게 활을 긋기 시작했다. 성희선생님이 새로 련습곡으로 배워준 노래였다.

어찌나 훈련에 열중했던지 그는 다가오는 귀옥이의 발자국소리도 듣지 못했다. 살금살금 고양이걸음으로 다가온 귀옥이가 《애햄―》 하고 새된 기침소리를 냈을 때에야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손에 바이올린을 든 귀옥이가 깜또라지같은 눈을 반짝이며 서있었다. 밉다하면 깨꼬한다더니 덕남이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보조개가 패이도록 생글생글 웃는다.

덕남이는 언제 기다렸더냐싶게 다시 활을 들었다.

그러자 귀옥이가 활을 살짝 잡아채며 눈을 쌔물거렸다.

《어떻게 된거니, 새벽부터 악기련습을 하면서. 인차 공연이 있니?》

덕남이는 듣기 싫다는듯 슬쩍 몇걸음 앞으로 옮겨갔다.

《흥, 〈북극곰〉같은거…》 하고 귀옥이는 그의 떡판같은 잔등에 대고 콕 쏘았다.

《남은 피곤해서 죽겠는데 왜 새벽부터 깨우면서 그러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그리고는 치마에서 휘파람소리가 날 정도로 홱 돌아섰다.

순간 《뭐야?》 하고 귀청이 터질듯 울리는 성난 목소리가 귀옥이의 발걸음을 흐트러뜨렸다.

덕남이가 씨근덕거리며 다가섰다.

《뭐, 무슨 큰일이나 난것처럼 그러는가고, 너 알기나 하니?》

귀옥이는 눈에 띄게 오르내리는 덕남이의 앞가슴을 약간 겁먹은 눈망울로 지켜보았다.

한참만에야 덕남이는 마음을 진정했는지 부리부리한 눈길을 맥없이 내려떴다.

《너 알기나 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선생님께서 우리의 2중주에 대해서 말씀하신걸 말이야.》

《뭐?!》

귀옥이는 하마트면 손에 든 바이올린통을 떨어뜨릴번 했다. 방망이를 품은듯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놀랜 그의 가슴속으로 덕남이의 떨리는듯 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바로 어제 우리 군에 오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는 공장이랑 주택지구랑 하나하나 돌아보시다가 군당책임비서아저씨한테 우리들에 대해 물으셨다는거야. 그 애들이 잘 있는가고 하시면서 작년에 도축전에서 1등을 했는데 올해 중앙축전에서는 어째서 등수에 들지 못했는지 무대에서 볼수가 없었다면서… 축전에 참가하지 못해 맥을 놓고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셨대.》

가슴이 뭉클 젖어오른 귀옥이는 악기통을 내려놓으며 안타까운듯 두손을 꼭 모두어잡았다.

《야참, 그런것도 모르고 난 쿨쿨 잠만 잤구나.… 그런데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아직도 우리 이름을 기억하실가. 그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만나셨는데…》

《그때 우리가 지도자선생님앞에서 얼마나 굳게 결의다졌니. 중앙축전에 나가서도 1등을 하겠다고말이야.》

눈물이 그렁해서 이야기하는 덕남이의 말은 그대로 귀옥이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샘솟게 했다.

그러는 그들의 눈앞에 지도자선생님을 처음으로 뵈옵던 1년전 그날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올랐다.

…시내의 곳곳에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여나던 그날.

북부지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던 지도자선생님께서 도축전에 참가한 학생들의 공연을 보아주신다는 소식에 접한 덕남이와 귀옥이의 가슴은 남달리 세차게 울렁거렸다.

산골에서 나서자라 처음으로 이런 영광의 무대에 나서보는 그들이였다.

어떻게 무대에 나섰는지 몰랐다. 또 어떻게 《사향가》의 선률이 울렸는지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2중주가 끝났을 때 그토록 환히 웃으시며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는 지도자선생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뵈옵는 순간에야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비로소 꿈속에서 깨여난듯 한 기분이였다.

그런데 행복의 그 꿈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 지도자선생님께서 꼬마명배우들이 다시한번 보고싶다하시며 다른 애들과 함께 그들도 대기실로 불러주셨던것이다.

《그래 이름은 뭐지?… 덕남이와 귀옥이… 너희들이 〈사향가〉를 정말 잘 타더구나. 괜찮아. 아주 수준이 괜찮아.》 하시며 그들의 머리를 정겹게 쓰다듬어주시였다.

그들이 하늘아래 첫동네로 불리우는 산간마을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더없이 기뻐하시며 산골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주시였다. 어떻게 악기를 배웠는가, 학교에 너희들 말고 악기를 잘 다루는 애들이 몇명이나 되느냐, 그 먼 산간군에서 도축전무대에까지 올라오는것도 퍼그나 힘들었지?

친아버지와도 같은 그이의 다심한 물으심에 덕남이와 귀옥이는 어려움도 잊고 신나게 자랑을 엮어대였다.

《우리가 도축전에 올라올 때 이웃학교 음악소조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활달하신 음성으로 긍정해주시였다.

《정말 용타. 우리 덕남이와 귀옥이가 제일 앞섰다는게 난 무엇보다 기쁘구나.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향가〉를 다시한번 들어보는것이 어떠냐?》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몸가까이에 두 애를 나란히 세워놓으시고 그들이 울리는 《사향가》의 선률을 다시금 주의깊게 들어주시였다.

그날 지도자선생님께서는 헤여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앞으로는 너희들뿐만아니라 학교의 더 많은 애들이 이런 무대에 나서게 해야 한다. 서로 도와주고 배워주면서 계속 1등의 영예를 지녀야 한다. 도축전만이 아니라 중앙축전에서도… 알겠느냐?》

두 아이는 가슴을 쭉 펴고 힘차게 대답올렸다.

《지도자선생님, 우린 계속 1등하겠습니다.》

그 대답소리에 그리도 만족해하시며 보고 또 보시던 지도자선생님의 환하신 미소…

덕남이는 팔소매로 눈굽을 뻑 닦으며 귀옥이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넌 뭐니? 방학이라고 건둥건둥 돌아다녀서야 되겠니?》

귀옥이는 선생님앞에서처럼 솔깃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2중주때문에 안타까와 갔다온건데 뭐… 외삼촌이 인차 좋은 곡을 여러편 보내주겠다고 했어. 그가운데서 우리가 맘나는걸 고르래.》

평소의 그답지 않게 고개를 차분히 떨어뜨리고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귀옥이의 행동거지는 덜퉁한 덕남이의 마음을 대번에 흡족케 했다.

《자, 됐어. 이제부터는 련습을 새벽부터 들이대야겠어. 어쨌든 우리가 진건 기량때문이니까.》

귀옥이도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듯 눈을 빛내였다.

《응, 새벽부터 련습하는건 나도 찬성이야.… 근데 곡을 선정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봐. 성희선생님도 다음 축전에 내놓을 노래를 잘 생각해보라고 하지 않았니.》

《또 곡타발, 기량만 높다면야 그 어떤 곡이든 형상 못하겠니. 곡은 그때 가서 선정해도 되는거야.》

《하긴 그래, 그렇지만 같은 값이면…》

《너 정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겠니?》

《음, 〈북극곰〉같은거. 그래서 너보고 미욱하다고 하는거야.》

《뭐야, 너 한대 맞아보겠니?》

뒤걸음질치던 귀옥이는 무슨 일인가 하여 살짝 고개를 돌렸다.

순간 예쁘장한 입술새로 《아!》 하는 흥분에 뜬 탄성소리가 실오리처럼 흘러나왔다.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아니 글쎄 퍼그나 눈에 익은 옷차림의 지도자선생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머금으시고 자기들을 굽어보고계시는것이 아닌가.

이른새벽, 어룡호로 나가시던 지도자선생님께서는 학교운동장에 서있는 애들을 보시고 차를 멈추게 하시였던것이다.

덕남이와 귀옥이는 와락 그이의 품속에 안겨들었다.

《지도자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환희에 넘친 챙챙한 목소리에 교재림의 새들이 하르르 날아올랐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두 애를 포근히 감싸안으시고 정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얼핏 보니 바이올린을 들었기에 혹시 너희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척 보고싶었는데 이렇게 만났구나.》

진정 기쁨에 겨워하시는 지도자선생님의 말씀에 두 애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줄 몰라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바이올린의 팽팽한 줄이 옷자락에 마구 쓸리는줄도 모르고 덕남이는 줄곧 지도자선생님만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몸을 흠칫 떨며 어깨를 낮추었다. 귀옥이도 땅바닥에 시선을 떨구며 머밀거렸다.

자기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지도자선생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자책감이 그제야 한껏 부푼 가슴 한복판으로 갈마들었던것이다.

그러나 애들을 품에 안고 보고 또 보시는 지도자선생님의 눈길에는 대견한 빛이 한껏 어려있었다.

《남들이 아직 깨지 않은 이 새벽에도 악기련습을 한단 말이지.… 그런걸 모르고 난 혹시 너희들이 맥을 놓고있지 않는가 걱정했구나. 용타, 확실히 우리 아이들이 달라.》

우리 아이들이라는 친근한 부르심에 덕남이와 귀옥이는 고무줄처럼 켕기였던 마음속 긴장이 어느샌가 사르르 풀리는것을 느끼며 장한듯이 뒤에 서있는 아저씨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송진가루가 하얗게 앉은 덕남이의 바이올린을 손에 드시고 줄을 하나하나 튕겨보기도 하시고 악기의 재질을 가늠해보시듯 세세히 들여다보기도 하시였다.

《그만하면 악기도 괜찮은걸 쓰는군. 학교음악선생님을 비롯해서 여기 선생님들이 참 수고가 많았겠구나.…》 그러시고는 뒤에 선 일군을 돌아보시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우리 당이 3대혁명수행에 관한 방침을 내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 생활력이 뚜렷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이렇게 산간지대에서도 도시애들 못지 않게 음악기재도 좋은것으로 갖춰놓고 애들을 키우고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자 덕남이는 장한듯이 벌쭉 웃으며 성희선생님에 대한 자랑보따리를 슬슬 풀어놓기 시작했다.

작년 도축전때 지도자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더 많은 애들을 기악조에 받아 키운다는 이야기며 악기에 줄이 몇개인지도 모르던 애들에게 하루같이 훈련을 주어 이제는 학교의 많은 애들이 악기를 다루게 되였다는 이야기…

그리고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말하는것처럼 성수가 나서 지도자선생님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성희선생님은 말입니다. 우리 산골애들모두가 다 악기를 다루기 전에는 절대 시집을 안간다고 했답니다.》

키를 낮추고 들으시던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엉큼한 그 소리에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귀옥이도 얼굴이 발그레해서 덕남이쪽에 대고 입을 삐죽거렸다.

바로 이때 범이 제 소리하면 온다더니 학교정문으로 흰 샤쯔에 회색치마를 가뜬하게 받쳐입은 녀선생님이 들어섰다.

《지도자선생님, 성희선생님입니다.》

두 애는 거의 환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끝없는 격정에 휩싸여 달려와 깊은 절을 올리는 성희선생님을 따뜻한 눈빛으로 맞아주시였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구실을 잘못해서 이번에 이 애들이…》

송구스러움에 가슴을 펴지 못하는 성희선생님에게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인자하신 어조로 너그럽게 말씀하시였다.

《아니요. 처음으로 중앙무대에 나섰는데 그럴수 있지.…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산간군에서 학교아이들이 다 한가지이상의 악기를 다루도록 한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학교형편을 더 자세히 물으시고나서 덕남이와 귀옥이쪽을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셨다.

《허, 그런데 너희들은 중앙축전에 참가하자마자 미끄럼을 탔느냐?》

가뜩이나 큰 덕남이의 두눈이 금시 왕사발만해졌다.

《아닙니다. 준결승까지 올라갔댔습니다.》

《준결승까지 올라갔댔다! 아니 거기까지 올라갔다 떨어진단 말이냐? 귀옥아!》

무척 아쉬워하시는 지도자선생님의 말씀에 귀옥이는 귀방울이 잘 익은 앵두처럼 달아올랐다.

《우린 사실… 련습이랑 쎄게 했댔는데 덕남동무가 곰처럼 막 우기는 바람에…》 그리고는 입술을 살짝 감쳐물며 덕남이쪽을 곁눈질해보았다.

《허, 덕남이가 곰처럼 뭘 우겼다는거냐?》

하시며 지도자선생님께서도 벌겋게 달아오른 덕남이의 퉁퉁한 얼굴을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시였다.

(헹, 꼭 영낙없는 애기라니까.)

덕남이는 볼이 부어 한대 받을듯이 웃몸을 움쭉 내밀다가 지도자선생님의 정어린 시선에 멋적은듯 뒤더수기만 썩썩 긁적거렸다.

자긴 뭐 잘못이 없는가, 축전에 올라간지 하루도 못돼서 할머니가 보고싶다고 눈물을 쨀쨀 짜던게 언제게. 그 시간에 련습이나 더 했으면 떨어지지도 않지.…

그러거나말거나 《애기》는 저만 잘난듯 연신 입술을 봉싯거린다.

《글쎄 덕남동무가 2중주곡을 그냥 우겨서 그렇게 된겁니다. 난 좀 다른 애들도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곡을 연주하자고 했는데 뭐 기교술을 보여주는데는 경쾌한 그 노래가 제일 좋다면서…》

《무슨 곡을 연주했게?》

《〈우리 분단 야유회〉입니다. 놀음놀이 때에도 계속 부르는…》

《음, 그래서 귀옥이는 너무 안타까와 이번에 외삼촌한테 곡을 부탁하러 갔던게구나.》

지도자선생님의 말씀에 귀옥이는 물론 덕남이도 얼굴을 확 붉혔다.

아까 운동장에 들어서실 때 자기들의 싱갱이질을 잠간 지켜보신듯 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지도자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시며 잠시 저 멀리 안개 뒤덮인 수림 한끝으로 시선을 보내시였다.

덕남이는 1년전 그날 자기들이 《사향가》를 잘 탄다고 거듭 보아주시며 각별한 애정을 기울여주시던 지도자선생님의 그날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와 목구멍이 자꾸만 울먹거려졌다.

《지도자선생님, 그건 우리가 잘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기량이 낮기때문에 그만…》

《일없다. 다음에 잘하면 되는거지.》 하시며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조용한 미소로 두 애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시였다.

《하긴 어째선지 마음이 서운하고 무겁더구나. 너희들이라고 어떻게 첫술에 배가 부르겠는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정작 무대에서 보지 못하니 가슴이 무척 허전하더구나.》

덕남이와 귀옥이는 발깃한 눈시울을 들어 그이를 우러렀다.

서운하게 울리는 그 음성, 절절하게 파고드는 다심한 그 어조…

어쩌면 그때 우리 아버지의 마음과 꼭 같을가. 어쩌면 저고리고름을 눈굽에 대이던 우리 어머니의 서운함과 그리도 같을가.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아버지, 어머니도 그때의 허전함을 다 털어버렸다. 지금은 집에 친척이 한분 와도 그저 자랑뿐이다.

아들자랑, 딸자랑으로 두 집은 그야말로 동네 행복을 다 독차지한듯싶었다.

그런데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아직도 그 서운함을 안고계셨다. 그 허전한 마음을 안으시고 여기 산간군으로 찾아오신것이다.

성희선생은 자책에 젖은 얼굴로 지도자선생님앞에 나섰다.

《제가 요구성을 더 높이지 못한탓입니다. 이번에 준비했던 곡이 〈사향가〉와 양상이 다른 조건에서 그에 맞게 곡상의 요구를 지켜 련습을 시켜야 하는건데 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일없소. 일없다니까. 도축전에서 1등한 경험도 있겠다, 이번에 중앙축전때도 준결승까지 올라가보았으니 앞으로 일이 잘될거요.》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는듯 학교정경을 둘러보시더니 이윽해서 천천히 걸음을 떼시였다.

운동장변두리를 따라가며 심은 백양나무밑으로 크고작은 각양각색의 운동기재들이 그쯘하게 갖추어져있었다. 3층으로 된 학교를 배경으로 울긋불긋 꽃들이 한창인 교재림앞에서 지도자선생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새벽이슬에 흠뻑 젖어 한결 더 푸르러보이는 노가지, 사스레, 세소잎나무들, 희귀한 구슬을 받아안듯 꽃잎우에 이슬방울을 고이 받쳐들고 생신한 향기를 피워올리는 장미며 제비꽃…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반색을 지으시며 그앞으로 다가가시였다.

《허, 교재림이 아주 특색이 있소.… 자, 설계가동무도 어서 가까이 와서 보시오.》 하고 뒤에 서있는 아저씨를 곁으로 부르시였다.

덕남이는 선망에 찬 눈길로 아저씨를 보았다.

(설계가아저씨였구나. 히야! 얼마나 훌륭한 설계가이면 지도자선생님께서 저렇게 잘 아시고 또 함께 다니기도 하실가?)

나물밭에 이르시자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문득 덕남이에게 깨잎처럼 넓은잎의 산나물을 가리키시였다.

《이게 무슨 나물이지?》

《곰취입니다.》

옆에 섰던 귀옥이가 지지 않으려는듯 나물이름을 연송 꼽아댔다.

《지도자선생님, 저건 참췹니다. 그리고 저건 무수해, 산부추, 또 저건 고비나물…》

《그래, 너희들의 힘으로 꾸려놓았단 말이지. 좋은 일이야.》 하시며 겨끔내기로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나가는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어루만져주시였다.

감회에 잠겨 교재림을 다 돌아보신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성희선생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가 평양과 다른 지방의 학교들을 더러 다녀보았는데 교재림들이 다 서로 특색이 있습니다. 강원도의 아이들은 감나무, 귤나무를 가꾸고 여기 아이들은 실별꽃을 피우고… 학생들에게 자기 지방의 고유한 특산물들을 잘 알게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기 고향에 대한 자랑이 생기고 사랑도 그만큼 깊어지는것입니다.》

성희선생님은 학교뒤산에도 커다란 교재림을 꾸렸는데 거기에는 여기 북부지대에서 자라는 식물뿐아니라 중부지대의 일부 식물들도 추위에 잘 견디는 식물들과 접해 키우고있다고 말씀올렸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교재림을 잘 꾸렸다고 거듭 치하하시고나서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다시금 학교전경을 바라보시였다.

《그런데 교재림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인지 너희들의 교사가 좀 작아뵈는구나.》

《지도자선생님, 우린 공원속의 도시처럼 학교도 교재림속에 푹 묻히게 하자고 결의다졌습니다.》

덕남이의 자신있는 목소리였다.

《푹 잠긴다.… 하긴 교재림을 무성하게 가꿔야지. 그런데 학교는 좀 작아. 우리 덕남이랑 귀옥이랑 공부도 하고 악기도 련습하는 이 학교가 너무 작은것 같애.》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자못 마음이 안 놓이시는듯 학교주변을 유심히 살피시였다.

설계가아저씨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심히 말씀올렸다.

《그래, 아침식사후에는 설계가들의 협의회가 있지.… 식사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어룡호에 나가봅시다.》

덕남이는 그제야 자기들이 지도자선생님의 바쁜 걸음을 지체시켰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직도 지도자선생님의 팔에서 떨어질줄 모르는 귀옥이의 옆구리를 슬그머니 찔렀다.

귀옥이는 떨어지기 아쉬운듯 한숨을 호― 내쉬며 덕남이의 곁으로 조촘조촘 다가왔다.

그러는 두 애를 지도자선생님께서는 다시금 두팔 벌려 부르시였다.

《얘들아! 우리 같이 호수가에 나가보지 않겠니. 시원하게 새벽산보도 할겸 거기서 너희들의 바이올린소리를 들어보자꾸나.》

《야! 지도자선생님!》

두 애는 너무 기뻐 악기통을 찾아들며 헤덤비였다.

《성희선생도 함께 갑시다. 여기 산간군에 오면서 제일먼저 생각한게 저 애들인데 이렇게 첫 새벽에 만나고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승용차쪽으로 달음박질쳐가는 애들을 보시며 즐겁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밤새 자욱히 서렸던 뽀얀 새벽안개가 차츰 엷어지기 시작했다. 잠을 깬 대자연이 거세찬 숨소리로 아침을 맞이하고있었다.

사방에서 툭툭 이슬을 터는 소리, 청신한 대기를 타고 울려오는 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소리…

밀림의 바다우를 가리마처럼 뻗어간 하얀 포장길우에서 장끼 두마리가 서로 따라잡을 내기를 하는듯 경쟁적으로 오고가고있었다. 그러다 부드럽게 들려오는 승용차의 소리에 《꾸꿩꾸꿩―》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덤불속으로 내려뛰였다.

차는 전나무들이 사열을 받듯 줄지어선 깊은 골안을 누벼올라 어느덧 속새풀이 우거진 넓은 공지에 이르렀다.

성글게 서있는 하얀 봇나무들사이로 파아란 호수가 내다보였다.

차에서 내리신 지도자선생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호수쪽을 이윽히 보시더니 애들을 데리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하얗게 덮였던 이슬이 그이의 바지가랭이를 적시였다.

덕남이는 얼른 나무가지를 하나 집어들고 앞쪽으로 껑충껑충 뛰여나갔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어느새 아셨는지 웃으시며 덕남이를 말리시였다.

《새벽산보라는거야 이슬을 차며 걷는게 재미지. 이슬을 맞아야 머리가 거뿐해지고 생각도 잘되거던.》

새벽의 호수가는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우유빛물안개가 유리알같은 수면을 어머니의 손길마냥 부드럽게 어루쓸며 흘러가고있었다.

손수건을 담그면 금시 파란 물이 들것 같은 맑은 물이 덕남이와 귀옥이의 얼굴을 찰랑찰랑 담아싣고 이렇게 묻는듯 했다.

너희들이 이 새벽에 어떻게 왔느냐고, 무슨 노래를 안고 여기로 왔느냐고…

호수주위를 보초병마냥 빙 둘러서있는 봇나무들도 나무우듬지에서 고개를 쫑긋하고 내려다보는 이름모를 새들도 무슨 노래를 안고서 왔느냐고 자꾸자꾸 귀속말로 묻는것만 같았다.

(정말 무슨 노래를 타드릴가. 무슨 노래를 타드려야 우리때문에 허전해지셨던 지도자선생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가.)

덕남이도 귀옥이도 오직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성희선생, 애들을 데리고 종종 이 호수로 나오군 합니까?》

지도자선생님의 물으심에 성희선생은 식물채집이랑 들놀이를 할 때면 아이들은 의례히 이 호수로 나오군 한다고 말씀올렸다.

《듣던것처럼 경치가 참 좋구만. 어떻소, 설계가동무.》

지도자선생님께서 의미깊은 어조로 물으시였다.

《정말 이름없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경치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제 혼자 관망한다는게 아까울 정도입니다.》

《하하… 아쉽게 생각할건 없소. 앞으로 여기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테니까.… 그래, 우리 나라는 그 어데 가나 명승이고 명산이지. 어룡호라…》

덕남이는 별안간 가슴이 후드드― 뛰는것을 느꼈다.

(여기에 무슨 큰 휴양소 같은것을 세우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설계가아저씨를 데리고 우리 군에 오셨구나.)

귀옥이도 그 생각인지 깜또라지같은 눈을 호기심에 반짝이며 덕남이를 마주보았다. 그러다 더 참지 못하겠다는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지도자선생님, 여기에 휴양소가 섭니까?》

지도자선생님께서 가볍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자 두 애는 《야!》 하고 환성을 올렸다.

금시 하늘에라도 날아오를듯 한 기분이였다.

《어떠냐? 마을사람들도 좋아할가?》

《네!》 덕남이는 어깨를 들먹거리며 거의 웨치다싶게 대답했다.

《지도자선생님, 우리 어룡호에 어떤 뜻이 깃들어있는지 아십니까?》 하고 당돌하게 묻기까지 했다.

《어떤 뜻이 깃들어있느냐?》

《이건 해방후에 지은 이름인데… 옛날부터 우리 마을엔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방 산으로 둘러막힌데다 학교 하나 없어서 모두가 다 까막눈들이였댑니다. 글쎄 우리 나라가 해방되였다는 소문도 한달이나 늦어서야 알게 되였답니다.… 해방이 되여 학교가 서고 글배우는 소리가 골안에 왕왕 울려퍼지자 옷고개에 사는 좌상할아버지가 턱수염을 쓸며 흐뭇해서 말했답니다.

〈암, 개천에도 룡이 나고말고.〉 그때부터 이름없던 호수에 어룡호란 이름이 생겨난것입니다.》

귀옥이가 인차 기다렸다는듯 잇달았다.

《우리가 도축전에서 1등하고 돌아온 날 마을사람들은 정말 마을에 룡이 났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한 할머닌 우리에게 산꿀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애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어룡호를 둘러싸고 높이 솟아오른 령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시더니 이윽고 무엇인가 결심하신듯 설계가아저씨쪽으로 돌아서시였다. 흥분으로 하여 한껏 높아지신 음성으로 선언하듯 말씀하시였다.

《보시오! 우리의 결심이 옳았소. 어서빨리 궁전을 세워줍시다. 저기 어룡호를 한눈에 굽어보며 높이 솟아오른 허천령기슭에 우리 덕남이와 귀옥이를 위한 학생소년궁전을 보란듯이 크게 지어줍시다.》

그이의 말씀에 아이들은 한순간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궁전… 아니? 우리 산골에 궁전을 세워주시다니?!)

새들도 노래소리를 멈추었다. 송이구름마냥 가볍게 흘러가던 우유빛물안개도 고요히 멈춰섰다. 호수가에 우렁우렁하게 울려퍼지는 그이의 음성을 소중히 받아안듯…

《산골아이들도 다 위대한 수령님의 해빛같은 사랑속에 안겨사는 애들입니다. 산간지대 아이들도 도시아이들처럼 궁전에서 마음껏 배우고 뛰놀아야 합니다. 덕남이와 귀옥이만이 아니라 여기 산골마을아이들 모두가 다… 지난날 지지리도 못살던 우리 화전민들의 자손들인데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이 고장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소원을 우리가 풀어줍시다. 궁전이랑 세워주어 이 애들을 진짜 룡으로 키워봅시다.》

순간 아이들의 가슴은 끝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아, 그래서였구나. 지도자선생님께서 도축전에서 1등한 우리를 그토록 잊지 못해하신것은 바로 우리가 산골마을아이들이였기때문이구나. 그때문에 중앙무대에 나서지 못한 일을 두고 그토록 서운해하시고 가슴아파하셨구나.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저 허천령기슭에 궁전을 세우고 여기 호수가에는 산간군인민들이 명절이나 휴식일때 즐길수 있게 유원지를 크게 건설하는것이…》

덕남이와 귀옥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그이의 모습을 우러를뿐이다.

사방 산으로 둘러막힌 자기들의 학교가 어쩐지 작아보인다고 곱씹어 뇌이시던 지도자선생님.

지도자선생님께서는 그때 벌써 산골마을 우리들이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창공높이 날아올라 미래의 훌륭한 주인공으로 자랄수 있도록 이런 크나큰 무대를 구상하셨던것이다. 아니, 중앙축전무대에 오르지 못한 덕남이와 귀옥이를 두고 허전한 마음을 안으시던 그날에 벌써 오늘의 구상을 익혀오셨는지도 모른다.

지도자선생님의 말씀을 흥분된 얼굴로 적어가던 설계가아저씨가 그이의 높으신 뜻에 어깨를 들먹이며 다짐해나섰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허천령기슭에 세울 학생소년궁전설계도안을 저희들이 맡아 훌륭히 완성하겠습니다.》

지도자선생님의 안광에 한없는 믿음이 비끼였다.

《꼭 그렇게 해주오.… 새벽잠이 제일 많은때인데 어떻게 매일 새벽부터 나와 훈련해서 기량을 높이라고 하겠소. 또 우리 귀옥이가 곡때문에 도에까지 안타까이 뛰여다녀서야 되겠소. 하하… 우리가 평양을 비롯해서 큰 도시들에 아이들의 궁전을 세워준것은 하루공부를 끝내고 과외시간에 자기들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우길 바래서였소. 이렇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군아이들도 도시애들 부럽지 않게 해줍시다, 부럽지 않게…》

여기서 잠시 말씀을 끊으셨던 지도자선생님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서있는 성희선생님에게 자애깊은 눈길을 보내며 계속하시였다.

《얼마전에 나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 가보았는데 마침 한 소조실에 지방에서 올라온 총각애가 들어와있었소. 알아보니 궁전소조에 다니는 친척애를 따라서 구경을 온 애였습니다.

그 애한테 궁전안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처녀애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여있었는데 총각애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한껏 어렸더란 말입니다. 여느때라면 사내라고 우쭐해할 애였지만 궁전에 들어서서는 처녀애를 따라다니며 두리번거리기만 하더란 말입니다. 그때 나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저 애의 눈에는 부러움이 비껴있어야 하는가고 말입니다.

문득 1년전에 이 애들이 한 말이 떠오르는게 아니겠소. 자기들이 도축전무대에 나서게 되자 학교아이들이랑 이웃군아이들이 그토록 부러워했다는 이야기 말이요.… 이제 여기에다 궁전을 세우면 그 애들이 다 여기 와서 악기도 배우고 소조생활도 마음껏 하게 합시다. 앞으로 우리는 여기뿐만아니라 도시와 멀리 떨어진 다른 산간지대에도 아이들을 위한 궁전을 세워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온 나라 아이들이 다 부럼없이 하나같이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무성한 나무잎들을 와스스 흔들며 시원한 바람이 솨― 불어왔다. 고요한 수면우에 무수한 주름이 끝없이 일어번진다.

성희선생님의 마음에서도, 아이들의 부푼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격정이 쉬임없이 용솟음치고있었다.

그 사랑이였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한품에 다 안으신 그 사랑속에서 몇명 안되는 산골아이들을 위해 통학렬차, 통학뻐스가 달리고 사랑의 다리가 전설처럼 솟아난것이 아닌가.

《그래, 궁전을 세워주면 중앙축전에서랑 1등을 할수 있느냐?》

지도자선생님께서 이렇게 웃으시며 물으시자 덕남이와 귀옥이는 상기된 얼굴로 목청을 합쳤다.

《지도자선생님! 우린 앞으로 계속 1등하겠습니다.》

《허허… 그럼 너희들의 연주솜씨를 한번 시험쳐볼가?》

덕남이와 귀옥이는 바이올린을 들고 지도자선생님앞에 가지런히 나섰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 악기를 어깨에 받쳤다.

잠시후 《사향가》의 은은한 선률이 호수의 물안개를 휘휘 저으며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지도자선생님께서 1등한 자기들을 불러주시고 두번씩이나 들어주신 잊을수 없는 그 노래였다.

 

―주체82(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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