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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6호에 실린 글
□ 실 화 □
이것은 옛말이 아니다
서기오
갑자기 힘찬 노래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천백이는 잠에서 깨여났다. 고성기에서 나오는 노래소리였다. 눈을 비비며 벽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노래가 끝나자 방송원이 열기띤 목소리로 서해갑문건설장을 비롯하여 온 나라 각지에서 들어온 《80년대속도》 창조소식을 전하고있었다. 부엌에서 무슨 맛있는것을 만드는지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겨왔다. 방울코를 벌름거리던 천백이는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누나가 팔팔 끓는 기름남비에서 노랗게 익은 꽈배기를 건져내고있었다. 《야! 꽈배기.》 천백이는 금방 건져낸 큼직한 꽈배기를 집어들고 한입 듬썩 베물다가 《앗, 따가!》하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원, 애두 덤비긴.》 삼단밥통에 기름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송편을 담던 어머니가 천백이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오늘 천백이네 소학교에서는 가을철운동회를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특식을 차린것이다. 떡, 지짐, 삶은 닭알, 가재미튀기, 꽈배기, 오이김치 그리고 사탕, 과자, 사이다… 정말 없는것이 없다. 두손이 없는 어머니가 이 많은것을 준비하느라고 밤을 꼬박 새웠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찌르르했다. 물론 누나가 도왔을것이다. 천백이보다 두살 우인 누나 복수는 이제 소학교 4학년이지만 유치원때부터 어머니일손을 많이 도와서 못하는것이 없다. 국도 맛있게 끓일줄 알고 지짐도 잘 지진다. 하지만 옆에서 어머니가 하나하나 대주지 않으면 떡을 치거나 김치를 담그는 일은 아직 혼자서 하지 못한다. 그러니 두손이 없는 어머니지만 잠시도 쉬실 시 간이 없다.동자질하는것은 그렇지만 천백이네 집에는 다섯마리의 돼지와 스무마리가 넘는 토끼 그리고 염소와 개, 닭들이 있다. 그 많은 짐승들이 목을 길게 빼들고 어머니를 기다린다. 염소와 토끼는 천백이고 돼지와 닭은 복수라고 분담이 돼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더 많이 돌본다. 여느때없이 푸짐한 아침식사가 끝나자 어머니가 오누이앞에 새 운동복과 신발을 꺼내놓았다. 천백이의 운동복은 빨간색이고 복수의 운동복은 소매와 깃에 하얀 줄이 간 하늘색이였다. 새 운동복에 발에 꼭 맞는 새 운동화를 신으니 막 날것만 같았다. 《어머닌 옷을 안 갈아입나요?》 《나야 뭘…》 복수의 말에 어머니는 주저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도 없는데 어머니까지 안 가면 어떻게 해요.》 《맞아,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랑 어머니랑 다 같이 가는데.》 명절에 생일이 겹친것만큼이나 기분이 붕 떴던 오누이는 금시 시무룩해졌다. 인민군대군관인 아버지는 노상 부대에 나가서 살다싶이 하니 집에 들어오는 일이 별반 없다. 아버지가 없으니 어머니하고 함께 가야겠는데 어머니가 주저하니 오누이의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일찌기 철이 든 복수와 천백이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잘 안다. 두손이 없는 어머니때문에 즐거운 운동회날 자기들의 밝은 얼굴에 그늘이 질가봐 그러시는것이다. 《어머니, 좋은 수가 있어요.》 천백이가 갑자기 손벽을 치며 옷장을 열더니 어머니의 봄가을덧옷을 꺼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그우에 이 옷을 덧입으라요.》 《그건 왜?》 《그다음 이 팔소매끝을 여기다 찔러넣으면 주머니에 손을 넣은것처럼 보일거예요.》 천백이가 맥없이 드리운 덧옷의 빈 팔소매를 주머니에 끼워넣으며 하는 말이였다. 천백이다운 기발한 착상이였다. 《원, 녀석두. 너희들 소원이 정 그렇다면 함께 가자꾸나.》 《야!》 오누이는 손벽을 치며 콩콩 뛰였다. 잠시후 어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오누이는 집을 나섰다. 갖가지 음식과 간식들을 가득 담아 배가 불룩해진 하얀 등산배낭을 진 천백이가 까치걸음을 하며 앞서는데 검둥이도 덩달아 좋아라고 꼬리를 흔들며 따라나섰다. 길가에 만발한 코스모스들은 그들을 반기여 설레고 새들도 머리우를 날아예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넓은 운동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명절처럼 흥성거리고있었다. 주석단에는 여러가지 상품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운동회는 《압록강》팀과 《두만강》팀으로 나누어 진행되였다. 먼저 4학년학생들의 집단적인 체조모범출연이 있은 후 경기는 백메터달리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수 이겨라.》 《압록강》팀에서 삼삼칠박수를 치며 응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만강》팀에서 대고와 소고, 제금, 꽹과리… 하여튼 칠수 있는것은 다 들고나와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두들기며 기세를 올렸다. 공안고 달리기, 눈 싸매고 미군놈때리기, 발목매고 달리기 등 유희오락경기에 이어 3학년학생들의 물건찾기경기가 시작되였다. 맨처음으로 달려간 《압록강》팀의 뚱뚱한 아이가 표를 뽑아가지고 주석단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다짜고짜로 큼직하게 포장한 상품들을 옮겨놓더니 책상을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두번째로 달려온 《두만강》팀의 꼬마가 롱구뽈을 안고 따르기 시작했다. 뚱뚱보아이가 무거운 책상을 메고 뚱기적거리는 바람에 그들의 간격은 점점 줄어들더니 종시 꼬마가 먼저 결승선에 들어섰다. 《두만강》팀에서 환성이 터졌다. 물건찾기경기에 이어 이번에는 2학년학생들의 사람찾기경기다. 《압록강》팀의 선수로 뽑힌 천백이가 껑충거리며 어머니한테로 달려왔다. 《어머니, 나 사이다.》 《얘, 달리기를 하기 전에 사이다를 마시면 배가 출렁거려서 잘 못 뛴다.》 《일없어요.》 《너 정말 자신있니?》 《걱정말라요. 2학년아이들중에선 달리기에서 내가 1등인데요 뭐.》 사이다를 병채로 들고 꿀꺽꿀꺽 마신 천백이는 손등으로 입술을 뻑 문지르며 자신있게 대답하고는 출발선으로 달려갔다. 심판원의 호각소리와 함께 여덟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자리를 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천백이는 두번째 아이를 대여섯발자국이나 떨구고 달려가 제일먼저 표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는 못박힌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뽑아든 표만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저 애가 왜 저럴가?) 조급해진 어머니가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천백아, 뭘하니, 빨리 뛰지 않구.》 그러나 어머니의 그 목소리는 운동장이 떠나갈듯 한 응원소리가 홀딱 삼켜버렸다. 그러는 사이 뒤따라 오던 아이들이 《교장선생님!》, 《관리위원장아저씨!》하며 먼저 달려나갔다. 운동장 한복판에는 천백이 혼자 남았다. 그런데도 그는 움직일념을 안하고 굳어진듯 그대로 서있었다. 너무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구르던 복수가 어머니한테로 달려왔다. 《어머니, 저 애가 왜 저럴가요?》 《혹시 표에 모를 글자라도…》 《아니예요. 천백인 1학년때 벌써 신문을 좔좔 읽지 않았나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영문을 몰라 천백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잠시후 천백이의 어깨가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울고있었다. 《얘 복수야, 네가 얼른 뛰여가보렴.》 복수가 동생을 향해 뛰여갔다. 《얘, 너 왜 이러구있니?》 복수가 동생의 어깨를 와락 잡아흔들었다. 그러자 천백이는 대답대신 누나의 앞으로 표를 내밀었다. 그가 뽑아든 표에는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씌여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달리시오.》 표를 받아든 복수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우리 어머닌 두손이 다 없는데 어떻게 잡고 뛴단 말이야.》 천백이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천백아!》 복수는 동생의 어깨를 꼭 그러안았다. 그의 어깨도 들먹이고있었다. 그처럼 들썩하던 운동장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아직 영문을 알리없는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운동장 한복판에 그대로 서있는 오누이를 지켜보고있었다. 잠시후 복수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모든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갈린 음성으로 떠뜸떠뜸 말했다. 《네가 나때문에 1등을 못했구나, 나때문에…》 복수가 눈물을 닦으며 부르짖듯 말했다. 《그게 왜 어머니때문이겠어요, 미군놈때문이지.》 《그래그래, 옳다. 승냥이같은 미군놈때문이다.》 체육경기가 끝난 후 교장선생님이 어머니를 찾았다. 《천백이 어머니, 오늘 사람들이 다 모인 기회에 그 이야기를 들려줍시다.》 《이제야 다 아는 이야긴데 뭘 또…》 《아닙니다. 새로 들어온 1학년학생들도 있고 설사 아는 사람들이라도 자꾸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계급적원쑤들을 한시도 잊지 않을게 아닙니까.》 교장선생님이 마이크앞으로 어머니를 떠밀었다. 넓은 운동장에 빼곡이 모여선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둘러보던 어머니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학생동무들 그리고 학부형여러분, 다들 보았겠지만 오늘 사람찾기경기에서 우리 천백이가 이 어머니때문에 1등을 못했습니다. 두손이 다 없는 이 어머니때문에 말입니다.》 어머니의 젖은 목소리는 여기서 잠간 끊어졌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는듯 잠시 생각에 잠겼던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에게도 두손이 있었습니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귀여운 자식들을 안아주고 숙제장에 수표도 해주고 아들의 손을 잡고 달릴수 있는 두 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악귀같은 미군놈들이 나의 두손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무겁게 드리운 어머니의 덧옷팔소매를 바라보며 학생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귀를 강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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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미군놈들은 덕암리에도 기여들었다. 마을을 강점한 미군놈들은 《치안대》놈들을 앞잡이로 내세워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였다. 그속에는 옥심이 어머니도 있었다. 리민청위원장을 하던 옥심이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자 선참으로 전선에 달려가고 옥심이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있었다. 놈들은 옥심이 어머니가 남편을 인민군대에 내보낸 악질빨갱이라고 맨 먼저 잡아갔다. 이렇게 잡아온 사람들이 창고에 차고넘쳤다. 모범농민이라고 잡아온 할아버지도 있고 성인학교에 나가서 우리 글을 배운것이 《죄》가 되여 끌려온 할아버지도 있었다. 놈들은 그들에게 쌀을 감춘 곳을 대라고 매일 악착한 고문을 들이댔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악에 받친 놈들은 어느날 잡아들인 사람들을 모조리 끌어냈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생매장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그때 겨우 네살이던 옥심이는 애절하게 부르며 엄마를 향하여 아장아장 걸어갔다. 아직 죽음이라는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는 그는 어푸러지듯 흙구뎅이속으로 굴러들어갔다. 그리고는 벌렁벌렁 기여가 어머니의 목을 꼭 그러안았다. 《옥심아!》 두팔을 묶이운 어머니는 귀여운 딸을 안아줄수 없어 볼을 마주 비비며 목메여 불렀다. 놈들은 히히닥거리며 그들의 머리우에 흙을 마구 퍼던졌다. 돌덩이에 맞은 어머니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옥심이가 자기의 색동저고리 팔소매로 어머니의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노!》 껌을 질근질근 씹으며 좋아라고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노랑대가리미군놈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빨갱이년이 제 새끼와 함께 죽는것은 너무도 행복합니다. 갈라놓으시오.》 《예예.》 곰보딱지 《치안대》놈이 구뎅이속에 들어가 옥심이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엄마야!》 옥심이가 엄마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목을 꼭 그러안았다. 《치안대》놈들은 수리개가 병아리 채가듯 우악스럽게 옥심이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물건짝처럼 밖으로 내던졌다. 《옥심아!》 자지러지게 우는 옥심이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피타는 목소리가 가슴을 허볐다.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애국자들이 마지막으로 웨치는 만세소리가 영원한 메아리되여 멀리멀리 울려갔다. 잠간사이 열두명의 애국자들이 묻힌 자리는 봉분 하나 없이 평탄한 평지가 되고말았다. 옥심이는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그 자리를 파기 시작했다. 손톱이 빠져 피가 흘렀다. 그러나 옥심이는 피범벅이 된 작은 손으로 자꾸만 흙을 팠다. 곰보딱지 《치안대》놈이 총을 벗어들더니 천천히 옥심이를 겨냥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놈이 그를 말리는것이였다. 《노, 총에 맞아 죽는것은 너무 행복합니다. 도끼를 가져오시오.》 《예예.》 곰보딱지가 굽신거리며 뛰여가더니 도끼를 가져왔다. 《빨갱이새끼는 오래오래 고통을 겪다가 말라죽게 해야 합니다.》 미군놈이 시퍼런 도끼를 들더니 옥심이의 야들야들한 두손을 뭉텅뭉텅 잘라버렸다. 《으악!》 옥심이는 까무라치고 뭉텅 잘리운 그의 두팔에서는 선지피가 뿜어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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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속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어른들도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갔다. 《동무들, 그러나 나는 살아났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생매장하고 나의 두팔을 빼앗아간 승냥이놈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죽을수가 없어 기어이 살아났습니다. 학생동무들, 이것은 결코 옛말이 아닙니다. 지금도 저 남녘땅에서는 악귀같은 미제승냥이놈들이 또다시 침략의 기회만 노리고있습니다. 나는 피맺힌 원쑤 미제승냥이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하라고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천백이와 복수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저절로 복수자로 자라는것은 아닙니다. 학생동무들은 피맺힌 계급적원쑤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였다고 잠시나마 계급적원쑤들을 잊는다면 놈들은 또다시 우리 고향땅에 달려들어 아버지, 어머니들을 생매장하고 동무들의 두손을 자를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원쑤놈들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공부도 잘하고 몸도 튼튼히 단련하여 인민군대에 나가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천백배로 복수합시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웨침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제침략자들을 천백배로 복수하자!》 《복수하자! 복수하자! 복수하자!》 운동회로 흥성거리던 운동장은 미제침략자들을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되여 분노로 끓어번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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