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5호에 실린 글

 

   □ 중편소설 □

 

1학년생

 

( 제 2 회 )

                       김   정

 

3. 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금동이는 끝내 제손으로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어떻게 부칠가? 어따 넣으면 편지가 제대로 아버지한테까지 찾아갈가?)

잠이 들 때까지 이 궁리 저 궁리 해보았지만 그럼직한 꾀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는 편지를 가지고 고급리발관 벽에 걸린 우편함앞으로 갔다.

금동이는 자물쇠구멍에 눈을 대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 우편함에 편지를 넣나 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쪼프리고 살펴도 편지 같은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안이 새까맸다.

그런데 그때 우편함문덮개가 절컥소리를 냈다.

금동이는 깜짝 놀라서 얼굴을 쳐들었다.

9호동고층살림집에 있는 낯이 좀 익은 3학년생녀자애가 두툼한 봉함편지를 통속에 집어넣고있었다.

《너 뭘 그렇게 들여다보니?》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턱이 뾰족한 그 애는 한바탕 욕이라도 퍼부을것처럼 가늘사 한 눈으로 금동이를 치떠보았다.

금동이는 지금도 겁나하는 기색이 없이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3학년생앞에 마주섰다.

《여기다 넣어두 편지가 가니?》

하고 그는 녀자애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도리여 이렇게 물었다.

《그럼, 가지 않구.》

3학년생은 그제야 금동이의 손에 쥐여있는 편지를 보고 해쭉 웃었다.

《내가 넣어달라니?》

《싫어.》

금동이는 등뒤로 편지를 감추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깔보는듯 한 그 애의 눈꼴에 비위가 상했던것이다.

나비처럼 팔랑대는 그 녀자애한테는 편지를 맡기고싶은 생각이 깨알만큼도 없었다.

녀자애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입을 다시며 빤히 금동이를 바라보다가 새침해서 국제려관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발을 옮길 때마다 몸을 량옆으로 요란스레 흔들어대는 8호동의 4학년생총각애가 터벌터벌 우편함앞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금동이를 알아본 그 애는 헤벌쭉 웃기부터 하였다.

《인줘, 내가 넣어줄게.》

총각애는 키가 자라지 않아서 금동이가 편지를 못 부치고 우편함앞에서 어물대는줄 아는 모양이였다.

《힝, 축구할 때 헛다리질만 하는거.》

금동이는 손을 등뒤에 감춘채 비실비실 가재걸음을 쳤다.

헛다리질을 잘하는 그 애한테 맡기면 편지가 우편함에 들어갔다가 도로 빠져달아날것 같았다.

《요거, 납작코같은거.》

총각애는 집게손가락으로 금동이의 숫가마를 꼭 눌러주고나서 다시 터벌떡터벌떡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뽀부라나무처럼 키가 껑충하고 얼굴색이 불그레한 사람이 우편함앞에 나타났다.

테가 실한 안경을 걸고 머리가 희슥희슥한 그 사람은 첫눈에도 점잖고 듬직해보였다.

(옳지, 저 할아버지한테 편지를 넣어달라고 부탁해야지.)

큰 마음을 먹고 할아버지앞에 다가서던 금동이는 주춤 멈춰서서 손가락으로 코등을 긁적거리였다.

우편함 앞벽에 씌여진 《5》라는 수자를 보았던것이다.

(흥, 다섯번째 우편함이로구나. 1번, 2번, 3번, 4번을 다 날라간 다음에야 날라갈테지. 1번이면 좋겠는데. 1번은 어데 있을가?)

1번이 모든 번호가운데서 제일 앞선 번호라는것을 1학년생들은 잘 안다. 예방주사 맞을 때를 내놓고는 누구나 다 이 1번을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야 주위에는 1번이라고 쓴 우편함이 보이지 않았다.

(재수는 알거야. 재수한테 물어봐야지. 재수도 모르면 내힘으로 정찰할테다!)

재수는 고층살림집 뒤울안에 있는 아동공원에서 순일이와 함께 뽈차기를 하고있었다.

《재수, 1번 어디 있니?》

금동이는 짝패들앞으로 뜀박질해가며 멀리서부터 소리쳤다.

《1번? 동학이 말이지? 그친 늦잠꾸러기야. 뽈차자구 깨우니까 하품을 열번 하구 이렇게 꽝 했어.》

재수는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며 쓰러지는 시늉을 하였다.

목청이 녀자애들처럼 쨋쨋한 순일이는 발끝으로 공을 굴리며 까르르 줄웃음을 쏟았다.

금동이도 어이가 없어서 《하하하.》하고 웃었다.

《아니, 축구 1번 말구 우편함 1번 말이야?》

그제사 재수는 금동이의 손에 들린 편지를 보고 이마를 딱 쳤다.

《응, 넌 편지부치러 가댔구나. 우편함 1번은 우리 어머니의 우편물상자야. 거게만 넣으면 1등으로 가.》

《응, 옳아. 우리 어머니두 요전날 재수 어머니한테 편지를 줬어. 우표가 넉장이나 붙은 편지야. 그런데 벌써 회답이 왔거던.》

순일이가 맞장구를 쳤다.

《힝, 그 상자에 어디 1번이라구 씌여있니? 재수 말은 꽝포야, 흥.》

재수는 자기 말이 꽝포인지 꽝포가 아닌지를 가늠하듯 잠시 눈을 깜짝깜짝하였다. 그러다가 발쭉 웃으며 뒤통수쪽으로 돌아간 모자채양을 앞으로 삑 돌려놓았다.

《진짜 1번은 말이야. 저ㅡ기 중앙우편국앞에 있어. 파란건데 우리 키보다 더 크구 금석이의 키보다두 더 커. 이건 진짜야.》

《응, 나두 봤어. 꺽다리우편함인데 입이 이만큼 해. 진짜야, 진짜!》

재수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응》, 《응》하는 순일이는 두손을 어깨높이만큼 벌려 우편함아구리의 크기를 시늉해보이였다.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금동이는 재수와 함께 중앙우편국을 향해 걸어갔다.

이날은 류달리 그의 눈에 수자들이 많이 띄는것 같았다.

쉴새없이 오가는 뻐스들과 무궤도전차들의 시창에는 빨갛고 동그란 테속에 1, 2, 3이라고 쓴 수자들이 씌여있었다.

화물자동차의 적재함 뒤꽁무니에도 숱한 수자들이 씌여있다. 해방산려관벽에 길게 드리워진 《조선로동당창건 30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자!》라는 구호판에도 수자가 섞여있다.

《9월 15일부터 전국체육선수권대회》라고 쓴 선전화에도 마찬가지다.

수자들이 사는 집은 정말 많다. 시계처럼 생긴 둥그런 집도 있고 담벽처럼 생긴 《고층살림집》도 있다.

돈, 신발, 출생증, 성적증, 석유공급카드…

수자는 어디에나 다 있다.

그리고 수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아동백화점의 학용품매대에 가서 《크레용 한통 줘요!》하면 판매원은 가늘고 긴 종이띠에 《40×1=40》이라고 써갈긴다. 그 수자우에 출납원의 도장만 받아오면 크레용 한갑씩 받을수 있다.

방송에서 《래일 낮 제일 높은 기온은 25도입니다.》라고 하면 어머니는 입었던 내의도 도로 벗어내친다. 수자는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성나게도 한다.

건늠길을 건너서자 재수는 금동이의 손에서 편지를 나꿔챘다.

주소를 보는척 하다가 급작스레 중앙우편국쪽으로 뛰여갔다.

《왜 그래, 왜 그래? 재수!…》

금동이는 재수를 따라가며 성난듯이 고함을 질렀다.

재수는 휙 돌아서서 빠른 말로 대답하였다.

《내가 넣을라구 그래.》

《뭐?… 안돼, 달라!》

《잘 부쳐줄게… 한번만 넣자.》

《안돼, 안돼. 달라! 달라!》

금동이는 뿌르르 달려가서 편지를 잡아챘다.

재수는 비뚤어진 모자채양을 앞으로 돌려놓으며 싱긋벙긋 웃었다.

《참참참, 한번만 넣어보자마. 넌 그래두 편지보낼데가 많지 않니!》

그건 사실 그랬다. 금동이는 편지를 보낼 곳이 많았다. 친척들이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재수네는 친척이 없다. 있기는 좀 있는데 가지 못하는 남녘땅에 있으니 없는것과 같다고 했다.

금동이는 어머니의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잠잠히 편지를 만지작거리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걸어가는 재수가 좀 쓸쓸해보였다.

《재수, 자 받아.》

말없이 걸어가는 재수앞에 그는 편지를 내밀었다.

《…》

재수는 편지를 보지도 않고 우편국안으로 씽 달려들어갔다. 기분이 언짢아진 모양이다.

(성났구나.)

금동이는 콩크리트층계앞에 기분없이 멈춰섰다.

그런데 잠시후에 조금도 성나지 않은것 같은 재수의 얼굴이 문사이로 불쑥 나타났다.

《금동아, 빨리 와!》

하고 그 애는 재게 손을 흔들었는데 큰 모자가 뒤통수에 삐딱이 붙어있었다.

금동이는 우편함에 얼른 편지를 집어넣고 재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두꺼운 유리를 울타리처럼 빙 둘러세운 대리석대우에 팔굽을 끌면서 휑뎅그렁한 홀안을 한바퀴 돌았다.

유리간막이 저쪽에서는 짜르륵짜르륵 전자계산기를 다루는 소리가 들려오고 발칵발칵 종이장을 번지는 소리며 고무판대기우에 서류를 놓고 도장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선생님이나 김향선생님의 말투와는 좀 달리 아주 빠르고 성급하게 엮어대는 전화취급원누나의 코맹맹이소리도 들려왔다.

《이게 소포라는거야.》

재수는 저울판우에 올랐다내렸다하는 둥실둥실한 꾸레미들을 손짓해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나 금동이는 그까짓 소포따위는 흥미 없었다.

그는 소포보다도 홀 왼켠구석에 있는 공중전화소에 더 마음이 끌리였다.

《시내》라고 쓴 첫번째 칸에서는 목이 앙바틈하고 키가 작달막한 사람의 몽토록한 손이 자동전화번호판을 연방 돌리고있었다.

그 번호판에는 1부터 9까지의 수자와 0이라는 수자가 5전짜리돈만큼 큰 구멍속에 비좁게 자리를 잡고있었다.

《하하, 저기두 산수(당시)가 있구나.》

금동이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큰소리로 떠들었다.

홀안의 사람들이 모두 금동이쪽을 돌아보았다.

《산수? 어디어디?》

저울대를 들여다보던 재수가 통화실앞에 달려왔다.

《저기저기… 저기 있지 않니?》

금동이는 발뒤축을 들고 자동전화기쪽을 손짓하였다.

《응, 저거… 뺑뺑 돌아가는거말이지?》

《1, 2, 3… 이라구 쓴거 말이야.》

《참참참, 그게 수자지 뭐 산수니?》

《산수야, 수자란건 산수야. 야, 저 수자들을 가지고 한번 놀아봤음 좋겠는데…》

금동이의 눈앞에는 지난 봄 어느 일요일 어머니와 함께 동흥동 이모네 집에 갔을 때 보던 새하얀 자동전화기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날 금동이의 이모사촌형이라고 하는 그 집 막내아들은 그 전화기로 정무원사무국에 다니는 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화가 끝났을 때 금동이는 전화기앞에 다가가서 슬그머니 수화기를 들고 번호판을 돌려보았다. 번호판에서는 짜르륵하는 귀맛좋은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때 이모사촌형이라는 애가 그의 손에서 수화기를 빼앗아냈다. 그 애는 금동이가 장난질을 할가봐 내내 전화기옆을 떠나지 않았다.

금동이는 그이상 더 전화기를 만질수가 없었다. 그날 그는 깍쟁이같은 그 이모사촌형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오늘은 기어이 전화를 걸어볼테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결심이 움씰움씰 고개를 쳐들었다.

전화번호판을 쉴새없이 돌리던 키작은 그 아저씨는 무슨 기쁜 일이 있는지 입가에 벙긋 웃음을 띄웠다.

그리고는 기분좋게 머리를 뒤로 제끼고 구멍이 송송 뚫린 송수화기를 입으로 훅 불며 우렁차게 말을 떼는것이였다.

《여보시오, 과수처입니까? 처장동지십니까? 저… 림재현입니다.》

(옳지, 처음엔  5, 두번째는 4, 다음은 3, 그다음은 4… 이렇게 돌리면 《동지》가 나오는 모양이구나. 나두 《동지》하구 말해봐야지.)

금동이는 통화실문유리에 얼굴을 딱 붙이고 키작은 아저씨의 손에서 송수화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였다.

키작은 아저씨가 문밖으로 나오자 그는 날쌔게 통화실안으로 들어갔다.

10전짜리 돈(당시)을 구멍속에 넣고 아저씨가 하던 본을 따서 송수화기부터 절컥 잡아벗기였다. 붕ㅡ 하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이건 무슨 소릴가? 여긴 뭐가 들어갔을가? 시끄러운데…)

아저씨가 하던대로 수화기를 훅 불어보았으나 시끄러운 붕소리는 그냥 울리였다.

금동이는 회전판의 구멍들에 손가락을 끼우고 5434를 돌리였다. 급하게 터지는 재채기와 함께 《과수처입니다.》하는 걸걸하고 틀진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금동이는 몸집이 다부지고 눈망울이 부리부리함직한 《동지》라고 불리운 그 사람이 바로 코앞에 서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여보시오, 〈동지〉입니까?》

하고 그는 용기를 내여 맞받아 소리쳤다.

저쪽은 금동이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말씀하십시오.》하고 점잖게 이쪽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금동이는 말할것이 하나도 없었다.

생판 모르는 《동지》에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말한다면 자기는 쪼꼬만 아이인데 지금 도적전화를 걸고있으며 자기뒤에서 재수란 아이가 《빨리빨리.》하고 옆구리를 찌른다는것밖에 없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저쪽에서는 벙어리가 되여버린 이쪽의 말을 자꾸 재촉하였다. 금동이는 겁이 더럭 났다.

《동지》라는 사람이 수화기안에서 뛰여나와 《요 장난꾸러기같은 녀석!》하고 덜미를 잡아챌것 같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얼결에 이런 말을 내뱉고나서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바로 그 순간 유리간막이 저쪽에서 《얘얘, 거기서 뭘해?》하는 전화취급원누나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겁한 재수가 금동이의 팔을 전화소밖으로 급히 나꾸어챘다. 금동이는 마주 걸어들어오는 어떤 아주머니의 소포꾸레미를 홀바닥에 떠박지르며 우편국밖으로 뺑소니쳤다.

뒤에서는 누구인가의 혀를 차는 소리와 두덜두덜하는 욕지거리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온 거리가 다 듣게 깔깔 웃어대며 껑충껑충 네거리쪽으로 달음박질쳐갔다.

《누구하구 전화했니?》

흘깃 뒤를 돌아본 재수가 걸음을 늦추며 금동이의 옆구리를 툭 쳤다.

《동지하구 했어.》

《동지? 무슨 동지야?》

《무슨 사과라는 동지야.》

금동이는 과수처라는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 생뚱같은 사과이야기를 꺼냈다.

《사과동지? 흥, 별난 동지두 다 있구나.》

그들은 입을 함박만큼 벌리고 또다시 《하하하.》하고 웃어댔다.

(수자는 정말 별별 일을 다 하는구나. 수자를 배워주는 셈세기와 산수는 정말 좋구나!)

금동이는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늠길을 넘어섰다.

 

 

4. 손가락과 속셈

 

《모두들 손을 뒤에 가져가십시오.》

김향선생님은 오늘도 이런 말로 산수수업을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일제히 두손을 등뒤에 감추었다.

《눈을 감으세요.》

깜빡거리던 마흔일곱쌍의 눈이 눈까풀속에 숨어버렸다.

이것은 속셈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금동이네 학급의 산수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속셈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계수기를 가지고 답을 알아내는 덜기와 더하기보다 머리로 답을 맞추는 속셈을 1학년생들은 몇갑절 더 즐기였다.

그래서 산수시간이 시작될 때면 교실이 늘 빈집처럼 조용하였다.

그렇게 재미나보이던 속셈이 금동이는 갑자기 실뚱해졌다. 그것은 《둘을 네번 더하면 아홉》이라고 대답하며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던 그 망신스런 산수시간이 있은 다음부터였다.

그날 그는 맨나중에 손을 들고 맨 첫번째로 이름이 짚이였는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다나니 그만 셈을 헛갈렸던것이다. 먹새퉁구리인 순일이가 금동이의 틀린 답을 고쳐대여 소낙비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다음부터는 별나게도 금동이가 잘 짚이지 않았다.

금동이는 자기가 짚일 차례를 기다리느라고 맥이 쑥 빠지였다. 선생님이 속셈문제를 낼 때면 그는 곧장 허튼 생각을 하군 하였다.

눈을 감으면 수자들이 떠오르는것이 아니라 낮에 거리에서 본 오토바이며 교통안전원(당시)의 손에서 멋지게 펄럭이는 신호기며 소년단가창대렬의 앞장에서 쿵작거리던 몸통 큰 나팔주둥이들이 언뜻거리였다.(당시)

지금도 금동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있다. 어제 거리에서 본 수자들이 그의 머리속에서 뱅글뱅글 돌아갔다. 중앙우편국의 공중전화소에서 본 5434라는 수자는 좀처럼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수자의 힘을 빌어 그는 난생처음 전화를 걸어보았고 어떤 낯모를 《동지》하고도 이야기를 해보았다. 한자리수도 아닌 네자리수를 가지고 그처럼 통쾌하게 놀아본 아이가 금동이네 학교에는 아마 없을것이다.

아무리 많은 수자도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수자를 가지고 하는 일은 뭐나 다 자신있어. 그까짓 속셈같은건 아무것두 아니야.)

금동이는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뜨고 칠판쪽을 살펴보았다. 수자를 기다리기에 갑갑증이 났던것이다. 마침내 김향선생님이 속셈문제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조선로동당창건 서른돐을 앞두고 수도의 건설자아저씨들은 많은 고층살림집들을 지었습니다. 지난 한주일동안에만 해도 아저씨들은 중성동건설장에서 두층, 경림동건설장에서 세층, 창전동건설장에서 두층, 경상동건설장에서 네층을 지었습니다. 한주일동안에 모두 몇층의 집을 지었겠습니까?》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져서 마지막 말마디는 귀속말처럼 약하게 들리였다.

아이들은 들릴락말락한 그 말마디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싹 귀를 도사리였다.

《둘, 셋, 둘, 넷…》하고 벌써 혀끝으로 중얼거리는 아이도 있다. 마치 혀바닥에 계수기가 달려있기라도 한것처럼…

금동이의 바로 뒤에서는 무슨 가벼운 물건들이 달그락달그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동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굵은 그물실에 꿰여가지고 다니는 단추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라는것을 잘 안다.

그 단추들은 수자를 대신한다.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 순일이는 이 단추의 힘을 빌어 어물쩍 속셈을 하군 한다.

처음에는 1전짜리 돈으로 셈을 하였는데 그것들이 부딪치는 쟁그당소리가 너무 커서 그는 돈을 단추로 바꾸었던것이다.

금동이의 앞에서는 몸집이 류달리 뚱뚱한 동학이가 삐그덕삐그덕 소란스러운 걸상소리를 낸다. 궁리가 잘 트이지 않을 때면 그는 늘 그런다.

옆에 앉은 호남이는 숨소리조차 없다. 눈도 감은대로고 손도 뒤로 가져간 그대로다. 허리는 걸상등받이에 반드시 붙어있고 두 무릎은 《ㄱ》자처럼 보기좋게 놓여있다.

어느새 셈을 했는지 바른편 손이 우로 쑥 올라간다.

금동이는 속이 달아났다. 선생님이 불러준 수자들이 잘 생각나지 않았던것이다.

《둘, 셋, 둘, 넷… 둘!》

그는 재수가 웅얼거리는대로 손가락들을 꼽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손의 손가락들을 모두 합쳐도 셈이 잘 안되였다. 손가락이 모자랐다.

김향선생님은 한번도 수자 10을 넘는 속셈을 내준적이 없다.

(이상한데? 재수가 수자들을 잘못 들었을가?)

금동이는 다시 귀를 강구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재수의 중얼거림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그애는 셈을 끝낸것이 분명하였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교실 여기저기에서 손들이 자꾸 올라가고있었다.

단추박사인 순일이도 손을 들었다.

(이크, 빨리도 셈하네. 이러다간 꼴찌가 되겠는데.)

금동이는 꼴찌가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셈도 채 끝내지 않은채 얼렁수로 손을 들기는 싫었다.

《둘, 셋, 둘, 넷… 둘》

또다시 손가락들을 꼽기 시작했다. 한손이 끝나고 다른손의 새끼손가락까지 죄다 꼽았는데도 셈은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한다?)

잠시 궁리를 짜던 금동이는 효남이의 왼손을 슬그머니 자기앞으로 잡아당기였다.

《왜 그래?》

효남이가 혀끝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좀 빌려달라.》

《뭘?》

《손가락!》

효남이는 금동이의 손에 잡힌 왼쪽팔을 홱 당겨뽑았다.

《쳇, 그 잘난 손가락 가지구…》

《선생님이 손으로 하면 안된다구 하지 않았니!》

《피, 깍쟁이…》

금동이는 입을 삐쭉 내밀며 창문쪽으로 앵 돌아앉았다.

그는 성이 나다못해 얼굴까지 빨개졌다.

김향선생님의 눈길이 창문쪽으로 쏠리였다.

금동이는 얼른 눈을 감고 손을 뒤에 가져갔다.

그는 눈을 감고서도 자기 책상곁으로 가까와오는 선생님의 크고 시원한 눈과 갸름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본다. 아래자락이 약간 부풀어오른 수수한 곤색치마와 눈처럼 흰 저고리와 천으로 만든 하얀 편리화를 본다. 그리고 팔목에 얹힌 큼직한 남자용손목시계를 본다. 3년동안 줄창 녀자학급만 맡아오던 김향선생님은 처음으로 남자학급을 맡게 되자 이제껏 차고다니던 당콩알만 하던 녀자용시계를 《압록강》시계와 바꿨다고 한다.

책상머리에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가까와오더니 선생님의 부드러운 손이 책망이나 하듯 금동이의 볼을 꼭 눌렀다.

《조선로동당창건 서른돐을 앞두고…》

선생님은 아까 내여준 속셈문제를 다시 불러주며 교탁쪽으로 되돌아갔다.

기분을 잡쳐버린탓인지 금동이는 속셈을 하고싶은 생각이 싹 없어지고말았다. 그저 자기를 《골탕》먹인 효남이한테 앙갚음할 생각밖에 없었다.

《깍쟁이, 깍쟁이. 손가락깍쟁이, 삘리리삘리리 손가락깍쟁이…》

하고 그는 효남이의 귀에 대고 노래부르듯 속삭속삭했다. 그러자 효남이는 온 교실이 깜짝 놀라게 《난 깍쟁이가 아니야!》하고 소리쳤다.

《박효남학생, 김금동학생, 너무 조용합니다. 좀 더 떠드십시오.》

화를 내거나 꾸중을 해야 할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를 뒤집어한다.

《박효남학생, 왜 다투었습니까?》

효남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동이가 나를 깍쟁이라고 했습니다.》

《김금동학생, 효남이가 왜 깍쟁인가요?》

이번에는 금동이가 몸을 일으켰다.

《효남이가 손가락을 안 빌려줬습니다.》

《손가락은 빌려서 뭘하려구요?》

금동이는 잠잠했다.

《효남학생, 대답해보세요.》

《…》

효남이도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은 살며시 교탁앞을 떠나 금동이네쪽으로 다가왔다. 금동이의 귀에 대고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소곤소곤 물었다.

《속셈을 하자고 그랬지요? 손가락이 모자랐나요? 그랬으면 앉아요.》

금동이는 덜컥 자리에 앉았다. 마루를 울리는 걸상소리가 그의 귀에는 마치 우뢰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리였다.

《금동학생, 머리가 더 힘이 있나요, 손가락이 더 힘이 있나요?》

《머리가…》

《왜 머리가 힘이 더 세다고 했나요?》

《머리는 집도 세우고 기계도 만들고 그리고 …셈도 합니다. 그래서…》

금동이는 며칠전에 동학이가 손가락으로 셈을 하다가 들켰을 때 선생님이 해주던 말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옳아요.…》

김향선생님은 금동이의 둥글넙적한 머리를 두손으로 쓰다듬으며 교실의 모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머리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합니다. 손가락은 그저 머리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해낼뿐이예요.

그러기때문에 사람이 머리를 쓰지 않으면 제 힘을 믿지 않게 되고 제힘을 믿지 않으면 머저리가 된답니다. 금동학생, 알겠습니까?》

《예.》

《됐어요. 앉으십시오. 자, 그럼 속셈을 계속 합시다.》

김향선생님을 창문을 등지고 아이들쪽으로 돌아서며 눈을 감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이제부턴 날 손가락도적이라고 하겠구나.)

걸상에 앉자 금동이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것은 이런 생각이였다. 그것은 별명을 이름대신에 부르기 좋아하는 심술망나니 동학이의 넙적한 등판이 그의 눈에 처음으로 띠웠기때문이다.

동학이는 엉터리없는 별명들을 곧잘 지어냈다. 앞뒤골이 불룩하게 두드러져나온 그 애의 머리는 온통 별명으로 꽉 들어찬듯싶었다.

그러나 별명보다 더 두려운것은 재수의 헤픈 입이였다.

그 애가 집에 놀러 와서 혀바닥을 잘못 놀리는 날이면 금동이는 어머니한테 톡톡히 경을 치르게 된다.

모든것이 다 효남이탓이다. 효남이만 아니였다면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생각할수록 효남이가 괘씸해났다.

(깍쟁이같은거. 이제는 너하구 말두 안할테다!…)

자기의 산수교과서우에 삐뚜름히 덧놓인 효남이의 필갑을 책상 오른켠으로 왈칵 밀어보내며 금동이는 결심했다.

(네가 10점 맞아두 난 박수를 안 쳐줄테다. 축구할 때두 너한테 공을 련락안할테다. 아버지가 묘향산에 갔다가 가지구 온 장끼의 털두 너에게 주자구 마음먹었댔는데… 안 줄테다. 너 그 털이 얼마나 멋있는지 알기나 해?)

자르르… 터지는 박수소리에 생각은 끊어졌다.

얼핏 머리를 들어보니 아이들의 눈길은 교실뒤구석으로 쏠리였다.

학급에서 키가 제일 큰 문호가 입을 헤작하니 벌리고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요전날 속셈시간에 빵떡(0점)을 먹더니 오늘은 아마 10점을 맞은 모양이다.

( 저 앤 참 좋겠는데!)

금동이는 슬그머니 샘이 났다.

시간이 흘렀다. 10분, 20분, 30분…

그는 못 견디게 밀려오는 졸음에 눌려 머리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유치원적에 낮잠을 자던 시간이여서 그런지 요맘때가 되면 눈부터 깔깔해지고 온몸이 노곤해진다.

《강철이 보십시오. 내 귀를 꼬집어놓습니다!》

기관차처럼 빽ㅡ하고 웨치는 성급한 소리가 졸음을 날려보냈다.

일송이가 앉은 줄 맨 앞자리에서 창일이가 꼬집히운 귀를 붙잡고 뒤에 앉은 강철이를 쏘아보고있었다.

《선생님, 순일이가 사과를 먹습니다.》

이번에는 방울을 흔드는것과 같은 재수의 목소리가 금동이의 귀등을 두드렸다. 순일이가 또 무슨 먹새질을 한 모양이였다.

아이들이 사방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순일이는 한입 터지게 떼여문 사과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 두손으로 볼을 가리고 효남이의 등뒤에 납작 엎드렸다.

수업시간중에 먹지 않겠노라고 선생님앞에서 벌써 세번째나 찰떡같은 맹세를 다진 순일이다. 맹세를 말아먹는데서도 순일이처럼 빨랑빨랑한 아이는 없을것이다.

교실은 떠들어대는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꽉 찼다.

김향선생님은 재수의 말을 못들은체 하고 엄한 눈매로 강철이를 지켜보다가 두손을 활짝 쳐들고 웃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 반 동무들 착한 동무들

말하지 마세요 똑바로 동무들

누가누가 곱게 앉나 내기하자요

 

교실은 다시 조용해지고 수업은 계속되였다.

그러나 금동이는 끝내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치근치근한 졸음은 그를 꿈나라로 데려다주었다.

꿈나라 한복판에는 뽀얀 물보라와 무지개를 일으키는 분수가 있었다. 그 분수앞에서 일순선생님이 어서 오라고 금동이를 손짓하였다. 선생님은 금동을 데리고 분수옆에 있는 큰 꽃밭으로 갔다. 그 꽃밭의 꽃나무들에는 신기하게도 향기를 풍기는 오각별들이 피고있었다.

일순선생님은 꽃밭에 들어가 제일 큰 오각별을 골랐다.

《셈세기를 잘하고 낮잠을 잘 잔 김금동어린이에게 오각별을 주겠습니다. 모두 박수를 쳐줍시다!》

곷밭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귀청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금동이는 박수소리에 놀라서 잠을 깨였다.

교실밖에서는 박수소리가 아니라 수업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야무지게 울리고있었다.

그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일순선생님이 달아주던 향기나는 오각별꽃은 어데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책상우에는 난데없는 종이비행기 하나가 날아와 떨어졌다. 비행기의 왼쪽등판에는 다섯개의 손가락이 그려져있었다. 오른쪽등판에는 《이 손가락을 공짜로 가져라.》하는 뭉툭하고 둥글둥글한 동학이의 글이 씌여있었다.

금동이는 비행기를 찢어서 동학이네 책상에 집어던졌다. 공짜가 아니라 절을 하며 준대도 이제는 손가락을 빌리지 않겠노라고 그는 단단히 속다짐하였다.

 

ㅡ주체72(1983)년ㅡ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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