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4호에 실린 글

 

   

  ◇중편소설◇

 

1학년생

 

(제1회)

김 정

 

1. 학교길

              

날마다 이맘때가 되면 1학년생들은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바람 한점 일지 않는 따스한 한낮이였다.

방금 축구시합을 끝낸 금동이네 반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고있었다.

뽈차기와 무더위에 몸들이 노곤해졌지만 그래도 모두 노래만은 쨍쨍하게 불렀다.

학교에서부터 15분이면 가닿을수 있는 대동교앞에 금동이네 집이 있었다.

전에는 이 길이 참 멀어보였다.

코물을 졸졸 흘리던 탁아소시절에 금동이는 어머니와 함께 자주 이 길을 다녔다.

기운차게 팔을 저으며 어머니를 따라 걷다가도 길다란 경림동 고층살림집앞을 지날 때면 금동이는 걷는것이 싫증나서 신발뒤축을 지르밟고 일부러 뜨적뜨적 발걸음을 옮겨놓군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업-어달라, 업-어달라!》하고 큰소리로 생떼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원, 다섯살이나 먹은 애가...》하고 혀를 차던가 《에그, 언제 철이 들런지...》하면서 들춰업군 하였다.

그것은 벌써 2년전일이다.

그때 인민학교(당시) 4학년생이던 형 금석이는 어느덧 중학교 2학년생이 되였고 금동이는 인민학교 1학년생이 되여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 다녀가신 학교에 다닌다. 그는 멜빵이 달린 바지대신 금석이가 입는것과 꼭같은 바지를 입고 고리우에 땅크가 새겨진 매끈매끈한 비닐혁띠를 띠였다. 앞코숭이에 바둑판무늬가 있는 비닐신대신에 제멋대로 끈을 늦췄다조였다 할수 있는 운동화를 신고다닌다.

그처럼 멀어보이던 학교길이 지금은 퍽 짧아진듯 하였다.

그래서 금동이는 이 짧은 학교길을 우정 이리저리 에둘러가군 하였다. 홀라닥 지나쳐버리기는 아쉬웠으니까.

어떤 날에는 자기네 집을 썩 지나 대극장쪽으로 가기도 하였다. 평양종합인쇄공장의 커다란 유리창문앞을 지나 평양역에도 가보았다.

날이 갈수록 그는 더 많은것을 알고싶어했다. 누가 떠밀지도 않는데 전차들은 어떻게 앞으로 움직이는지, 날씨가 무더운 날 아스팔트길은 어째서 물렁물렁해지는지, 대극장을 지은 아저씨들의 손은 얼마만큼 큰지...

알고싶은것은 정말 《하늘만큼》 많았다.

금동이는 오늘 대극장쪽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짝패인 재수하고는 벌써 도화시간에 약속을 해놓았었다. 언젠가 텔레비죤화면에서 본 그 불쌍한 순희(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의 동생)란 눈먼 아이를 보고싶어서였다. 극장왼켠의 아동공원에 있는 꼬마동물원도 보고싶었다.

금동이는 그 동물원생각을 하면서 터벌터벌 대렬을 따라갔다.

푸른 빛이 도는 눈은 줄곧 한점을 바라보았고 두툼한 아래입술은 꼭 감쳐물었다.

네모진 얼굴은 한쪽으로 기웃하였다.

벌써 두번째나 그는 앞에 아이의 신발뒤축을 밟아놓았다.

앞에 아이는 물앉은 뒤축을 올리느라고 찡찡거렸다.

대렬이 미술박물관곁에 이르렀다.

《헤쳣!》

학급반장 영림의 옹골찬 구령소리가 마침내 아이들의 머리우로 날아갔다. 아이들은 와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헤쳐졌다.

그저 걷는것이 성차지 않아서 헐레벌떡 달음박질쳐가는 아이들도 있고 머리우로 모자를 올려던졌다가 면바로 받아쥐고는 신이 나서 깔깔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금동아, 빨리빨리!》

금동이의 곁에 서있던 재수가 불쑥 차던진 공처럼 튕겨 달아났다.

그 애는 곧추 뛰는것이 아니라 모재비걸음으로 뛰여갔다.

두뜀에 한번씩 량손을 어깨우로 올려 손벽을 짝짝 마주치면서 가늘고 긴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였다.

작고 갤쭉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유별스레 테가 큰 모자채양이 왼쪽귀바퀴우로 뺑 돌아앉는다.

금동이는 재수의 뒤를 따르다말고 효남이의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효남아, 저-기 대극장앞에 가서 놀지 않을래?》

효남이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싫어. 숙제하고 놀래.》

《국어 열번쓰라는거 말이지? 건 밤에 해두 돼. 너 잰내비가 그네타는거 못 봤지?》

《그까짓 잰내비, 난 잰내비가 싫어. 못생기구 사람의 흉내만 내는거.》

《그래두 잰내빈 사람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또 또 또 또... 할아버지라구 했어.》

금동이는 수백만대를 거슬러올라가는 인간의 조상을 어떻게 설명해줄지 몰라서 《또》 소리만 연거퍼 뽑아냈다.

《뭐 또 또 또 또? 피, 그런 털보가 다 사람의 할아버지야?》

효남이는 그런 할아버지 이야기따위는 그리 놀랄것이 못된다는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밀랍처럼 해말쑥한 얼굴이 곱지 않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무슨 잔트집을 걸고야 받아들이는 효남이다.

(이상한데, 선생님이 대주지도 않은걸 금동이는 어떻게 알가?)

효남이는 샘이 나서 공연히 입술을 오무라뜨렸다.

유치원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기또래들가운데서 아는것이 제일 많았다.

어항속에 과자부스레기를 넣으면 금붕어가 탈을 만난다는것도 전에는 효남이 혼자만 알고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금동이가 세상에는 날치라고 부르는 날아다니는 물고기도 있다는 이야기를 펼쳐놓아서 얼마전부터는 효남이가 알고있는것들이 다 시시껄렁한것으로 되고말았다.

효남이는 금동이한테 뒤지지 않기 위해 책도 더 많이 읽고 공부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너구리의 운명》이라는 재미나는 책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옻칠을 한 나무곽속에는 달달한 꿀사탕이 그득하다.

《난 집에 갈래.》

효남이는 헤벌어진 가방끈을 어깨우에 당겨올리고나서 8호동고층살림집쪽으로 걸어갔다.

고양이털무늬가 찍힌 보근보근한 아닐론세타가 오가는 사람들의 물결사이로 얼찐얼찐 바라보인다. 9월인데도 그 애는 세타를 입고 다녔다. 걸핏하면 속탈을 만나는 그에게 어머니는 여름에도 두툼한 옷을 입히였다.

《싫음 그만둬.》

금동이는 힝-하고 코바람을 불며 앞으로 발걸음을 뗐다.

기분을 잡칠 때면 늘 하는 버릇대로 그는 머리카락을 한줌 쥐여 눈섭우로 끌어내리였다.

서운한 일이였다. 참말이지 그 재미나는 동물들의 《살림집》을 효남이 없이 본다는것은 얼마나 섭섭한 일인가.

그런줄도 모르고 효남이는 집으로 간다. 바깥보다 집안을 더 좋아하는 효남이다. 그는 땅크놀음보다도 텔레비죤을 더 즐기였고 거리구경보다도 그림책을 더 좋아했다. 남들이 얼음지치기를 할 때면 외투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해바라기를 했다.

그런데도 금동이는 효남이가 좋았다. 꾀있고 정직하고 남을 잘 도와주는 효남이는 금동이의 제일 친한 동무였다.

재수도 그렇고 순일이도 그렇다.

그들은 짝바지를 입고다니던 그 시절부터 같은 고층살림집지붕밑에서 콩사탕도 나누어먹었고 눈사람도 같이 만들었으며 같은 교양원의 풍금에 맞추어 《원수님의 사진은...》 하는 노래도 배웠다.

그렇지만 네 아이가 어느때나 다 의좋게 지내는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손톱눈만큼 작은 일을 가지고 말다툼을 할 때도 있고 별치 않은 일때문에 골을 내면서 하루종일 말을 건네지 않을 때도 있다.

재수는 버드나무그늘밑에서 하모니카를 꺼내고있었다.

뚝-해서 걸어오는 자기의 짝패를 보자 그는 발장단을 치며 《환영곡》을 냅다 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길기슭으로 뛰여갔다.

트레머리를 해올린 녀자가 우편용세바퀴자전거를 타고오다가 그의 곁에서 멈춰섰다.

구역체신소에 다니는 재수의 어머니였다.

아직 1학년생이 되기 전에 재수는 이 자전거짐함속에 앉아서 여러번 유치원을 오갔다.

그러면 온 거리의 아이들이 입을 하 벌리고 부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군 하였다.

재수는 어머니가 내여주는 발디디개를 디디고 고양이처럼 냉큼 짐함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유치원시절처럼 어머니의 허리를 붙잡지는 않았다.

《잘있어!》

하고 그는 미끄러져가는 자전거우에서 교예배우들식으로 멋지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금동이는 일부러 딴데를 보는척 하였다. 약속을 어기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재수가 괘씸해났던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꽝포쟁이들을 그는 제일 싫어한다.

오늘은 왜 그런지 모두 집에 갈 생각만 한다. 밥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참지 못해하는 순일이는 벌써 집에 가버렸다.

(갈테면 가라지. 가서 엄마젖이나 실컷 먹으라지.)

금동이는 거리모서리를 돌아섰다. 사람들과 차들로 왁작벅작하는 번창한 네거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대동교약국》, 《경림수산물》, 《대동교려관》, 《로동신문》...

금동이는 눈에 걸리는 간판들을 닥치는대로 읽는다. 이전처럼 창문으로 발돋움질을 하며 엿보지 않아도 그는 이 집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집인지 쉽사리 알아맞힌다.

유치원에서 한해 글을 배우고 올라온것이 참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금동이는 중성동쪽으로 건너가는 건늠길에 들어섰다.

해방산려관모퉁이 극장안내판앞에 꼬마들이 올망졸망 서있는것을 보았던것이다.

꼬마들은 자기들의 키보다 훨씬 높이 걸린 안내판을 쳐다보며 무어라고 벅작 떠들어대고있었다.

금동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꼬마들에게 한시바삐 공연소개를 설명해주고싶었다. 1학년생의 솜씨를 뽐내고싶었다.

 

2. 다시 쓴 편지

 

제 머리보다 더 큰 고무공을 그물망태속에 넣어 든 고수머리남자애가 동무들에게 안내판을 설명해주고있었다.

자기네 또래중에서는 아마 박사노릇쯤 하는 모양이였다.

듣는 아이는 셋이였다.

《저 할아버지는 왜 저런 모자를 썼니?》

머리꼬랑지가 붕어지느러미같은 녀자애가 최구장(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하라》의 주인공)을 손짓하며 곱슬머리에게 물었다.

《쓰고싶으니까 썼지 뭐.》

고수머리아이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할아버진 덥지두 않은 모양이지. 저런 털모자를 쓰구...

《붕어지느러미》는 아무래도 해빛이 쨍쨍 내려비치는 한낮의 이 더위속에 최구장이 그런 털모자를 쓰고 서있는것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였다.

...

고수머리는 자신이 없는지 코방울만 잡아뜯었다. 하긴 그도 너무 더워서 반소매 단추들을 모조리 열어제끼고있었으니까.

금동이는 고만한것도 대답 못하는 고수머리아이가 한심해보였다. 그래서 조무래기들의 곁에 다가서자 큰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진 겨울이니까 털모자를 쓴거야.》

세 아이는 일제히 금동이를 쳐다보았다.

《해해, 눈두 안 왔는데 겨울이라구?》

《붕어지느러미》는 가로수들이 설렁거리는 주의를 둘레둘레 살피며 우습다는듯이 손벽을 마주쳤다.

《겨울이야. 이것 봐, 소나무에랑 언덕에랑 눈이 내린걸. 평양은 가을이지만 할아버지가 서있는 홍산골은...

금동이는 말을 맺지 못했다.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그의 눈을 감싸쥐였다. 자그마한 손인데 껄그렁껄그렁했다.

《재수!》

금동이는 보지 않고서도 자신있게 소리쳤다. 벽돌이며 못이며 뻰찌며 쇠붙이며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재수의 손은 건설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들 손처럼 껄껄했던것이다.

손임자는 재수가 옳았다. 그 애는 깔깔거리며 뒤를 흘깃 돌아보는것이였다.

그때에야 금동이는 엄청나게 큰 야외화분통옆에 키가 작달막하고 오동통한 녀자가 서있는것을 보았다. 유치원시절의 담당교양원 백일순선생님이였다.

금동이네와 헤여지던 졸업식날처럼 선생님은 주름이 잘게 간 곤색치마에 빨간 반소매뜨개옷을 받쳐입었다.

금동이는 우물쭈물하면서 선생님앞으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갈라지고보니 별나게 서먹서먹했다.

《금동학생, 안녕하세요?》

일순선생님은 잰걸음으로 다가와서 금동이의 량볼을 꼭 눌러주었다.

《어린이》대신 《학생》이라고 불러주는것이 참 좋았지만 조무래기들이 보는데서 두볼을 눌러주니 좀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귀염둥이》가 아니라 학생이 아닌가.

그렇지만 금동이는 자기를 몹시 귀여워하던 유치원시절의 선생님을 만난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금동이가 유치원중창단에 뽑혀갔다가 목소리가 나쁘다고 퇴방맞았을 때에도 일순선생님을 그를 축구팀에 넣어 국제아동절기념 체육경기에 참가하게 해주었다.

《그래 인민학교 공부가 재미나요?》

일순선생님은 금동이의 반소매 앞자락사이로 삐죽이 내밀린 혁띠끝을 고리에 꿰여주고나서 빠른 말씨로 물었다.

《예.》

재수의 대답이였다.

《그런데 <아이>를 또 배워줍니다.》

금동이가 볼이 좀 부은 소리로 덧붙였다.

입학한지 열흘이 넘었는데도 담임인 김향선생님은 유치원에서 배운것을 곱씹어 배워주었던것이다. 금동이는 그것이 맞갖지 않았다.

《그건 한번 배운걸 더 잘 알라구 그러는거예요. 그저 김향선생님이 하라는대로만 하면 훌륭한 1학년생이 될수 있어요. 금동이네 반 선생님은 교원대학 최우등졸업생이구 또 구역적으로도 이름있는 모범교원이랍니다.》

백일순선생님은 아이들의 귀가 솔깃해지게 김향선생님칭찬을 한참이나 하였다.

금동이는 대학최우등졸업생이라는 말에 그만 입이 헤벌어졌다. 재수도 침을 흘리며 싱글싱글 웃었다.

《금동이는 아직 아버지가 안 돌아오셨지요?》

한참만에야 백일순선생님이 물었다.

《예.》

금동이는 아버지이야기가 나오자 시무룩해졌다.

식물학연구사인 아버지는 벌써 두달째 기름나무에 대한 연구사업을 하느라고 반달령에 가있다.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스무날전에 금동이가 편지를 보냈는데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회답조차 없다.

사흘전에 머나먼 반달령이라는데서 아버지의 편지가 오기는 왔었다. 그러나 그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고 금동이 어머니한테 부친 편지였다.

아버지는 금동이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나서 그 고장에서 낯을 익힌 차돌이라는 아이에 대해서 길다랗게 썼다.

《9월 초하루날에는 금동이의 생각이 너무 나서 매바위골학교의 개학식까지 구경하였소. 먼발치에서 말이요. 책가방을 들고 교문으로 들어서는 1학년생들을 한아이 한아이 어루만져주느라니 기분이 절로 흐뭇해지더구만. 그런데 그중 한녀석은 장딴지에서 피가 흐르고있지 않겠소. 종아리와 허벅다리엔 온통 할퀸 자리였소. 아마 학교로 오는 도중 찔레열매나 개암 같은걸 따느라고 숲속에서 헤메였던가보오. 여간 세찬 장난꾸러기가 아닌것 같더구만. 가만 보니까 생김새두 우리 금동이하구 비슷한데가 있더란 말이요. 그래 배낭속에 있던 구급약을 꺼내여 상처에 발라주었소. 그다음엔 통성을 하였지. 그 애의 이름은 차돌이였소.

(우리 금동이도 오늘은 차돌이처럼 개학식에 참가하겠구나.) 내 생각이였소.

이것 보오, 난 하루도 금동이의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오.》

너무 여러번 읽어서 이제는 뜬금으로 줄줄 외우게까지 된 사연이다.

아버지의 그 편지는 금동이에게 풀기 어려운 의문을 던져주었다.

(내가 보낸 편지이야기는 왜 한마디도 없을가? 혹시 편지를 아직 받지 못한게 아닐가?)

금동이는 지금도 시무룩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일순선생님은 가방속에서 봉합엽소 한장을 꺼냈다. 웬일인지 선생님은 편지와 금동이를 번갈아보며 입가에 웃음을 띠우는것이였다.

버성기고 허분허분하게 쓴 삐뚜름글씨가 눈에 띄였다.

금동이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리였다. 그것은 스무날전에 출장간 아버지한테 글씨솜씨를 자랑하느라고 쓴 바로 그 편지였기때문이다. 그런데 고급리발관앞의 우편함에 넣은 편지가 어떻게 도로 밖으로 기여나와서 일순선생님의 들가방으로 숨어들어갔는지 알수 없다.

금동이는 제 손으로 편지를 부치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우편함아구리까지 팔이 닿지 못해서 그날 그는 지나가던 대학생누나의 손을 빌어 편지를 부쳤던것이다.

《주소를 이렇게 쓰면 안돼요.》

일순선생님은 《량강도 바위골 김민우아버지》라고 쓴 받을 사람의 주소란에 손가락금을 쭉 그어보이였다.

(무엇이 잘못되였다구 그럴가? 아버지가 간 곳은 매바위골이라고 어머니가 그랬는데)

금동이는 고개를 기웃한채 씨근거리며 서있었다. 되돌아온 편지를 보니 분한 생각만 났다.

《매바위골이 어느 군 어느 리에 있는지, 그리구 또 매바위골 누구네 집에 있는지 그런걸 죄다 써야지요.》

일순선생님은 우표우에서 《받을 사람의 주소가 똑똑치 않으므로 돌려보냄》이라고 쓴 종이딱지를 떼고 금동이에게 편지를 돌려주었다.

(에크, 그래서)

금동이는 그제서야 벌쭉 웃으며 주머니에 꿍져넣었다.

온 대성산이 다 아는 아버지를 반달령도 잘 알것이라고 짐작한 유치원때의 생각이 어리석었다.

《주소를 잘 써서 편지를 다시 보내야 해요. 편지를 받으면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실거예요.》

일순선생님은 금동이의 머리를 살틀히 쓰다듬어주고나서 대동교려관쪽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가면서도 팔목시계를 내려다보는걸 보니 몹시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였다.

《유치원에 놀러 와요!》

건늠길에 이르자 선생님은 뒤를 돌아보며 다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참, 내가 얼마나 멋지게 글을 쓰는지 아버지는 아직도 모르고있겠구나.)

금동이는 마음이 언짢아졌다. 주소도 제대로 쓸줄 모르고 지나온 유치원시절은 참으로 우습다.

편지가 되돌아온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획들이 찌글찌글한데다가 앞뒤면에 꾹꾹 눌러쓴 연필자국들이 곰보딱지처럼 찍힌 그 편지는 금동이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

이 편지가 그대로 갔다면 아버지는 《원, 글씨두 진탕에 찍힌 오리발자리같다니까.》하고 혀를 찼을런지 모른다.

이번에는 더 고운 글씨로 더 멋지게 편지를 쓸테다!

《참참참, 우리 아버지도 좀 먼데 출장이나 가지. 나두 좀 편지를 써보게

재수는 부러운 눈으로 편지가 들어있는 금동이의 반소매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건설사업소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는 그의 아버지는 늘 시내에서만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양이였다.

《그러믄 삼촌한테 하지.》

《우린 삼촌이 없어.》

《별난데. 삼촌이 없는 애두 다 있구나. 우린 삼촌이 셋이나 되는데.》

《난 그대신 동생이 둘이나 되거던. 넌 동생이 하나두 없지 않니.》

《참 이상하구나. 모두 똑같이 있음 좋겠는데.》

금동이는 삼촌이 하나도 없는 재수가 가엾어서 한숨을 내쉬였다.

금동이의 설명을 기다리던 쪼무래기들은 어느새 안내판앞에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두 아이는 말없이 대극장쪽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해가 길었으나 금동이는 건숭건숭 구경을 굼때고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편지를 쓰고싶었던것이다.

벽에 걸린 편지통속에서 한달전에 온 아버지의 편지를 찾아내여 주소를 외우고 뿔종다리가 사는 베란다의 조롱속에 먹이를 준 다음 그는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때마침 집은 텅 비여있었다. 금석이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편직공장 재봉작업반에 다니는 어머니는 어슬어슬할 때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연필을 쥐고 책상우에 펼쳐진 편지종이를 내려다보니 아버지가 한결 더 그리워졌다.

벌써 유치원생이 되기도 전에 금동이에게 그의 이름자를 익혀주던 아버지, 부를수록 재미나는 아동단의 노래도 아버지가 배워주었지. 썩어서 거덜거리는 송곳이도 아버지가 뽑아주었지. 아버지가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미술박물관구경도 했을텐데

형더러 구경시켜달라니 코웃음만 친다. 1학년생은 봐도 모른다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생각말고 공부나 잘하라고 한다.

쳇! 그저 아버지가 제일이야.

《보고싶은 아버지에게

금동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차를 타고 출장간 아버지, 쉰밤 자면 온다구 하구서 왜 예순밤이 지나도 오지 않습니까? 나는 어제 밤 꿈에도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인민학교 1학년생이 되였습니다.

개학날은 참 멋있었습니다. 북도 두드리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우리가 교실에 들어갈 때에는 꽃보라도 뿌려주었습니다.

우리 교실은 3층에 있습니다.

아버지원수님께서 다녀가신 방인데 해도 잘 듭니다.

우리 반 선생님도 참 좋습니다. 이름은 김향입니다. 글도 잘 배워주고 그림도 잘 그리고 아이들도 골고루 고와합니다.

어제는 장난하다가 떨어진 내 저고리의 단추를 달아주었습니다.

금동이는 더 쓰지 못하고 잠간 편지를 덮어두었다. 금석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던것이다.

쓰던 편지를 빼람속에 넣고나서 금동이는 국어학습장을 펼쳐놓았다.

《숙제하니?》

금석이는 베개통같은 소설책을 들고 침대우에 걸터앉았다.

《응.》

《오늘 10점(당시) 맞았니?》

《응.》

《잘하누나. 래일두 10점 맞아야 해.》

《응.》

금동이는 찌뿌둥해서 《응》소리만 연송 되풀이했다. 《숙제》니 《10점》이니 말은 하면서도 자기의 학습장을 한번도 봐주지 않는 형이 못마땅해서였다.

형은 그저 제 공부만 제 공부라고 한다.

효남이의 누나 효숙이하구는 딴판이다. 효숙이는 효남이의 숙제검열도 해주고 연필깔개도 만들어주고 바지주름도 세워주는데 금석이는 동생의 공부 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는일없이 빈둥거릴 때에도 소설책을 보면 보았지 금동이하구는 집적거리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일선이니 나사못이니 규소강판이니 하는 잡동사니들을 꿍져가지고 돌아다니던 형이 몇달전부터는 소설책에 홀딱 반해서 돌아갔다.

어른들처럼 까치다리를 하고 앉아서 머리를 슬슬 쓸어넘기며 책장을 넘길 때는 무슨 대단한 문학가라도 된것 같았다.

《하하하, 핫 참!

무슨 우스운 대목에 맞다들었는지 금석이는 제멋에 무릎을 치며 허파가 늘어나게 깔깔거리였다.

형은 해질 때까지 붙박이로 책을 보다가 어두워질무렵에야 마을돌이를 나갔다.

금동이는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쯤 쓰는데 공장에서 어머니가 돌아왔다.

편지쓰는 막내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반겨 웃으며 그의 코를 꼭 눌러주었다. 이것은 금동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마다 주군 하는 어머니의 제일 큰 칭찬이다.

그러나 편지를 몇줄 읽어가던 어머니는 심드렁해지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버지에게 보낸 첫 편지가 되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쯧쯧 혀를 차기까지 했다.

《그것 봐라. 그러게 무슨 일이나 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 편지는 시작부터가 글렀다.

<안녕하십니까?>하는 문안도 없이 <내가 없는 사이에 차를 타고 출장간> 이라니. 그리고 집소식두 좀 전해야지. 다시 써야 한다.》

금동이는 락심해서 쓰던 편지를 꾸겨버리였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그는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다시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이제는 편지에 담을 이야기를 고르느라고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였다.

그저 어머니가 부르는대로 쓰면 그만이였다.

《존경하는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어머니는 뜨개질감을 꺼내면서 편지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나먼 객지에서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썼니?》

금동이는 대답하지 않고 말끄러미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객지라는건 뭐나요?》

《다른 고장이란 말이지. 그런건 상관하지 말고 어서 쓰기나 해라. <하심니까>가 아니라 <하십니까>야. <우리 세 식구는 모두 별고없이 잘 있습니다.>

《별고? 우습다. 별고란건 또 뭐야요?》

《이제 크면 다 알게 되지. 자꾸 종알대지 말구 쓰기만 하란데두.

<지금 수도는 당창건 서른돐을 앞두고 불도가니처럼 부글부글 끓고있습니다. >》

불도가니란 말도 역시 금동이한테는 귀에 설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성을 낼가봐 입을 다물고 곰상곰상 쓰기만 했다.

무슨 이야기인들 안 담기였으랴.

편지에는 건물관리반 수리공이 와서 수도를 고쳐주어 물이 좔좔 쏟아져나온다는 이야기까지 적히였다.

편지를 읽어본 어머니는 흐믓이 웃으면서 잘 썼다고 아들을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틀린 글자를 몇군데 고쳐주었다.

그런데도 금동이는 어째서 그런지 기쁘지 않았다. 남의 퉁김을 받고 10점 맞았을 때처럼 마음속이 께름하였다.

첫 줄부터 마감줄까지 어머니가 깡그리 불러씌운 그 편지에 왜 《아들 김금동 올림》이라고 써야 하는지 알수 없었다.

(내가 쓰지두 않은거. 이건 내 편지가 아니야.)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우편함에 가져다 넣으라고 하면서 금동이에게 편지를 주었다.

그러나 금동이는 부치지 않았다.

금동이의 학습장갈피속에서 그 편지를 찾아든 어머니는 몹시 노하여 꾸중하였다.

《왜 부치지 않았니?》

아들은 대답하였다.

《어머니가 다 불러준거 뭐. 난 다시 쓸래요. 제절루 쓸래요.》

 

-주체72(1983)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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