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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4호에 실린 글
◇동화◇
길동무에 대한 이야기 최충웅
어느 여름날. 청개구리가 고개너머 꽃늪에 물놀이를 가려고 길에 나섰습니다. 하늘빛 파아란 옷을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참으로 예쁘고도 아름다왔습니다. 꽃들이 곱게 핀 숲속길로 뽐내듯 아장아장 사뿐사뿐 걸어가는데 뒤에서 그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개구리아가씨, 어디로 가십니까?》 돌아다보니 두꺼비였습니다. 청개구리는 대뜸 이마살을 찌프렸습니다. 보기도 싫다는듯 얼굴을 돌리고 쌀쌀하게 대답했습니다. 《고개너머 꽃늪까지 가는 길이예요.》 《아, 그래요? 나 역시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갑시다.》 두꺼비가 기뻐서 하는 말이였습니다. (아유- 저렇게 못생긴것과 어떻게 같이 길을 간담? 남들이 보면 뭐라 할가. 아이 창피해.)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청개구리는 더 쌀쌀하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저는 혼자 걷고싶은데요.》 《혼자 걷고싶다고요? 그건 왜서입니까? 길동무가 되여 함께 가면 좋지 않습니까?》 (뭐? 길동무가 되여 함께 가면 좋지 않느냐구? 참 그 못생긴 주제에 그래도 나와 함께 걷고싶은 모양이지...) 청개구리는 입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안됐습니다만, 저는 두꺼비님과 길동무하고싶지 않아요.》 《그건 왜서입니까?》 두꺼비가 이상한듯 두눈을 껌뻑이며 물었습니다. (저것봐, 그 못생긴 주제에 눈치까지 없는걸... 더 지분거리지 못하게 꼭 찍어 말해줘야겠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꺼비님의 차림새가 저에겐 싫기때문이예요. 그 얼룩덜룩한 옷도 그렇고 또 저- 참 더 말씀드리기가...》 《아, 알겠습니다. 그러니 저의 옷, 저의 얼굴, 저의 이 모든것이 아가씨의 마음에 안든다는거겠지요. 한마디로 제가 아가씨의 길동무대상이 안된다는 그 말씀이지요?》 《그렇게 생각해도 좋겠어요.》 하지만 두꺼비는 조금도 노여워하거나 섭섭해하는 기색이 없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했습니다. 《아가씨가 싫다면 저도 구태여 아가씨와 꼭 함께 가고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아두십시오. 그 누가 아무리 나의 이 옷, 나의 이 얼굴, 나의 이 모든것을 싫다 하여도 나는 조금도 탓하지 않으며 소중히 여긴다는것을 말입니다. 그럼 어서 먼저 가십시오. 나는 뒤로 천천히 가겠습니다.》 (참 다행인걸...) 청개구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나서 다시 아장아장 사뿐사뿐 걸어갔습니다. 골짜기 하나를 지났을 때였습니다. 《청개구리아가씨,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오솔길에서 새앙쥐가 나타나 물었습니다. 청개구리가 방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고개너머 꽃늪에 물놀이 가는 길이예요.》 《아, 그래요? 마침이군요. 저도 그쪽으로 가던 길인데 함께 갑시다.》 새앙쥐가 벙글거리며 하는 말이였습니다. 청개구리는 숫저워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새앙쥐를 바라보았습니다. 찰찰 기름기도는 재빛옷, 잘 다듬어올린 코수염, 영민스레 움직이는 팥알같은 눈. 새앙쥐는 참으로 멋쟁이였습니다. (이런 멋쟁이라면 나의 길동무대상이 되지.)하고 청개구리는 생각하였습니다. 청개구리와 새앙쥐는 나란히 걸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지내십니까?》 먼저 새앙쥐가 말을 뗐습니다. 《저의 생활말인가요? 저의 생활은 퍽 단조롭답니다. 아침에 깨여나선 나리꽃이슬을 마시고 점심엔 앵초꽃단물 그리고 저녁엔 싸리꿀차를 마시고는 떠오르는 달이나 솟아오른 별들을 홀로 외로이 바라보다가 잠에 들지요. 이것이 저의 생활의 전부랍니다.》 《그러니 매우 적적하게 지낸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청개구리가 서글픈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안됐군요. 생활이 즐거워야 할텐데요. 제가 도와드릴순 없을가요?》 새앙쥐지가 무척 동정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새앙쥐님이요? 새앙쥐님이 저를 어떻게 도와줄수 있겠어요.》 《그래도 알게 뭡니까. 도와드릴게 있을런지.》 《호호... 참, 새앙쥐님은 웃기길 곧잘 하시는군요.》 청개구리는 즐거운듯이 깔깔 웃고나서 물었습니다. 《그래, 새앙쥐님은 어떻게 지내시는가요?》 《저 말입니까? 저는 언제나 바쁘게 보낸답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 콩을 거두어들이고 한낮엔 기장을 그리고 저녁때엔 보리와 녹두를 거두어들이지요. 저의 생활은 이런것의 끊임없는 반복이랍니다.》 《아니, 그렇게 거두어들일 낟알이 많은가요?》 《그럼요. 들에 있는 낟알은 거의 다 내것이라 해도 거짓말이 아니지요.》 《아유- 그럼 새앙쥐님은 굉장한 부자겠군요.》 《글쎄 굉장한 부자라고는 할수 없지만 하여튼 모든것이 넉넉하고 부러운것이 없지요.》 이렇게 말한 새앙쥐는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청개구리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아니, 부러운것이 없다면서 갑자기 한숨은 왜 쉬는가요?》 새앙쥐가 다시 한숨을 쉬고나서 입을 열었습니다. 《부러운것은 없지만 그래도 없는것이 하나 있기때문입니다.》 《없는것이 하나 있다구요?》 《예, 말하자면 길동무가 없는것이지요.》 《길동무가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청개구리는 갑자기 허리를 그러잡고 깔깔 웃었습니다. 《아니, 왜 웃으십니까?》 새앙쥐가 물었습니다. 《아이참, 길동무야 내가 지금 이렇게 해주고있지 않나요.》 청개구리가 웃음이 남실거리는 눈으로 새앙쥐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새앙쥐는 여전히 시무룩해서 말했습니다. 《아니, 오늘 하루에 끝나는 길동무가 아니라 내가 가는 먼길을 끝까지 함께 갈 그런 길동무가 없다는 그 말씀입니다.》 《먼길을 끝까지 함께 갈 길동무라구요?》 《그렇습니다. 한번 맺은 우정 영원히 변함없이 끝까지 함께 가는 그런 길동무. 아가씨가 혹시 그런 길동무가 되여줄수 없겠습니까?》 새앙쥐는 자못 심중한 빛을 띠우고 청개구리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제가요? 아이참, 그게 뭐 큰거라구요. 그런 길동무가 되여주지요. 오늘에 맺은 우정 영원히 변함없이 먼길을 끝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가요.》 청개구리가 별로 깊은 생각없이 방글거리며 기쁜듯이 선뜻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새앙쥐는 청개구리의 두손을 덥석 잡고 마구 흔들었습니다. 《어마나.》 청개구리는 깜작 놀라 새앙쥐의 움켜잡은 손에서 두손을 빼며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붉혔습니다. 새앙쥐와 청개구리는 즐겁게 웃고웃으며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새앙쥐는 맛난 풀열매를 청개구리에게 권하기도 하고 친절하게 좋은 길도 골라주군 하였습니다. 갑자기 청개구리가 또 깔깔 웃음을 터쳤습니다. 《아가씨, 왜 웃습니까?》 새앙쥐가 물었습니다. 《저- 아까 있은 일이 생각나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두꺼비가 말이예요. 글쎄 나와 길동무가 되여 함께 걷고싶다는게 아니겠어요.》 《두꺼비가요?》 《그래요. 자꾸 지분거리며 따라오는걸 겨우 떼버렸어요.》 《참, 두꺼비야 아가씨의 길동무가 못되지요.》 그들이 한창 즐겁게 웃고웃으며 다음골짜기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그만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습니다. 길앞에 커다란 뱀이 긴 꼬리를 사리고있었던것입니다. 청개구리는 온몸이 얼어붙은듯 하여 한자리에서 꼼짝 못하고있었습니다. 《새앙쥐님, 날... 날 살려줘요.》하는 말만을 간신히 했을뿐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 대답소리도 없었습니다. 짹-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새앙쥐는 벌써 풀숲으로 도망쳐버린지 오랬던것입니다. 뱀이 빨간 혀바닥을 날름거리며 청개구리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 어여쁜 청개구리아가씨, 한끼 때거리가 걱정이였는데 마침 만났는걸.》 이렇게 뇌까린 뱀이 청개구리에게 입을 대려는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청개구리의 머리우를 뛰여넘어 뱀의 앞을 떡 막아섰습니다. 그것은 두꺼비였습니다. 청개구리를 보내고 그뒤를 천천히 걸어오던 두꺼비가 뱀이 청개구리를 덮치려는 위험한 순간 그앞에 막아나선것이였습니다. 뱀이 깜짝 놀라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두꺼비를 보자 성이 독같이 오른 뱀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습니다. 《두꺼비 이놈, 네놈이 감히 내앞을 막아? 냉큼 비키지 못할가?》 《큰소리 치지 말아.》하고 두꺼비가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맞받아 소리쳤습니다. 《음- 좋아, 네놈이 정말 죽고싶단 말이지.》 이렇게 씨벌인 뱀이 시뻘건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독이발을 드러내보이더니 대가리를 뒤로 제쳤다가 두꺼비를 무섭게 내리쪼았습니다. 《앗-》하는 비명소리가 울렸습니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는 두꺼비의 입에서가 아니라 청개구리의 입에서 튀여나왔습니다. 청개구리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누가 흔드는듯 한 느낌에 청개구리가 눈을 떴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내려다보고있었습니다. 청개구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습니다. 두꺼비가 조용히 자기를 굽어보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요. 어디 다치지 않았습니까?》 두꺼비가 근심어린 어조로 물었습니다. 청개구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것만 같았던것입니다. 《저는... 저는 다친데가 없어요. 그런데 두꺼비님은 어데 다치지 않았나요?》 《저도 다친데 없답니다.》 두꺼비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두꺼비님, 그런데 그 무서운 뱀놈은 어데 갔나요? 그 무서운 뱀놈앞에서 어떻게 무사했는가요?》 청개구리는 아직도 꿈속인듯싶어 두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습니다. 두꺼비가 얼굴에 느슨한 웃음을 담고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 무서운 뱀놈앞에서 다치지 않고 무사했는가 그 말이지요? 아마 청개구리아가씨는 잘 모르실테지만 저에겐 그 어떤 사나운 원쑤가 달려들어도 어쩔수 없게 하는 무기가 있답니다. 그게 바로 청개구리아가씨가 그렇게 싫어했던 저의 이 옷입니다. 저는 이 옷이 있었기에 독뱀과의 싸움에서 하나 다치지 않고 이길수 있었던것입니다.》 (아, 그랬댔구나. 아름답지 못하다고 내가 비웃고 멸시했던 저 두꺼비가 나를 지켜주었구나. 그런데 난...) 청개구리는 가슴을 쳤습니다. 울고싶도록 자기자신이 미워났습니다. 그는 눈물어린 눈으로 두꺼비를 바라보았습니다. 참으로 의젓하고도 름름한 모습이였습니다. (아, 그런데 나는 왜 그전에는 그를 아름답게 보지 못했을가. 그러니 진정 아름다움이란 겉모양에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킬줄 알고 남을 진심으로 도와줄줄 아는 그 마음에 있었구나.) 청개구리는 새앙쥐가 도망친쪽을 쏘아보며 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나는 참말 바보였어. 새앙쥐같이 제가 먼저 한 약속도 순간에 줴버리고 독뱀을 보자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너절한 놈. 난 왜 그런 너절한 놈을 가까운 길동무로 생각하고 두꺼비님같이 진실한 길동무를 멀리했을가. 그리고 그를 괄시하고 모욕까지 했으니 아, 나는 참말...) 청개구리는 제손으로 제 얼굴을 막 때려주고 꼬집어주고싶은 심정이였습니다. 《그래요. 제가 그만 큰 실례를...》 두꺼비가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가씨는 공연히 용서를 비는군요. 용서하고 안하고가 있겠습니까? 길동무가 되고말고 하는것은 자신의 자유이니까요.》 청개구리가 그저 얼굴만 붉히는데 두꺼비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청개구리아가씨, 저는 이제 떠나야 하겠습니다.》 《예? 떠나겠다구요?》 《그렇습니다. 제가 갈길은 아직 멀고멀답니다.》 청개구리는 두꺼비앞을 막아섰습니다. 《두꺼비님, 저도 떠나겠어요.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저는 두꺼비님을 따라 아무리 먼길이라도 함께 가고싶어요.》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두꺼비가 의아해하는 눈길로 청개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용서하세요. 저는 두꺼비님이 가는 그 길에 언제나 함께 있고싶어요. 아무리 먼길이라도 길동무가 되여서 끝까지 말이예요.》 《예?》 두꺼비의 눈이 커졌습니다. 《정말이예요. 그러니 제발 부탁이예요. 저를 둬두고 혼자 가지 말아주세요.》 두꺼비는 조용히 머리를 가로 저었습니다. 《모를 말씀이군요. 여기까지 오는 길도 저와 함께 오기 싫다더니 어떻게 갑자기 그런 결심을 하게 되였습니까?》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이건 진심이예요. 정말이예요. 그러니 제발 저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두꺼비는 다시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가씨처럼 물놀이하러 다닐 한가한 시간이 없습니다. 독뱀과 싸우다보니 갈길이 많이 늦어졌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서 할 일도 많답니다.》 《할 일이 많다구요?》 《그렇습니다. 넓은 밭에 기여드는 나쁜 벌레들을 잡아야 하니까요.》 《아, 그 일이라면 저도 할수 있어요. 참말이예요. 제가 가서 도와드릴수 있어요.》 두꺼비는 이번에도 조용히 머리를 가로 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 두손과 두다리가 있는데 왜서 남의 도움을 받겠습니까? 제 할 일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마시고 련꽃늪에서 즐겁게 놀다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이렇게 말하고 두꺼비는 길을 따라 스적스적 걸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흑-》하는 흐느낌이 청개구리의 입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아, 어쩌면... 어쩌면...》 이런 중얼거림소리와 함께 그의 두볼을 타고 두줄기 눈물이 쭈루룩- 흘러 땅에 떨어져내렸습니다. 두꺼비의 모습은 저 멀리 숲에 가리워 더는 보이지 않았으나 청개구리는 움직일줄 모르고 그냥 한자리에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어깨만 더더욱 세차게 오르내릴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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