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4호에 실린 글

 

   

   수 필

 

우리 글 배우는 행복

박경철    

 

                                           

뜻깊은 태양절을 며칠 앞둔 어느날 저녁이였다.

지방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서둘러 가방부터 열어제꼈다.

그리고는 그속에서 다섯살난 귀염둥이 외동딸을 위해 마련한 기념품들을 연방 꺼내놓았다.

여러가지 맛있는 당과류와 멋있는 장난감들, 새 형태의 맵시있는 달린옷…

그런데 예전같으면 그것들을 한품에 덥석 그러안았을 딸애가 새무룩해진 얼굴로 몸만 흔드는것이 아닌가.

《아빤 나빠요 씨. 내가 글배우는것도 모르고 학습장이랑 연필이랑 안 사온거... 엄만 벌써 한가방이나 사주었는데.》

전혀 뜻밖에 당하는 일이라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여보, 우리 연희가 요즘 우리 글을 배우고있어요. 그래서 이런 투정질을…》

안해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이렇게 튕겨주더니 벽 한곳에 큼직이 걸려있는 《가가표》와 《구구표》를 가리키는것이였다.

(?!)

《글쎄 우리 연희가 두달전부터 글을 배우겠다고 조르는것이 아니겠어요. 저녁마다 옆집 봄순언니가 공부하는걸 보고 부러웠던 모양이예요. 처음엔 어찌나보자 하고 심심풀이로 배워주었는데 어찌나 잘 받아물던지… 막 고와죽겠어요.》

이러며 딸애의 등을 두드려주고난 안해가 속삭이듯 일렀다.

《아빠앞에서 그새 배운걸 한번 써보렴. 우리 연희 용치.》

그제야 사탕을 문것처럼 볼이 부었던 딸애의 얼굴에 방실 웃음이 피여났다.

책상앞으로 쪼르르 달려간 애는 학습장과 연필을 찾아가지고와서 내앞에 난딱 꿇어앉는것이였다.

잇달아 잽싸게 학습장을 펴놓고 조그만 오른손에 연필을 모두어쥐더니 자신있게 움직여나가기 시작했다.

《박-연-희.》

제법 똑똑히 그려지는 글.

나의 눈은 점점 휘둥그래지고 딸애는 신바람이 났다.

《나 <가가표>도 다 써요. <구구표>도 쓰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였다. 딸애는 《가가표》까지도 쓸줄 알고 받침있는 단어까지도 제법 쓸줄 알았다.

《구구표》는 아직 틀리는것이 있었지만 다섯살나이에 이만한것도 감탄할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나는 너무도 놀랍고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딸애를 와락 부둥켜안고 그 애리애리한 앵두볼에 쪽 입을 맞춰주었다.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애를 머리우로 닁큼 들어올리고 몇바퀴 빙그르 돌기까지 했다.

《야, 우리 연희 참말 용쿠나. 우리 글 공부를 이렇게 잘하는줄 알았으면 학습장과 연필부터 많이 사올걸. 내 다음부턴 꼭 그렇게 하마.》

《울아버지 제일이야!》

딸애는 짝짝 박수를 치고나서 이번에는 소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를 펼쳐들고 또랑또랑 읽어나갔다.

 

애들아 구경가자

서해갑문 구경가자

 

《허허, 발음까지도 정확하군 그래. 여보 우리 연희를 유치원이 아니라 곧장 소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을가?》

나는 또다시 입을 딱 벌린채 흥분한 어조로 안해에게 물었다.

《호호... 그렇게야 어떻게... 여보, 난 요즘 저렇게 세월을 앞당겨 마음껏 우리 글을 배우고있는 연희를 보면서 우리 글 배우는 행복도 절로 타고났다는 생각을 하군 해요.》

우리 글 배우는 행복을 절로 타고났다?

태여나면 누구나 탁아소와 유치원에 가고 무료로 학교교육을 받는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너무도 례사롭게 들릴지 모르나 나는 선뜻 수긍할수가 없었다.

《여보, 난 그렇게 생각하고싶지 않구만. 당신두 우리 할아버지의 지난날에 대하여 잘 알구있지 않소.》

순간 안해는 흠칫 놀라더니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나의 뇌리에는 저도 모르게 언젠가 아버지한테서 들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수난의 그 세월 나의 할아버지는 열살이 퍽 넘도록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였다. 너무도 글을 배우고싶어 자주 학교창문을 들여다보군 하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도 가긍하여 부모들은 가산을 팔고 품팔이까지 해가며 할아버지를 학교에 입학시켰다.

엄청난 《월사금》을 내면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할아버지는 점점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학교가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의 한갖 도구로서 학생들에게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지식이나 과학기술을 배워주는것이 아니라 일본어교육을 기본으로 일본에 대한 노예사상을 집요하게 불어넣었기때문이였다.

일제는 일본어가 《국민정신이 깃들어있는것일뿐아니라 지식과 기술을 습득시키는데 있어서 필수적인것이기때문에 어느 과목에 있어서도 <국어>(일본어)의 사용을 정확히 할것을 요한다.》고 하면서 지정된 일어과목시간은 물론 다른 과목시간에도 일본어를 쓸것을 강요했다. 이에 따라 칼을 찬 훈장(교원)들이 살기를 풍기며 모든 수업을 일본어로 가르쳤다. 만일 수업시간에나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고 조선말을 사용하게 되면 무지막지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어느날 두번째 수업시간이 갓 시작되였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그만 아차 실수를 하여 왜놈훈장의 물음에 한마디 조선말을 섞어 대답하게 되였다.

《빠가야로!》

당장 왜놈훈장의 주먹이 할아버지의 얼굴에 날아들어 코피를 터쳐놓았다. 놈은 큰일이나 난것처럼 길길이 날뛰더니 할아버지한테 의자를 머리우에 쳐들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서있게 하는 고통스러운 벌을 주었다.

이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약차한 벌금을 가져다 바치라고 을러메면서 그를 집으로 쫓아보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부모들은 조선말을 한마디 한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하면서 다음날 아침에도 아들을 그냥 학교로 보냈다.

악에 받친 왜놈훈장은 할아버지한테 마구 매를 안겨 운신조차 못하게 만든 다음 학생들을 시켜 다시 집에 데려가게 했다. 무조건 벌금을 가져오라는것이였다.

할아버지의 부모들은 치솟는 분노를 억누를수가 없었다. 그들은 학교를 찾아가 왜놈훈장의 짐승같은 만행에 대해 항의를 들이댔으나 그것은 맨발로 바위차는격이였다. 그날로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쫓겨나고말았다. …

이것을 어찌 나의 할아버지만이 당한 불행이라고 하랴. 위대한 수령을 모시지 못하고 자기의 참된 조국과 군대를 가지지 못한탓에 조선사람들모두가 우리 말과 글을 마음껏 배우기커녕 그 소중한 말과 글을 빼앗긴채 40년간이나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한것이 아닌가.

또 그것으로 하여 이 지구상에는 이미 사멸되였거나 지금 사멸되여가는 민족어들과 고유한 민족성을 잃고 범벅탕으로 변해가는 말과 글들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빛발아래 고유한 우리의 민족어가 굳건히 고수되고 더 활짝 꽃펴나고있으며 바로 그것으로 하여 우리 딸애처럼 나이를 앞당겨 우리 글을 마음껏 배우는 그런 행복동이들이 수많이 자라나고있는것이다.

나는 여전히 글공부에 여념이 없는 딸애에게 이렇게 큰소리로 말해주고싶었다.

《너의 그 행복은 결코 절로 타고난것이 아니란다. 대원수님께서 찾아주시고 빛내주신 내 조국, 목숨보다 귀중한 선군조국을 가진 행복이란다. 선군해님 아버지장군님을 높이 모신 행복이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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