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아동문학》 주체97(2008)년 제2호에 실린 글

 

    □ 동 화 □

 

                                                김  성  현

                                               

밖에서 《멍멍》하고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변부자는 삐꿍 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얼룩이가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습니다.

《그래 쌀값이 얼마나 올랐더냐?》

변부자의 말에 얼룩이는 살래살래 꼬리를 흔들어보였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것은 쌀값이 다섯배나 올랐다는 뜻입니다.

《허허, 벌써 다섯배라. 열배로 올라라. 열배.》

변부자는 흥이 올라 쌀고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간데다가 몇해째 흉년이 들어 쌀이 제일 귀했습니다.

산나물만 끓이는 집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큰 고간에 흰쌀을 그득히 쌓아놓은 변부자만은 은근히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란리통에 고간의 쌀을 팔아 벼락부자가 되려는 꿈이 무럭무럭 괴여올랐던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얼룩이를 시켜 쌀값을 알아오게 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사람의 말을 곧잘 알아듣는 얼룩이는 주인의 심부름을 실수없이 꼭꼭 해냈습니다. 하도 령리하다나니 주인이 나들이를 떠날 때면 보따리를 물고가기도 했고 대통을 잊고 떠나면 말하기 전에 가져올줄도 알았습니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은 변부자가 쌀가마니를 세보며 속구구를 하고있는데 얼룩이가 다가와 바지가랭이를 끌어당겼습니다.

변부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룩이가 당기는대로 따라갔습니다.

얼룩이가 《멍멍》하고 짖는 곳을 보니 마을앞길에 마차가 하나 서있었는데 거기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변부자는 궁금한 생각이 들어 마차에 다가갔습니다.

마차에 탄 젊은 군사의 말이 싸움터에서 군량이 떨어져 곤난한 형편에 있다는것이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너나없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집에 당장 먹을것이 떨어졌어도 무엇인가 보탬이 될만한것을 한두가지씩 들고나왔습니다.

배나무집 김로인은 종자로 남겨둔 감자 한말을 성큼 지고 나왔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도 저녁을 끓이려고 구해온 좁쌀 한종지를 소중히 들고나왔습니다.

쌀이 한알도 없는 샘물집 처녀는 활촉을 만들어쓰라고 무쇠가마를 닁큼 뽑아 머리에 이고나왔습니다.

그러나 군사는 마을의 형편을 알고있는지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종자를 싣고가면 빈땅에는 무엇을 심고 저녁끼니는 무엇을 끓이겠나요.

가마까지 없으면 풀뿌리마저 끓일수 없는데 말입니다.

군사가 절대로 실으려 하지 않자 김로인이 슬쩍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 집엔 감자종자가 스무가마니나 쌓여있네. 내가 늙어 힘이 없다나니 요것밖에 가져오지 못했는데 사양말고 실으라구.》

이웃집 아주머니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 집 쌀독에도 쌀이 가득 차있어요. 걱정말고 어서 받으라구요.》

샘물집 처녀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운 때 이까짓 무쇠가마가 뭐 아까울게 있나요. 우리 집 부엌엔 구리가마가 세개씩이나 있는걸요.》

마을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차에 넘치도록 듬북듬북 실어주게 말입니다.

군사는 마을사람들의 진정이 너무도 고마와 끝내 두눈을 슴벅이며 가지고온 물건들을 마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의 성의를 잊지 않고 후에라도 신세를 갚을 생각으로 그들의 이름을 적어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차에는 종이 한장, 붓 한자루 없었습니다.

이때 지나가던 웬 로인이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책과 붓을 꺼냈습니다.

《자, 어서 여기에 적으라구. 그들의 성의를 잊으면 안되지. 암, 안되구 말구.》

군사는 낯선 로인이 꺼내준 책에 마을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었습니다.

변부자가 보느라니 자기 하나 내놓고는 마을사람들모두의 이름과 들고온 물건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체면이라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변부자는 할수없이 집에 들어가 쌀을 한자루 꺼내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쌀 한자루가 공짜로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집재산이 몽땅 거덜나는것 같아 속이 알찌근했습니다.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 변부자는 대문뒤에 쌀자루를 내려놓고 한되박 골숨하게 담아들었습니다.

좋아라 따라오던 얼룩이는 그 모양을 보자 꼬리를 늘어뜨리더니 쌀자루옆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마차에 다가온 변부자는 게면쩍은 얼굴을 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네들을 돕고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크건만 우리 집엔 비자루로 박박 쓸어도 요것밖에 없네.》

김로인이 변부자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그럼 고간에 가득한건 뭐요?》

《헤헤. 그 그건 짚검불이네, 짚검불. 겨울에 불을 땔거란 말이네.》

군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변부자의 이름도 적어넣었습니다.

알알한 속을 달래며 돌아온 변부자는 고간을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천정에 닿도록 가득 쌓아놓았던 쌀가마니들이 몽땅 짚검불로 되여버렸던것입니다.

집안과 부엌을 둘러보아도 비자루로 박박 쓸어낸 자리만 있을뿐 썩은쌀 한알 보이지 않았습니다.

변부자는 너무도 놀라와 아우성을 쳤습니다.

놀라운 목소리는 다른 집들에서도 들려왔습니다.

김로인의 집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스무가마니의 종자감자가 쌓여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였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네 부엌에도 쌀독마다 하얀 쌀이 가득가득 차있었습니다.

샘물집에는 보기만 해도 희한한 구리가마가 세개씩이나 번쩍거리며 놓여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놀라와 수군거렸습니다.

《허참, 군사에게 거짓말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다니.》

《신통히 제가 한 말들이 진짜로 이루어졌어요.》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낯선 로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 책은 이름을 적어넣은 사람의 말을 그대로 풀어주는 신기한 책이라네. 자네들의 마음이 하도 진주같기에 내 그 책을 빌려준걸세.》

로인은 이렇게 말하더니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고말았습니다.

그제야 마을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변부자는 그만 머리를 싸쥐였습니다.

《아이쿠! 란리통에 횡재하려던 노릇이 홀딱 망했구나.》

분해서 가슴을 쥐여뜯던 변부자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그렇지, 아직 한자루 남아있어!》하고 대문쪽으로 뛰여갔습니다.

대문뒤에 감춰놓았던 쌀자루가 생각났던것입니다.

그런데 쌀자루도 그옆에 누워있던 얼룩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던 변부자의 눈이 화등잔만해졌습니다.

얼룩이가 그 쌀자루를 물고 마차로 달려가고있었던것입니다.

주인이 쌀자루를 감추고 한되박 되나마나하게 들고나가는것을 본 얼룩이는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변부자의 뒤에 대고 욕을 하는걸 보니 고간에 쌀을 가득 두고도 주인은 어째서 망신을 당하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쌀자루를 가져다주어 주인의 체면을 세워주고싶었던것이였습니다.

얼룩이가 쌀자루를 물고 마차에 다가오자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아니, 이게 변부자네 얼룩이가 아니야?》

《허, 주인보다 낫군. 짐승도 낯이 뜨거운 모양이지.》

바로 이때 변부자가 허둥거리며 달려왔습니다.

《내 쌀, 내 쌀, 그건 내 쌀이다.》

변부자가 쌀자루를 집으려고 하는데 김로인이 말했습니다.

《아까는 짚검불밖에 없다고 하더니…》

《그건 저, 저…》

말문이 막혀 두눈만 희번뜩이던 변부자는 쌀자루를 와락 나꾸어챘습니다.

그 순간 쌀자루가 부욱 찢어지더니 짚검불이 부수수 쏟아져나왔습니다.

그것마저 짚검불이 되였던것입니다.

《허허, 자네 말이 옳았군. 정말 짚검불일세.》

변부자의 속심을 들여다본 마을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변부자는 그만 짚검불우에 풀썩 주저앉고말았습니다.

《아이쿠, 망했구나!》

변부자의 가소로운 꼴을 보던 마을사람들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놈. 나라야 어떻게 되든 저만 잘살아보겠다고 거짓말을 꾸며대더니 제말대로 되고말았군.》

《군사를 도우려는 뜨거운 맘은 복을 받지만 저 혼자 잘살려는 욕심은 응당 망하는 법이지.》

마을사람들은 쌀이며 감자를 더 많이 내다실은 마차를 오래오래 바래주었습니다.

마을에서 더는 머리를 쳐들수 없게 된 변부자는 그후 어디론가 사라지고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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