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철 신선한 남새와 과일을 먹이시려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찍부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한없이 자애로우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을 생각할수록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지녀본적이 없는 고매한 인민적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수령님의 한평생이 안겨와 뜨거운 격정으로 가슴적시는 우리 인민과 청년들이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시려 80고령의 몸으로 찬겨울의 눈바람도, 삼복의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온 나라 농촌의 포전길을 걷고걸으시던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과 청년들에게 사철 신선한 남새와 과일을 먹이시려고 온갖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였거니 수령님의 불멸의 로고를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오늘도 우리 가슴 뜨겁게 울려준다.
남새온실에 깃든 로고
오늘 우리 나라의 그 어디를 가보나 여러가지 형태의 남새온실들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있다. 바로 여기에도 우리 인민들에게 사철 신선한 남새를 먹이시려고 남모르게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어린 사랑이 깃들어있다. 주체79(1990)년 7월 함흥시에 오시여 함경남도 경제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도내 인민들에 대한 남새공급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함경남도에서는 가을남새농사를 잘해서 시민들에게 김장용남새를 넉넉히 대주고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겨울에는 김치를 먹는다치고 김치가 떨어진 3월 중순부터 봄남새가 나올 때까지는 무얼 먹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동안은 온실남새를 공급할 예정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아직 나의 의도를 잘 모르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옛날에 김치는 반식량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우리 인민들이 못살 때 하던 소리라고, 동무들이 진짜배기충복이 되자면 인민들에게 겨울에 김치나 먹일생각을 하지 말고 오이와 도마도, 부루와 쑥갓같은 신선한 갖가지 남새를 인민들에게 공급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남새온실을 짖자는것은 봄남새뿐아니라 겨울남새문제를 해결하자는것이라고 모를 박아 말씀하시였다. 봄남새뿐아니라 겨울남새를 위하여! 정녕 인민에게 하나를 주시면 열백을 더 주고싶어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좌우명이 그대로 담겨져있는 이 말씀, 하기에 겨울김치가 떨어진 후부터 봄남새가 나오기 직전까지 온실남새를 공급하는것만도 큰것으로 생각하던 일군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되여 함경남도에는 소형발전소까지 건설된 온실농장이 훌륭하게 일떠서게 되였다. 자애로운 어버이의 그 손길아래 이 땅 그 어디에나 여러가지 형식의 온실들이 일떠섰거니 한겨울에도 보게 되는 푸르싱싱한 오이, 도마도, 초봄의 통배추를 두고 우리 인민과 청년들은 그토록 어버이수령님의 다심한 사랑을 잊지 못해하는것 아닌가.
손수 과일생산량까지 계산하시며
인민들에게 사철 맛있는 과일을 먹이시려고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와 심혈은 전국도처의 과원들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주체82(1993)년 5월 어버이수령님께서 평양시안의 어느 한 과수농장을 찾으시였을 때이다. 이날 농장의 과일밭면적이며 과일달리는 면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과일달리는 면적을 늘이자면 늙은 과일나무옆에 어린 과일나무를 심었다가 과일이 달리게 될 때 늙은 나무를 베여버리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먼저 평양시어린이들부터 사과와 배를 매일 먹이고 앞으로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매일 먹이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평양시에 탁아소와 유치원, 소학교, 중학교 학생까지 합하여 모두 몇명인가 물으시였다.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매일 먹이자면 과일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1년이면 얼마인가를 사업수첩을 펼쳐드시고 몸소 계산해보신 다음 평양시에서는 지금 시안의 어린이들에게 매일 콩우유를 공급하는것과 같이 사과나 배를 매일 공급하는 제도를 세워야 하겠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잊을수 없는 포전협의회가 있은 때로부터 평양시어린이들에게 줄 과일공급체계가 세워졌다. 그리고 온 나라 어린이들에게도 과일을 정상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대책이 세워졌다. 탁아소, 유치원의 새참시간에, 하루공부가 끝난 시간에 우리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차례지는 과일 그 한알한알에 얼마나 깊고도 뜨거운 사연이 담겨져있는가를, 그 한알한알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를 우리 청년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늙기전에 많은 일을 하자시며
우리 여기에 눈물없이는 더듬을수 없는 하나의 이야기를 더 전한다. 주체80(1991)년 1월초였다. 과수부문의 한 책임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화로 찾으신다는 련락을 받자 얼굴이 뜨거워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전해 과일농사를 잘하지 못한 자책때문이였다. 잠시후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그는 정중히 송수화기를 받쳐들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전류를 타고 울려왔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책을 금치 못해하는 그 일군에게 과일군의 과일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킬수 있는 방도를 하나하나 밝혀주시고 그 실무적대책까지 일일이 다 취해주시였다. 잠시 말씀을 끊으셨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이제 더 늙기전에 함께 일을 더 잘해서 인민들에게 과일을 풍족히 먹여보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은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고 눈물이 핑 돌아 아무 말씀도 올릴수가 없었다. 아, 우리 수령님 얼마나 우리 인민들에게 과일을 풍족히 먹이는것이 소원이시였으면 이런 말씀까지 다하시랴.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한평생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단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시는 어버이수령님, 오늘 어버이수령님의 한없는 그 사랑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그대로 뜨겁게 이어지고있다. 혁명의 총대를 높이 드시고 선군장정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늘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위하여 마음쓰시는 우리 장군님,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종자혁명, 감자농사혁명이 일어나고 두벌농사의 새시대가 펼쳐지는 등 이 땅우에 얼마나 놀랍고도 자랑스러운 기적이 일어났던가. 우리 천만군민은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인민들의 자애로운 어버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모신 자랑과 긍지를 안고 그이의 령도따라 강성대국의 높은 령마루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릴것이다. 본사기자 원춘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