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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께서 못잊어하시던 사적지들을 찾으시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숭고한 도덕관을 가지고 수령님의 위대한 사상과 위업, 불멸의 업적을 끝없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위인의 력사는 위인에 의하여 옹호고수되고 계승발전되는 법이다.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만민의 어버이이신 우리 수령님의 태양의 력사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계속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숭고한 헌신의 자욱은 우리 수령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못잊어하시던 강계객주집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강계객주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시절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하루밤 쉬여가신 력사의 집이며 해방후 2차에 걸쳐 이곳을 찾으시여 그때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고 뜻깊은 기념사진까지 찍으신 유서깊은 곳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계객주집이 잊혀지지 않으시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제일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강계객주집 주인이다. 저녁늦게 강계시내에 도착하여 객주집에 들어갔더니 그가 대문밖까지 나와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것이였다.》 이러한 뜻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는 강계객주집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아주신것은 주체92(2003)년 7월초의 어느날이였다.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으시고 강계객주집 뒤마당 출입문앞에 이르시자 연풍혁명사적관 관장이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4년전에 만나주셨던 관장을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고나서 객주집뒤마당으로 들어서시였다. 그러시고는 깊은 감회가 어린 눈길로 사적건물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시면서 《강계객주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처럼 못잊어하시던 사적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온 세상이 우러러 칭송하는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영광과 기쁨에 겨워서인가 노랗게 익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강계객주집뜨락의 살구나무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결에 푸른 잎새를 끝없이 설레이고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 열매가 뜻깊은 회령백살구임을 순간에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곳 강사에게 살구나무들을 언제 심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회령백살구나무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강사는 유서깊은 사적건물주변에 뿌리내린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무심히 스쳐지나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매한 풍모에 감격을 금치 못하면서 그이를 뒤뜰안을 거쳐 앞마당에로 안내해드렸다. 안방앞에 이르시여 강사의 해설을 들으시며 사적물의 내용을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 객주집주인은 누구였댔는가, 이 객주집이 원상그대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오시였을 때 해설을 해드린 강사가 지금도 있는가 하는것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강계객주집에 주체63(1974)년과 주체80(1991)년에 오시여 두번이나 독사진을 찍으시였다는데 사진을 보니 감회가 더욱 깊다고, 우리 수령님은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면서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수령님처럼 한생을 혁명에 바친 위대한 혁명가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깊은 회억에 잠기시여 그 불멸의 자욱을 더듬으시며 객주집안방에 모셔져있는 어버이수령님의 사진을 우러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계시였기에 오늘의 사회주의조선이 있고 우리 인민들의 행복이 있는것입니다. 조국과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영원불멸할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강계객주집앞에 서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을 모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심으로써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화폭을 남기시였으며 혁명사적지보존관리와 그를 통한 교양사업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계기초식품공장에도 들리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강계기초식품공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공장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8월 4일에 이 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습니다. 그때 나도 수령님을 모시고 이 공장에 왔댔습니다. 그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강계시민들에게 맛좋은 간장과 된장을 먹이시기 위하여 산간지대의 이름없는 지방산업공장까지 찾아주시였던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슴배여있는 공장을 바라보시며 45년전의 일을 추억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안광에는 깊은 감회의 빛이 어려있었다. 일군들의 안내를 받으며 장직장과 콤퓨터조종실을 지나 연혁소개실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연혁소개판에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이 정중히 모셔져있는 한상의 사진앞에서 이윽토록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뜻깊은 사진을 보시니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이 공장을 찾으시였을 때의 추억이 되살아오르시는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진은 공장의 귀중한 재보라고 하시면서 한없는 그리움이 실린 시선으로 다시금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르시였다. 연혁소개실을 나서시여 공장의 마지막생산공정인 포장공정도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 몰라보게 전변된 공장모습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시며 이 공장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앞으로도 일을 잘하여 인민들이 공장의 덕을 보게 하여야 한다고 거듭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시며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서야 공장을 떠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가 깃들어있는 혁명사적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은 비단 자강도에만 새겨져있는것이 아니다. 민족의 대국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에 현지지도하신 곳은 그 어디이건 다 가보겠다고 하시며 수령님의 혁명사적이 새겨져있는곳을 찾고찾으신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은 조국땅 방방곡곡의 천리방선,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그 어디나 뜨겁게 새겨져있다. 정녕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시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끝없이 빛내여가시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쳐가시는 수령님에 대한 충정의 최고화신이시며 위대한 인간, 위대한 령도자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여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의 력사는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변함없이 흐를것이다.
본사기자 리 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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