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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의 혁명사상만이 온 사회에 차넘치게 하시려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5.25교시 40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뜻깊은 이날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 군대와 인민, 청년들의 가슴가슴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이 전면에 나섰던 시기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력사도록을 수령님의 위대성을 기본으로 하여 편찬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흠모심으로 불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한 선전을 대를 이어 계속해나감으로써 우리 세대는 물론 후대들도 경애하는 수령님에 대한 우리 당과 인민의 충실성의 전통을 영원히 계승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9년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종래의 《조선로동당력사연구실》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이 전면에 나선 현실발전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김일성동지혁명력사연구실》로 개편하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와 함께 이전에 만든 도록이 수령님의 위대성을 기본으로 하여 편찬되지 못했다는것을 료해하시고 새로 《김일성동지혁명력사연구실도록》을 편찬할데 대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주체57(1968)년 3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히 도록편찬사업을 맡아보는 일군들을 만나주시였다. 이날 새 도록의 편찬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도 보시고 도록편찬사업에서 나타나고있는 본질적결함에 대하여 일일이 깨우쳐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수령님의 혁명활동연구와 선전에서 기본은 혁명사상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에는 수령님의 혁명활동에 대한 교양선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빼놓고 기껏해서 덕성에 대해서만 좀 강조하느라고 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접한 일군들은 지난 시기 도록편찬사업에서 나타난 결함을 심각히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도록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대하여 깊이있게 수록하지 못하고있었던것이였다. 일군들이 자신들의 결함을 두고 깊이 뉘우치고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수령의 위대성에 대하여 말할 때 무엇보다먼저 혁명사상을 말하는것이라고, 수령님의 사상에서 리론도 나오고 방법도 나오며 고매한 덕성과 풍모도 흘러나오는것이라고, 새로운 도록에 가장 중요한 사상문제를 바로 수록하려면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정책, 전략과 전술을 하나도 빼놓아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로작의 친필원고를 바로 모시는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은 도록편찬의 방향과 방도를 명확히 밝혀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도록편찬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강령적인 말씀을 받아안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원고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대국보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도록에 모시는 사업은 자신께서 직접 맡아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도록편찬위원회 성원들이 사진실에 모여 사업을 토의하고있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노트를 가지고 찾아오시였다. 일군들모두가 경애하는 장군님께 수고를 끼쳐드린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못해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내가 사업노트를 직접 안고 사무실에 찾아온데 대하여 무척 송구스러워하는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어떤 노트입니까. 수령님께서 쓰시던 사업노트가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가지고나왔습니다. 어서 복사나 합시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복사기앞으로 다가서시였다. 일군들은 그제야 작업준비를 서둘렀다. 복사기의 조명등이 켜지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쓰시던 사업노트들을 복사기앞으로 옮겨놓으시였다. 수십권의 사업노트에는 복사할 부분마다 종이쪽지가 끼워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부분들을 한장한장 펼치시여 사진실 일군들에게 넘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펼쳐넘기시는 친필원고를 렌즈에 맞추고 복사기를 돌리는 일군의 심정은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고요한 방에는 복사기의 소리만이 고르롭게 울리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조명등앞에서 줄곧 복사할 책장을 손수 번지시며 렌즈밑에 펴주군 하시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일군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하시는 일을 대신 해드리려하자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보기에는 순서대로 찍으면 될것 같지만 그저 순서대로 찍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작을 집필하시다가도 여러가지 사업을 조직하신 내용을 다 적으셨기때문에 순서를 맞추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 말씀을 듣고 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쓰시던 사업노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건의 로작원고가 몇개소에 나뉘여 적혀있었다. 어떤 갈피에는 로작원고가 씌여있는가 하면 당과 국가의 중요한 회의를 지도하신 내용이 적혀있기도 했던것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준 로작저술사업이 이처럼 중첩되는 수많은 사업들을 처리하시는 그 분망하신속에서 쉬임없이 진행되였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일군들은 진정 가슴이 뜨거워 오름을 금하지 못하였다. 일군들모두가 숭엄한 감정에 젖어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뜨거운 불빛을 받으시며 복사기곁을 떠나실줄 모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땀으로 홍건해진 이마에 연신 손수건을 가져가시였다. 일군들이 그이의 곁으로 다가가 이제는 자기들이 하겠다고 간청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도록에 모실 수령님의 친필자료사진들은 그 한장한장이 다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학습할 혁명의 귀중한 교재인만큼 티끌만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끝내 일손을 놓지 않으시였다. 새 도록 편찬사업에 바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로고와 심혈에 대하여 어떻게 다 이야기할수 있으랴. 이날 날이 어두울 때까지 작업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다음날에도 복사기조명아래서 온 하루를 보내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의 원고복사사업을 친히 지도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수시로 원고들을 도록에 제대로 모셨는가, 더 필요한것은 없는가를 알아도 보시고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보시던 귀중한 책도 보내주시였으며 새로 발굴한 사적물들도 보내주시면서 도록편찬사업을 끊임없이 보살펴주시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칠줄 모르는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도록이 새롭게 편찬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으며 전국각지의 《김일성동지혁명력사연구실》(당시)에 일제히 게시되게 되였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전국의 모든 학교들과 유치원들에도 경애하는 수령님의 어린시절도록이 게시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남녀로소 그 누구나 다 당의 유일사상교양의 거점인 《김일성동지혁명력사연구실》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게 되였다. 실로 새로 편찬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도록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모두에게 안겨주신 가장 귀중한 혁명의 교과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5.25교시 40돐을 맞는 우리의 모든 청년들은 혁명의 교과서인 수령님의 혁명력사도록학습을 더 깊이있고 실속있게 진행하여야 한다. 하여 어버이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위대성을 깊이 체득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선군청년전위들로 더욱 튼튼히 준비해나가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김 용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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