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무력건설사에 빛나는 어머님의 공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건군력사에 남기신 어머님의 공적은 참으로 큽니다.》 위대한 백두령장의 손길아래 창건 75돐을 맞는 조선인민군, 영웅적조선인민군이 걸어온 자랑찬 승리와 영광의 길에는 정규적혁명무력창설에 남기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크나큰 업적이 빛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건당, 건국의 바쁘신 나날속에서도 강력한 민족군대를 가지는것을 조금도 지체할수 없는 절박한 과업으로 보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시급히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킬데 대한 건군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총대로써만 나라의 광복을 이룩할수 있으며 당과 수령, 조국과 혁명을 지켜낼수 있다는 혁명의 진리를 심장으로 절감하신 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군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아낌없이 바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데서 그 핵심골간이 될 군사정치간부들을 훌륭히 키워내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23일 개원식으로부터 시작하여 평양학원을 연 30여회나 찾으시며 학원이 군사정치간부양성기지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다하도록 이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엇보다먼저 평양학원을 비롯한 여러 군사정치일군양성기관 학생들을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실하도록 교양하는데 가장 큰힘을 넣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창작되였을 때 당시 평양학원 원장이였던 김책동지와 토론하고 평양학원 학생들이 대합창으로 부르게 하시였다. 그리고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게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에도 자주 나가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우리 식의 전법, 전술로 튼튼히 무장시키도록 여러차례 교육강령을 보아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군대의 정치간부양성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체36(1947)년 3월말과 5월초에 평양학원을 찾으시여 평양학원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사상교양이며 사상교양사업을 잘하여야 모든 학생들을 김일성장군님께 끝없이 충실한 정치간부로 준비시킬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치일군을 양성한다고 하여 군사과목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는 편향을 포착하시고 일군들에게 군사를 잘 모르고서는 군인들을 군사과업수행에로 옳게 조직동원할수 없으며 군사지휘관들의 사업도 정치적으로 잘 도와줄수 없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규무력건설의 군종지휘간부육성사업에도 큰힘을 돌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무력의 골간육성만이 아니라 정규군건설에 필요한 후방보장사업과 군사장비를 개선하는 사업, 우리 군대의 후방물자생산기지들을 튼튼히 꾸리는 사업과 군인들의 후방생활, 군보 《조선인민군》을 창간하고 그 정치사상적수준을 높이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인민군대내 모든 부문의 사업을 세심히 보살피시였다. 주체37(1948)년 10월 14일 제1중앙군관학교 제2기 졸업식이 진행되던 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졸업식장에 나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끌끌한 졸업생들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식당근무성원들과 함께 친히 그들의 특식도 마련하여주시였다. 이날은 김정숙동지의 생애에서 가장 기쁘셨던 날들중의 하루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후날 이 시절의 어머님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졸업식사진에 어머님은 머리를 수그리고있었는데 그것은 울고계시였기때문이라고, 내가 그때 어머님에게 왜 우시는가고 물었더니 어머님은 이렇게 끌끌한 우리 군관대렬을 보니 항일무장투쟁시기가 생각나고 먼저 간 혁명동지들이 생각나서 그런다고 하시였다고 하시면서 건군력사에 남기신 어머님의 공적은 참으로 크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군건설사에 남기신 김정숙동지의 공적은 참으로 크며 우리 정규무력이 걸어온 승리의 첫걸음에는 어머님의 불멸의 자욱이 별처럼 빛나고있다. 청년들은 군건설사에 쌓아올리신 김정숙동지의 업적을 잘 알고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를 받드는 길에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가야 할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