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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에게 더 좋은 신발을 마련해주시려고
한평생 우리 인민들에게 행복하고 유족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 찬눈비 다 맞으시며 길아닌 길을 걷고걸으시며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보면 오늘도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군 하는 우리들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없던 지난날 토스레옷에 짚신 하나 변변히 신지 못하고 모진 천대와 학대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오던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신발을 더 많이 마련해주시기 위해서만도 그 얼마나 크나큰 심혈과 고로를 바쳐오시였던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친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주체60(1971)년 3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발공업부문의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로 만든 신발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우리 조선사람들의 발은 서양사람들의 발과 다르며 같은 동양사람들이라고 하여도 생활조건에 따라 발이 다르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인체구조학을 연구하고 신발형타를 만들어야 신발이 편안하고 신기 좋다고 하시면서 키큰 사람, 작은 사람, 녀자, 남자, 동해안사람, 서해안사람들의 발을 재서 인체구조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우리 나라 사람들의 발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신발을 생산할데 대하여 한두번만 강조하시지 않으시였다. 주체54(1965)년 7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로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는 속에서도 견본으로 만들어올린 신발을 보시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것을 보고 만들다보니 조선사람의 체격과 생활양식에 맞게 만들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다른 나라 사람은 한번 신으면 잠잘 때나 벗지만 조선사람은 방안이 장판이기때문에 집에 들어갈 때마다 벗는다고, 그러므로 신기 헐하고 벗기 쉬운 신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신발생산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문제를 강조하신것은 이때뿐이 아니였다. 주체57(1968)년 6월 어느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올린 신발견본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우리 나라 녀성들은 색갈이 곱고 다양한 신발을 신는것을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여러가지 색갈의 굽높은 구두를 생산하여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나라 신발공업이 나아갈 뚜렷한 방향과 방도를 명확히 밝혀주시였을뿐아니라 더 좋은 신발을 더 빨리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주체58(1969)년 2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발공업부문의 한 일군을 부르시여 친히 우리 나라에서의 가죽구두생산량을 타산해보시고 가죽원천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것을 하나하나 계산해보시였다. 농촌가정에서 돼지를 기르는것과 작업반에서 기르는것, 국영목장에서 기르는것들을 계산해보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현재 나올수 있는 돼지가죽만 하여도 수매사업을 잘 조직하여 신발공업에 돌리면 수백만컬레의 가죽구두를 생산할수 있고 앞으로 축산업을 더 발전시키면 우리 인민들에게 가죽구두를 다 신길수 있다고 하시면서 은정어린 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할아버님께서 삼아주신 두 컬레의 짚신을 가지고 만경대의 사립문을 나서시던 그때 벌써 이 나라 인민들의 설음과 고통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였으며 억압과 천대속에 짚신 하나 변변히 못신고 살아온 우리 인민들에게 오늘과 같은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려 혁명의 수천수만리길을 헤쳐오신 어버이수령님, 진정 우리 인민들에게 어서 빨리 더 좋은 신발을 더 많이 안겨주시려고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하자면 끝이 없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발생산에서 주체를 세워 우리 인민들의 기호에 맞는 신발을 생산공급하도록 설비와 자재 등 온갖 조건과 문수별 생산체계, 공급체계까지 몸소 세워주시였다. 주체62(1973)년 5월 어느날 3대혁명소조원들의 사업정형을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의주신발공장에 파견된 한 소조원의 보고를 받으시고 전국적으로 문수를 재고 그대로 비례를 맞추어 생산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계속하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발을 신을 대상자 1,000명을 료해장악하고 기준을 잡은 다음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사신을수 있도록 문수별로 비중을 따져가며 상업망에 고르롭게 보내는 체계를 세워주기까지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하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신발형편을 료해하시고 특수하게 발이 크거나 작아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그 해결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언제인가 이른아침 지방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평양으로 돌아오시던 길에 눈이 많이 내리여 아이들과 녀자들이 폭이 넓게 찍힌 남자들의 발자욱을 옮겨짚느라고 부자연스럽게 걷는것을 보시고 겨울신은 목을 높게 옆으로 채우게 하고 모달리도 대여 발이 시리지 않으면서도 보기 좋게 할데 대하여 세세히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하나의 신발견본을 보시고도 인민들의 편리를 먼저 생각하시고 하나의 생산된 신발을 보시고도 인민들에게 불편이 없겠는가 몸소 신어보시고서야 마음을 놓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동서고금의 그 어느 나라 력사에 이처럼 인민들이 신을 신발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히 보살펴준 령도자가 있었던가. 그것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들이 바라는 일이라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엮으실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인것이다. 우리의 모든 청년들은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시려고 한평생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깊이 새기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부강하고 번영하는 주체의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의 맨앞장에서 선군청년전위의 슬기와 용맹을 높이 떨쳐나가야 할것이다.
최 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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