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3(2014)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서 현 철

(제 2 회)

3

 

일요일이다.

일요일이라고 해서 만근의 생활에서 변화가 생기는것은 아니였다. 여전히 그는 집에서 책상에 마주앉아 도수높은 안경속에 련속되는 사색을 담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오전 한겻을 책상에 펴놓은 도면과 함께 보낸 만근은 조금도 휴식이 없이 점심식사가 끝나자 번역자료들을 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안경너머로 피뜩 벽시계를 바라보던 만근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5분전 2시였다.

아침에 수옥이가 하던 행동을 보면 분명 이 시간이라고 생각되였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별스레 정색해진 수옥이가 조심히 만근이곁으로 다가왔었다.

《아버진 오늘 집에 계시겠지요?》

딸애의 눈빛이 이상하게 반짝이였다.

만근은 딸애의 속이 들여다보여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허허, 나야 갈데가 있냐. 일이 큰산같이 밀렸는데. 왜, 무슨 일이 있냐?》

《아무것도 아니예요.》

보조개를 패우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연분홍색달린옷까지 받쳐입은 딸이 오늘따라 더 고와보였다.

《좋은 곳에 가는 모양이구나. 곱게 차려입은걸 보니.》

《오전에 강철공장로동자들이 체육경기를 하는데 제가 심판을 서게 됐어요. 그리구 오후엔… 됐어요. 아버지, 전 가보겠어요.》

딸애는 이렇게 공굴러가듯 밖으로 나갔던것이다.

생각에서 깨여난 만근은 서둘러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 꾸려진 공원안의 배구장은 아직 조용하였다.

만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다시한번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일이였다.

어제 밤 잠자리에서 하던 수옥이의 말은 분명 자기를 두고 한 말이였다.

《그렇다면 내가 인민반배구경기에?! 원 안될 소리, 내가 배구를 하다니.》

만근은 이렇게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책상우에 펴놓았던 도면들과 참고서들을 대충 한쪽으로 밀어놓고는 옷을 입었다. 그는 벽시계를 보았다.

이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수옥이의 손에서 빠지지 못할것만 같았다.

방에 들어서던 안해가 숨을 죽인채 휘둥그래진 두눈만 껌벅이고있었다.

안해가 갑자기 벌어진 이 일을 리해하기도 전에 만근은 벌써 신발을 신어버렸다.

나들문쪽으로 돌아서려던 만근의 눈에 아직도 온몸에 의문을 안고 서있는 안해의 모습이 비껴들었다. 그제야 만근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대해 안해에게 변명해야 함을 깨달았다.

잠시 문가에서 서성거리며 갑자르던 만근은 시계를 찬 팔목을 가리키며 바쁘다는 흉내만 내고는 황급히 밖으로 뛰여나오고말았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만근은 부지런히 걷기만 했다. 발길이 멈춰서는 곳에 와보니 연구소로 오가는 길에 늘 스쳐지나기만 하던 공원이였다.

만근이 공원에 들어서기 바쁘게 정구채를 든 로인들이 젊은이들처럼 와- 떠들썩거리며 그의 옆을 지나갔다.

(점잖지 못하게…)

만근은 쓴입을 다시며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배구장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청년들과 어울린 늙은이들이 젊음이 넘치는 기세로 배구를 하고있었다.

《헛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으나 그 어디를 보아도 활기띤 모습들이였다.

웃음이 넘치는 정구장, 응원소리 드높은 배구장, 아이들의 웃음이 피여오르는 로라스케트장… 마치 이 모든 곳에서 쫓겨난듯 외로운것은 만근이 혼자뿐이였다. 할수없이 공원의자에 앉은 그는 땅이 꺼지게 긴 한숨을 내쉬였다.

모든것이 그를 외면하는듯 했다. 아니, 스스로가 배척당하고있었다. 그럴수록 딸에 대한 고까움이 더욱 커졌다.

만근은 터벅터벅 공원에서 나와 길가에 서버렸다. 어데 갈곳도 없었다.

불쌍하기 그지없고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저 사람이?)

멀리서부터 체육복을 입은 사람이 달려오기에 체육선수인가 했는데 가깝게 오는걸 보니 대머리가 아닌가.

(나이도 있는 저 사람이 제정신인가. 지금이 어느때게… 나이가 아깝지.)

만근은 혀를 찼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 사람이 곧장 만근이 앞으로 달려오더니 떡 뻗치고서서 만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것이였다.

《?!》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왔더니 보람이 있군. 그러니 앞에 망두석처럼 서있는 사람이 분명 한만근이란 사람이겠다?》

만근은 멍하니 창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창림이 이 사람이…

《자네 멀리 가진 못했구만, 하긴 갈데도 없지. 그런데 여기서 뭘하나?》

《그저 좀… 사색을…》

《아하, 그러니 제발로 이 체육공원에 왔단 말이지. 잘했네. 난 자네가 그럴줄 알았네. 자, 이젠 가자구.》

솥뚜껑같은 손이 무작정 만근의 손목을 휘여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숨소리가 거칠게 뿜어나왔다.

《도대체… 어디로…》

창림이 그의 손목을 잡은채 멎어섰다.

《모르는체 하니 대줄수밖에 없지. 이제 우리 인민반에서 배구경기가 있게 되네. 이럴새가 없으니 빨리 가세.》

과연 범의 꼬리였다.

만근은 그 범의 꼬리를 놓지 못해 끌려가고말았다.

 

아빠트앞에 있는 공원배구장에는 벌써 인민반사람들로 붐비였다.

《늦지 않았소?》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점잖게 공원으로 들어섰다.

《아니예요. 두집 세대주들이 함께 왔으니 이젠 됐습니다.》

인민반장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버지, 어디 갔댔어요?》

수옥이 이러며 만근에게 체육복을 주었다.

딸보다도 안해가 더 좋아하는것 같았다.

《당신이 없어서 하마트면 내가 나갈번 했수다.》

《못 나갈건 또 뭐요? 수옥이 말대로 하면 모두가 다 해야 하는 체육인데…》

만근은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당신은 정말 락후해요.》

《어머니.》

수옥이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아, 만근이 이 사람, 뭘하고있나? 빨리 들어서지 않구…》

만근은 배구장에 들어선 선수들을 보았다.

이윽고 체육복을 입은 만근이 허둥거리며 배구장으로 들어섰다.

수옥이가 부는 호각소리가 길게 울렸다.

선수들이 나란히 서서 인사를 나누고 배구장을 둘러싼 인민반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인민반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처음 배구장에 나선 만근은 모든 사람들이 꼭 저만 지켜보는것 같아 모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준비운동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자 만근은 지금 꿈을 꾸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각이였다. 사람들은 저저마다 꽹과리를 울리며 응원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첫 공이 그물을 넘어 날아오는 순간 만근은 이왕 이렇게 된바에는 해볼판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뻔한데 몸은 이미 옆으로 피한 뒤였다.

《아니, 어쩌자구…》

뒤에 있던 창림이 날쌔게 나와 받은 공이 요행 그물을 넘어갔다.

상대편응원이 배구장을 들었다놓았다.

《하나- 둘- 셋.》 하고 끝나는 순간에 키가 큰 1층 1호집아들이 몸을 솟구치더니 힘껏 공을 내리쳤다.

《야-》

환성이 터져올랐다.

공을 받지 못한 만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결국 나때문에.)

만근은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집중하였다.

힘겨웠지만 이번에는 다행히도 넘어오는 공을 받아내였다. 저도 모르게 막혔던 숨이 물목터치듯 뿜어져나왔다. 그다음에도 만근은 공을 받아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익숙되여갔다. 그러자 사기가 나면서 자신심도 생기였다.

만근이네 응원도 만만치 않았다. 그 응원열기를 타고 만근의 손에서 튀여난 공이 그물을 넘어갔다.

키가 큰 1호집아들이 또다시 번쩍 몸을 솟구치더니 공을 치려고 팔을 힘껏 뒤로 제치였다.

아짜아짜한 순간이였다.

창림이가 타격공을 받으려고 자세를 취하였다.

만근이도 바싹 긴장해서 자세를 바로하였다.

그런데 강타로 날아올줄 알았던 공이 살짝 만근이쪽으로 떨어졌다. 자세를 바로하고있던 만근이 기다렸다는듯 어렵지 않게 그 공을 받아내였다.

《와-》 하는 응원소리가 터져올랐다.

《아이쿠, 못 받을줄 알았는데…》

1호집아들이 중얼거리며 웃는다.

《잘했소.》

창림이 만근의 어깨를 쳐주었다.

만근의 얼굴에 웃음이 비꼈다.

경기는 비록 졌지만 즐겁기만 했다.

답답하던 가슴이 확 열리고 새힘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만근은 이제껏 연구에서 전진이 없는것이 자신의 로쇠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로쇠가 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연구소에서 대중체육활동으로 얼마나 들끓었던가. 그때마다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체육이 이렇게 생의 활력과 사업의욕을 자겨다줄줄이야.

《어떤가. 아직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러보냈다고 생각하나?》

《고맙네. 내 일찍 자네 말을 들었어야 하는걸.》

오늘처럼 창림이의 벗어진 이마가 믿음직하게 보이기는 처음인것 같았다.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그렇단 말이지. 좋아, 아직 늦지 않았네.》

《그렇지 않구. 이제 보라구. 내 연구사업뿐만아니라 배구기술에서도 자네를 앞서지 않나.》

《허, 야단인걸. 이럴줄 알았으면 자넬 어제날의 만근이로 계속 남아있게 하는건데…》

창림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라고 왜 오늘에 못살겠나. 자네같은 친구가 있는데.》

《수옥이와 같은 딸을 둔 덕이지.》

《아버지.》

수옥이가 달려왔다.

《기분이 어떠세요?》

만근은 수옥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수옥아, 이 아버질 용서해라. 난 괜히 너를 원망했구나. 네가 오늘 잃어버렸던 나의 정열을 다시 찾아주었구나.》

《정말이예요, 아버지?》

《그럼!》

수옥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아버지, 온 나라 인민들이 건강하고 활기에 넘쳐 문명하게 살게 하려는것은 바로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이예요. 그래서 새롭게 꾸려진 공원들에 배구장, 롱구장, 로라스케트장들이 있는게 아니겠어요.》

《어디 그뿐이냐. 현대적으로 건설되는 물놀이장을 봐도, 마식령에 펼쳐진 현대적인 스키장을 봐도 잘 알수 있지.》

만근은 수옥이와 창림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였다.

얼마나 좋은 세월에 우리모두가 살고있는가.

만근은 솟구치는 격정에 입을 열었다.

《세월은 머리에 흰서리를 내린다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펼치시는 로동당세월은 우리에게 젊음만을 안겨주는구나.

얘 수옥아, 우리모두 경제강국건설뿐만아니라 사회주의문명국건설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경애하는 원수님의 고마운 은덕에 꼭 보답하자꾸나.》

《알겠어요, 아버지.》

그들의 밝은 얼굴우에 푸르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정말로 몰라보게 달라진 한만근의 어제와 오늘이였다.

인민의 건강, 인민의 랑만, 인민의 행복의 위해.

(사포구역 새거리4동 제76인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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