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3(2014)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서 현 철
(제 1 회)
1
한만근이라 하면 연구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가 지난날에 연구하여 만든 첨단기계들과 또 지금 만들고있는 새형의 압축기는 그의 이름과 함께 불리우고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그의 생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만큼 그는 조용하게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였다.
그의 생활은 집에서 연구소로, 연구소에서 집으로 이렇게 고정된 자리길을 왕복하는 부단한 반복과정속에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름처럼 천근만근이로 무거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어엎는 뜻밖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여름 갑자기 들이닥친 강한 비바람피해를 막느라고 온 연구소가 떨쳐나섰을 때 유독 그만이 바람에 넘어져 큰 소동을 일으켰던것이다.
《어떻게 된거요?》
《다치지 않았소?》
사람들이 와-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것은 입을 굳게 다물고있는 한만근의 찌프러진 얼굴이였다. 그는 20여년을 연구소에서 보냈다. 20여년의 그 세월이 그에게 연구사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만근은 평가가 어쨌든 자기의 생활신조를 버리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최근 한만근의 태도를 봐도 잘 알수 있었다.
온 나라를 휩쓰는 체육열풍속에 연구소도 들끓었다. 만근은 그 열풍속에 뛰여든 연구소안의 사람들을 안경너머로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체육열풍은 금메달로 조국의 영예를 빛내이는 체육인들이 일으켜야 할 몫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 연구사들은 마땅히 더 많은 연구성과로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해야 한다. 그런데 귀중한 시간을 탐구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운동장에서 흘려보내다니…
만근은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머리를 기웃거렸고 어떤 때에는 어이없어 그냥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가 어이없다고 보는 사람들속에는 같은 연구사로서 소꿉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던 창림이도 있었다.
집도 같은 호동, 같은 층에서 사는 막역한 친구였다.
대학시절부터 서로 실력을 다투어온 그들은 지금은 연구소를 받드는 쌍기둥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연구소안의 연구사들이 자기들의 직분을 잊고 운동장에서 뛰여다니는것은 못 본척 한다쳐도 창림이가 그렇게 하는것은 참을수가 없어 만근은 이따금 그에게 자기식의 조언을 주군 했다.
《여보게, 공을 치는 그 열정까지 연구사업에 바친다면 자넨 아마 세계적인 과학자가 될지도 모르네. 그러니 그런 일에 정신을 팔지 말게.》
그럴 때마다 창림은 《깊은 우물에서 나와 현실에 몸을 잠그라구.》하며 그를 시야가 좁은 보수적인 연구사라고 비난하군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만근은 창림에게 조언은커녕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주일전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 사업총화가 끝난 뒤였다.
《자, 배구경기에 나갈 준비를 합시다.》
실장이 하는 말이였다. 그런데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허… 이거 야단인걸. 창림동무가 없으니… 어쩐다?》
만근이처럼 중요한 연구과제를 맡은 창림은 벌써 시험단계에 들어가 시험공장에서 살다싶이 했던것이다.
《아무래도 누가 대신해야겠는데 누가 해보겠소?》
실장이 실안의 연구사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자 만근이처럼 체육에 별로 관심이 없는 몇명의 연구사들이 일시에 머리를 숙이였다. 자기를 찾지 말라는 소리다. 하지만 만근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머리를 숙일 필요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시간을 다투는 중요한 연구과제가 있었던것이다.
《할수없이 만근동무가 나가는게 어떻소?》
웬일인지 실장은 만근을 불렀다.
그 의도를 알아내려는듯 만근은 실장을 쳐다보았다.
실장이 웃으며 말하였다.
《만근동무의 배구실력이 간단치 않다는데 오늘 자기 실력을 한번 보이오.》
《예?! 그건 누가…》
만근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자 장내에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머리를 숙였던 연구사들이 웃음어린 얼굴로 만근을 보며 자기가 뽑히지 않은게 다행이라는듯 속에 가득차있던 근심을 뿜어내는것이였다.
실장이 만근에게 체육복을 주었다.
《자, 모두들 경기장으로 갑시다.》
만근의 얼굴은 금시 울음이라도 터져나올듯 이지러졌다.
《실장동무두 참, 나에게 지금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면서도…》
《한동문 지금 시간을 잃어버리는것처럼 생각하지만 오히려 얻는것이 더 많을거요. 이제 두고보오.》
《무슨 소릴 하는지.》
한만근이 이러며 맥없이 주저앉는데 문이 열리며 창림이 들어섰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실장에게 말하였다.
《내가 늦지 않았구만요.》
창림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만근은 손에 들었던 체육복을 놓으며 창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네 왜 그러나?》
《시험단계에 들어가 바쁘다더니 그게 다 빈소리였구만.》
《사실 바쁘네. 하지만 자넬 생각해서 이렇게 왔네.》
만근의 눈이 커졌다.
《날 생각해서 왔다구?》
《그렇네. 자네가 우리 실 망신을 톡톡히 시킬텐데.》
《내가?!》
만근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창림의 번들번들한 이마가 뻔뻔스럽게 안겨들었다.
연구소의 기둥이라는 내가 망신을 시킨다구. 도대체 과학자의 망신이 뭔지도 모른단 말인가.
《아, 이러다 다투겠소. 자, 다들 가기요.》
실장의 뒤를 따라 모두가 배구장으로 갔다.
홀로 남은 만근은 씩씩거리며 그 자리에 못박힌듯 한동안 서있었다.…
그날부터 만근은 창림이와 아예 마주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압축기를 완성하려는 하나의 생각뿐이였다.
그런데 도무지 실적이 나지 않았다.
며칠동안 꼬박 밝히며 사색을 이어오면 종당에는 시작점에 와있는가 하면 아무리 자료들을 보아도 집중이 되지 않는것이였다. 어떤 때에는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파났다.
나이를 탓할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더욱 시간에 매달리는 그였다.
연구소에 나가면 체육열풍에 바늘방석에 앉은듯 하여 만근은 연구사업의 대부분을 현장과 집에서 보내였다. 환경을 바꾼다는것이였다.
2
만근이 환경을 바꾼지 며칠 안되여 그의 딸 수옥이 집으로 돌아왔다.
축구선수였던 수옥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있는 고급중학교 체육교원으로 배치받았던것이였다.
바로 이럴 때 텔레비죤에서 2013년 동아시아컵녀자축구경기대회소식이 련일 방영되였다.
수옥은 텔레비죤앞이라는것도 잊고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이 뛰여다니는듯 했다.
경기에서 우리 팀이 1위를 쟁취했을 때는 그들과 함께 울기까지 했다.
얼마후에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2013년 동아시아컵녀자축구경기대회에서 영예의 1위를 한 우리 녀자축구선수들을 만나주시는 감격적인 화면이 텔레비죤에서 방영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들의 경기성과를 열렬히 축하해주시면서 특히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이 되는 전승절에 우승함으로써 승리의 7. 27을 뜻깊게 경축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들에게 기쁨을 더해주고 필승의 신심과 락관을 안겨주었다고 말씀하시였다.
수옥은 텔레비죤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격정에 싸여있는 만근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아버지, 전 내가 맡은 학생들을 훌륭한 축구선수로 키워 꼭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게 하겠어요.》
《용타, 이젠 우리 수옥이가 다 컸구나.》
만근의 가슴은 후더워왔다.
그런데 딸은 학교가 아니라 집안으로 체육열풍을 몰아오기 시작했다.
웃방에 무게있게 걸려있던 《사색》이라는 글이 씌여진 족자가 간데없이 날려가고 《체육열풍》이라는 활달한 글이 씌여진 새 족자가 그 자리에 보란듯이 나붙었다.
《체육열풍속에 건강한 몸이 있고 건강한 몸에 충실한 사색이 있다.》라고 쓴 일과표까지 만들어 책상우에 놓은걸 보아 간단치 않은 폭풍을 예고해주는듯 했다.
만근은 얼굴을 찡그렸다.
《뭐 6시부터 운동시간?》
비를 그으려고 처마밑에 몸을 숨기니 처마로 흘러내리는 비물에 옷을 적시는 격이라 할가.
만근은 새벽부터 자기를 운동장으로 끌어내느라 애쓰는 딸이 리해되지 않았다. 더우기 어처구니없는것은 말끝마다 창림이를 곁들이는것이였다.
《옆집아버지를 좀 보세요. 아침마다 꼭꼭 운동을 하시니 얼마나 건강하고 또 젊어보이고 기백이 있어보여요?》
수옥은 만근을 앞세우고 달리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옆집아버진 연구사업에서도 벌써 시험단계를 끝마쳤대요. 그런데 아버진… 이제 겨우… 정말 한심해요.》
《그 사람이야긴 하지도 말아.》
만근이 헐떡이며 눈을 흘겼다.
《아버진 왜 옆집아버지를 미워해요?
옆집아버지가 성과를 많이 내는것은 바로 체육사업에 발벗고나섰기때문이예요. 좀 따라배우세요.》
달리던 만근이 그 자리에 서버렸다.
《뭐?! 체육을 하면 성과가 난다구? 너 그 사람과 꼭같은 말을 하는구나.
네가 운동을 하겠으면 그 사람하고나 해라. 그러니 날 거기에 끌어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
만근의 뜻밖의 태도에 수옥은 어이없는 웃음만 지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
닫겨진 문짬으로 놀라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자리에 누운 수옥이가 하는 말이였다.
《어머니, 래일 말이예요. 우리 인민반에서 세대주들의 배구경기가 있어요.》
《아니, 세대주들의 배구경기가?! 그거 볼만 하겠구나.》
《흥, 아버진 참가도 못하는데 뭐가 볼만 해요?
지금 온 나라가 체육열풍으로 들끓는데 아버진… 갑속에 든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으니… 그래서 옆집아버지가 반장어머니와 토론하고 생각했어요.》
웬일인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만근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네 아버지가 참가하겠다고 할게 뭐니.》
《하지만 이번엔 빠지지 못해요. 그렇게 체육을 싫어하니 바람에 다 날리지요.》
《그건 무슨 소리니?》
《쉿! 조용해요. 아버지가 듣겠어요.》
(그러니 창림이 그 사람이… 이젠 수옥이까지 끼여들었단 말이지.)
만근이 이런 생각을 하며 아래방의 기색을 살폈으나 잠에 들었는지 더이상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만근은 이런저런 고까운 생각에 빠져 잠들지 못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새날은 제시간에 밝아오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