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3(2014)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백 상 균
(제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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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례년에 없는 강추위를 몰고 달려들었던 사나운 겨울은 돌격대원들의 뜨거운 열기에 별로 맥을 추지 못하고 간다는 소식도 없이 도망치듯 물러가고말았다.
벌써 냉이며 달래 등 풀싹들이 자기들이 편안히 겨울잠을 자는 사이에 돌격대원들이 해놓은 장한 일을 구경하고싶은듯 서둘러 땅을 헤집고 머리를 쳐들었다.
봄철에 들어서면서 할일이 많았다.
토지계량제도 뿌려야 하였고 풀판조성도 하여야 하였는데 급선무는 방풍림조성이였다. 지휘부에서는 우리가 맡은 구간에 이깔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돌격대원들을 먼저 작업장에 올려보낸 나는 취사원들과 식당운영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토론하고 뒤늦게야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수수천년 잡관목과 풀덤불에 짓눌리여 숨도 제대로 못 쉬다가 멀끔하게 때벗이를 한 등판은 막혔던 숨을 내쉬듯 우유빛땅김을 피워올린다.
흐뭇한 마음으로 등판을 휘살피며 걷던 나는 앞에서 마주오는 시공참모와 현철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소?》
나의 물음에 시공참모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글쎄 현철동무가 나무수종과 방풍림위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기에… 아무래도 현철동무의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건 무슨 소리요?》
묻는듯 한 나의 눈길에 현철이가 확신성있게 말하였다.
《우리가 여기 지형과 토양조건을 잘 모르다나니 이렇게 된것 같습니다.》
하더니 서두르며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때 수첩과 함께 껴묻어나온 그 무엇인가가 땅바닥에 뚤렁 떨어졌다.
무심중 그것을 내려다보던 나는 눈이 떼꾼해겼다.
약간 헤쳐진 붉은 천사이로 한줄의 노란줄이 건너간 령장을 보았던것이다.
그것은 현철이가 제대되여올 때 가지고온 그 수수께끼의 령장이였다.
사람들에게 의문부호를 던져준 저 령장이 뭐가 그렇게 소중해서 아직도 품고다니는걸가. 그것도 붉은 천에 정히 싸서…
분명 그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듯싶었다. 시공참모도 그것을 본듯 의미있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황황히 그것을 집어든 현철은 의문이 가득 어린 나와 시공참모의 눈길을 피하며 주머니에 넣더니 수첩을 펼치였다.
《이걸 보십시오.》
자석에 이끌리듯 수첩을 들여다보는 나와 시공참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거기에는 크고작은 등고선들이 그려져있었다. 현철이가 한곳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가 우리가 맡은 구간인데 우리 구간은 봄철에 찬바람이 제일 많이 부는 곳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방풍림조성은 현재위치가 아니라 등성이를 따라 정하고 기본바람을 막을수 있는 방향으로 바자를 치듯 여러줄로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나무는 키나무와 떨기나무를 배합해서…》
귀를 항 열고 현철의 설명을 듣던 나는 입을 딱 벌리였다.
언제 우리 작업구간의 지형 그리고 바람의 세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냈을가.
현철은 다음장을 번지였다.
《그리구 여기 토양은 아시다싶이 질매흙땅으로서 지력이 낮고 갈이층아래는 진흙땅으로 되여있기때문에 나무뿌리가 잘 내리지 못하고 랭습피해를 받아 사름률이 떨어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흙땅에서는 뿌리가 깊이 뻗는 생활력이 강한 오리나무와 같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해박하고 론리가 정연한 현철의 강의를 수채구멍에 물빨리워들어가듯 듣는 나의 흉금에서는 감탄이 련발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남들이 웃고 떠들며 일할 때, 휴식시간에 한담을 할 때 늘 사색에 잠겨있는 그를 두고 소죽은 귀신이라고 속단했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면 여기 세포등판을 당의 의도대로 잘 꾸리겠는가 하는 사색과 탐구의 순간순간이였단 말인가.
뜨거운 애국심을 지니지 못하였다면 어찌 그런 일을 할수 있으랴.
그것이 과오를 씻기 위한 모지름이라고 할수 있을가.
한동안 상념에 잠겨있던 나는 생각난듯 물었다.
《그런데 오리나무가 어데 있소?》
《예, 그건… 군양묘장에 알아보니 오리나무모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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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부에 제기하여 나무수종과 나무심는 위치를 바꾼 우리는 불이 번쩍나게 방풍림조성을 끝내였다.
지휘부일군들은 현철의 과학기술적분석에 탄복을 하며 금천련합기업소중대에 보배덩이가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현철은 보배덩이였다.
방풍림조성을 끝낸 우리가 남보다 먼저 토지개량제생산에 진입하게 된것도 현철이가 짬짬이 주변산들을 빗질하듯 하며 석회석원료를 찾아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토지개량제생산도 먹어놓은 떡인셈이다.
현철의 헌신적인 소행에 머리를 숙일 때마다 나의 가슴속에서는 연추처럼 매달려있는 그 한줄배기령장에 대한 사연을 알아보고 그의 마음속 구김살을 펴주고싶은 충동이 강렬하였다.
×
이제는 봄빛이 완연하였다.
거무틱틱하고 보기 흉한 겨울옷을 벗어던진 산과 들은 봄아씨가 단장해주는 파아란 새옷을 갈아입느라 서두르고있었다. 방풍림으로 심은 오리나무가지들에 돋아난 뾰조름한 싹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기쁨을 안고 산산한 바람에 가락을 맞추어 춤을 춘다.
로에서 구운 소석회를 한달구지 실어다 흙깔이를 한 들판에 뿌린 나는 흥뜬 마음으로 산경사지를 따라 우글우글하게 뻗어간 소로길을 따라걷다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저앞에서 현철이가 웬 군인과 두손을 마주잡고 춤추듯 빙글빙글 돌아가고있었던것이다.
한참이나 기껍게 웃고 떠들던 두 사람이 손을 놓고 주고받는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귀를 간지럽히였다.
《그러니 배치를 받자마자 여기 세포등판개간전투장으로 탄원해왔단 말이지.》
《그렇네. 자네처럼 여기 세포등판에 땀을 바치자는거네.》
《결심 잘했네. 그래 중대지휘관동지들과 동무들은 다 잘 있겠지?》
《그럼. 중대장동지랑 동무들은 자네가 여기 세포등판개간전투장으로 탄원했다는걸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네. 그러면서 날 보고 꼭 자네를 만나라고 하더군.》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귀동냥해 듣는 나를 본 현철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중대장동지!》
《…》
현철은 둬발자국뒤에 서있는 군인을 나에게 소개하였다.
《저와 군사복무를 함께 한 동무입니다.》
《음, 내 다 들었소.》
그 군인이 벙글벙글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옹이없는 나무처럼 미끈한 그의 잔등에는 배낭이 지워져있었다. 그때 현철은 땅바닥에 누워있는 무엇인가 가득 담긴 마대의 아구리를 쥐고 욱- 힘을 쓰더니 어깨에 걸머지였다.
《그건 뭐요?》
《예, 진흙입니다. 석회구이로를 하나 더 쌓자고… 동무들이 기다리겠는데 제 얼른 작업장에 올려다주고 오겠습니다.》
《가만, 이 달구지에 싣고 올라가오.》
나는 얼른 현철의 잔등에서 진흙마대를 내리워 달구지에 실었다.
현철이가 소잔등을 가볍게 건드리였다.
《이랴!》
우뚝 버티고 서있던 황소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였다.
미더운 눈길로 현철의 뒤를 바라보던 나는 사관장을 이끌어 길옆에 주저앉았다. 사관장이 배낭아구리를 헤치며 입을 열었다.
《현철동무가 여기 세포등판으로 떠나기 전날 풀씨를 가지러 중대에 왔다갔더군요.》
《풀씨요?》
나는 뻥해졌다.
《예. 그런데 그때 중대는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판정을 받기 위해 행군길에 있었지요. 일두 참…》 하며 사관장이 배낭에서 무엇인가 가득가득 담겨져있는 작은 주머니들을 꺼내 주런이 놓았다. 주머니마다에는 풀씨들의 이름을 쓴 흰 천이 정성스레 붙어있었다.
국화꽃, 기름냉이, 기름무우, 붉은 토끼풀… 오리새, 진주꽃자리, 전등싸리 등등…
그것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는 나의 마음은 아릿해났다.
그러니 현철이가 중대가 세포등판으로 떠나오던 날 출발시간을 지연시킨데다가 이틀후에 나타난것이 이 풀씨때문이였단 말인가. 그때 그 리유를 따지는 내앞에서 끙끙 갑자르며 대답을 못하던 현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것들은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속에서 생겨난 우리 중대풀판의 풀씨들이랍니다. 현철동문 이 풀씨들을 여기 세포등판에 뿌리고싶어 왔더랬습니다.》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속에 생겨난 풀판이라니요?》
나의 성급한 물음에 사관장의 얼굴에는 따뜻한 정회가 어리였다.
×
현철이가 군대에 입대한 이듬해 여름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소문도 없이 중대에 찾아오시였다. 당시 중대는 상급참모부의 작전적의도에 따라 새로 전개한 상태여서 미흡한것이 많았다. 소뿔도 휘여든다는 삼복의 뙤약볕에 야전복이 화락하니 젖어있는 장군님을 뵈온 병사들은 기쁨보다 가슴이 아파 목메여 울었다.
장군님 뵙고싶은 마음 간절하였지만 오늘처럼 무더운 날 이렇게 먼길을 오실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병사들이였다.
울지 말라고, 동무들이 보고싶어 찾아왔다고 하시며 세간난 자식의 집에 찾아온 친부모의 심정으로 중대병실들과 교양실, 세목장을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식당으로 들어서시였다.
그때 한줄배기였던 현철은 식당근무를 서고있었다.
군인들의 식생활형편을 하나하나 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고 식생활이 풍족치 못하구만 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오면서 보니 중대의 주변산들에 나무들이 얼마 없고 생땅이 드러난 곳들이 있던데 산에 나무를 심고 풀판을 조성하고 풀먹는 집짐승들을 기르면 중대살림살이를 풍성하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며 그 과정이 군인들이 애국심을 키우는 과정으로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풀판조성과 풀먹는 집짐승들을 기르는 방법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 말씀을 뼈에 새기고 심장에 새기는 현철은 자기가 구실을 못하여 삼복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대에 찾아오신 장군님께 기쁨은 고사하고 걱정을 끼쳐드린것만 같아 가슴이 졸아드는듯하였다.
비오듯 흐르는 죄책의 눈물을 씻을념을 못하고 서있던 현철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웨쳤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산에 나무도 심고 풀판을 조성하여 풀먹는 집짐승들을 많이 길러서 다시 오시면 꼭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중대는 장군님말씀대로 산에 나무를 심고 풀판도 조성하였다. 그 앞장에는 현철이가 서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버이장군님께서 중대에 우량종염소를 보내주시였다.
병사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을 받아안은 중대군인들은 감격에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현철은 자진하여 중대의 축산을 맡아나섰다. 장군님께서 기둥처럼 심어주신 애국의 한마음을 안고 새로 심은 나무들을 살리기 위하여 애썼고 풀판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한해두해 세월이 흐르며 중대주변산에 나무들이 늘어났고 풀판에서는 염소와 토끼들의 마리수도 늘어났다.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쏟는 현철의 땀은 그대로 고기가 되고 우유와 알이 되여 중대의 식생활을 풍성하게 하였다.
복무의 나날 현철은 부분대장, 분대장, 부소대장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어버이장군님을 만나뵙던 영광의 그날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려는 그의 마음은 더더욱 강렬해졌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중대는 수림화의 본보기로 련합부대적으로 소문이 났으며 산판에 구름처럼 흐르는 집짐승들로 중대의 식생활은 나날이 더 풍성해졌다.
그럴수록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해졌다. 장군님께서 오늘의 중대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산처럼 쌓이고쌓이는 그리움을 안고 다시 오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현철은 어느날 어버이장군님께서 천만뜻밖에도 달리는 야전렬차에서 순직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를 듣게 되였다.
믿을래야 믿어지지 않는 그 소식에 현철은 그만 졸도하고말았다.
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중대에 다시 오시면 전선길 천만리에 쌓이고쌓인 피로를 푸시고 기뻐하실 장군님을 손꼽아 기다려온 소원을 그렇게도 몰라준단 말인가.
원래 말이 적던 현철은 그때부터 아예 벙어리가 되다싶이하였다.
하지만 어버이장군님께 드리지 못한 기쁨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드릴 한마음으로 더욱 억척같이 일을 하고 또 하였다.
어버이장군님 걷고걸으신 선군의 길을 그대로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언제 중대에 오실줄 어이 알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현철은 아쉽게도 소원을 이루지 못한채 만기복무를 마치고 제대되게 되였다.
×
사관장의 이야기는 끝났다.
감동이 없이는 들을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의 마음은 화로불을 안은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과오의 표적처럼 생각하였던 현철의 한줄배기령장에 그렇듯 가슴뜨거운 사연이 있은줄 어찌 알았으랴.
눈앞에 붉은 천에 정히 싸서 가슴에 품고있는 한줄배기령장이 얼른거리였다. 현철의 장알박힌 손이 얼른거렸고 여기 세포등판에 발을 들여놓은 날부터 오늘까지의 길지 않은 나날 그가 걸어온 자욱들이 되짚여졌다. 남들처럼 요란한 말을 할줄은 몰라도 묵묵히 땀과 열정, 지혜를 아낌없이 바쳐온 현철은 이 땅에 바치는 애국충정이란 무엇인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부지중 언젠가 현철이가 한 말이 메아리처럼 귀전을 쳤다.
이 땅을 가꾸자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도 뜨겁게 안을줄 아는…
현철은 한평생 이 땅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지어 길가의 조약들까지도 마음속에 소중히 안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걸으신 어버이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주의를 체질화한 참인간이였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엎어놓아도 뒤집어놓아도 변함이 없이…
용암처럼 뜨겁게…
현철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는 나의 자욱에는 곧은 길보다 갈지자로 걸은 길이 더 많은듯싶었다.
《중대장동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십니까.》 하는 소리에 상념을 털어버린 나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언제 내려왔는지 현철이가 사관장의 곁에 서있었다.
땀으로 얼룩진 그의 잘생긴 얼굴에 환한 웃음이 어려있었다.
그 웃음은 한점의 구김살도 없이 밝았다.
《현철동무, 그 령장을 보여줄수 없겠소?》
나의 청에 현철은 주머니에서 붉은 천에 싸여있는 령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는 나의 마음은 천만근을 안은듯 무겁게 느껴졌다.
한겹두겹 붉은 천을 헤치니 붉은색바탕에 노란줄이 건너간 령장이 눈뿌리를 지지며 안겨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