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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의리는 국경을 넘어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신 혁명적의리에는 국경이 따로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류의 자주위업을 위한 길에서 알게 되신 여러 나라 국가지도자들, 각국 공산당, 로동당 당수들과 친분관계를 맺으신것은 물론 수많은 국제주의전사들을 키워내시고 그들에게 끝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꽃피워오신 혁명적의리의 력사에는 국제주의전사로 이름떨친 이전 쏘련의 노비첸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생 78돐을 축하하여 찾아온 재미조선인축하단과 재카나다조선인축하대표를 위한 오찬회에서 노비첸꼬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그는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참으로 과분한 말씀을 하시였다. 노비첸꼬로 말하면 원래 전 쏘련국경지대에서 군사복무를 하다가 대일전쟁에 참가하여 조선에 오게 되였다. 주체35(1946)년 3월 1일, 평양에서 성대히 조직된 3.1인민봉기를 기념하는 보고대회장에 우리 경위대원들과 함께 노비첸꼬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보고대회에서 한창 연설을 하고계실 때였다. 연탁으로부터 서너발자국도 되나마나한 곳에 수류탄이 날아와 떨어졌다. 남조선에서 파견한 테로단이 한짓이였다. 위기일발의 이 순간 주석단주변에서 보초를 서던 노비첸꼬는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가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잡아쥐였다. 그러나 손에 잡은 수류탄을 그 어디에도 던질수가 없었다. 사방에 사람들이 겹겹이 들어서있었던것이다. 잠시도 지체할수 없게 된 그는 더 생각할새도 없이 수류탄을 배에 대고 땅에 엎드렸다. 순간 《꽝ㅡ》하고 수류탄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였다. 그는 자기 한몸을 바쳐 위대한 수령님을 보위하고 형제의 나라 인민들을 구원하였던것이다. 그런데 국제주의전사 노비첸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평시에 책을 즐겨읽던 그가 그날도 군복외투앞가슴에 두툼한 소설책을 품고있었는데 그것이 수류탄파편을 막아 그의 생명을 지켜주었던것이다. 그러나 수류탄을 잡았던 한쪽 손만은 파편에 잘리우게 되였다. 이러한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늘 잊지 않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쏘련에 주재하고있던 우리 나라 대사에게 과업을 주시여 넓으나 넓은 쏘련땅에서 그것도 근 40년전의 그를 끝내 찾아내게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38년전의 일을 세상에 널리 공포하시고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산골에서 말몰이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던 노비첸꼬, 제대되여 고향에 돌아온 그는 처음에 마을사람들에게 조선에서 겪은 이야기를 자주 하군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들도 도이췰란드놈들과 여러해동안이나 싸워보았지만 수류탄을 배에 깔고 터뜨린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수 있는가 하는것이였다. 점차 그는 더는 그들과 입씨름하기를 그만두고 조선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추억속에 묻어두었다. 세월은 망각의 비바람과 같은것이여서 이제는 사람들의 추억속에서조차 사라져버렸던 이야기,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 수령님에 의하여 다시 소개되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비첸꼬가 높이 평가되였던것이다. 자기 나라 사람들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았던 일을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잊지 않으시고 기어이 찾아내시여 응당한 평가를 받게 하시니 세상에 이런 수령, 이런 령도자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가 만일 조선혁명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천길 땅속이라도 뒤지고 수억만리 하늘에 올라가서라도 기어이 찾아내시여 력사의 단상우에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급적형제들과의 우의와 의리를 소중히 간직하시고 꽃피워주신 이야기가운데는 중국인항일혁명렬사 장울화와 그의 유가족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혁명을 하지 않아도 호의호식할수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혁명의 길에 나섰고 그 길에서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을 피로써 도와준 중국인 장울화렬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평생 그를 잊지 못해하시며 장울화렬사를 조중친선의 상징으로, 국제주의전사의 귀감으로 내세우시였다. 그리고 그의 묘지에는 친필로 아로새긴 장울화렬사기념비까지 세워주시였다. 장울화렬사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울화렬사의 가족들을 찾으시여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친어버이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74(1985)년 4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평양을 방문하고있는 중국의 국제주의전사 장울화동지의 아들딸인 장금천, 장금록과 손자인 장기를 만나주시였다. 두팔을 벌리고 나오시다가 인사를 올리며 달려오는 옛전우의 아들딸과 손자를 뜨겁게 포옹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옛전우의 얼굴을 그려보시는듯 그들의 눈매며 입모습을 세심히 여겨보시면서 꼭 잡으신 손을 놓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장울화동지를 만난것만 같다고, 자신께서는 장울화동지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고, 장울화동지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옛전우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처음에는 장울화동지의 아들일행과 함께, 다음에는 장울화동지의 아들과 딸, 손자와 함께 찍으시였으며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귀여운 자식들과 사진을 찍듯이 그들오누이를 량팔에 꼭 끼시고 나란히 서시여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참으로 이날의 이 장면이야말로 우리 수령님과 국제주의전사 장울화동지와 그 유가족들사이의 친분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숭고한 화폭이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존함이 모셔진 선물시계를 친히 채워주시였다. 그리고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오찬을 드시며 장울화동지에 대하여 또다시 회상하시면서 나와 장울화동지는 조중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친선을 위하여 력사적으로 혁명적인 친분관계를 맺었다, 나는 이것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옛전우를 잊지 못하시며 그의 유자녀들에게 돌려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에는 실로 끝이 없었으니 나라일에 바쁘신 가운데서도 그들이 조선에 있는 기간 매일매일 일정과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그들이 자그마한 불편도 느낄세라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참으로 국제주의전사 장울화동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갔으나 그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의리는 이렇듯 그의 후대들에게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는것이였다. 산사람과 희생된 사람사이에도 우정은 계속되며 동지적사랑과 의리에는 국경이 있을수 없다. 이 심오한 철학을 지니시고 그 누구보다도 어려운 처지에서 혁명을 하면서도 계급적형제들을 먼저 생각하시며 그들과 맺은 동지적관계를 귀중히 여기신 우리 수령님께서 한평생 꽃피워오신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 그 얼마나 많은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신 혁명적의리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는 가장 뜨겁고 고결하며 숭고한것이기에 온 세상 사람들모두가 그토록 흠모하고 경탄해마지 않는것이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혁명동지들에 대한 가장 고결한 의리를 지니신 혁명적의리의 최고화신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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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를 보여주는 숭고한 이야기 여기에서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어버이수령님께서 한생을 바쳐 가꾸어오신 위대한 혁명적의리, 그것은 오늘 한없이 숭고한 륜리도덕과 충정을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꿋꿋이 이어지고 이 땅우에 활짝 꽃펴나고있다. 불후의 고전적로작 《혁명선배를 존대하는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를 발표하시여 혁명가들사이 혁명적의리를 지키는것을 더없이 숭고한 의무로, 영예로 여기도록 하시고 어버이수령님을 받들어모시는데서 실천적모범을 창조하시면서 온 나라에 혁명적의리에 기초한 동지애가 확립되도록 이끄신 위대한 장군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뜨거운 사랑과 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그처럼 은혜롭고 따사로운 태양의 품속에 안겨사는 우리 인민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인민인가. 인류가 맞이한 열의인, 정의인이시며 혁명적의리의 최고화신이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조선혁명사는 영원히 동지애의 서사시로 수놓아지리니, 우리모두 희세의 위인들의 고매한 덕망과 인품을 그대로 따라배워 가장 숭고한 혁명적의리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충직하게 받들어모시며 그이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높은 령마루에로 나래쳐오르자.
본사기자 원 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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