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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흠모의 노래를 창작한 혁명시인
진정한 애국자, 혁명가는 수령의 추억속에 영생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까지
언제나 뜨겁게 추억하신 혁명시인 김혁동지, 수난많고 시련많은 조선혁명의 나날들을 회고하실 때마다 언제나 제일먼저
불러주시던 김혁동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청년시절에 내 주위에는
동지들이 많았다고 하시며 김혁은 나의 청춘시절에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긴 사람이
김혁동지 라고 그를 선참으로 회고해주시였다.
김혁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주체16(1927)년 여름이였다.
그때 김혁동지는 수령님과의 첫 상봉에서 그이께 완전히 매혹되여 옹근 사흘밤이나 함께 밤을
새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혁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해 혁명화되여가고있는 길림시내를 돌아보고나서
수령님의 손을 꼭 잡고 나는 여기서 닻을 내리겠다고, 내 인생은 이제부터라고 불같은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것은 김혁동지의 진심의 토로였다.
그때 조선의 애국자, 혁명가들이 다 그러했던것처럼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운명을 두고 몸부림치며 조선혁명의 진로를 찾아 만리타향을 헤매이던 김혁동지였다.
민족을 이끌어줄 지도자를 찾아 그리도 애타게 헤매던 심정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는 한때 상해에서 중국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적이 있다.…
나는 시위를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시위를 하다가 맥을 놓을 때 앞으로 나가라고 소리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시위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래일은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는 조직이 있고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힘이 날가, 내가 총탄에 맞아 쓰러질 때 나를 붙안고 《김혁아!》,《김혁아!》하고 부르며 눈물을 뿌려줄
동지들이 있다면 또 얼마나 행복할가 그리고 그것이 조선사람들이고 조선의 조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바로 이러한 김혁동지였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것을 자기 인생의 가장 큰 행운으로
그처럼 기뻐하며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였으며 수령님께서 주시는 과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였다.
김혁동지는 높은 책임성과 충실성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군중공작사업과 새 조직들을
내오고 지도하는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리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로운 출판물을 발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을 때에는 불같은
정열로 밤잠도 미루고 원고를 집필하였으며 신문지상을 통하여 카륜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보고를 해설선전하였다.
하여 김혁동지가 첫 주필로 사업한 출판물 《볼쉐위크》는 카륜회의방침을 소개하고
선전하는데서 참으로 큰 역할을 하였으며 우리 나라에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해설선전하는데 이바지하는 첫 혁명적출판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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