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2(2013)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최 영 조

 

돌우에 피여나는 꽃은

그 정성 키운것이고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은

그 사랑 주신거라네

                 (《동지애의 노래》 중에서)

 

야전승용차는 한낮의 들길을 쾌속으로 달렸다.

가을바람이 가볍게 불어예는 벌판에서 탐스런 벼이삭들이 마치 그 무엇을 예감이라도 한듯 짓수그리고있던 고개를 건듯건듯 쳐들며 차창안을 들여다본다.

한참이나 차창밖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이시였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겹쌓인 피로가 불시에 온몸에 엄습해왔던것이다. 다문 한시간 아니, 한 십분만이라도 눈을 붙이면 심신이 거뜬해질텐데…

하지만 아직도 할일이 너무 많으셨다.

아마 지금쯤은 평양에서 국방위원회 성원들이 기다리고있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스르르 두눈을 감으시였다.

무수한 불꽃들이 망막에 밟혀온다. 그 불꽃들은 차츰 뚜렷한 형체로 변화된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하지만 딱히 누구들인지는 알수 없다. 누구들인가? 이번 전선길에서 만났던 최전연병사들의 모습인가.…

아니, 리봉애, 분명 그 녀인이다. 이번 전선시찰을 떠나기 전에 그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었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삽시에 잠기가 사라져버리셨다. 편지의 구절구절이 되새겨졌다.

《…이번에 새롭게 꾸려진 애국렬사릉에서 생전그대로의 모습인 남편의 돌사진을 대하고보니 더더욱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마 제 남편은 지금 자기가 어떤 사랑속에서 영생하고있는지 모를겁니다. 정말이지 제 남편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을 알고 받은것보다 모르고 받은것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제서야 장군님께서는 그리도 피곤이 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쪽잠에조차 들수 없었던지 깨달으시였다. 륙감이라고 할가.

《영진동무.》

장군님께서는 옆좌석에 앉은 총참모부의 김영진장령을 나직이 부르시였다.

어째서인지 인차 대답이 없었다. 다시 찾으시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시였다. 그가 무척 곤할테지…

이때 김영진이 황급히 상반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제 그만…》

《아, 아니요. 오히려 내가 미안하구만. 내 생각만 하다보니 동무에게 겨우 차례진 휴식을 방해했소. 그래 나와 함께 다니기가 힘들지요?》

《장군님!…》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하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알고도 남으시였다. 그는 원체 자기 심정을 미끈한 문장으로 표현할줄 모른다. 오직 수자와 자료로써 적아간의 전략전술적문제들을 대비종합하고 분석평가하는데 습관된 그는 자신이 하고픈 그 모든 말을 그 한마디의 부름속에 다 담은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인차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참, 총참모부에서 함께 일하던 한석진동무를 잘 알지요?》

《예, 6년전에 순직한…》

《그렇습니다. 그 동무의 부인이 남편이 있는 애국렬사릉에 가보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장군님, 이번에 애국렬사릉의 묘비들에 돌사진을 붙이니 유가족들모두가 좋아하고있습니다.》

《그렇다?! 그러니 유독 나 혼자 그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있는것 같구만.》

《예?》

《애국렬사릉에 있는 동무들이야 다 수령님께서 혈육의 정을 부어 키워오시고 또 나와 함께 오래동안 같이 일해온 혁명동지들이 아니요. 실은 좀더 있으면 추석이기에 그날에 시간을 내려고 생각했었는데 그 편지까지 받고보니 더 못 견디겠구만. 동문 어떻습니까?》

《저… 정세가 너무 긴장하다보니 미처 그런 생각은…》

《하하… 영진동문 항상 솔직해서 좋거던, 하지만 우리가 왜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소? 오늘 협의회를 좀 미루더라도 신미리에 가봅시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김영진의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차는 벌써 평양교외에 들어서고있었다.

이제 수도중심부를 지나 다시 서북쪽교외로 빠져 얼마간 달리면 애국렬사릉에 가닿을것이다.

미지의 흥분이 장군님의 온몸을 가볍게 휩쌌다.

문득 편지의 구절이 다시금 떠오르시였다.

《…정말이지 제 남편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을 알고 받은것보다 모르고 받은것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한석진이… 그를 처음 알게 된것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느 전선길에서였지.… 그때는 애젊은 처녀군의였던 그의 부인 리봉애도 처음으로 만났고… 하긴 봉애동무가 편지에 쓴것처럼 그때 한석진은 수령님의 사랑을 모르고 받아안았지. 또 알수도 없었고…

지금으로부터 근 반세기전의 일이였지만 아직도 그때의 일이 기억에 생생하시였다.

흔히 사람들은 어린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인 표상뿐이라고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수령님과 함께 달빛 한점 없는 캄캄한 전선길을 달리던 최고사령부 야전승용차의 흔들림과 은연중 느껴지던 포연내까지도 다 기억하고계시였다.

밤하늘의 어둠을 썰며 엇갈리던 탐조등빛, 어디선가 때없이 들려오던 적기들의 동음, 희미한 근거리조명등빛에 비껴들었던 멎어선 위생차의 어슴푸레한 자태…

《무슨 일이요?》

한껏 긴장감이 어린 부관장의 목소리였다.

녀성군관이 그를 향해 마주왔다.

《야전병원 군의입니다. 부상병을 후송하던중인데 그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더이상 듣고계실수 없으신듯 차에서 내리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따라 내리시였다.

《잘못됐소?》

《아닙니다, 장령동지.》

녀군의는 어둠속인지라 수령님을 전선길에서 드문히 맞다들군 하는 장령으로만 생각한 모양이다.

《부상병이 쇼크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수혈을 하려구… 수술을 못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생명이…》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였다.

수령님께서 켜신 손전지의 불빛이 위생차안의 어둠을 밀어냈다. 그 불빛속에 의식을 잃은 부상병의 모습과 그곁에 수혈병을 들고 앉은 간호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 부상병의 이름이 뭐요?》

《예?》

어째서인지 녀군의는 아래입술을 잘근 씹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부상병의 이름이 무슨 필요인가 하는것 같았다. 아니, 그자신도 부상병의 이름을 모르고있을것이다.

《언제 병력서를 만들 사이가 없었습니다. 군인증마저 온통 피자욱이여서… 다만 저 동무가 미국놈들의 공격을 물리친 무명고지의… 마지막… 병사라는것밖에는…》

그의 목소리가 도간도간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왜서인지 손전지의 불을 끄시였다.

방울방울 맺히는 녀군의의 눈물과 자신의 아프신 심중을 어둠으로 가리우시려는듯.

《영웅이로구만, 영웅이야.》

그러시고는 천천히 차주위를 거니시였다.

부관장이 벌써 몇번째 자기의 야광시계를 눈가에 바투 가져다대군 한다.

《저… 시간이…》

수령님께서는 《시간… 시간…》 하고 나직이 외우시였다. 그러시더니 급히 녀군의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군의동무, 당장 수술을 해야겠소!》

《예?》

《?…》

녀군의도 부관장도 아니, 장군님자신께서도 그 말씀의 의미를 인츰 깨닫지 못하시였다.

《동문 빨리 수술준비를 하라구, 자리는 우리가 마련할테니.》

그제서야 정황을 깨달은 부관장이 황황히 앞을 막아나섰다.

《안됩니다, 그건! 전선이 코앞인데… 적기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릅니다. 위험합니다!》

《그보다도 저 병사의 생명이 위급하오.》

《그렇지만… 전선의 운명을 걸고 떠나신 걸음인데…》

부관장도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다.

《강동무, 난 우리 병사들의 운명을 떠나서 전선의 운명을 생각해본적이 없소. 맘놓으라구. 군의동무, 수술을 할수 있겠지?》

《그건, 그건 모험입니다. 장령동지.》

신심을 못 가진 녀군의의 대답이였다.

갑자기 격해지신 수령님의 음성이 울렸다.

《이보라구 군의, 난 그저 장령이 아니라 동무네 최고사령관이야. 동무도 군복입은 군인이라면 자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어떻게 집행해야 하는지 알테지?!》

《예? 아니?… 아!…》

그제서야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알아본 녀군의는 너무도 놀랍고 또 너무도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리고는 어푸러지듯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기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수령님과 함께 최고사령부에 계시는지 오래되였으나 그때 처음으로 수령님자신께서 최고사령관의 직함을 내드시는것을 목격하시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나 평범한 인간 그 이상의 차이를 허용하지 않으시던 수령님께서 그 순간에만은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절대적권위가 담긴 요구를 스스로 하신것이다.

그리하여 산기슭의 구배진 안쪽소나무숲속에 수술천막이 세워졌다.

지금도 손수 잔솔가지들을 꺾어다 천막안에 깔으시던 수령님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시다.

아, 수령님과 함께 한줌 또 한줌 수술장소를 마련하시던 그밤의 그 향긋한 솔잎향기…

《이 손전지불로 꽤 보일가?》

《저…》

《안되겠소. 강동무, 아무래도 우리 차를 가까이 대고 전조등을 켜야겠소.》

순간 모두의 숨이 꺽 막히는듯싶었다.

불을 켜다니? 그것도 다름아닌 전선길에서?!…

《안됩니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절대로 안됩니다.》

녀군의가 한껏 머리를 젓는다.

자신께서도 무슨 말씀인지 꼭 드리고싶으셨으나 왜서인지 뜨거운 불덩어리가 자꾸만 솟구쳐올랐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것인가를 그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느끼시는 장군님이시였지만 또 그만큼 그 누구보다도 수령님의 마음을 잘 아시는 그이이시였다.

어머님께서 생전에 늘 수령님을 잘 받들자면 그 사랑의 세계를 잘 알아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조선혁명을 아는것이고 조선혁명을 해나가는것이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던 그 뜻이 바로 이런것이 아니였던가!

수령님께서는 장군님의 이런 마음속 생각을 다 들여다보신듯 다정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라없이 시선을 돌리시며 쾌활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산에서 왜놈들과 싸울 때 말이요, 인민들이 뭐라고들 했는질 아오? 빨찌산 김대장이 축지법을 쓴다고 했소.

소나무도 병사로 되게 하고 이런 솔방울로는 수류탄도 만든다고 했단 말이요, 하하…》

전혀 뜻밖의 말씀이였으나 너무나 호탕하신 웃음이여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따라웃었다.

《아닌게아니라 그 말처럼 우리에게 그런 신비의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럴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우리 병사들의 귀중한 생명을 잃지 않고도 이 전쟁에서 이길수 있으련만…》

여전히 미소를 담고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거기에는 너무나도 뜨거운 진정이 어려있었다.

그 곡진한 음성이 다시금 가슴에 마쳐왔다.

《하지만… 우린 그걸 사랑으로 대신해야 하오, 혁명동지에 대한 사랑으로 말이요.》

이렇게 말씀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군님의 어깨를 한손으로 지그시 잡아주시였다.

그 뜨거운 열기가 온몸에 찌르르 스며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저도 모르게 수령님께서 들고계시는 손전지를 말없이 받아쥐시였다. 그리고는 그 불빛을 부상병에게 비쳐주시였다.

뒤미처 수령님의 야전승용차의 불빛이 그 불빛과 합쳐졌다.

아, 이 불빛이 정녕 저 인민군병사를 안아일으키는 생명의 빛이 되여주었으면!…

(그때의 그 부상병이 다름아닌 한석진이였고 그를 수술한 그 녀군의가 바로 리봉애였지.…)

 

《장군님, 애국렬사릉에 다 왔습니다.》

차가 애국렬사릉의 릉문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운전사가 조용히 아뢰이는 말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추억에서 깨여나시였다. 차가 멈추어섰다.

풍성한 가을철이라 한껏 높이 들린 파아란 하늘가로 용마루를 쳐든 릉문이 한눈에 안겨왔다.

애국렬사릉의 현판을 바라보시느라니 어쩐지 수령님 생각이 더욱 못 견디게 사무쳐왔다.

오늘 수령님을 모시고 여기에 왔더라면 렬사들이 얼마나 좋아하랴. 저들이야말로 수령님께서 한사람한사람 손잡아 키우시여 조국과 인민앞에 자랑스럽게 내세워준 사람들이 아닌가. 자신께서는 또 얼마나 그들에게 정을 부어오셨던가!…

(동무들, 내가 왔소. 김정일이가 왔소!)

솨- 렬사들의 령혼을 지켜선 위병들인양 애국렬사릉을 울창하게 빙 둘러싼 소나무숲이 가을바람을 안고 설레였다. 그것은 마치 장군님을 맞이한 렬사들이 터치는 감격의 환호소리같았다. 누구라없이 달려내려와 자신을 에워쌀것만 같으시였다.

《여기에 오니 잊을수 없는 사람들을 다 만나보게 되누만. 모두가 살아있는것만 같소.》

가지가지 하많은 추억이 일시에 갈마드신다.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해 늘 한자리에 앉아 사업을 의논하던 허담이, 언제나 말없이 수령님 현지지도의 척후를 서던 심창완이… 한사람 또 한사람… 돌사진에 새겨진 낯익은 모습들을 대할수록 이름할수 없는 그리움과 애석함이 가슴에 저며드신다.

인제라도 돌사진에서 웃고있는 그 모습들이 그대로 불쑥불쑥 자리를 차고 일어나 《장군님, 또 무엇이 걸렸습니까? 저희들을 보내주십시오.》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솨- 솨- 심중의 아픔을 위로해주려는듯 소나무숲이 또다시 설레인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신의 앞에서 누군가가 환하게 웃고있다.

군복앞가슴에 훈장들을 주런이 달고 군모채양우로 살짝 감겨들리운 곱슬곱슬한 앞머리칼이 인상적이다.

《한석진동무로구만.》

장군님의 말씀은 마치도 살아있는 당사자를 반기며 하시는것처럼 들렸다. 곁에 둘러선 일군들에겐 오히려 그이의 말씀에 아무 대답없이 그저 웃고만 있는 돌사진속의 한석진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순여섯이면 십년은 더 일할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 일찌기 갔소. 전쟁참가자이구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위해 일을 많이 한 동무인데…》

《그렇습니다. 늘 조용해보이는 사람인데 훈련지도만 내려가면 어디서 그런 집요한 기질이 생기는지… 좀처럼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였습니다.》

김영진의 대답을 들으시며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원, 사람두… 높은 요구성을 집요한 기질로 표현하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김영진이 어느 련합부대 부대장을 할 때 훈련강평을 책임지고 내려온 한석진에게 진땀을 뺐다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시였던것이다. 그들 두사람은 군사대학을 함께 다닌 사이였다.

《이 사진을 보니 석진동무가 장군님께서 손수 찍어주신 사진을 받아안고 자신의 육체적생명도 정치적생명도 다 어버이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주신거라고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제서야 장군님께서는 돌사진에 새겨진 한석진의 모습이 왜 그리도 인상적이였던지 깨달으시였다.

그래, 저 사진은 인민군창건 60돐경축 열병식이 끝난 뒤에 내가 찍어준것이지, 아마 봉애동무가 그 사진을 붙여달라고 요구한 모양이다.

벌써 6년전의 일이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열병식훈련을 지도해주시러 몸소 현지에 나가시였다.

장장 60성상 빛나는 승리와 영광의 년륜만을 새겨온 우리 혁명무력의 장엄한 열병대오가 주석단앞을 도도히 굽이쳐갔다.

항일혁명투사들, 전쟁로병들의 대오와 함께 각급 군사학교들과 륙해공군 근위사단들의 열병종대, 최신군사과학과 군사기술의 종합체인 현대적인 무장장비들의 끝없는 흐름을 보며 장군님께서는 나무랄데 없는 완전무결한 우리 식의 열병식을 확신하시였다.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장군님께서는 집무실로 돌아오시였다.

사위는 더없이 고요하였다.

그 고요가 얼마나 깊은것이였던지 수령님께 드릴 열병식훈련보고서를 쓰는 마지크소리가 너무 유난하여 장군님께서는 잠시 손을 멈추시였다. 또다시 고요, 고요… 다시 마지크를 쥐였으나 어쩐지 이번에는 글줄을 이을수가 없으시였다. 무엇때문인가. 그 어떤 미흡한 점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니, 그런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장군님께서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이번 열병식도해첩을 펼치시였다. 몇번을 다시 보시였으나 부족점을 찾을수 없다.

처음부터 다시 번지려다가 무춤 손을 떼시였다. 그것은 어느 한 열병종대의 사진이였다. 분명 아까 현지에서 이 종대가 지나갈 때 무엇인가 마음에 맺혀오는것이 있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군기를 든 사람은 한석진이였다. 그래, 분명 그의 얼굴색이 밝지 못했었다.

무엇인가 주저스러워하는 그런 빛이였다.

전쟁시기 상처자리가 도졌는가? 아니면 훈련부담이 너무 컸는가?

준엄했던 그 시절에 범상치 않게 맺어진 인연이여서 그런지 날씨가 조금만 흐려져도 각별히 마음 쓰이는 사람이다.

장군님께서는 날이 밝으면 곧 그의 건강상태를 다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다음날 그이께 보고된 자료는 전혀 뜻밖의것이였다.

어느 한 도급경제지도기관의 책임적인 지위에서 일하던 한석진의 동생이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복귀되고 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지게 되자 패배주의에 빠져 경제지도사업을 현실에 맞게 조직진행하지 못한 결과 나라에 엄중한 손실을 끼치고 그것으로 하여 법적제재까지 받고있다는것이였다.

《그것으로 하여 한석진동무는 친동생 하나 옳바로 교양하고 이끌어주지 못한 자기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온 자기가 어떻게 감히 성스러운 군기를 들고 최고사령관동지의 사열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고 몹시 괴로워하고있습니다.…》

보고자료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그의 동생일도 가슴이 아프셨지만 그보다도 그 일로 하여 한석진의 마음에 고민과 불안이 서릴것이 더 가슴에 맺히시였다.

혁명의 길에 왜 시련과 난관이 없으며 주저와 동요가 없겠는가. 세계의 대정치지진이라고도 일컫는 동유럽에서의 사태와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서 오는 좌절감과 동요감도 있을것이다.

신념은 자각되는것이지 결코 강요할수 없다.

노래에도 있지 않는가,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고.…

그러나 한석진은 결코 붉은기를 버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조국을 위해 바쳤던 전사, 한생을 군복을 입고 총대로 우리 당을 받들어온 로병.

더구나 그는 수령님께서 한몸의 위험을 내대시고 새 생명을 안겨주신 그런 사람이 아닌가?

아니, 그만이 아니라 우리 인민모두가 다 그러하지 않는가!

어머니는 생을 준 제 자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법이다. 그런 어머니, 그런 생명의 보호자가 되여야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우리 전사들의 아름다운 생을 영원히 빛내주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른 그 무엇이 필요치 않다.

왜시인지 전화의 날 잊지 못할 전선길의 그 소나무숲에서 울리던 수령님의 절절한 말씀이 되새겨진다.

《…우린 그걸 사랑으로 대신해야 하오. 혁명동지에 대한 사랑으로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주저없이 마지크를 쥐시였다.

그리고 보고자료앞표지에 이렇게 힘주어 쓰시였다.

《한석진동무에게 변함없이 그리고 영원히 혁명의 기수가 되여야 한다고 전해줄것.》

(그때 열병식이 끝난 뒤 례복차림그대로의 한석진동무와 함께 사진을 찍었었지. 이건 분명 그때 찍어준 사진이야.…)

《장군님, 벌써 날이 어둡습니다.》

김영진이 그이의 사색을 조심스레 깨치는 말이였다.

저녁어스름이 벌써 고즈넉한 렬사릉의 묘비마다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동무들이 더 있는데.

현무광이, 김광진이, 리찬선이…

《늦어지더라도 다 만나보고 갑시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가면 그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소.》

《저… 그런데 날이 어두워오니…》

《그렇구만.》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장군님, 제 그럼 차에 가서 손전지라도…》

《가만, 그럴것없이 승용차들을 릉쪽에 더 바투 가져다대고 전조등을 다 켜도록 합시다. 그 불빛이면 아마 대낮같이 잘 보일거요.》

《정말, 정말 그게 좋겠습니다.》

김영진이 어린애마냥 손벽까지 마주치며 한달음에 달려간다.

하지만 그도 아마 그 불빛이 안고있는 사연을 다 모르리라.

그러고보면 야전승용차의 불빛과 맺은 특별한 인연은 어쩔수 없는 자신의 운명인것 같으시였다.

그 순간 세찬 불빛이 확 쏟아져나왔다.

어스름의 장막을 일시에 활 밀어제끼며 눈부신 불빛이 애국렬사릉에 해빛처럼 가득차넘친다. 파르스름하기도 하고 백광같기도 한 아니, 돌사진의 그 모습들에 닿으니 마치 뜨거운 불길같이 느껴지는 붉은 화광!…

그래, 그날의 전선길에 넘치던 불빛도 바로 저러했다. 그 불빛으로 수령님께서는 이름없는 한병사만이 아닌 우리 인민모두를 죽음을 이겨낼줄 아는 불사신의 영웅으로 안아일으켰고 그 불빛으로 우리 조국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이끌어오시였다.

그 위대한 불빛이 순간도 꺼져서는 안된다.

그 불빛속에 우리의 밝고 휘황한 래일도 있다. 천만년세월이 흐르고흘러도 사회주의조선의 그 불빛은 영원할것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불빛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혁명전사들과 이렇게 끝없이 심중의 대화를 나누시며 또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한사람 또 한사람… 화강석묘비마다의 낯익은 모습들이 그 불빛을 생의 젖줄기인양 부여잡고 벌떡벌떡 일어서는것만 같으시였다.

솨- 솨-

눈부신 화광은 뜨겁게 설레이는 소나무숲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먼 하늘가로 노을처럼 퍼져갔다.

주체90(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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