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2(2013)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정 수
(제 2 회)
3
풍을 벗기고 위장그물만 씌운 군용차가 건지리를 향한 갈림길로 꺾어든다. 전선동부의 여러곳을 돌아본 남일총참모장과 그의 군용차를 함께 타고오는 최현이 뒤좌석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늦장마철의 찌물쿠는 폭양이 위장그물을 뚫고 그들의 장령모와 어깨를 볶음판인양 지져댄다. 그렇지만 몸들을 등받이에 파묻고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색을 풀지 못하였다.
요즘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저돌적으로 번져간다. 최현이 군단장으로 있는 전선동부의 1211고지에서만도 하루에 수십차례의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어떻게 해서라도 고지를 빼앗으려는것이 놈들의 속심이였다. 쫓겨난 맥아더대신으로 유엔군사령관의 자리에 들어앉은 릿지웨이는 한동안 정전담판장에 대표를 내보내지 않더니 1211고지를 목표로 대규모의 하기 및 추기공세를 획책하고있었던것이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때문에 남일과 최현군단장을 급히 부르신게 아닐가?
마침내 꾹 다물렸던 최현의 입이 열린다.
《우리 군단에 예비대를 얼마나 주겠습니까?》
《…》
두 장령의 고뇌어린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남일은 쥐고있던 담배가치를 줌안에 넣고 부스러뜨리며 애써 시선을 피하였다.
《지금 산악전에서 구실 못하는 직사포들을 철수시켜 동해안방어에로 돌리자니 전선의 여러군데가 뭉텅뭉텅 끊어질 형편이요.》
백전로장이 오죽하면 예비대소리를 끄집어냈으랴만 우는소리밖에 다른 대답을 할수 없게 된 그의 입가에서 괴로운 한숨소리가 터지였다.
최현은 끙 하며 자리를 고쳐앉는다. 부질없는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는듯 이후로는 눈까지 지르감고있었다.
군용차는 숨가삐 고개길을 톺아오르더니 물매가 급한 내리막에서는 뒤꽁무니를 몹시 들추며 미끄러졌다.
그들이 최고사령부에 도착한 때는 석양녘이였다. 직일근무인 작전국의 대좌가 땅에 내려서는 장령들에게로 달려와 거수경례를 하였다.
《장군님께서 계시오?》 하고 남일이 옷매무시를 바로잡는다. 최현군단장도 모자를 벗어 군복의 먼지를 털고 복장을 정돈했다.
《내각으로 가셨습니다. 저녁전에 돌아오겠다고 하시면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셨습니다.》
직일관의 전달을 받고 천천히 대기실로 향하던 두사람의 발걸음이 문득 멈추어졌다. 귀익은 경적소리를 동시에 들었던것이다. 이어 수령님께서 타신 수수한 야전차가 굽인돌이에서 불쑥 나타난다.
장령들은 급히 마주달려갔다. 그들이 차렷하고 거수경례를 올리자 야전차에서 내리신 수령님께서 《오느라 고생들이 많았겠습니다. 요즘은 장마철인데도 적기들이 기쓰며 날친단 말이요.》 하시며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그이께서는 장령들을 량옆에 대동하시고 나란히 집무실쪽으로 향하신다.
《새 학년도교육문제때문에 내각동무들을 만나보고 오는 길이요. 전시조건에 맞게 준비를 모두 착실히 했더구만. 아니, 그런데…》
다심한 수령님의 눈길이 두사람의 얼굴색을 번갈아 살피신다.
《기분들이 그닥 밝아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일때문이요?》
남일이 머밋머밋 입귀를 실룩거리다가 말씀올린다.
《장군님, 전선형편이 여의치 못합니다. 특히 동부와 같은 산악지대에선 직사포가 은을 못 내여 철수하기 시작했는데 그 화력공간이 문제로…》
수령님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자 그는 말마디를 삼켰다.
《직사포는 어째서 철수시키오? 총참모장동무, 바로 그 교조주의가 정말 문제입니다.》
《…》
(?…)
두 장령의 휘둥그래진 눈길들이 서로 마주치였다.
수령님께서는 심중한 안색으로 다시 걸음을 내짚으시며 말씀을 이으신다.
《우리는 전선동부의 산악지대에서 직사포를 철수할것이 아니라 몽땅 고지로 끌어올려놓고 덤벼드는 적에게 무자비한 타격을 안겨주어야 하오. 알겠습니까? 최현군단장동무!》
최현은 하늘에서 뢰성이 울리는듯 하여 걸음을 흠칫 멈추었다. 눈앞으로는 무수한 환영들이 얼른거리더니 삽시에 가슴벅찬 전투장면으로 크게 확대되는것이였다.
《구체적인 방안은 이제 곧 총참모장동무와 함께 토론해봅시다.》
그 말씀에 펄쩍 정신이 든 최현은 수령님의 앞선 걸음을 급히 따랐다.
(적과 대치한 고지마다에 직사포를 올려다놓고 직접조준사격으로 화력효과를 최대로 얻는다는 말씀이시다. 그것도 육안으로 보이는 근거리에서…)
전호가에서 난데없이 터져나가는 직격포탄벼락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돼버린 적진들과 뼈도 못추리는 침략자들의 몰골이 선히 떠오른다. 눈알을 희뜩 뒤집으며 전률하는 릿지웨이의 꼴불견은 또 어떠할것인가?
남일대장도 최현과 다름없이 몹시 흥분되였다.
이것은 아직 세상에서 누구도 생각해본적 없는 위대한 발견이며 세계의 전쟁력사에서 있어본적이 없는 희한한 전법이다!
그는 막히였던 가슴이 확 열린듯 크게 몰숨을 들이키였다. 전선에서 돌아올 때는 최현에게 말하기조차 괴로왔던 난감한 문제들이 수령님께서 하신 단 한마디의 말씀에 모두 풀리자 꿈이 아닌가싶어 어리둥절까지 해졌다.
두 장령은 그이께서 지니신 천리혜안과 비범한 령군술에 경탄의 숨소리만 겨끔내기로 높이였다.
어느덧 최고사령부의 서쪽산마루와 잇닿은 하늘가로 저녁노을이 곱게 피여나고있었다. 구질구질한 장마철치고는 보기 드문 진감색노을이였다.
집무실에서 당면한 직사포문제가 론의된 후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현에게 넌지시 물으셨다.
《동무네 군단에서 한개 대대가량의 인원을 뽑아가도 별일 없겠소?》
《…》
뜻밖의 물으심에 최현은 선뜻 대답을 못 드리고 총이 센 장미를 쭈밋 일궈세웠다. 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남일에게 인원을 보충해달라던 그였었다. 얼핏 곁눈질해보니 총참모장의 기색도 굳어지는것이 알렸다.
《즉석에서 대답을 받자는것은 아니니 생각해보시오. 앞으로 1211고지를 비롯하여 군단장동무가 주력을 맡은 전선동부의 정세가 더욱 어려워질것을 생각해서 말이요.》 하고 그이께서는 남일에게 말씀을 돌리신다.
《오늘 밤중으로 수도방위사령부에 명령서를 내려보냅시다.》
남일은 급히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가까운 백송리에 있는 부대의 지휘부와 병실을 전부 내도록 하고 새학년도 개학전으로 대학을 운영할수 있게 준비를 갖추어야겠습니다.》
돌연 마루바닥에 만년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남일의 오른손이 빈채로 허공에서 굳어져 움직일줄 모른다.
백송리에 있는 부대들은 최고사령부호위를 기본으로 평양방어의 요진통을 맡은 군부대여서 그 위치를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변경시킬수 없는것이였다.
《장군님, 그건…》
남일은 거의 울가망이 되여 입술을 깨물었다. 느닷없이 최현의 가슴속에서 심장이 후두둑거린다.
집무실에는 잠시 숨가쁜 침묵만이 흘렀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작전탁에서 허리를 펴시더니 절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너무 심각해서 그러지 마오. 총참모장동무도 얼마전까지는 교육자가 아니였습니까. 우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것 못지 않게 민족간부와 인재육성사업을 놓쳐서는 안되오. 만약 전쟁에만 신경쓰면서 승리한 다음 나라의 복구건설을 생각지 않는다면 후대들앞에 돌이킬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예-에?… 후대앞에 말입니까?》
《그렇소, 우리 혁명가들이 나라와 민족앞에 책임을 다한다는게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미제침략자를 쳐부신 이 강토에 부강번영하는 락원을 하루빨리 일떠세우고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은 행복의 창조자, 향유자로 되게 하자는것이 아니겠소!
그래서 나는 종합대학을 먼곳의 림포면에서 최고사령부와 가까운 백송리로 옮기고 새학년도부터 전면적인 강의를 시작하자는거요.》
《장군님!》
남일은 눈물이 글썽해서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다시 만년필을 들고 명령서를 격정에 떨며 적어내려간다.
불현듯 최현의 눈앞에서 고산진에서와 적후의 눈보라치는 겨울밤에 있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전후사연이 한곬으로 흐르는 물줄기처럼 선명해진다.
조국과 인민앞에 부닥친 난국들을 철의 의지와 담력으로 헤치며 부강번영할 래일을 설계하시는 불세출의 위인!
우주의 모든것을 평정하고 다스렸다는 전설속의 조물주도 무색케 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심장은 과연 무엇으로 뜨겁고 거룩하게 고동치는것일가?!
최현은 그 크나큰 심장을 지니신분을 수령으로 모신 행복감으로 무아경이 되였다.
(그렇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그는 심호흡을 하며 힘있게 한발 나섰다.
《장군님, 제 생각해보았는데 고지에 직사포를 끌어올리면 한개 대대만이 아니라 련대인원을 최고사령부의 예비대로 돌리겠습니다》
막상 말씀을 드리고보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역시 최현동무가 통이 크단 말입니다. 최고사령부의 예비대라… 그 말 또한 걸작이요.》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남일을 돌아보신다. 그러시고는 두팔을 엇결으시고 말씀을 이으셨다.
《최고사령관이 너무 욕심을 부린다고 이 남일동무가 의견을 부린다면 어찌겠소? 그러지 말고 한개 대대가량의 인원이면 충분합니다. 내 알아보았는데 동무네 군단에는 대학생출신의 군관, 병사들이 그 정도뿐이라오.》
《아니-그러면?!…》
《그렇소 내가 최현동무를 부른것은 가장 어려운 모퉁이를 맡은 동무에게서 솔직한 말을 들어보고 결심하려 그랬습니다.
이젠 마음이 거뜬해지오. 동무들, 이제부터 새학년도전으로 대학생출신의 전체 군관, 병사들을 전선으로부터 소환하도록 준비합시다.》
《장군님! 알았습니다.》
남일대장과 최현은 한동작으로 군화뒤꿈치를 모으면서 목메여 대답올렸다.
《자 그럼, 시장들 하겠는데 가서 저녁이나 같이 듭시다. 최현동무가 좋아하는 올챙이국수도 상에 오를거요. 부관동무가 아직 옛 상관의 식성을 잊지 않았더구만.…》
그 말씀에 최현군단장은 불쑥 솟구치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었다. 자기 식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분은 다름이 아닌 최고사령관동지이시였다.
4
생활에서는 그럴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부정했던것이 사실로 되여 놀라움을 자아낸 생뚱같은 일들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림포면으로 가던 허헌총장이 장마비에 불어난 강을 건느다 미군비행기의 폭격통에 잘못됐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천만뜻밖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아무튼 폭격당시에 그가 행방불명이 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이께서는 기적을 바라시였다. 행방불명이라는 한가닥의 실오리같은 보고에 운명적인 기대를 걸며 군부대와 보안서원들, 해당 지역 당조직들까지 발동하여 허헌총장의 생사를 알아보도록 하셨다.
그러하셨건만… 희생은 사실이였다.
10여일만에 허헌선생의 시신을 끝내 찾아냈다는 엄연한 사실앞에 부닥쳤을 때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억이 막히여 가슴속이 모두 내려앉는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떻게 집무실을 나섰는지도 의식하지 못하셨다.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내처 걷기만하다 수림속의 오솔길가녁으로 키높이 자란 소나무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경위대의 열려진 창가에서 추도곡소리가 흐느끼듯 울려나오더니 방송원의 비통한 말마디들이 고막을 저릿저릿 울린다.
《…최고인민회의 의장이며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인 허헌선생은 지난 8월 17일 …시경 직무수행중 적기의 폭격으로 애석하게도 희생되였음을 알립니다. …선생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님께서는 모진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잡으며 소나무에 기대시였다.
《허헌선생-》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기가 힘드시였다.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던 총장선생인가.
얼마전 내각청사에서 만나본 그의 감격어린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종합대학을 백송리로 옮기고 새학년도부터는 전면적인 교수를 진행하게 된다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도 기뻐 어쩔줄 몰라하던 허헌이다.
자신께서 그토록 거듭 만류하셨는데 개학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여야 한다며 부득부득 기별도 없이 림포면으로 떠나더니 이런 아픔을 안겨주리라고 상상이나 하시였던가.
더없이 야속하시였다. 분하시였다. 한번 작정을 하면 고집이 하늘소뒤발통인 로인에게 미타한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설마 자신께서 하신 만류도 마다할줄이야… 사전에 미리 대책을 세워놓지 못하신것이 더 후회막급하고 통분스러운 심정이시였다.
(아! 미제침략자들에 의해 강요된 이 전쟁은 얼마나 저주로운것인가?…)
전쟁이 빚어내는 희생과 비극, 고통과 슬픔들을 무엇으로도 보상할수 없게 된것이 기막힌 현실이다. 그이의 가슴아픔은 도수를 넘어 저려드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수령님께서는 줄곧 오솔길을 따라 걷고걸으시였다.
또다시 눈앞에서 허헌의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무릎을 마주하고 나라의 크고작은 문제를 의논하시고 교육에 대한 일가견을 서로 터놓으시던 가지가지의 추억들… 특히 종합대학의 초대총장임명문제를 두고 일부 사람들이 머리를 내흔들 때 자신께서와 김책이 보증하던 일이며 전쟁통에 환갑은 무슨 환갑인가고 본인이 고집쓰며 미루던것을 겨우 설복하시여 환갑상을 받게 한 그날 저녁의 눈물짓던 모습도 떠올리시였다.
문득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뒤에서 나는 조심스런 인기척소리를 들으셨던것이다.
돌아보시니 남일이 몇보가량 사이를 두고 비감에 잠긴 표정으로 따르고있었다. 그도 허헌총장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교육국의 책임일군으로 일할 때부터 인간적으로나 사업상에서 매우 가까왔었다.
남일은 몹시 바재이는듯 갑자르다 힘들게 입을 놀리며 말씀드린다.
《저… 국가장의위원회성원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제서야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위원장으로 허헌의 장례를 주관하게 됨을 의식하셨다.
그래, 영결식을 오후 다섯시에 시작하자고 했었지… 허헌선생의 가족은 지금 어떻게들 하고있을가? 아마 슬픔을 묵새기며 나를 기다릴것이다. 까무라쳤던 허정숙동무에게 누가 죽이라도 한술 권했는지 모르겠다. 영결식에 종합대학의 교직원은 물론 박사원생들도 모두 참가시키라고 일렀는데… 인원수송이 제대로 되였겠는가? 대학의 당조직을 책임진 박형석은 드팀이 없는 사람이다.
다음순간 그이께서는 문득 소스라치며 몸을 떠시였다. 가슴을 허비는듯 한 괴로움이 또다시 갈마드신다. 이제 포연서린 전호마다에서 돌아오는 허헌선생의 숱한 제자들을 어떻게 대한단 말인가.…
이윽하여 수령님께서는 모질게 마음을 다잡으시고 걸음을 돌리시였다.
이 전쟁마당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슬픔만을 감수하는것이 아니다. 사랑과 증오의 참된 의미를 체험으로 똑똑히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들의 존엄을 지켜 더욱더 분발하게 되는것이다.
인민대중의 이런 심리를 아름다운 미래로 이끌어야 한다. 미래에 살고 그 미래를 앞당기는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진정한 승리자로 될수 있다.
이 일은 위대한 사업이다. 여기서 중추적인 몫을 담당한것이 바로 교육이다. 허헌선생도 이것을 잘알고있었기에 그리도 장달음을 놓다가 장렬하게 희생된것이 아닌가.
그렇다! 교육사업이야말로 부강조선의 천하지대본이다. 혁명과 건설의 모든 성과여부는 물론 당면하여 미제를 쳐부시는 우리 군대의 정치도덕적우월성도 교육에 의해 안받침된것이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수령님의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흔들며 지나간다. 이어 수림속의 나무잎들이 가볍게 술렁거렸다.
그이께서는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드시였다. 언제 나왔는지 남일의 뒤켠으로 여러 일군들이 그린듯 서있었다. 홍명희와 박형석의 침통한 얼굴모습도 보였다.
《아!… 기다리게들 해서 미안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애써 우선우선한 표정을 짓고 그들에게로 다가가 한사람씩 손을 잡아주신다. 그러시고는 일군들과 함께 영결식장으로 향하시였다.
하늘은 언제 소낙비를 쏟아부었냐싶게 매지구름을 헤치고 창창 맑아졌다. 눈부신 해빛이 열매 풍성한 전야에 몰방으로 내려쪼인다.
상실의 아픔속에도 시간은 멈춤없이 흘렀다.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집무실에서 박형석의 이야기를 듣고계셨다. 방에는 홍명희와 남일이 자리를 같이하고있었다.
림포면에서 백송리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이동전개가 끝났으며 지금은 새학년도교수안집필을 다그친다는 보고를 들으시자 그이께서는 못내 만족하시여 웃음발을 피워올리신다.
《정말 수고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의 교직원들에게 나의 감사를 전해주시오. 한가정의 세간살이도 이사품이 많은데 종합대학이라는 큰 살림을 빠른 시일에 옮길라니 고생인들 오죽했겠소!》
박형석은 바빠 걸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닙니다. 대학이동과 꾸리기는 모두 군인동무들이 맡아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는 남일에게 정찬 눈길을 주시였다. 총참모장이 어느새 그 일을 주관하였는가?
《그건 대단히 잘한 일이요. 그 동무들도 다음기부터는 대학생이 되여 선생들의 신세를 질것이 아니겠소. 그렇지요? 총참모장동무.》
《옳으신 말씀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일과 박형석에게 앉으라면서 홍명희에게 눈길을 돌리신다.
《…내각에서는 전선에서 각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는 대학생들에게… 아, 앉으십시오. … 필요한 학용품과 생활필수품들 그리고 식량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주도록 합시다.》
그이께서는 다시 일어서려는 홍명희를 제지하시고 종이 울리는 전화기에서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아, 최현동무요. 건강은 어떻습니까? 사기가 올라 직사포로 적진을 묵사발처럼 답새긴다!
뭐, 놈들이 1211고지를 두고 상심령이라고 하고 그 아래골안들을 함정골이라고 부른단 말이지요? 그것 참 아주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하!
릿지웨이가 혼이 쑥 빠질만도 하오. 놈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톡톡히 보여주어야겠소.
아, 그것 말이요. 지금 그 문제를 토의하던중입니다. 여기에 홍명희선생이랑 박형석동무도 와있소.
응? 빨리 소환장들을 보내달라? 허허, 우물에서 숭늉을 찾겠습니다.
이제 곧 최고사령부의 명령서가 내려갈것입니다. 그럼… 한명도 빠짐없이… 군단에서 환송의식을 크게 하겠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일없소. 내 걱정은 마시오.
그럼 건투를 바랍니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였다.
×
《차렷, 가운데로 봣!》
군단대렬부장이 정보로 걸어왔다.
《중장동지, 군단은 대학으로 가는 군관, 병사들을 환송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최현은 손을 들어올리며 답례를 하였다.
《쉬엿하시오.》
그는 부관에게서 명령서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목이 갈리여 한참이나 갑자르다가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부대들과 인민경비대 부대들에서 대학생출신군관, 하사관, 병사들을 모두 소환하여 대학으로 보낼데 대한 최고사령관명령을 전달하였다.
순간 폭풍같은 만세소리가 터지였다. 어찌나 우렁찼던지 주변의 모든 산악들에 뜰뜰 울리며 메아리친다.
이윽하여 대렬부장이 소환되는 군관, 병사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대렬앞으로 씩씩하게 나오는 군인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여겨보던 군단장의 눈앞이 탁 흐려졌다. 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밀물처럼 차오르더니 가슴벽을 세차게 두드린다.
세계전쟁사에는 학생출신병사를 다시 배우라고 적아가 판가리를 짓는 싸움터에서 학교로 돌려보낸 실례가 없다. 하물며 수많은 대학생들을 한날한시에 소환한다는것은 상상이나 했으랴!
오직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천출명장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만이 하실수 있는 용단인것이였다.
최현은 북받치는 감개를 누를수가 없어 창창하게 열려진 평양하늘을 경건히 우러렀다. 예이제 다름없이 그곳에서는 따사로운 태양이 세상만물에 눈부신 빛을 아낌없이 쏟아붓고있었다.
주제95(200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