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2(2013)년 제8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문 상 봉
(제1회)
발전소건설장을 떠나 머나먼 밤길을 쉬임없이 달리던 야전승용차는 전선중부의 한 산협에 들어서자 문득 발동소리를 멈추었다.
골짜기들이 아직 심연같은 어둠속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는 이른새벽이였다.
《여기서 좀 머물렀다 가기요.》
길가녁에 나서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뒤따르던 차에서 내려서는 수행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
윤명길이 사방을 두릿거리다가 그이께로 다가서며 의아쩍은 어조로 말씀올린다.
《최고사령관동지, 이제 한 고개만 넘으면 오늘 일정인 칠봉산부대입니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총참모부 작전일군인 그의 성큼한 목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허, 그러니 부대까지 내처 갔으면 좋겠단 말이겠소?》
희붐하게 들리기 시작하는 동녘하늘에 눈길을 주시였던 그이께서 두팔을 휘저으며 가벼운 몸운동을 하신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갑작스레 부대에 들이닥치면 곤하게 잠든 병사들을 깨우고말텐데 어쩐다?… 한창때 새벽잠은 꿀보다 더 달다고들 하오. 더구나 그 부대가 오늘 오중흡7련대칭호 판정검열을 받는다질 않습니까.》
《!…》
급기야 윤명길의 얼굴과 귀뿌리가 화끈 달아올랐다. 다박솔초소로부터 그이의 선군장정길을 줄곧 수행하여온 일군이 병사들을 끔찍이 위하시는 그 다심한 심중을 아직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전지로 안침진 곳을 찾아보신후 몸소 삭정이를 줏기 시작하신다. 그제서야 윤명길이네는 서두르며 나무밑 주변을 더듬어 돌아갔다.
잠시후 모닥불이 어둠을 밀어내며 활활 타올랐다.
또아리모양으로 오붓이 둘러앉은 수행일군들을 한사람씩 정겹게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의 눈길이 윤명길의 편안치 않은 몸거동에 멈추어졌다. 평소의 유연하고 담차던 군사일군답지 않게 마음속의 안정을 잃은 모습이다.
《윤동무는 초저녁부터 몹시 긴장해서 밤새 눈한번 붙여보지 못한 기색인데 혹시 그 적정때문이 아닙니까?》
윤명길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 그이께서 면바로 지적하신바와 같이 어제 저녁부터 그는 적들의 돌발적인 움직임으로 하여 조성된 사태때문에 온밤 당겨놓은 활시위마냥 팽팽해진 신경을 풀지 못하고있었다.
《옛, 그렇습니다. 놈들이 노는 짓거리가 이번엔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모닥불가의 눈길들이 이 허우대가 큰 장령에게로 쏠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시며 흔연히 말을 받으신다.
《음, 그러니 시급하게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속대사로구만.… 어떻소? 동무들, 우리 윤동무의 적정통보를 듣고 론의해보지 않겠습니까.》
격식없는 최고사령부의 야전작전회의가 시작된것이다.
윤명길은 입에 주먹을 대고 헛기침을 한 다음 먼저 적들이 동해주변에서 벌려놓은 《97해상종합훈련》정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이 전쟁연습은 구축함, 상륙지원함, 잠수함 등 각종 함선들로 무어진 남조선미국련합군 주력과 함께 공군, 륙군의 방대한 무력이 동원되였고 어제부터 결속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3개의 군종모두가 참가한 이 도발책동은 해상에서의 공방전과 기뢰해제, 목표해안에 대한 상륙돌격에 중심을 두고있는것으로 공화국북반부를 불의에 기습공격하려는 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였다.
세계가 다 아는바와 같이 인민군대는 지금 연거퍼 들이닥친 자연재해의 피해를 가셔내고 사회주의대건설에 진입하고있는 등 많은 부대가 나라의 곳곳으로 전개된 상태이다.
그런데 원쑤들은 이런 기회를 타서 북침의 도화선에 불을 달려고 미쳐날뛰는것이다.
적들의 전쟁연습이 시작된 지난 23일 뉴욕에서 미일외교 및 군사당국자들이 조선반도유사시를 비롯한 분쟁지역에서의 협조를 운운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이라는 최종보고서를 작성한것만 보아도 그 검은 속심을 잘 알수 있다.
《…결국 놈들의 쑥덕공론과 도발책동은 우리를 겨냥한, 침략세력이 공동으로 고안해내고 실천단계에 들어선 전쟁씨나리오였습니다.》
윤명길은 최근 군사분계선에서 미군의 정전협정위반현상이 더욱 우심해지고 침략무력의 전진배치가 끝난데 대하여 구체적인 사실자료를 들면서 까밝힌 후 잠시 숨소리를 고루었다.
앞에서는 교활하게도 회담과 긴장완화를 표방하고 뒤로는 군사적대결을 추구하는 원쑤놈들의 행동에 일군들은 격분을 금치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삭정이 두세가치를 던져놓고 불이 확 당기는 모양새를 지켜보시다 이쪽으로 눈길을 드시였다,
《그러니 이젠 한계를 넘어 전쟁의 불꽃이 튕겨나기 시작했다는거겠소?》
그 말씀에 윤명길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놈들이 시대착오적인 전쟁광증에 사로잡혀 사태를 일촉즉발에로 끌어온것만큼 우리도 즉시 단호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첨부하여 말씀드렸다.
모닥불가에서는 열띤 토론들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사회주의건설장에 동원된 인민군부대들을 시급히 소환하여 진지를 차지하도록 하는 문제가 론의의 초점으로 되였다.
《전군 폭풍경보라… 동무들, 지내 심각하게 생각하는것이 아닙니까? 미친개가 덤벼든다고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몽둥이로 쳐갈기면 되니까… 그리고 군부대들의 소환문제는 서두르지 맙시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일찌기 교시하신대로 우리는 래일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오늘 밤 열두시까지 건설을 멈출수 없습니다.
군대의 인원수와 무장장비에만 신경이 돌려지면 싸움을 옳게 조직진행할수 없게 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 지휘성원모두가 병사대중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결론삼아 론의를 일단락 지으시고 부관을 찾으셨다.
《밤새껏 차안에서 몸을 들추었으니 모두들 속이 출출할게요. 우리 간단히 요기들이나 합시다. 어서 줴기밥들을 가져오우.》
하늘에는 아침노을이 곱게 비껴가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은 골짜기로는 젖빛안개가 꿈틀거리며 밀려든다. 어느 나무아지에서 산새 한마리가 단풍든 잎새속에 몸을 가리우고 새날의 첫 노래를 지저귀고있었다.
×
칠봉산부대는 큰 경사의 날을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오중흡7련대칭호판정을 받게 되였으니 부대관하의 전체 구분대들에서는 명절처럼 흥성거렸다.
윤명길은 판정에서 사소한 부족점이 나타날세라 은근하게 왼심을 썼다. 그렇지만 공연한 걱정이다. 모든 병사들이 사기충천하여 평소에 련마해온 일당백전투력을 매 판정종목에서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 한정수구분대의 훈련장에서 각이한 격술동작을 련결하며 몸을 비호처럼 날리고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대견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계시였다.
《괜찮아! 정말 멋있소.》
그이께서는 옆에서 가슴조이며 서있는 한정수에게 환히 웃어보이셨다.
젊은 구분대장은 얼굴을 어린애처럼 활짝 붉히며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몰라했다.
김정일동지의 시야에 한 병사의 훈련동작이 특별히 인상깊게 안겨들었다. 사소한 헛동작도 없다. 대단히 세련되고 안정된 타격솜씨와 방어자세였다.
몸이 솟구쳐지고 회전할 때마다 휘파람소리가 획획 울려오는듯싶었다.
《가만… 윤동무.》하고 장군님께서는 뒤에 서있는 윤명길을 찾으시였다.
《저 앞줄의 왼쪽에서 세번째 동무가 낯이 익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눈여겨보시던 례의 그 병사였다.
《…》
윤명길이 목을 길게 뽑고 눈정기를 모았으나 대답은 못 드리였다.
《저 동무가 홍남철입니다. 2년전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몸이 약하다구 걱정하시던…》
한정수가 그를 대신하여 말씀올렸다.
《옳아, 꿈속에서두 조개젓만 찾았다던 해변가출신의 신입병사!》
김정일동지께서는 두팔을 엇결으시며 병사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다시 바라보신다.
(저 동무가 홍남철이란 말인가?)
휘둥그래졌던 윤명길의 두눈이 껌벅거렸다. 그는 몸매가 다부지고 팔뚝과 어깨근육이 울툭불툭 삐여져나온것이 멀리에서도 알리는 병사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솜털이 보르르하고 목이 가늘어 남들보다 약해보이던 어제날의 신입병사, 행군길이 힘겨워 지휘관에게 끌려가던 그가 오늘은 펄펄나는 싸움군으로 자라난것이다.
《음- 이제는 훌륭한 군인이 되였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에 겨워 말씀하시였다.
불현듯 윤명길의 눈앞에 오성산을 시찰하시는 그이를 수행하던 두해전 이른 봄날이 떠오른다. 구질구질 비가 내리던 저물녘이였다.
…질쩍한 길가녁을 따라 두 군인이 걸어가고있었다. 군관과 어린 병사이다. 군관은 배낭을 두개씩이나 걸머졌는데 병사는 홀몸이였다. 아마 군관이 병사가 등에 지고있던 배낭을 벗기여낸 모양이다.
그랬는데도 어린 병사는 지쳐 쓰러질듯 휘친거리며 군관에게 손을 맡긴채 끌려가고있었다.
보매 군사임무수행중인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어디로 가는 길인가?
시창밖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신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몇걸음앞에서 야전차를 멈추시였다.
그이의 곁에 앉았던 윤명길이 얼른 뛰여내려 두 군인에게로 다가갔다.
뜻밖에 승용차행렬이 멈춰서고 허우대 큰 장령이 나타나자 그들은 일순 당황해서 몸이 굳어졌다. 인차 자신을 수습한 군관이 거수경례를 하였다.
《소좌 한정수, 전사와 함께 부대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느 부대요?》
《칠봉산부대입니다.》
이때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무들, 어서 이 차를 타시오.》
순간 두 군인은 동시에 입을 항 벌렸다가 이발을 마주쳤다. 꿈결에도 그리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웃몸을 이쪽으로 내밀고 손짓하여 부르시는것이 아닌가!
《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급기야 두 군인의 어깨들이 세차게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자, 어서 타라는데… 칠봉산까지는 아직도 수십리길이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점점 굵어지는 비발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거듭 재촉하셨다.
그제서야 군관이 먼저 자세를 바로잡고 차에 다가서며 인사를 드리였다.
윤명길은 그들의 배낭(조개를 가득 채운)을 짐칸에 넣고 앞좌석에 올랐다.
야전차는 다시 비발을 헤가르며 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량옆에 앉힌 두사람을 번갈아보시다가 전사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셨다.
《그래, 이름이 뭐지?》
로상에서 그리운 장군님을 만나뵈온것이 정말 꿈속이 아닌가싶어 손등을 살그머니 꼬집던 전사는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펴고 대답올렸다.
《전사 홍남철, 작년 8월에 입대하였습니다.》
귀바퀴와 입술언저리에 솜털이 보시시하고 목이 가늘어 남들보다 약해보이지만 목소리는 제법 여무졌다.
《음,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홍남철이라… 고향은 어디요?》
《청산군 당우리입니다.》
《그래? 해변가마을이구만.》
이렇게 어린 병사의 마음을 눅잦히신 후 장군님께서는 한정수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보아하니 군사임무수행중이 아닌것 같은데 어디를 갔다오는 길이요?》
소좌는 잠시 쭈밋쭈밋하다가 나직이 말씀드렸다.
《이 동무의 고향마을에 갔댔습니다.》
(?…)
윤명길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리며 두 군인을 번갈아보았다. 이제 군사복무의 문턱을 갓 넘어선것이나 다름없는 신입병사를 고향집에 데리고가다니?…
《무슨 불상사가 생긴게 아닙니까?》 하고 장군님께서는 불안해진 안색으로 물으시였다.
《아, 아닙니다. 사실은 저… 이 동무의 조개젓소증을 멈추어주려구…》
떠듬거리는 한정수를 다시 돌아본 윤명길의 이마에 굵은 주름고랑이 패였다. 고기가 먹고싶어 소증이 났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본적 있지만 조개젓이 너무 먹고싶어 소증을 일으켰다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다.
그건 그렇다치고 소증을 참아내도록 타일러주고 의지를 키워주어야 할 지휘관의 사고와 행동자체가 비정상이다. 쓸데없는 인정에 사로잡혀 오히려 병사들의 버릇만 굳혀놓는것이 아닌가.
《홍동문 해변가에 태를 묻고 자라서인지 어머니가 담근 조개젓외에 다른 식찬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번 길에서야 알게 되였습니다.》
한정수는 어느새 어려움을 잊고 장군님께 사실을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어느날 신병들의 생활을 료해하던 그는 한 전사가 이따금씩 잠결에 《어머니, 나 조개젓.》하고 헛소리를 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같이 입대한 동무들에게 물어보니 신병훈련때도 조개젓이 먹고싶다고 버릇처럼 말하군 했다는것이다.
그런데 복무하는 부대는 서해에서 멀리 떨어진 전선중부에 있어 변질이 빠른 조개류까지 식찬감으로 날라올 생각은 누구도 못하였었다.
신병훈련때는 그래도 참아내였는데 기본부대에 배치받아서부터는 소증을 참아내기 어려워 꿈속에서나마 조개젓을 먹어본 모양이였다. 그 소증때문인지 본인은 날이 갈수록 몸이 축가고있었다.
사연을 알게 된 한정수는 정치지도원과 의논하고 길을 떠났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저으기 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고맙소.… 지휘관동무!》
《?…》
《나이는 몇살이요?》
《서른한살입니다.》
《아직 새파란데 속에는 어머니가 들어앉았구만!》
《?…》
《동무네 구분대의 일이 기대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그냥 가겠는데 내 이제 품을 내여서라도 동무네 구분대를 꼭 찾겠소. 이 어려운 때 조국보위초소에 선 나의 병사들을 부탁합니다.》
부대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두 군인과 헤여지신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뒤창문으로 어스름과 비발에 가리워진 그곳을 내다보시였다.
이름없는 한 신입병사를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윤명길의 가슴이 옥죄여진다.
병사들의 훈련은 강한 우라는 판정점수를 받았다.
《강한 우란 말이지? 괜찮아, 아주 멋있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벌써 두번째로 하시는 말씀이였다.
《구분대장동무, 홍남철을 이리로 오라고 하시오. 한번 안아보고싶구만.…》
그이의 사려깊은 말씀에 한정수는 뜨겁게 달아오른 눈굽을 뻑 문대이며 자리를 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