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2(2013)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명남

(제1회)

1

 

제30차 올림픽경기대회 유술경기참가를 위한 최종선수선발경기가 끝난 뒤였다.

경기를 주관한 심사원들과 심판원, 관람석에 있던 여러 체육단의 감독, 선수들이 헤쳐간 뒤로 경기장안은 차츰차츰 고요가 깃들기 시작했다.

다만 경기장에는 방금 경기를 한 52키로그람급의 두 선수인 안순애와 그보다 나이가 아래인 윤숙이만이 남게 되였다.

항용 경기에서 이긴 선수의 땀배인 얼굴에는 경기과정에 어렸던 긴장감과 피로가 사라지고 대신 환희의 감정이 물결치기마련이다.

그러나 순애의 얼굴에는 반대로 실망과 괴로움만이 짙어갔다. 그의 눈길은 경기장바닥만 지꿎게 응시하고있었다.

《순애동지, 갑시다.》

윤숙은 벌써 이 말을 두번이나 되풀이했다. 허나 순애는 입을 꾹 다문채 움직일념을 안했다.

얼마후 순애는 눌렸던 숨을 조용히 내쉬며 윤숙의 길쑴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서늘했다.

윤숙은 뜻밖인지라 얼굴을 살짝 붉히며 황황히 눈을 내리깔았다.

《윤숙이, 솔직히 말해봐. 너 우정 져주었지?》

《예?!》

윤숙은 두눈이 휘둥그래지며 흠칠 놀랐다.

《아니, 난 내 능력껏 했을뿐이예요.》

《거짓말!》

순애의 격한 목소리가 넓다란 경기장안에 싸늘히 울려퍼졌다. 순애는 그의 달아오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빠른 말씨로 말을 이었다.

《넌 지금 우리모두를 속이고있어. 설사 생활에서 거짓이 통하는 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은 서로가 자기 능력을 속일수 없는 법이야. 솔직히 말해. 날 올림픽에 참가시키려고 우정 져주었지?》

윤숙은 아래입술만 잘근잘근 씹을뿐 대답을 못했다.

순애는 연기를 들이킨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왔다. 물론 자기를 위해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린 그의 고마운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였다.

이번 올림픽경기대회는 순애에게 있어서 선수생활의 마지막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아마 모름지기 윤숙이도 그것을 알고 스스로 물러선것이리라.

사실 체육인들에게 있어서 수많은 나라의 이름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올림픽경기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는 몇년을 품들여 련마한 자기의 육체적능력과 기술을 남김없이 과시하여 명성을 얻을수 있는 쉽지 않은 절호의 기회이다. 바로 그 기회를 자기에게 양보하였다고 생각하니 윤숙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 순애는 고마운 감정보다도 섭섭한 생각이 앞섰다.

사사로운 개인감정이나 명예에 앞서 조국의 영예를 먼저 내세우는것이 바로 우리 체육인들의 고상한 도덕륜리임을 리해 못하는 윤숙이 안타깝게만 생각되였다.

그래, 그래서 더욱 이번 올림픽경기대회에 지금 한창 전성기인 윤숙이를 꼭 참가시켜야 한다. 그래야 조국의 영예를 빛내일수 있다.

마침내 순애는 굳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윤숙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감독동지에게 툭 털어놓고 진실을 말해. 량심을 속인 너자신을 말이야.》

이번에도 역시 윤숙은 입을 꼭 다문채 대답을 피했다.

《좋아. 네가 정 찾아가기 힘들다면 나와 함께 가자.》

순애는 도화선마냥 타드는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해 그의 손을 와락 잡았다. 바로 그 찰나 윤숙은 그의 아귀센 손에서 황급히 자기 손을 뽑으며 뒤걸음질쳤다. 그리고는 세차게 머리를 젓는것이였다.

《아니예요. 난 량심을 속이지 않았어요. 난 능력껏 했단 말이예요.》

윤숙이 자기 고집을 굽히려 하지 않자 순애는 속이 울컥하는것을 겨우 참으며 제 먼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순애동지!》

윤숙이 어느새 달려와 두팔을 벌리며 그앞을 가로막았다. 윤숙의 두눈엔 물기가 핑 돌았다.

《순애동지, 왜 자꾸 이럽니까? 사실말해서 난… 난… 아니, 이번 올림픽경기엔 꼭 순애동지가 가야 합니다.》

《비켜.》

순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했으나 윤숙은 여전히 한자세로 길을 비켜주려고 안했다. 순간 순애는 그만 격해지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그의 뺨을 철썩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말마디에 힘을 주며 가슴속에서 이글거리는 불을 토했다.

《윤숙이, 우리 체육인들의 의리심은 양보가 아니라 경쟁심에서 공고화되는거야. 똑똑히 알아둬. 금메달은 오직 조국의 영예만을 생각하는 우리 체육인들의 깨끗한 량심과 뜨거운 열정의 땀방울이 합쳐진 보답의 결정체라는것을!》

순애는 이 말을 남긴채 돌아섰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뒤에서 윤숙의 물기어린 따가운 눈길이 여전히 잔등을 파고드는듯 했다.

아 윤숙이, 네가 어쩌면…

순애는 비틀거리며 계단을 가까스로 내렸다. 눈앞에는 뽀얀 안개발이 가리워져있었다.

 

2

 

주철감독이 있는 방이 가까와올수록 순애의 걸음발은 왜서인지 점점 떠졌다. 막상 다 나가게 된 올림픽경기대회에 자기 아닌 다른 선수를 보내려고 생각하니 굳게 닦아세웠던 마음이 갈대마냥 흔들거렸던것이다.

정녕 이것으로 나의 선수생활은 막이 내려지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걸어온 그 땀에 젖은 길의 종착점이란 말인가.…

문앞에서 걸음을 멈춘 순애는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진 손을 힘들게 들어올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또다시 심장이 활랑거린다.

이제 이 문을 열기만 하면 그땐 모든것이 결정되겠지. 선수생활이 아닌 다른 생활…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들어서기 꺼려하던 그 생활에 뛰여들게 될것이다. 이것은 제대를 의미한다.

제대, 생각하기도 괴롭고 무서운것이였다.

문득 한생 복무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가 어느날 옷장에 정히 걸어놓았던 군복을 꺼내놓으며 당부하던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순애야, 정작 제대되고보니 군복의 소중함을 갑절 느끼는것 같구나.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건만 어쨌든 나이는 속일수 없는것이니…

앞으로 너도 이 아버지처럼 후회를 안고 제대되는 일이 없도록 군복입은 체육인답게 더 많은 금메달로 조국을 빛내이거라. 그게 바로 최고사령관동지께 충정을 다하는 길이고 또 체육인으로서 후회없이 사는 길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버지의 이 말이 별스레 가슴을 허비며 곱씹어 되새겨진다.

과연 내가 후회없이 제대된다고 말할수 있을가. 아니… 순애는 머리를 저었다. 전번 제29차 올림픽경기대회가 불쑥 눈앞에 영화화면처럼 펼쳐졌던것이다.

만약 그때 52키로그람급 유술경기에서 1등을 했으면 이처럼 문을 열기 괴롭지는 않겠는데…

별안간 순애는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소스라쳐 놀랐다.

지금 내가 무슨 헛된 생각을 하고있는가. 조국의 영예를 놓고 나의 체면부터 생각하며 주저하다니.

안순애, 넌 뭘 생각하느냐. 만약 일신의 공명심으로 하여 이번 제30차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한다면 조국앞에 더 큰 수치를 남기게 된다는것을 왜 모르는가.

그래, 이건 죄악이다!

순애는 잡고있던 문손잡이를 더욱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문두드린다는것도 잊고 힘껏 잡아당겼다. 허나 문은 열려지지 않았다.

혹시 내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건 아닐가?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팔에 힘을 주며 문을 당겼다. 역시 문은 열려지지 않았다. 열쇠가 걸려있었던것이다.

아! 순애는 온몸이 나른해옴을 느끼며 허둥지둥 복도를 따라 달렸다.

밖은 따스했다. 수천만가닥의 해살이 밖을 나선 그의 두눈을 간지럽혔다.

터벅터벅…

순애는 중경기관에서 좀 떨어진 공원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면에 물이 스며들듯 온몸이 그대로 땅속으로 잦아드는듯 했다. 그의 이마와 코잔등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순애는 두다리를 모두어잡은채 땅만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깔끔스레 뾰족뾰족 돋아난 풀잎들사이로 반지르르 윤기도는 깜장개미들이 활발히 움직거리는것이 보였다. 먹이감을 찾아 쉴새없이 뛰여다니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순애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아마 저 개미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가 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겠지. 나도 저 개미들처럼 유술을 꾸준히 련마하여 크고작은 성과들을 성쌓듯 하나하나 쌓아나가지 않았는가. 저 개미들한데도 힘의 한계점이라는게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자기가 힘의 한계점에 서있다고 생각되였다.

순애가 그것을 처음 느낀것은 한해전 윤숙이와 제30차 올림픽경기대회참가를 위한 종합팀에 배속되였을 때였다.

그들은 비록 나이차이는 있어도 육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손꼽히는 유술계의 기둥을 이루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윤숙에게 더 기대의 눈길을 보냈다.

정식 올림픽경기대회참가문제가 상정되였을 때 사람들은 한창 전성기에 있는 윤숙을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허나 주철감독과 일부 사람들은 안순애를 꼽았다.

주철감독으로 말하면 계순희선수를 비롯한 많은 이름있는 유술선수들을 키운 감독으로서 무시할수 없는 발언권을 가지고있었다.

하지만 이미 전성기를 훨씬 벗어난 순애의 경기참가만은 고려해보자는 의견이 그의 주장을 누르군 했다.

순애가 윤숙이만큼 육체적능력을 발휘할수 있는가. 만약 그를 내세웠다가 훈련도중 극한점을 이겨내지 못해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땐 누가 책임지겠는가?

이 문제는 단순히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우리가 금메달을 따느냐 마느냐 하는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존엄과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라는걸 그래 당신이 모른단 말인가?

그때마다 주철감독은 《담보합니다.》 하며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중에는 순애가 윤숙이 못지 않게 육체적힘을 발휘할수 있다는 증거로 체력검사표까지 내보였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반대하던 사람들도 점차 공감은 하면서도 어쨌든 최종선수선발경기에서 윤숙이 이길것은 불보듯 뻔한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순애는 올림픽경기대회참가자격을 위한 최종선수선발경기를 위해 입술이 부르터지고 무릎에 부상을 입으면서도 훈련장만은 떠나지 않았다.

주철감독은 선수선발경기를 앞두고 두 선수의 준비정형도 료해할겸 예비경기를 불의에 두번 조직했다.

그 경기에서 한번은 윤숙이 이겼다. 훈련도중 손이 상한것으로 하여 순애는 자기의 특기를 발휘할수 없었다. 그의 특기는 상대편선수의 목깃을 틀어잡고 상대방의 다리사이로 자기의 허벅다리를 높이 들어올려 멨다꼰지는 허벅다리뜨기기술이였다. 공격할 기회가 많고 일단 들어가서는 성공률이 높은것으로 하여 그와 맞선 선수들은 누구나 그의 이 특기를 꺼려했다.

두번째 경기는 그가 손이 완쾌된 속에서 특기를 발휘했으나 무승부로 끝났다.

순애는 그 두번째 경기를 통해 윤숙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럴수록 자기 특기기술에 대한 신심이 점점 희박해졌다.

계속되는 손가락의 탈구, 그로 인한 육체적 및 심리적고통…

그래, 윤숙인 선수선발경기에서 나를 꼭 압도할것이다.

순애는 그것을 거의나 확신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윤숙이 경기에서 질줄이야…

과연 내가 이번 경기에서 1등할수 있을가? 만약 제29차 올림픽경기대회때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손가락이 탈구되여 특기를 발휘 못한다면 그땐…

그의 눈앞에는 잊을수 없는 12월의 그 나날들이 방불히 흘러갔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 눈… 피눈물을 흘리며 태양상을 찾고찾는 사람들의 모습…

그때 나도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을 우러르며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꼭 1등하여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기쁨을 드리리라 맹세했었지.

하다면 그 맹세를 지킬수 없단 말인가. 아니, 그 맹세는 결코 나 하나의 맹세가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체육인들의 목표이고 소원인것이다. 어떻게 하든 나를 대신해서 윤숙이가 그 맹세를 기어이 지켜야 한다.

순애는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조국의 영예를 저울질한 자신을 무섭게 질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자, 감독동지를 만나 윤숙일 내보내자고 제기하자. 모름지기 감독동지도 내 말을 전적으로 찬성해줄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주철감독이였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