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주체102(2013)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권정웅
(제2회)
×
우연히 꺼내보게 되였던 사진 한장은 실로 많은것을 생각케 하였다. 혁명의 영원한 동행자인 동지, 이것은 리성과 감성을 한데 합쳐 깊은 사색의 밑바닥으로까지 끌고가면서 혁명투쟁과정에 있었던 가지가지 잊혀지지 않는 일들을 더듬어보게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진을 집어드신채로 집무탁을 마주하고 계속 생각에 잠기시였다. 현재 집필에 열중하고계시는 《세기와 더불어》도 이제는 상당한 정도로 나갔다. 하지만 항상 관심사로 되였던것은 역시 혁명동지들에 대한 회상이였다.
애초에 이 글을 시작할 때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년대순으로 따라가면서 기록할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문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서술할것인가를 생각했었는데 그 량자에게는 각기 우단점들이 다 있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자고 한것이 년대식으로 나가면서 혁명에서 동지! 즉 뜻을 같이하는 동행자에 대한것에 모든 세부를 집중시키는것이 그중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셨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하바롭스크회의는 그렇고 그후는 무엇과 련결시킬것인가를 생각하고계시였다.
문기척소리가 가볍게 울리였다. 응대를 하자 정복차림그대로인 리을설이 나타났다. 문을 열어잡고 주밋거리는것을 무슨 일인가고 물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이맘때면 대체로 책임부관이 나타나기마련인데 리을설이 직접 찾아온것을 보면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을것 같으시였다.
《별일은 없습니다. 늦도록 불이 켜져있길래…》
리을설은 원래성미그대로 조용히 말씀올리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들어보았대야 늘 늦도록 불이 켜져있다는 역시 그 소리이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게 아니요. 이리 좀 가까이 오시오. 내가 본래 산에 있을적부터 초저녁잠이 없다는것을 동무야 누구보다 잘 알지 않소.》
《그러나 너무 무리하시면…》
리을설은 집무탁쪽으로 몇걸음 다가서기는 하였지만 역시 군인다운 바른 자세를 허물지 않으면서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오, 그렇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언듯 생각이 떠오르는것이 있어서 례의 그 사진을 집어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을설동무, 그때 저기 하바롭스크에 우리가 갔던 일이 생각나오?》
《네? 하바롭스크 말입니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뜻밖이여서 리을설은 얼마간 어리둥절해졌다.
《아, 그 왜 원동에 있는 쏘련의 하바롭스크 말이요. 1940년인가 그때에 우리가 회의에 가잖았소.》
《옳습니다. 그때 김책, 서철, 안길동지들을 만나셨었습니다.》
《그때 김책동무가 나한테 가져왔던 겨울용털신이 있었지. 그게 생각나오?》
《털신 말입니까?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배낭에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털신이 그후 어떻게 됐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러오.》
《그 털신이…》 리을설은 너무나 아닌밤중에 홍두깨식이여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어느 까마득한 옛날의 하바롭스크 그리고 김책, 게다가 바다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같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생활세부 털신! 하지만 리을설은 기억력에 있어서 어릴적부터 비상한 점이 있었다.
《그 털신은 말입니다.》 하고 리을설은 수령님 가까이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씀올리였다.
《한동안 제가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녔는데 두만강지구로 정찰나가는 한기만동무의 신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신겨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한동무가 돌아오지 못하다보니…》
《아, 이제야 생각나오. 그때 한기만동무는 눈에 무릎까지 빠지는데 늘 여름신을 신은채로 다니였으니까. 알겠소. 그렇게 된걸…》
순간에 쾌감에 잠기게 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고나서 집무탁에 놓인 사진을 집어드시였다.
(그래, 김책이 가져왔던 그 털신은 참으로 요긴하게 쓰이였지.)
명랑한 기분이 지나쳐 지어 즐거워하시는것 같은 수령님의 표정을 뵙게 된 리을설은 누구인지 딱히 알수 없으나 분명히 사진을 보고계신다는데 주의가 쏠리였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가고 물을수는 없었다.
잠간 방안을 거니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은 그렇고 리을설의 용무가 무엇인지 알고싶으시였다. 그는 언제나 빈걸음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래, 을설동무의 용무가 그게 다요? 늦도록 이 방에 불이 켜져있다 그거!》
《사실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다음은?》
《김정일동지께서 전화를…》
《전화가 왔소? 그럼 받아야지.》
《방금전에 전화로…》
내막을 까밝히면 김정일동지께서 전화로 부탁의 말씀이 계셨다.
수령님집무실에 불이 꺼져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들어가보고 무엇을 하고계시는지 알려달라는것이였다.
《전화를 대시오. 나도 알아볼게 좀 있어서 그러오.》
리을설은 참으로 난처해졌다. 수령님께서 빨리 쉬시도록 하라는 김정일동지의 부탁은 오히려 반대결과를 낳게 된것이다.
《지금 전화가 걸려있는건 아닙니다.》
《어서빨리 대도록 하오.》
이렇게 되여 잠시후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그래, 전화를 걸었다면서?》
수령님께서 다그쳐물으시였다.
《집무실에 아직 불이 켜져있다고 하기에 알아보라고 했었습니다.》
《그저 그리고있을뿐 별로 하는 일이 없소. 요새는 문건도 별로 올라오는것이 없다보니 밤시간은 거의 내것이요.》
《당분간 휴식하셔야겠습니다. 이번 경제일군협의회에서 시간을 너무 끌어 무리하신것 같습니다.》
《말하는 뜻을 알겠소. 그래서 오늘은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 하나에 수표를 해넘겼을뿐이요. 의사의 말을 들으면 그저 먹고 놀기만 하라는것인데 그렇게야 사람이 어떻게 살겠소.
그러나 내 극력 주의는 하겠소. 그건 그렇고 내 지금 리을설이와 함께 원동에 있는 하바롭스크에 가있던 이야기를 하던중인데 사람의 일이란 참 이상하지 않소. 내 그때 김책을 처음 만난 날 숲속을 걷다가 문뜩 첫상봉의 기쁨의 표시로 노래를 하나 부르겠소 하고 <사향가> 를 불렀단 말이요. 오늘 그때일을 암만 생각해봐도 동지와의 첫상봉, <사향가> 이 사이에는 아무런 련관이 없는데… 이상하거던…》
《제 보기엔 말입니다.》 흥분해서 그런지 김정일동지의 높은 숨소리가 수화기에서 솩솩 울리였다.
《아주 자연스럽고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혁명동지와 <사향가> 즉 동지를 만나니 고향생각, 그래서 고향은 곧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곧 조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리성이나 론리로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것을 심장, 다시말해서 감정은 벌써 번개치듯 해서 진리의 마루에 올라선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듣고보니 그 해석이 비슷하오. 그렇게 되는군. 난 요새 왜 그런지 동지들에 대한 생각이 가슴에 꽉 차있소. 수없이 많은 동지들, 그것을 하나하나 추억해보노라면 시간가는줄 모르겠소. 즐겁기도 하고 또한 눈물겹기도 하고… 보람, 긍지, 기대, 이런것이 구름처럼 피여오르지… 추억이란 참으로 감미롭고 아름다운 감정이야.…》
《짐작이 갑니다. 역시 회고록에 완전히 심취되여계신다는것이 알립니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입니다. 지금은 휴식하십시오. 꼭 휴식해주십시오.》 이렇게 말씀올리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 격해져서 말이 잘되지 않으시였다. 입술이 뻣뻣해지고 목이 꽉 메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씀을 또 올리시였다.
《간절한 소원입니다. 휴식해주십시오. 이것은 저만이 아니라 우리 당원들과 우리 인민모두가 바라는…》
《알겠소! 김정일동지, 알겠다니까.》
수령님께서 동지라는 대목에 힘을 주신다는것이 완연히 알리였다. 돌이켜보면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첫날도 《김정일동지가 사업을 시작했단 말이지. 기대가 큽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잡아준적이 있으시였다.
《부탁입니다. 총비서동지!》
얼결에 올린 말씀이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음성은 몹시 떨리시였다.
송수화기를 놓고도 한참동안이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리을설이 나타나기 방금전 김책이를 추억하던 그 장면을 다시 더듬게 되시였다.
(그래, 김책이와는 내가 어떻게 헤여졌더라?)
그렇게 되자 온몸으로 전류가 흐르는것처럼 쩌릿한감을 느끼는것과 동시에 사진을 들고있는 손이 급기야 떨리였다.
…그때는 조국강토에 전쟁의 불길이 한창 타오르던 때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끝나고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해서 우리 군대가 남진하던 때 하루는 문득 김책이 최고사령부에 나타났다. 한때 전선사령관이라는 중임을 담당하고있었고 그후에도 계속 전선과 후방의 긴장한 전역에 나가있던 그는 어떤 용무가 있으면 꼭 사전에 어느날 어느때 어떤 장소에서 만날수 있는가고 묻고 그에 따라 행동하군 하였다. 헌데 건지리에 자리잡고있던 최고사령부에, 그것도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때에 문뜩 나타났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요?》 김일성동지께서 손을 잡으며 다급히 물으시였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것 같았다.
《별일이 아닙니다. 그저 잠간 들렸다가려고 왔습니다.》
《날씨도 변덕스러운데 건강은 일없습니까?》
《보시다싶이 저는 건강합니다. 최고사령관동지는 어떻습니까?》
《나 역시, 하하하.》
이렇게 해서 인사가 끝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팔을 끌어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방안아래쪽에 앉히고나서 전선형편을 물으시였다.
김책은 여느때와는 달리 기분이 좀 떠있는것 같았다.
《손자의 병법에는 적을 추격하되 도망칠 여유를 주면서 따라가라 했다는데 저희들은 그것도 아니고 하여간 숨돌릴새없이 따라가 때려잡자는것인데 어떻게나 날쌔게 달아나는지 벌써 38도선까지는 한놈도 없이 다 달아나고말았습니다.》
《하하하, 비겁한 놈들은 하나같이 정황이 급해지면 머리로가 아니라 다리로 사색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바싹 더 조입시다. 말그대로 숨쉴 사이없이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용무는 무엇입니까?》
한담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런 뜻이 없는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 김책의 성미를 알고계시는터여서 넌지시 용건을 묻게 되시였다.
《어제 저녁에 오래간만에 꿈이라는것을 꾸지 않았겠습니까. 허허참.》 김책은 방금 면도를 해서 푸릿푸릿해진 턱을 문지르며 계속하였다.
《꿈에 글쎄 김정숙동무가 나한테 무슨 약초를 달인것이라고 하면서 김이 문문 나는 사발을 내밀더군요. 분명히 어느 산중 밀영입니다. 소화가 잘되고 위를 보호한다는것입니다. 그래 그걸 단숨에 들이키고 고개를 번쩍 드니 내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 정숙동무! 정숙동무 하고 부르다가 눈을 번쩍 떴습니다. 어떻게나 서운하고 맥이 빠지는지…》
무슨 말을 더 할것 같아 잠간 기다리셨지만 어두워진 창밖에 시선을 던지고 더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꿈이란 항상 허황하기마련이지만 그것이 산 사람의 생활의 한부분이며 그에 대한 반영이라고 볼 때 무심히 들어넘길수 없으시였다. 하지만 김책의 용무란 뻔한것이였다. 꿈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이 사실일수도 있겠지만 김책은 이런 식으로 최고사령부를 자주 찾아오군 하였다. 그래서는 장군님의 건강이 어떤가 그리고 신변호위에서는 혹시 빈틈이 없는가 또는 생활에서 불편이나 근심거리는 없는가 세밀히 알아보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알세라 모를세라 그것을 풀기에 왼심을 쓰군 하였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어언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때 한번 건느지 않고 줄곧 계속해오는것이다.
가슴이 찌르르 감동의 물결이 미쳐왔다. 실로 동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감격스러운 감정을 페부로 느끼게 하는 김책인것이다.
김책과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태반은 미국놈들과 싸움이야기였고 간간이 항일무장투쟁시기이야기 그리고 국제적판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언급되였다.
김책이 그만하고 돌아가겠노라고 했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래간만에 왔는데 국수를 눌러먹고 하루밤 자면서 이야기나 좀더 하자고 하시였다.
《김책동무가 좋아하는 농마는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메밀가루가 있는데 맛이 괜찮습니다. 앉으시오. 앉아서 이제 미국놈들이 어떤 수로 나오겠는가 토론해봅시다. 그러는 사이면 국수가 됩니다.》
그러나 김책은 끝내 사양하고 떠나겠다고 하였다. 빨리 가서 볼일이 있다는것이다. 저녁 9시가 좀 넘어 김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널마루에 앉아 장화를 신는 김책을 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팔을 잡아 방안으로 이끄시였다.
《김책동무! 갈 땐 가더라도 그 양말은 벗어야겠습니다.》
《네? 양말이 어쨌다구요.》 김책은 구멍이 펑 뚫린 양말뒤축을 만져보면서 웃었다.
《전쟁통에 누구나 가난하게 사는데 일있습니까. 이것도 아직 한동안…》
《빨리 일어나시오.》
이렇게 되여 김책은 손에 집어들었던 장화를 한쪽에 밀어놓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걸 신어보시오. 좀 작지 않겠는지. 그리구 두텁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이렇게 구멍이 뚫린 양말로써야 랭기를 막아내지 못하지요.》
김책은 양말을 받아들고 잠간 생각하는듯 하더니 서둘러 발에 꿰고나서 자리에서 또 일어났다.
《하! 그래두 끝내 가겠다는겁니까? 이밤중에… 게다가 눈보라가 사나운데…》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색해서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김책은 이미 든든히 속다짐이라도 하고있었던것처럼 대답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 꼭 가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고작해야 한 30분이면 가닿을수 있는데… 전선형편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럽니다.》
이쯤 되고보면 그 어떤 체면을 차리거나 그 무슨 수놀음으로 장면을 모면하자는것이 아님을 그이께서는 잘 알고계시였다. 그것이 다름아닌 김책이고보면…
《전선형편이라!》
김일성동지께서는 서운한감을 누르지 못하면서 탁자우에 놓여있던 김책의 야전가방을 들어 내주시였다. 김책이 떠나간 후에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대앞에서 지도를 들여다보고계시였다. 새로운 재진격을 구상하시는 그이께서는 적들을 추격만 할것이 아니라 다시는 추서지 못하게 유생력량을 보다 효과적으로 소멸해치울 작전을 펼치고계시였다.
시간은 어느새 새날에 접어들었다. 문기척소리가 가볍게 울리였다.
새벽 1시나 2시가 돼서부터는 좀처럼 찾아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웬일인가싶어 고개를 들며 들어오라고 하시였다. 책임부관이 나타났다.
키가 훤칠한 대좌는 여느때없이 부자연스럽게 몸가짐을 하며 몇걸음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다그쳐묻는데 부관은 고개를 떨구며 신음소리와 같은 음조로 대답하였다.
《김책동지가…》
《그래 전화요?》
《심장이…》
《심장이? 심장이 어쨌다는거요?》
《멎었다고 합니다.》
《뭐? 김책의 심장이 멎었다 그 소리요?》
《그렇습니다. 방금 전화에서 심장마비로 그렇게 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니요, 그건 무슨 착오요. 그래, 누가 그랬소?》
《제가 방금 부관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좌는 갑자기 기울어드는 몸을 벽을 짚고 가까스로 바로세우면서 쥐여짜는듯 한 목소리를 내였다.
《똑똑히 말하오. 그래 김책의 심장이 멎었다는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아니요, 그럴수 없소. 어제 밤 9시까지 여기 앉아 나와 이야기를 하다 갔는데…》
도저히 리해할수도 접수할수도 없어 완강하게 반발하건만 사실은 사실이였다. 부관은 끝내 몸을 지탱해내지 못하고 방바닥에 주저앉고말았다.
×
날은 흘러 김책의 령구를 발인하게 되였다.
전쟁이 한창이다보니 항일무장투쟁때부터 그리고 그후에 인민무력건설에 공로가 있고 김책이와 막역한 전우들이 많았건만 그들 대부분이 전선에 나가있었기때문에 영결마당에 나타난 사람은 몇명 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인차 알수 있는 사람들이란 김일이와 오백룡 그밖의 몇명의 장령들이 있을뿐이였다. 빨찌산추도곡이 눈물에 젖은 사람들의 가슴속 갈피갈피를 헤집으며 서서히 흘러들었다.
붉은기를 씌운 령구를 한쪽에 세명씩 여섯명이 흰천으로 만든 발인줄로 들어올리였다.
모란봉북쪽기슭의 방공호앞 그리 크지 않은 유리창건물에는 비통한 공기가 차고넘쳐 금시 폭발을 일으킬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걸음, 두걸음 령구가 문께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김책이!》 하고 요란한 음성이 방안을 울리였다. 맨앞에 서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 붉은 기폭을 씌운 령구를 와락 덮쳐안으며 울음을 터치신것이다.
《못 간다! 못 가, 김책이 가다니… 우리를 두고 가긴 어데로 혼자 간단 말인가. 못 간다!》
발인의 걸음이 멈춰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을 가려볼수 없으시였다. 눈앞은 뽀얗게 흐려졌는데 붉은 기폭이 너울너울 물결쳤다. 그런가 하면 그우에 김책의 얼굴이 나타났다사라졌다 하였다. 하바롭스크교외 귀틀집숙영소에서 처음 만났던 그 얼굴이였다.
《내곁을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던 김책이가 어데로 가는가. 죽어도 백두산을 베고 숨지겠다던 김책이가 먼저 가다니…》
비통하기 이를데 없는 웨침소리가 사람들의 뼈마디를 바스러뜨릴만치 처절하게 울리였다.
또다시 시간은 흘러 모란봉 최승대동쪽 아늑한 잔디밭에 방금 생겨난 하나의 분묘앞에 숱한 사람들이 둘러서있었다. 영결식이 있은 다음 모두 흩어져가게 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리를 뜰수 없었다. 김책이와 헤여질수가 없어서였다.
더구나 김일성동지께서 봉분앞에 그냥 서계시기때문에 모두 발길을 돌릴수 없었다. 이윽해서 그이께서 자리를 뜨시였다.
그날 밤이였다. 달이 밝았다. 하루전에 온 눈때문에 눈길이 닿는 곳마다 모두 흰 장막을 덮어놓은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무나 비통한 감정을 누를길이 없으시여 한밤중에 다시 찾아오시였다. 고개를 숙이고 묘앞에 서시였다. 추억은 번개처럼 뇌리를 치며 지나가는데 나타나는 장면들모두가 생시처럼 생동하게 펼쳐졌다.
…아! 얼마나 진실하고 순결하며 또한 변함이 없는 혁명동지였던가. 처음 만났을 때나 마지막 숨지는 때나 모든것이 진정이고 고지식하고 가식을 모르는 그였다. 나이로 보면 10년가까이 우인데도 언제나 김일성동지 아니면 최고사령관동지로 최고존칭을 달아 불러주었지. 하바롭스크교외에서 만나 이제부터는 우리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하더니 그는 말그대로 언제나 우리곁에 있었다. 8. 15해방을 맞아 우리 동무들가운데 일부는 동북지방의 정세가 불리해져서 그쪽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도 김책은 나를 따라 같이 행동하겠다고 해서 조국으로 돌아왔었다. 당창건을 추진하기 위해 함흥에 파견했는데 한달도 되지 않아 인차 평양으로 올라왔고 그후에는 정규무력을 건설하게 되였을 때 지휘관육성기지인 보안간부학교와 평양학원을 전적으로 담당했었고…
그가 얼마나 나에 대해서 충정하였고 추호도 거기에 가식이 없었다는것은 출퇴근시간만 보아도 잘 알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 당을 창건하고 그 사무실을 창광산기슭에 있는 2층건물에 두었었다.
김책은 아침해 뜨기 전 어둑어둑한 때 나와서는 내가 출근할 때까지 현관앞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앞세우고야 자기 방에 들어가군 하였다.
퇴근할 때는 내가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는것을 보고서야 발길을 돌려 자기 집으로 가군 했다.…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나온 후에는 일제가 전면적으로 파괴한 산업을 누가 담당하여 복구하며 어려운 인민생활을 풀겠는가 하는것이 큰 문제로 제기되였다. 그래 김책이와 의논삼아 우리 형편을 말했더니 그러면 내가 맡아서 해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자청해나섰다. 아는것이 없지만 힘껏 해보겠다고 하여서… 나는 참으로 고마왔다. 그래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서도 한당대 총을 메고 전장을 뛰여다니던 사람이 꽤 해낼만 한가고 걱정했는데 1947년 첫 인민경제계획도 그래, 그 다음해, 또 그 다음, 여하튼 우리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일떠서군 하였다. 김책은 어느 하루 빠짐없이 나에게 하루일과를 말하고 저녁에는 그에 대한 총화를 하군 하였다. 새롭고 중요하다고 보는 과업에 대해서는 문제제기에서부터 그 진행정형을 수시로 통보해왔다. 그의 안해의 말에 의하면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우리한테서 가는 전화를 받을 때면 꼭 옷을 갈아입고 단추까지 다 채운 다음에야 김책이 전화받습니다라고 말했다는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꽁꽁 언 땅밑에 눕혀두다니… 아, 나의 이 팔을 자른들, 이 다리를 생짜로 끊어낸들 이다지 아프고 쓰리고 절통할것인가!
김책이! 일어나라, 왜 말이 없는가. 깨여나서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가라.… 조국통일이 되면 우리 축배잔을 같이 들어보자고 했지.…
응? 왜 말이 없나, 김책이…
…밤이 깊었는데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를 뜨지 못하시였다. 부관이 그이의 팔을 부축해서 자동차 있는데까지 모시였다.
《아! 동지란 기쁨도 주지만 이렇게 뼈아픈 고통도 주는것인가!》
머리우에서 푸드득 날짐승 한마리가 깃을 치며 날아올랐다. 그통에 소나무가지가 흔들리며 눈가루가 뽀얗게 날리였다.
×
사진을 이윽토록 들여다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였다. 《김책이!》 하고 부르고나서 속말을 하시였다.
그래, 그에 대해서 생각나는것을 다 써야지. 《세기와 더불어》에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해도 김책을 당할 사람이 어데 있을라구. 김책이, 그의 이름은 동지! 혁명동지! 나의 회고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회고인 《세기와 더불어》의 총적주제는 동지로 되여야 한다. 동지이외 그 어떤 다른것으로는 결코 될수 없는것이다.
동지! 이것은 혁명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것.
동지! 이것은 혁명하는 사람에게 만능당의 힘과 용기를 주는것. 그러나 먼저 말해야 할것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지를 얻는것으로 끝나는 사회운동에서의 어길수 없는 철칙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동지! 혁명에 대해서 모든것을 단 한마디로 말해주는 실체인것이다.
레닌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레대원리를 응용해서 나에게 조직을 달라, 그러면 지구덩어리라도 들어올릴것이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옳다. 한데 나는 나에게 동지를 달라, 그러면 임의의 시각에 천하를 움직일 조직을 얼마든지 만들어낼것이다, 이렇게 말하고싶다.
이것은 공뜬 장담이 아니라 내가 한생을 통하여 얻게 된 결론이다. 알기 쉽게 말해서 혁명가들이 그렇게도 열망하고 필요로 하는 혁명조직이란 별로 신기한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인간들의 결합체인것이다. 때문에 동지,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 존재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동지는 혁명에서 필수불가결의것이면서 그것을 얻고 사귀는 과정에는 최대의 희생이 요구되기마련이다. 하여 동지를 위해 한목숨 바칠 각오가 돼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동지가 차례지지 않는 법이다.
나는 열네살에 압록강을 건느며 일제에게 빼앗긴 내 조국을 되찾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다지였다. 그때로부터 동지를 구하고 동지와 결합해서 조국을 해방하고 또 그후에는 미제를 비롯한 16개 나라의 침략무력을 물리치는 조국해방전쟁을 하였다.
그런 후에는 적들의 온갖 압력과 말살책동을 물리치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건설하였다. 반세기가 넘는 이 기간 나는 단 한번의 실패도 절망도 없었다. 이 기간 모진 고통이나 치명적인 위험이 수십수백번 있었다. 아슬아슬한 위험이 닥쳐올 때마다 매번 우리 동지들이 자기 몸으로 나를 막아주었고 보호해주었다.
이렇기때문에 나는 생일 60돐이 되는 연회석상에서 사전의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문득 일어나 인사말을 몇마디 하게 되였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들의 보호와 양육을 받았다, 그러나 혁명투쟁에 나선 그때부터는 동지들이 나를 보호하고 옹위해주었다, 그리하여 오늘 동무들이 보는것처럼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인민들이 우리에게 맡겨준 혁명위업을 별로 큰 편차없이 수행해나가고있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지들의 사랑, 동지들의 신뢰, 그것이 없었다면 여직 살아오지도 못했을것이고 앞으로도 살아가지 못할것이라고 말했던것이다.…
여기까지 보여준 추억의 화폭은 휘딱 장면을 바꾸어 여름밤 하늘에 뿌려진 뭇별처럼 그 수를 미처 헤아리기 바쁠 정도로 무수한 동지들의 얼굴들이 총총히 나타났다.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을 나서서 광복의 길에 오를 때 평양역까지 따라나와 내 손에 돈 3원을 쥐여주며 부디 살아서 다시 만나자던 강윤범, 무송시절의 장울화, 고재룡, 그리고 화전과 길림시기의 차광수, 김혁, 최창걸, 한영애 등등 항일의 혈전만리를 걷던 백두산시절의 오중흡, 안길, 강건, 김일, 최현, 오백룡, 림춘추를 비롯하여 지금은 대성산주작봉마루에 안장된 그 전우들… 해방이 돼서 새 조국건설시기에는 김용범, 홍명희, 강영창, 정준택, 허정숙, 김직현, 리만선, 리주연, 김종항, 원도중, 리찬, 김제원 등등 국가건설, 경제건설이라는 초행길을 같이 걷던 동무들, 그들은 지금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여있다.
조국해방전쟁과 전후 사회주의건설시기에는 최춘국, 조정철, 박정덕, 조기천과 리승기, 계응상, 리기영, 로태석, 김두삼, 정일룡, 추상수, 림근상, 안달수, 박정수 등등…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부풀어오르는 이름들이다.
동지!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 부름인가!
동지!
밤이 깊었다. 새날이 멀지 않았다.
깊은 사색에 잠겨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책상우에 놓였던 회고록의 집필요강과 초고들 그리고 자료묶음들을 정히 개여놓은 다음 례의 그 사진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시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
이때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음을 짓게 되시였다.
벌써 한해전의 일로 되였다. 몇명의 작가들과 만나 항일무장투쟁시기이야기를 들려주신적이 있었다. 작가들은 그때 노래 하나를 불러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 《사향가》를 부르던 생각이 나시였다.
(그래, 김책을 처음 만난 그날 밤 눈보라치는 숲속을 거닐면서도 그 노래를 불렀었지.)
그리고보면 《사향가》는 고향생각만이 아니라 동지를 만나 한껏 기뻐졌을 때마다 부르게 되시였던것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있다. 숲이 모지름을 쓰면서 설레이고있다.
밤은 끝없이 깊어간다.
끝없이…
×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날 밤 새날이 왔지만 아직 날밝기 전, 그처럼 소중히 여기시던 사진 한장을 사려깊이 여겨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에 손을 가져다대고 방안을 거닐고계시였다. 그러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시였다. 그러한지 얼마 안되여 그렇게도 크고 그렇게도 억센 그이의 심장이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멎었던것이다.
온 나라 인민이 그렇게도 비통해하고 온 하늘과 땅이 합쳐 모두 통곡하며 눈물을 쏟은 애도기간도 지나간 어느날 역시 깊은 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을설의 안내를 받아 수령님의 집무실로 들어서게 되시였다. 그러나 집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이께서는 갑자기 공허한 생각에 젖어들면서 온몸의 기운이 삽시에 발끝으로 빠져나가는듯 한 느낌을 받으시였다. 여느때같으면 벌써 수령님의 정다운 음성이 들릴것이고 뒤이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실것이였지만 지금은 오금이 저릴만큼 진하게 깃든 정적만을 느낄수 있을뿐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꽉 눌러잡으시였다.
공허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강한 전률을 불러오는것이다. 그것을 참고견디려니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올랐다.
문가에 잠간 서서 방안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리을설이 팔을 잡고 이끄는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처음에는 안락의자와 응접탁이 놓인 곳으로, 그 다음에는 한쪽벽을 가득 채운 서가로, 그다음에는 탁상등과 몇권의 도서와 필기도구가 놓인 집무탁으로 다가가시였다.
총체적으로 소박하다거나 간소하다기보다 수령님께서 집무하시는데 필요한것외 그 어떤 장식이나 화려한것이란 전혀 찾아볼수 없는 그런 방이였다.
즉석에서 마음에 걸리는것은 정도이상 수수한 가정용천연색텔레비죤과 수수한 실내화였다. 순간 이전에는 왜 이런것이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던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이께서는 푸른색가위의 책을 집어드시였다.
《세기와 더불어》 몇권이 책상 한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서가에 있는 책을 뽑아드시였다. 처음에 손에 잡힌것이 《조선전사》였다. 거기에도 수령님의 독서흔적이 력연하였다. 책장을 접은데도 있고 간혹 펜으로 줄을 긋거나 감탄부호 또는 의문부호를 친것이 있었다. 책장이 놓인 순서대로 나가며 책들을 뽑아보시였다. 과학이나 경제기술도서 그리고 문예도서 등이 나타났다. 우리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이름있다는 외문도서들도 눈에 띄는것이 많았다. 이것저것 내키는대로 책을 펼쳐보시는 과정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찔리우는듯 한 좀전의 충격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수 있으시였다. 그리하여 금시 쓰러질것처럼 기우뚱거리고있는 리을설을 붙잡고 집무탁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수십년동안 일을 보셨지요?》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옳습니다. 바로 여기 이 자리입니다.》
손으로 의자를 가리켜드리던 리을설은 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옆으로 돌아선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 방안 오른쪽구석에 놓인 금고를 가리키시였다.
《저 금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글쎄, 별로 특별한것은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이따금씩 문여실 때 보면 서류봉투가 몇개 들어있었을뿐이였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마지막날 집무탁에 펴놓으시였던것을 제가 거두어 모두 제자리에 가져다넣었습니다.》
《그래요?》
리을설은 김정일동지께서 관심을 가지시기때문에 서둘러 열쇠를 찾아내여 금고의 문을 열어제끼였다.
《보십시오, 이게 답니다.》
아래우 두칸으로 되여있는데 맨우에 놓였던 봉투에는 사진 한장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김책동지와 나란히 서서 찍으신 사진이였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온몸이 얼어드는듯 한 충격을 느끼시였다.
그날 밤 바로 전화를 통하여 마지막육성을 들으실 그때 김책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고 왜 그런지 김책을 만나서 《사향가》를 부르게 되였던 옛이야기를 하시였던것이다. 너무나 뜻밖이고 너무나 생각밖의 이야기였다. 혹시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에 대한 이야기거나 아니면 경제일군들과의 협의회 또는 조국통일과 관련한것이라면 몰라라…
그리고 이 사진으로 말하면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가 건지리에 있을 때 수령님께서 일력장앞에 세워놓고 늘 보군 하시던 그 사진이라는것이 대번에 알리였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저 김책동지가 사망한 직후니까 생전의 두터운 정을 잊지 못해 그러시겠거니 하고 범상히 생각하시였던것이다. 헌데 김책이와 헤여진지도 어언 40여년!… 그것이 어찌 생의 마지막순간의 화제로 될수 있었는지… 그러고보면 수령님께서는 앞일을 다 알고있기나 하신것처럼 혁명에서 기본의 기본인 동지에 대해서 사색하고계신것이 틀림없었다.
아! 그 정, 그 뜻, 무한대하고 영원한 그 의미를 헤아리기에는 이 한가슴이 모자랄 정도이다.
사진을 든 그이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옆에 서있던 리을설은 금고앞에서, 더구나 한장의 사진으로 해서 순간에 굳어지신 그 영문을 알수 없어 그이앞으로 한걸음 다가서게 되였다. 순간 그도 깜짝 놀랐다.
아득한 옛날, 짐작컨대 전쟁시기 어느때 피뜩 한번 본듯 한 사진이였다. 수령님께서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젊으신 때의 모습이였다.
한껏 긴장해진 리을설은 그이께서 들고계시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입술을 한껏 사려무신 김정일동지께서 소리없이 울고계시였다.
시간이 흘렀다.
김정일동지께서 리을설을 쳐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참말 감격적입니다. 혁명의 그 모든것이 함축집약된 친근한 부름 동지! 이보다 더 뜨거운 부름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고귀한 호칭이 또 어디 있습니까. 기쁨을 주고 힘을 주며 또 그것이 영원한… 혁명의 핵이고 혁명의 진리… 우리가 언제나 찾고있는 혁명의 변증법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 밤 이제는 마지막으로 된 그 말씀에서 《김정일동지!》 하고 불러주시던 그 동지라는 호칭을 생각하고계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손에 들었던 사진을 본래 그 자리에 밀어넣고 금고문을 정중히 닫으시였다. 그리고 어성을 좀 높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준 고귀한 유산입니다. 나는 이 뜻을 영원히 가슴속깊이에 간직하겠습니다.》
그이의 어깨가 높이 오르내리였다. 손등에 불찌같은 눈물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였다.
밤새울음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소쩍… 소쩍…》
주체89(200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