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2(2013)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강 순

 

밤새 내린 함박눈으로 고향산천은 황홀한 설경을 이루었다.

김성혁은 아침식사를 마치기 바쁘게 1분조포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얼마전에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왔던것이다.

눈우에 반사되여 더욱 눈부신 해빛에 두눈을 잔조롬히 쪼프리며 그는 고향산천을 둘러보았다.

군사복무의 나날 언제한번 잊은적이 없던 고향이였다. 해빛넘치는 들판, 설경에 싸인 산기슭의 오붓한 마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부풀어오른다.

여기서 나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 고향땅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꾸려가리라.…

성혁은 힘있게 걸음을 옮겼다.

처녀들이 작업복차림으로 포전에 나타난 그를 보며 속삭였다. 분조원들도 약속이나 한듯 일손을 멈추고 성혁에게로 눈길을 모았다.

군대에서 단련된 제대군인의 절도있는 몸가짐과 자신만만한 태도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수고합니다.》

성혁은 분조원들에게 활달한 어조로 인사를 했다.

분조장이 놀라와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자넨 어떻게 여길 나오나?》

《이거 몸이 막 근질근질해서 어디 견디겠습니까?》

《역시 제대군인이 다르구만. 자네 마음을 아네. 하지만 며칠만이라도 좀 더 쉬라구.》

《고맙습니다.》

분조장의 다심한 마음에 코허리가 시큰해옴을 느끼며 성혁은 거름무지를 걸싸게 쌓아가기 시작했다.

들판은 흥성거렸다. 거름을 실은 뜨락또르가 발동소리를 울리며 포전에 들이닥쳤다.

때를 같이하여 작업반기술원인 류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웬일인지 분조장에게로 곧장 다가온 그의 얼굴색이 어두워보였다.

《분조장동지, 이 거름을 어떻게 여기에 내옵니까?》

몸집이 좋은 분조장은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미안하오, 기술원동무. 작업반장이 건늠골에 아까운 이 거름을 들붓는다고 하기에…》

《반장동지가요?!》

류경은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실 이 거름은 건늠골포전에 내기로 토론되여 있었다.

그런데 작업반장이 그것을 뒤집어엎은것이다.

이때 작업반장인 호근이 소재지쪽에서 나타났다.

숫눈길로 급한 걸음을 옮겨놓는다.

류경은 작업반장앞으로 다가갔다.

《반장동지가 이 거름을 여기에 내라고 했습니까?》

《기술원동무, 내 언제인가도 말했지만 건늠골포전은 소출이 적어서 아무래도 축산반원료기지로 넘겨야 할것 같네.》

《예?!》

류경은 놀랐다.

《반장동지, 그건 말도 안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호근은 류경의 어깨를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 밭때문에 얼마나 애썼나. 그래두 역시 수확량은 크게 차이가 없었지. 마침 축산기지확보문제가 제기되여 그 밭을 원료기지로 넘기려고 안을 잡았으니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

호근은 앓던 이를 빼던진만큼이나 시원해하는 표정이였다.

《반장동지!》

류경은 반장에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됐소. 난 솔직히 말해서 기술원이 그 밭때문에 고생하는걸 더 보고만 있을수 없소.》

호근은 구부정한 허리를 곧추 펴며 관리위원회로 걸음을 옮겼다.

성혁은 저으기 무거워진 마음으로 반장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

 

밤하늘에서 꽃송이같은 함박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장의 집을 나선 성혁은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녁에 성혁은 반장의 딸인 경미의 손에 이끌려 호근의 집으로 갔었다. 반장이 저녁식사에 초청한다는것이다.

호근은 대견한 눈길로 성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자네를 보니 내 마음이 다 기쁘구만. 고향으로 배치받았다지. 잘 생각했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라구. 아버지와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두 내가 도와야지.》

성혁은 진심으로 고마와했다.

호근은 성혁의 아버지와 중학교 동창이였다.

한마을에서 같이 자라 중학교를 졸업한 성혁의 아버지는 인민군대에 나가게 되였다.

인민군대에서 제대되여 고향에 와보니 호근이 분조장으로 일하고있었다.

호근의 소개로 이웃마을처녀와 가정을 이룬 후 깨가 쏟아지는 생활이 흘렀다. 이들이 결혼한지 몇해 지나 성혁이가 태여나게 되였다.

호근이와 손잡고 고향땅을 꽃펴가던 성혁의 아버지는 성혁이가 열살나던 해 뜻밖의 병으로 하여 앓게 되였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농사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김매는기계제작에 모든것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기계제작을 위해 군농기계공장을 다녀오던 길에 심해진 병으로 하여 쓰러졌던 그는 끝내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다.…

이런 생각에 잠겨 천천히 집으로 향하던 성혁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과학기술지식선전실에서 밝은 불빛이 흘러나왔던것이다.

성혁의 걸음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해졌다.

창문을 등지고 선 류경의 모습이 보여왔다.

불빛에 눈송이들이 춤추듯 처녀의 어깨에 내려앉는듯이 보인다.

문득 성혁에게는 중학시절에 있었던 즐거운 추억이 떠올랐다.

학교운동장에서 공다루기훈련에 여념이 없던 성혁은 누군가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잠시 훈련을 중지하게 되였다.

류경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성혁을 바라보고있었다.

《성혁동무, 나를 도와줘요. 이번주 토요일에 군에서 진행하는 웅변경연에 제가 참가하게 됐어요.

같은값이면 창작품을 가지고 참가하고싶어요.》

성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군적인 경기에 제가 어떻게 우승하겠다고…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성혁에게 류경은 그냥 성화를 먹였다.

《학교적으로 글짓기에서 제일인 동무가 도와주면 난 꼭 1등을 할수 있을것 같애서 그래요.》

성혁은 하도 지꿎게 달라붙기에 그러마 하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이틀밤을 꼬박 밝혀가며 웅변글을 써주었다. 그가 당선되리라고 믿지는 않았으나 함께 자란 정으로 하여 펜을 들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가 당선될줄이야.

총명하고 생기발랄한 소녀―류경이 군적인 웅변경연에서 정말로 1등을 하였던것이다. 그 소식이 학교의 속보판에도 나붙고 성혁에게도 생각지 않았던 축하의 꽃다발이 안겨지게 되였다.…

성혁은 조용히 인기척을 내고 선전실에 들어섰다.

《왜 아직 들어가지 않고 여기에 있소?》

류경은 저으기 놀란 눈빛으로 성혁을 바라보았다.

《그저 좀 할일이 있어서… 그런데 어떻게 나오셨어요?》

《지나가던 길에 불이 켜져있기에… 그런데 늦게까지 뭘 그렇게 보오?》

《토양별분석자료예요.》

성혁은 류경이가 보는것이 건늠골포전에 대한 분석자료라는것을 알았다. 류경의 설명을 듣는 성혁의 생각은 깊어졌다.

(판대기성구조라… 그러니 건늠골포전은 ㅊ성분이 있는 흙으로 흙깔이를 해야 한단 말이지.

우리 고향엔 늪자리가 없으니 필요한 영양물질이 많이 들어있는 ㅊ성분이 있는 흙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지금 류경이가 건늠골을 걸구기 위해 품들여 준비한 거름도 흙깔이를 하기 전에는 그 효력이 절반도 안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성혁동무, 동무도 분석자료를 보고 이야기를 들어 알겠지만 우리 고향엔 늪자리가 없어 건늠골을 걸굴 방도가 없는게 정말 안타까운 일이예요.》

성혁은 말없이 분석자료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류경은 안타까운듯 호― 한숨을 쉬고나서 입을 열었다.

《저… 사실 선녀봉옆에 있는 호수가자리에서 질좋은 흙을 찾아내긴 했는데…》

《그렇소?!》

성혁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확 어렸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 아닌가요. 선녀봉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물살이 빠르지, 돌아가자니 너무 멀지, 그러니 무슨 수로 그걸 날라오겠어요.》

성혁은 그제야 류경의 고충이 리해되였다.

《하지만 어떻게 전투를 벌려서라도 흙깔이를 하자고 여러번 제기했지만 반장동진 그런데까지 신경쓸새가 없다면서… 당면한 영농과제만 수행하재도 바쁘다는거지요.》

성혁은 건늠골포전을 두고 애쓰는 류경이 돋보였다. 그럴수록 류경을 도울 그 무슨 방도를 내놓지 못하는 자신이 한스러웠다.

《좀 더 생각해봅시다. 이젠 밤도 어지간히 깊었는데 어서 집에 가보오.》

이렇게 말하고난 성혁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성혁은 며칠째 마을주변의 산들을 돌아다니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러는 성혁을 처음엔 무심히 보았지만 날이 감에 따라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성혁은 의아해하는 마을사람들의 말없는 표정을 읽었지만 자기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할수 없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더 건늠골포전에 가있었다.

그는 오늘도 밤늦도록 궁싯거리며 지형도를 그리다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성혁은 서둘러 집을 나서 선녀봉으로 향했다.

선녀봉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먼 옛날 불쌍한 소녀가 눈먼 할머니를 모시고 외롭게 살고있었다. 소녀는 할머니의 눈을 뜨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선녀봉에서 자라는 갖가지 약초들과 꽃들로 약을 달여드리고 깊은 한밤에 피여나는 달맞이꽃에서 이슬을 받아 할머니의 두눈에 떨구어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내 앞을 보지 못한채 눈을 감았다. 소녀는 할머니를 부르며 울고울었다. 그 눈물이 흐르고흘러 선녀봉밑에 호수가 생겨났다.

어느날 호수가에 뽀얀 안개가 서리더니 칠색무지개가 비끼고 그 소녀는 무지개를 타고 어여쁜 선녀로 되여 하늘로 훨훨 날아올랐다고 한다.…

성혁은 선녀봉에서 건늠골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강이 건늠골포전과 선녀봉사이를 가로막고있었다.

그는 피뜩 이곳지형이 자기가 군사복무를 하던 곳의 지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중대에서 놓았던 무동력삭도를 여기에 놓는다면…

그는 무릎을 쳤다. 될것 같았다. 그렇게만 되면 얼마든지 많은 시간과 로력을 절약하면서도 빠른 시일내에 건늠골의 흙깔이를 끝낼수 있지 않는가.

어찌 그뿐인가. 작업반의 밭들과 모래메흙으로 된 논들에도 흙깔이를 할수 있지 않는가.…

그날로 성혁은 작업반실에서 호근이와 마주앉았다.

《반장동지, 한가지 의견을 말할만 합니까?》

《뭔데…》

호근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믿음어린 눈길로 성혁을 바라보았다.

《전 건늠골과 선녀봉사이에 무동력삭도를 놓자는 의견입니다.》

《뭐뭐? 무동력삭도를?》

호근은 두눈이 퀭해서 성혁을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류경이도 무동력삭도라는 말에 자못 놀라와했다.

성혁은 호근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늠골포전에서 높은 수확을 내자면 흙깔이를 해야 하며 그러자면 선녀봉과 건늠골포전사이에 무동력삭도를 놓아 선녀봉옆에 있는 호수가에 많은 ㅊ성분의 흙을 건늠골포전으로 옮겨와야 한다는것 등…

《무동력삭도를 놓는건 제가 맡아서 하려고 합니다. 반장동지, 한번 본때있게 흙깔이전투를 벌려봅시다.》

성혁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호근과 류경은 한참이나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 그래서 마을주변들을 돌아다녔나. 헛참, 물어라도 볼것이지… 심정은 리해되네. 하지만 그 밭은 원료기지로 넘기자고 관리위원회에 제기했네.》

성혁은 심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반장동지,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땅으로 만들수 있을텐데 왜 원료기지로 넘기겠습니까?》

《허허, 자네 고집두 여간이 아니구만. 그래 무슨 수로 무동력삭도를 놓겠나?》

성혁은 한걸음 다가앉았다.

《반장동지!》

호근은 손을 내저었다.

《됐네. 이젠 건늠골포전을 가지고 더 론하지 말자구. 그리구 자넨 괜한 고생을 하지 말고 푹 쉬라구. 이제 일을 시작하면 쉴새가 없네.》

무슨 말을 더하려던 성혁은 반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밖으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창가에 그린듯이 서있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성혁이가 알고있는 호근은 호인이라는 귀맛좋은 소리나 들으면서 앉아뭉개는 일군이 아니였다.

성혁이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호근은 곰이라는 별명그대로 일단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완강한 전개력을 가지고 불이 번쩍나게 해제끼는 쇠소리나는 일군이였다.

호근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억척같이 일떠서서 군적으로 제일 높은 수확을 낸 실농군이였다. 하기에 이제는 예순고개를 바라보고있지만 농장에서 무시할수 없는 존재로 되고있었다.

지금 성혁의 머리속에는 이전의 호근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을것 같은 생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삭도를 놓으려면 쇠바줄부터 구해야 한다. 그러면 반장동지의 마음도 달라지겠지.)

성혁은 삭도를 놓는데 드는 자재들을 계산하였고 도면을 그리기 위해 군에 가는 길에 쇠바줄을 구할만 한 곳을 찾아보리라 결심하며 군으로 향했다.

군에서 일을 보고 어슬녘에 마을어구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자기를 찾는 류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혁동무 아니예요? 어딜 갔다오는 길이예요?》

《삭도도면때문에 군에 갔다오는 길이요. 겸사해서 쇠바줄도 알아볼겸…》

《그러니 끝내 저 선녀봉에 무동력삭도를 놓겠다는거군요.》

《왜 안될것 같습니까?》

류경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동무도 이제 지내보면 알수 있을거예요.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류경동무, 좀 섭섭하구만. 다름아닌 동무에게서 그런 나약한 소리를 듣게 되니 말이요.》

잠시 말이 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성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동무가 선참으로 기뻐할줄 알았는데 그런 말을 하니…》

류경은 흥분을 애써 눅잦히며 입을 열었다.

《저도 대학을 졸업했을 땐 욕망이 하늘같았어요. 내가 태여나고 자라난 이 땅을 알심있게 가꾸어 해마다 높은 알곡소출을 거두리라고 말이예요. 동무도 한번 현실과 부닥쳐보세요.

그러면 제 말이 리해될거예요. 그럼 전…》

류경은 머리를 숙이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성혁은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

 

호근에게는 오늘 하루해가 별로 지루해보였다.

부리나케 작업반에 도착한 호근은 기술원과 성혁을 불러들였다.

잠시후에 약속이나 한듯 그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호근은 무슨 일을 칠듯이 소태씹은 모양으로 그들이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물었다.

《내 하나 묻자구. 그래 기술원이 건늠골포전문제를 관리위원회에 제기했나?》

《?…》

류경은 몹시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호근을 바라보았다.

성혁이 한발 나서며 말했다.

《반장동지, 그 문젠 제가 제기했습니다.》

《뭐라구? 자네가…》

호근은 너무도 놀라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동안 얼이 나간듯 성혁을 바라보고있던 호근은 입을 열었다.

《글쎄 내 어쩐지… 작업반실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일엔 왜 끼여들면서 그러나? 엉?》

호근은 애써 흥분을 눅잦히며 말을 이었다.

《내 참… 털어놓구말해서 자넨 제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작업반장인 난 해마다 그 땅을 붙들구 욕을 봐야 해. 이걸 알기나 하나.》

《반장동지, 전 손님이 아닙니다. 한생토록 이 땅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할 주인이기에 결코 외면할수가 없었습니다.》

성혁의 어조는 절절하였다.

류경은 코허리가 시큰해남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흠, 자네 혹시 무동력삭도를 믿구 그러는것 같은데 어데 가서 소리치며 쇠바줄을 구해보라구. 말처럼 헐하다면야 내가 왜 반대할텐가. 호수가의 흙이 그림의 떡이라면 무동력삭도는 하늘의 사다리야. 할수 있는걸 하겠다구 해야지.》

성혁은 확신에 넘쳐 말했다.

《절 믿어주십시오. 전 기어이 무동력삭도를 실현하겠습니다.》

호근은 손을 홱 내저었다.

《긴말 할새가 없네. 오늘중으로 의견을 합쳐서 관리위원회에 다시 제기하자구. 그래 기술원은 어떻게 하겠소?》

류경의 얼굴은 해쓱하게 질렸다. 그는 굳어진 자세로 앉은뱅이책상의 모서리를 어루쓸었다. 그 밭에 기울인 고심참담한 노력이 되살아났다.

기어이 건늠골포전에 풍작을 안아오겠다고 반장앞에서 장담하던 일이며 질좋은 거름을 구해오느라고 뛰여다니던 일이며…

이제 그 밭에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가. 공연히 나때문에 성혁동무까지 헛고생을 시키게 된다면…

류경의 모대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성혁은 번쩍 머리를 들었다.

《반장동지, 건늠골포전을 원료기지로 넘기면 안됩니다.》

《난 기술원에게 묻는걸세.》

호근은 역증을 내며 류경을 바라보았다.

류경은 확신성있게 머리를 들었다.

《반장동지, 저도… 그 포전은 제몸의 한 부분이나 같습니다.》

《?…》

책상우에 놓인 지령전화기에서 소리가 나더니 이어 나이많은 계획부원의 갈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3반, 3반반장!》

호근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받습니다.》

《동무가 제기한 축산반원료기지문제는 부결이요.

어떻게 하나 흙깔이를 해서라도 지력을 높여야겠소.》

호근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내 다 알고있소. 건늠골포전에 알맞는 ㅊ성분이 있는 흙도 찾아내고 삭도공사도 준비한다는걸…》

《?!》

화가 난 호근은 지령전화기의 단추를 눌렀다.

침묵, 무거운 침묵만이 짙게 드리웠다. 벽시계의 초침소리만이 유난스레 크게 들렸다.

 

×

 

뻐스를 타고오는 성혁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어려있었다. 그렇게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였건만 오늘도 역시 빈손으로 돌아온다.

무거운 마음으로 뻐스에서 내린 그는 리소재지로 향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리소재지를 거쳐야했던것이다.

뒤에서 자동차가 달려오다가 성혁의 곁에서 멈춰섰다.

《성혁동무 아니요?》

운전칸문이 열리며 나이는 지숙하지만 혈기왕성한 리당비서가 성혁을 불렀다.

《리당비서동지!》

성혁의 눈에선 반가운 빛이 흘렀다.

리당비서는 성혁의 손을 잡아 운전칸으로 끌었다.

자리에 앉은 리당비서가 물었다.

《그래 삭도놓을 준비는 잘돼가고있나?》

《아니, 그것까지 어떻게…》

성혁은 언제나 말없이 자기에게 관심을 돌려주는 리당비서가 고마왔다.

《알지. 요샌 밤잠도 잊고 다닌다면서. 정말 고맙소. 확실히 제대군인이 다르거던.》

성혁은 코마루가 찡해옴을 느꼈다. 그동안에 쌓인 피곤이 가뭇없이 사라지는것 같았다.

리당비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삭도는 꼭 놓아야 하오. 그렇게 되면 로력과 시간을 절약하는것도 좋지만 고향사람들에게 휘황한 미래를 얼마든지 제 손으로 꾸려나갈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게 될거란 말이요.》

《!…》

《혹시 맥을 놓고있는건 아니겠지?》

성혁은 리당비서의 사려깊은 눈빛에서 새힘이 넘쳐나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아닙니다.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당비서는 껄껄 웃으며 성혁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야지. 두려워하지 말구 한번 잘해보라구.

참, 광산엔 가보았나?》

성혁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우리 리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광산이 있소.

작년에 확장됐는데 등잔밑이 어둡다구 우리가 그걸 모르구있었구만.》

《제가 래일 찾아가보겠습니다.》

성혁은 힘이 솟았다.

차에서 내린 성혁이 마을입구에 들어서는데 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두 처녀의 모습이 보였다. 성혁은 그들이 류경이와 경미임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들려왔다.

《기술원동지, 난 기술원동지만 보면 막 부러워죽겠어요.》

《어째서?》

《온 농장이 보배로 떠받드니까요. 기술원동지도 알지요, 작년 가을에 관리부위원장이 도에 있는 조카를 기술원동지와 마주세우려다가 혼나던 일을 말이예요. 글쎄 관리위원장아바이가 농장의 노란자위를 빼돌린다고 어찌나 성이 났던지 관리부위원장동지가 혼났다나요.》

《호…》

류경의 입에서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 경미라는 처녀는 흰자위도 못되는가보지요.》

경미는 소리내여 웃었다. 허나 류경은 잠잠하였다.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너 정말 도시로 시집가려고 하니?》

정색해서 묻는 류경의 목소리에 이어 경미의 한숨소리가 성혁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좋다는 소리는 다 하는데… 기술원동지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리광부리는듯싶은 경미의 목소리였다.

《글쎄 너야 농장에 한명밖에 없는 양어기능공이 아니냐. 양어를 발전시켜 고향사람들에게 덕을 주는것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니. 난 이따금 고향밖에서 행복을 찾는 처녀들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더구나.》

《아니, 그럼 기술원동진 내가 그런 처녀라는거예요?》

경미는 종주먹으로 류경의 잔등을 두드리며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경미, 아버지를 봐서라두 나는 네가 신중하길 바래. 꿈을 귀중히 여겨라. 그게 없다면 난 청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층 명랑해진 경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요. 제가 왜 고향을 떠나겠어요. 전 성혁동지랑 기술원동지랑 같이 우리 고향에서 행복을 가꾸며 영원히 살겠어요.》

성혁은 걸음을 멈추고 멀어져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다음날 성혁은 광산을 찾아갔다.

당위원회앞에 이른 그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방안에서 청청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성혁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40대 중반기의 당비서가 그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전진리에서 왔습니다.》

당비서의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이 비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동무가 왔구만.》

당비서는 성혁의 손을 잡아 의자에 앉혀주었다.

기다린듯 반갑게 맞아주는 당비서를 보며 성혁은 어리둥절해졌다.

《동무네 리당비서에게서 전화가 왔댔소.》

《?…》

《쇠바줄이 요구된다지. 사실 쇠바줄이 귀해서 처음엔 우리도 난감했댔소. 그런데 우리 광부들과 기술자들이 동무들을 돕자고 하면서 예비로 가지고있던 쇠바줄을 주기로 했소.》

《그렇습니까? 야, 정말 고맙습니다.》

성혁의 얼굴에 고마움이 가득 어렸다. 그렇게 고심하던 문제가 이렇게 쉽게 풀릴줄은…

당비서는 송수화기를 들고 자재과장을 찾았다.

《과장동무입니까? 예, 쇠바줄때문에 왔습니다. 벌써 차에 다 실었다구요?! 수고했습니다. 그렇지요. 농촌을 돕는것은 우리 로동계급의 마땅한 본분이기도 하지요. 예, 그렇게 합시다.》

《비서동지…》

성혁은 격정을 참지 못하여 당비서의 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광부동지들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농사를 더 잘 짓겠습니다.》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다 말하시오. 우리가 힘껏 돕겠습니다.》

성혁의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쇠바줄과 함께 삭도를 놓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자동차에 싣고돌아오는 성혁의 가슴은 마냥 부풀어올랐다.

(그렇다. 어찌 광산의 로동계급뿐이랴. 온 나라가 농사의 주인이 되여 우리 농촌을 돕고있다.)

자동차가 작업반마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류경은 두손을 가슴우에 얹은채 분조장과 열정적인 어조로 무슨 말인가 하고있는 성혁을 감동된 눈길로 바라보았다.

호근이 어데서 소식을 들었는지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그는 두눈을 슴벅이며 쇠바줄퉁구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더우기 성혁이가 있음으로 하여 면구스러움을 느낀 호근은 서둘러 헛기침을 깇으며 작업반실로 들어갔다.

 

×

 

그날 밤 류경은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자기를 보고 의지가 나약하다고 하던 성혁의 절절한 목소리가 되새겨졌다.

그때는 얼마나 억울하였던가. 자기딴에는 건늠골포전을 위하여 할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고 자신을 위안했었다.

반장과의 관계에서도 앓는 어머니를 두고 망설이던 자기를 대학에로 떠밀어준 고마움으로 하여, 또 그가 직접 뛰여다니며 어머니를 온천료양소에까지 보내주어 병을 고치게 해준것이 고마와 자그마한 마찰이라도 생길세라 조심하여왔다.

(새 세대 기사인 내가 마땅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높은 목표를 안고 완강히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반장동지를 돕는 길이고 고향땅을 빛내이는 길인것이다.

그래 이제라도 성혁동무처럼 고향땅을 위해 살아야 한다.)

류경은 끝내 잠들수가 없어 작업반실로 나왔다.

탈곡장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성혁이가 손달구지를 세워놓고 삭도바가지를 조립하는데 쓸 철근들과 활차가공에 쓸 소재들을 싣고있었다.

류경의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솟아올랐다. 오늘은 만시름을 잊고 쉴줄 알았던 그가 또 이밤을 새울 잡도리인것이다.

류경은 성혁에게로 다가갔다.

《오늘 밤엔 좀 쉬여야지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아 류경동무구만, 괜찮소.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요.》

성혁은 일손을 멈추지 않은채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함께 하자요.》

성혁이가 만류하였으나 류경은 끝내 그와 함께 손달구지를 끌고 소재지로 가는 큰길에 나섰다.

밤하늘엔 크고작은 별들이 령롱한 빛을 뿌리고 쟁반같은 둥근달이 그들이 가는 길을 비쳐주고있었다.

누가 달빛이 차다고 하였던가.

가슴속에 기쁨이 샘물처럼 출렁이는 류경에게는 그 달빛이 온몸을 따스하게 비쳐주는 해빛처럼 느껴졌다.

류경은 저도 모르게 조용히 시를 읊었다. 어린시절 류경에게 지어주었던 성혁의 시였다.

 

이제 크면

나는 농업박사가 될테야

밤알만 한 벼알

쪽배만 한 강냉이

달같은 큰 사과도 만들어낼테야

 

이제 크면

나는 건축가가 될테야

사랑하는 내 고향에

크고 훌륭한 집들이 꽉 들어차게

 

류경은 저으기 추억깊은 어조로 말했다.

《정말 잊을수 없는 어린시절 나날들이였지요.》

성혁이도 그 시절을 더듬어보는듯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잠시후 성혁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우리의 어릴적 꿈이 가슴속에 움터나게 된것도 우리의 청춘이 희망의 날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날게 된것도 다 우리 장군님의 사랑을 떠나서야 어찌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소.

난 지금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한 우리 중대병사들의 고향자랑모임을 잊을수 없소.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의 고향자랑이야기가 끝나자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며 자강도는 고난의 행군시기 나에게 정든 고장이라고, 이제 병사의 소중한 꿈이 꽃핀 동무의 고향땅에 꼭 가보시겠다고 하시였소.》

류경은 저도 모르게 환성을 올렸다.

《우리 병사들의 고향자랑을 들어주시며 그리도 대견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환하신 영상을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소.

그날 나는 앞으로 고향땅을 남 보란듯이 더 잘 꾸려가리라 맹세다졌소.》

성혁의 말을 들으며 류경은 그가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것 같이 느껴졌다. 자나깨나 애오라지 더 많은 알곡생산으로 고향땅을 빛내가려는 그의 숭고한 지향앞에 류경은 머리가 숙어짐을 어쩔수 없었다.

(성혁동무, 동무의 말이 옳았어요. 확실히 나에겐 고향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어요.)

 

×

 

긴장속에 성혁이가 천천히 제동기를 풀자 호수가의 흙을 듬뿍 실은 첫 삭도가 선녀봉아래로 둥실 떠서 내리기 시작했다.

리당비서와 관리일군들도 모두 긴장되여 삭도바가지를 지켜보고있었다.

류경은 저도 모르게 성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초조하거나 불안한 기색이란 전혀보이지 않았다.

삭도바가지가 어느덧 건늠골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성공이다!》

갑자기 선녀봉에서도 건늠골포전에서도 동시에 요란한 탄성이 터졌다.

삭도바가지는 건늠골포전머리에 스르르 멎어있었다. 반대로 올라온 빈 삭도바가지가 선녀봉에 얹혀있었다. 청년들이 기발을 날리고 털모자를 벗어 올려던지며 얼싸안고 눈우에 딩굴기도 하였다.

리당비서도 관리일군들도 모두 성혁을 둘러싸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호근반장만은 한켠에 서서 움직일줄 몰랐다.

성혁은 삽을 찾아들더니 호수가에서 날라온 흙을 삭도바가지에 퍼담기 시작했다.

한참후에야 호근반장이 다가와 기운차게 흙을 담고있는 성혁의 손에서 삽을 빼앗았다.

《성혁이, 이 사람아.》

그는 성혁을 부둥켜안더니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용타, 용해. 자네가 날 정신차리게 해주었네.》

《반장동지!》

성혁은 기쁜 눈길로 호근을 바라보며 그의 두손을 부여잡았다.

《부끄럽네. 내 오늘에야 비로소 농사군의 본분을 잊고산 나를 돌이켜보았네.》

《반장동지!》

류경이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았다.

《제가 그동안 반장동지를 잘 돕지 못했어요.》

호근은 머리를 저으며 류경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기술원, 기술원이 건늠골포전에 흙깔이를 하자고 그만큼 말했는데두 이 일을 이붓아비제사날 미루듯 한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텐가.

내 이제부터는 정말 정신을 차리겠네.》

성혁이도 류경이도 그러는 호근반장을 기쁨속에 바라보았다. 어느새 흙을 듬뿍 실은 삭도바가지가 둥실 떠내려가고있었다. 그들의 눈앞엔 하나같이 팔뚝같은 이삭들이 매달린 건늠골포전이 춤추며 다가오고있었다.

(자강도 장강군 혁신협동농장 농장원)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