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2(201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황 철 현

 

농민휴양소에 온지 벌써 닷새가 흘렀다.

오늘은 휴양소에서 낚시경기를 조직한 날이다.

정호준은 새벽부터 솔밭밑의 부식토더미를 들추며 지렁이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양지쪽에 자리잡은 아담한 휴양소였건만 정월의 차거운 대기에 호준의 손가락은 인차 곱아들었다. 그래도 손을 비벼가며 부지런히 지렁이를 잡는 호준의 입에서는 코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안해가 지켜보는 속에 연방 물고기를 낚아낼 자기의 모습을 흐뭇하게 그려보고있다.

이번에 안해와 함께 휴양소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물론 농장에서 뜨락또르를 운전하는 정호준과 분조장을 하는 그의 안해 김명옥을 위해 우정 조직한 고마운 추천의 결과였다. 그런데 명옥이가 가지 않겠다며 딱 잡아뗄줄이야. 리유인즉 자기는 휴양갈 자격이 없다는것이였다.

《자격이 없다니? 그건 무슨 소리요? 동무말고 누가 적임자라는거요?》

세포비서아바이가 펄쩍 뛰였다.

그후 안해는 세포비서아바이를 비롯한 관리위원회 일군들이 거듭 타이르고 설복해서야 자기의 고집을 굽혔다.

안해덕에 한발 늦어서야 휴양소에 도착하였으나 호준의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세월의 망각속에 묻어버린듯싶었던 신혼생활이 돌이켜져 휴양소에 도착한 날 저녁 호준은 명옥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며 속삭였었다.

《그래, 어떻소?》

《참, 좋군요.》

안해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은 호준의 얼굴에도 금시 함박꽃을 피워놓았다.

호준이와 한마을에서 나서자란 명옥은 제발로 콩콩 달리기 시작하던 그 시절부터 호준을 친오빠처럼 따랐다. 남달리 낚시질에 취미가 있던 호준이가 물고기를 낚아낼 때마다 손벽을 짜락짜락 치며 기쁨의 탄성을 지르던 명옥의 모습이 추억의 갈피를 들추고 빠끔히 떠올랐다.…

호실에 돌아온 호준이가 동심이 비낀 노래를 흥얼거리며 낚시도구를 손질하고있는데 세면장에 갔던 안해가 나들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보, 오늘 나와 함께 낚시경기하러 가기요. 아마 당신이 곁에 있어주면 남보다 세곱은 문제없을거요.》

즐거움에 들떠있는 호준의 모습을 정찬 눈길로 바라보던 명옥이 생긋 웃었다.

《낚시질이야 남자들이 하는거지 내가 가선 뭘하겠어요.》

《그래 가지 않겠단 말이요?!》

호준은 마음이 실뚱해졌으나 피곤이 어린듯 한 명옥의 눈을 바라보고나니 더 가타부타하고싶지 않았다. 하긴 늘쌍 분조농사에 신경을 쓰며 밤잠도 잊다싶이 하던 명옥이고보면 휴양소의 아늑한 분위기에 긴장의 탕개가 풀리는 모양이였다.

《그래?… 그럼 피로를 푸오. 아, 내 낚시질솜씨야 어련하지 않을라구.…》

그랬으나 호준은 낚시경기가 끝나자 명옥이를 데려오지 못한것을 후회하게 되였다. 남편들이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녀인들, 여기저기에서 구수히 풍겨오는 어죽냄새, 저마끔 어죽가마를 가운데 놓고서 후후 입바람을 불어가며 어서 들라 권하는 모습들을 둘러보는 호준의 가슴속에서는 부러움과 아쉬움만이 아닌 생활의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다.

이윽고 호실에 들어와 낚시도구를 건사하려고 베란다문을 열던 호준은 의외의 광경에 굳어져버렸다. 방금 빨았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고 김이 오르는 빨래들이 가득 널려있었던것이다.

(녀자들이란 참! 하루종일 자겠다고 하더니…)

그러던 호준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널어놓은 빨래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분명 며칠전에 빨았던 명옥의 옷가지들이였다. 그런데 또 빨래를 한것은 무엇때문일가. 그가 풀리지 않는 아리숭한 의문에 머리를 기웃거리고있는데 등뒤에서 명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요.…》

다정히 바라보는 안해의 눈길에 접하자 호준은 방금 떠올렸던 의문부호를 얼른 지워버렸다. 안해의 뒤생활을 캐는 좀스러운짓만 같아 거북스럽기까지 했다.

《참, 오늘 경기에선 당신이 제일 많이 잡았다면서요?》

《뭘… 내 낚시질솜씨야 당신도 알지 않소. 허허…》

호준은 아까 낚시경기뒤끝에 세웠던 자기의 계획을 명옥에게 알려줄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왕이면 깜짝 놀래우고싶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호준은 명옥에게 록화물을 보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당신이 언제부터 보고싶어하던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이 수록된 CD판을 얻어왔소.》

《아이, 정말이예요?! 빨리 보자요.》

일전에 텔레비죤으로 방영할적에 군에 갔다오느라 보지 못해 속상해하던 안해였던지라 어린애처럼 기뻐하였다.

한동안 화면에 비치는 공연에 심취되여있던 호준은 안해쪽이 잠잠한것이 이상해서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구야! 명옥이 쏘파에 몸을 기댄채 솔곳이 잠들었던것이다.

(헛참! 이번에도 또 못 봤군. …자오. 푹 자고나면 거뜬해질거요.)

 

×

 

드디여 호준은 자기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안해 몰래 챙겨넣은 쟁개비가 들어있는 낚시도구구럭을 메고 호실을 나선 호준은 오늘일을 다시한번 곰곰히 따져보았다.

한두시간새에 물고기들을 본때있게 잡아낸다, 어죽을 쑤어놓은 다음 명옥이를 불러내온다,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명옥, 며칠전의 아쉬움을 봉창하려는듯 즐겁게 웃고 떠들 자기네들…

문득 호준에게는 안해가 휴양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기분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이따금 집에서 가져온 농업도서들을 뒤져보기도 하고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어디론가 나다니군 하는 명옥.

호준은 아마도 안해의 마음에서 휴양에 대한 흥미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안해에게 행복의 순간을 안겨줄테다. 호준의 마음은 벌써부터 흐뭇해졌다.

이윽고 호수가에 다달은 호준은 제꺽 얼음구멍들을 까내고 낚시대를 드리웠다.

그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숨 돌리려는데 어느새 한 구멍의 깜부기가 한들거렸다.

(허, 그놈들 담배 한대 피울 시간도 안 주는군.)

호준은 불을 붙이려다 만 담배를 입귀에 문채 깜부기를 주시하였다. 물고기란 놈이 미끼를 확인하려는지 한두번 툭 쫏고는 잠잠하였다.

호준은 능숙한 낚시군답게 침착하게 기다렸다. 낚시질이란 다른 일 못지 않게 인내성이 동반되여야 하는 법이다.

한동안이 지나더니 다시금 깜부기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은 참자. 이놈아, 좀더 깊이 물어라.)

드디여 물고기가 더는 유혹을 견뎌낼수 없었던지 깜부기가 물속으로 쑥 끌려들어갔다.

이 기회를 놓치면 미끼만 떼우고마는터이라 호준은 번개같이 몸을 일으키며 낚시대를 순간적으로 잡아채였다. 반키로그람은 실히 됨즉 한 붕어가 입을 쩍 벌린채 끌려나왔다.

첫 수확치고는 괜찮은셈이였다.

호준의 심정을 알아주는지 연거퍼 큼직한 물고기들이 끌려나와 얼음판우에서 푸들쩍거렸다.…

어느덧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어죽쟁개비를 들여다보는 호준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이미 휴양소로 들어가는 사람을 통해 명옥에게 련락을 띄운터이라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였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다. 그러나 명옥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창 구수한 냄새를 피워올리던 쟁개비는 맥이 진했는지 몇번 풀떡거리더니 점점 식어갔다. 어죽쟁개비처럼 확 달아올랐던 호준의 마음도 식어져갔다.

호준은 팽팽히 헤워진 현악기의 현이 뚝 끊어졌을 때처럼 자기의 마음을 지배하던 기쁨의 감정이 일시에 풀려져나감을 느꼈다.

호준은 더는 참지 못하고 휴양소로 달려갔다.

호실은 텅 비여있었다.

방안을 둘러보는 호준의 의문실린 두눈에 쪽지편지가 띄였다.

《잠간 다녀올데가 있어 나갔다 오겠어요.》

김빠진 공처럼 주그러든 마음을 가까스로 삭이느라 한동안 장승처럼 서있던 호준은 천천히 편지가 놓여있던 책상우에서 책을 집어들었다. 새로 나온 농업기술도서였는데 흥미가 나지 않아 몇장 들추다말았다.

옆에 놓인것은 아직 한번도 들여다볼념을 하지 않던 낯익은 안해의 일기장이였다.

기분이 상한 호준은 무의식적으로 일기장을 펼쳐들었다. 안해가 최근에 쓴 글줄들이 눈에 밟혀왔다.

 

×월 ×일

나는 오늘 남편과 함께 휴양소에 도착하였다.

휴양소에 꾸려진 아담한 휴양시설들을 돌아보던 나는 우리 농민들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고계시는 어버이장군님의 은덕이 헤아려와 목이 꽉 메여졌다.

짐을 정리하던 남편이 문득 윷놀이를 하자고 했다.

오래간만에 나는 남편과 이마를 맞대고 윷놀이를 하였다. 마음은 그지없이 상쾌해졌다. 내가 흥겨워하니 남편은 한번 또 한번 더 하자고 즐거운 성화를 먹였다.

윷놀이를 하는 나의 마음 한켠에서는 이 윷놀이처럼 우리 분조가 더 높은 알곡고지에로 단숨에 뛰여오를 묘술이 없을가 하는 생각이 끝없이 맴돌았다.

 

×월 ×일

그렇다. 묘술은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불타는 애국의 마음, 거기에 안받침된 첨단과학기술, 이것이 비약을 안아올 묘술이다.

그런데도 나는 한때 분조의 수확고가 몇해째 도토리 키 대보듯 한자리에서 맴돌았지만 농장적으로 앞자리라며 만족해왔다.

지력이 그것뿐이니 어쩔수 없다고 여겨왔던것이다.

온 나라가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비약의 발걸음을 내디디고있는데 나는 자만감에 포로되여 어느새 청맹과니가 되여버렸다.

현대농업은 유기농법을 요구한다. 새로 나온 농업기술도서에도 후민산을 주성분으로 하는 ㅎ비료가 땅을 걸구고 알곡수확고를 높여준다고 씌여져있다.

그런데 우리 고향땅에는 ㅎ비료의 주성분으로 되는 니탄이 없다. 정말 없는것일가. 휴양소에 오기 전부터 니탄을 찾았으나 묘연하였다.

나는 안타까운 심정을 남편에게 터놓고싶다. 하지만 이번 휴양기간만이라도 그새 일이 바빠 못다 준 사랑을 주려는듯 왼심을 쓰는 그에게 어떻게 말한담.…

 

×월 ×일

오늘도 니탄걱정에 맥이 풀려있는데 이웃호실에 든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로병인 그 할아버지는 아직도 로인분조를 뭇고 성실하게 일하시는 훌륭한분이다.

그런데 내가 니탄때문에 안타까와하는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니탄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그게 있음직한데가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너무도 기뻐 어린애처럼 할아버지에게 매달렸다.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 황소늪에서 니탄을 발견했었는데 품위가 낮아 쓸모가 없었다는것이였다.

나의 머리속에서는 생각들이 줄달음쳤다.

물론 그때 캐낸것이 질이 나빴다쳐도 과연 그 넓은 황소늪에 품위가 높은 니탄이 없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래일부터 아니, 당장 가봐야 하겠다.

 

×월 ×일

요즈음 남편이 나에게 던지는 의혹 실린 눈빛을 대할 때마다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다.

정녕 나는 그토록 나를 위하는 그의 뜨거운 정도 받을줄 모르는 녀자인가.

나는 오늘도 이런 마음을 달래며 황소늪에 갔다. 이제 니탄만 찾으면 남편도 꼭 나를 리해할거야.

 

×월 ×일

성공이다! 드디여 니탄을 찾았다.

아니, 아직 성공이라고 단정하긴 이르다.

그전것과는 대비도 할수 없을만큼 품위가 높은건 사실이지만 ㅎ비료의 원료로 되려면 성분량을 분석해봐야 한다.

그리고 후보지도 더 확보해야 한다.…

 

일기는 여기서 끝났다.

호준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명옥의 마음속에는 늘 땅이 자리잡고있었다. 땅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깃든 참신하고 풍만한 습액이 흐르는것만 같은 글줄들을 더듬느라니 자주 빨아널던 안해의 작업복과 피곤에 몰려있던 그에 대한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

 

어딘가 모르게 흐려있던 안해의 얼굴에 하루종일 웃음꽃이 남실거렸다.

오늘 호준은 안해와 함께 호수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어죽도 끓여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쌓여있던 후회와 아쉬움이 순간에 날아나버렸다.

저녁에 휴양소의 배구장주위를 도는 호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질줄 몰랐다.

바로 이때 누군가 그의 잔등을 툭 치는것이였다. 돌아보니 휴양소소장이 서있었다.

《아하, 이거 배구솜씨를 단단히 보이려는가부다. 경기는 래일 하는데 벌써부터 배구장주위를 떠날줄 모르는걸 보니…》

《거 뭐 배구면 배구… 못할것도 없지요. 사실 아닌게아니라 막 근질거립니다.》

《하하하… 옳소, 각오가 중요한거요. 참, 잊을번 했군. 노래련습도 잘하는게 좋겠네.》

《노래련습이요?》

《이렇게 답답하다구야. 아, 경기만 할셈인가. 노래도 한마디씩 불러야 더욱 흥취가 날게 아닌가.》

《하긴 그렇지요.》

《그러니 준빌 잘하라구. 자네넨 부부2중창을 해야지.》

능청스레 말하며 돌아서가는 소장을 보며 호준은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오락회를 할 때마다 재청을 여러번 받고서야 자리에 앉군 하는 명옥이를 내세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아마도 노래는 명옥이를 더욱 즐겁게 해줄것이다. 그런데 음악감상은 좋아하나 정작 부르라면 주춤거리는 내가 꽤 보조를 맞출수 있겠는지 문제였다.

저녁식사후 호준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여보… 우리 노래련습을 하기요.》

《아이참, 갑자기 노래는 무슨…》

얼떠름해있는 명옥에게 소장한테서 들은 말을 차근차근 전해주었다.

《내 생각엔 당신의 노래가 사람들의 인기를 끌것 같소. 헌데 내가 좀 미타한데…》

쑥스러운듯 얼굴을 붉히는 명옥을 바라보던 호준은 얼른 뒤를 달았다.

《이번에 당신솜씨를 좀 보이구려. 망신하면야 안되지.》

그들은 곧 이마를 맞대고 노래선정에 달라붙었다. 이 노래도 좋고 저 노래도 좋아보였다. 한참이나 싱갱이끝에 노래 두곡을 선정해놓았다.

그런 다음 될수록 명옥이의 맑은 목소리를 내세우고 호준의 목소리는 낮은 성부를 기본으로 하면서 부르자고 약속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불쑥 방문이 열리며 인상좋던 휴양소소장이 엄엄한 기색으로 들어섰다.

《허… 이 동무들이 불이 붙었군. 하지만 휴양소규률이야 지켜야지. 지금이 몇시인데 아직 자지 않나? 잠을 푹 자야 래일경기도 잘할게 아닌가.》

들어서자바람에 꾸중 절반, 고무 절반의 말을 늘어놓던 소장은 얼굴을 붉히는 호준이와 명옥을 일별하며 슬쩍 눙쳐주는것이였다.

《걱정말라구, 내 자네들을 제일선참 오락회무대에 불러낼테니.… 허허허…》

《그건 저…》

호준이와 명옥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날이 밝자 휴양소는 여느때없이 활기에 넘쳤다.

운동복을 입은 휴양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준비운동을 한다, 응원련습을 한다 하며 법석이였다.

《여보, 우리도 빨리 나가기요.》

계단을 내려가는 그들을 접수원아주머니가 불러세웠다.

《명옥동무, 마침이구만요. 전화가 왔어요.》

그러자 명옥은 무척 기다리던 소식이였다는듯 반색을 짓는것이였다.

《여보, 내 얼른 전화를 받고 나가겠어요.》

《응, 빨리 오오.》

배구경기는 호준이의 활약으로 이채를 띠였다. 키가 큰 그가 높이 조약하여 강타를 안길 때마다 여기저기서 《야!―》 하는 감탄의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어깨가 으쓱해진 호준의 눈길이 종종 응원자들을 재빨리 빗질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명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을가?)

배구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야무지게 울려퍼지자 역시 운동복차림의 휴양소소장이 꽹과리를 두들기며 소리쳤다.

《자, 이제부터 오락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자신있는분들은 어서 나오시오.》

소장은 명옥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호준이와 눈길을 마주치자 한쪽눈을 끔뻑이였다. 어서 나오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호준이의 속은 달아올랐다. 오락회를 통해 명옥의 노래솜씨를 자랑하자던노릇이 맹랑하게는 되였다. 여기저기서 열이 오른 몇사람이 엉치들을 들썩이며 먼저 나가려고 헤덤볐다.

(도대체 무슨 전화였을가?)

안해의 발목을 붙잡은 그 전화가 몹시 얄미웠다.

확 달아오른 얼굴로 접수실에 뛰여간 호준은 접수원아주머니에게 항의라도 하듯 다우쳐물었다.

《아주머니, 아까 우리 처에게 온 전화가 어디서 걸려온겁니까?》

접수원아주머니는 흥분된 호준이는 아랑곳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오, 그 전화 말이예요? 그건 농업과학분원에서 온 전화였어요.》

《?》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명옥동문 무척 흥분한것 같더군요.… 참, 거기서 누가 온다던것 같던데…》

호준은 한방망이라도 얻어맞은듯 머리가 뗑해졌다. 오락회장소에서 울려오는 노래소리는 가슴을 압박하였다. 무엇때문에? 어디로? 가만, 농업과학분원?! 꼬리를 물고 맴돌던 의혹감들을 비집고 한 생각이 불쑥 튕겨나왔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담. 분명 황소늪에 갔어, 니탄!)

호준은 갑자기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겨울의 찬바람이 사정없이 옷깃을 뚫고 스며들어왔다.

명옥은 저녁녘이 다 되여오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호실에서 나와 발가는대로 터벌터벌 걸음을 내짚던 호준은 자기가 어느새 황소늪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것을 알아차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할가? 되돌아설가?)

호준은 잠시 망설이였다. 오락회에 참가 못한 아쉬움과 명옥에 대한 고까움, 도와주어야 한다는 도의감과 걱정 등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엉켜돌았다. 그렇다고 되돌아서기도 싫었다. 이왕 내친김에 황소늪까지 가보자.

이렇게 작정하고나니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는것이였다.

리소재지로 향한 큰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펼쳐져있는 황소늪은 너무도 목이 마른 황소가 물을 먹으려고 들어섰다가 영각소리만 남기고 빠져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였다.

원래 이 고장은 물이 발라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밥은 대접해도 물은 대접할수 없었다던 고장이였다. 그러던것이 로동당시대에 와서 자연흐름식물길이 뻗어나가고 대규모의 토지정리라는 천지개벽을 이룩하여 가물이란 아득한 옛말처럼 되여버렸다.

어느덧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한 늪은 갈대숲을 흔들며 영각소리라도 내지르려는듯 설렁이였다.

명옥이 있음직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호준의 눈에 건너편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호준은 그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겉면이 얼음판으로 변한 황소늪은 쑥쑥 빠져들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샘구멍들에서 솟구치는 감탕물은 은근히 위험신호를 련발하는것 같았다.

어슴푸레 보이는 샘구멍들과 넘어진 갈대들을 조심히 에돌며 모닥불로 다가가던 호준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불빛에 비쳐진 명옥의 모습이 아프게 눈을 찔렀던것이다. 명옥의 주위에는 무엇인가 애타게 찾은 그의 흔적이런듯 파헤쳐진 얼음구뎅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지금 명옥은 구뎅이에서 부지런히 시커먼 덩이들을 떠올리고있었다.

《어떻습니까? 연구사동지―》

느닷없이 울리는 명옥의 말에 눈여겨살펴보니 웬 사람이 구뎅이옆에 쭈그리고앉아 퍼올린 덩이들을 부스러뜨리고있었다.

《음, 여기에도 성분함량이 괜찮을것 같소.》

《그래요?》

환희에 찬 명옥의 목소리가 호준의 가슴을 두드리였다.

《그럼 우리 고향에서도 얼마든지 자체로 ㅎ비료를 생산할수 있다는겁니까?》

《가능하오. 아니, 얼마든지 할수 있소.》

《야! 이젠 됐구나.》

호준은 명옥이가 니탄덩이를 꽈악 그러쥐는것도 그리고 꽃보라인양 하늘공중 뿌려던져 후두두 떨어지는 그것들을 즐겨맞는것도 똑똑히 보았다.

호준은 그토록 환희에 잠겨있는 명옥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명옥이의 격정이 그대로 옮아진듯 가슴을 들먹이던 호준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나섰다.

그제서야 호준을 발견한 명옥이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아니?! 당신이 여길 어떻게… 아! 오락회!…》

반가와하던 명옥의 눈에 순간 미안감과 죄스러움이 비끼였다.

안해의 그 눈빛을 대하는 호준의 가슴은 알알하였다. 얼마나 ㅎ비료를 생각했으면, 얼마나 애썼으면 저러랴 하는 생각이 뜨겁게 마쳐왔다.

《참, 당신도… 꼭 휴양기간에 이렇게 해야만… 그리고 왜 혼자…》

《미안해요.》

《아니, 아니요. 내가 잘 돕지 못했소. 날 욕하오.… 난 정말 좋은 남편이 못되오.》

《무슨 그런 말을… 당신이야 날 내세우고싶어했는데…》

《…》

《여보, 차라리 날 욕해주세요. 난 땅타발만 하면서 오늘에 만족해있은 청맹과니였어요. 하지만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으시며 비약의 나래를 달아주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소식에 접할 때마다 제가 얼마나 철부지였는가를 깨달았어요.

여보, 난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더는 쌀때문에 근심하시지 않게 풍요한 포전만을 그이의 선군길에 펼쳐드리고싶어요.》

《여보, 난 늘 당신을 위한다고 말로만 했지 당신의 그 뜨거운 마음을 미처 다 모르고있은 진짜 청맹과니였소.》

호준은 불현듯 처음 명옥이와 사랑을 약속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 명옥이는 말했었다.

《무겁게 설레이는 벼이삭들의 다정한 속삭임, 알알이 무르익은 과원에서 울려나오는 행복의 웃음소리, 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지의 노래인가요. 난 풍요한 그 아름다움을 노래로 엮는 전야의 꾀꼴새가 되겠어요.》

그렇다, 시대의 박동을 뜨겁게 받아들이고 진실한 량심, 성실한 땀을 바쳐 부르는 생의 노래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인것이다.

명옥의 손을 꽉 그러쥔 호준이 불같이 내뿜었다.

《명옥이!…》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때 갑자기 주위를 확 밝히며 모닥불이 기세차게 타올랐다.

웬일인가싶어 돌아보니 연구사가 모닥불에 삭정이를 한아름 집어넣고있었다.

《방금 동무들의 말을 다 들었소.

그렇소, 진정으로 당을 받들줄 알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래일을 향해 큰 자욱을 내딛는 생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할수 있지.

내 비록 동무들의 노래는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지만 방금 난 동무들의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소. 정말 고맙소.》

《!…》

《자, 나도 동무들과 그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부르겠소.》

탁탁― 모닥불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타올라 주위를 밝히였다.

얼마후 다시금 도끼로 얼음을 까는 소리, 삽질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가 아름다운 음향처럼 잘 조화되여 밤하늘가에 울려갔다.

(황해남도 은천군 량담협동농장 농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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