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2(201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송 명 철

 

1

 

고토령의 바다로 불리우는 갈천호반의 한겨울 날씨는 기온이 령하 40도까지 내려가군 하였다.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혹한속에서 사흘째 이 고장을 휩쓴 광풍에 호반은 아주 황량해졌다.

호수는 두텁게 얼어붙었고 광풍에 이리저리 휘몰리우던 눈은 여기저기 얼음판우에 쌓여 마치 사막을 방불케 했다.

눈에 묻힌 호수는 완전한 정적속에 잠든듯이 누워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호수는 잠들고있는것이 아니다. 얼음장밑에서 호수물은 앞을 다투어 취수구로 밀려들고 그달음으로 압력장관을 따라 고토령밑으로 창창히 쏟아져내린다. 그 물이 차례차례 5호발전기까지 타빈을 돌리면서 부단히 전기를 일으키고있는것이다.

고토취수작업반사무실 창가에 마주선 최용진은 그 보이지 않는 호수의 격류를 온몸으로 느끼며 눈의 장막속에 등대처럼 안겨오는 취수탑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해병출신의 제대군인인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취수작업반 준첩선갑판장으로 일을 시작한지 1년밖에 안된다. 이 한적한 초소에서 수만키로와트시의 전기예비를 얻어내기 위한 사수목준첩공사가 선포된것은 사흘전이였다.

공사가 선포된 첫날부터 아버지가 섰던 일터에 돌아온 제대병사답게 뚜렷한 생의 흔적을 남기리라는 결심으로 늘 마음을 다잡아온 용진은 지금 그 어떤 위훈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한갖 들뜬 기분에 가슴이 부풀어오르기만 하였다.

 

눈아 눈아 오너라

호수가에 물이 차면

동네방네 불이 온다

 

문득 취수구마을쪽에서 아이들이 동요를 외우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요에 짙게 어려있는 전기에 대한 애정이 향수처럼 가슴에 젖어드는 순간 용진은 저도 모르게 코마루가 찡해졌다. 자신이 어렸을적에도 비가 오고 눈이 올 때면 토방에 앉아 의례히 그 동요를 노래처럼 외우던 일이 생각나서만이 아니였다. 발전소마을 사람치고 비와 눈이 내리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것이다. 물이자 곧 전기라는 생활의 필수적요구를 그들처럼 잘 아는 사람들이 또 어데 있으랴.

용진은 지금 기업소에 폭약을 가지러 내려간 정두칠반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다.

(그런데 반장한테서는 왜 아직 소식이 없을가?)

《뭐라구요? 기업소에 폭약이 없다구요?》

벌겋게 단 난로옆의 의자에 앉아 기업소에 폭약을 가지러 내려간 취수작업반장 정두칠아바이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던 처녀연구사 림해연이 맥없이 송수화기를 놓는 소리에 용진은 창가에서 돌아섰다.

《기업소에 폭약이 떨어져서 반장동진 빈손으로 온대요.》

《빈손으로 온다구?》

용진은 갑자기 들이닥친 정황앞에서 일순 앞이 막막해지였다.

사수목준첩공사는 용진이가 제대되여온 해에 기업소 기술발전부 연구사로 일하는 해연이 호반에 올라와서 전기예비를 찾기 위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 발기해낸 공사였다.

해연이는 사수목에 흥미를 가지고있었다.

사수란 전기생산에 참가하지 못하는 호수바닥에 고여있는 물을 말한다. 그 물을 뽑아쓰면 갈수기에 모자라는 전기를 얻어낼수 있다고 타산한 그였다. 그의 타산에 누구보다 기대를 가지고 발벗고나서서 연구사업을 도와준 사람은 용진이였다.

해연은 용진이와 함께 봄내 여름내 겨우내 호반에서 비바람, 눈바람 다 맞으며 매생이를 타고 수로를 측정하는 과정에 수만키로와트시의 전기예비를 얻어낼수 있는 사수목준첩공사를 발기해내고야 말았던것이다.

해연이와 용진은 수만키로와트시의 전기면 큰 발전소 한개를 공짜로 얻는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환성을 올리면서 작업반모임때 당장 사수목준첩공사문제를 기업소에 제기하자고 주장해나섰다.

그러자 나이지숙한 정두칠반장이 반백의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호반에서의 준첩작업은 얼음이 풀려야만 할수 있다, 그래서 지금껏 얼음이 풀린 다음부터 시작하여 장마가 지기 전까지 준첩작업을 하는것이 관례로 되여왔다, 더우기 사수목물길은 여태 가셔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수목준첩을 하자면 장마전으로 공사를 와닥닥 끝내야 하므로 준첩선을 한대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것이라고 하였다. 준첩선의 기관장인 장호는 기업소에 준첩선을 한대 더 무어달라고 제기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정두칠반장은 그 방도도 신통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기업소의 힘으로 준첩선을 한대 무어가지고 호반에까지 실어다놓자면 적어도 1~2년은 걸리기때문이였다.

두칠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에 자체로 할수 있는 공사를 기업소에 떠맡기려는건 로동계급의 량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어떻게 하나 자체의 힘으로 공사를 맡아하는 방향에서 방도를 찾자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수만키로와트시의 전기예비를 얻게 되였다고 기뻐하며 흥성대던 반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기업소적으로 해도 힘든 공사를 작업반자체의 힘으로 하는 방향에서 방도를 찾는다는것이 너무도 아름찬 일이여서 호응해나설 엄두조차 못하는것 같았다.

침묵… 침묵…

그때까지 잠자코있던 용진이 용수철에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반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제대군인의 절도있고 기백이 넘쳐나는 자세에 정신이 번쩍 든 눈빛들이였다.

용진은 무슨 일이든지 남먼저 뛰여들기 좋아했고 일단 과업을 받으면 단숨에 해제끼군 하는 성미였다. 그는 일을 할 때면 가만있지 않았다. 늘 기분이 좋아서 《단숨에》라는 노래를 부르군 했던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보고 단숨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반원들은 그 단숨에의 입에서 무슨 신통한 소리가 튀여나오겠는가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것이였다.

용진은 대뜸 얼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것이 아니라 이 한겨울에 준첩공사를 단숨에 해제끼겠다고 하였다.

《이 한겨울에?! 어떻게 말인가?》

두칠반장은 물론 반원들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지였다.

용진은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했다.

《얼음을 까면서 말입니다.》

《얼음을 까겠다구?!》

장호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왜 웃소?》

《저길 좀 보라구.》

장호가 웃음을 거두고 손으로 창문밖을 가리켰다.

《동무의 눈에는 저 얼음판이 보이지 않소?》

반원들의 눈길이 장호의 손이 가리키는 호반의 얼음판우에서 굳어졌다.

《그래 저 얼음판을 까자면 폭약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봤소?》

《폭약을 당해낼수가 없다는걸 모르지 않소. 그래서 사수목의 얼음만 까고 준첩을 들이대서 사수목을 열자는거요. 화점을 까면 적진이 무너지기마련이거던.》

《…》

장호는 제대되여온 첫날부터 호반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군인다운 립장으로 대하는 용진이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진듯 멍청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자 두칠반장이 용진의 어깨를 철썩 두드려주면서 기뻐했다.

《역시 제대군인성격이 달라. 그러니 화점을 까고 적진을 단숨에 점령하던 때처럼 사수목을 열자는거구만.… 기관장동무, 어떻소?》

《그런데 폭약이 문제입니다.》

장호의 미타해하는 대답이였다.

《물론 힘든 일이라는걸 나도 알고있소.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폭약을 해결해봅시다.》

그렇게 되여 시작된 일이였는데 기업소에 내려갔던 두칠반장이 폭약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줄이야.…

 

2

 

용진은 털모자를 머리우에 푹 눌러쓰고 해연이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준첩선실에 있는 장호한테로 가는 길이였다.

기관장인 윤장호와 용진이 그리고 해연이 셋은 취수구마을에서 나서자란 소꿉시절의 막역한 친우들이였다. 분교의 자그마한 교실에서 글을 배우며 호반의 모래불에서 뛰놀며 성장한 그들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둥지에서 날아난 새들처럼 헤여졌었다. 용진이는 인민군대에 나갔고 어릴적부터 몸이 약해서 군대에 나갈수 없었던 장호는 준첩선에서 기관장으로 일하고있었다.

발이 잠기는 눈을 헤치며 호반에 내려선 그들은 취수탑가까이 수로에 정박해있는 준첩선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눈은 소리없이 내리는데 갑판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이따금 불어치는 광풍에 준첩선이 흥떡일 때마다 얼어붙지 않도록 까놓은 얼음장들이 더렁더렁 배전에 부딪치는 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들려올뿐이다.

좌초당한 배처럼 쓸쓸하기 그지없는 갑판이지만 용진은 매양 그러하듯 함정에 오르던 때처럼 마음을 다잡고 갑판에 올랐다. 그는 선실쪽으로 다가서며 장호를 찾았다.

선실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장호동무!》

용진이 주먹으로 선실문을 두드려서야 안에서 장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거 누구요?》

《나요, 나!…》

선실문이 벌컥 열리자 레스링선수처럼 몸집이 우람진 장호가 뚱기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뜻밖에 나타난 용진이와 해연이를 보고 반가와했다.

《어이쿠, 해연동무까지. 반장동지한테서 무슨 소식이 왔소?》

《갑자기 정황이 생겼대요.》

해연은 기업소에 폭약을 가지러 갔던 반장이 빈손으로 돌아온다는 소식부터 알려주었다.

그러자 장호는 벌써 일이 그렇게 될줄 알았다는듯 입을 쩝쩝 다시며 푸념을 떨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온 기업소에 사수목준첩공사를 단숨에 한다고 소문까지 내놓고 시작하자마자 중단하게 됐으니 이게 무슨 망신인가?》

《그래서 방도를 찾아보자고 왔네.》

용진은 다년간 준첩을 해온 장호에게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어서 들어가서 토론해보자구.》

선실에 들어선 장호는 난로우에서 설설 끓는 주전자의 물부터 고뿌에 부어 해연이와 용진에게 주었다.

《몸이 얼었겠는데 더운물부터 마시라구…》

그러나 용진은 고뿌의 더운물을 마실수가 없었다. 몸을 녹이는 더운물보다 전기생산을 위한 사수목물이 더 걱정돼서였다.

《갈수기전으로 사수목의 물을 뽑아 전기를 얻어야겠는데 공사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으니 어쩌면 좋겠소? 동무야 준첩을 해본 경험도 많은데 어서 방도를 내놓게.》

용진이 안타까이 재촉해서야 장호는 자기의 주장을 내놓았다.

《대책이야 뻔하지 않소. 얼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그럼 동문 공사를 미루자는건가?》

《별수 있나.》

《도끼로 얼음을 까면서라도 사수목을 열어놓아야지 않겠소.》

《도끼로 얼음을 까겠다구? 허허… 그게 뭐 아이들 놀음인가, 허허…》

장호는 허거픈 웃음을 웃었다.

그때 갑자기 마을쪽에서 아이들이 동요를 외우는 소리가 간간이 울려왔다.

 

눈아 눈아 오너라

호수가에 물이 차면

동네방네 불이 온다

 

용진이와 장호, 해연이들은 일순간 어린시절에 저 동요를 외우던 생각에 잠긴듯 말이 없었다.

장호가 먼저 침묵을 깨였다.

《혹시 동요를 외우던 아이적 감정에 사로잡혀있는게 아닌가?》

《그렇네. 어릴 때의 그 절절한 마음이 오늘에 와서는 맨주먹으로 얼음을 까서라도 전기를 얻어낼 힘과 용기를 주고있네.》

벌떡 자리를 차고일어난 용진은 도끼와 쇠장대를 들고 선실을 나섰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마치도 도끼를 들고 얼음을 까겠다고 나선 용진의 의지를 시험해보려는듯…

 

3

 

수로에 나온 용진은 지레대와 도끼를 들고 얼음을 까기 시작하였다.

쩡쩡… 도끼를 휘둘러댈적마다 얼음쪼박이 파편처럼 튀며 사방에 휘뿌려진다.

쩡쩡… 얼음을 까는 도끼질소리가 저녁어스름을 타고 호반에 울려퍼졌다.

용진은 인기척을 느끼고 일손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장호와 반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왜들 나왔소?…》

용진은 추위에 얼어든 입을 가까스로 놀리며 물었다.

《얼음을 까는 소리를 듣구서야 어디 집에 들어가겠소?》

장호의 짜증섞인 대답이였다.

《미안하오. 하지만 어찌겠소. 반장동지가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수야 없지 않소?》

용진은 다시 도끼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작업반원들도 하나, 둘 메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쩡― 쩡―

겨끔내기로 울리기 시작한 도끼질소리는 점점 기세를 올리였다. 도끼질소리에 비해 까내는 얼음장은 몇덩이밖에 되지 않았다.

노력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것 없는것이였다.

《젠장, 되기나 할걸 가지고 이 고생을 하는지…》

얼음까기에 지쳐버린 반원들은 하나, 둘 맥을 놓기 시작하였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이젠 들어가자구.》

장호와 해연이 그에게로 다가와 하는 소리였다.

용진은 여전히 얼음을 까내였다. 그저 손을 들어 먼저 들어가보라는 시늉을 해보일뿐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용진을 떨구어놓고 자기들만 들어갈수 없었다.

용진은 도끼를 휘둘러대다가 그만 얼음판우에 폴싹 주저앉고말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의 힘이 진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기운이 빠진 젖은 몸은 급속히 얼어들기 시작하였다. 오직 공사생각만 하면서 점심도 먹지 않았던것이다.

장호의 부축을 받아 작업반실에 들어온 용진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서 장호와 해연이 주고받는 심각한 대화를 간신히 들었다.

장호: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사를 미루자고 제기합시다.》

해연: 《작업반의 힘으로 단숨에 사수목공사를 해내겠다고 보고해놓고선 이제 와서 그러면 용진동문 뭐가 되겠어요? 용진동문 미루자고 하지 않을거예요.》

장호: 《글쎄… 제가 한 말이고 또 제대군인이니까 체면도 있고 해서 그럴수 있겠지. 하지만 사람의 힘에도 한계가 있는거요.》

해연: 《그러니 장호동문…》

장호: 《난 작업반원들이 용진이처럼 저 지경이 되는걸 보고만 있을수 없소. 해연동무도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쩌면 그렇게 모질수가 있소?》

장호의 그 말에 모욕을 느낀듯 해연은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해연이 밖으로 나가는것 같았다.

《해연동무―》

용진은 해연이를 부르며 일어서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작업반실에 나온 용진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침출근을 한 반원들이 그대로 모여앉아있었던것이다.

《아니, 왜들 이러고있습니까. 얼음까기작업은 안합니까?》

용진은 의아쩍게 물었다.

《공사는 얼음이 풀린 다음 하기로 했네.》

장호의 태연한 대답이였다.

《누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거요?》

《누구긴, 연구사지!》

《해연동무가?!》

용진은 실망했다. 그러니 그가 끝내 난관앞에 주저앉았단 말인가.

《해연동문 어데 있소?》

《제 방에서 방금 도착한 반장동지와 이야기를 하고있네.》

용진은 황급히 해연의 방으로 달려갔다.

두칠반장과 마주앉아 공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해연은 급하게 들어서는 용진을 불안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미안합니다. 반장동지, 도대체 어쩌자는겁니까?》

두칠반장은 용진의 물음에 긴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음이 풀릴 때까지 공사를 미루기로 결심했네.》

《그건 반장동지의 결심입니까? 아니면…》

용진은 반장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는 해연이와 뒤따라온 장호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동무들의 결심이요?》

모두가 대답이 없었다.

용진의 눈길은 다시 고개를 숙인채 있는 해연에게로 돌아왔다.

《해연동무, 난 동무가 그렇게 주저앉을줄은 몰랐구만. 그래 우리가 결심하고 달라붙은 이 공사가 어떤 공사요? 하고싶으면 하고 말고싶으면 마는 그런 일이 아니지 않소. 나나 동무나 작업반원들모두가 나라의 긴장한 전기문제를 푸시기 위해 추운 겨울날에도 끊임없이 발전소건설장들을 찾고찾으시던 어버이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하자고 이 공사를 맡아안지 않았소.

그런데 폭약이 없다고 얼음장앞에 주저앉는다는것이 도대체 말이 되오? 어디 좀 말해보시오.》

따지듯 묻는 용진의 물음에 해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호가 옆에서 보기 딱한지 한마디 끼여들었다.

《용진동무, 사실 해연동무도 많이 생각해보고 한 결심이네.》

《그 생각이 누구를 위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모두는 오로지 수만키로와트의 전기예비를 조성하기 위한 사수목공사만을 생각해야 한단 말이요.》

장호도 가만있지 않았다.

《하지만 얼음이 풀릴 때까지 공사를 미루자는건 불가피한 사정이 아닌가. 폭약이 없이야 어떻게 맨손으로…》

용진은 장호의 말을 잘랐다.

《폭약이 없다는 구실은 변명에 지나지 않소. 강성국가건설은 우리에게 매일 매 시각 모든 일을 단숨에 해제낄것을 요구하고있소.

지금 온 나라가 인민군대의 단숨에투쟁정신으로 살고있는 때에 얼음이 풀릴 때까지 공사를 미룬다는것은 선군시대의 로동계급답지 못한 일이요.》

용진은 사수목으로 향하였다.

그의 뒤를 따라 두칠반장이 반원들을 휘동해가지고 사수목으로 나와 얼음을 까기 시작했다.

까낸 얼음장들을 다시금 얼어붙기 전에 수로밖으로 건져내는 일은 수월치 않았다.

하루종일 매생이를 타고 얼음장을 갈구리에 걸어서 하나씩 밖으로 끌어내느라면 물참봉이 되여버린다. 젖은 옷은 즉시에 소가죽처럼 꽛꽛해져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되고만다. 그런데다 추위는 점점 더 맵짜지고 눈보라까지 기승을 부려서 까놓은 얼음장들이 다시 얼어붙어 도루메기가 되고만다.

《용진이, 이렇게 헛수고만 하다간 안되겠네. 얼음까는 속도를 높일 그 무슨 방도가 없겠나?…》

두칠은 용진이부터 쳐다보았다.

용진이도 강추위가 들이닥쳐 얼음장을 까기 바쁘게 얼어붙는 형편에서 헛수고만 할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며칠동안 그 타개책을 모색해왔던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야 그는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었다.

그런 찰나에 반장의 요구를 듣자 그는 대뜸 흥이 나서 제기했다.

《반장동지, 저한테 몇사람 붙여주십시오.》

《그건 왜?》

《주철파쇄기를 본적이 있습니까?》

《주철파쇄기?》

주철파쇄기란 일정한 높이의 세 기둥꼭대기에 활차를 달고 100키로그람이상 되는 쇠덩어리를 떨어뜨리면서 주철을 깨는 설비였다. 조건에 맞게 높이와 쇠덩어리의 무게를 조절할수 있게 되여있었다.

《그러니 그걸 얼음을 깨는데 리용하잔 말이지?》

《예, 얼음판우에 삼각기둥을 세우고 쇠덩이를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얼마든지 얼음장을 까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것 참 기발한 착상이구만!》

두칠반장은 용진의 요구를 쾌히 들어주었다. 용진은 즉시 사람들을 데리고 기업소 공무직장에서 주철파쇄기와 비슷한 얼음까는 설비를 만들어냈다.

이틀후 용진은 얼음까는 설비를 설치하고 시운전을 해보았다.

쿵쿵! 100키로그람이상 되는 쇠덩이가 무서운 힘으로 타격을 가하자 얼음장이 쩍쩍 갈라져나갔다. 완전한 성공이였다.

작업반원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리였다.

이렇게 되여 사수목의 얼음장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까낼수 있었다.

까낸 얼음장들을 끌어내며 마감작업에 몰두하고있을 때 용진은 마른 삭정이를 모아다가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작업장에 삼단같은 불길이 타올랐다.

《자, 어서들 와서 몸을 녹이자구!》

두칠이 소리치자 반원들이 불앞에 모여와 몸을 녹이며 좋아들 하였다. 장호는 불앞에 오기 멋한지 먼발치에 서있었다. 불앞에 다가선 해연이는 그의 눈치를 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진이도 역시 그를 마주 대하기가 괴로왔다.

용진은 해연이와 장호 세사람사이에 얼어붙은 감정을 녹이기 어려웠다. 소꿉시절에 그들 셋은 재미나게 놀다가도 하찮은 일로 하여 앵돌아지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이내 그들은 웃고 떠들며 사이좋게 놀군 했던것이다. 그런데 다 자란 오늘에 와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의 자존심때문이였다.

《오늘 높은 작업실적도 냈는데 가만있겠나. 용진이 이 사람, 자네가 선창을 떼게. 늘 즐겨부르던 노래가 있지 않나.》

두칠이 세사람의 어색한 분위기를 가셔주려는듯 능청스럽게 한마디 하는 소리였다.

용진은 반장의 그 마음이 고마왔다. 우등불은 활활 타오르며 후더운 열기를 확확 내뿜었다. 그의 눈앞에는 눈보라 사납게 휘몰아치는 훈련장에서 《단숨에》의 노래를 부르며 적진을 점령하던 보람찬 나날에 있은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떠오르는것이였다.

어느덧 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힘찬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반원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해연이와 장호의 목소리도 들렸다.

반원들이 합창하는 노래는 점차 고조되여 밤하늘가로 멀리멀리 울려퍼지였다.

 

4

 

얼음을 까낸 사수목에서 겨울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준첩이 시작되였다.

반원들은 초조하고 긴장한 속에서 일손을 다그쳤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준첩선이 멎어섰다.

《왜 전진을 못해?》

반장이 조종실을 향해 소리쳐물었다.

《뭔가 큼직한게 막아섰습니다. 제길…》

장호의 볼부은 대답소리였다.

《암초가 나타난게 아닙니까?》

누군가의 짐작소리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반장이 역증을 냈다.

《하여튼 뭔가 사수목에 감탕을 뒤집어쓰고 박혀있는게 틀림없어.…》

반장의 판단이였다.

《그럼 빨리 장애물을 제거합시다.》

용진은 대뜸 팔을 거두고 나섰다.

《덤비지 말라구. 기업소에 알려서 잠수공을 불러와야지 안된다니까.》

반장이 말렸다.

《아니, 이제 어디 가서 잠수공을 불러온단 말입니까? 제가 물속에 들어가보겠습니다.》

《잠수복도 없이?…》

《해병출신인데 물속에서 그만한것도 견디여내지 못하겠습니까?…》

용진은 태연히 웃음을 지으며 권양기의 쇠바줄의 한끝을 손에 잡았다. 만약경우 장애물에 코걸이를 해서 권양기로 끌어올리자는것이였다.

그때 장호가 불쑥 나서며 그의 손에서 쇠바줄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내가 들어가지. 자넨 그만두게.》

《장호, 고맙네. 하지만…》

용진의 말에 장호는 간절하게 부탁하였다.

《용진이, 나도 선군시대 청년답게 살아야 할게 아닌가!》

《장호동무!》

그의 얼굴에 새롭게 어린 결심을 읽는 순간 용진은 목이 꽉 메여와 더 말리지 못했다.

《좋네. 그럼 우리 함께 하자구.》

쇠바줄을 넘겨받은 장호는 웃음을 지으며 물속에 첨벙 뛰여들어갔다. 수로바닥을 향해 자맥질하여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더 보이지 않았다.

공기방울만이 물우에 솟구쳐오를뿐이다. 드디여 쇠바줄의 움직임이 멎어섰다. 사수목에 이른것이다.

용진은 가슴을 조이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1분, 2분, 3분… 수면우에 피여오르던 공기방울들이 뚝 멎었다. 순간 용진은 물속에 몸을 던지였다. 쇠바줄을 따라 물속깊이 자맥질하여 들어간 그는 숨이 막혀 허우적거리는 장호를 물우로 떠밀어올린 다음 장애물을 찾기 시작했다.

한동안 수로바닥을 손더듬질해가던 그는 깜짝 놀랐다. 사수목에 막아선 커다란 바위돌같은 장애물을 발견한것이였다.

도대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감탕이 두텁게 쌓여 분간하기도 어려웠지만 알아볼 경황도 없었다. 빨리 장애물에 쇠바줄을 걸만 한데를 찾아야 했던것이다.

그러나 쇠바줄을 걸만 한 곳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물속에서 보내는 한초한초는 십년맞잡이로 느껴지였다. 갑자기 숨이 꺽 막혀났다. 마지막까지 조절해오던 페부속의 공기를 다 내보낸것이였다.

그는 물을 삼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장애물에 바줄을 걸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그러다가 쇠바줄을 걸만 한 곳을 찾아낸 용진은 재빨리 거기에 쇠바줄을 감아 든든히 걸어놓는 순간 정신을 잃고말았다.

얼마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 물속에 들어온 장호에 의해 자기가 갑판으로 올라왔다는것을 알았다.

자기를 근심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반장이며 장호 그리고 반원들을 한동안 지켜보던 용진은 빨리 권양기를 돌리라는 손시늉을 하였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작업반원들이 작업준비를 서둘렀다.

《권양기 시동!》

반장의 구령이 떨어지자 운전공이 권양기스위치를 넣었다. 권양기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권양기의 쇠바줄에 쏠리였다.

쇠바줄이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장애물이 무엇일가?)

커다랗고 육중한 검은 물체가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점차 륜곽이 선명해지자 작업반원들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미군땅크였던것이다.

용진은 놀라운 눈길로 멍하니 끌려오는 땅크를 지켜보기만 했다.

불현듯 두칠반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얼음구멍에 빠진 미군땅크로군. 이놈이 여태 사수목에 숨어서 뻗쳐오다가 전 조선인민군해병 최용진이한테 덜미를 잡혔거던. 꼴 좋다! 허허…》

《하하하…》

반장의 말에 폭소가 터졌다. 실로 통쾌한 웃음소리였다.

《여보게 장호, 이 사람…》

문득 반장이 자책에 잠겨있는 장호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사수목준첩공사를 미루었더라면 어쩔번 했나. 수만키로와트의 전력예비는 고사하고 이 통쾌한 장면도 보지 못했을거네. 군대성격이 좋긴 좋아! 모든 일을 단숨에 해제끼거던.》

《아바이, 저도 군인성격으로 살렵니다. 저 용진동무처럼!》

《그래야지. 우리모두가 그렇게 살자구.》

두칠반장의 말은 반원들모두의 심장의 말이기도 하였다.

용진은 더더욱 굳세여지는 마음속 결의를 다졌다.

그렇다. 우리는 이 땅에 시시각각으로 도래하는 강성국가의 관망자가 아니라 자기가 선 초소에서 강성국가건설을 앞당겨오는 시대의 기수가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선군시대가 낳은 인민군대의 단숨에정신의 소유자가 되여야 한다.

호반에 석양이 깃들었다. 바람도 잠풍해졌다.

용진은 문득 작업장 한곁에서 오도카니 서있는 해연이를 띄여보고 천천히 그리로 다가갔다.

해연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듯 까딱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용진은 얼음까기가 어려워지자 잠시 동요하던 그에게 모진 말로 호되게 질책했던 그때 일을 상기했다.

그때부터 그들사이는 어성버성해졌던것이다.

해연이가 지금도 그때 일을 섭섭하게 생각하고있는것은 아닌지…

해연의 곁에 다가선 용진은 잠시 머뭇거리며 어줍게 입을 열었다.

《해연동무, 전번에 내가 너무한것 같은데 용서하오.》

《용서라니요? 전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그때 절 채찍질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제가 어떻게 되였겠어요?》

해연은 한껏 밝아진 눈빛으로 그를 돌아다보았다.

용진은 여느때없이 아름다와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자신도 왜 그렇게 보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놓겠소.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있었소?》

《성공의 문어구에 이르고보니 자연히 마음이 긴장해지는군요.》

《마음놓소. 이젠 사수목이 열렸으니 수만키로와트의 전기가 생산되게 될거요.…》

《정말 그럴가요?》

《그렇지 않구. 아, 저길 좀 보오. 바다제비들이 찾아오는걸.… 아마 우릴 축하해주러 오는것 같소.》

용진은 이마우에 손채양을 해들고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피여오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바다제비.》

그들의 머리우에서 바다제비들이 아욱아욱 하며 즐겁게 날아예고있었다.

《동무도 바다제비를 사랑하는가보지요?》

해연이 불쑥 물었다.

《사랑하오, 해병이니까.…》

용진은 해연의 맑고 그윽한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저녁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깃든 호수는 눈의 장막속에 다시 묻혀버렸다.

하지만 얼음장밑에서는 전기를 일으키며 령아래로 쏟아지는 물의 거세찬 흐름이 계속되고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격류속에서 용진은 새로운 생활의 환희를 한껏 느끼며 해연의 손을 굳게 마주잡았다.

(김형권사범대학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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