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2(2013)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신 영
명호는 새로 일떠선 발전소마을의 산림감독원으로 배치되여오고있었다.
서늘한 바람결에 실려오는 봄의 향취에 마음이 흥그러워짐을 느끼며 그는 령마루에 올라섰다.
《아, 발전소마을!》
명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올렸다.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발전소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던것이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아담하게 늘어선 문화주택들, 맑은 물줄기를 따라 보기 좋게 세워진 발전소건물들, 마을을 둘러싼 야산마다에 흰구름처럼 흘러가는 염소떼, 그뒤로 펼쳐진 무성한 수림들…
명호는 저도 모르게 깊은 추억에 빠져들었다.
발전소건설의 나날 돌격대원들로부터 미술가로 불리우던 그가 산림감독원이 되여 이곳으로 오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
발전소건설의 나날…
한소나기 퍼붓던 하늘이 언제던가싶게 맑게 개였다.
해빛을 한가득 받아안은 울창한 수림은 흰김을 그물그물 피워올렸고 시원스레 미역을 감은 풀과 나무들은 싱싱한 잎새를 바람에 흔들었다.
눈부신 해살이 부채살처럼 비쳐드는 수림속을 한가로이 날아예는 산새들이 청고운 목소리로 지저귀였다.
수천수만개의 은구슬이 구을러내리는듯 한 개울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명호는 너부죽한 바위에 자리를 정하기 바쁘게 화판을 펼쳐놓았다. 늘 보아오던 수림이였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 아름답고 울창하게 안겨들었다.
휴식일을 계기로 그림을 그려볼 생각으로 숲에 들어섰던 명호는 그림종이와 마주한 연필끝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하늘을 버티고 선듯 한 거목들의 륜곽을 하나, 둘 그리기 시작하였다.
중학교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던 명호는 졸업후 군에서 자체로 건설하는 발전소건설장에 달려나온 첫날부터 짬만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대줄기같은 비발속에서도 힘차게 함마를 휘둘러대는 돌격대원의 모습이며 발목까지 푹푹 빠져드는 감탕속에서 맞들이경쟁으로 들끓던 작업장의 전경, 흥겨운 북장단으로 휴식의 분위기를 돋구어주던 취사원의 모습이며 힘찬 경제선동으로 돌격대원들의 전투사기를 한껏 불러일으키던 선동원처녀의 모습…
참말이지 날에 날마다 기적과 혁신이 일어나고 창조와 위훈이 수놓아지는 발전소건설장은 그에게 있어서 청춘의 활무대였고 창작터전이였다.
드디여 그의 손에 의해 또 하나의 울창한 수림이 자기의 자태를 드러냈다.
명호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이만하면 이번 소묘축전에 얼마든지 내놓을수 있지.) 이런 속생각을 하는 명호의 머리속에 문득 지난해 도에서 진행한 소묘축전에 참가하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자신심을 가지고 소묘축전에 참가한 명호였지만 그만에야 전시장문턱도 넘어보지 못한채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어깨가 축 처진채 렬차에서 내리는 명호를 돌격대의 중대장이 마중해주었다. 중대장은 기운이 빠진 그의 심신에 바람을 넣어주려는듯 명호의 처진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첫술에 배부르겠나. 앞으로 노력하면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수 있네. 신심을 가지라구.》
명호는 먼산에 눈길을 준채 중대장의 말에 이렇다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 명호는 다음번 소묘축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꼭 당선되리라 속다짐하였었다.…
생각에서 깨여난 명호는 다시 그림의 세부들을 살펴보았다. 어쩐지 서운한감이 들었기때문이였다.
(무엇이 부족할가?)
다시금 수림에로 눈길을 주던 명호는 《아차!》 하고 뒤더수기를 쓸고나서 연필을 화판으로 가져갔다.
화판우에 펼쳐진 수림속에 즐겁게 날아예는 한쌍의 새가 나타났다.
《정말 솜씨가 있군요.》
갑자기 등뒤에서 울리는 말소리에 명호는 고개를 돌리였다.
언제 왔는지 산나물이 수북이 담겨진 바구니를 옆에 낀 향심이가 그림을 주의깊게 살피고있었다.
귀밑으로 차분히 흘러내린 머리카락에서는 이슬처럼 맺힌 물방울들이 구슬처럼 반짝이고있었다.
동실한 얼굴에 보기 좋게 자리잡은 영채도는 눈이며 반달같이 곱게 휘여든 눈섭, 오똑한 코며 꼭 다물린 도톰한 작은 입… 어디 한군데라도 흠잡을데없이 미끈한 처녀의 얼굴을 보며 명호는 그와 처음 만나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그날은 온 중대가 병실이며 취사장을 새로 번듯하게 세워놓고 마감정리작업을 하던 날이였다.
회칠을 한다, 울타리를 세운다 하며 모두가 성수가 나서 일들을 하는 속에 한 처녀만이 병실앞마당에서 조심스레 호미질을 하고있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바께쯔를 량손에 갈라들고 회칠하는 곳으로 가던 명호는 처녀의 류다른 행동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이나 처녀를 지켜보았다.
(대체 무엇을 심을가?)
이 생각, 저 생각 해보았으나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호기심도 동하였다. 그러나 자기보다 먼저 돌격대생활을 시작한 구대원인 그에게 무엇인가고 묻는다는것이 어쩐지 멋적은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보고있소?》
곁에서 울리는 굵직한 목소리에 명호는 그만에야 깜짝 놀라 머리를 돌렸다.
길쑴한 얼굴에 장난기어린 웃음을 담은 중대장이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아… 아무것도… 안 봤습니다.》
명호는 떠뜸거렸다.
《안 봤다?! 허허허. 그런데 눈은 왜 그렇게 허둥거리나.》
중대장의 말에 명호는 난처한 처지에 빠지고말았다. 그의 얼굴은 그만에야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는 명호를 한동안 웃음어린 얼굴로 바라보던 중대장은 처녀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정말 기특한 동무요. 지금껏 많은 동무들이 우리 중대에 왔지만 향심동무처럼 병실주변에 꽃씨를 묻으며 가꿔온 동무는 없었소.》
명호의 생각은 깊어졌다.
발전소건설장에 착공의 첫삽과 함께 꽃씨를 묻고 가꿔온 처녀… 돋보이는 모습이였다.
그때 일이 되새겨질수록 명호는 향심으로부터 좋은 의견을 들을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였다.
《동무보기엔 그림이 어떻소?》
《아이참, 전 전문가도 아닌데요.》
향심이는 귀뿌리까지 빨개지며 귀염성스레 생긋 웃었다.
《이왕 본 그림인데… 어쩐지 동무의 의견을 듣고싶구만.》
명호는 재촉하다싶이 하였다.
《정 그렇다면…》 할수 없다는듯 향심은 손을 입가로 가져간채 잠시 그림을 훑어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림은 잘됐다고 생각해요. 굵직한 가지들을 펼쳐든 아름드리나무들도 그렇고 수림속을 날아예는 새들의 모습도 정말 생동해요.
그런데… 여름풍경을 그린것 같은데 제 보기엔 어쩐지… 신록이 짙어가는 울창한 수림이 아니라 락엽이 지는 마가을의 풍경이라는 느낌이…》
향심의 말에 귀를 강구고있던 명호는 그만에야 아연해지고말았다. 처녀의 말이 예상치 않게 야박했던것이다.
김빠진 웃음을 짓다만 명호는 쓴입을 다시며 머리를 돌리고말았다.
그러거나말거나 향심이는 제 생각에 열중하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 새들도 어쩐지… 살길을 찾아 떠나간다는 느낌이…》
《그만하오!》
명호는 그만에야 자제력을 잃고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치고말았다.
좀전에 향심이에게 가졌던 기대감은 물먹은 흙벽처럼 되여버렸다.
(이건 듣자니까… 헛참, 제가 뭐 전문간가…)
바위우에 널려있는 그림종이들이며 화판을 거두고난 명호는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는 향심이를 곁눈질도 없이 지나쳤다.
×
가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에는 한쪼각의 구름도 없었다. 날씨는 몹시도 무더웠다.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땅겉면에서는 먼지가 풀썩거렸고 시들은 풀포기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있었다.
대대는 오늘부터 2단계전투에 진입하였다.
맡은 구간에 대한 굴진에서 대대의 첫자리를 차지한 명호네 중대는 대대의 기준중대로서 사회주의경쟁 1단계총화에서도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였다. 결국 처음으로 우승기를 수여받게 되였고 발전소건설장속보판에 큼직하게 소개되였다.
명호네 중대는 오늘 새로 건설한 도로를 정리할데 대한 작업과제를 수행하게 되였다.
《바위들은 함마로 모조리 까부시고 길 오른쪽절벽의 위험개소들은 자그마한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무조건 제거해야겠소. 모두가 자기 맡은 구간을 책임적으로 해야 하오.》
대원들을 정렬시켜놓고 작업지시를 주고난 중대장은 사업수첩을 펼쳐들었다.
《작업조를 불러주겠소. 1조…》
중대장의 호명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대원들은 힘있게 대답하며 각기 자기 조별로 정해진 구간으로 향하였다.
동무들이 짝을 지어 대렬에서 빠져나갈수록 명호는 초조해지는 마음을 다잡을수 없었다.
《김명호.》
《예.》
중대장의 부름이 그의 생각을 중둥무이시켰다.
《명호동무와 향심동문 마지막구간에 가서 작업해야겠소.》
중대장은 할말을 다했는지 손에 들고있던 사업수첩을 접으며 이미 작업을 시작한 조들에게로 향하였다.
멀어져가는 중대장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명호는 자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곁에는 향심이만이 있을뿐이였다.
《그렇게 서있기만 하겠어요? 우리도 빨리 작업을 시작해야지요.》
못박힌듯 서있는 명호를 보다못해 향심이는 제 먼저 함마와 삽을 량손에 갈라들고 정해진 구간으로 향하였다.
(젠장, 일이 별스럽게는 됐군. 하필이면 저 동무와 한조가 될건 뭐람.)
걸음을 옮기는 명호의 마음은 개운치 못하였다.
그림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별스레 향심이와 엇서게 되는 명호였다.
마지막구간에 이른 명호는 아무 말도 없이 향심이의 손에 들려있는 함마를 가로챘다.
웃옷을 벗어놓은 명호는 함마를 틀어쥔 두손에 힘을 주며 박자를 맞추듯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한번 본때를 보여 전번에 코를 떼운 봉창을 하고싶었다.
묵직한 함마가 바위를 내려칠 때마다 돌부리들이 파편처럼 날아났다.
한참동안이나 바위와 싸움질하던 명호가 함마질을 멈추었을 때였다.
《이젠 좀 쉬고 해요.》
차바퀴에 패인 자리들을 삽으로 메꾸던 향심이가 다가오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명호는 얼결에 그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선뜻 손수건을 얼굴에 가져갈수가 없었다.
지독스레 내려쪼이는 해볕에 빨갛게 익은 향심이의 얼굴에는 땀이 반지르르했다.
향심이의 손에 손수건을 다시 넘겨준 명호는 흘러내리는 땀을 아랑곳없이 절벽밑에 웅크리고있는 바위로 다가갔다.
뿌리가 깊어보여 길옆으로 내리떨구지는 못해도 함마로 몇번 조겨대면 얼마든지 없앨것 같았다.
잠시 돌겉면을 살펴보던 명호가 함마를 올리쳐든 순간이였다.
《잠간만.》
다급하게 울리는 향심이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동시에 명호는 그만에야 함마질을 헛하고말았다.
순간 온몸의 맥이 땅속으로 빠져들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명호의 눈길을 피하며 향심이는 바위와 마주한 절벽밑에 애처롭게 뿌리를 박고 서있는 애어린 나무에로 다가갔다.
한동안이나 어린 나무를 유심히 살피던 향심이가 눈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명호동무, 우리 이 나무를 다른데 옮겨심고 작업을 계속하는게 어때요?》
순간 명호는 아연해지고말았다.
《아니, 요 조그마한 나무를?!… 됐소. 빨리 하기요. 다른 조들에서는 아마 작업이 다 끝났을텐데…》
명호는 이러며 손에 든 함마를 다시 쳐들었다.
《안돼요.》
향심이는 명호가 쳐든 함마가 당장이라도 내려꽂힐것만 같아 온몸으로 애어린 나무를 막아나섰다.
《이 나무는 잣나무예요. 옮겨심으면 앞으로 많은 잣이 열리겠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무를 떠심고 작업을 하는게 어때요, 예?》
명호는 차마 향심이의 말을 거절할수가 없었다.
《좋소. 그럼 빨리 옮겨심소.》
들었던 함마를 내려놓은 명호는 천천히 맡은 구간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어린 잣나무가 있는 곳의 바위만 까내면 맡은 구간정리는 비교적 될것 같았다.
명호는 어린 잣나무를 파내는 향심의 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어린 나무 한대가 뭐라구…)
명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향심이는 어린 나무의 잔뿌리라도 상할세라 그 주위를 조심스럽게 삽으로 파내고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중대 모엿!》
(이거 야단났구나.)
명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향심이를 찾았다.
어느덧 나무를 다 심은 향심은 나무줄기에 생긴 상처자리를 손수건으로 감싸주고있었다.
(저렇게도 꾸물거린다구야.)
명호는 속이 상했지만 웬일인지 그에게 무엇이라 할말은 찾지 못하였다.
×
북방의 겨울은 빨리도 왔다. 록음이 철철 흐르던 울창한 수림은 점차 앙상한 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거무스름한 산지로 되여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갔고 개울에 끼기 시작한 살얼음장도 점점 두꺼워졌다.
며칠동안이나 찌뿌둥해있던 하늘이 눈을 쏟아붓기 바쁘게 이번에는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였다.
채로 친듯 한 흰 눈가루가 휘말아오르며 허공을 감돌았다.
해가 퍼지기 바쁘게 산에 오른 명호는 동발목들을 끌어내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부터 중대는 며칠동안 동발목을 끌어내릴 과업을 받았던것이다.
명호는 동발목을 실은 소발구를 힘겹게 끌고있었다. 길이 여간만 험하지 않았던것이다.
구불구불한 길 아닌 길 한쪽에 척 틀고앉아있는 떡돌같은 바위는 제쳐놓더라도 한가운데 아지를 펼치고 서있는 한그루의 나무가 발구길을 가로막고 발구의 발목을 붙잡고있었다.
《제길, 요놈이 암초로구나.》
명호는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였다. 나무를 피해 새 발구길을 내려고 하니 이번에는 소가 말을 듣지 않았다.
더 생각할것도 없이 도끼를 집어든 명호는 길 한복판에 서있는 나무를 찍기 시작하였다.
휙― 휙 공기를 헤가르는 도끼가 힘껏 나무를 칠 때마다 나무밥들이 사방으로 휘뿌려졌다.
한동안 나무와 씨름질을 하던 명호는 잠시 도끼질을 멈추고 황소숨을 씩씩 내불었다.
이때 갑자기 산아래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를 찍지 말아요!》
뒤를 돌아보니 향심이가 달려올라오고있었다. 그의 눈에서 무엇인가 번쩍였다.
《왜 나무를 찍어요?》
향심은 거친 숨을 내쉬며 물었다.
《보면 모르겠소? 이 나무가 앞을 막는단 말이요.》
《좀 힘들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야지 이렇게 나무를 망탕 찍으면 어떻게 해요?》
명호는 향심의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그렇다고 자기의 생각을 꼬치꼬치 설명하고싶지도 않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중대원들 생각이 났다. 시간이 급했다.
《향심동무, 생각해보오. 발전소라는 이 거창한 창조물앞에서 한그루 나무가 도대체 뭐요.》
말해놓고보니 정말 그럴듯했다. 사실 이 거창한 건설의 중요성에 비해볼 때 가늘디 가는 나무 한그루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만해요!》
향심의 목소리가 맵짜게 울렸다.
《동무가 그럴줄은 몰랐군요. 난 동무가 그림을 그리길래 조국산천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줄 알았는데…》
향심의 거센 숨결이 명호의 얼굴에 끼얹어졌다.
《도대체 동무가 뭐길래 함부로 나무를 찍을수 있어요? 그래 동무가 이 땅에 한그루의 나무라도 제 손으로 심고 가꾸어봤는가요? 그런 심장으로 어떻게 조국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을수 있겠어요?
동문 미술가는 고사하고 돌격대원 자격도 없어요.》
그날 저녁 명호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손에 난 종처때문이 아니였다. 그보다 더 아픈것은 향심이의 말이였다.
눈을 감으면 쏘는듯 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던 향심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귀를 강구느라면 나무 한대라도 심고 가꾸었는가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명호는 몸을 뒤척이였다. 성에가 두텁게 서린 창밖에서는 사나운 눈보라가 땅우의 모든것을 얼구어놓으려는듯 기승을 부렸다.
나들문이 열리더니 중대장이 들어왔다.
《명호동무.》
조용히 울리는 중대장의 부름소리에 명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중대장동지가 어떻게?…》
《쉿, 동무들이 깨여나겠소.》
중대장은 영문을 몰라하는 명호를 이끌고 뜨겁게 달아오른 난로곁으로 다가갔다.
《명호, 손에 난 종처를 치료해야지. 잣진이 종처치료엔 특효라더구만.》
《예?! 종처말입니까?》
명호는 의아한 눈길로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중대장동지가 내 손에 종처가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가?)
품안에서 꺼내든 잣진을 녹여 상처를 치료해주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명호의 의문은 점점 더 커만 갔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명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난 중대장은 퍼그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도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는데… 향심동무가 동무의 손에 난 종처를 치료해주라고 이렇게 잣진을 가져왔더구만. 동무의 손은 그림을 그리는 보배손이라고 하면서, 허허.…》
순간 명호는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눈앞에는 향심의 모습이 여러가지로 떠올랐다.
꽃밭을 가꾸던 모습이며 도로정리때 어린 잣나무를 옮겨심던 모습 그리고 나무를 찍던 자신을 꾸짖던 성난 모습도… 그 모습들은 명호의 가슴에 새겨진 지울수 없는 모습들이였다.
방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깃들었다. 이따금 난로통에서 장작타는 소리가 들릴뿐이였다.
치료한 손에 새 붕대를 조심히 감고난 중대장이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여긴 향심동무의 고향이요. 그의 가정은 숲과 류다른 인연이 있다고 말할수 있지. 향심동무의 할아버지는 전후시기부터 여기 산림감독원으로 일하고있고 부모들은 다 군양묘장에서 일하고있소.
향심동무가 중학교졸업을 얼마 앞두고 부모들이 일하는 양묘장에 갔던 일이 있었소. 그런데 그날 뜻밖에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곳을 찾아주실줄이야 꿈엔들 생각해 보았겠소.
겹쌓인 피로도 푸실새 없이 양묘장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우리가 고생을 하더라도 먼 후날 우리 후대들에게는 꼭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물려주어야 한다시며 양묘장을 더 확장하고 수종이 좋은 나무들을 많이 생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셨다오.
부모들로부터 양묘장에 돌려주신 장군님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향심동무는 그때부터 부모들의 일손을 적극 도와나섰고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여기 발전소건설장에 달려나왔소.
향심동문 위대한 장군님께 완공된 발전소의 모습과 함께 푸르러 설레이는 조국산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싶은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숲을 사랑하고 가꾸고있소.》
명호는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숭엄한 감정에 사로잡혀 말할수가 없었다. 너무 평범하게만 보아오던 향심의 가슴속에 이처럼 아름다운 꿈이 간직되여있는줄은 생각도 못했던것이다.
그래서였구나.
향심동무가 왜 나의 그림을 보고 락엽지는 가을이라고 표현했는지, 어린 잣나무를 떠다 심은 그날밤 왜 그처럼 기뻐했는지, 이깔나무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낸 나를 두고 왜 그처럼 분해하였던지…
이제는 석연히 알게 되였다. 결국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 안겨드는대로 감수하고 그릴줄만 알았지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되여 이루어진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향심동무는 먼 후날 더 아름다와질 조국산천의 모습을 그리며 숲을 사랑하고있었다. 래일을 안고 살았다.…
×
명호는 마을앞산에 펼쳐진 사철 푸른 바늘잎나무숲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향심이가 일하고있는 양묘장으로 향하였다.
명호의 눈에 싱싱히 자라는 나무모들을 가꾸고있는 향심의 모습이 안겨왔다.
《향심동무!》
명호의 부름에 일손을 멈춘 향심이는 허리를 폈다. 그의 눈에 웃음이 실렸다.
자기앞에 선 청년이 다름아닌 명호임을 알아보았던것이다.
《아이, 명호동무.》
명호의 입이 벙글서해졌다.
《여기… 발전소마을의 산림감독원으로 배치되였소.》
《예?!… 정말 놀랍군요. 동무야 미술가가 될걸 희망하지 않았어요?》
《난 결심을 달리했소. 아름다움을 그리기에 앞서 자기의 땀방울로 그것을 가꾸자고말이요. 그래서 이렇게…》
향심은 눈을 꼭 감았다.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이름할수 없는 흥분으로 하여 그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였다. 이윽하여 처녀는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보고있었다.
명호도 바라보았다.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조국의 푸른 산발들을.
더욱더 푸르러 설레일 울창한 수림의 모습을 그려보고있었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로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