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안 옥 경

 

세멘트와 모래를 가득 싣고 연방 꼬리를 무는 화물자동차들, 고지로 돌진하는 병사들마냥 달리는 건설자들로 북적거리는 여기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에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다.

금방 혁신자들의 위훈과 자랑을 속보에 옮겨놓고 직관실로 돌아오던 나는 그 자리에 굳어진듯 서버렸다.

(아이쿠, 이건 뭐야?)

자동차들이 바삐 오가는 길가운데 철쭉꽃이 다문다문 박힌 머리수건이 펼쳐져있었는데 거기에는 얼마간의 세멘트가 담겨있었고 그앞으로는 머리수건의 주인인듯 한 처녀가 길에 떨어진 세멘트들을 따라가며 맨손으로 쓸어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길바닥에 온 정신을 파묻은 처녀를 보느라니 기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였다. 하루에도 수백t의 세멘트를 삼키는 이 거창한 건설장에서 그쯤한것은 바다에 뜬 티검불만큼이나 보잘것없는것인데 그걸 쓸어모으겠다고 건설장 한복판에 주저앉아있다가 오가는 차에 지장이라도 주면 어쩐단 말인가.

《동무!》

거의 호령에 가까운 나의 목소리에 처녀는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태연히 고개를 쳐들었다.

《빨리 일어나오. 여기가 어디라고 제집 아래방처럼 주저앉아있소.》

처녀는 그제사 누가 덜미를 잡아 일으키기라도 한듯 마지못해 일어서며 호- 하고 긴숨을 내쉬였다.

채 모으지 못한 세멘트를 아쉬운 눈길로 보는 처녀의 입에서는 《이걸 모으면 좋겠는데…》는 말이 새여나왔다.

그때 자동차 한대가 으르렁거리며 우릴 향해 마주 달려왔다.

당황한 처녀는 헤덤비며 머리수건을 움켜쥐고 튕기듯 한옆으로 물러섰다.

자동차가 달리며 일군 회오리바람에 길가에 떨어졌던 세멘트들이 연기처럼 날아갔다.

그 어떤 소중한것을 잃은듯 얼굴에 실망을 가득 안은 처녀가 운전사를 원망하듯 손을 흔들어댄다.

한참이나 그 모양을 지켜보던 나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동무, 얼굴을 쳐들고 하늘을 좀 보오.》

어리둥절해서 나에게 눈길을 돌리던 처녀는 내가 손짓하는 고층아빠트를 향해 고개를 젖히였다.

동심에 잠긴 어린애마냥 눈앞에 아스라하게 솟은 아빠트의 층수를 하나하나 세여보듯 한참이나 올려다보던 처녀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보면 볼수록 장쾌해요.》

처녀의 얼굴에는 티 한점 엿볼수 없는 순진함이 어려있었다.

《옳소. 그래 동문 저 높은 아빠트에 그 세멘트가 얼마나 보탬이 될것 같소?》

나의 능청스러운 물음에 처녀는 금시 눈이 올롱해서 나를 마치 딴세상에서 온 사람 대하듯 하였다.

《어마나! 이 동지 무슨 말씀을… 티끌 모아 큰산이라고 저 높은 아빠트도 세멘트 한줌한줌이 모여서 지어진게 아닐가요?》

《?!》

처녀의 돌발적인 반격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처녀는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푸접없는 인사를 해보이고 사람들의 물결속으로 사라졌다.

×

《안녕하십니까? 새로 배치되여온 속보원 림연이입니다.》

무대에 나서서 공연소개를 하는 배우처럼 챙챙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처녀를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누군가, 좀전에 만났던 그 처녀였던것이다.

《아니, 동무가…》

처녀도 나를 알아본듯 반가와하였다.

《어마나! 그럼…》

나는 그때에야 처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닭알형의 얼굴에 머루처럼 까만 눈, 버들잎을 따다붙인듯 한 눈섭, 오똑한 코날 등 모든것이 조화롭게 박힌 처녀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왔다.

옥에 티라고… 흠이라면 얼굴에 주근깨가 다문다문 박힌것이였다.

나이는 열여덟살 되였을가.

처녀의 출현은 싱싱한 한떨기의 꽃이 자기의 향기로 방안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선전화구냄새를 흔적조차 없이 날려보낸듯싶었다.

《반갑소. 내 이름은 곽대범이요. 여기 건설장에서 흔히 곽대붓으로 통하지.》

자랑하듯 하는 내 소개에 처녀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호호호.》

《왜 웃소?》

《이름과 별칭이 너무 신통해서…》

《허허허. 가만, 동무 이름이 연이라고 했던가?》

《예.》

《연이라, 아 그러니 제비라는 뜻이로구만.

제비라, 좋구만. 동무 이름은 속보원으로서 아주 적중하오.》

나의 과찬에 연이는 까만 두눈을 깜빡거리였다.

《예?!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지?》

《우리 속보원들은 말이요, 새 소식을 물어들이는데서 제비처럼 빠르고 날파람이 있어야 하오. 그래야 건설장에서 매 시간마다 창조되는 기적과 혁신을 제때에 신속히 소개할수 있거던. 알겠지? 무슨 말인지.》

연이는 방긋이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리였다.

《그럼 동무의 붓글솜씨를 좀 볼가. 자, 이걸로 한번 써보오.》

나는 방비자루처럼 큰 붓을 집어 연이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을 본 연이는 한발 뒤로 물러서며 기겁한 소리를 하였다.

《어마나, 전 아직 이렇게 큰 붓으로 글을 써본적이 없습니다.》

《엉?!》

난처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연이가 어깨에 메고있던 자기 가방에서 깜직할 정도로 작고 손잡이가 연필처럼 기다란 붓을 꺼내들었다.

《전 이 붓이 좋습니다.》

눈에 차지도 않는 초리붓을 본 나는 그만 입을 항 벌리고말았다.

《허, 그런 붓은 통이 큰 일판이 벌어지는 여기 건설장에서는 통하지 않소.》

부지중 나의 눈앞에는 45층아빠트와 둬줌도 되나마나한 세멘트가 환등화면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역시 처녀들은 속통이 좁을수밖에…

장차 이 처녀와 일을 하자면 안타까운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서리서리 머리속을 채웠다.

(제길, 하필이면 씨원씨원한 남자속보원을 보낼게지…)

갈래없이 아지를 치는 상념은 지휘부일군들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업수임을 당하였다는 소외감에 온몸이 묶이운듯 새초롬해서 고개를 떨구고 편리화코숭이로 바닥을 긁던 연이가 갑자기 번쩍 머리를 쳐들더니 책상우에 놓여있는 붓을 쥐였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직 한번도 큰 붓으로 글을 써본적이 없다고 도리머리를 젓더니 어쩌자는건가.

성나면 보리방아를 더 잘 찧는다더니 한번 솜씨를 보이자는건가.

색감에 푹 잠그었던 붓을 총창처럼 꼬나든 연이가 벽에 세워놓은 속보판으로 다가갔다.

그것은 내가 속보를 쓰려고 준비해놓은것이였다.

꾹 붓을 박고 글을 써나가는데 한획한획 힘을 줄 때마다 새겨지는 큼직큼직한 글들이 살아숨쉬는 기백이 넘치였다.

붓을 쥔 손놀림이 마치 무용수의 춤가락처럼 유연하고 률동적이였다.

《건설자들이여! 완공의 날까지는 며칠 남지 않았다. 모두다 총돌격 앞으로!》

수채구멍으로 물 빨리워들어가듯 눈이 퀭해서 한자한자 글을 뜯어보는 나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야, 하는 감탄이 련발되였다.

마지막감탄부호의 획을 박력있게 내리그은 연이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붓을 거두고 뒤로 한걸음 물러선 연이는 시험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긴장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멋있소, 솜씨가 대단해!》

나는 두손바닥이 깨져라 박수를 치며 연이의 솜씨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였다.

《아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얼굴을 활딱 붉힌 연이는 부끄러워 쩔쩔매였다.

《아니요, 정말 감탄할 정도요. 그런데 붓글을 어디서 배웠소?》

연이의 얼굴에 추연한 빛이 어리였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서예소조에서 배웠습니다.》

《글쎄 어쩐지… 그런데 왜 미술대학에 가지 못했소?》

《저 같은게 어떻게 대학엘…》

《왜?》

나의 놀라운 물음에 연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그저… 여기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에서 땀을 바치며 현실체험을 하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기 건설장으로 탄원했는데 글쎄 어떻게 알았는지 속보원으로 배치하는게 아니겠어요.》

꿈많은 자신의 리상과 포부를 들끓는 대건설장에 바쳐가려는 연이를 보는 나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얼마나 기특한 처녀인가.

청춘시절을 값있게 보내기 위해 여기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으로 탄원한 연이야말로 온 건설장에 대고 소리치며 자랑할만 한 처녀였다.

나는 연이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싶었다.

《연이동무, 현장에서 땀을 흘리지 못한다고 너무 실망해마오. 속보원의 일도 건설자들 못지 않게 영예롭고 긍지로운 일이요. 이제 두고보오. 일을 하느라면 저절로 긍지가 생길게요.》

나의 말에 그늘이 졌던 연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럴가요?》

《그럼, 속보도 중요한 정치사업이거던. 이런 말이 있지 않소. 붓대포소리 높은 곳에 기적과 위훈이 창조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건설자들을 기적과 혁신에로 부르는 붓대포란 말이요.》

장황하게 열변을 토하는 나의 말에 깊숙이 빠져든 연이는 벌써 흥분한듯싶었다.

《그러니 동문 이제부터 작업장들을 제비처럼 날아다니며 붓대포소리를 울릴 포알들을 수집해 오오.》

《알겠어요.》

마음이 흥뜬 연이는 자신심이 생긴듯 생긋이 웃어보이고 제비처럼 나는듯 밖으로 뛰여나갔다.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가 쓴 글을 보는 나의 입에서는 절로 흡족한 웃음이 피여났다.

(보기와는 다른 처녀인걸…)

×

포알을 수집하러 보낸 제비는 한시간이 넘도록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돌아올줄을 몰랐다.

기다리기에 지친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가만, 이 처녀가 여기에 처음 오더니 건설장이 연주하는 대교향곡에 풍덩 빠져 제 할바를 감감 잊은게 아니야.)

십분 그럴수 있었다.

하긴 누구나 여기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에 처음 오면 그 대교향곡을 감상하지 않고서는 발을 옮기지 못한다.

나 역시 처음 여기 왔을 땐 그런 경우를 당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하늘을 꿰지르며 솟아오른 각양각색의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층아빠트들과 병풍처럼 둘러선 희한한 봉사건물들…

거기에서 작업을 하는 건설자들의 잽싸고 깐진 일솜씨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말자.

그들은 건설에만 솜씨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림솜씨 또한 볼만 하다.

그림속에 척 들어앉아 누구의 웃음이 건설장을 더 크게 울리는가 경쟁을 하듯 호호탕탕 웃기도 하고 새로운 건설공법을 창안하는듯 심오한 사색에 빠져있기도 하고 휴식참에 벌어진 오락회에서 등따라등따 북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의 모습은 건설자들이 그린 걸작품들이다.

지금쯤 처음으로 평양나들이온 촌늙은이처럼 여기 두리번 저기 두리번하며 방향없이 발을 옮기고있을 연이를 그려보느라니 도화선심지타듯 속이 빠질빠질해났다.

그렇게 건설장을 돌아보자면 한나절시간을 바쳐도 못다 보겠는데 더이상 앉아 기다릴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한시간전의 실적이 벌써 낡고 뒤떨어진것으로 되는 건설장에서 속보원이 언제 한가스레 앉아 전투성과를 기다릴새가 없기때문이였다.

황망히 직관실을 나서려던 나는 총알처럼 마주 뛰여오는 연이와 하마트면 이마를 쪼을번 하였다.

《대범동지, 특보감입니다.》

숨가쁘게 웨치는 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목마를 때 우물을 맞다든듯 환성을 올리였다.

《특보감이란 말이지.… 좋소.》

드넓은 건설장에 하루에도 수십장의 속보를 써붙였던 나는 그 말에 온몸이 귀가 된듯 싶었다.

《누구요? 주인공은 어느 대대 사람이요?》

헤덤비는 나의 물음에 마라손주로를 달려온 선수처럼 가쁜숨을 몰아쉬던 연이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35층에서… 방안미장을… 하고있는 3대대에서… 글쎄… 숱한 혼합물을 랑비…》

말더듬이처럼 떠듬거리는 연이의 왕청같은 소리에 나는 그만 손맥이 풀렸다.

《그만하오. 그게 모슨 특보감이요?》

《아니, 그게 특보감이 아니란 말입니까?》

놀란 토끼처럼 두눈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문하는 연이에게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게 속보감이요? 비판감이지.》

《어마나, 그럼 비판속보는 없습니까?》

(헛참, 천진하기란.)

《그런건 총화모임때 비판하고 바로잡을 문제지 우리 속보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요. 됐소. 내 3대대장에게 말해서 자재랑비현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하겠으니 동문 제 할바를 하오.》

《그럼 다시 갔다오겠습니다.》

서리맞은 떡잎처럼 시들해진 연이는 맥없이 돌아섰다.

그가 사라진쪽을 멀거니 바라보던 나는 연이를 믿었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쓰고있던 속보를 마저 쓰고 현장에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

돌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사람모양 헐떡거리며 3대대가 일하는 35층에 이른 나는 이방저방 기웃거리며 연이를 찾았다.

허나 연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경쟁의 승부를 다투는 미장경기인지라 일에 열중한 건설자들은 내가 다가오는즐도 모르게 일에 정신을 집중하고있었다.

완성된 미장면들은 어찌나 미끈한지 자대를 대고 전지불을 비쳐도 불빛 한점 빠지지 못할것 같았다.

하기야 천년책임, 만년보증이 우리 건설자들의 신조가 아닌가.

나는 혼합물을 섬기는 처녀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오.》

삽으로 혼합물을 퍼담던 처녀가 나를 보고 아는체 하였다.

《아이, 속보원동지예요. 저 우리…》하는데 별안간 등뒤에서 《뭘해, 혼합물!》하는 매몰찬 소리가 화살처럼 날와박히였다.

와뜰 놀란 처녀가 눈을 내리깔며 삽에 뜬 혼합물을 미장공을 향해 내던지였다.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던 혼합물이 미장공의 미장판에 명중되여 찰싹 달라붙었다.

더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돌아선 나는 다음 방으로 건너가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빨간 수지안전모를 쓴 청년이 다짜고짜로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속보원동무! 마침이요. 여기 특보감이 있소.》

특보감이라는 소리에 나는 귀가 버룩해졌다.

(아까 연이의 특보감은 비판감이였지만 이 친구의 특보감은 진짜겠지.)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말은 다르게 나갔다.

《대체 오늘계획을 몇%나 했길래 특보감소릴 하는거요?》

나를 끌고 옆방으로 간 빨간 수지모자가 한곳을 가리키였다.

《이걸 좀 보오.》

그가 가리키는 곳에 눈을 주어 보니 한구석에 몇삽가량 될 혼합물이 모아져있었다.

《저건 혼합물이 아니요?》

《저게 바로 특보감이란 말이요.》

그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친구 누굴 놀리는거요? 작업장에 흔한 혼합물을 놓고 특보감이라는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거의나 역증에 가까운 나의 질책에 빨간 수지모자가 히죽이 웃으며 길에 내뻗친 팔을 시계추처럼 여기저기 흔들어보이며 말하였다.

《뚱딴지인지 꽃단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미 작업을 끝낸 상태란 말이요.》

그의 말이 짐작이 갔다.

누군가가 작업도중에 흘린 혼합물을 모아서 놓은것이였다.

아닐세라 완성된 네면의 벽밑마다 비자루질을 한듯 반반하였다.

그것을 보느라니 뭔가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혹시 연이가 한 소행이 아닐가?)

조금전에 랑비된 혼합물을 놓고 큰 일이나 난것처럼 특보감이라고 하던 연이이고보면 십분 그럴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의심할바없이 연이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때였다.

옆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였다.

《향순이! 이 혼합물은 어디서 생긴거야?》

이어 처녀의 화답소리.

《모르겠는데요.》

그 소리에 호기심이 동해 나는 그 방으로 건너갔다.

거기에도 옆방과 같이 혼합물이 모아져있었다.

《속보원, 이런 아름다운 소행의 주인공을 찾지 못하고 어디서 헤매고있소?》

씨름선수처럼 체통이 우람한 미장공이 성난 사람처럼 미장칼로 미장판을 두드려대며 나를 몰아댔다.

싫지 않은 추궁이였다.

생각같아서는 그 주인공이 새로 온 속보원 연이라는 처녀라고 말해주고싶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지라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어쨌든 빨리 연이를 만나야 했다.

혹시 붓대포의 포알을 안고와서 날 기다리는게 아닐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다.

내려갈것인가 아니면 웃층으로 올라갈것인가를 망설이던 나는 이왕 내짚은 걸음이라 웃층까지 올라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웃층에 올라가니 어디선가 웅성웅성하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행여나 하여 그쪽으로 가던 나의 눈빛이 빛났다.

이미 작업을 끝낸 방에서 여러명의 청년들이 바닥에 흘린 혼합물을 쓸어모으고있었는데 그중에 처녀도 있었던것이다.

《연이동무!》

흥분한 나의 목소리에 일에 열중하던 청년들이 일시에 눈길을 쳐들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말았다.

나를 빠끔히 쳐다보는 처녀는 연이가 아니였던것이다.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미안하오. 난 우리 속보원동무를 찾느라고…》

이렇게 중얼거린 나는 성급히 돌아섰다.

×

누군가가 맥빠진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나를 불러세웠다.

《속보원동무!》

돌아보니 3대대장이였다.

나는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대대장동지.》

《수고하누만. 이자 방금 옆방에서 듣자니까 새로 온 속보원동무를 찾는것 같은데…》

《예.》

《그 동문 좀전에 내려갔소.》

대대장의 말에 한껏 조였던 탕개가 스르르 풀렸다.

(헛참, 솔밭에 가서 바늘 찾기라더니…)

이제껏 헐떡거리며 연이를 찾아 헤맨것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알았습니다.》

홱 몸을 돌려 발을 내디디려는데 대대장이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니, 내 말을 마저 듣소.》

《?!》

나는 어리둥절하여 돌아섰다.

《새로 온 동무의 이름이 연이라고 했던가?》

《예.》

《참 기특한 동무요. 아니, 쉽지 않은 동무요.》

《?》

나는 얼떠름해서 대대장을 쳐다보았다.

무슨 의미에서 대대장이 연이를 그렇듯 값높이 사주는것일가.

한동안 말이 없던 대대장의 구리빛얼굴에 감동의 빛이 어리였다.

《내가 작업장을 돌아보고있는데 글쎄 매 조들에서 비상사고가 생겼다고 제기하지 않겠소.

그 비상사고인즉은 누군가가 자기들도 모르게 작업도중에 바닥에 흘린 혼합물을 모아서 다시 혼합해놓고 바람처럼 사라졌다는것이였소.

이상한것은 모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오직 그 생각에 빠져 일에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그 주인공을 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거던.

그래 내 기어이 그 주인공을 찾으리라 마음먹고 매 방마다 빗질을 했지.

한참동안이나 찾아헤맸지만 어디 찾을수가 있더라구.

솔밭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힘들더구만.

그래 에라, 포기하고 저녁 작업총화시간에 한사람한사람 따져물어보자, 그때면 누군가가 나서겠지 하고 속구구를 하며 돌아서댔는데 마지막층 끝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군.

한가닥 기대를 안고 슬금슬금 가보니 웬 처녀가 금방 작업이 끝난 3소대 1분대 작업장에서 흘린 혼합물을 쓸어모으고있는게 아니겠소.

자세히 보니 영 낯이 선 처녀더군.

그 처녀에게 동문 누군가고 물었더니 그저 웃기만 할뿐 대답을 피하는게 아니겠소. 그래 동무가 여태 작업장에 흘린 혼합물을 모아놓았는가고 물으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이 다시한번 혼합하면 얼마든지 쓸수 있는걸 보고 그냥 스쳐지나가자니 량심이 허락치 않더라는거야.

처녀의 말을 듣고보니 가슴을 쿡 찌르는게 있더구만.

매 방마다 흘린 혼합물량을 따지면 기껏해야 몇삽정도라고 할수 있지만 고층아빠트의 수백개방들에 흘린 량을 얼추 계산해보니 그 량이 대단하더란 말이요.

그렇게 랑비된것이 우리가 맡은 대상뿐이겠소.

여기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의 다른 대상들은 우리와 같은 현상이 없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애국이란 뭐겠소. 비록 남들처럼 빛이 나고 요란한 일은 아니여도 길가에 흘린 한줌의 세멘트, 한줌의 석탄도 귀중한 나라의 재부로 보고 아낄줄 아는 그 마음이 애국이 아니겠소.

그렇듯 장한 일을 한 처녀가 나와 헤여지면서 뭐랬는지 아오?

제발 사정하는데 비밀을 지켜달라는거요. 허허허.

이런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열정에 넘친 대대장의 말을 듣는 나의 심장은 마당질하는듯 높뛰였다.

눈앞으로 얼마 되나마나한 세멘트를 귀하게 여기며 싸안았던 철쭉꽃머리수건이 얼른거리였다.

나는 더이상 대대장과 마주 서있을수가 없었다.

나는듯이 계단을 뛰여내린 나는 직관실문을 벌컥 열어제끼였다.

문소리에 놀란듯 연이가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 어데 가셨댔어요?》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나의 눈길이 연이가  금방 쓴듯싶은 다섯개의 속보판에 가멎었다.

활달한 필체로 《주인을 기다립니다》, 《미장공인가 무용수인가》 등 생동한 제목을 박은 속보의 내용들은 모두 보는 사람들마다 가슴이 울렁거리게 씌여져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빈 속보판은 없었다.

아쉬웠다.

연이의 소행을 온 건설장이 알도록 소개하려던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듯싶어 가슴이 알찌근하였다.

무엇인가 잃은 사람모양 초조해서 허둥거리는 나에게서 그 어떤 예감을 느낀듯 한 연이가 불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며 기여드는 소리로 뇌이였다.

《저… 혹시 대대장동지한테서 무슨 말을 들은게 아닙니까?》

벌써 나의 속마음을 헤쳐본듯 한 연이의 얼굴엔 그 어떤 애원의 빛이 어려있었다.

대대장에게 말했듯이 제발 소문을 내지 말고 비밀에 붙여달라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이윽토록 연이를 지켜보던 나는 아무 일도 없은듯 씩 웃어버렸다.

《왕청같이 대대장은 무슨 소리요. 난 대대장 그림자도 못 보았는데.》

《그래요?! 고마워요.》

긴숨을 내쉬는 연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여났다.

《무엇이 고맙다는거요?》

시치미를 뚝 따고 던진 나의 물음에 연이는 두눈을 내리깔았다.

《대범동지가요.》

《허허허… 동문 정말…》

책상우에 놓여있는 왕붓과 초리붓이 나의 눈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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