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조 상 호
(제 1 회)
1
야전승용차들은 눈보라치는 령길을 굽이굽이 숨가삐 치달아오르고있었다. 휘유- 휘이- 하고 휘파람소리를 내지르며 온 강산을 은백색의 세계로 만들어놓는 눈보라때문에 하늘의 해도 짙은 안개속에 잠긴듯 뿌옇게만 보인다. 길 왼쪽에 치솟은 아찔한 벼랑도, 깊이를 대중할수 없는 오른쪽의 낭떠러지도 지독스러운 눈보라의 광란에 우우- 몸부림을 치는듯싶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모신 승용차는 맨앞에서 달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차창밖을 내다보시며 그 어떤 깊은 명상에 잠겨계시였지만 옆자리에 앉은 인민무력부 류정구장령의 꽉 움켜쥔 주먹안에서는 진땀이 흐르고있었다.
《장군님, 위험합니다. 이런 눈보라길에서는 절대로 저 매운령을 넘지 못합니다. 삼봉산중대는 다음기회에 가시였으면 합니다.》
방금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삼봉산중대로 가보자고 하시였을 때 류정구는 물론 군부대지휘관들까지 황황히 나서며 안타까이 말씀드렸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헌헌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눈길이 어떻다고 그러오. 이쯤되여야 다니는 맛이 있지. 갑시다. 난 그 중대에 꼭 가보아야겠소.》
장군님의 결심은 단호하시였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장군님을 모시고 이 령을 넘게 된 류정구였다.
류정구는 안절부절을 못하며 아우성치는 눈보라의 광란을 불안한 눈길로 내다보았다. 왼쪽절벽 중턱에 가까스로 뿌리를 박고 눈바람에 시달리던 소나무에서 사슴뿔같은 삭정이가 뚝 부러져 오른쪽낭떠러지로 날려내려가는것이 얼핏 눈에 띄였다.
류정구는 가슴이 섬찍해짐을 느끼며 얼결에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자 명상에서 깨여나신 장군님께서 그의 팔굽을 잡아 자리에 앉히시였다.
《너무 긴장해서 그러지 마오. 이 길은 우리 병사들이 늘 넘나드는 길이요. 참, 류동무, 이 령길에 어떤 일화가 있는지 아오?》
《예?》
불안과 초조감이 뒤엉킨 눈길로 눈장막이 뽀얗게 막아서는 차창밖을 날카롭게 주시하던 류정구는 의아해서 고개를 돌렸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신채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이곳 부대의 한 땅크구분대가 이 매운령을 넘을 때 있은 일이요.》
…
선두땅크가 와릉와릉 전속으로 령을 돌아내려가는데 갑자기 저앞 굽인돌이에서 뻐스 한대가 불쑥 나타났다.
뻐스에는 야영을 가는 학생들이 가득 타고있었다. 충돌은 불가피했다. 뻐스에 탄 아이들속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오는 위기일발의 순간 땅크가 별안간 방향을 홱 돌렸다. 급작스레 방향을 바꾼 땅크는 관성력에 의해 어쩔수없이 길옆으로 밀려나며 벌컥 뒤집혔다. 어찌나 경사가 급한지 땅크는 뒤집힌채로 사정없이 아래로 지쳐내리기 시작했다.
《땅크가 굴러내린다!》
경악을 해서 뻐스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이 아우성을 치며 땅크를 따라 줄줄 미끄러져내려갔다. 땅크는 무한궤도를 공중으로 든채 지쳐내리다가 또다시 뒤집히며 묘하게도 아래굽이길에 바른 자세로 척 내려앉았다. 승조원들이 다 잘못되였는지 땅크는 한동안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아저씨, 군대아저씨!》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땅크를 에워쌌다. 엉엉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땅크포탑문이 벌컥 열리더니 땅크병 한명이 불쑥 솟아올랐다.
《너희들 상한 애는 없니?》
아이들이 눈이 쾡해서 쳐다보다가 미처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까딱이자 땅크병은 밑으로 내려와 땅크를 한바퀴 돌아보더니 《이거 배운대로 잘 안되는데…》하고는 뒤더수기를 긁으며 땅크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너희들 야영을 잘하고 오너라.》
그리고는 발동을 걸고 령밑으로 냅다 달려내려갔다.
아이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그 땅크를 쳐다보다가 와- 하고 환성을 올렸다.
그때부터 이곳 사람들속에서는 인민군대땅크병들은 갈길이 급하면 언제 굽이굽이 에돌새없이 벌컥벌컥 딩굴어내리는 훈련도 한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도 단축하고 연유도 절약한다는것이다.
…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차창밖으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시였다.
《우리 땅크병들이 내리막길에서 그런 훈련을 했다니까 아직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 걸려야 할거요. 허허허.》
《장군님!》
류정구는 목이 메여 다른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장군님께서 이 류정구의 긴장을 풀어주려 그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류정구는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장군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화까지 알고계실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긴 늘 전선길을 이어가시며 병사들과 함께 야전식사도 나누시고 그들의 귀속말까지 다 들어주시는분이니 모르실수가 없는것이다.
류정구는 눈굽이 축축해올랐다.
하지만 이 일화는 단순히 인민을 위해서라면 자기 한몸도 서슴없이 내대는 우리 인민군병사들의 그 숭고한 정신세계와 그 어떤 정황에서도 끄떡없는 땅크병들의 강한 육체기술적준비, 그들의 기지를 보여주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이 매운령이 얼마나 경사가 급하고 험한가를 말해주기도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도 있다. 령밑에서 승용차와 사람이 동시에 떠났는데 승용차는 굽이굽이 령길을 따라 전속으로 치달아올랐으나 지름길로 걸어올라온 사람이 령마루에 앉아 땀을 들이며 점심밥을 먹고 담배까지 한대 태웠을 때에야 도착했다는것이다.
그처럼 높고 구배가 심하고 가파로운 령길…
그 령길이 지금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였다. 눈보라속에서 아우성을 치고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 령넘어 삼봉산중대로 가자고 하실 때 안타까이 막아나섰던 류정구네들이였다. 류정구는 장군님께서 왜 부디 삼봉산중대로 가시려 하는지 다는 알수가 없었다.
얼마전 서해상에서 있은 적들과의 교전에서 동지들을 구원하고 전투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한 병사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게 되여있었으나 본인자신이 자기는 영웅자격이 없다고 한다는 보고가 무력부에 올라왔었다. 자기의 형이 조국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것이다. 알아보니 그가 바로 몇해전에 과오를 범하고 제대되였던 박태삼이라는 청년의 동생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어제 친히 그를 만나시고 손수 영웅메달을 달아주시였다.
《형이 지은 죄가 동생에게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요. 그리고 동무 형도 지금은 일을 잘하고있소.》하며 그를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 이곳 군부대를 시찰하시다가 그의 형인 박태삼이가 생활하던 중대로 가보자고 하시였던것이다.
류정구는 눈보라치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괴롭게 한숨을 내쉬였다.
박태삼… 한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를 두고 얼마나 속을 태우셨던가. 그런데 오늘은 또…
류정구는 박태삼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지금 우리 장군님께서 이처럼 눈보라 사나운 험한 령을 넘어 자기가 생활하던 중대로 찾아가고계시는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있을것이다.
장군님께서 자기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고계시는지도 다는 모를것이다.
박태삼…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2
박태삼은 칡넝쿨과 잡관목이 마구 뒤엉킨 숲을 헤치며 집으로 가고있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 석대가 동시에 어길만큼 넓게 열려져있었지만 아는 사람들을 만날가봐 할수없이 길도 없는 산턱으로 붙게 된 박태삼이였다. 분지나무며 찔광이나무가시에 긁힌 얼굴엔 땀이 질펀히 흐르고 두툼한 입술사이로는 때없이 긴 한숨이 쏟아져나오군 했다.
군사복무도중에 과오를 범하고 수치스럽게도 제대되게 된 박태삼은 탄광이든 광산이든 어딘가 멀리 자기를 모르는 곳에 가서 새 출발을 하고싶었지만 배치장에는 이미 고향인 석정리라는 지명이 적혀있었다. 태삼에게는 다른 곳에 보내달라고 떼를 쓸 권리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꽃보라를 뿌려주며 앞날을 축복해주는 고향사람들에게 영웅이 되여 돌아오겠노라 큰소리를 치며 떠나갔던 이 박태삼이가 영웅은커녕 락오자가 되여 쫓겨오는것이다.
이제 어떻게 그들앞에 나타날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억이 막히겠는가.
마을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태삼은 가슴에서 불이 이는듯 했다. 앞을 막는 칡넝쿨을 와락와락 헤치며 걷다가 고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이르자 자기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다박솔숲에 몸을 가리우고 지붕우에 빨간 김장고추를 널어놓은 고향집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몸부리을 쳤다. 가슴을 갈가리 풀어헤치고 태질을 하며 왕왕 소리내여 울고싶었다.
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
시뻘건 저녁해는 큰 죄를 지어놓고 이제 와서야 비로소 앞날을 걱정하며 몸부림치는 태삼이가 보기조차 역겨운듯 서산너머로 쑥 내려가버렸다. 황혼이 비낀 마을길로 하루일을 마친 마을사람들과 함께 벼단을 가득 실은 뜨락또르들이 퉁퉁거리며 들어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서로 찾고부르는 소리… 웃음소리…
고향집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태삼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쿡 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집집의 굴뚝마다에서는 벌써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피여오르기 시작한다.
군사복무나날 때없이 가슴을 찌르르하게 울려주며 소중한 추억으로 떠오르던 활기와 랑만에 찬 저 생활속에 나는 이제 어떤 그늘을 던지게 되겠는가. 저 아름다운 생활의 노래가 나로 하여 이제 어떤 불협화음이 생기게 될것인가.
태삼은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날은 빨리도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벌써 밤새가 우후- 하고 울었다. 그러나 박태삼은 선뜻 일어설념을 못했다. 어릴적 젖내 풍기는 추억이 소중히 깃든 보금자리로 돌아가기가 이렇게도 힘들고 괴롭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태삼이였다.
태삼은 밤이 이슥해서야 어정어정 집으로 내려갔다. 컹컹 여기저기서 개들이 짖어댔다. 불청객이 왔다고, 빨리 저 수상한 놈을 내쫓으라고 고아댄다. 태삼은 누가 볼세라 얼른 고향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이번엔 부엌문앞에 웅크리고있던 복슬개가 달려나오며 당장이라도 물어메칠듯 맹렬하게 짖어댄다. 이건 또 웨놈이 도적고양이처럼 남의 집으로 기여드는가 하는듯… 반겨맞는건 아무도 없었다.
《지개…》
박태삼은 당황해서 발을 굴렀다. 그러나 복슬개는 더 기승을 부리며 짖어댄다.
이때 부엌문이 열리며 불빛이 확 쏟아져나왔다.
《게 누구요?》
아- 어머니구나.- 온몸에 밸대로 밴 정겨운 그 목소리와 함께 부엌에서 소랭이를 들고 나오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태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
태감은 목이 꽉 잠기여 말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토방아래 놓은 구유에 서둘러 개물을 쭈르륵 쏟아주고 의아해서 다가오던 어머니가 어둠속에서도 아들을 알아보고 소랭이를 떨구었다.
《너 첫째로구나, 태삼아!》
태삼은 자기를 부둥켜안는 어머니의 열광의 애무에 몸을 맡겼다. 코안이 찡하며 메워올랐다.
《너 이게 몇해만이냐. 그래 그새 앓지는 않았니? 원, 이런… 네가 몰라보게 컸구나. 어깨도 넓어지구… 어서 들어가자, 어서… 여보, 첫째가 왔수다, 우리 첫째가…》
반가와 어쩔줄 몰라하던 어머니가 안에 대고 소리치기도 전에 아래, 웃방문이 벌컥벌컥 열렸다.
《형!》
《오빠!》
반가움과 기쁨에 넘친 그 부름소리에 태삼은 또다시 몸을 떨었다. 아, 이렇게 반가와하는 너희들에게 나는 무슨 소식을 안고왔단 말이냐.…
막 달려와 매달리는 동생들에게 몸을 맡겼던 박태삼은 문앞에 우뚝 서있는 아버지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숙였다.
《아버지,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냐, 어서 들어오렴.…》
과묵한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서 하는 말이였다. 역빠른 누이동생 태숙이가 배낭을 받아메며 손을 이끌었다.
《어서 들어가자요. 글쎄 어제 밤 내가 영웅이 된 오빠를 만나는 꿈을 꾸었는데… 이렇게 오빠가 올줄은… 호호호. 자, 어서 들어가자요.》
방안에는 불빛이 환했다. 태삼은 주춤거렸다. 저 불빛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게 될 자기의 몰골이 창피스러웠다. 두려웠다.
《당신은 어서 시원한 꿀물이나 한사발 풀어오구려. 첫째가 먼길을 오느라 땀깨나 흘렸겠는데…》
어머니에게 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음 태삼은 동생들의 손에 끌려 어쩔수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그러나 집안식구들은 아직도 부자연스러워 하는 태삼의 어색한 행동거지를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미처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였다. 아마도 뜻밖의 상봉이 가져다준 기쁨에 태삼의 옷차림과 행동거지에는 미처 관심이 가지 못한탓인지.…
태삼은 한순간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구들의 달아오른 열기가 좀 가라앉은 다음에 사연을 이야기하는것이 한결 나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태삼은 몸을 흠칫했다. 반가운 웃음을 함뿍 띠웠던 아버지의 눈길이 자기의 령장을 달았던 목깃에 멈춘채 점점 의아한 빛으로 변하는것을 느꼈던것이다. 드디여 때가 온것이다.
태삼은 얼굴에 모닥불을 들쓴듯 확 달아오름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풀썩 무릎을 끓었다.
《아버지!…》
《이게 웬일이냐, 응? 네 군복차림이… 왜… 그 모양이냐?》
아버지의 떠듬거리는듯 한 떨리는 음성이였다.
《아버지, 저를… 꾸짖어주십시오. 저는… 제대를…》
차마 과오를 범하고 제대되였다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뭐, 제대?》
아버지의 놀란 목소리가 고막을 쩡 울렸다.
태삼은 아버지의 경악해하는 눈길을 차마 마주볼수가 없었다.
태삼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두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량볼을 타고 장판바닥에 뚤렁뚤렁 떨어졌다.
《아버지, 전… 과오를… 범하구… 그만…》
뒤에서 《쨍강.》하고 사발이 방바닥에 떨어져 깨여지는 소리가 들려와 태삼은 또다시 몸을 흠칫했다. 괴롭게 눈길을 돌리니 세쪼박으로 깨여진 사발쪼각과 함께 장판바닥에 누르끼레한 꿀물이 흐른다. 피끗 올려다보니 어머니가 얼이 빠진듯 눈을 흡뜬채 멍하니 내려다보고있다.
《과오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응? 도대체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떨리는 소리로 재촉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아들의 대답이 두려운듯 점점 흐려지다가 뚝 끊어졌다.
태삼은 떠듬거리면서도 자초지종을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얼굴이 불붙는듯 달아올랐다.
《전 사실… 공명심에 들떠서 전사들을… 막 내몰다가… 큰 사고를 치구… 씻을수 없는 죄를 짓구… 그만 제대를…》
태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먼저 무너지듯 방바닥에 주저앉으며 《아-》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주먹으로 방바닥을 쾅쾅 두드렸다. 세동강이 났던 사발쪼각이 그 주먹에 맞아 또다시 산산쪼각 부서져나가고 어머니의 손에서는 빨간 피가 흐른다.
《엄마!》
동생들이 목메여 울며 달래였지만 어머니는 피흐르는 주먹으로 이번엔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통곡을 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우리 집에 역적이 생겼구나, 역적이 나왔어, 아이고… 이게 무슨 변괴란 말이냐.
우리 장군님께서 나라를 지키자구 그리두 애를 쓰시는데… 넌… 넌… 이게 역적이 아니구 뭐란 말이냐, 아이고… 이젠, 이젠 우리가 어떻게 하늘에 머리들고 살수 있단 말이냐. 야, 내가… 내가 역적을…》
…
《장군님, 그날 우리 온 집안식구들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못해 담배를 끊었던 아버지는 너무도 억이 막혀 온밤… 줄담배만 태웠고 어머니는… 너무도 큰 정신적타격에 몇번이나… 종내 병원으로 실려가고야말았댔습니다.
…
저는 그처럼 다정하던 마을사람들도 얼굴을 들고 마주볼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일을 했어도… 죄의식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 사람이 죄를 짓고서는 못살겠구나 하는것을 뼈저리게 절감하였습니다.…
저의 동생 태철이는 이 형이 지은 죄를 자기라도 씻어야 한다면서 예술단대신 인민군대로 나갔지만 저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장군님, 저는 장군님과 나라앞에… 동지들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한번만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다시 군복을 입을수만 있다면…》
그것은 장군님께서 몇해전에 한 청년으로부터 받으신 편지내용이였다. 그날도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에서 지도하시고 밤늦게 돌아오시여 밀린 문건들을 처리하시다가 나중에 그 편지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류정구가 그 사실을 알게 된것은 장군님께서 과업을 주신대로 박태삼이가 군사복무를 하던 삼봉산중대에 내려가 그의 과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돌아왔을 때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속이 답답하신듯 진눈까비가 내리는 정원을 거닐고계시였다.
류정구는 가슴이 쩌릿해옴을 느끼며 죄스러운 어조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삼봉산부대에 가보니… 처음엔 그가 군사복무를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입대한 동무들가운데서도 제일먼저 분대장이 되였고… 그런데 속보에도 자주 나고 떠받들리우기 시작하자 그 동문 점차 소총명과 자기 우월감에 빠져 동지들을 깔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사들의 준비정도와 개인사정은 전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러다가 큰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그때 부대에서는 훈련판정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분대가 응당 부대적으로 1등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사들을 무섭게 달구었답니다. 갓 들어온 한 신입병사가 철봉운동을 잘하지 못하자 매일 밤 데리고나가 호된 추궁을 하며 무작정 훈련을 시키다가 그만 철봉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병원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사실 그 전사는 하루전에 팔목을 다치였는데… 팔목이 시큰거려 못하겠다고, 좀 나은 다음에 하자고 사정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삼동무는 분대를 무슨 꼴로 만들려는가고 윽박지르면서… 꾀병이다, 뭐다 하면서…》
류정구는 진눈까비가 얼굴에 부딪쳐서 가슴팍으로 녹아내리자 한걸음 나서며 안타까이 말씀드렸다.
《장군님, 진눈까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안에 들어가셔야겠습니다.》
진눈까비에 옷이 다 젖는것도 느끼지 못하시는듯 묵묵히 거니시던 장군님께서 괴로운 눈길로 류정구를 돌아보시였다.
《정구동무, 이 편지를 한번 읽어보오.》
잠시후 집무실에 들어오신 장군님께서 류정구에게 한통의 편지를 꺼내놓으시며 하시는 말씀이였다.
의아해서 속지를 뽑아 읽어보던 류정구는 점점 가슴속에 차오르는 의분을 어찌할수 없었다.
사람이 어쩌면… 그런 엄중한 죄를 짓고도 감히 장군님께 이런 편지를 올릴수 있단 말인가. 괘씸한 사람… 무엄하기 그지없다.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 감히 용서를 바라다니…
편지를 두번씩이나 곱씹어 읽어본 류정구는 속지를 봉투에 넣어 장군님께 드리며 목메인 소리로 아뢰였다.
《장군님, 이 청년을 두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자기의 죄가 얼마나 엄중한지, 자기의 행위가 어떻게 되여 용서받을수 없는것인지 피눈물을 흘려보아야 알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류정구를 이윽히 건너다보시다가 눈길을 돌리며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래, 용서할수 없는 일을 저질렀지.》
그러시고는 천천히 집무실안을 거니시다가 갈린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도 아다싶이 우리 혁명력사는 바로 동지애의 력사라고도 말할수 있소. 우리 수령님께서는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였소. 수령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군 하였소. 자신께서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유산중의 가장 큰 하나가 바로 동지획득의 사상이라고…
그 동지애의 사상이 우리 혁명의 전로정을 관통하고있소. 동지애로 혼연일체를 이루었기에 우리 혁명은 언제나 백승을 떨쳐왔소.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한 단결은 적의 원자탄보다 더 위력하오.
오늘날 내가 전사들을 찾아가는것도 그들이 바로 나의 동지들이기때문이요. 난 아직까지 그들을 최고사령관과 병사라는 관직상 복종관계로, 나의 하급으로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소.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류정구는 생각할수록 박태삼이란 청년이 원망스러웠다. 동지를 위해서는 터지는 수류탄도 한몸으로 덮는것이 체질화된 우리 인민군대이다. 정말 이번 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수 없는 그런 비상사고였다.
《그래, 류동무생각엔 이 박태삼이란 청년을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소?》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시며 갈리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류정구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선뜻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그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미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다시 큰 처벌을 줄수도 없는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나타나지 않게 모두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할 그런 방법은 없는가.
류정구는 심호흡을 하며 장군님을 우러렀다.
《류동무, 한번 더 걸음을 해야 할것 같소. 현재 이 태삼동무가 일하는 고향에 가보시오. 그가 지금 어떻게 생활하고있는지… 일군들도 만나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만나시오.
난 이 동무 소원대로 다시한번 기회를 주는것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만.》
《예?》
류정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럼 장군님께선 그를 용서하시려는것인가.
그이를 우러르던 류정구는 그만 목이 꺽 메여왔다. 용서할수 없는 죄를 용서하시려는 그이의 심중이 너무도 뜨겁게 가슴에 안겨왔던것이다.
《장군님, 그럼 그에게 다시 군복을?…》
《그렇소. 물론 그가 씻을수 없는 죄를 짓기는 했지만… 그도 역시 버릴수 없는 우리 시대 청년이 아니요. 우리 당이 키운 아들이고… 그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있는데…》
그러시는 장군님의 모습은 자식의 잘못을 두고 걱정하고 괴로와하는 친부모의 모습그대로였다. 어떻게 하나 잘못을 씻고 떳떳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친어버이의 모습그대로였다.
류정구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길로 박태삼의 고향으로 찾아갔다. 장군님께서 박태삼의 일때문에 속이 타시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계신다고 자기가 체험한 일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친부모인들 그러겠는가고…
온 가정이 서로 붙안고 울었다.
박태삼도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믿어주십시오. 제 기어이 이번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제 몸이 찢겨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군사복무를 잘하고 장군님께 꼭 기쁨을 드릴 편지를 쓰겠습니다.》
…
그러나 아직 그이에게는 편지가 올라오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동생은 영웅이 되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였지만 그는 아직까지…
갑자기 승용차가 전진하지 못하고 부르릉부르릉 용을 쓰는 바람에 류정구는 소스라치며 생각에서 깨여났다.
운전사가 차를 멈추고 땀흐르는 얼굴을 돌렸다.
《장군님, 길에 얼음이 쫙 깔리였습니다.》
류정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히 앞을 내다보니 왼쪽벼랑중턱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길바닥을 뒤덮으며 온통 얼음판을 만들어놓았다. 그 얼음판우로 눈보라가 회오리치며 지나간다. 류정구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안타까이 말씀드렸다.
《장군님, 이런 얼음판은 너무 위험합니다. 가실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이 없이 앞을 내다보다가 차에서 내리시였다. 눈보라도 또 한차례 휘파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이의 솜옷자락의 세차게 펄럭이였다.
《백두산날씨같구만. 허허허. 가만, 저길 보오. 얼음때문에 길밑으로 뽑은 수채통이 막혔구만.… 우리 전사들이 넘나드는 길인데 얼음도 까고 물길도 내주고 갑시다.》
《장군님!》
류정구는 더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뒤따르던 차들이 와 멎고 수행원들이 달려왔다. 류정구는 수행원들과 함께 눈물을 삼키며 얼음을 까내기 시작했다. 곡괭이날이 얼음을 내리찍을 때마다 날이 선 쪼각들이 파편처럼 얼굴에 휘뿌려지군 했다. 가슴속에서는 박태삼에 대한 원망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아니, 그것은 박태삼이가 아니라 바로 류정구자신에 대한 원망이였다. 박태삼이가 장군님께 기쁨의 편지를 올릴수 있게 적극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이였다.
류정구는 헉헉 코김을 불며 곡팽이를 휘둘렀다. 얼음쪼각들은 류정구 자기를 타매하듯 얼굴을 때린다.
(그래, 류정구 바로 너때문에 장군님께서 이 험한 길을 가시는거야. 너는 지금껏 박태삼이가 군사복무를 잘한다고 하면서 마음을 놓고있었지. 그가 이제는 자기 궤도에 들어섰다고 만족해하면서 더는 관심을 돌리려 하지 않았지. 류정구, 너는 지금껏 장군님을 모셔오면서도 그이께서 병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직도 다는 모르고있지 않는가. 그래 얼음쪼각들아, 더 힘껏, 더 아프게 때려라, 이 류정구가 정신이 번쩍 들게…)
삽으로 얼음쪼각들을 쳐내며 물길을 내시던 장군님께서 허리를 펴시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시였다.
《이만 하면 물도 빠지고 얼음판도 생기지 않을것 같소. 자, 이젠 떠나봅시다.》
그이의 청청하신 음성은 절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일으키는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