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충 혁
《붕- 붕-》
출발을 재촉하는듯 역구내에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운찬 그 소리에 놀랐는지 장기쪽처럼 널려있던 손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정은 기적소리를 듣지 못한듯 울바자처럼 빙 둘러선 단발머리처녀돌격대원들속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중대장동지, 집에 가서 꼭… 편지하십시오. 편지를… 기다리겠습니다.…》
《중대장동지, 가도… 우릴 잊지 마십시오. 그리구 속 많이 태운 날… 용서하십시오.》
울먹이며 눈굽에 손을 가져가는 처녀들… 그들이 헤여지기 아쉬운듯 수정의 손목이며 옷자락을 부둥켜잡고 놓지 못한다.
그들모두를 정겹게 둘러보는 수정의 눈가에도 맑은 눈물이 고여있었다.
눈가위가 불그스레해진 한 처녀가 수정의 주위에 더욱 조여드는 처녀들을 떼여놓기라도 하려는듯 한걸음 내디디며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이… 자꾸 이러면… 중대장동지걸음이 가벼워지겠어요? 그러다… 렬차가 떠나겠어요. 자, 동무들…》
그래도 처녀들도 수정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물기어린 두눈을 슴벅이던 나어린 한 대원이 갸름한 얼굴에 웃음을 애써 담으며 수정의 손에 무엇인가를 꼭 쥐여주었다, 손을 펴보니 만년필이였다.
《중대장동지, 우리가 보고싶을 때마다 이걸… 보십시오. 그리고 후날 중대에 한번 꼭 오십시오, 우린 기다리겠습니다.》
서로마다 안겨주는 기념품들인 손거울이며 사진첩이며 학습장들…
수정은 목안에 매운 내굴이 꽉 들어찬듯 한 숨막힘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드디여 수정을 태운 렬차는 육중한 몸을 움씰거리며 반짝이는 레루우로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손을 흔들며 달리는 렬차와 경쟁하듯 줄달음쳐 따라오는 대원들에게 수정은 화답하며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동무들 고마워요! 언제나 동무들을 잊지 않겠어요. 새 초소에 가서도 동무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참된 인간이 되겠어요!)
1
《참, 동문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 중대장을 했지. 허허… 대단하오. 거… 생김새와는 영 딴판이로구만.》
무뚝뚝해보이던 군청년동맹위원회 일군이 호방하게 웃으며 롱조로 하는 말에 수정은 얼굴을 붉혔다.
(영 딴판이라구?! 왜 그렇게 보일가. 이 옷때문에 그럴가?)
수정은 지금 입고있는 연분홍빛의 달린옷을 이리저리 내리훑어보았다.
어머니의 지성이 담겨서인지 하늘하늘한 달린옷은 얼핏 보기에도 산뜻한감이 들었다.
(차라리 돌격대제복을 입고 올걸 그랬어.…)
수정은 몹시 아쉬워하며 고개를 들어 파견장과 문건에 눈길을 파묻고있는 일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리 돌격대 대대장동지와 모색이 이리도 신통히 비슷할가. 돌격대제복만 입으면 아마…)
문득 이런 생각이 갈마드는 바람에 수정은 절로 웃음을 나갔다.
이러는데 그 일군이 머리를 들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중대장을 하면서 일을 많이 했구만. 훈장과 메달도 많이 수여받고 또 당원의 영예도 지녔으니 동무야말로 적임자요.》
(적임자라니?)
수정은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의혹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수정에게 그 일군이 자초지종을 설명을 했다.
《우리 청년동맹위원회에서 지도원으로 사업하던 한 동무가 상급단위로 소환됐소. 그래서… 손탁두 세구 정치적실무수준도 높은 그런 동무가 왔으면 했는데… 허허, 동무가 왔구만. 난 동무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오. 어떻소?》
이미전부터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은듯 흰목을 뽑으며 다그쳐묻는 그의 물음에 수정은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는 수정의 심중을 들여다본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의 앞으로 다가왔다.
《좋소! 그럼 잘 생각해보오.
나두 오늘 위원회의 책임일군들과 토론해보겠소. 그러니 래일 아침 10시까지 늦지 말고 여기에 도착하오.》
인심좋게 웃으며 약속이라도 하듯 수정에게 단단히 일러둔 그는 수정을 친절히 정문앞에까지 바래주었다. 이미 서산마루로 기울어진 해는 마지막잔광을 뿌리며 거리에 나선 수정의 등을 애무하듯 따뜻이 어루만지고있었다.
2
벌써 8시 30분이였다.
수정은 몇번이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는지 모른다.
바재이는 마음이 촉박해질수록 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그의 다기찬 발길에 채워 누렇게 황이 든 가랑잎들이 바람에 날리듯 오솔길우에서 나딩굴었다.
그렇게 나딩구는 나무잎새들처럼 생각은 번거롭게 갈마들었다.
읍농장과 림산사업소를 거쳐 텔레비죤중계탑까지 20리가 넘는 길을 갔다오느라면 오전중에 군청년동맹위원회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지름길을 타고 가둑나무며 싸리, 칡넝쿨을 걷어차며 헐금헐금 산을 톺아오르는 수정의 얼굴로는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렸다.
《그러니 래일 아침 10시까지 늦지 말고 여기에 도착하오.》
어제 만났던 일군의 말이 귀전에 매달려 떨어질줄 몰랐다. 스스로 택한 길이였지만 어쩐지 군청년동맹위원회로 갈수 없다는 아쉬움과 불안은 가슴 한쪽구석에 남아 수정의 마음을 공허하게 해주고있었던것이다.
어디선가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점점 더 증폭되는 소리 찰칵, 찰칵.…
《어머나?!》
초침소리에 쫓기듯 다급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수정은 별안간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 넘어지고말았다. 그 바람에 어깨에 멨던 우편통신원가방이 맥없이 풀섶우에 떨어졌다.
옷을 털고 일어나 발부리를 내려다보니 자그마한 나무그루터기가 비웃는듯이 수정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이 나갔다.
아마 어제저녁일만 아니였더라면 수정은 지금쯤 돌격대제복을 입고 거울앞에 서있었을것이다.…
×
군청년동맹위원회에서 돌아왔을 때만 해도 황혼이 깃들었던 창문가에는 어느덧 어둠이 비끼였다.
(어머닌 왜 아직 안 올가?)
어둠이 비낀 창문가에서 서성이며 초조하게 어머니를 기다리는 수정은 조바심으로 하여 마음이 기름심지타듯 했다.
다시금 벽시계를 바라보니 시침은 어느새 9시를 넘어서고있었다.
(혹시…)
시름시름 고여오르던 불안이 끝내 마음속 안정의 뚝을 허물어버렸다.
수정은 심상치 않은 근심에 사로접혀 서둘러 출입문쪽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금방 문밖을 나서려는데 귀에 익은 인기척소리가 들려오더니 덜컥 문이 열려졌다.
《어머니, 왜 이제야 오세요?》
수정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원망이라도 하는듯 민망스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디 들렸다 오느라고 늦었다. 네 일은 어떻게 됐니?》
어머니는 이제껏 수정의 가슴속에 그득히 고여있던 근심을 덜어주기라도 하려는듯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군청년동맹에서 사업하라더군요. 그래서 좀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래?!》
수정의 대답에 어머니는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를 뒤따르던 수정이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니,다린 왜 그러세요?》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왼심을 쓰는 어머니의 행동이 눈에 헨둥하게 알렸던것이다.
《오다가 발목이 시그러졌는데… 이젠 일없다.》
태연스레 하는 어머니의 말에 수정은 가슴이 섬찍하여 머리칼이 쭈빗하게 일어설 지경이였다.
어머니의 대답이 저정도이면 상처는 불보듯 뻔했다.
《어디 좀 보자요.》
수정은 황황히 어머니를 부축하여 방안에 들어섰다. 어머니를 조심히 의자에 앉히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려보니 상처는 수정이가 예견했던 그대로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네, 어머니.》
수정이가 어성을 높이며 안타까이 물었건만 어머니는 별일이 아니라는듯 빙그레 웃으며 아무말도 없었다.
그러는 어머니를 마주보느라니 수정은 마음이 더욱 아파났다.
《어머니, 이젠 년세도 많으신데… 집에 들어오세요, 네?》
근심어린 어조로 간청하다싶이 하는 수정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흔연스레 입을 열었다.
《글쎄… 소장동지두 그렇게 말한다만… 난 싫다.》
고집스러운 느낌이 드는 어머니의 음성이였다.
수정은 어머니의 두손을 꼭 부둥켜잡았다.
《어머니, 물론 난 어머니의 마음을 다 알아요. 하지만 이젠 어차피 집에 들어오셔야 하지 않나요.》
《됐다, 수정아.》
왜서인지 어머니는 수정의 말허리를 끊으며 손을 뽑아들었다.
《…》
수정은 반백이 된 어머니를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말이 없어서인지 퍼그나 과묵해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오늘따라 더 겉늙어보였다.
(어머니, 어머닌 왜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주세요. 누구든 어머닐 대신하면 될게 아니예요. 어머니야 우편통신원으로 순직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한생을 하루같이 살아오지 않았어요.
난 무엇때문에 고집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생각에서 깨여난 수정은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어제일을 생각하니 불시에 마음이 허전해져 걸음도 연덩이를 매단듯이 점점 무거워지기만 했다.
3
오솔길을 지나 읍농장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둔덕길에 들어서는데 파란 머리수건을 어깨에 사뿐히 드리운 처녀가 춤추듯 앞에서 걸어가고있었다.
《동무-》
처녀를 불러세운 수정은 반듯한 이마에 내돋힌 땀방울들을 훔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한가지 좀 물어보자요. 여기 출판물보급원을 만나자면 어디로 가야 해요?》
얼굴이 반주그레한 처녀는 수정의 어깨에 메여진 우편통신원가방을 살짝 곁눈질해보고는 인츰 삽삽한 웃음을 지으며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이자 관리위원회앞에서 선동원동무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는데… 지금두 거기에 있을거예요. 관리위원회는 저-쪽이예요.》
처녀의 붓끝같은 손가락이 문화주택들의 맞은켠에 자리잡고있는 2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고마워요.》
수정은 살뜰하게 처녀와 인사를 나눈 다음 관리위원회쪽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할가. 보급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볼가.)
초조하게 기다리고있을 청년동맹위원회일군의 모습이 또다시 눈앞에 불쑥 떠오르며 바재이는 수정의 가슴속에 연방 키질을 해댔다.
조급한 마음이 앞서 잰걸음을 놓던 수정은 관리위원회앞에서 주의깊은 시선을 자기에게서 떼지 않고있는 한 녀인의 눈길을 은연중에 감촉했다.
(혹시 보급원이 아닐가?)
이런 생각에 걸음을 멈추는데 아니나다를가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은 녀인이 자석에 끌려오기라도 하는듯 수정의 앞으로 반달음쳐왔다.
《통신원동무지요? 글쎄 그렇다니까. 난 가방을 보구 대뜸 알아봤어요. 내 여기 출판물보급원이예요. 헌데 오늘은 어떻게 송어머니가 오시지 않구 새 통신원동무가 왔을가?》
반가운 눈빛을 한 녀인은 마치 구면처럼 수정의 손을 담쑥 잡으며 스스럼없이 물었다.
《발목을 상해서… 제가 대신 왔어요.》
수정은 그의 두손에 손을 맡겨둔채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대답했다.
출판물보급원은 그늘진 수정의 얼굴표정에서 다리를 상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본듯 삽시에 두눈이 접시처럼 둥그래졌다.
《에구머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담. 심하게 다쳤는가요?》
《아니, 그저… 접질렀는데 이젠 년세가 많다나니…》
《정말 큰일날번 했구만요.》
천만다행이라는듯 그는 긴장으로 굳어졌던 몸매를 헝클며 안도의 숨을 몰아쉬였다.
그러는 출판물보급원을 정겹게 바라보는 수정의 가슴속에는 그에 대한 살뜰한 정이 맑은 샘처럼 퐁퐁 솟구쳐올랐다.
(보급원에게 시간이 있을가? 이제라도 돌아서면 늦지 않을텐데…)
4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구만요.
나두 오늘 림산사업소에 갔다올 일이 있었는데 마침이예요. 신문을 주세요. 내 출판물을 보급한 다음 인차 갔다오겠어요.》
수정은 선뜻 응해나서는 출판물보급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고마워요. 그런데 길이 멀어서…》
미안한 마음에 말끝을 흐리는 수정에게서 신문을 받아들던 출판물보급원이 웃음을 지었다.
《아- 멀다니요?!
송어머니는 30년을 하루같이 다녔는데… 하루쯤이야 뭘…》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앞가슴에 깊은 숨을 담았다.
《송어머닌 정말 쉽지 않아요. 한생을 하루같이 산다는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예요? 난 송어머니를 보면서 많은걸 생각하게 돼요.》
혼자소리처럼 조용히 뇌이는 그의 말에 수정은 눈굽이 달아올랐다.
출판물보급원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긍지가 새삼스럽게 흉벽을 두드리며 가슴그득히 차오르고있었던것이다.
(그래, 어머닌 한생을 하루같이 살아왔지.)
출판물보급원과 헤여져 군청년동맹위원회로 향하는 수정의 눈앞에는 아득히 흘러간 유년시절의 추억이 어제일처럼 방불하게펼쳐지고있었다.
×
수정은 두눈을 꼭 감은채 억지로 잠을 청하느라 속으로 셈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랬건만 이전에는 그렇게도 쉽게 찾아오군 하던 꿈나라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셈세기를 할수록 반짝 두눈을 뜨고싶은 생각만 간절해졌다.
《엄마, 엄마, 잠들었나?》
수정은 어머니에게로 몸을 반쯤 돌리고 응석이라도 부리듯 어리광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정아, 래일 아침 학교에 늦지 않겠거들랑 어서 자거라.》
나무람하는듯 한 어머니의 말에도 수정은 몸을 뒤채이며 또다시 속삭였다.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래요. 엄마두 다 알면서… 난 래일 소년단에 입단하지 않나요. 붉은넥타일 맨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수정은 자기의 들뜬 마음을 알아주려 하지 않는 어머니가 참으로 야속했다.
《엄마, 나 래일 엄마가 붉은 넥타일 매주렴, 응?》
《수정아, 어머니가 못 간다는걸 잘 알지 않니.》
《그래두 이번만은 꼭… 다른 애들은 어머니가 다 온다고 했어요.》
수정은 래일 입으라고 어머니가 정성껏 다려놓은 교복을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정말 못 오나? 엄마…》
설마하여 또다시 묻는 딸애의 속내를 일일이 읽은듯 어머니는 수정을 정깊게 바라보다가 살며시 껴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어루쓰다듬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조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정은 어머니가 여느때없이 옛말이라도 들려주는가싶어 두눈을 반짝이며 귀를 강구었다.
《래일 우리 수정인 소년단원이 되지? 그러니 이젠 어른이 다됐구나.
수정아, 어머니가 신문이랑 편지랑 가지고 공장에 찾아가면 사람들은 막 기뻐한단다. 그건 바로 어머니가 가져가는 신문에 우리 장군님 소식이 실려있기때문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신문을 통해서 장군님의 영상을 뵈옵게 되고 그러면 마음속으로 일들을 더 잘하겠다고 결의도 다진단다.
그리고 또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서 일어나는 희한한 소식들도 알게 되고 이름난 과학자나 혁신자들과도 만나본단다.
그런데 엄마가 수정이때문에 늦어지면 숱한 사람들이 엄말 얼마나 기다리겠니, 응?
아마 어머니가 못 가도 선생님들이 우리 수정이에게 붉은넥타이를 매줄거야.
수정아, 이래두 엄마가 꼭 와야겠니?》
그제서야 수정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 부드러운 체취를 한껏 들이키며 스스로 두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변함없이 그 길을 떠나갔다.
학교에 간 수정의 얼굴에도 늘 그랬던것처럼 기쁨과 행복이 한껏 어려있었다.
소년단에 입단하는 수정이를 축하하여 리당비서가 붉은넥타이를 매여주었고 선생님들이, 상급생들이 소년단원이 된 수정이를 축복해주었다.…
수정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수정은 금방 자기가 걸어온 길을 음미라도 하듯 뒤를 돌아다보았다.
숲속으로 우불구불하게 뻗어져나간 작은 오솔길, 우리 나라 그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산골길이였다.
수정은 지금 그 길우에서 어머니가 오랜 세월 사심없이 찍어놓은 무수한 발자욱들을 보고있었다.
(내가 왜 돌아섰을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떠났다는 내가…)
어머니가 걸은 순결한 길우에, 어머니의 긍지가 어린 발자취우에 오점이라도 찍어놓은듯 한 느낌에 수정은 뒤걸음을 쳤다.
만약 신문이 제때에 가닿지 못한다면…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쳐들어 수정은 한방망이 얻어맞은듯 흠칫 몸을 떨었다.
(오늘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담.)
수정은 걸음을 되돌려 다급히 읍농장으로 내달렸다.
5
《에이구… 송어머니가 신문을 가져갔어요.》
《네?! 우리 어머니가 왔댔어요?》
출판물보급원의 말을 꿈속에서 듣기라도 한듯 수정은 깜짝 놀라며 자기 귀를 의심했다.
발목을 상한 어머니가 어떻게 10리가 넘는 이곳까지 온단 말인가?!
입안이 가랑잎처럼 바싹 말라들고 목안이 불덩이를 삼킨듯 타들어왔다.
《군당에 갔던 리당비서동지가 어머니와 함께 왔더구만요. 송어머닌 오자바람으로 날 찾더니 우리 수정이가 왔댔는가고 물었어요.
사연을 들은 어머닌 아무말 없이 신문을 가지고 림산사업소로 떠나더군요. 그만큼 못 간다구 말렸는데두…》
출판물보급원은 이렇게 말하며 자기에 대한 불만감때문인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머니가 림산사업소로 가다니…)
수정은 락심천만하여 딛고선 땅이 금시에 허물어지며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지팽이에 의지하여 가까스로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리며 수정의 가슴을 허비여놓았다.
수정은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림산사업소로 떠났다.
종주먹을 쥐고 앞을 살피며 줄곧 뛰여가는 수정은 발이 땅에 닿는지 감촉하지도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마음만 앞설뿐 걸음은 자꾸만 더디여져 벌써 몇번째나 풀대에 걸려 넘어질번 했다.
(어머니, 절… 절 용서하세요.)
산기슭 오솔길을 따라 허둥대며 내달리는 수정은 안개속을 헤치는듯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왔다.
일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
《어머니, 불편한 그 몸으로 왕복 40리길을 어떻게 가신다고 그래요. 어머니가 가시면 내 맘이 편할것 같애요. 내가 가서 련락하겠으니 어머닌 오늘 좀 쉬세요. 네?》
《늘 다니던 길이여서 일없다. 내 쉬염쉬염 갔다오마.》
나직한 어머니의 음성에는 수정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이 들어있는듯 했다.
그러나 수정은 다시금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정 가시겠다면 어머닐 대신해서 내가 가겠어요.》
그랬건만 어머니는 가볍게 웃어보이며 오히려 수정을 설복하려들었다.
《수정아, 넌 오늘 군에 가야 하지 않니. 내 정 힘들면 리당비서동지의 도움을 받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끝내 어머니를 붙잡지 못한 수정은 시간이 갈수록 덧쌓이는 불안과 자신에 대한 원망감으로 하여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더는 지체할수 없었다.
신문을 받아가지고 나서는 어머니에게서 빼앗다싶이 가방을 손에 든 수정은 그다음 어떻게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한가지 생각나는게 있다면 어머니를 대신하여 자기가 꼭 가야 한다는 그것뿐이였다.…
이제는 퍼그나 왔건만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림산사업소를 가까이했을 때도 역시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왜 안 보일가? 혹시 길이 어긋났을가. 아니, 그럴수 없겠는데…)
방향없이 가지를 치는 근심속에 걸음을 더듬던 수정은 혹시나 하여 림산사업소 정문앞으로 다가갔다.
《그게… 수정이 아니냐?》
돌아보니 뜻밖에도 리당비서였다.
《리당비서동지…》
수정은 이런 때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는 리당비서를 만나게 된것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못 본체 하고 지나가서 날 다 잊어버린줄 알았다, 허허… 저 땀 좀 보지. 이걸루 닦아라.》
리당비서가 내주는 손수건을 받아들 때에야 수정은 비로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음을 느꼈다.
《저… 우리 어머닐 못 봤습니까?》
수정은 땀을 씻을념도 않은채 리당비서의 두툼한 입술을 긴장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런 물음이 나올줄 알았다는듯 그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떠돌았다.
《어머니말이냐? 허허… 내가 함께 왔다. 고집이 얼마나 쎈지 기어코 자기가 가겠다고 하더구나. 헛참, 쉽지 않아…
내 그래서 어미소 따라가는 송아지처럼 예까지 왔구나.》
기쁘거나 흥겨울 때면 익살을 곧잘 부리군 하는 리당비서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수정은 눈굽이 쩌릿해졌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수정은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다 큰 처녀가 울다니…
붉은넥타이를 매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도 빠르구나.
올핸 어떻게 하나 수정이 국수를 먹어야겠는데… 가만, 혹시 림산사업소에 따로 봐둔 총각이 있는게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여기에 불쑥 나타났니?》
우정 모르쇠를 하며 엉뚱하게 들이대는 질문에 수정은 언제 울었던가싶게 촉촉히 젖어든 눈가에 웃음꽃을 피워올렸다.
《비서동지두 참…》
눈물을 보인것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힌 수정은 엉겁결에 리당비서곁에 세워진 자전거에 눈길이 미쳐졌다.
《비서동지, 중계탑엔 제가 가겠으니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허허… 어머니대신 가겠단 말이지. 헌데 네 어머니성미에 그렇게 하겠는지 원, 어쨌든 말은 해보겠다만 내 생각엔 너의 어머니가 쉽게 돌아설것 같지 않구나.》
웃으며 하는 리당비서의 말에 수정의 얼굴에서는 차츰 웃음이 사라져갔다.
《어머닌 년세도 많으신데 발목까지 다쳤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왜 그러시는지… 난 정말… 모르겠어요.》
눈길을 떨어뜨린 수정이가 조용히 한숨을 내그었다.
리당비서는 수심에 잠겨 그림처럼 굳어진 수정을 바라보며 공감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수정인 모를수도 있지.
수정아, 너의 어머니가 변함없이 이 길을 가는데는 그럴만 한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단다.
사실 나도 처음엔 우편통신원이 되겠다고 찾아온 네 어머니를 지금의 너처럼 리해할수 없었다.
그저… 순직한 남편의 뒤를 이으려는 일시적인 충동인가싶었지. 그래서 말해주었다. 녀성의 몸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드팀없이 20리가 넘는 길을 오고간다는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너의 어머닌 벌써 군당에 들렸댔다고 왕청같은 대답만 하더구나. 허참…
나중에야 가슴뜨거운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단다.
바로 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먼 산발들에 눈길을 보낸채 이야기하는 리당비서의 석쉼한 목소리는 수정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수정의 눈에 새겨진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빙그레 웃는 웅심깊은 모습이였다.
수정은 리당비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없이 푸른 하늘가를 점도록 바라보았다. 마치 20여년전의 그날을 그려보기라도 하려는듯이…
×
누가 말했던가, 저 매령산에서 큰 눈사태가 예견된다고.
가슴이 철렁했다.
매령산에 있는 텔레비죤중계탑으로 남편이 떠나지 않았던가.
이대로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는 남편이 떠난 곳으로 찾아 떠났다.
쉴새없이 들이닥치는 눈보라, 눈보라가 앞을 막았다.
《수정이 아버지-》
허나 목소리는 우우- 소리를 내며 기승을 부리는 눈바람에 휘날리여 멀리까지 전해지지 못했다.
안타까움이 북받쳤다.
(수정이 아버지, 어디 있나요? 그만큼 가시지 말랬는데…)
불현듯 빙그레 웃으며 문밖을 나서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보, 너무 걱정마오. 폭설이 아니라 설사 땅이 꺼졌다 해도 난 가야 하오!》
이렇게 말하며 떠난 남편이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지…
맵짠 눈바람에 숨이 꺽꺽 막혔고 무릎을 치는 눈은 길을 잃게 했다.
중계탑을 목표로 삼고 걸어야만 했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온통 호곡하는 눈보라에 눈앞이 새뽀얀데 문득 산기슭 후미진 곳에서 움직이는 그 무엇이 안겨들었다. 순간 기쁨이 솟구쳤다.
《수정이 아버지!》
《아니, 당신이?!》
《무사했군요. 그런걸 난… 매령산에 눈사태가 예견된다기에… 당신이 걱정됐어요.》
《허허… 당신두 참, 괜한 걱정을 했구만. 자, 어서 가기요.》
머리카락이며 눈섭이며 옷자락이 모두 허연 눈으로 변한 남편이 빨갛게 얼어든 손을 감싸주며 힘들어할세라 손잡아 이끌어주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눈을 헤치며 걷느라니 그렇게 기세차던 눈보라도 뜸해지는듯 했다.
《여보, 내가 어떻게 돼서 우편통신원이 됐는지 아오? 군사복무시절에 말이요. 내가 처음으로 기통수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던 날 우리 정치지도원동지는 나에게 삶의 리정표로 될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글쎄 어은동에서 군사야영생활을 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정이 깊도록 도착하지 않는 기통수를 기다리시며 온밤을 뜬눈으로 새우셨다는게 아니겠소.
기통수가 가져오게 될 당보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셨으면 새벽 4시가 넘도록 쉬지 않으시고 억수로 퍼붓는 소낙비도 아랑곳없이 오래도록 보초소에 서계셨겠소.
마침내 기통수가 돌아왔을 때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시면서 비오는 밤길에 수고가 많았다고, 식당에 따끈한 밥과 국을 마련해놓았으니 어서 식사하라고,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릴수 있으니 이불을 푹 쓰고 자라고 다심한 어머니사랑으로 따뜻히 보살펴주셨다는것이였소.
그러시며 기통수와 우편통신원들은 당의 목소리를 사람들의 심장마다에 전달해주는 당정책의 선전자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는것이였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정말 눈굽이 뜨거워지는것을 어쩔수가 없더구만. 그때 난 결심했소. 매일 매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 당보를 드리는 충정의 마음으로 한생을 살리라고 말이요.
이렇게 돼서 제대된 후에도 난 우편통신원이 되였던거요.》
가슴이 후더워졌다.
흰눈처럼 깨끗하고 순결한 남편의 정신세계가 가슴속에 안겨졌다.
(수정이 아버지, 나도 한생을 당신처럼 살겠어요!…)
리당비서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수정의 눈가에서는 맑은 눈물이 반짝이고있었다.
부모들에 대해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는듯, 여직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절정과도 같은 그런 고결한것을 페부로 받아안은듯 수정은 이름할수 없는 감격에 휩싸여 눈물을 머금었다.
(어머니, 오늘에야 난 알았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였고 또 어떻게 되여 이어왔는지…)
6
어머니가 구내길을 따라 한 청년과 함께 걸어오고있었다.
(어머니!…)
수정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어머니앞으로 달음쳐갔다.
수정을 띄여본 어머니는 그 자리에 바위처럼 굳어졌고 곁에 있던 고수머리청년도 그 바람에 두눈을 껌뻑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네가 어떻게…》
《…》
아무말없이 옷자락만 매만지는 수정의 손이 알릴듯말듯 떨리고있었다.
말 못하는 수정을 대변이라도 하려는듯 리당비서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송동무, 수정이가 동무를 대신해서 중계탑에 가겠다누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니 물러나는게 좋겠소.》
어머니는 그윽한 눈길로 수정을 바라보며 가볍게 나무람했다.
《원 애두, 난 일없다. 이렇게 끌끌한 제대군인동무까지 곁에 있지 않니.》
어머니의 그 말에 고수머리청년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벌쭉벌쭉 웃으며 버릇처럼 코등을 문질렀다.
그러는 청년을 유심히 쳐다보던 리당비서도 입가에 흡족한 웃음을 실었다.
《허허… 송동무가 대들보같은 사위감을 골랐구만. 헌데 이걸 어쩐다?! 수정이와 약속한것이 있는데… 할수 없지. 임자는 돌아가라구.》
어머니를 부축하고있던 청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듯 두눈을 흡뜨며 풀먹인 빨래처럼 뻣뻣해졌다.
《돌아가다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전 못갑니다.》
수정은 물론 리당비서도 덴겁하여 소리치는 그의 태도가 가늠이 가지 않아 그에게 이상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거나말거나 청년은 볼부은 소리로 짐짓 목청을 높이였다.
《전 우리 당비서동지에게서 송어머니를 잘 모시고 가라는 특별과업을 받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입니까? 더우기 송어머니를 돕는건 응당한 일인데…》
벼랑끝에라도 선듯 한치도 양보하지 않을 청년의 불같은 기상에 리당비서는 껄껄 소리내여 웃으며 수정을 돌아보았다.
중뿔나게 나서는 그가 싫지 않은지 수정의 눈에도 잔웃음이 줄달음치고있었다.
《송동무.》
리당비서가 어머니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제 그 몸으로 중계탑에 언제 가겠소?
아무리 저 동무가 곁에 있다 해도 아마 수정이가 가는것보단 못할거요. 길이 험하니 자전거로도 갈수 없는거고… 신문이야 제때에 가야 하지 않소. 그러니 수정이를 함께 보냅시다.》
어머니는 믿음과 기대가 듬뿍 어린 눈빛으로 수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걸음은 선뜻 떼지 못했다.
(어머니가 왜 그러실가? 혹시 날…)
수정은 조바심에 찬 눈길로 어머니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잠시 망설이는듯 하던 어머니가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이보게, 우리 수정이와 함께 가게나.》
《네?!》
놀란것은 그 청년이 아니라 수정이였다.
7
실토리를 풀어놓은듯 한 오솔길의 주위는 어디를 보나 신록이 우거져있었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은 여느때없이 푸르러보이고 날씨 또한 유난히 화창하여 걸음도 마음도 저절로 흥겨워진 수정이였다.
수정은 좀전처럼 아예 말문을 닫고있는 고수머리청년을 흘깃 곁눈질해보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여나왔다.
떠날 때 《어머니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좀… 별나게 됐는데》하며 멋적어하던 청년은 몇걸음안팎에 《난 지금 휴가중이요.》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꺼내였다. 그런데 응대를 하지 않자 화가 동한듯 그는 입에 단단히 빗장을 질러놓았던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저… 이자 보니 우리 어머니와 무척 각별하던데…》
수정이가 말꼭지를 떼기 바쁘게 그가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그 정도일게 뭐요. 어머니와 난 그이상의 관계요.》
거침없이 하는 그의 말은 수정이로 하여금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참으로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청년이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올줄이야.…
수정은 그 이야기에 심취되고말았다.
《병사생활의 첫걸음을 떼던 난 오중흡7련대쟁취운동을 위한 보람찬 나날 군공메달을 받게 되였소. 그때 얼마나 기쁘던지…
난 고향의 부모님들에게 하루빨리 이 소식을 전하고싶어서 펜을 들었소.
얼마후 회답편지가 왔는데 겉봉을 보니 뜻밖에도 부모님들이 보낸 편지가 아니였소. 얼굴도 모르는 어느 고마운 어머니가 휴양을 떠난 우리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보낸 편지였소.
편지에는 우리 부모님들이 당의 크나큰 은정속에 휴양을 하고있다는것과 부모님들이 도착하면 즉시 편지를 전달하겠으니 그동안 군사복무를 잘하라는 간곡한 당부가 적혀있었소.
글줄마다 회답을 기다릴 나를 위해 마음쓴 어머니의 뜨거운 지성이 력력히 어려있더구만.
비록 부모님들에게서 온 편지는 아니였지만 그에 못지 않게 기쁘고 힘이 되였소.
그때부터 군사복무 전기간 송어머니는 내게 편지를 보내왔소. 송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난 날마다 변이 나는 내 조국의 벅찬 현실을 더 잘 알게 되였고 고향과 부모님들, 교정의 선생님들에 대한 소식도 전해듣게 되였소.
정말이지 그 편지들은 나에게 있어서 힘과 용기를 샘솟게 하는 샘줄기와도 같은거였소.
난 제대되여 돌아와서야 송어머니를 만나게 되였소. 그때의 감정이란 참… 그후에도 송어머닌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제대군인모두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소. 그래서 우린 송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르고있소.》
그의 목소리는 수정의 가슴속에 울려퍼지며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수정은 어머니의 길이 어떻게 시작되였으며 그 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심장으로 다시금 절감했다.
끝없이 뻗어나가며 나지막한 고개를 기여넘고 산굽이들을 우불구불 감돌아서 저기 먼 산골짜기의 검푸른 그림자속으로 이어져간 길!
부모들의 한생이 어려있는 그 길우에 따사로운 해빛이 비쳐지고있었다.
텔레비죤중계탑이 보였다.
이제 저기에 가면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있겠는지…
수정은 걸음을 다그쳤다. 비단 어머니만을 위해서가 아닌 부모들의 발자취가 어린 이 길을 끝까지 이어가려는 심장의 분출과도 같은 걸음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