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정 원 길
늦겨울의 저녁해빛이 어느덧 사그라지고 방안에는 환한 전등불이 켜졌다.
얼굴이 둥실한 학부장이 교원실안으로 들어왔다. 무척 흥분한 기색이였다.
항상 수백의 눈동자들이 자기를 지켜본다는 의식속에 말과 행동을 침착하고 진중하게 해오는데 습관된 학부장이였다. 헌데 지금은 얼마나 흥분되였던지 살결이 흰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하였다.
《올해에 우리 학부에 또 보배덩이가 날아들었소.》
이렇게 웨치듯 말한 그는 책상우에다 두툼한 시험지묶음들을 주르르 펼쳐놓았다.
《자, 보오. 모든 과목이 다 최고점수요!》
교원들이 일시에 다가와 시험지들에 눈길을 주었다.
필체로 보아 한 학생의것이 분명한 시험지우에 커다랗게 매겨놓은 점수들이 확 안겨왔다.
수학 5, 물리 5, 문학 4.7, 외국어 4.8…
감탄이 연방 터져나왔다.
《정말 비상한 수재군요.》
《이만한 성적이면 경쟁자없는 1등입학생이 되겠구만.》
《우리 학부가 유망한 수재를 받게 되는게 아니요?》
앞가슴에 팔을 엇지르고 교원들의 반응을 흡족하게 보고있던 학부장이 시험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점수만 보지 말고 시험지들을 더 구체적으로 보시오. 글자는 얼마나 또박또박 정확히 썼는가, 글줄들은 또 얼마나 곧바른가, 그리고 문장끝에는 빠짐없이 종지부호를 다 쳤소.
이걸 보면 이 학생은 이만한 정도의 문제를 푸는데는 아무런 당황함도 조급성도 없이 아주 여유있게 풀어낼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것이 알리오. 아마 더 높은 급의 문제를 내도 이 학생은 해낼거요.
이런 훌륭한 수재가 우리 학부를 지망해왔으니 이게 얼마나 큰 횡재요.》
흥분을 누르지 못하며 그답지 않게 기쁨에 넘친 말을 길게 늘어놓던 학부장은 갑자기 말을 끊고 학부부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니 선생, 알겠지요. 이 학생을 다른데 떼우지 않도록 각성을 높여야겠소. 생각나오?》
학부부원이 의미있게 웃으며 제꺽 응수했다.
《그럼요. 이런 보배덩이를 떼워서야 안되지요. 철저히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래야겠소.》
그들은 서로 의미있게 마주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이제는 10여년전의 일을 념두에 두고있는것이여서 지금 여기에 있는 교원들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도 입학시험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들은 기계학부에 성적이 아주 뛰여난 수재가 수험생으로 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학부장과 학부부원은 남모르게 그 학생을 끌어오기 위한 사업을 벌렸다. 그들은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체신부문의 휘황한 앞날에 대하여 화려하게 펼쳐보이였다.
그들의 끈질긴 설복에 의하여 마침내 학생은 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자기의 지망을 체신학부로 돌리였던것이다.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된 기계학부장이 얼마나 찌뿌둥한 얼굴로 체신학부를 대했는지 모른다.
그후 높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도 뛰여난 실력을 보여 30대에 벌써 체신성산하의 어느 중요기술단위 책임자의 중임을 지니고 나라의 체신현대화에 크게 기여하고있다. 우리 식의 손전화기 기술도입이 바로 그의 연구소에서 완성되였다.
이런 나라의 대들보가 될 보배가 제발로 찾아왔으니 이거야말로 학부의 경사이다.
《내가 그 학생을 바싹 따라다니며 딴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고 누가 그를 꼬드기지도 못하게 단단히 감시하겠으니 걱정마십시오. 하긴 래일 오전 인민체력검정만 치르면 시험일정이 다 끝나니 이제야 별다른 일이 생길 겨를도 없을텐데 안심해도 될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오? 저쪽에서 복수전을 어떤 높은 수로 하겠는지. 좌우간 바싹 긴장하오. 허허…》
학부장은 턱으로 옆을 가리키며 능청스레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교원들이 그들을 호기심에 가득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
이틀이 지났다. 수험생들에 대한 총평이 끝난 저녁이였다.
학부장방으로 학부부원이 들어왔다. 활기가 없고 시무룩한 기색이였다. 그 거동으로 보아 사태는 뻔히 알렸다. 하지만 학부장은 묻지 않을수 없었다.
《종내 소식이 없소?》
《예, 기숙사에 가서 알아보았는데 그 학생은 어제 아침식사를 하고 나간 후로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학부부원은 흥심없이 대답하며 씁쓸한 기색으로 한옆의 의자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무거운 기분에 눌린 탄식이 학부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허 참,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군. 내 교육사업 30년에 이런 일은 처음이요.
기본과목성적을 그렇게 높이 올린 학생이 시험을 중둥무이해버리다니. 참 모를 일이요. 도대체 어떻게 된걸가?》
학부장이 미간을 찌프리고 어느새 어두워진 창문에 줄곧 눈길을 준채 책상을 간단없이 두드리는 소리가 안타까운 마음의 타전음처럼 방안을 울렸다.
이 사실을 두고 그들이 똑같이 떠올린것은 사고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였다. 허나 인차 그 생각을 부정해버리였다. 기숙사에서 여기 대학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분길이다. 도중에 자동차가 붐비는 큰 거리도 없고 조용한 강변길을 따라 꼿꼿이 걸어오면 되는데 무슨 사고가 날데 있으랴.
그렇다면… 생각해볼수록 아무것도 없는 빈화면만이 자꾸 흘러갈뿐이다.
한참만에 학부부원이 조심스레 말을 비쳤다.
《저, 혹시 그 학생이 자기 신체에 어떤 부족점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앞에 드러내놓기 싫어서 체력검정을 포기한게 아닐가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우리 그 학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소.
지금까지 그가 제발로 대학에 와서 시험을 뛰여나게 잘 친걸 보면 신체상 결함이 있다 해도 그리 큰것은 아니겠는데 그만한것쯤 이겨낼 자신심과 배짱, 의지가 없다면 그는 수재일지는 몰라도 나라의 인재는 될수 없을거요. 우린 종종 보지 않았소, 머리는 뛰여나게 좋아도 의지가 약하고 소심하여 종내 인재의 역할을 못하고마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요.》
《그를 추천한 학교에다 그 학생의 구체적인 사연을 좀 알아볼가요?》
《글쎄… 그럴 필요도 있을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이젠 랑패요. 그거 규률을 어긴데다 체력검정도 받지 않았으니 총평점수를 어떻게 받겠소. 입학자격은 명백히 상실이요. 허참…
그 강철식학생의 집이 어디라고 했던가?》
《자강도 초산군입니다.》
《산골이구만. 그 산골에서 인재가 날수도 있었는데… 참 아쉽소.》
×
산간지대에도 봄계절은 어쩔수 없어 이제는 한낮의 해빛이 따뜻하였다.
분조원들이 잔등을 따스하게 해주는 해빛을 함뿍 받으며 모판관리에 여념이 없는데 뜻밖에도 중학교교장이 다가왔다.
《오, 철식이 너 수고하는구나.》
꼿꼿하게 키가 큰 철식이가 삽자루를 쥔채 굽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넌 며칠 더 있다가 일해도 되겠는데 벌써 일을 시작했구나. 역시 달라.》
한참동안이나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던 교장의 눈빛이 왜서인지 엄해졌다.
《그런데 너 대학시험치러 가서 어쨌다구? 말을 해봐라.》
그 눈길에 찔려 철식은 몸둘바를 모르고 고개를 외로 꼰채 공연히 삽자루만 이손저손 옮기였다.
분조원들의 눈길이 일시에 철식에게 쏠렸다.
《허… 그러니 너 아직 말할 차비가 아니구나. 그럼 할수 없지. 내가 말을 해야지.》
교장은 손에 쥔 봉투를 내들었다.
《자, 모두 보시오. 우리 철식이가 대학입학시험을 치러 가서 무슨 일을 쳤는가 보오. 대학에서 보내온 편지요.》
분조원들이 욱 몰려와 편지우에 머리를 모두었다.
《…강철식학생의 소행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사연을 설명하기보다 병원의 의사선생이 대학당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그대로 보내는것이 더 좋을거 같아서 함께 보냅니다.
…
시험도 그렇지만 우리 지식인들의 매일, 매시각의 생활은 바로 그가 나라의 인재가 될수 있는가, 또 인재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식학생은 실지 생활로 대답하였습니다.
벌써부터 높은 지식에다 사회와 집단에 대한 헌신성을 온몸에 다져놓은 이 학생이야말로 앞으로 강성국가건설에 쓸모있는 인재가 될수 있을것입니다. 그래서 대학당위원회에서는 철식학생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면서 교무행정과 합의하고 그에게 대학입학자격을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니 4월 1일 개교식에 늦지 않도록 준비시켜 보내주십시오.
주체101년 3월 23일 학부장 김선국》
분조원들은 급히 또 하나의 속지를 펼쳤다.
《××대학당위원회 앞
…
저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귀중히 여기는 공민의 한사람으로서 이 사실을 알리는것을 의무로 생각합니다.
강철식학생은 희생을 무릅쓰고 물에 빠진 4명의 어린이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신한채로 우리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3일만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그사이 시험기일이 다 지나간것을 알고 못내 아쉬워하였으며 시험을 다 치지 못한것으로 하여 자기는 입학자격을 받기는 틀렸다고 하며 그냥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학생을 두고 저는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소행을 발휘한 학생에게 과연 대학입학자격이 없겠는가 하고말입니다.》
《야.》하고 분조원들이 철식이를 둘러싸고 박수를 쳐주었다.
녀인들의 입에서 찬탄의 목소리가 쉼없이 흘러나왔다.
《그럼 그렇겠지, 우리 철식이가 누구라구…》
《글쎄 저 애가 대학을 못 붙고 왔다는게 참 이상하다 했지.》
《그러게말이야. 그런데두 입을 꾹 다물고있는걸 보면 정말 큰 사람이 되겠어.》
《아 그럼, 우리 철식인 어디 내놔두 우리 고향의 자랑이 될거야.》
교장이 그에게 입학통지서를 주었다.
《어서 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여드려라. 얼마나 기뻐하겠니.》
철식은 둥둥 뜨는 기분으로 바람같이 집으로 달려가며 쨍쨍한 목소리로 웨쳤다.
《어머니- 대학에서 날 입학시켰대요.》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웅기중기 둘러앉은 산발들에 부딪치는 메아리가 아물아물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를 흔들어놓았다.
《뭐?!…》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란 어머니가 허둥대는 아들의 손에서 편지를 얼른 나꿔채여 펼쳤다.
어느새 눈물이 글썽해진 어머니가 아들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용타, 용타! 네가 잘했다!
그러기에 내가 뭐라던, 대학에다 사정이야기를 해보고 올걸 그랬다구.》
철식은 벙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눈을 찡그리고 어머니를 나무리였다.
《야 참, 어머닌 또 그 말씀이네. 그러자면 대학선생님들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였습니다 하고 설명을 해야 할텐데… 난… 난 그런 말은 못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