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최 영 조

밤, 류달리 별많은 밤이다.

창밖으로 한껏 팔을 뻗치면 금시 손에 잡힐듯싶은 무수한 별들이 10월의 밤하늘가에 총총히 맺혀있다.

아득히 흘러가버린 동요시절

아동단학교 앞마당가에 높이 자란 돌배나무가지사이로 소년은 《범》을 피해 숨어버린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들크무레한 돌배향기…

그를 찾다 지쳐버린 아이들은 집으로 흩어져간지 오래다. 그러나 소년은 나무가지를 휘여잡고 열매를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머리우의 나무잎사이로 손을 뻗치던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어떤 신비의 세계에 휩싸이였다.

달빛은 받아 유난스레 반짝이는 돌배들… 그것은 어쩐지 별처럼 보였다.

그 순간 소년은 지금 자기가 한갖 돌배가 아니라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을 따려는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그는 한껏 손을 내밀었다.…

리철규차수는 이 시각 바로 60여년전의 그러한 동심을 다시금 짜릿하게 느끼며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별무리인가. 자연이란 정말 령험스러운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세상의 모든 감정을 꿰뚫어보는 그 어떤 신통력이 있는듯싶다.

하기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우리 당의 총비서로 높이 추대한 이 땅의 환희를 어찌 저 하늘인들 무심히 받아안을수 있으랴!

리철규는 저도 모르게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백두광명성을 받들어올린 혁명의 1세로서 지금에야 비로소 전사의 도리를 다한다는 무한한 행복감이 그를 이렇게 취하게 한것이다.

전화종소리가 다급히 울렸다.

리철규는 얼핏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리고는 아쉬운듯 다시한번 밤하늘을 정겹게 바라보고나서 천천히 창가에서 물러섰다.

《리철규입니다. 아, 성만동무요?》

위대한 장군님의 군령도를 보좌해드리는 김성만장령에게서 온 전화였다.

송수화기를 들고 아직 황홀한 꿈속에 잠겨있는듯싶던 리철규의 목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래 그것이 장군님의 사업을 직접 보좌해드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린가? 그러고도 뭐 날 보고 장군님께 말씀드려달라구? 좌우간 여러말할새 없으니 당장 여기로 오라구!》

리철규는 쾅 송수화기를 놓아버렸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비해 아직 젊은 사람들처럼 혈기에 넘쳐보이는 로투사는 울기를 삭이지 못하고 책상가녁을 꽉 움켜잡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동했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리철규는 꺼지듯 한숨을 내쉬였다.

김책동지나 최현, 오진우동지들이 살아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겠는가.…

아, 먼저 간 그들이 날 뭐라고 욕하랴.…

문기척소리가 났다. 이어 허우대 큰 김성만이 방에 들어섰다.

《차수동지!…》

그가 거수경례도 채 붙이기 전에 리철규는 홱 손을 내저었다.

《차수동진 무슨 차수동지, 임자들 눈에야 그저 아바이지.》

한때 전연군부대에서 함게 일해보아 리철규의 성미를 잘 아는 김성만은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고 공손히 서있었다. 성미가 불같아서 상대가 누구이든 자기 생각을 터쳐놓고야 진정하는 로투사였다, 그러나 일단 터진 다음에 찾아드는 그 정적이란…벌써 그 정적이 깃들었다.

《이보게, 정치위원…》하는 리철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전연에서 함께 일할 때의 직무로 김성만을 부름으로써 자기의 미안한 감정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 억양에서는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격해진듯싶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온 나라가 대경사로 들끓는 때가 아닌가. 그래 지난 삼년석달 우리 인민들이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소?… 그런데 공훈합창단 경축공연 하나 조직하지 못하다니? 세상에 이런 인사불성이 또 어디 있겠나 말이요?》

김성만의 허우대 큰 몸집이 졸지에 체소해진듯싶었다. 그는 리철규의 눈길조차 마주 바라볼념을 못하였다.

《말 좀 해보오. 그래 우리가 요즘같은 때에 장군님을 그렇게 모셔야 옳단 말이요? 그래 우리 장군님께서 어느 하루인들, 어느 한시인들 마음 편히 휴식하신적이 있소? 줄창 전선길에서 쪽잠과 줴기밥을 드시며 세상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는분인데… 아무리 고난의 행군시기라고 해도 이 경사로운 때, 오늘같은 날에야…》

리철규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들더니 더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걸상등받이를 움켜잡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김성만더러 곁에 와서 앉으라고 옆자리를 손으로 몇번 두드렸다.

김성만은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앉지는 않았다.

《우리도 정말이지 죄송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군대에서 조직하려던 경축행사들까지 모두 부결하시면서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이제 며칠후이면 수령님께서 우리 당을 창건하신 뜻깊은 날인것만큼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공연을 비롯한 모든 행사들을 거기에 무조건 복종시키라고 엄하게 지시하시였습니다.》

《…》

《그러시고는 서기동무에게 오늘 밤 평양시내의 거리들에 축등이며 장식등들을 켜놓은것같은데 아직 나라의 전기사정이 어려우니 다 끄라고, 그럴 여유가 있으면 주민세대들에 전기를 더 보내주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순간 리철규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어떤 예리한 아픔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고매한 덕망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거기에는 단순히 위인의 겸양만이 아닌 보다 숭고한것, 령도자의 깊은 고뇌가 비껴있었던것이다. 그럴수록 자기가 장군님의 그 심정을 너무도 모르고있었다는 죄스러움이 심장을 꽈악 움켜잡았다.

리철규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아, 그래서 저 하늘의 별들이 그리도 유난스레 밝아보였던가.…

김성만은 그 어떤 희망의 불빛을 옛 부대장의 얼굴에서 찾으려는듯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김성만의 크고 순박해보이는 두눈은 그 인간전체를 다 말해주고있었다.

(저 고지식한 사람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여북했으면 나한테 도움을 청할 생각까지 다 했겠는가.…)

하지만 리철규는 어쩐지 그의 눈빛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기의 불미스러움이 뼈아프게 사무쳐왔던것이다.

아, 과연 지금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정이 어찌 우리들과 같을수 있단 말인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슬하에서 위인들의 고매한 풍모를 체험해온 자기가 이밤 그이의 심중을 왜 그다지도 헤아려보지 못했던 말인가.…

정말이지 우린 너무나도 어려운 때에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장군님의 어깨우에 짊어드리고있는것이다.

《성만동무, 장군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보고계시오?》

《문건을 보고계십니다. 초저녁에 철규동지네가 올려보낸 국방력강화에 필요한 자금문건을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렸습니다.》

《음…》

리철규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그 문건을 벌써 보고드릴건 또 뭐란 말인가. 그는 책상가녁을 다시금 움켜잡았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것이 못되였다.

그 부문의 책임일군인 자신이 모든것을 세심히 타산하지 못한탓이였다.

이 시각 리철규는 장군님앞에 너무 군대욕심만 차린것이 아닌가 하는 죄스러운 생각이 자꾸만 갈마들었다.

그러고보면 인사불성은 다름아닌 리철규자신인것이다.

《성만동무, 내나 동무나 우린 너무도 제 생각에만 빠져있는것 같소. 물론 우리모두에게 있어서 요즘은 더없이 기쁘고 행복스런 나날이지. 하지만… 어쩐지 난 지금 우리 장군님의 마음이 더없이 무거우시리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구만.…》

김성만은 시작과 끝을 가늠할수 없는 로투사의 태도에 한순간 어정쩡해졌으나 분명 그의 심중에서 복잡한 소용돌이를 거쳐 함축되였을 그 말뜻만은 온몸으로 깨달았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숨죽은 공장들과 연기없는 마을을 뒤에 남기고 수만리 전선길을 헤쳐온 김성만이 어찌 그 말뜻을 모를수 있겠는가.…

×

벌써 몇번째.

문건을 당겨놓으셨다가는 밀어놓으시고 그러셨다가는 다시 당겨놓으시기를 그 몇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도저히 마음의 안정을 가지기 어려우시여 또다시 문건을 밀어놓으시였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였으나 오늘 밤처럼 이렇게 결심하기 어려워본적은 일찌기 없으시였다.

무엇때문인가.… 국방력강화에 돌려야 할 막대한 자금때문에?… 아니면 이 문건에 앞서 본 통신자료때문에?…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통신자료들에 다시 눈길을 던지시였다.

《조선에서 김정일최고사령관을 당총비서로 추대하기 위한 각 도(직할시)대표회 진행, 자기 령도자에 대한 조선인민의 기대의 확실한 과시》

김정일령도자께서 대표회들이 진행되는 기간 이에는 전혀 관심하지 않으시고 인민군부대들을 계속 시찰.

당, 국가수반선거전야에 최고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치렬한 경쟁으로 하여 수많은 비화들이 생기군 하는 서방이나 이전 공산권나라들에서는 전혀 볼수 없던 이례적인 정치상황》

《인민생활향상과 복리증진을 자기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삼고있는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될 김정일령도자의 금후 정치방향 기대》

…자기나름의 견해와 각도에서 자기나름대로의 분석이 주어진 서방통신자료들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내포되여있다.

그것은 총비서추대에 대한 일치한 관심이였다.

더 정확히는 어버이수령님 서거이후 처음으로 되는 공식적인 추대행사인것으로 하여 이런 경우 세계정치사에서 의례히 있기마련인 그 어떤 변화에 대한 은근한 관심이였다.

더우기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의 붕괴에서 현훈증에 걸린 미국은 이른바 저들방식대로 《3.3.3.》이라는 시간표까지 짜놓았댔으니까.

그들은 우리의 사회주의가 3일 아니면 석달, 늦어서 3년이상 더 가지 못할것이라고 보았었지.… 바로 그 3년이 지나갔던것이다.

장군님의 눈앞에는 못잊을 그 나날들이 삼삼히 떠올랐다.

자신앞에 풀죽가마를 애써 감추던 자강도의 가냘픈 소년의 모습이며 해일피해로 황페화되다싶이된 벌방지대의 논밭이며 멎어버린 공장의 기대들, 전기사정때문에 때없이 멎어서군 하는 수도의 궤도전차며 등잔불을 켜놓은 아빠트의 창가들… 정말이지 하나에서 열 아니, 백, 천가지가 다 힘겹고 어려운 고난의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굴복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신념의 구호를 높이 들고 곳곳마다에 중소형발전소들을 일떠세우기 시작하였고 수확고가 높은 감자농사도 시작했다.

인차 대규모적인 토지정리사업도 진행할 결심이시였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것이였다. 그것이 언제 은을 내겠는가? 1년? 2년?… 아니면…

적들도 이것을 알고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계산상착오는 인정했지만 그자체를 철회할 생각은 버리려 하지 않고있다. 그들은 제나름대로 당총비서가 오늘날의 난국을 타개하자면 어차피 경제사업에 직접 손을 대지 않을수 없으며 그러자면 반드시 경제력이 강한 서방과 타협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라는 속구구를 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이 시각 장군님의 심중을 무겁게 짓누르는것은 그 통신자료에서 간파되는 서방식 타산때문이 아니였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모진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며 묵묵히 아니, 오히려 웃으며 고난을 헤쳐오는 우리 인민,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그 인민에게 하루빨리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였고 괴로움이였다.

어머니의 가슴속에는 풀죽을 놓고 투정질하는 자식보다 그 풀죽을 애써 달게 먹으며 웃음짓는 그런 자식의 모습이 더 쓰리고 아프게 맺히는 법이다.

과연 언제까지 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귀여운 자기 자식들의 손에 사탕 한알, 과자 한봉지 마음놓고 쥐여주지 못해야 한단 말인가.… 불현듯 얼마전 구월산에 가셨을 때 보신 글발이 떠오르시였다.

《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해 1997》

인민군군인들이 구월산을 새로 꾸리면서 지원폭포 2단바위옹벽에 새겨놓은 소박한 글발이였다.

거기에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미래에 대한 락관, 승리에 대한 신심이 넘쳐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마지막해라는 그 글줄만은 왜서인지 이밤 예리한 칼날처럼 가슴을 저민다.

고난의 마지막해. 아, 진정 그들의 념원처럼 이해가 고난의 마지막해가 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아직도 참고 이겨내야 할 시련, 뚫고 나가야 할 곤난이 무수히 앞에 놓여있다.

이런 때 수령님께서 곁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큰힘을 주시였으랴!…

그것이 언제였던가. 그래, 40여년전의 어느 봄날… 지금처럼 깊은 밤이였었지.…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방에 들어서니 수령님께서는 피곤이 극심하시여 걸상에 반쯤 누우신채 눈을 감고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수령님의 곁으로 다가가시였다.

《몸이 편치 않으십니까?》

《먼길을 갔다왔더니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것 같구만.… 더구나 가는 곳마다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복구건설에 떨쳐나선걸 보니 마음이 아프오. 언제면 우리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고 기와집에서 살수 있게 하겠는지.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열백밤을 패고 수천리 먼길을 다녀와도 피곤할것 같지 않아.…》

(수령님, 그날의 수령님의 그 심정을 오늘 뼈저리게 느낍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 누군가가 이 김정일이 결심이 단호하다고 하였는데 이 문건을 놓고는 왜서인지 그렇게 할수가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문건을 앞에 당겨오시였다.

그 자금만이라도 아니, 그 절반만이라도 인민생활에 돌린다면 당장은 형편이 달라질수 있고 이 마음속 괴로움도 얼마간은 덜수 있지 않겠는가.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필기도구를 쥐시였다.

그러나… 굵은 점 하나가 문건의 겉표지우에 점점이 필뿐 더 움직일념을 못하였다.

아니다.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였다.

그렇게 난관을 없앨수 있다면 자신께서 이미전에 열백번도 더 그렇게 하셨을것이다.

하지만… 정말 다른 길은 더 없단 말인가?…

다시한번 문건에 시선을 멈추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밤은 벌써 퍼그나 깊었다.

별들은 어느새 먼 하늘가에서 깜빡이고 달은 멀리 서쪽으로 끝없이 헤염쳐간다. 순풍에 돛단 배라더니… 저 달은 얼마나 유유히 미끄러져가는가!…

장군님께서는 이밤 어쩐지 못 견디게 그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가. 나를 리해해주실가. 그리고… 항일의 20성상 수령님을 따라 죽음과 추위, 기아속에서도 끄떡없이 혁명의 붉은기를 지켜 싸워온 로투사들도 또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그렇다.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한다!

이밤의 중대한 결심은 나 혼자 내릴것이 아니다. 결론권은 그들에게도 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조선혁명의 총대를 맨먼저 든분들이 아닌가.…

 

×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자정이 훨씬 지난 수도의 중심부를 빠져나왔다.

차안에는 리철규차수와 김성만장령도 있었다.

《내 아까는 성만동무랑 많은 동무들의 제의를 단마디로 잘라버렸는데 고마운 그 성의를 그렇게 무시해버린게 어쩐지 마음에 걸리누만.》

《아닙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들이 미처…》

죄스러움에 젖은 김성만의 목소리였다.

《아니, 아니…》

장군님께서는 가벼이 그의 말을 밀막으시며 한손을 내저으시였다.

《내가 왜 동무들의 심정을 모르겠소. 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생각이 많은 때요.…》

김성만의 머리가 더 깊이 수그러졌다.

《장군님! 오늘껏 언제한번 장군님께서 마음 편히 정사를 돌보실수 있게 도와드리지 못하는 우리들이 정말이지 죄송스럽습니다. 생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들에게 그토록 당부하셨는데…》

리철규는 자기가 올려보낸 문건에 대해 무슨 말이든 올리고싶었으나 장군님의 심중을 더 무겁게 해드리는것 같아 다음말을 잇지 못하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리해되시였다. 언제나 자신의 심정을 제일먼저 알아주는 항일투사들이다.

《아닙니다. 나를 믿고 받들어준 투사동지들의 그 마음에 비해보면 아직도 제게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아바이, 오늘 밤은 어쩐지 투사동지들 생각이 더 나는군요.》

《장군님…》

《옛말에 괴로움은 나누면 가벼워진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깊은 밤에 어딜 가서 사람들을 만나겠습니까. 내 그래서 이렇게 주작봉의 투사들을 찾아가는겁니다. 또 응당 그래야지요.》

벌써 승용차의 전조등빛에 대성산혁명렬사릉의 릉문자태가 웅장하게 드러났다. 점점 다가왔다.

10월의 주작봉은 깊은 고요속에 잠겨있었다.

다만 전나무며 측백나무, 잣나무들이 이따금 소슬바람을 타고 가볍게 설레일뿐…

장군님의 뒤를 따라 옛 전우들의 반신상을 돌아보는 리철규의 가슴은 후더워졌다.

그의 귀전에는 언제인가 백두산이 받들어올린 김정일장군을 모신 감격과 행복에 대해 터놓는 투사들에게 《백두산이 그를 받들어올렸다는 말은 곧 우리 혁명의 1세들이 받들어올렸다는 말이요. 1세들이 받들어올렸다는 말은 곧 우리 군대가 받들어올렸다는 말이요!》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음성이 금시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동지들! 전우들! 장군님께서 오셨네. 어서 일어들 나라구. 장군님께서 주작봉에 오셨단 말이요!…)

투사들의 반신상을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맨 나중으로 김정숙어머님의 반신상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숭엄한 고요가 깃들었다.

리철규와 김성만은 자기들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쩐 위대한 두분의 상봉에, 하많은 심중의 이야기를 나누실 그 상봉에 지장이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순간 그들의 눈에는 투광등빛에 더 붉게 타는듯싶은 붉은 대리석기폭이 금시 펄럭이는것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여기에 와서 내 뭘 더 숨기겠습니까? 아까는 정말이지 귀중한 자금을 인민행활이 아니라 국방력강화를 위해 써야 할 문건을 놓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어찌겠습니까. 나도 인간인데…》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인민은 모두 장군님의 그 심정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더 장군님만을 굳게 믿고 오늘의 고난을 이겨나가고있습니다.》

김성만의 목소리를 몹시 갈렸다.

《나도 알지.… 하지만 내 마음이야 어디 그렇소?! 인간이 자기를 이긴다는게 헐치 않소. 내 그래서 여기 주작봉에 찾아온거요.

이들은 천번만번의 그 어려운 고비마다에서 자기를 이겨냈고 우리 수령님을 따라 조국해방성전에 목숨을 바쳤소. 그게 무엇때문이겠소?》

《장군님! 내 다른건 잘 몰라도 그네들의 마음만은 잘 압니다. 예로부터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개만도 못하다질 않았습니까. 바로 이들모두는 망국노의 그 비참한 운명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입니다.》

《아바이!》

장군님께서는 리철규의 두손을 힘있게 움켜잡으시였다. 그의 투박한 손은 몹시 차거웠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투사의 그 말은 단순하지만 거기에는 얼마나 심오한 민족사의 진리가 응결되여있는것인가!

《옳습니다. 옳습니다. 어머님도 여기 투사들도 오늘 나에게 한결같이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비로소 가슴이 후련해지심을 느끼시였다. 자신께서는 단 한번도 의심해본적이 없는 진리였으나 그것을 그렇듯 체험자들의 삶의 호소로 받아안으시고보니 자신의 그 선택이 백번 정당한것이라는 신심을 다시한번 가다듬게 되시였다. 다시는 제국주의자들의 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인민의 억척같은 의지, 그것은 정녕 장군님의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이였다.

그것이면 자신께서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시였고 그것이면 그 어떤 대적도 두렵지 않으시였다.

이 순간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 두고온 문건을 생각하시였다. 그 문건을 가지고 오지 못한것이 후회되시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문건에 수표를 하시였다.

솨- 주작봉마루와 잇닿은 렬사릉의 무성한 나무숲이 설레였다.

그 설레임소리는 마치도 자신의 결심을 지지해주시는 어머님과 투사들의 목소리로 생각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저도  모르게  천천히  그  나무숲으로  걸어가시였다.   미츨하게 자란 전나무에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벌써 축축한 물기가 묻어나는 나무허리에 한손을 얹으시고 그 우듬지를 올려다보시였다.

잎새사이로 하얀 달빛이 부서져내린다. 별들이 뾰족한 잎새끝에 달린 능금열매마냥 황홀한 빛을 반짝인다.

가없는 별의 바다… 아름다운 은하계는 달을 싣고 그 무엇인가를 끝없이 속삭이며 어디론가 흘러만 간다.

리철규와 김성만의 귀전에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바람소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노래소리였다.

장군님께서 밤하늘을 바라보시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시는것이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전나무기둥에 웃몸을 비스듬히 기대이시고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신다. 그이의 심중에서 고매치던 심원한 사색과 자신을 이겨내며 가다듬으시던 철의 의지… 그 모든것과는 너무도 뜻밖인 동심의 세계, 동심의 노래였다.

리철규는 저도 모르게 흥그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돌배나무밑에 오구구 모여앉아 아동단학교 녀선생의 청고운 목소리를 따라부르던 추억깊은 노래…

순간 그는 눈앞의 가까운 곳에서 섬광같은것이 번쩍하는감을 느꼈다. 별찌가 떨어졌는가.…

다음순간 리철규는 허둥지둥 눈길을 떨구고 말았다. 장군님의 눈가에 고인 뜨거운것이 달빛을 받아 형용키 어려운 빛을 발산하고있었던것이다.

그만에야 투사의 두눈에도 맑고 진한것이 그득히 고여올랐다.

정말이지 저 노래는 우리 장군님께서 저렇듯 정을 기울여 부르실만 한 그런 노래가 아닌가!

이런 밤, 이렇게 별뜨고 달뜨던 밤이면 숙영지의 우등불가에 투사들이 둘러앉아 두고온 고향과 빼앗긴 조국을 그리며 부르던 노래… 그때 어머님의 군복자락에 안겨 어리신 장군님께서 따라부르며 배우신 노래가 바로 저 노래였다. 그러고보면 해방산기슭에서 분망한 사업으로 밤늦도록 돌아오지 못하시는 수령님을 기다리시며 어머님과 함께 부르시던 노래도 바로 저 노래였다.

아, 저 노래에는 장군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오신 고향과 조국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정회가 깃들어있는것이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건

새별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노래는 하많은 추억을 담아싣고 밤하늘가 멀리로 고요히 울려갔다.

그러나 이밤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 울리고있은것은 비단 그들이 생각하고있은것과 같은 그런 단순한 추억의 노래만이 아니였다. 실상 그것은 그이의 심중에서 끓고있는 용암의 분화구와도 같은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리철규네를 향해 돌아서시였다.

《어쩐지 저 달을 바라보느라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하늘의 달은 돛이나 삿대가 없이도 거침없이 잘만 간다고 말입니다.》

장군님의 사색깊은 눈빛이 리철규와 김성만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긴 저 달이야 지구의 위성으로서 수십수억년전부터 돌고있는 자기의 고정불변한 궤도를 따라가면 되겠으니 돛이나 삿대는 해서 뭘하겠습니까. 그런데 조선혁명은 아직 그 누구도 헤쳐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이며 가장 포악한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속에서 전진하는 사생결단의 길이 아닙니까?》

장군님의 안광에는 철석같은 의지의 빛이 강렬하게 번뜩이였다.

그이의 숙연한 상념은 리철규와 김성만을 벗어나 주작봉마루의 투사들을 다시 떠올리였다.

김혁, 차광수, 오증흡, 김진…

대부분의 투사들은 그이께서 단 한번도 만나보시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들이 낯설게 생각되여본적이 없으시였다.

그것은 무엇때문인가? 수령님과 어머님께서 늘 못잊어 외우시던 이름들이여서인가.… 아니면 남다른 도덕의리심에서인가.…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머리를 저으시였다. 거기에는 그 무엇인가 더 폭넓고 그 무엇인가 더 운명적인것이 자신과 련결되여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목숨처럼 틀어잡았던 혁명의 총대를 오늘 자신께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자신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항일혁명투사들 하면 《총대》라는 부름처럼 생각되시였다.

조선혁명은 명실공히 총대로 개척되고 총대로 승리하여온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세계적으로 강력한 경제력이 없이는 군대를 유지강화할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하고있는데 나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강력한 군대가 있어야 경제강국을 건설할수 있고 사회주의건설도 발전시켜나갈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오직 수령님의 뜻대로 변함없이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혁명이라는 우리의 전함의 돛이라고 할가.…어쨌든 우리의 전함이 영원히 헤쳐가야 할 불변의 항로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리철규와 김성만은 온몸에 내뻗는 그 어떤 힘의 강렬한 충동을 체감하였다. 그이의 말씀은 마디마디 그 힘을 분출시키는 활화산이였다.

아, 다박솔초소를 찾으셨던 그날 저녁 《나는 인민군대를 믿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밀고나가려고 합니다.》라고 하시던 그 말씀의 깊은 뜻이 바로 저것이였구나!

(장군님! 난 오늘 밤 장군님과 함께 주작봉에 올라 정말로 저 하늘의 별을 딴것 같습니다, 저 하늘의 별을…)

 

맑은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도 훨씬 지나 먼산에 단풍드는 한로절기인지라 나무잎새들에는 벌써 차거운 밤이슬이 방울방울 맺히였다.

《자, 이젠 그만 돌아들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량팔에 정답게 껴안으시였다. 리철규는 장군님의 품에 안기자 자신이 또다시 동심에 빠져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군님, 그러니 우리의 그 전함은 썩 이미전에 떠난셈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력사를 따지면야 항일혁명의 총성이 울린 때부터이지요.》

《그러니 이 늙은게 한생 그 배를 타고오면서도 오늘에야 비로소 내가 타고온 배이름을 깨달았군요. <선군>이라… 정말 뜻이 깊습니다. 아직 들어본적은 없었지만 대번에  그 뜻이 통하거던요. 하하…》

로투사는 웃었다. 그러나 주름패인 그의 눈언저리로는 굵은 물방울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고개를 수그리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하기야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이름이야 그 누가 책상머리에서 생각해낸것이 아니라 세상에 다시 없을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며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우리 이름인데…》

장군님께서도 마음이 젖어드시였다.

인생의 먼먼길을 걸어온 로투사의 마음은 오늘도 여전히 곧고 변함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축축히 젖어드는 눈길을 돌리시며 얼른 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발동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아바이, 래일부터는 일감이 더 많아질텐데 오늘 밤까지 잠을 밑졌다가는 영영 보충할 길이 없습니다.》

그 말씀에 리철규의 수북한 눈섭이 쭝깃하며 이밤 처음으로 눈빛이 밝아졌다.

《저… 장군님의 그 말씀을 믿어두 되겠습니까?》

《허, 이거 내가 단단히 신용을 잃었다?! 그럼 우리 이 성만동물 증인으로 세웁시다.》

《이 사람을요?…》

리철규는 미덥지 않은듯 다시금 눈섭을 쭝깃거리며 김성만을 바라보았다.

《왜요? 그래도 안면있는 옛 정치위원을 립회인으로 두는게 아바이한테는 유리할텐데요. 하하…》

리철규도 김성만도 함께 따라웃었다.

《그대신 오늘 밤 일은 절대비밀에 붙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유주의를 한걸 알면 사람들이 가만있자고 안할테니까요. 그렇지 않소? 성만동무.》

《최고사령관동지, 우선 이 김성만이부터 곤경을 치르게 될겝니다. 서기동무한테 걸려들면야…》

《옳단 말이요. 항일투사아바이한테 누가 감히 맞서겠소. 괜히 우리들만 못살게 굴지, 하하…》

정넘친 웃음소리에 떠밀리우듯 승용차는 슬며시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쏜살같이 달렸다.

그렇게도 많아보이던 밤하늘의 뭇별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온 우주는 이미 깊디깊은 고욕속에 잠들고있었다.

다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의 블빛만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이 땅의 생명력을 과시하듯 앞길을 환히 밝히며 내달린다.

마치도 새날의 려명을 불러 반짝반짝 빛을 뿌리는 새별등대처럼…

주체91(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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