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9호에 실린 글

김 명 천 그림 류 명 구
영석은 급히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작업이 끝나기 전에 올라가야 했다.
영석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5층까지 올라가자면 시간이 좀 걸릴것이다.
그는 이마에 내배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걸음을 다그쳤다.
밤은 깊어도 잠들줄 모르는 만수대지구살림집건설장의 전경이 밖으로 내다보였다.
밤하늘에 날리는 용접불꽃이며 건설장에 울리는 기중기의 동음소리와 곳곳에 《단숨에!》, 《천년책임》, 《만년보증》이라고 씌여진 글발들이 보인다.
방송선전차에서 울리는 노래소리는 영석의 걸음도 더 빨리, 더 빨리! 하고 재촉하는것만 같았다.
얼마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건설려단에서 대대시공참모로 일하기 시작한 영석의 일본새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역시 돌격대출신이 다르구만.》라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하군 하였지만 그럴수록 영석은 어제날의 돌격대원답게 맡겨진 일을 더 책임적으로 하군 하였다. 아니, 그때보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것을 느끼군 하였다.
시키는 일만 잘해도 혁신자라고 떠받들리우던 돌격대원시절과는 정말 달랐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시공참모일이란 바로 그런것이였다. 자기가 합격으로 평가한것도 어딘가 미흡한 점이 있는것 같아 다시, 또다시 되돌아보게 되는것이였다.
한참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영석의 머리우에서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시공참모동지 아닙니까?》
머리를 드니 1소대의 김정실이다. 그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노래를 너무 잘 불러 꾀꼴새라고 부르는 처녀였다.
파란 안전모밑에서 꼼꼼히 화장한 그의 맑은 살결이 드러나보였다.
《아, 정실동무요?!》
영석은 대답하면서도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시공참모동지가 어떻게 우리 작업장엘 또… 아직 안 가셨습니까?》
《동무네 소대일때문에… 그런데 어딜 급히 가오?》
《저… 부모님들이 지원물자랑 가지고왔다기에…》
《좋구만.》
영석은 여전히 계단을 오르며 건성 대답해주었다.
사실 집을 향해 건설장을 조금 벗어났던 영석이 다시 되돌아섰다는것을 알면 저 처녀는 뭐라고 할가. 성격이 밝고 명랑한 처녀들일수록 솔직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을 좋아한다던데… 하긴 누군들 그런 사람을 바라지 않으랴.
하지만 지금 영석은 그 누구의 뒤시비가 두려운것이 아니였다. 더 무겁고 더 급한 일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듯 하였다.
《참…》영석은 걸음을 멈추고 이제는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 처녀쪽에 대고 소리쳤다.
《정실동무, 동무네 소대장이 우에 있소?》
《예, 소대전원이 아직 다 있습니다.》
《알겠소.》
영석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그들이 모두 작업에서 철수했으면 어쩌랴 하던 근심은 이젠 덜어진셈이다.
아니, 앞에는 더 큰 근심이 있었다.
한개 소대가 온 하루 땀흘려 해놓은 일을 모두 령으로 만든다는것은 얼마나 가혹하고 매정한 일인가.
더구나 한그람의 세멘트가 귀한 이때 그 많은 자재를 들여 해놓은 일을 모두 무효로 하고 다시 해야 한다면 막대한 자재를 랑비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묻게 될것인가.
영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작업을 중지시키고 재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인정에 못이겨 그만…
그런데 일이 이렇게 번져지다니.
영석은 저도 모르게 긴숨을 내쉬였다.
오늘 오후에 영석은 제일먼저 작업을 끝낸 1소대원들에게 합격을 주었었다. 그러자 무슨 일때문인지 근심이 어렸던 소대장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고여 번들거렸다.
이번 사회주의경쟁에서 꼭 1등을 하려고 식사하러 오가는 시간마저 아까와 가지 않고 운반식사를 조직하며 일해온 그들이였다.
대대에서도 그들만큼 일을 제끼고 소문을 내는 소대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시공참모인 영석의 깔끔한 눈길을 두려워하군 하였다.
영석이는 자기가 돌격대원들속에서 곧은 막대기로 통하고있다는것도 모르지 않고있었다.
언제인가 방금 만났던 정실이가 로골적으로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시공참모동진 원래 그렇게 꼿꼿한 막대기입니까?》
《막대기라니?…》
《우리 소대가 진행한 작업구간을 돌아볼 때는 별스레 더 꼿꼿해지는것 같습니다.》
새물새물 웃으며 따지고드는 처녀앞에서 영석은 성을 낼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시공참모의 본분을 일일이 설명해줄수도 없었다.
영석은 힐끔 처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번경쟁에서 1등은 하구싶겠지?》
《…》
너무도 응당한것이여서 대답하나마나라는 태도다.
《그렇다면 응당 나는 꼿꼿한 자막대기가 되여야 하는거요.》
《예?…》
처녀는 리해하지 못한것 같았다.
이제 영석이 계단을 다 올라가 소대전원앞에서 《오늘작업은 무효입니다. 모두 재작업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아마 처녀들은 엉엉 소리내여 울지도 모른다.
영석은 희미한 불빛아래 보이는 12라는 수자를 읽었다. 이제야 12층에 올라온것이다. 25층까지 올라갈 용기가 점점 온몸에서 빠져나가는것같았다.
그는 휑하니 뚫려진 창문(아직은 창문이라고 말할수 없었다.)에 다가갔다.
움직일 때보다 온몸에 땀이 더 쭉 내돋는다.
서늘한 밤바람이 달아오른 영석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듯싶었다.
멀리서 푸른 용접섬광이 벙끗 하더니 건설장의 전경이 한눈에 비쳐진다. 혁명적군인정신의 창조자들인 군인건설자들이 일하는 고층살림집쪽에서 그들의 드높은 열의인듯 노래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온다. 군인건설자들이 즐겨부르는 《단숨에》라는 노래였다.
영석은 자기네 려단에서 맡은 살림집골조가 군인건설자들이 맡아 일떠세우는 살림집골조속도에 따라서지 못하는것을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해왔는지 몰랐다.
덩지 큰 살림집건설장은 마치 하늘우에 새기는 경쟁도표처럼 어떤 살림집골조들은 쭉쭉 기세좋게 올라가는데 어떤 살림집골조들은 안타깝게도 더디게 올라가고있었다. 그것은 그 어떤 말로써도 변명할수 없는 충실성의 높이였고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애국심의 열도라고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영석은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였다. 소대원들에게 하루작업일을 무효로 한다는것이 괴로왔던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공연히 그러는것이 아닐가. 허용수치라는것이 있지 않는가. 바로 그래서 낮에는 합격을 주었는데 이제와서 무엇이 못마땅해서 자기가 한 행동까지 취소하면서 소대원들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려드는가.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왔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선뜻 결심이 내려지지 않았다.
영석은 마음속 괴로움을 털어버리려는듯 다시한번 긴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기 생각을 더듬었다.
이윽고 영석은 침착해진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래, 다시 내려가자. 소대원들을 위해서라도 내려가야 한다.)
그가 천천히 한발자국 내짚으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돌격대원이란 이름을 더럽히지 마시오!》 하는 굵고 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석은 돌아보았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순간 영석은 그것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검푸른 밤하늘가 저 멀리에 북방의 발전소언제가 보여오는듯싶었다. 거기에 자기가 돌격대원으로 일하면서 건설한 물길굴이 있었다.
감회도 새롭다. 멋들어지게 청춘시절을 보내던 곳이였다.
×
그날은 영석이 대학으로 떠나려던 바로 전날이였다.
영석은 소대원들이 차려준 송별식사에 접하고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어 소리없이 울었다.
잊지 못할 돌격대시절의 땀과 열정이 깃든 그날들이 하나하나 눈에 밟혀왔다.
모임이 거의 끝나갈무렵 그들에게로 대대시공참모가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참모동지.》
아버지벌되는 사람인지라 돌격대원들은 모두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나 시공참모는 소대장을 조용히 불러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소대장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영석은 떠날 준비도 해야 했고 동무들앞에서 눈물을 보인것이 면구스럽기도 하여 인차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와 병실앞을 지나는데 얼마 멀지 않은 어둠속에서 두사람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대장의 목소리와 석쉼한 시공참모의 목소리였다.
영석은 인차 그들이 오늘 소대가 진행한 일을 놓고 말하고있음을 깨달았다.
《그래두 난 양보 못하겠소.》
이것은 석쉼한 시공참모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어쩌겠습니까, 부소대장인 영석동무가 맡아서 한 일인데… 리해해주십시오.》
소대장의 사정하는듯 한 목소리였다.
《소대장동문 뭘 리해하라는거요? 양보하고 리해할게 따로 있지 그걸 보고야 어떻게 그냥 넘긴단 말이요?》
《그럼 래일 다시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도 안되오. 또 래일이면 혼합물이 굳어져 그만큼 시간과 품이 더 든단 말이요. 더구나 계획이 다 틀려진단 말이요. 래일은 또 래일계획을 해야 할게 아니요.》
《그렇다구 당장 떠날 사람을 어떻게…》
영석은 그때에야 그들이 자기를 두고 격해서 론쟁하고있음을 알았다.
《소대장동지, 제 영석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영석은 다가갔다. 깍듯이 경례를 하며 시공참모에게 눈길을 주었다.
《동문 어서 가보오.》
소대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가만, 영석동무, 오늘 동문 어떻게 일했소?》
석쉼하고 갈린 목소리가 영석에게로 휙 날아왔다.
《…》
《자기가 량심껏 일했다고 말할수 있소?》
오늘 영석은 기포가 생긴 피복구간을 처리할 임무를 받고 작업을 진행하였다. 사실은 까고 다시 해야 했지만 영석은 시간이 모자라고 자재가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망설이던 그는 소대원들과 토론도 없이 기포가 생긴 부분들만 까내였다.
결국 먼저 씌운 피복과 차이가 생기게 되였다.
《참모동지, 전… 책임적으로 일했습니다.》
《책임적으로 했다구?》
《그렇습니다.》
《동문 보이지 않는 물길굴이라고 하여 량심을 속였소.
지휘부에서는 그 부분을 다시 할걸 요구했는데 동문 제 마음대로… 일처리를 했소. 왜, 래일 대학으로 떠나서 그러우?》
《참모동지,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다시 하시오. 동문 돌격대원자격이 없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속인단 말이요?》
그는 딱 잘라 말했다. 키가 크고 청년들처럼 자세가 곧은 사람이였는데 목소리만은 늘 석쉼하였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영석은 웅얼거리며 말했다.
《왜, 너무하다는거요? 돌격대원이란 이름을 더럽히지 마시오!》
시공참모는 힝하니 돌아서 가버렸다.
《아니, 참모동지…》
소대장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홀로 남은 영석은 입술을 옥물고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렇게 인정머리없는 사람은 처음 보는것같았다.
결국 소대원들은 그밤으로 재작업을 위해 작업장으로 나갔다.
영석은 그들과 함께 가고싶었지만 차마 용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수치스럽고 자신이 저주스러웠던것이다. 홀로 남게 된 그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다.
밤은 깊어갔다. 찬바람이 맵짜게 귀뿌리를 후려쳤다.
영석은 몸을 옹송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영석이, 정말 시간이 없고 자재가 아까왔는가?》
문득 어디선가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공참모의 석쉼한 목소리같기도 하고 쟁쟁한 소대장의 목소리같기도 했다. 아니, 그것은 자기의 마음속 목소리였다.
영석은 그 물음에 대답할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떨구었다.
래일이면 대학으로 떠난다는 마음속 흥분으로 하여 돌격대원의 량심을 더럽혔던것이다.
3월이라고는 하지만 북쪽지방의 날씨는 몹시도 추웠다.
온몸이 얼어들대로 얼어든 영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야 한다. 이제라도 더럽혀진 량심을 씻어야 한다.)
그는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세찬 바람이 우―우― 무섭게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하였다.
다른 병실들에서 오락회가 벌어졌는지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명랑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굴뚝들에서 흰 연기가 기세좋게 춤추며 날아오른다.
그 모든것이 영석을 조롱하듯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영석이 작업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리였다.
《혼합물! 이쪽에 혼합물을 가져오시오.》
석쉼한 목소리였다.
영석은 저벅저벅 버럭을 밟으며 걸음을 다그쳤다.
그러던 그는 우뚝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자기에 대한 환멸감과 수치감으로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자기때문에 소대원들은 오늘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하니 자기를 보면 얼마나 민망스럽겠는가.
그때 작업장에서 누구인가 떠들썩 큰 목소리로 말했다.
《참모동진 군사복무시절부터 이런 건설을 많이 했다는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많은걸 건설했지. 그동안에 받은 훈장만 해두 이 가슴을 덮구두 남소.》
《야!―》
어린 대원들의 부러움에 찬 목소리가 물길굴안을 울렸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난 나의 가슴에 왜 그런 큰 훈장들을 달아주는지 알지 못했소.
내가 무슨 큰 발명을 했소 아니면 피흘리며 목숨을 내대보았겠소? 그저 묵묵히 세멘트와 자갈을 가지고 건설이나 했을뿐인데.
난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야 내가 세운 건축물들속에 어떤 뜻깊은 사랑이 깃들어있는지 다소나마 깨닫게 되였소.
언제나 인민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 솟아난 그 건축물들을 볼 때마다 나의 앞가슴에서 빛나는 훈장들의 진가를 알게 되였다고 할가.
난 지금도 내가 건설한 창조물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군 하오. 혹시 내가 잘못한것은 없는가, 거기에 나의 진심을 묻었는가 하고 때없이 자신에게 묻군 하오.》
영석은 더이상 그 자리에 서있을수 없었다.
시공참모의 말속에는 그 어떤 명예나 사심도 없었다. 오직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와 함께 빛나는 조국이 있을뿐이였다. 그는 이렇게 애국의 마음을 묵묵히 조국에 바쳐왔던것이다.
영석이 자기자신만을 생각하고 송별연을 차려준 소대원들의 얼굴을 대할 체면을 생각하고있을 때 시공참모는 먼 후날의 물길굴을 보고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빛날 조국의 래일을 보고있었다.
영석은 뛰여가 시공참모에게서 미장칼을 빼앗아 들었다.
《참모동지, 절 용서해주십시오.》
《엉?…》
그는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벙싯 웃음을 지었다.
《영석동무구만. 난 동무가 이렇게 나오리라구 믿었소.》
《참모동지…》
《우린 장군님의 구상을 맨 앞장에서 실현해가는 돌격대원들이요. 우리가 하는 일은 비록 크지 않아도 여기엔 위대한 당의 뜻과 의지가 비껴있는거요. 그렇게 생각할 때 어찌 여기에 한점의 티나 그늘이라두 남겨둘수 있겠느냐 말이요.》
그날의 시공참모, 그는 맏형같았고 스승같았다.
자기의 인생에 그날의 일이 이렇듯 깊이 새겨지게 될줄은 그때 미처 알수 없었다.
그래서 영석은 대학을 마쳤을 때 이름난 건축설계실로 갈수도 있었고 연구사도 될수 있었으나 굳이 현장시공참모가 된것이였다.
×
영석은 자기가 20층에 올라섰음을 깨달았다.
그는 두계단, 세계단씩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어느새 뒤에서 쌕쌕 가쁜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숨차다. 참모동지, 같이 갑시다.》
돌격대원 정실이였다.
《아니, 부모님들이랑 만나지 않았소?》
《제가 맡은 일을 책임적으로 다하지 못했는데 무슨 낯으로 만난단 말입니까.》
《아깐 부모님들이 지원물자랑 가지고왔다고 좋아하더니 그건 무슨 소리요?》
정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색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전 참모동지가 왜 다시 오는지 압니다.
우리가 한 일이 미덥지 않아서겠지요? 그렇지요?》
영석을 바라보는 처녀의 눈빛은 밝게 빛났다.
영석은 물끄러미 처녀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참모동지가 간 다음에 소대장동진 우릴 모여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무들, 아무리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량심이 떳떳치 못하다면 그런 1등이 과연 기쁘겠는가. 또 우리가 바라는 1등인가. 비록 시공참모동지가 합격을 주긴 했지만 우린 먼저 우리 량심의 합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어떻소, 동무들?〉이렇게 말입니다.
우린 그래서 〈천년책임, 만년보증〉이라고 대답하고나서 우리스스로가 시공참모가 되여 우리 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영석은 불쑥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아온단 말이지.… 고맙소, 동무들!》
이런 말은 입으로써가 아니라 눈에서 그리고 심장에서 먼저 솟구치는것 같았다.
《지금은 거의 끝났을겁니다.》
영석은 저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정실이보다 한걸음두걸음 뒤떨어졌다. 아니, 사실은 우정 그에게서 뒤떨어지려 했던것이였다.
정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전 먼저 가겠습니다.》 하면서 나는듯이 뛰여올라갔다.
영석은 25층에 다 올라섰으나 그들이 일하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25층을 지나 다시금 계단을 더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어쩐지 쿵쿵 둔중한 박동소리가 자기의 심장에서가 아니라 지심깊이에서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당을 받드는, 조국을 받드는 애국의 천년초석, 만년초석이 바로 우리의 심장속에 있음을 느끼며…
(평양전자의료기구공장 로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