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7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박 윤
1
남일대장은 자기의 한생에 이런 류다른 싸움, 온 정신력과 지성, 내부의 힘을 깡그리 뿜어 침묵의 대결, 눈과 눈의 결전을 치르게 되리라는것을 전혀 상상해본적이 없었다.
불타는 눈길의 치렬한 격전은 벌써 두시간 가까이 계속되고있었다. 눈부리에 불이 달린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분노와 질책, 타매와 증오, 의무와 론리로 하여 그것은 거의 고통에 가까운 초긴장으로 이어졌다.
이 색다른 대결은 정전담판회의가 군사분계선설정문제를 놓고 치렬한 공방전을 벌릴 때 이미 시작되였다. 《련합국군》측 수석대표인 미륙군중장 윌리암 케이 해리슨은 자기들이 이 전쟁의 제공권을 장악하고있는것만큼 분계선을 현재 쌍방이 차지하고있는 계선이 아니라 썩 북으로 옮겨 평양―함흥을 동서로 긋는 가상적인 선으로 해야 한다는 억지주장을 세웠다.
물론 우리 조선인민군측이 그 강압적인 주장을 받아들일것을 타산한것은 아닐것이였다. 중간흥정을 바라는 적들의 상투적인 장사군적기질이 이 력사에 전례없는, 준엄한 정전담판마당에서까지 로골적으로 드러난것이다.
남일대장은 현재 쌍방이 차지하고있는 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자는 우리측의 정당한 견해를 확정적으로 한마디 언급한 후 준절한 눈길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바위도 녹일것 같은 질책의 눈길이였다.
별안간 해리슨중장도 입을 다물더니 날카로운 눈매에 더 모를 세워 남일대장을 마주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심상치 않은 눈의 전쟁이 시작되였다.
인간은 자기의 사색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다. 지어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때조차 혀는 입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착실히 수행한다고 한다.
눈의 싸움속에서도 그 눈길이 침묵속에 각자의 사상을 내뿜을진대 공개적인 언어투쟁과 조금도 다를바 없다. 아니, 그것은 일종의 국제적관례와 허례허식을 동반한 외교적담판이라는 틀을 벗어났기에 내심속에서 더 격렬하게, 로골적으로, 조금도 재는것이 없이 상대방에게 준엄한 말의 줄폭탄을 퍼붓는것인지도 모른다.
《!…》
《?…》
《?!…》
《…》
회의장밖에서는 을씨년스러운 궂은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가설건물의 지붕을 두드리는 비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릴뿐 회의장안은 고요하였다. 쌍방 수석대표들의 눈싸움이 시작되자 보조탁의 공작인원, 참모성원들은 물론 회의장밖을 겹으로 둘러싼 기자들까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촬영기와 사진기만 조심스레 휘두른다.
남일대장은 두팔굽을 회담탁에 올려놓은 손을 깍지낀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해리슨의 랭랭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성글고 희슥한 아마빛머리칼과 창백한 낯빛, 눈이 불면으로 충혈진 해리슨의 기름한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외였다면 비물과 착각할수도 있을것이다.
해리슨의 눈빛은 아니, 눈길은 이상한것이였다.
그것은 이미 남일의 얼굴에 집착된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너머로 분산된 모호한것이였다. 눈의 싸움에 이미 지친 그의 눈길은 아마도 자기의 상념속으로 되돌아가 박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일의 눈초리는 오직 앞으로 향하고있었다. 그것은 거의 번쩍이는 마른 번개와도 같은것이였다.
그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 보이지 않는 결전에서 벗어나 추억이나 상상을 해볼 정신적여유를 가질수도 바랄수도 없는 그의 량심의 눈이 내부에서 또 전쟁을 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
《?…》
《…》
《…》
시간은 굼뜨게 아니, 살같이 빠르게 흐르고있었다.
해리슨이 군복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는 허둥거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눈길로 남일을 지켜보다가 별안간 벌떡 일어섰다. 눈길을 급히 떨구었다. 뒤에서 참모장교가 부축하지 않았다면 그는 볼품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해리슨중장은 급히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남일은 그냥 청동상처럼 굳어져있었다. 비소리가 커진것 같다. 사람들의 웨침이 들리고 주변은 소란스럽다.
회의장밖을 나서서 숙소로 가는 차에 오르려는데 오스트랄리아종군기자 월프레트 버체트가 급히 다가왔다.
《수석대표각하, 오늘의 침묵의 전쟁에서는 당신들이 승리했습니다. 이건 대단히 설득력있는 진리의 승리입니다.》
버체트는 격동되여 한손을 휘저었다.
비에 젖은 사진기가 우람찬 그의 몸에 매달려 흔들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의 결속은 아니지요.》
남일은 무거운 어조로 말하며 차에 들어가앉았다. 우리측 대표인 신장령이 그의 서류가방을 받아들었다.
버체트는 경련이 온것 같은 퍼런 얼굴의 비물을 손으로 뻑 훔쳤다.
《예, 옳은 분석입니다. 정전담판회의는 벌써 이태째 계속되는데 〈련합국군〉측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나오는 이상 정전이 언제 될지, 몇해후에 될지 정말 묘연합니다.…》
버체트는 갑자기 몸의 탄력이 풀려버린듯 두팔을 늘어뜨렸다. 어깨가 처지고 메고있던 사진기가 뚤렁 떨어져 진창에 박혔다. 버체트는 그냥 서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기다리시는데… 결국 모든것은 공회전에 불과하지 않는가.
방도는 무엇인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두고 그토록 마음을 쓰시고 전승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시는 장군님께 어떤 타결책을 보고드려야 하는가.…)
남일은 차창너머 비내리는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산한 구름들이 겹겹이 깔린 침침한 하늘이 확 안겨든다.
남일의 마음처럼 어둡고 무거운 하늘이였다.
2
김일성동지께서는 비가 멎자 집무실밖으로 나오시였다.
구름장들이 황급히 서켠으로 밀려가고 하늘끝이 점차 들리고있었다. 희미한 해빛이 힘들게 그 틈사리로 비쳐내리자 지겨운 장마에 지칠대로 지친 초목들이 저마끔 몸을 털며 머리를 곧추 쳐들었다.
최고사령부옆 언덕길을 따라 한참 걸으시였다.
풀숲을 헤치시다나니 장화가 방금 닦은듯 비물에 번들번들해졌다.
야산기슭의 들판에 나서시자 해가 잠간 그 눈부신 얼굴을 내민듯싶다. 바람이 잦아들고 풀잎들에령롱한 이슬이 맺혀 반짝거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야전복허리에 한손을 짚으시고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군데군데 험상하게 패인 폭탄구뎅이를 따라 비를 머금은 파란 잔디들이 눈을 아프게 찌른다. 그 잔디밭이 끝나는 애솔숲사이로 군복색같은것이 얼씬거리다가 사라져버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지중 미소를 지으시였다.
책임부관과 공정수가 끝내 몰래 따라나선것이다.
사색에 방해가 된다고 짐짓 엄하게 돌려세우셨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사실은 며칠째 빠져든 사색도 사색이려니와 두사람이 어제밤 사태에 패인 저수지제방보수작업장에 나가 주변인민들과 친위중대성원들과 함께 꼬박 밝혔기에 휴식을 주려던것이였는데… 그 충직성은 어쩔수가 없다. 이 고장은 예로부터 비가 적게 내린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이해 여름은 줄곧 무더기비다. 어제 밤에는 바람질도 심했다. 부근사람들은 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고 놀라와들 했다.
산천도 전쟁과 자연재해의 시달림을 받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눈길을 돌려 발밑을 내려다보시였다.
허리가 잘룩한 흑진주빛의 작은 개미들이 부지런히 비에 묻힌 개미굴을 수리하고있었다. 벌써 보들보들한 수수쌀같은 찰흙이 굴주변에 무둑해졌다. 성실한 개미들의 인내성이 쌓아올린 아담한 개미성이였다. 제 몸집만 한 흙을 입에 문 이악한 개미떼들은 그 누구의 독촉도 없이 가는 다리에 자개바람이 일도록 성급하게 일판을 벌려나갔다.
앞개미의 뒤를 바투 따라선 뒤개미는 무슨 장애물이 생겨 지체되면 솜씨있게 살짝 빠져달아나 도무지 교통마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혀를 차시였다.
(허, 그것들이 꽤 질서있는걸…)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색을 이어가시며 개미굴을 내려다보시였다.
개바닥쪽에서 허리가 길고 대가리가 뾰족한 말개미떼가 날파람있게 나타났다. 불청객들은 잠시 개미굴가까이에 멈춰서서 주밋거리더니 부리나케 굴쪽으로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 형세가 자못 어마어마했다. 아마 저지대의 제 굴이 비에 엉망진창이 되자 새 보금자리를 찾던 모양인지도 모른다.
싸움은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보금자리를 침범당한 개미들이 가만있을리가 없었다. 이악한 작은 개미들은 제 몸의 거의 두배가 넘는 말개미떼를 향하여 맹렬하게 돌진했다. 개미성주변에는 어느새 말개미들이 무수히 죽어넘어졌다.
《여 강덕수, 공정수! 뒤에서 술래잡기 그만하고 이리 오라구.》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신채 유쾌하게 말씀하시였다.
얼굴이 벌개진 부관들이 관목숲에서 나와 머밋머밋 다가왔다.
《여길 보오. 개미들의 전쟁이 붙었소.》
키가 작고 다부진 공정수가 닁큼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개미굴을 들여다본다.
《야, 요 작은 개미들이 보통이 아닌데…》
책임부관은 주변을 두릿거리다가 꼿꼿한 자세로 서서 말씀드렸다.
《최고사령관동지! 방금 련락이 왔는데 남일 총참모장이 개성을 출발했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리를 펴시였다.
《남일동무가 떠났단 말이지? 그래, 내가 어제 임무준것은 어떻게 됐소?》
《꿩고기완자를 푼푼하게 다 만들었습니다. 이 공정수동무가 엉큼합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의 지시를 어기고 다른 꿩을 세마리나 가져왔거던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짐짓 엄한 눈길로 공정수를 내려다보시였다.
《어떻게 된거요?》
공정수가 얼굴을 붉히며 엉거주춤 일어서서 자기 직속상관을 민망스레 올려다보았다.
《사실은 장군님께서 품들여 키우시는 꿩들이 아까와서… 그런데 최용건보위상동지가 사연을 듣고 우정 세마리나 가져왔습니다.》
《분명 우리 공정수가 떼를 썼겠지?》
《아닙니다, 장군님. 보위상동지는 지난해 장군님께서 꿩알 세알을 주시면서 한번 깨워보라고 하실 땐 자신이 없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젠 열마리가 넘는다면서…》
《허허허… 보위상동무가 그 우둘우둘하는 성미에 수고했을거요. 실은 말이요, 저 남일동무가 속탈이 좀 있는데 꿩고기가 약이거던. 보름전에 보니 몸이 축갔소. 적들과의 정면대결이 간단칠 않아!》
김일성동지께서는 검은구름이 밀려가는 서남쪽하늘가에 눈길을 주시였다. 전선 어디선가 포성이 울리는듯싶다. 벌써 이태째 계속되고있는 정전담판, 공격과 방어, 역습과 대결은 전선에서만이 아니라 회담탁에서도 벌어졌다. 전쟁사에 류례없는 이 마라손회담에서 어쩌면 쌍방은 다 지쳤을수도 있다. 천연스레 얼굴을 맞댄 회담탁뒤에서는 쉴새없이 작전도가 펼쳐지고 배비변경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한치의 땅을 위하여 치렬한 공방전이 계속되였다. 장시간 계속되는 딱딱한 론조에 이제는 목소리들마저 쉬여버렸다. 그러니 마지막계선인가?… 다시 사색의 불꽃이 일었다.
남일동무가 수고할테지.…
적들이 떠드는 제공권우세설과 《영예로운 정전》… 남일도 최용건도 이 암초앞에서 주저하고있다. 어찌 보면 이건 벌써 정신력에서의 후퇴나 답보를 의미하고있었다. 전쟁의 결속은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있는가. 남의 집에 뛰여든 강도배들이 오히려 제편에서 뻔뻔스러운 요구를 들고나오는판이다.… 어제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가 있는 회창으로 떠나던 최용건의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그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눈밑의 검버섯이 더 진해진것 같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깊은 고뇌에 잠기시여 눈길을 돌리시였다.
잔디밭과 애솔사이의 좁은 길로 누군가 급히 달려왔다. 껑충껑충 뛰는 급한 달림새가 부관장 리을설이 분명하였다.
리을설이 다가와 정중히 보고를 하였다.
《무슨 일이요?》
리을설의 앞가슴과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선군단장들과 최사부참모장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회창에 갔던 최용건민족보위상도 방금 들어섰습니다.》
《숨을 돌리오. 뭘 그리 덤벼치면서 그러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땀에 젖은 그의 목덜미를 훔쳐주시였다.
리을설의 몸의 탄력이 풀려버렸다.
《저… 사실은 장군님,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최사통신결속소 녀성군인들과 직속구분대 군관들사이의 배구결승경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저더러 심판을 서달라기에…》
리을설이 난처해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허허허… 을설동무가 산에서부터 경기심판이야 잘 섰지. 빨찌산들이 심판에선 공정성이 기본이라면서 동물 늘 들볶았지. 그래, 통신동무들이 이번엔 자신있다오?》
전번경기에선 여지없이 패했던 그들이였다. 그때부터 짬짬이 이악하게 훈련하더니 당당하게 결승의 마당에까지 올라온것이다.
공정수가 벙글거리며 대답올렸다.
《장군님, 보름전부터 부관장동지와 보위상동지가 협동해서 녀성군인들의 훈련을 지도하고있습니다.》
《허, 그렇다? 이거 심판의 공정성이 보장될가?… 그래서 을설동무가 열성이댔구만.…》
《장군님, 직속구분대 선수들속엔 전쟁전 전문선수단경력을 가진 군관이 둘씩이나 있습니다. 진짜공정성을 위해서…》
리을설이 얼굴을 붉히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폭소를 터뜨리시였다.
《하하하, 동무네 경기의 공정성은 내가 직접 보겠소. 배구장으로 가기요. 그리고 최사성원들과 전선지휘관들도 다 데려오시오. 남일동무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있으니 머리도 쉬울겸 말이요.》
얼굴이 환해진 리을설이 공정수에게 무슨 지시를 주는것 같다.
해가 퍼지자 메새들의 지저귐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아주 상냥해진 여름날의 정오답다.
3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야전차창이 드릉드릉 울었다.
남일은 이마에 메산자를 그린채 지꿎게 시창앞을 쏘아보며 사색에 잠겼다.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정전협정의 세부조항들이 기본적으로 합의되고 우리의 주동적인 발기들에 적이 힘들게 동의를 표하면서 결승선으로 육박하던 담판은 결국 커다란 암초에 부딪치고말았다. 군사분계선이라는 전쟁의 시작이자 종말이기도 한 근본문제에서 숨가삐 멈춰선것이다.
남일은 가는 숨을 내쉬였다. 이것은 그 어떤 외교적수완이나 의지, 결단성, 분석판단과 론리적주장 등 적극적인 회담자세로만 돌파할 성격의 난점이 아니였다. 용서없는 두 세계의 심각한 정치군사적대결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쟁의지를 철저히 반영한 해결책이 없겠는가. 적들도 이젠 거덜이 날대로 났다. 최근 아이젠하워의 연설들과 렬강들간의 온갖 으르렁거림은 조선전쟁의 시급한 종결을 서두르고 다그치려는 어쩔수 없는 론조들로 채색되여있다.
력사의 흐름은 멈추어세울수 없다. 하지만 적들은 체면을 잃지 않으려 억지를 부리고 큰 어부지리를 얻어 정전이라는 참패에 월계관은 못되더라도 그 무슨 색다른 영예의 벙거지를 씌우려 하고있다.
서방통신들은 말한다. 북조선의 한걸음 물러섬은 미국의 두걸음, 세걸음의 양보를 가져올것이며 그 즉시로 전쟁의 마차는 멎을것이라고… 여기에는 이웃나라 군사문제전문가들도 앞장서고있다.
《양보라…》
남일이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자 뒤자리에 앉은 신장령이 한숨을 내쉬였다.
《수석대표동지, 어쨌든 우리가 최고사령부앞에 현실성있는 타결책을 가지고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중국측대표들도 난감해하고있습니다.
며칠전에 만난 쏘련대사동무도 지금의 회담정황에서 일종의 약간한 양보제스츄어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암시하더군요.》
신장령은 힘들게 말을 내뱉더니 눈길을 떨구었다.
남일은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나직이 말했다.
《여보 신동무, 그게 생각해보고 하는 소리요? 단순한 지역적양보로 끝날줄 아는가? 이건… 전쟁에 대한 조선혁명가들의 관점문제란 말이요. 나아가선 적에 대한 굴욕적인것으로 인식될수도 있소. 우리에겐 절대로 한걸음도 물러설 길이 없소!》
《그렇다면…》
남일은 차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발이 설펴지고있었다. 성급한 여름소나기가 한숨 쉬려고 물러서려는것 같다.
황주를 지나 대동강기슭까지 오자 비는 그만 멎어버렸다.
《운전사동무, 차를 좀 세워주시오.》
남일은 무뚝뚝하게 내뱉고나서 차에서 내렸다.
강변에는 뿌연 안개가 낮게 떠돌고있다. 강언덕의 고사총진지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는것이 눈에 뜨인다. 비가 멎었으니 미제침략군폭격기들이 젖은 활주로를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할것이다.
남일은 강기슭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곳은 이태전 그가 정전담판개최를 위하여 개성 래봉장으로 떠나던 자리이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유리창이 번쩍이는 육중한 리무진차에 그를 태우시면서 명쾌하게 말씀하시였다.
《이건 우리가 로획한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가 타고다니던 차요. 전쟁전에 무쵸가 이 차를 타고 서울거리를 지나갈 때에는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측 수석대표가 남조선주재 미국대사가 타던 차를 타고 정전담판에 나가는것은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측 수석대표가 이 승용차를 타고다니면 벌써 사람들이 우리가 승리자이며 미제침략자들은 패배자라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혁명군대의 높은 존엄과 신심, 드센 배짱이 있어야 승리할수 있소.》
장군님께서는 그때 벌써 정전담판의 기본성격과 사명을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설사 전쟁이 우리 대에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 원칙에서 한치도 물러설수 없다. 승리자에게는 양보가 없다.…
남일은 홱 돌아서서 야전차쪽으로 다가갔다.
그냥 차안에 앉아있던 신장령이 달라진 남일의 근엄한 얼굴표정을 놀라서 올려다보았다.
《전속으로! 최고사령부로 멈춤이 없이 달리기요.》
야전차가 질풍같이 달리자 강바람이 훅훅 밀려들어 차창을 때렸다.
남일은 눈을 감았다.
그래, 이 전쟁의 승리적전진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전승은 오직 우리 수령님을 믿을 때 이 땅에 다가올것이다. 우리 수령님의 사색과 불멸의 자욱우에 전승과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다.
멀리 북쪽하늘끝에서 구름사이로 강렬한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내렸다.
4
《봉쇄하라! 7번, 왜 머뭇거려!》
《3번, 공간! 공간을 메꾸라!》
《제길, 야, 왜 강타할 틈을 주는가!》
리을설이 풀기없이 호각을 불 때마다 공정수가 길길이 뛰면서 녀자선수들을 되게 다그어댄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배구장에 눈길을 주고계시였으나 자주 생각에 잠겨드시였다.
모든 사물현상에는 상대적인 의미가 담기기마련이다. 평화시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행정도 자기의 고유한 시대적법칙을 가지고있다.
전선은 방어에로 넘어가 벌써 두해를 넘겼다.
마라손선수들은 이미 어쩔수없이 들어선 주행길에서 지쳐버려 속도를 덜지도 높이지도 못하고 상대의 눈치만 보고있다. 아니, 점점 떨어지는 기력을 거의 운명적으로 감수하고있다.
이제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결승선을 향하여 폭발적인 속도를 내여 승리의 월계관을 차지할 힘은 어디에 있는가.
육체, 물리적한계점. 전쟁도 궁극에는 인간들이 하고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것은 인간의 사상과 의지, 정신력의 대결이다.
오직 강한 정신력만이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것이다.…
또 리을설의 호각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저 녀자배구선수들만 보더라도 벌써 그 정신력에서 지고있다. 열정적인 공정수가 아무리 소래기를 질러도 소용없다.
최용건동무는 훈련조직을 어떻게 했는가. 꿩을 키우는걸 보나 《솟는 샘》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짓는걸 보면 역시 겉은 덜퉁스러워도 속은 세심하고 웅심깊은 인간이다. 하지만 전선형편과 전쟁결속문제를 두고 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다.
이마에서 메산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영향이 판문점에 나가살고있는 남일에게까지 미친듯싶다.
전쟁전 선수경력을 가진 군관이 둘씩이나 끼여있다는 직속팀선수들은 시물시물 웃으며 재치있게 경기를 운영해나간다. 결국 첫 회전에서는 통신병팀이 어방없이 패하고말았다.
락심한 리을설에게로 직속팀 주장인 그 전쟁전선수―키꺽다리대위가 느릿느릿 다가왔다.
《심판원동지,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뭐요?》
리을설이 잔뜩 이마살을 찌프리고 키꺽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경기가 너무 싱거운데 우리 팀은 열다섯알이 아니라 열알을 가지고 하겠습니다.》
《뭐? 열알로?》
리을설이 어처구니없는듯 종잡을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녀자팀속에서 대뜸 항의가 일어났다.
김일성동지곁에 앉아 찌뿌둥한 안색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최용건이 불쑥 일어섰다.
사색에 잠기셨던 김일성동지께서 그를 쳐다보시였다.
《보위상동무, 왜 그러오?》
《장군님, 아무래도 제가 좀 삐쳐야 할것 같습니다.》
《됐소. 그 문젠 공정한 리을설심판원이 해결할거요. 그보다도… 감독격인 보위상동문 녀성팀에게 새 전술안을 제기해야겠소. 내가 직접 말하면 남자팀이 의견을 가질수 있소, 허허. 이자 가만히 보니 남성팀에도 전형적인 공격수는 없소. 녀성군인팀 주장에게 귀띔하오, 7번선수와 3번선수를 돌려가며 무조건 강타를 하라고. 공격만이 진짜방어로 될수 있소. 신심을 가지고 무자비하게 공격하라고 하시오. 공격을 하다가 져도 탓하지 않겠다고 전하시오.》
최용건의 얼굴이 검붉어졌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해볼만 합니다. 사실 저 7번선수는 공격에 실수가 없었는데 괜히 주눅이 들어가지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저 공정수는 들어와앉으라고 하오. 오히려 방해만 하누만, 허허허. 대담하게 공격하게 하시오.》
최용건이 녀성팀쪽으로 씨엉씨엉 다가갔다.
한참만에 녀성팀쪽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또다시 사색에 잠겨드시였다.
전선의 하늘, 불그레한 화광속으로 재빛연기가 타래쳐오른다. 새들이, 폭음에 놀란 새들이 때없이 그 하늘가에 날아올라 방향없이 불안스레 떠돈다. 그 애처로운 새들사이로 검은 폭격기들이 날개를 번쩍이며 끼여든다. 새들은 작아지고 검은 날개들은 점점 커진다.
작전지도가 느닷없이 머리속에 그려지셨다. 그것은 섬세하고 생동한 화폭이였다. 날카롭고 명백한 정경이였다.
부호들속에 숨은 방어선들, 군단들과 포병구분대들, 어떤 전선은 깊은 만처럼 우리쪽으로 길게 구부러들어온것도 있다.
저걸 펼수는 없는가?…
저걸 펼 때 우리 지휘성원들의 얼굴의 메산자도 펴질테지.… 땅크의 무한궤도소리, 아츠러운 비행기동음, 예광탄의 불줄기… 문득 날카로운 탄성이 들린다. 호각소리가 꽤 여물게 들린다.
그 호각소리에서 리을설의 흥분이 느껴진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눈길을 배구장으로 돌리시였다.
두번째 회전의 분위기가 달라진것이 대뜸 알린다.
녀성군인들이 이악을 부렸다. 자기들의 여유있는 제의가 기각된때문인지 남자팀은 상대의 강타를 아량있게 받는다. 어쩌면 몇점은 너그럽게 먹어주려는 심산같다.
두 팀이 나란히 열알계선을 넘어서자 문득 형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격에 점차 숙련이 되고 정확한 타격에 신심이 생긴 녀성팀이 기세좋게 련속 조겨대자 직속팀에서 은연중 혼란이 일어났다.
두번째 회전은 아슬아슬하게 녀성팀이 이겼다.
마지막회전이 시작되였다. 직속팀은 흥분하여 방어로부터 공격에로 이전하였으나 실수가 많았다.
키꺽다리가 몇번의 강타가 실패하자 급기야 다시 방어로 되돌아갔다.
《조겨라! 쌍순간타격! 7번! 야, 공간으로 타격하라!》
최용건에게 끌려들어왔던 공정수가 어느새 경기장곁에 또 다가가 목에 피대를 돋구었다.
《보위상동무, 저걸 보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옆을 돌아보며 말씀하시다가 허거프게 웃으시였다.
열이 오른 최용건도 경기장쪽에 다가가 웅크리고앉은채 무슨 손짓을 열심히 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다시 사색에 잠기시려는데 경기장에서 또 탄성이 터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다가 전선지휘관들의 옆에 서있는 남일을 발견하시였다.
《남일동무, 왔구만. 뭘 그리 꿔온 보리자루처럼 서있소. 여기 와앉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일의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옆에 앉히시였다.
《얼굴색이 왜 그 모양이요?》
남일의 눈주위에는 무엇인가 미묘한 마음속 불안같은것이 내비쳐있다.
《최고사령관동지, 이렇게 배구경기를 보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남일은 눈길을 내려깔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남일이가 어깨에 무거운 별을 한줌 달고도 전선문제때문에 옹색해하고있구나. 대적과 맞선 우리 일군들의 자세 아니, 신념이 문제다.
이건 우리 혁명가들의 인생관문제와 직접 련결된다, 인생관!…)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다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였다.
《우리 통신병처녀들이 대단하지 않소? 보오, 저 드센 공격앞에 상대팀이 꼼짝을 못하누만.》
《저도 아까부터 지켜보았는데 마감에 와서 형세가 홱 달라졌습니다. 전혀 상상밖입니다.》
충격을 받은듯 남일의 얼굴에 류다른 빛갈이 얼른거렸다.
《허허, 차라리 남일총참모장에게 심판을 맡길걸 그랬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임부관을 부르시였다.
《강동무, 남일 총참모장이 아직 식사전이겠는데 빨리 식당으로 안내하시오.》
《아닙니다, 장군님… 우린…》
《빨리 점심을 하고 전선문제를 토의하기요. 동무가 좋아하는 꿩고기완자도 있습니다.》
《장군님!》
남일은 얼굴이 상혈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기전망이 확고해지자 안색이 조금 환해진 최용건이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장군님, 이젠 됐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쳐다보시였다. 어쩐지 최용건의 뚝한 얼굴에서 자신심같은것이 새롭게 엿보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보위상동무가 훈련지도를 준 녀성팀이 지면 되겠소? 문제는 경기에 나선 선수들의 배심이거던, 하하하.》
최용건이 무안한듯 숱진 눈섭을 꿈틀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정말 이 일을 두고 새삼스럽게 생각되는것이 있습니다. 장군님, 저 7번을 단 통신군관이 1차남진때 우리 담당간호원이였습니다. 어찌나 승벽이 센지…》
《그러니 이거 편역을 들지 않을수 없었구만. 우리 녀성군인들이 대단해. 무조건 이기려는 그 정신이 얼마나 귀중한가. 나는 저런 강타정신이 마음에 듭니다.》
경기가 녀성군인들의 승리로 끝나자 주변군인들과 전선군단장들이 앉은 언덕쪽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락심한 키꺽다리대위가 애매한 리을설을 붙잡고 못살게 굴었다. 물주전자를 든 공정수가 신바람이 나서 녀성군인들속에 묻혀 돌아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지휘관들과 함께 최고사령부 집무실로 향하시였다.
5
벽을 반나마 가리운 커다란 작전지도를 등지고 앉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색에 잠기시여 군사지휘관들을 둘러보시였다.
《이자 남일동무의 정황보고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들었는데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격식을 차릴것도 없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봅시다.》
김일성동지의 눈가에는 한순간 피로가 몰린듯싶었다.
한 군단장이 최고사령부성원들을 넌지시 살피고나서 눈길을 번쩍 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쟁을 지금상태로 더 한대도 미국놈들의 제안에 귀기울일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이 전쟁에서 맥이 빠질대로 빠졌는데 이제 머리를 수그릴겁니다.》
군단장이 걸걸하게 말씀올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52군단장동무야 십여년을 산에서 싸웠는데 먼저 물러설리 있나. 그 락천주의는 마음에 들지만 전쟁은… 빨리 결속해야 하오. 이건 력사와 시대의 성숙된 요구이기도 합니다. 동무들도 지금 평양에서 전승열병식준비를 하고있는줄은 다 알고있지 않소.》
최용건이 결연한 눈길로 얼굴을 들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미제가 막판에 와서 강도적론리를 세우는것은 이통에 제 안속을 채우려는 검은 속심이 깔려있기때문입니다. 우리측의 배심있는 강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자는걸 제기합니다.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력들은 여러가지 정치경제적사정으로 성과없는 전쟁이 지속되는것을 달가와하지 않고있습니다. 조금도 양보없는 강한 인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을 인자라…》
집무실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들 눈길을 떨구고 생각을 더듬었다. 최고사령부 일군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전쟁의 종결은 미룰수 없는 력사의 주객관적조건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갈수 없습니다. 이제 조그마한 물리적 아니, 정치적효과나 충격을 주면 결과는 나타나게 되여있습니다.》
《그 효과라는게 뭐요?》
최용건이 못마땅한듯 뚝하게 물었다.
《?!…》
일군이 머뭇거리자 김일성동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부총참모장동무, 갑자르지 말고 툭 터놓고 이야기해보시오.》
일군은 용기를 얻은듯 남일쪽을 얼핏 스쳐보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리슨은 결국 아이젠하워의 립장을 대변하고있습니다. 전쟁의 결속에 대해서는 서방만이 아니라 형제나라들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있습니다. 베리야를 숙청한 쏘련당지도부도 우리에게 상징적인 양보분위기를 보인다면 미국지배층을 조정할 의향을 표시했습니다. 위신스끼가 그걸 통보해왔습니다.》
《…》
집무실안에 다시 무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그것은 좀전과 질이 다른 류다른 침묵이였다.
《남일동무, 중국동무들의 의견은 어떻소?》
김일성동지께서 물으시였다.
남일이 경건한 자세로 조용히 일어섰다.
《보위상동무가 련합군대표로서 부사령원을 만나 함께 왔지만 그들도 사실 초조해하고있습니다. 이제 베이징에서 도착할 중국측대표동무네가 중국지도부의 소식을 가지고올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생각깊은 눈길로 작전지도쪽을 스쳐보시였다.
문가에 리을설이 굳어진 얼굴로 나타났다.
《최고사령관동지, 오늘 오전 미제침략군비행대가 함주군과 흥남일대를 폭격했습니다. 그리고 승호리주변과 수안포로수용소에도 또 무차별폭격을 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군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눈가에서 푸른 섬광같은것이 번쩍이였다.
《미제침략자들이 저들의 오만한 제공권을 인식시키려고 발악을 하고있소. 오죽하면 제놈들의 포로가 있는 수용소까지 몇차례나 폭격하겠는가.
문제는 이 전쟁을 대하는 우리 일군들의 신념입니다.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는 혁명가의 자세입니다. 동무들, 놈들이 제공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배짱있게 제지권을 주장해야겠소. 무엇이 두려워 침묵하겠소. 땅에 경계선이 생기면 자연히 하늘도 분리되는 법이요. 하늘의 선이 땅을 규제하지 못하거던.
전쟁의 승리를 안아오는데서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대에서 물러서시였다. 몹시 더우신듯 목단추를 풀어놓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최용건을 돌아보시였다.
《최용건동무, 우리가 빨찌산때 오늘과 같은 난관을 한두번만 겪었는가? 눈보라 우는 광야에서 적들에게 완전포위된적도 있었고 혁명이 준엄한 시련에 부딪쳐 앞이 캄캄한 때도 있었소. 그래, 그런 시련과 좌절속에서 우리 빨찌산들이 어떻게 결심했고 어떻게 행동했소?》
김일성동지의 음성은 점차 격해지셨다.
《장군님, 우린 그때마다… 장군님만을 믿고 결사전으로 뚫고나갔습니다.》
최용건이 눈빛을 빛내이며 젖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렸다.
《옳소. 군장인 최용건동무가 적의 포위를 뚫고 찾아와 우리밑에서 평전사로라도 싸우겠다고 눈물을 흘리던 일이 어제같습니다.… 그래 우리가 백두산에서 고난과 시련앞에 동요하거나 주저앉아 적의 눈치를 본적이 있는가, 억천만번 죽더라도 붉은기를 들고 원쑤를 치자는 혁명적신념으로 대담하게 뚫고나갔지. 적들이 발악할수록 드센 공격으로 내밀어 돌파구를 냈거던. 역경에 처할수록 대담하게 공격전으로 맞받아나간것은 우리 혁명가들의 투쟁방식이고 나의 인생관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정에 젖은 눈길로 지휘관들을 둘러보시였다.
최고사령부 집무실에는 엄숙한 고요가 깃들었다.
최용건과 남일의 얼굴에 감동과 격정의 뜨거운 빛이 실려 넘실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먹을 틀어쥐시고 두사람을 믿음어린 시선으로 일별하시고나서 조용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지휘성원동무들, 전쟁의 승리는 오직 정의의 힘, 강력한 혁명무력의 의지와 담력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이건 이 전쟁을 대하는 우리 일군들의 혁명관문제입니다.
나의 결심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지난번의 두차례의 타격전에 이어 전전선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강력한 타격을 가하자는것을 제기합니다. 미친개는 몽둥이를 휘둘러야 짖던 입도 다물고 내빼는 법이요. 미제침략자들에게 영웅적조선인민의 본때를 보여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지시봉을 드시고 지도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우리가 며칠전부터 구상한것인데 우선 정전후 유리한 지대를 차지하려면 적어도 이곳과 이곳, 금성 남쪽 우리측으로 만곡된 적의 돌출부를 장악해야 합니다. 적은 지금 금화와 북한강좌안의 수키로메터전선에 6개 사단을 1제대로, 남조선괴뢰군 11보병사단을 기본으로 하는 2군단을 예비대로 배치하고있소. 강력한 타격을 진행하고 공격성과를 확대하여 적의 종심인 백암산, 흑운토령까지 진격해야 합니다. 이 대규모공격작전은 전승을 안아오는 마지막전쟁서사시로 될것이요.》
흥분한 군사지휘관들이 격동된 눈길로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았다. 지금의 정세하에서 너무나도 비상한 작전계획이였다.
52군단장이 눈길을 번쩍였다.
《장군님, 이제야 가슴이 후련합니다.
우리 군단은 방금 지적해주신 방향에서 351고지남쪽 339고지와 811.7고지 남쪽 대대장고지까지 전과를 확대하겠습니다.》
주타격방향에 서려는 로병의 결심이 력력히 담긴 제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동무의 제의를 모든 전선지휘관들의 결의로 믿겠습니다. 동무들! 타격시간은 7월 13일 21시입니다. 이 타격전이 결속되면 정전담판회의에도 극적인 변화가 생기리라는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전선을 앞으로 더 내밀어야 합니다. 나의 정신은 공격정신입니다.》
김일성동지를 우러르며 남일은 큰 호흡으로 가슴을 들먹이였다.
전선사령부산하 군단장들과 최고사령부 지휘성원들이 격정에 젖은 눈빛들을 주고받았다.
최용건이 옆에 앉은 남일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그는 석쉼한 목소리로 열에 떠서 중얼거렸다.
《여보 남일동무, 이젠 됐소. 됐단 말이요. 해가 솟았소. 우린 해뜨기 전의 어둠속에서 헤맸단말이요. 한생을 받들면서도 그 뜻을, 그 정신을 다 따르지도 배우지도 못했거던. 인생을 헛산것같아. 하지만 이젠 됐소!…》
그는 눈물이 글썽해서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고나서 리을설을 부르시였다.
《부관장동무, 벌써 저녁이 다 되였구만. 모두들 출출할게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본때있게 싸우자면 속이 든든해야지. 거 시원한 국수나 말도록 하오.》
《알았습니다.》
리을설이 씩씩하게 대답하고 방을 나섰다. 밖에서 공정수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뒤따른다.
전쟁의 마지막타격시간이 다가오고있었다.
6
전선이, 전선이… 몸부림쳤다. 전진했다.
7
그것은 분명 기적이였다. 인간이 창조한 신비한 전쟁의 서사시였다.
1953년 7월 13일 밤, 전선에서는 아군련합부대들이 일제히 불의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14일 오후 16시현재 공격계선에서 행동하는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적의 방어선에 거대한 돌파구를 내고 10키로메터이상 전진하였다. 15일에는 적의 종심인 백암산, 흑운토령까지 진출한 련합부대들이 계속 남쪽으로 공격성과를 확대하였다.
인민군련합부대들의 강력한 타격에 질겁한 《유엔군》사령관 클라크와 8군사령관 테일러, 남조선괴뢰군 륙군참모총장 백선엽이 군용기를 타고 전선에 날아들어 방어대책을 강구했으나 이미 물먹은 흙벽신세였다.
열흘간의 강력한 타격으로 적은 7만 8천명이 살상포로되였고 엄청난 수의 땅크와 수백대의 비행기를 잃었다.
이 빛나는 타격작전으로 아군은 160평방키로메터지역을 전진했다.
1953년 7월 24일 미제침략군측의 일방적인 요청으로 진행된 정전담판회의에서는 쌍방이 차지한 현전선을 그대로 군사분계선으로 최종확정하는 력사적인 문건이 급속도로 채택되였다.
이날 전선은… 고요하였다.
해리슨중장의 눈길은 시종 회담탁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들이대는 촬영기의 렌즈를 피하려는것인지도 몰랐다.
최종문건을 교환하는 순간 해리슨은 문득 눈길을 들어 남일대장을 쏘아보았다. 그것은 한찰나의 예리한 불줄기같이 날카롭고 섬찍한것이였다.
《?…》
《!…》
《?!…》
《!…》
해리슨의 눈가에 고통스러운 회심과 좌절의 어두운 빛갈이 얼른거리더니 급기야 그것마저 꺼지고말았다.
해리슨중장은 황급히 몸을 돌려 추운듯 옹송그리고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회담이 끝나고 정전협정조인식과 관련한 실무급회담이 이어지자 남일도 회의장밖으로 나왔다.
해빛에 눈이 부셨다. 장마도 이제는 걷히려는것인가. 그는 몸을 비칠거렸다.
정신적긴장때문인지 빈혈이 온것 같다. 누군가 그의 팔을 부축했다. 신장령과 버체트기자였다.
흥분한 월프레트 버체트의 가느다란 눈가에서 물기가 번쩍이였다.
《수석대표각하, 이런 기적이, 이런 신비가 어디서 온겁니까?…》
남일은 신장령의 팔을 물리치고 꼿꼿이 서서 빙그레 웃었다.
《이건 우리 혁명무력이 틀어쥔 정의의 힘의 결과요. 알겠소? 기자선생.》
《예? 정의의 힘이요?…》
《그렇소. 우리 장군님의 정의의 힘, 위대한 공격정신이 낳은 력사의 산아란 말이요. 이걸 세계에 진실하게 격조높이 전하시오!》
남일대장은 머리를 쳐들고 소리내여 웃었다.
만 이태만에 터치는 큰 웃음이였다.
그의 청높은 웃음소리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일대장은 불쑥 웃음을 거두더니 엄격한 낯색으로 되돌아가 승용차쪽으로 급히 걸어갔다.
전승의 그날까지는 이제 72시간이 남아있었다.
주체91(200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