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류 이 남

한메터…

또 한메터…

적들은 계속 밀려든다.

대대가 차지한 가마봉고지우로 폭탄과 포탄이 꼬리를 물며 날아와서는 불기둥을 솟구쳐놓았다.

쿵쿵…

쾅쾅…

바위도 타고 나무도 타고 흙도 탄다.

부딪치는 소리, 갉히는 소리, 휘파람소리에 뒤따르는 폭음…

쓩― 하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공간을 찢으며 날아지났다. 시커먼 포연으로 뒤덮인 하늘은 온통 총포탄에 맞아 꿰지고 구멍이 숭숭 뚫려 너덜너덜한 넝마쪼각을 련상케 한다.

대대는 뜻하지 않는 정황에 직면하게 되였다.

적들이 제놈들의 일부를 떼내여 급속한 기동으로 대대의 뒤통수를 치려고 계획했던것이다. 앞에서, 뒤에서 그리고 량옆에서 일시에 공격을 들이대여 대대를 아예 전멸시키려는 심산이였다.

《어림도 없다, 개자식들!》

대대장련락병 영수는 웅웅거리는 포탄의 동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우에 우뚝 올라서서 적들쪽을 바라보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다부진 몸매며 꽉 졸라맨 혁띠는 척 보기에도 꽤 만만치 않은 인상을 준다. 타원형의 얼굴에 안으로 움푹 패여들어간 눈확이며 류달리 넓고 큰 되박이마, 돌덩이처럼 딴딴한 주먹, 바그라진 어깨는 전쟁의 시련속에서 성장한 전사의 체취를 감득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지금 련락임무를 수행하고 대대지휘감시소로 돌아오고있었다. 그의 시선이 뙈기밭 한가운데 쿡 박혀있는 폭탄에 가멎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터지지 않은 불발탄이였다.

그걸 보느라니 불현듯 고향생각이 났다. 어머니의 거쿨진 손길이 섬세하게 추억되는 작은 뙈기밭… 고향의 강냉이밭, 그 한가운데 강냉이대를 목표물로 하여 돌팔매질을 정신없이 했었지.

그날 저녁 어머니는 말없이… 말없이 밭고랑을 타고다니면서 돌들을 주어냈다. 그 모습을 볼 때 핑― 눈물이 고여오르면서 어린 가슴에도 자책의 물결이 흘러들었다. 허나… 영수는 바로 지금 그때의 고향의 어머니가 체험한 그 심정을 가슴깊이 느끼였다. 그것은 애착이였다, 자기 땅에 대한 애착!…

증오에 찬 눈으로 폭탄을 쏘아보던 그는 자기도모르게 중얼거렸다.

《소가지가 못된 놈새끼들!》

온몸에서는 분노의 피가 끓어올랐다.

《어디 두고보자. 전투가 끝난 다음 내 네놈들의 머리끄뎅이를 잡아당겨다가 이 폭탄을 들어내게 할테다.》

마치도 그놈들이 앞에 있기라도 한듯 주먹을 쳐들고 을러메였다.

영수는 봉우리로 뛰여올랐다, 임무를 받고 떠나기 전의 일을 머리속에 그려보며.

적은 많고 우리는 적다. 실로 엄청난 차이였다.

우리에겐 수류탄 몇상자, 보총… 기껏해야 중기 몇문… 적들은 철갑땅크에 신형포, 화염방사기…

고지우에서 내려다보면 온통 번들거리는 철갑모만 보일뿐…

엄페호에는 매캐한 초연이 감돌았다.

2중대장과 전화하던 대대장의 얼굴이 돌연 무겁게 이그러졌다.

대대장 황창곤은 키가 꺽두룩한 중대장이 앞에 서있기라도 한듯 허공의 한점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휙― 주먹을 들어 통나무를 다듬어놓은 작전대 한쪽모서리를 쿵! 내리쳤다.

《그러니까 동무까지두…》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겁을 먹은게 아니요?! 적들의 력량이 많은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그쯤해야 한번 싸워볼만 하지 않는가?》

영수는 키가 늘씬하고 얼굴이 거무틱틱한 2중대장의 쾌활한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 2중대가 차지한 고지익측전방에 엄청난 적의 병력이 밀려들고있다.

대대장은 음―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내심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밖으로 터져나오는 괴로움이였다. 시커먼 눈섭이 번쩍― 우로 쳐들렸다. 그밑으로는 퍼런빛이 뿜어나오고있었다.

《여보 2중대장, 동문 여직껏 싸움을 헛했구려.》

《예?》

《전투에서 제일 필요한게 뭔지 아오?》

중대장은 무슨 대답을 하는것 같았으나 대대장은 그 말을 듣지도 않았다. 자기 말만 계속했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결전의 길에서는 오직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철의 신념만이 필요한거요!》

그것을 중대장이 왜 모르랴.

하지만… 이런 정황에서?…

영수는 입안에 침이 말라들었다. 아래우어금이를 꽉 앙다물었다.

그 심정을 부정하듯 대대장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니, 그 누구도 신념을 잃어선 안되오! 더우기 우리 지휘관들은 말이요.》

엄페호주변에 갑자기 커다란 바위쪼각이 폭풍에 날려와 쿵― 하고 들이박힌다. 그러나 대대장은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았다.

《중대를 지휘하여 적의 공격을 견제해야 하오!》

대대장은 송수화기를 놓았다. 무슨 생각이 났던지 조금전에 쑥 집어넣었던 담배쌈지를 도로 꺼내더니 두툼하게 담배를 둘둘 말았다.

속이 한줌만 하여 숨소리조차 죽이고 대대장과 전화통을 번갈아보던 영수는 그제야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러다가 대대장이 자기가 한숨쉬는 모양을 보지 않았는가 하여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영수는 재빨리 양철주전자에서 물을 따라서 고뿌에 가득 채웠다.

《대대장동지, 드십시오.》

머리를 힐끗 돌려 영수를 보던 황창곤대대장은 아무말없이 고뿌를 받아 쭈욱 기울였다. 애기주먹만 한 목젖이 오르내리면서 꿀떡꿀떡… 소리가 났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킨 대대장은 후― 하고 길게 내뿜더니 영수에게 물었다.

《떨리지?》

그 물음은 많은 의미를 담고있었다.

그러나 영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쭈밋거리다가 에라, 솔직하게 말한다 하고는 《예, 떨립니다.》하고 대답했다.

정말 영수는 떨렸다. 포탄이 쾅쾅 터질 때마다 속이 안심치 않았다.

과연 이 전투가 어떻게 끝날가?

대대장은 영수의 대답에 《음… 떨릴거야!》 하고 되받아외우면서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땀발이 내돋은 번들번들한 이마에 도랑같은 주름이 건너갔는데 그리로는 깊은 생각이 너울쳐가는듯 했다.

영수는 대대장의 명령을 받았다.

대대지휘부가 자리잡은 엄페호에서 몇백메터가량 떨어진 곳에 2중대가 있었다. 그들은 익측방어준비를 갖추고있었다.

대대장은 그곳에 급히 다녀오라는것이였다. 2중대장에게 줄 임무를 간단히 이야기한 다음(실은 그다음것이 골자라고 대대장은 참고부호를 달았다.) 대대장은 말했다.

《2소대에 있는 력사학자아바이에게 이 담배쌈지를 돌려주라구. 전번에 날 쓰라구 줬는데 아마 지금쯤 이 쌈지생각이 날게야.》

《알았습니다.》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잠시 멈추어세웠다.

《그리구 3소대의 선우명식을 만나서 이 대대장이 이제 전투가 끝나면 해당화를 보겠단다구 이르라구. 만약 이번까지 죽였다간 대대장의 권한으로 처벌을 주겠단다구… 알았지?》

《예?》

영수가 처벌이라는 소리에 눈을 심각하게 뜨자 황창곤대대장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하면 다 알아.》 하고 말했다. 롱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니까.…

《알았습니다.》

영수는 발사된 총알처럼 내달렸다. 그의 입에서는 토막토막 짧은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해당화… 담배쌈지… 처벌…》

아무리 되뇌여보아도 도무지 리해할수가 없었다.

대대장은 언제나 짤막한 명령과(그것은 두말할것없이 군사술어로) 때로는 눈빛으로 전투를 지휘하군 하였다. 그 어떤 사소한 군동작도 허용하지 않는 대대장동지가 오늘은 별스럽다고 생각되였다.

 

《버러지같은것들! 잘두 쏘아댄다.》

방금 대대장이 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2중대로 갔을 때 그 력사학자아바이가 하던 말이 어느새 영수의 입에도 올랐다.

2중대 참호에 뛰여드니 제일먼저 반겨준것이 바로 그 력사학자아바이였다.

《오, 우리 꼬마가 왔군!》

보병삽으로 참호를 파다가 두팔을 쩍 벌리고 련락병을 그러안는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옆에서 와하― 폭소가 일어났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평남도 문덕이라든가… 그쪽에서 목수일을 했다는 말도 있고 또 어느 시골학교 력사교원을 했다는 말도 얼핏 들은적이 있다. 그러나 영수가 보기에는 아바이의 래력이 신통치 않았다.

목수와 력사교원!… 이건 너무나도 차이나는 직업이 아닌가!… 글쎄 진짜목수라면 몰라라…

하긴 그 말에는 일정하게 공감이 갔다.

대대장동지의 청탁을 받고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서 작전대를 만들어놓았으니까… 비록 우둘투둘해서 외형적미는 갖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걸 만든 공로로 차렷담배 석대씩이나 받아피우지 않았는가! 하지만 력사교원다운 체취는 도저히 풍기지 않았다.

《담배쌈지 말인가? 내가 대대장동지한테 주었는데 돌려준다? 하긴… 우리 로친네가 밤새 만들어준거야. 전선으로 떠나올 때 배낭에 넣어주더군. 야, 로친네가 보고싶어 죽을 지경이야.…》 하며 담배쌈지를 꼭 그러안을 때 영수는 눈물이 찔끔 나게 웃었다.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는 농사군아바이였다. 흙살이 박힌 거쿨진 손, 바오래기같은 피줄이 울퉁불퉁 돋은 그 손에 하얀 분필을 쥐여본다는것이 우습강스러웠다. 아바이 더하기 력사학자 해놓고보면 불과 물이라는 소리와 꼭같았다. 영수가 입에 올린 버러지라는 말도 아바이입에서 나온것이다.

꾸물거리는 적들을 굽어보더니 《버러지같은것들! 거미장을 지져먹었나? 좀 빨랑빨랑 올라올게지. 영 맥을 못 춘다니까…》 그리고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 보병삽을 잡던 아바이!…

영수는 황창곤대대장이 한 말을 토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

그랬더니 아바이는 《오, 우리 선우명식의 해당화 말인가? 허허, 대대장동지한테 단단히 걸렸군. 여보게 명식이! 처벌을 받지 않겠으면 전투가 끝난 다음 제꺽 보여드리라구, 응?!》

그리고는 한쪽눈을 끔쩍하였다.

그러자 선우명식이가 능청스레 말을 받아넘겼다.

《체 학자아바이, 걱정 탁 놓으시라요. 나도 속궁냥이 다 있어요.》

그러자 아바이는 제김에 버럭 성을 냈다.

《자네 대대장동지한테만 잘 보이면 안돼. 이 력사학자를 다시 보라구. 이래뵈두 내 이제 전쟁이 끝난 다음에 자네의 애인이 주었다는 해당화꽃송이를 가지구 력사소설이라는걸 쓸지 알겠나. 여보게 꼬마(아바이는 영수를 보고 말했다.), 동무두 나한테 잘 보여야 해. 혹시 동무이름두 얼핏 써놓을지 아나?》

영수는 《체!》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와하― 폭소가 터졌다.

(정말 재미나는 아바이야.)

영수는 돌아오면서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알고보니 력사학자라는 칭호는 대대장동지가 붙여준것이였다. 실은 짐작한바대로 농사군출신이였다. 아바이가 늘쌍 담배쌈지이야기만 되풀이하니 대대장동지는 《아바이, 그걸 이제 전쟁이 끝난 다음 력사박물관에 진렬해놓아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그러니 아바인 이 전쟁의 증견자로 될수 있구요. 력사학자가 될수 있단 말입니다.》하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는데 그날부터 어찌된 일인지 아바이는 자칭 력사학자로 되고말았던것이다.

정말이지 이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지으면 아바이말마따나 우리 대대의 전투위훈이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질지도 몰라! 력사책에는 몰라도 인민군신문에 조그마하게만 나도 얼마나 영광이겠는가!

이런 생각이 미친 영수는 제가 지금 하고있는 공상이 어처구니없어보이는지 픽― 하고 웃었다.

어쨌든 이런 불도가니속에 희열에 넘친 웃음을 짓고 랑만적인 생각에도 잠겨본다는것이 특이한 일이 아닌가!

아니,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례사로운 일이였다.

영수는 자기자신이 실지로 지니고있으면서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힘을 새롭게 느꼈다. 이 힘을 느끼라고 대대장은 영수를 2중대에 보냈는지도 모른다.

영수는 대대지휘감시소쪽을 향해 나는듯이 달려갔다. 등뒤에서는 포연이 휘말려왔다.

저쪽― 지휘감시소쪽에서는 그 무엇을 예고하는듯 고요… 고요만이 흐르고있었다.

17살… 아직은 꿈을 더 키워야 할 나이에 제 키보다 더 큰 보총을 메고 전쟁마당에 뛰여든 소년…

코밑에 솜털이 갓 덮이기 시작하였으며 집에서 어머니의 보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영수가 이제는 탄우속을 뚫고 달렸고 따스한 아래목에서 쌕쌕 잠들던 때와는 달리 차거운 달빛이 흐르는 너럭바위밑에서, 때로는 불타는 전호가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이런 날과 날속에서 원쑤에 대한 증오심은 자라고자라 억대우같은 사나이들만이 질수 있는 무거운 배낭도 서슴없이 메고 행군길에 오르는것이 보통일로 되여버렸다.

전쟁은 이렇게 그를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시켰다.

영수가 포연속을 뚫고 대대지휘감시소에 다달았을 때…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눈에 확― 안겨오는것은 쓰러진 황창곤대대장의 모습이였다.

《대대장동지!》

와락 그에게 안겨드니 가슴속에서는 피가 내배여 군복앞자락을 넓게 적시고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영수는 한옆에 서있는 위생병에게 물었다.

위생병은 모든것이 제 잘못이라는듯 아무말없이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여… 대대장동지가 이렇게…》

영수는 위생병의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진정하오. 대대장동진… 고지정면을 에돌아올라오는 적땅크를 까부시고 그만…》

그때에야 영수는 아까 대대장이 지휘부성원들에게 임무를 주어 각 중대로 내보내던 생각이 났다.

그러니 단독으로 전투를 지휘하다가 달려드는 적땅크를 까부시고 그만 전사한것이였다.

《대대장동지! 눈을 뜨십시오, 대대장동지!》

《…》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방금전까지 《돌파조를 뭇고 가장 약한 고리에 파렬구를 내야 하오!》 하면서 우둘투둘한 손가락으로 작전대우에 놓인 퇴색한 지도에 쭈욱 선을 긋던 대대장이였다.

《비둘기같은 심장을 가지고는 이 전쟁을 치르지 못해! 머리수를 세여보기 전에 그 심장을 두드려보아야지, 심장을!…》

그리고는 작전대를 쾅쾅 두드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목소리는 왜 울려나오지 않는가? 아…

주위가 왜 이렇게 조용할가? 차라리 옆에서 폭탄이라도 날아와 터졌으면!…

전쟁에서 죽음이란 어디에 있었던가.

아! 이런 용맹한 지휘관은 죽음이라는걸 모르지 않았는가.…

영수는 그제야 이것이 결코 환각이 아님을, 부정할수 없는 현실임을 알게 된 자기자신이 몸서리쳐져 머리를 싸쥐고 몸부림을 쳤다.

《아! 대대장동지!》

눈물 한방울 새여나오지 않는다. 누가 이런 죽음앞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가? 땅을 치고싶어도, 피터지도록 주먹으로 바위를 짓부셔놓고싶어도 그렇게 할수 없는 영수였다.

이때 어디선가 《대대장동지!》 하는 부름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영수는 작전대밑으로 길게 드리운 송수화기를 잡았다.

분명 누군가가 무엇이라고 말하고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감도가 약해? 제기랄것! 대대장동지! 2중대장 박영식 전화합니다.》

박영식? 아, 대대장동지에게서 전화로 추궁을 받던 꺽두룩한 2중대장…

《돌파조는 준비되였습니다. 명령만 주십시오!》

명령… 명령?!…

영수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여기에는 명령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독 자기만이 홀로 서있음을 깨달았다.

《…나두 이젠 알았습니다, 대대장동지가 왜 나에게 그런 가혹한 말을 했는지… 사실 난 떨었댔습니다, 비겁하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젠 모든걸 알았습니다. 대대장동지가 왜 련락병에게 담배쌈지를 주어보냈는지… 그리구 선우명식의 해당화두… 에잇!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 그래서였구나!

영수는 대대장이 자기를 2중대에 보낸 리유를 더욱 똑똑히 느끼였다.

《전투는… 병사들의 승리에 대한 신심과 락관, 그들의 심장속에서 우러나오는 자각과 애국심에 의해서 승리적으로 결속되여가는것이요.》

이것은 황창곤대대장의 말이였다.

전투는 시작에 불과했지만 대대장은 벌써 승리를 확신하고있었다.

또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영수는 송수화기를 부서지도록 틀어쥐였다. 하지만 할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랴!

대대장동지의 희생을… 그 희생을 알려주어야 한다? 만약 그러면? 아니 아니야, 대대장동지의 희생을 알려주어서는 안돼. 살아있어, 그는 죽지 않았어.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기까지 생각한 영수는 머리를 저었다.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밭 한가운데 박혔던 폭탄이 다시금 어른거렸다. 그 시커먼 폭탄이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스럽고 고결하고 숭고한 모든것을 짓뭉개버리며 깊숙이 파고드는것 같았다.

어머니의 눈물짓는 얼굴이며 쓰러진 대대장의 모습… 개새끼들!…

무엇인가 비장한 결심을 한듯 영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볼편근육이 푸들거렸다. 그의 가슴속에 억제할수 없는 신념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는 분연히 송수화기를 입에 가져다대였다.

《파렬구를 내야 합니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대의 운명을 걸머졌다는것을… 아니, 조국의 운명이 돌파조에 달렸다는것을!… 대대장동지가 명령했습니다.》

전쟁은… 그 어떤 기존공식과 관례도 서슴없이 깨뜨리면서 이렇듯 전사가 지휘관을 대신하도록 만들었던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전사의 즉흥적인 충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심의 깊은 곳에 그득찬… 바로 그속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신념에 의한 필연적인 행동이였다.

그러나 영수의 마지막말마디는 중대장에게 전달되지 않은것 같았다. 그때 엄페호밖에서 또 하나의 포탄이 날아와 강한 진동을 일으켰던것이다.

《알았습니다!》 중대장의 기백에 찬 대답소리가 울려왔다. 송수화기의 진동판이 찌잉― 하며 울렸다.

또다시 누군가의 둔탁한 목소리가 송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여보시오, 후후…》

제 말이 이쪽켠으로 나가지 않은줄로 생각됐는지 아니면 송수화기에 돌가루가 묻었는지 계속 입바랍을 넣었다.

선우명식이였다.

영수는 목이 꽉 메워버렸다.

(대대장동지가 희생되였습니다.)

그러나 그쪽에서는 여전히 제 말만 하고있다.

《대대장동지! 선우명식입니다. 처벌을 받으면 난 정말 야단입니다. 해당화꽃송이를 보자고 했지요? 고향처녀가 준 꽃송인 시들어버린지 옛날입니다. 하지만 대대장동지! 진짜꽃송이는 내 심장속에 영원히 피여있을겁니다. 그걸 보여드리지요.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우명식의 목소리는 분명 희열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비장한 노래소리로 바뀌였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

 

돌파조원들의 노래소리는 우뢰소리와도 같이 폭넓고 웅심깊었으며 메아리가 컸다.

영수는 송수화기를 천천히 아래로 내리웠다. 그의 어깨는 점점… 더 세차게 들먹거렸다.

아, 불사의 심장을 지닌 사람들!

또다시 전투는 계속되였다. 돌파조는 우측에 있는 적들을 족치면서 철사로 엮어놓은것 같던 포위진에 펑 하고 구멍을 뚫어놓았다.

파죽지세로 공격해오던 적들은 고지아래쪽으로 밀려가며 도토리알처럼 흩어져버렸다.

련합부대의 총공격을 알리는 세발의 신호탄이 재빛하늘로 눈부시게 솟아오른것은 바로 그때였다.

《만세!》

이글이글 타오르는 저녁노을에 고지는 불붙듯이 보인다. 타다만 나무등걸과 움푹 패인 구뎅이들, 바위돌우에도 선혈인듯 붉은 노을빛이 물들어갔다.

영수는 입을 꼭 다문채 고지우에 서있었다. 승리의 기쁨과 전우들을 잃은 슬픔이 동시에 휩쓸어든다. 그의 손에는 대대장이 쓰던 크지 않은 수첩이 쥐여져있었다.

《이 전쟁은 그 어떤 희생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사람들, 철의 신념을 기둥으로 가슴에 박은 장군님의 전사들만이 할수 있는것이다!》

대대장이 써놓은 글이였다.

영수의 눈가에는 물기가 번쩍이였다. 그러나 마음은 묵직하였다. 이 순간에는 그 어떤 억센것이 가슴속에 깊숙이 자리잡는것 같다.

바로 강철의 신념이 있었기에 불바다속에서 승리를 꽃피우지 않았는가. 황창곤대대장은 지금 그의 곁에 없다.

그의 눈앞에는 담배쌈지며 함초롬한 꽃송이가 어려왔다. 바로 거기에 대대장의 넋이 깃들지 않았는가.

그것은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된 귀중한 조국이였다. 때문에 그는 영원히 살아있다. 조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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