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1(2012)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처녀의 마음
최윤의
동창생
그때 평양에서는 년례적으로 진행하군 하던 전국료리경연이 성황리에 진행되고있었다.
성철은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어느 한 이름난 식당 료리사로 경연에 참가하였다. 식당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은 부러움과 경탄을 아낌없이 터치였다.
첫날부터 자신만만한 자세로 경연에 참가했는데 심사자들로부터 괜찮은 평을 받고있다는 식당책임자의 은근한 암시까지 받으니 마음은 더욱더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료리란 어쨌든 예술이고 창조이니만치 료리사의 미묘한 감정변화가 반영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성철은 뜻밖에도 대학동창생을 만나게 되였다.
복도를 지나가던 성철은 뒤늦게야 도착한 어느한 단체와 부딪치게 되였다. 커다란 려행가방이며 지함들을 무겁게 든것을 봐선 아마 대단히 먼곳에서 오는 사람들 같았다.
《어느 도에서 옵니까?》
성철은 특별히 짐이 더 많아보이는 맨앞에 선 처녀의 짐을 맞들며 물어보았다.
《평양시단체입니다.》
《예?》
성철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아 되물었다. 바로 그 순간 성철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처녀도 성철을 마주보는 순간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맞들었던 지함이 툴렁 땅에 떨어졌다.
《은혜동무!》
《성철…동무!》
옆에서 걷고있던 사람들이 의아한 눈길로 번갈아보다가 먼저들 가버리자 넓다란 홀에는 그들 두사람만 남게 되였다.
《이게 얼마만이요? 그새 왜 편지 안했소? 전화라도 할것이지.》
성철은 격해서 부르짖었다.
《아이참, 좀 조용히…》
은혜는 눈을 빛내며 웃기만 하였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익은 량볼에서 보조개가 유난히 드러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성철은 자기가 지금껏 저 귀염성스러운 보조개 패인 얼굴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던가를 문득 깨달았다.
그는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은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아니? 성철동무.》
《응?》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렬차를 타고오다나니.…》
《아니아니, 그런건 아니요. 어서 가기요.》
성철은 제 먼저 바닥에 놓인 짐을 덥석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무게때문에 다시 놓고말았다.
《아니, 이건 뭐길래 이리 무겁소?》
《그건 경연에 내놓을것들이예요.》
《이렇게 많단 말이요?》
《그래요.》
그때 멀리에서 은혜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혜동무! 이쪽으로… 빨리!…》
그러자 은혜는 그 무거운 지함을 혼자 들어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난 가봐야겠어요. 또 만나게 되겠지요 뭐.》
성철은 뒤따라 걸으며 지함을 함께 들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은혜의 걸음을 따를수가 없었다.
은혜는 벌써 저쯤에서 뛰여가는듯이 재빨리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전화하겠지?》
《예.》
성철은 속이 허전해졌다. 마치 다 잡았던 새를 놓쳐버린듯 했다. 한편으로는 기쁨에 설레며 심장이 화닥거리는데 왜 한쪽에서는 허전함이 피여오르는지 알수 없었다.
경연장에 들어가앉아서도 왜서인지 마음은 불안스레 높뛰였다. 경연에 대한 생각은 잠간사이에 그의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린듯 했다.
그대신 자기의 조용하던 심연속에 돌을 던진 은혜라는 한 인간 아니, 함께 공부한 대학동창생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였다.
은혜… 이름만 불러보아도 가슴속에는 그 어떤 향기가 그윽히 풍겨오는듯싶은 처녀, 길다란 속눈섭사이로 물기머금은 눈동자가 수집은듯, 겁에 질린듯 내다보던, 학급에서 그리도 조용하고 침착하게 공부를 잘해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에 두고 바라보던 그 은혜가 졸업때 배치를 앞에 두고 뜻밖의 일을 벌려놓을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희천발전소건설장》이라고 쓴 파견장을 보여주며 작별하자고 말할 때 성철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둘다 평양의 이름난 식당 료리사로 배치되게 되여있었던것이다.
《은혜, 이건 뭐요?》
성철은 어성을 높여 물었다.
《후에 말하겠어요, 후에 다…》
은혜는 머리를 숙이며 입속으로 말했다.
《아니, 난 지금 알아야겠소, 지금!》
성철은 은혜의 결심 그자체보다도 자기와 한마디 토의해볼 의향이 전혀 없었다는데 대한 불만과 반발심이 솟구쳐서 견딜수가 없었다. 은혜의 눈에 비친 자기는 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저 지나가던 손님은 아니였겠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말없이 자기에게서 멀어지려고 결심했단 말인가.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쌓아온 동창생이라고만해도 그렇게 훌쩍… 가버릴순 없지 않는가!
《성철동문 대학적으로도 소문난 수재이니 꼭 성공할거예요, 최첨단을 돌파하는…》
《누가 그런 말이나 듣겠다오?》
은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것 같았다.
《성철동무,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예요. 꼭 성공하세요.》
《그럼 동문 성공하지 않겠소? 그게 대학졸업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요? 그래 동무가 발전소건설장에 가서 무엇을 한다고 그러는가 말이요. 그러자고 그렇게 료리학을 공부했소? 아니면 이제라도 공학박사가 되려고 결심했소?》
《아니, 그렇게 성급히 단정하진 마세요. 제게두 생각이 있어서 떠날 결심을 한건데…》
은혜는 성철을 마주보며 방긋이 웃었다. 보조개가 피여났다. 마치도 그 작은 보조개는 성철의 마음속에서 사납게 일어번지고있는 무분별한 격랑을 순간에 눅잦혀주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닌듯 했다. 그들은 수도의 거리를 함께 걸었다.
《성철동무도 잘 알겠지만 우리 중학동창들은 해마다 설날이 오면 학급장동무네 집에 모두 모이군 하지요. 올해 설날이였어요. 나도 약속을 지켜 거기로 갔어요. 헌데 나와 가장 가까웠던 혜영동무가 안 보이겠지요. 서운한 마음으로 다른 동무들과 마주앉아 한해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 혜영동무한테서 말이예요. 〈은혜, 미안해. 난 지금 희천발전소건설장에서 이 전화를 하고있어. 동무들한테로 막 달려가고싶었어. 난 지금 여기에서 후방사업을 맡아보고있는데 매일 매 시각 네 생각이 얼마나 간절한지 몰라. 네가 배운 모든걸 통채로 떠옮겨 내 머리속에 넣을순 없을가. 위대한 장군님께선 여기 발전소건설자들을 제일아끼고 사랑해주시는데 장군님의 은정어린 음식감들을 볼 때마다 나한텐 그것을 다루어낼 기술과 기능이 부족해 막 속상하다. 왜 그전에 좀더 공부하지 않았는지 후회된단다.〉
〈난 그런것두 전혀 모르고있었구나.〉
〈네가 졸업론문을 쓰느라 밤을 꼬박 밝히며 고심한다기에 알리지 않았어.〉
〈그래두 알릴걸 그랬어. 내 아무리 바쁜들 혜영동무 바래줄 시간쯤 못 냈을가봐? 후날 총화짓겠어, 응?〉
〈알겠어.〉
〈헌데 내가 뭘 도와야 할가?〉
〈그저 네가 보던 책들이나 둬권 보내주면 고맙겠어, 아무거나. 여기선 온통 건설공학책들만 돌아가니 료리상식 같은건 도무지 구해내지 못하겠어.〉
이렇게 되여 난 혜영동무에게 보낼 기술서적들을 가지고 체신소에 가게 되였어요. 소포로 보내려고 했지요. 헌데 거기에서는 우편물취급원과 한 어머니가 싱갱이질을 하고있었어요. 굉장히 큰 지함을 놓고말이예요. 우편물취급원은 그 어머니에게 이런것은 수화물로 보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는데 그 지함을 보니 한쪽면에 〈희천발전소건설장〉이라는 글이 씌여있는것이 아니겠어요. 알고보니 그 어머니의 아들이 거기에서 일하고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의 큰 지함과 나의 자그마한 책꾸레미는 너무나도 대조를 이루고있었어요. 난 부끄러워서 그것을 차마 내놓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리고말았어요. 하지만 속이 막 바글거렸어요. 책을 기다릴 혜영동무도 혜영동무였지만 내 마음속이 편안치 않아 견딜수가 없었어요. 그날 밤 끙끙 갑자르던 난 끝내…》
《가기로 결심했다 그거겠소?》
《성철동무, 제가 민족료리를 연구하는 이 길에 들어선것도 궁극에 가서는 인민이 좋아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는 료리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겠어요. 만일 내가 화려한 식당, 안온한 일터만을 찾으며 일하려고 한다면 혜영이나 그곳 건설자들이 나를 사랑하게 될가요? 아니, 그들은 나를 다 몰라도 내 량심이 우선 떳떳치 못할것 같았어요. 더구나 내가 쓴 론문도 콩음식가공에 대한것이였으니 그것을 희천에 가서 직접 현실에 도입하면서 더 완성시키면 그것이 얼마나 리상적인것이예요?! 대학당위원회에선 이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었어요.…》
성철은 할 말이 없었다. 은혜의 결심이 하루이틀사이에 생겨난것이 아님을 알았다.
허나 반발심은 더욱 솟구쳤다.
각자에게는 선택의 권리라는것이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의무도 있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자격이 없다. 한갖 동창생의 자격으로 그것을 막는다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밤을 새우며 공부하였던가.
왜 그렇듯 피나게 탐구하였고 열렬히 론쟁을 하였던가. 때로는 목숨을 내댈 용단까지 내며 위험한 실험에도 뛰여드는 연구사도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발은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셨다. 우리 민족료리를 세계적인 료리로 발전시켜야 할 중대하고도 영예로운 과제가 우리들 매 사람의 어깨에 무겁게 실려있는데 기껏 생각한것이 건설자가 되는 길이란 말인가. 건설자와 료리연구사라는 두 직종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찾아볼수 없지 않는가.
성철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은혜동무, 난 동무를 보낼수 없소.》
은혜는 망연한 눈길로 성철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말했는데도 리해가 안돼요 하는 눈빛이였다.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말해요?》
은혜는 웃으며 말했다.
《동창생의 자격이지. 함께 과학탐구의 길에 들어선 동창생의 자격으로 그리고 또…》
성철은 다음말은 차마 입밖으로 낼수 없었다.
은혜를 가까운 벗으로 생각하는것은 자기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언제한번 《사랑》이라는 말을 꺼내본적 없는 그들이였다.
《동무가 보내지 않는다고 해두 난 꼭 가고야말겠어요. 난 꼭 가야 해요.》
《그건 무엇때문이요?》
《말하지 않았나요, 날 기다린다고.》
《그거야 책이지 어디 동무요?》
은혜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성철을 쳐다보았다.
《가만.》 문득 성철이 걸음을 멈추며 은혜를 바라보았다.
《혹시 거기에서 어떤 남동무가 기다리는건 아니요?》
《예?!… 그럴수도 있지요.》
은혜의 눈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연해지기도 하고 허둥거려지기도 하던 그 눈길은 아래로 내려깐채 좀처럼 들리워지지 않았다.
《전 가겠어요.》
은혜가 퍽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철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은혜는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잠간만 은혜동무, 동창생으로 충고하는데 제발 자기의 본분만은 잊지 말아주오. 료리사로서의 본분 말이요. 먼 후날 후회가 없기를 바라오.》
《난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그리구 발전소건설장으로 가는 일이 결코 민족료리를 연구하는 길에서 벗어난것은 아니라고 봐요.》
《어디 동무 좋을대로 해보오!》
그렇게 성철은 은혜와 헤여졌었다. 자기의 권고를 뿌리치고 떠나간 처녀인데도 왜 자주 심장속에 찾아와 마음을 괴롭히였던지는 지금도 알수 없었다. 리해할수 없는 그것이 그를 자주 생각하게 한 원인으로 되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
경연의 나날은 성철에게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케 해주었다.
나이도 많고 주름살도 많은 수수한 녀인들과 갓 학교를 졸업한 젊은 료리사들이 놀라운 경험과 기술로써 예술성과 과학성이 담보된 뛰여난 료리들을 펼쳐놓아 참가자들과 심사원들에게서 절찬을 받군 하였다.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는 주방안에서 묵묵히 흘러가던 료리사들의 삶이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 전국의 인민들에게 소개되고있었다.
이번료리경연에 군중심사원으로 참가한 성철의 아버지가 어느날 저녁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우며 집으로 들어섰다.
《성철아, 어서 나와 인사해라.》
뜻밖에도 아버지의 뒤에는 은혜가 서있었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으로 귀뿌리까지 빨개진 처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릴듯 하였다.
《이 처녀가 바로 내가 희천발전소건설장에서 만났던 그 처녀다. 뭘하구있냐, 인살 해야지. 어서.》
성철은 아버지의 말대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은혜는 뜻밖에 벌어진 일에 어쩔줄 모르고 서있는데 성철의 아버지는 감동깊은 어조로 처녀를 소개하는데 여념없었다.
원호물자를 가지고 희천발전소건설장에 갔던 성철의 아버지는 여름철의 찌는듯 한 날씨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의사는 현장치료를 나가고 숙소에는 두 처녀만이 남아있었다.
혈압이 높은데다 심한 갈증까지 겹쳐든 성철의 아버지는 눈을 꼭 감고 누워서 헐떡이고있었다.
그때 한 처녀가 얼음쪼각을 띄운 산유 한고뿌를 내미는것이 아닌가.
로인은 그것을 단숨에 들이키였다. 정신이 맑아지고 머리가 거뜬해졌다.
《어떻습니까, 아바이.》
량볼에 보조개가 깊숙이 패이는 귀여운 처녀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뭐요?》
《연두부로 만든 산유입니다.》
《연두부…》
로인은 새큼달달한 산유가 묻은 입술을 감빨았다.
《한고뿌 더 드세요.》
처녀가 내미는 두번째 고뿌의 산유도 단숨에 다 먹어버렸다.
《아이구, 이제야 숨이 좀 나가는구만.》
《아바이, 이 료리사동문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이리루 달려와 참 많은걸 연구해서 돌격대원들에게 힘을 주었답니다. 이 연두부산유랑 그리구 연두부질문제랑… 우리 실정에 맞게…》
옆에 있던 처녀가 자랑스레 늘어놓는데 점심시간이 되여 돌격대원들의 대렬이 씩씩하게 들어서는 바람에 이야기는 중단되였었다. 그때 처녀의 얼굴이며 일솜씨가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성철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동안은 계속 그 처녀얘기뿐이였다.
바로 그 처녀가 은혜였던것이다.
성철은 씽긋 웃으며 아버지에게 소개하였다.
《아버지, 이 동무가 바로 저의 대학동창생인 그 은혜동무입니다. 언젠가 제가 말씀드렸지요.》
《뭐라구?!》
이번에는 아버지가 놀라서 두사람을 번갈아쳐다보았다. 혈색좋은 아버지의 얼굴에 벙글거리는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러니까 내 며느리감이란 말이지.…》
《어마나!》
은혜는 울상을 짓고 어찌할줄을 몰라 성철을 쳐다보았다.
성철은 조용히 새롭게 인사를 다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은혜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아버님, 제 인사를 받아주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어쩌면 일이란 이렇게 저절로 척척 제 곬으로 들어서는걸가. 우연일가 필연일가. 성철은 혼자 빙그레 웃고 섰는데 아버지가 청높은 목소리로 지청구를 들이댔다.
《아니, 귀한 손님을 그냥 세워둘셈이냐. 어서 안으로 모셔야지!》
어데론가 나갔다가 아직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철이 부엌으로 들어가려는데 은혜가 먼저 나섰다.
《손님이 어떻게 첫날부터 부엌에 들어가겠소?》
《동무와 함께 들어가면 되지요 뭐.》
하긴 성철이로서는 단 1분이라도 은혜와 함께 있고싶은 심정이였다. 누가 부엌에 들어가든 무엇때문에 이 방, 저 방에 갈라져있어야 한단 말인가.
부엌문을 꼭 닫고 부질없이 떠오르는 웃음을 누르며 함께 저녁준비를 하였다.
《생각나오? 첫 실습을 하던 날 료리사모자를 규정대로 쓰지 않아 선생님에게서 된욕을 먹었지.》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항상 잊혀지지 않아요, 료리사의 복장착용은 단순히 문화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만 필요한게 아니라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의 발현이라고 하던… 병사가 군복을 단정히 입어야 자기의 정신력을 최대한 발휘할수 있듯이 료리사는 복장차림에서부터 철저히 복무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비판하셨지요.…》
《은혜동문 대학시절의 하루하루를 죄다 기억하고있구만.》
《잊을수가 없지요 뭐. 그때 희천으로 떠나가는 나에게 하던 동무의 아픈 말까지 죄다 기억하고있어요.》
《오. 그거…》
성철은 어줍게 웃었다. 그때 자기가 너무 일면적으로만 생각했던것 같았다.
《그새 어떻게 지냈소? 처음 해보는 생활이니 몹시 힘들었겠지.》
은혜는 대답대신 가벼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것을 힘들다고 말해야 하겠는지… 체험도 많았고 가지가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찬 그 나날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하겠어요.》
은혜는 바깥에서 반짝이는 불장식등을 바라보며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집식구들과 동무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렬차에 오른 순간 은혜의 눈가에는 작별의 서러움때문인지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정다운 평양을 떠나 심심산골에 가서 일할 생각을 하니 아뜩한 생각도 들었고 위구심도 났다.
성철이의 말이 귀전에 자꾸 되살아났고 어머니의 근심어린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꽤 할수 있을가.)
성철의 말대로 내가 후회하게 되진 않을가. 연구사업과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일을 하나로 밀착시킬수 있을가.
트렁크에 넣은 졸업사진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성철의 얼굴, 학급동무들의 얼굴, 용기를 잃지 말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가야 한다던 담임교원의 이야기도…
영원히 그들속에만 있고싶던 은혜의 생각은 건설장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달라지고말았다. 거창한 대건설의 교향악속에 뛰여든 자그마한 한소절의 선률토막이라고나 할가, 언제 지난날의 추억속에 파묻혀볼 사이가 없었다.
돌격대원들 한사람한사람의 어머니가 되여야 했고 친누이가 되여야 했다.
아침에 벌써 점심,저녁준비를 생각해야 했고 조금만 틈이 생겨도 돌격대원들의 작업복과 신발, 장갑을 빨아 말리우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칠새없이 들어오는 온 나라의 성의가 깃든 지원품들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색다른 음식감들을 볼 때마다 심장이 끓어오르고 눈물이 앞을 가리우군 하였다.
어느날 혜영이와 함께 발전소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에게 갔던 은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어려있는 콩우유자동설비를 보게 되였다. 콩비지도 그렇게 가공처리되여 군인건설자들이 매끼 콩음식을 떨구지 않고 공급받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연두부에 대해 몸소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며 그것이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소. 헌데 우린 아직까지 병사들에게 연두부를 정상적으로 먹이지 못하고있소. 연두부질문제가 걸렸거던.…》
후방일군의 이 말이 은혜의 가슴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연두부의 질이 문제란 말이지.…
현실속에는 과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실천적문제가 그 얼마나 많았던가!…
그날부터 은혜는 연두부의 질을 높이는 문제를 자기의 연구과제로 정하였다. 탐구와 독서의 밤이 흘러간 뒤 깊은 밤에도 혼자 연두부를 만들어보며 걸린 문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질좋은 연두부를 만들었을 때 혜영이와 식당일군들은 물론 돌격대원들은 또 얼마나 좋아들 하였던가.
《연구사동무, 우린 오늘계획을 넘쳐수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밥공장에서 연두부를 기딱 막히게 만들군 했는데 오늘 이걸 보니 어쩐지 집에 온것 같구만요.》
《어머니품에 안긴것 같진 않구?》
돌격대원들의 이런 허물없는 롱담속에 자기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은혜는 자기의 연구를 더 심화시키리라 마음다졌다.
어느날 혜영이 심각한 얼굴로 말하였다.
《은혜, 우리가 만든 연두부에 대한 소문이 지금 온 건설장에 자자하단다. 다른 려단들에도 우리가 만든 연두부방법을 배워줄수 없을가?》
은혜는 언제든지 자기의 곁에서 친언니가 되여주고 어머니가 되여주던 혜영이의 웅심깊은 얼굴을 감동깊은 눈매로 바라보았다. 덜렁거리는것 같아도 역시 돌격대에서 하루라도 더 일한 그가 달랐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다 배워주자, 다른 도에서 온 건설려단들에도 모두. 어때?》
《역시 대학졸업생이 다르거던. 그러다간 세계적인 판도에까지 나갈지 몰라.》
《그럼 더욱 좋지! 조선에서 시작된 콩음식의 전례를 생각해볼 때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가.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선김치나 콩된장도 맨처음엔 이렇게 만들어졌을게 아니야!》
《그러니 우린 지금 세계적인 인기품을 창조해내는 격이로구나. 안 그래?》
《암, 그렇구 말구요!》
두 처녀는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힘든줄도 몰랐고 피곤한줄도 몰랐다.
은혜가 일하는 식당은 연두부 만드는 방법을 배워주는 곳이 되여버렸다. 그가 만든 연두부의 질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하며 우정 찾아와 맛보는 후방일군들도 한둘이 아니였다.
그러면 은혜는 량볼에 꼭꼭 보조개를 찍으며 《별것이 아닙니다. 밥을 지을 때 열처리를 잘해야 맛있는것처럼 연두부도 같답니다. 그러자면 순서를 잘 짜고들어야 합니다.》하면서 차근차근 말해주군 하였다.
때로는 그것을 혜영이가 대신하군 하였는데 개방적인 성격인 그 처녀의 굵고 높은 목소리를 두고 녀자답지 못하다느니, 속삭임 한번 못해보겠다느니 하고 놀려대면서도 돌격대원들은 그를 다 좋아하였다. 모두가 좋아하는 처녀인 혜영이에 비하면 은혜는 너무도 조용하고 침착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해도 혜영이가 있어야 했고 실험에 필요한 물자를 타려고 해도 혜영이가 함께 가주어야만 해결되였다.
은혜가 그러한 자기의 성격을 고치게 된것은 그로부터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때 부엌문이 벌컥 열리며 성철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아니, 령감이 이야기하던 그 처녀연구사가 뭐 누구라구?》
어머니의 손에는 고기며 과일이 든 구럭이 들려있었다.
은혜의 얼굴은 다시금 빨갛게 익어버렸다.
성철은 행복이 다가오는듯 한 예감을 느꼈으나 은혜의 이야기가 중단된것이 아쉬웠다. 그가 은혜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것은 경연이 거의 끝나갈무렵이였다.
처녀의 마음
그날 저녁 성철은 두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자기의 목적을 이룰수가 있었다.
료리사복을 그냥 입은채 면회장소에 나온 은혜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일은 무슨… 어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우.》
《왜요?》
《난 그럼 모처럼 평양에 올라온 동무와 산보 한번 해볼 권한이 없단 말이요?》
《아이, 누가 듣겠네. 모두들 바빠하는데…》
《경연두 거의 끝났는데 뭐가 그리 바쁘오?》
성철의 립장은 강경했다.
은혜는 그러는 성철에게 눈을 곱게 흘겨보였으나 잠시후에는 연한 미색의 봄가을외투를 차려입고 나왔다.
번쩍이는 수도의 불장식등들이 그들의 머리우에서 꽃보라마냥 빛을 뿌렸다.
《평양은 참 아름다워요.》
성철은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은혜의 옆모습을 말없이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성철동문 처음 만났을 때 절 욕했지요. 왜 소식을 전하지 않았느냐구. 사실은 간 첫날부터 난 마음속으로 편지를 썼어요. 나의 생각, 내가 본 모든것, 기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온갖 일들을 동무와 마음속으로 주고받으며 일을 시작했던거예요. 난 언제한번 동무의 곁을 떠나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아마도 소심하고 부끄럼 잘 타는 나의 성격의 밑바닥엔 바로 이것이 작용했는지도 몰라요. 내가 나의 좁은 세계속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것은 어느 겨울이였어요. 그날 우린 연두부를 가지고 군인건설자들을 찾아가게 되였답니다. 마침 식사준비가 한창인 때여서 우린 곧장 주방칸에 들어갈수 있었어요. 한쪽에선 뽀얀 김을 뿜어올리며 국가마가 끓고있는데 향긋한 마늘냄새를 풍기며 그곳 후방일군이 직접 료리를 하고있었어요. 반짝거리는 주방도구들은 이름난 식당에 온 느낌을 주더군요.
〈오늘 누군가 생일을 맞게 되는가부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곳 후방일군은 싱긋 웃기만 하더군요. 연두부를 쏟으려고 그릇안을 들여다보니 거기엔 더 질좋은 연두부가 가득차있었어요. 그들도 질좋은 연두부를 만들어 먹고있었어요.
〈어느 대학을 나왔습니까?〉
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어요.
〈난 군관학교를 나온것밖에 없는데요.〉
나는 그때에야 인민군대는 가장 훌륭한 혁명적군인정신의 창조자들이 모인 선군혁명대학이라는걸 다시한번 느끼게 되였어요.그 일군은 료리를 끝내자 우리들을 이끌고 식사칸으로 갔습니다.
〈료리사동무들, 우린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병사들의 친어머니, 친형으로 되려는 마음뿐입니다. 저길 보시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실 때마다 제일먼저 식당부터 찾으십니다. 음식감들의 영양성분분석표까지 몸소 보아주시며 병사들에게 좀더 영양가높은 식사를 보장해주기를 바라시는 그 뜨거운 사랑의 세계를 그 누가, 이 세상 그 어느 어머니인들 따를수 있겠소.…〉
그날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혜영인 생각에 잠긴 나를 보고 이렇게 묻겠지요.
〈은혜, 또 그 성철동물 생각해? 그런 사람 잊어버려. 내가 기딱 막힌 영웅감을 소개해줄게.〉
〈어디 내앞에 데려와 봐.〉
〈정말?!〉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혜영이가 내 얼굴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정색을 하며 묻더군요.
〈뭘 자꾸 생각하니? 함께 나누면 슬픔도 줄어진다구 했는데 혹시 여기 일이 힘들어서 그런건 아니야?〉
〈혜영동무, 난 언제나 동무를 고맙게 생각해.〉
〈새삼스레… 그건 왜?〉
〈나를 여기로 불러주었으니까!〉
〈오, 그건!〉
그렇게도 괄괄한 성격으로 팔방미인소리를 듣던 혜영이였으나 그 말에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
은혜, 난 결코 내가 너를 불렀다고 생각지 않아. 경애하는 장군님 사랑이 그렇게 한것이 아닐가. 만일 그때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의 음식감들이 아니였다면 내가 너를 그렇게도 애타게 그리워했겠어?…〉나는 더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번쩍거리는 군인건설자들의 주방칸이 문득 떠올라서입니다. 성철동무, 그때 난 나와 혜영이의 차이, 나와 병사들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심장깊이 깨달았어요. 성철동무만을 그리워하고 대학시절의 다정한 벗들을 못 잊어 졸업사진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던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것이였어요. 그것은 사랑의 세기로 론할 말이 아니였지요. 아버지장군님의 뜻을 따르는, 아버지장군님께 충정다하려는 그들의 대오속에 더 가깝게 접근하려는 오직 이 한생각이였습니다. 난 그때에야 혜영이가 결코 성격이 좋아서 그많은 사람들과 쉽게 친숙해질수 있은것이 아니란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곱고 정열이 끓는 그 모든것도, 그 어떤 일도 마다않고 웃으며 해낼수 있은것도 모두 가슴속에 그런 뜨거운 사랑을 지녔기때문이였던거예요.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난 정말 달라지게 되였어요. 언젠가는 심한 고열이 나면서도 병원침대에 그냥 누워있지 못하고 식당으로 나간적도 있었어요. 의지가 강한 발전소건설자들의 생활에 나의 생활도 완전히 합친것은 그때였던것 같애요.…》
×
성철은 료리경연시상식장에 앉아있었다. 박수갈채가 요란한 속에 1등상을 받고있는 은혜의 모습이 영화화면처럼 느껴질뿐이였다. 연두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아글타글 애쓴 처녀, 군인건설자들의 정신세계를 배우려고 애쓴 처녀, 우리 민족료리를 발전시킬 오직 한생각으로 심장을 끓인 과학자의 깨끗한 량심이 어떻게 빛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처녀.
마치도 그 처녀는 자기가 이전에 알고있던 그 은혜가 아닌것 같았다. 수집음에 활짝 타는 량볼은 사과알처럼 빨갛다. 상장을 품에 안고 또박또박 걸어내려오는 은혜의 모습을 점도록 바라보며 성철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은혜, 동무가 옳았소. 우리 시대의 참된 과학자란 어떤 사람이겠소. 인민이 바라고 인민이 좋아하는 사람,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그런 참된 인간이 아니겠소. 나의 앞으로의 연구사업에 대해 이 자리에서 다 말할수는 없지만 한가지만은 나도 알겠소.
인민을 위하여! 바로 그것이 당을 위하고 조국을 위하는 우리 시대 인간들의 참된 삶으로 되는것임을!
성철은 경연장 앞벽에 크게 써붙인 구호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